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생태보고서
4. 사회생활 지침서 - 여자는 사회생활 편한가?
“오빠”
‘띠리링’, 메신저에서 한 후배 녀석이 말을 걸었다.
“고민 상담할 것이 있어요.”
“응, 그런 건 돈을 주고 하는 거야, 내 계좌는…”
물론 돈을 받지 않고 고민 상담은 시작되었다. 딱히 해결해준 것도 아니고, 아니, 해결해 줄 수조차 없었던 이 친구의 고민은 자못 심각했다. 그가 대학을 휴학하고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일을 하고 있는 회사에서 벌어지는 일들로, 그 회사는 사장과 직원 하나, 그리고 이 친구까지, 단 세 명이 근무하는 사실상 가내수공업 형태에 가까웠다.
문제는 이 사장‘놈’, 이 친구에게 들었던 얘기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지만, 더 놀라웠던 것은 이 친구의 고민을 들은 다른 여성 친구들의 반응이었다. “응? 그게 왜? 하루에 몇 번씩도 겪고 있는 것 아냐?”, 바로 직장 내 성희롱, 없어지지 않는 그 놈의 문제다.(여기 와서 ‘예쁜여자’ 타령하는 ‘놈’들은 꺼지시라)
사연인 즉 이랬다. 외근이 많은 회사의 특성상 주로 사장‘놈’과 후배, 둘이서 한 사무실에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처음에 와서 다정하게 말도 걸고, 장난도 치고 편하게 대해줘서 고맙던 사장‘님’이 점점 장난의 강도가 심해지더니 뭔가 부적절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머리를 쓰다듬더니, 어깨를 주무르고, 어깨를 주무르는 손이 점점 밑으로 내려가는 이해하기도 어려운 기괴한 현상, 어느 날은 출장을 같이 가자하더니 지 나름대로 전망 좋은 곳에 차를 세우고 갑자기 허벅지에 손을 올리지 않나, 해괴망측한 분위기를 연출해대더니, 급 “나는 너를 사랑한다”며 유부남인 자신과 ‘부적절한 관계’까지 제안했다고 한다.
“이러지 마세요”라고 했더니 들리는 답은 더욱 가관, “그럼 여기까지 왜 따라왔냐?”느니, “그냥 오빠 대하듯 편하게 대하면 된다”느니, “월급을 좀 더 올려주겠다느니” 따위의 3류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대사들을 주르륵 읊는데, 얘기를 들으면서, 역시 철딱서니 없는 어른들은 야동을 좀 끊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더욱 절망적인 것, 이런 개 같은 상황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친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정도를 넘어선 들이댐에 계속 거부야 하고 있지만, 저 섀이는 ‘좋아서 저러는 것’이라 생각하는지 도통 씨알도 안 먹히고, 그렇다고 여기서 그만두면 딱히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현실적으로도 몇 달만 더 버티면 퇴직금이 나오는데 그 돈을 쉽게 포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른사람들에게 얘기하자니? 그 공포, 알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런 고민을 내게 얘기하는데, 내가 딱히 해줄 말이 없었다. 나로서는 도저히 경험할 수 없는 일이니까. 이건 바로, 대한민국 사회에서 여자만이 느낄 수 있는(때로는 남자들도 느낄 수 있는 일이지만, 그 강도의 차이는 사실 비교하기 어려운 것 아닌가?), 그들의 ‘사회생활’이기 때문이다.
여성, 특히 최대 약자인 20대 비정규직 여성이 직장생활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음을 느꼈다. 아빠 보다 고작 몇 살 어린 그 사장놈은 "그녀를 좋아하니깐"따위의 ‘호감’이란 그럴싸한 명목으로 자신의 죄를 사하며, 후배에게 정신과 육체를 요구했고, 그 친구는 ‘사장’이라는 권위에 짓눌려 저항의 수단을 찾지 못했다.
여자는 사회생활이 편한가? ‘남성’인 나 역시 부끄럽지만 고백컨대, 사실 같은 생각을 잠깐이나마 한 적이 있다. 함께 일해 본 바 있는 여성들은 좀처럼 사회생활에 ‘참여’하지 않았다. 무슨 ‘약속’은 그리 많은지, 그래도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데 좀 ‘성의’는 보여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도 했었다.
종종 인터넷에는 간간히 “여성의 70%, 남성보다 빨리 퇴근” 따위의 제목의 기사가 날아다니며 사람들을 농락하고, 여기에 발끈한 남성 네티즌들께서는 “이거봐, 남자는 일 열심히 하는데, 여자들은 똑같은 돈 받고 야근도 안하고, 내가 더 힘들어”를 외친다.
대학때 부터도 그랬다. ‘오빠’들은 여후배들의 손을 잡아끌고 “단체생활이야”라며 자못 진지한 얼굴로 떡실신 할 때 까지 술을 멕이고, 여후배들은 “아, 원래 술자리가 이려려니”라며 받아들인다. 술자리에선 “재미로 하는” 키스게임이 난무하고 이를 거부하는 사람은 “사회(대학)생활 박약”이란 딱지를 붙이며 “산통 다 깨는, 혹은 못생긴게 까칠한, 재수없는 년”으로 낙인찍힌다.
