20대, 생태보고서

5. 부모님은 인생의 걸림돌이다 - 가족과 국가에 저항은 없다.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옛 국기에 대한 경례 중)라고 하는 부분에 좀 이상한 점이 있지 않나? 조국(祖國), 민족(民族) 모두 ‘가족’의 개념이 들어간다. 그래, 우린 한 가족, 이 땅에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는 것 하나로 우리는 하나의 가족이 된 것이다. 우린 또 하나의 가족이라능.

대통령 아빠와 한나라당 엄마 때문에 속상해온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알 것이다. 국가에 저항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지난 2008년 여름, 나쁜 것 사와서 먹으라던 국가에게 까불었다가 우리는 얼마나 호되게 당했던가(당하고 있던가), 때리지, 밀지, 막지, 그리고 동네방네 싸가지 없는 놈이라고 (모 신문들을 이용해)소문내고 다니지.

                        △ 살 만한 세상은 저항을 통해 만들어져왔다. 4.19 혁명 장면.

다른 세대라고 특별히 다를 것은 없지만, 20대는 꽤나 애매모호한 국가관을 가지고 있다. 자기 자신의 이익과 결부될 경우 ‘국가’란 개념에 대해 언제든지 쿨한 척 하지만, 누군가 국가를 모독하면 눈에 쌍심지를 켜고 자판 앞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번에 얘기할 것은 그런 것 보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더욱 큰 특징, 국가에 저항할 수 있는 방법도 모르고, 저항할 의지도 없다는 것이다.

‘저항 보다는 순응’을 택하며, 순응하지 못하는 자에 대해서는 ‘패배자’, 즉 ‘루저’라는 딱지를 붙인다. 그들에게 부모가 저항의 대상이 아닌 것처럼, 이 국가와 사회 역시 저항의 대상이 아니다. 때문에 비정규직이 확산되도, 나 자신이 비정규직이 되어도, 해고자가 되도 그 지탄의 대상은 ‘국가’가 아닌 ‘내’가 되는 것이다.

이제는 30대인 선배A는, 회사의 일방적인 구조조정(작은 기업이라 ‘구조조정’이란 딱지를 붙이기도 민망하고, 그냥 ‘해고’를 당했다)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책’의 술 한 잔을 기울였다. “어. 000씨, 이거 참 미안하게 되었는데, 내일부터 나오지 말았으면 해”라는 말을 듣고 “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거 부당해고잖아, 이유도 없데?”라는 질문에 “어차피 비정규직이라 뭐, 젠장, 앞일이 걱정이 되긴 해도 어쩌겠어? 다 내가 부족한 탓이다”라며 ‘쿨하게’ 답했다. 자신이 비정규직이 된 것은 대학 때 스펙관리를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며, 부당해고를 당한 것은 자신의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며, 비정규직으로 근무해서 실업수당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 또한, 자신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상하네, 그게 아니지, 다 똑같은 국민인데, 정규직은 실업수당을 주고 비정규직은 실업수당을 안 주는게 어디있어? 이거 완전 불공평한 거잖아?”라며 대신 불평하자 “거도 그렇다”면서도 “그래도 어차피 경쟁이란 거니까. 경쟁에서 밀려난 건 나잖아. 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회사 들어가야지 뭐”라고 체념한다.

“‘남의 일’도 아니고 ‘자기 일’인데 어쩜 그렇게 쿨할 수 있냐, 형도 월급 받으면 꼬박꼬박 세금 내지 않았냐”고 물어봐야 소용없었다. 그에게 국가는 최소한 지켜져야 할 틀이었고, 그 안에서 국가에 저항해봐야 ‘패배자’라는 낙인밖에 더 찍히겠냐는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그렇게 찍히면 앞으로 취업도 안된다”는 것.

비정규직이 이렇게 늘어난 것은 국가의, 이른바 ‘노동유연화’ 정책 때문이고, 이 정책 때문에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받는 돈에 차이가 나는 그야말로 ‘불공평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왜 S그룹에서 일을 하면서, 월급은 A아웃소싱에서 받아야 하며, 아무 이유 없이 A아웃소싱에 자신의 월급 일부를 바쳐야 하는 것인가? 이 모두 잘못된 정책이 빚어낸 결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이 아닌, 거기에 적응하지 못한 자기 잘못으로 돌려버린다.

