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표류기’, 절망할 필요는 없다.

참 친절한 영화다. 영화가 말하고 싶은 것, 영화로 인해 우리가 느껴야 하는 것을 너무나 쉬운 어조로 담담하게 그려준다. 그것만으로도 참 대단한 영화가 아닐 수 없다. 박찬욱 감독이 엄청나게 빡쎈 영화를 들고 나와 “난 쉽게 했는데?”라고 말한 것과 대비하면 이 영화는 ‘친절한’이란 단어로도 부족하다.

영화는 표류와 격리를 통한 현대인들의 삶을 그리고 그 안에서 발생하는 희망을 그리는 영화다. 다만 전작 ‘천하장사 마돈나’에서도 그랬듯, 이해준 감독은 이번에도 평범해 보이는 인간들의 삶과 그 모습을 ‘하자’있는(그러나 진짜 ‘하자’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닌) 사람들로 채워나갔다.

(남자 김씨와 여자 김씨가 다소 ‘하자있는’, 독특한 인물로 그려지는 것은 당연하다. 사실 사회에서 잃을 게 많은 ‘종부세 내는 김씨’와, 신상으로 도배한 ‘예쁘고 간지나는 김씨’가 굳이 이 사회를 도피할 필요는 없으니까)

구체적인 내용은 이렇다. 신용불량자에 자살자, 돈 없고 빽 없는 남자 김씨(우리 중의 대다수인 모습인데 왜 ‘하자’취급을 받는가?)와, 왕따 출신의 대인기피증을 가지고 있는 여자 김씨는 자신만의 공간을 구축하고 그 곳에서 희망과 욕망을 찾아 나선다.

다만 남자 김씨는 ‘본의 아니게’ 자신의 공간이 구축되고 그 곳을 터전으로 삼는 반면, 여자 김씨는 ‘본의 아니게’ 자신의 공간(온라인)에서 잠시 벗어나 남자 김씨의 공간(오프라인)으로 파고든다. 이들은 각자의 공간에서 희망을 얻고 그 희망을 배운다. 그리고 이들은 '교신'을 통해 공간을 잇고 희망을 키운다.

그러나 종국에 그들의 도피공간은 ‘해병대 전우회’와 ‘네티즌 수사대’에 의해 탈취 당하게 된다. 그리고 두 김씨는 그들에 의해 강제로 현실 속으로 끌려나온다. 이건 마치 내가 아무리 깊은 산골에서, 무인도에서 아무도 모르게 혼자 살기를 원하더라도 이 나라에서는 세금을 걷으러 오는 것 같다는 느낌일까?

어쨌건 영화에서 이들은 나름대로 현실에 대한 저항을 벌였으나, 부적응과 도피로 낙인찍혀 다시 세상 속으로 끄집어진 셈이다. 물론 강제로 꺼내져 이들이 다시 나온 세상은, 이들에게 절망을 주었던 그 이전의 세상과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남자 김씨의 교통카드가 여전히 찍히는 것처럼,

다만 더 잃을게 없다는 절망감 속에서 울려퍼진 초현실적인 민방위 경고음 소리와, 마지막 엔딩장면에서 두 김씨가 드디어 '번개'에 성공해 어설픈 영어로 대화하는 극적인 장면은, 영화가 이 세상에 너무 절망감을 느낄 필요는 없음을 말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어쨌건 이 영화를 보면서 정재영의 연기에 무지하게 웃었다. 잘생긴 저 ‘장진의 남자’는 이 영화에서도 자신이 구축한 연기세계를 마음껏 드러내준다. 오리배와 짜파게티 등 주변에서 참 보기 쉬운 물건들로 세계관을 구축하는 상상력도 놀랍다. 또 하나 추가하자면, 이 영화는 자장면을 부르는 영화라는 것, 헐.. ㅋㅋ

Posted by dalgona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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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라오니즈 2009/05/18 14: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화의 주된 내용이 무엇인지 간략하면서도 명확하게 설명해주셨군요.
    나라에서 세금을 걷으러 온다는 표현이 무지 와닿는데요. ^^
    잘보고 갑니다.

  2. 개구쟁이 2009/05/18 15: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일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면서 밤섬 위 서강대교를 달립니다............뭐 그렇다구요 ㅋㅋㅋ

  3. 벽전 2009/05/18 16: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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