대학도 이런데, 사회생활은 어떻겠는가? 대학생활이야, 그냥 학교다니면서 공부만 하고 학교일에 참가하지 안으면 그만인데, 사회생활이 어디 그렇게 되나? ‘남성화’된 대한민국 사회에서 여성들이 그 분위기에 적응 못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지 않는가?
지역에서 기자질을 처음 시작할 때도 어느자리에서나 ‘남성화된 대한민국’을 늘 느껴왔고, 술자리에서 목격한 상상을 초월한 성희롱 광경도 많이 봤다. ‘술’에는 왜 그런지도 모르게 ‘여자’가 있어야 했고 여자가 있는 자리에서도 노래방에선 도우미를 부르는 경우도 있었다. 대놓고 룸사롱을 가자던 양반들도 있었다. “남자가 사회생활 하는데, 이런 곳은 한 번 가봐야 한다”며.
당시 20대 중반의 나는 노래방에 가면 도우미 아줌마들과 4~50대 아저씨들의 광란의 몸부림 속에서 대한민국에서는 ‘오바스러울’지도 모를 모멸감을 느끼며 구석에 앉아있었고, 나와 나이차이가 크게 나지 않았던 여성 실장님은, 자기 눈 앞 에서 노래방 도우미 분의 몸을 더듬는 그들을 보며 몸서리가 쳐졌다고 한다.
나는 그때도, 그 이후로도 그들의 채근에도 룸살롱은 기어이 가지 않았다. 처음 뵙는 사람과 초면에 살 부대끼느니 “사회생활 못하는 놈”이란 평가가 차라리 나았으니까.
지금은 진보매체에서 일하고 있고 접촉하는 사람들이 다 그 동네 사람들이라 그런 일이 흔치 않지만, 사실 ‘진보’라는 사람들도 ‘남자’에선 자유롭지 않다. 너무나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언어들, ‘관심’과 ‘호감’의 이름으로 이뤄지는 스킨십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특별히 할 말도 없는데 반드시 둘이 한 번 술 먹자고 채근하는 사람이 있지 않나. 챙겨주는 거라며 쉽게 어깨에 손 올리는 사람이 있지 않나.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첫차 올 때 까지 자고가라는 사람이 있지 않나, 그냥 궁금해서 보는 거라며 남의 핸드폰을 열어 문자보는 사람이 있지 않나, 그런 사람이 어디 있냐고? 우짜나. 모두 ‘진보’라는 판에서 본 사람들이다.
20대 여성의 사회생활이 쉬워 보이는가? “아버지나 오빠처럼 생각하라”며 뻗어오는 징그러운 손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그들을 덮칠지 모른다. 그래도 그들은 감당하며 산다. 돈 벌어야 하니까,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거 참지 못하면 도태되니까. 게다가 그런 짓들을 벌이는 남자들은 자꾸 자기 마음은 순수하다고 강조하기까지 하니까. 괜히 자기 기분만 나쁘고 오바쟁이까지 되는 것 아닌가?
그들은 왜 회식에 가지 않고 일찍 가는가? 남성화된 사회에서 그들을 애써 소외시킨 체, 그들에게 “적응 불가”라는 딱지를 남성들이 부착했던 것 아닌가? 가끔 조중동에서 나오는 쓰잘데기 없는 통계분석 기사를 보며, 그리고 그 밑에 입에 거품 물고 댓글 다는 남성들을 보며, 그들에게 “여성화된 사회라면 적응할 수 있겠나”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아. 이건 ‘남자’이기 때문에 당연한 본성이라고? 그럼 동물 하시던가.
ps. 물론 모든 남자들이 그런 것도 아니고, 오히려 그런 시선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는 남성들도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런데 어쩔 수 없다. 우리 스스로 계속 성찰하고 돌아보는 수 밖에, 나 자신도 모르게, 정말 좋아하는 마음이라도, 상대방의 기분에 따라 ‘실례’, 혹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될 수도 있지 않은가? 어렵지만, 이런 건 ‘쿨함’보다 ‘조심함’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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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딩의 입장으로 떠날수도 없고 그렇다고 버티자니 즐긴다고 생각들 하고...참 안타깝네요..여자들 뿐만 아니라 남성들도 전런 성희롱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습니다. 다만.."남자"니까 하면서 넘기는 경우가 많을 뿐이죠..남자,여자 모두 직장내 성희롱 문제에서 자유롭진 못한것 같네요..물론 여성분들의 고충은 더 크겠지만..