아직 대학생인 B는 이번학기 등록금을 400만원 넘게 납부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매년 등록금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데, 국가와 학교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 사실 이 사회 법안을 만드는 ‘분’들이 대부분 사학과 연계되어 있는 상황에서, 그들이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등록금 인하’ 혹은 ‘등록금 상한제’를 법안으로 채택할 리가 없다.

이번에 통과된 ‘등록금 상한제’도 인상은 하되, 그 인상률을 물가인상률 수준으로 줄이자는 것 아닌가? 이 역시 국가의 개입이 절실한 영역이지만, 국가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다. “반값등록금”도 “뻥이야!”라고 말한 대통령이 있는 이상, 앞으로도 가능성은 없다.

그럼에도 B는 알바만 열심히 하고 있다. 현실이기 때문에 알바를 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겠지만, 등록금에 대한 불만이 있어도 이에 저항할 의지는 없다. 실질적으로 몸으로 등록금 쓰나미에 부딪히는 사람들도 이런데, 부모님의 도움으로 등록금을 낼 수 있는 사람들이 등록금에 대해 저항할 의식이 있겠는가?

나 역시 그런 적은 없지만, 안타까운 마음에 “총장실에 계란 하나 안 던지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러자 들려오는 대답은 “데모하면 안좋아”라는 것, “아니, 데모가 아니라 등록금을 이제 낼 수가 없는 수준이잖아. 그럼 인하하도록 압박을 하던가. 죽을힘을 다해 등록금 인상 막겠다는 총학생회를 찍어주던가, 방법이 있잖아”라고 물어보자 “귀찮아”라는 답이 돌아왔다. ㅡ,.ㅡ

20대들에게는 경쟁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경쟁에서 낙오한 사람은 ‘패배자’일 뿐이다. 문제는 이런 생각이 결국 “게으른 ‘패배자’를 위해 ‘승자’가 나눠야 할 이유는 없다”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뭐, 아이티 지진같은 안타까운 일에 내 돈을 ‘기부’하는 ‘대인배’가 될 수야 있지만, 근본적으로 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국가가 내 돈을 걷어가 지원하는 것이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그들이 이렇게 사회여론주도층이 되면, 양극화의 가속도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데모’얘기만 하면 ‘기겁’하며 “나 그런거 안해요”라고 말하는 후배들을 보면서, 점차 순응의 농도도 더 짙어지는 걸 느낀다. “그래도 예전엔 ‘부채감’이라도 있었는데”라며 입맛을 다셔봐야, 그건 또 옛날이야기 일 뿐 아닌가?

“국가가 나한테 해준게 뭐가있냐!”며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 특히 이리 치이고 저리 눌리는 20대들은 국가에 보다 ‘싸가지 없게’ 대할 필요가 있다. 공동체 의식은 존중하되, 대통령 아빠, 한나라당 엄마가 나에게 적은 돈을 주면서(OECD 비정규직 최고수준), 많은 일을 시킨다면(OECD 노동시간 최장) “내가 친아들 맞나” 의심해볼 일이다.

나의 힘이 부족하다면, 내 옆 집에, 앞 집에, 뒷 집에 사는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 국가에 의해 억압받고 착취받는 사람들과 힘을 합쳐 볼 수도 있다. 이 국가가 우리의 부모도 아니고 게다가 대통령과 여당은 우리 손으로 뽑았음에도 자꾸 우리를 괴롭힌다면, ‘악’ 소리라도 한 번 질러봐야 할 판이다.

그게 겁나면, 제대로 한 번 뽑아볼 일 아닌가? 반만년이 넘는 세월동안 이 나라를 지배해 온 원조보수도, 아류보수도 아닌 진짜 제대로 서민 챙겨줄 사람들을.

Posted by dalgona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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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달달달 2010/02/05 15: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바쁘신듯.....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