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생태보고서

5. 부모님은 인생의 걸림돌이다 - 달려라! 레지스탕스!

굳이 ‘부모가 인생의 걸림돌’이란 배은망덕한 제목을 달았던 이유는 간단하다. 새는 알을 깨고 나와 사방팔방 날아다녀야 하는데, 이 알의 강도가 세지고, 점점 두꺼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새가 알을 깨지 못하고, 외부에서 젓가락으로 톡톡 쳐 깨면, 제대로 날지도 못하는 기형적인 새가 된다. 그런 기형적 형태가 점점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뭔 소리냐. 어 롱 타임 어고, 보통 20세를 전후하면 잔혹해질 정도로 내팽개침(?) 당했던 부모님들이 과거의 기억에 분루를 삼키며, 자기 자식만은 유정란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운 뒤, 알 속에 무차별적인 영양소를 공급하고 적당한 때가 왔을 때 인공부화를 시키지만, 그렇게 나온 새들은 갑바만 좀 나왔지, 정작 날 줄 아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 부모님은 자식을 낳아주시만, 알은 스스로 깨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우리 부모님들은 그랬다. 일부 부잣집, 혹은 가난하더라도 소 팔아 대학 보내놓은 3대 독자 외아들을 제외하고는, 보통 20대 남짓해 노동자 생활을 시작했다. TV에나 나올법한 귀한 아드님이나 따님들 정도만이 부모님 등쌀에 삶이 규정되었을 뿐, 이른바 ‘70년대 산업역군’들은 자신의 생계와 삶의 방식에 대한 최소한의(자본주의적인) 선택권은 부여되었다.

오히려 20대인 그들에게 시골에 있는 부모님의 생계, 혹은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동생들의 생계라는 무거운 책임감이 부여되었던 경우는 있었을지라도, 부모에 의해 삶이 규정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우리 부모님들은 그것을 “고난과 역경”이라고 부르지만.

그런데 당시의 20대들이 부모가 되면서 너무 변했다. 물론 5~70년대 우리 부모님들의 삶과 2000년대 20대의 삶에 대한 직접 비교의 차원이 아니다. 그들의 ‘고난과 역경’도 (자본주의적 삶의 방식이니 만큼)굉장한 고통이 수반되었고, 지금의 20대들은 그러한 고난과 역경에 봉착하는 일이 흔치 않으나. 지금의 20대들은 30대가 되더라도 ‘결혼’이라는 외부적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면 부모님의 품조차 떠나기 어렵고, 심한 경우 그들에 의해 삶의 방향이 정해지기도 한다.

옳은 일은 아니다. 농촌을 떠나 경험적으로 산업화, 자본주의화 된 부모님의 삶 속에서 아이들의 삶도 자본주의적 삶 정도로 규정되고, 여기에서는 자발적 결정이 개입될 여지가 축소된다. “우리 아들은 무엇을 하고 싶니?”보다. “우리 아들은 커서 의사가 되어야 해(10~15세)”, “좋은 대학을 가야해(15~19세)”, “대기업에 가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해(20~25세)”라는 선을 제시하는 부모님들에 의해 인생의 선과 기준이 그어진다. 그 다음에 알을 깨고 나온들, 나이도 먹었는데, 삶의 길을 찾지 못하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앞으로 약 3회 동안 부모님, 그리고 마지막엔 ‘조국’ 즉, 부모화 된 국가의 틈바구니 속에서 신음하는 20대의 이야기를 다룰 예정이다. 그리고 그 처음으로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온 자랑스런 ‘레지스탕스(저항군)’들의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알을 깨는 과정’은 물론 고통이 수반된다. 나는 그 과정을 꽤나 잘 알고 있다. 내 스스로가 그 알을 깨고 나왔기 때문은 아니다. 누나가 깨고 나오는 과정을 지켜봐 왔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본 후, 나는 부모님의 틈바구니에서 고민에 빠진 후배들을 향해 늘 내 누나의 얘기를 한다. 그의 인생이 더할나위없이 완벽하기 때문은 아니다. 다만, 그가 스스로의 길을 찾는 과정이, 지금의 20대들이 찾지 못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조짐(?)은 13년 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누나가 모 대기업 사원으로 입사하면서부터 시작된다. 부모님은 당연히 안정적인 대기업에서 안정적인 수입으로 돈을 벌다가 시집을 가서 조만간 “‘손주’라고 쓰고 ‘모든 것’이라 불리는” 아이 하나를 부모님께 떡 안겨드리는 훈훈한 풍경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누나는 달랐다.(물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사는 삶이 불행한 삶이라는 건 절대 아니다. 나도 그거 하고 싶으니까,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삶일 수 있다. 다만 누나가 가진 ‘기준’에 근거해, 그가 삶의 방식을 규정한 과정에 초점이 있다)

저항은 시작되었다. 당시 16~17세 정도인 나는 “나 사춘긴데”라며 부르짖었지만 소수의견으로 취급, 묵살되었고 그야말로 하루가 멀다하고 부모님과 누나의 전쟁이 이어졌다. 초반은 압도적 화력을 앞세운 부모님의 유리한 판세로 진행되었다.