다행인것은 그나마 요즈음 변화의 바람이 불긴 하지만 너무 미미합니다. 직장내 신고함이라든지 아니면 조금씩 변해가는 인식들..제도적 보완도 더이루어져야 할 듯..싶네요. 어쨌든 변화가 더 큰 바람이 되서 사회 곳곳에 있는 안 좋은 생각들과 관습등을 멀리 보냈으면 하네요..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그런 경우도 있죠, 그런 경우도 정말 안타깝긴 하지만, 사회적 위치와 지위를 통틀어 여자의 강도만큼은 안되는 것 같아요 음.. 댓글 감사합니다 ^^
제가 항상 지켜보고 있소...오늘글도 나쁘지 않군요..ㅎ
아.. 잡아야 하는데...
네가 말한 지방이 서X은(는) 아니겠지....???
ㅋㅋㅋ 거기 얘기하지마라 ㅋㅋ
비밀댓글 입니다
괜찮아 괜찮아 ㅋㅋㅋ
남자도 성차별과 희롱을 당하고 본의 아니게 억울함을 갖고 산다..
왜 남자화장실을 아줌마들이 청소하냔 말야...글구 남자 화장실이 꼭 입구 앞쪽에 보이는 곳에 위치하고..여자가 동료남자 엉덩이 때리면서 지나가면 왜 주위에서 부러운 시선으로 보는건데?? 글구 MT나 축제때 놀러가면 왜 항상 여장을 시키냐고??
요즘은 눈치 보여서 회식자리에서 고기도 남자들이 자르고 술도 권하면 권한다고
뭐라 그러고 안권하면 재미없다 그러고...
마지막으로..왜??? 남자 수영복은 가슴을 안가리는데????ㅡㅡ;
하기 싫으면 안하면 되는데요 ㅋㅋㅋㅋ
여기는 남자들만 들어오나.. 왜 다들 남자도 억울하다며 울먹거리는지..ㅎㅎ 그나저나 글에 나온 그 여자분.. 정말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안타깝네요..
`20대 비정규직 여성` 우리 달 형제님이 쓰신 이 한 문장이 많은것을 내포하네요. 대머리에 배나오고 여자 밝히는 사장님들은 남자들도 싫어 하는데 여자들은 얼마나 소름이 끼칠까. 요즘은 사회가 남녀에 따라 좋고 나쁘다기 보다는 그냥 남녀 둘다 죽어나네요.ㅠㅠ
그나저나 위에 이대통령 사진 쩌네요..ㅋㅎㅎㅎ 아직 형제님이 세상 물정을 모르시네요.. 잘못하면 아이리스 요원들한테 잡혀서 쥐도 새도 모르게 고기없는 단식원으로 끌려갑니다.ㅋㅋㅋ
저 사진 구하는데 힘들었다능..
때때로 자기가 잘못하고 있다는 걸 모르고 계속 실수를 범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사람이 자신의 윗사람이라 (도대체 우리 나라는 뭔놈의 직급이 이렇게도 막강 파워가 되어버리는건지 -_- 글쓰면서도 솔직히 쪽팔립니다) 직접 대놓고 말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면, 그 사람 보이게 뒤담 까면서 키키 거려도 조금이나마 효과는 있을겁니다. 부끄러운 짓이라는 걸 알려 줘야죠.
좀 더 배포가 있는 분이시라면, 남자로 정중히 대해주는 방법도 있습니다. -마음은 정말 감사합니다만. 사장님한테는 마음이 조금도 안 끌립니다. 전혀 제 타입이 아니십니다- 강력하게 거절하는 겁니다. 먹힐때도 있고 안먹힐때도 있지만. 배포있게 컨트를 하신다면. 잘하면 사장님의 위에 서실 수도 있습니다.
주변의 남자 친구들에게 부탁해서 도움을 받는것도 한가지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등등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수치스러운 행동을 하면 질타를 받는 다는걸 못배워먹고 자란 분들이 도를 넘는 뻔뻔한 행동을 주로 하시니, 그럴땐 '망신'을 베풀어 주는게 가장 효과적입니다만, 그 회사 계속 다니고 싶으시다면, 그 분이 '아리까리' 해 하도록 하면서 점점 강도를 높여가시구요.
라고 했지만. 생각처럼 쉬운일이 아니라는건 잘 알고 있습니다.
그저, 달님 말씀처럼 남성분들이 좀 더 조심해주시고. 여성분들도 좀 더 오픈된 마인드로 남성분들을 대해, 직장내에서 '남자 여자' 가 아닌. 진정한 '직장 동료'관계가 성립될 수 있는 사회가 빨리 왔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동료관계, 좋네요.
'당신 자식이나 애인이 똑같이 당하는게 좋으면 계속 그렇게 하쇼!' 라고 말해주고 싶다. 도대체가 이넘의 인간들은 '역지사지'라는 말을 왜 모르고 사는걸까.
'생각을 해봐 이자식아!너라면 좋겠냐!'
그러게 말이죠, 왜 역지사지를 모를까요?
글잘읽었습니다.^^
남자가 이런 글을 쓸수도 있군요. 글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