밤마다 늦게 들어오는 누나에게 화도 내고, 달래도 보고, 술도 멕여 봤다. 부모님이 할 수 있는 온갖 방법을 총 동원했지만, 낙동강 전선을 눈앞에 두고 “회사를 그만두고 컴퓨터 관련업에 종사하고 싶다”, “나가서 살고 싶다”는 누나의 계획을 함락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부모님도 만만치 않았고(하긴, 어느 부모님이 쉽게 포기하겠나?) 이 전쟁은 약 5년 간 이어졌다. 누나 역시 설득과 강공 등 레지스탕스 운동을 벌이며 저항을 이어갔고, 결국 불리하던 판세는 비밀리에 서울 상륙작전을 준비하던 누나의 공격에 단박에 역전되었다. 부모님은 결국 누나가 알을 깨고 나오는 장면을 지켜봤고 누나는 고시원 생활을 하면서도 결국 ‘자신의 길’을 찾아갔다.

지금은? 정전-평화협정 7년 후, 누나는 돈 잘 버는 ‘둘도 없는 효녀’다. 몇 십만원으로 시작했던 누나의 월급은, 내 3~5달치 봉급 수준으로 올라갔고, 번 돈은 여행 등 인생을 즐기는 방법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근 아이티 옆(고인들의 영복을 빕니다...)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프리랜서 프로그래머로 활동했다. 누나가 거기 있는 덕분에 우리 부모님은 남매의 좌우합작으로(물론 소득수준에 따라 불균등한;;;;) 무려 40시간 넘는 비행기를 타고, 지진 전 까지 생소하기만 했던 도미니카 공화국 여행도 갈 수 있었다.

(그리고 누나는 그 곳에서 나와 미국과 유럽 등지를 여행하고 다녔으며, 우연치 않게도 바로 오늘 오후 4시 인천공항으로 귀국했다.)

그의 저항 덕에 난 손도 안대고 코 풀었다. “그래도 집에는 들어오는” 아들내미에 대한 부모님의 통제와 간섭은 거의 없다. 나는 내 신념과 꿈에 따라 직장을 선택했고, 턱도 없는 저임금을 받고 있지만 부모님은 내 미래에 대해 신뢰를 보내주고 계신다. 한 번 깨진 알은, 또 한 번 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사례 뿐 아니다. 부모님의 틈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은 꽤나 많다. 그들이 돈을 잘 벌건, 잘 못벌 건, 그런 기준을 떠나, 그들은 적어도 혼자 이 젠장맞을 세상을 ‘즐겁게’ 살아가는 법을 아는 사람들이다.

부모님 눈치와 등쌀에 사랑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갑바나온 새들이 가엾거나 한 것은 아니다. 그들 역시 스스로의 선택이었을 테니, 하지만 T자 코스, S자 코스를 따라다니는 면허시험보다. 재미있는 것은 도로주행이 아니던가.

Posted by dalgona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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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더 모우 질라 2010/01/21 0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른들이 보시면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는 내용이네요. 20세기는 지식사회, 21세기는 창의력 사회라고 하지요. 20세기는 부모 말 잘 듣고 공부한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였지요. 하지만 21세기는 가치 창출의 루트와 직업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인터넷이나 출판물 등의 범람으로 개인의 지식 축적이 예전처럼 중요한 사회가 아니지요. 지식은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으니 지식의 창의적인 활용도가 더 중요해 지고 있습니다. 다람쥐 쳇 바퀴 돌듯한 주입식 교육과 진로만 열창하고 있으면 3등은 해도 죽어도 1,2등은 못합니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인지라 어떻게든 1등이 되어야 하는데 기자님의 누님처럼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서 거기서 1등이 되어보는것이 우리 젊은이들이 택할 수 있는 또 다른 길 이겠지요. (아~ 말은 참 쉽다..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