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생태보고서

2. 삭막한 캠퍼스 - 등록금 인하 대신 스타벅스를

투덜대도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라고, 그것이 ‘추세’이자 ‘현실’이라고 설득했다. 나 역시 대학 다닐 때 운동권 언저리에서 서성거리기만 했고, 녀석도 운동권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변해가는 캠퍼스의 분위기와 후배들의 행동을 녀석은 납득하지 못했다.

불과 몇 년 사이었다. 물론 선배들 말에 따르면 예전부터 변화의 폭은 크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의 캠퍼스에 ‘심정적 변화’만을 느끼는 건 아니었다. 최신식의 건물, 프리젠테이션 형태의 강의장은 책상 질질 끌고 옹기종기 모여앉아 토론했던 추억을 망가뜨렸다.

                  △근조. 대한민국 부모님들의 등골.

학교 주변의, 3000원 짜리 백반, 찌개집은 사라지고 그 자리는 프렌차이즈 패스트푸드가 들어섰다. 과방에서 기타치고 노래하는 선배들의 모습은 신기루처럼 사라져갔고 그 자리를 매운 것은 과방 안의 컴퓨터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간지 나는 싸이 사진을 보는 후배들이었다.

사실 얼마 전(나 대학 1학년 때, 그러니까 불과, 아주 엄청나게 얼마 전, 매우 근접한 과거 -_-)부터 조짐은 보였다. 내가 얘기하는 변화의 기준은 “대학생이 되면 운동을 해야지!”가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인가 대학생들의 요구가 굉장히 소소해지고 지엽적이 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학교 곳곳에 내걸렸던 ‘비정규직 철폐’ 플랫카드는 각종 광고게시물로 채워졌고, ‘등록금 인하’를 외치던 총학생회장 선거공보물은 ‘교내 스타벅스 등 편의시설 설치’로 바뀌어졌다. 나쁘다고는 볼 수 없다. 앞서 설명했듯이 그 역시 ‘추세’고 ‘현실’이니, 다만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는거다.

자기고백부터 시작하자면, 사실 ‘운동’이 싫었다. 뭐 다른 이유가 아니라, “부모님이 걱정할까봐”, 그래서 싫었다. 뭐 그 이후부터 싫었던 것은 다른 이유들이 좀 있었지만, 당시로서는 굳이 부모님에 걱정을 끼쳐드리면서까지 운동이란 걸 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부채감’은 좀 있었다. 알몸으로 누운 채 짓밟히는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의 모습을 비디오를 통해 보면서, 철거촌에서 용역깡패들과 매일같이 살 떨리는 전쟁을 벌여야 하는 세입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들에게 힘이 되어주지 못했던 미안함은 있었다.

그런데 그 ‘부채감’도 사라졌다. 후배들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야. 그래도 대학 다니면서 학고도 한 번 맞아보고, CC도 한 번 해보고, 운동도 한 번 해봐야지”라고 툭 던졌을 때, ‘운동’부분에서 만큼은 힉겁한 반응이 돌아왔다. “네? 그런 걸 왜 해요?”

맨 앞에, 고민을 털어놓은 그 친구 역시 딱히 운동 때문에 고민을 털어놓은 것은 아니었다. 단지 학생회 출신으로서, 그리고 지금 근접한 거리에서 지금의 대학생을 바라보면서, “저들은 왜 이렇게 자꾸 개인주의화 되어갈까?”라는 고민이었다. 저들을 집단화 시켜 운동권을 만드려는 욕심도, 이명박 정권에 맞서 싸움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왜, 이제. MT조차 가려고 하지 않을까”라는 고민, 그거. 그래. 이제 그 단계까지 온 것이다.

앞에서 한참을 주저리 주저리 “마치 대학생들은 이제 기대할 것도 없다”는 것 마냥, 푸념을 늘어놓았긴 했지만 사실 내가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그들을 위한 ‘변명’이다. 뭐, 앞으로 나올 얘기들이야 모두 다 아는 이야기일 테지만.

A는 등록금 고지서를 받고 나서 ‘후덜덜’한 가슴을 둘 곳 없다고 했다. 올 해 한 학기 등록금만 거의 400만원, 방학동안 아르바이트를 내내 한다고 해도, 두 달 내내 한 푼도 안 쓰고 모은다고 해도 대학생들이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120만원 남짓, 등록금의 1/4도 모으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그는 이번에 아르바이트 자체를 포기했다. 등록금에 ‘보탤 수라도 있는’ 금액도 모으지 못할 바에는 방학동안 공부나 한다고. 그래서 장학금을 받든, 취업을 빨리 하든 하는게 더 낫다고 했다. 그리고 부모님들도 “그것이 낫다”고 동의했다.

아마 그는 등록금 뿐 아니라 생활비까지 부모에게 받아써야 할 것이다. 그렇게 계산해보면 그가 부모님에게 받아야 할 돈의 액수는 ‘천만원’을 훌쩍 뛰어넘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에게 ‘사회적 목소리’를 요구해? 이런 현실을 함께 바꿔보자고? 당장 내일 바뀔 것이라는 보장을 주지 않는 이상, 그에게 이런 요구는 가당찮다.

A는 그랬다. “우리 집 사정이야, 내가 잘 아는데, 솔직히 엄마한테 ‘만원 만’하기가 쉬운게 아닌거, 형도 알잖아. 나 때문에 집이 휘청거려서 휴학할까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데 이미 학자금 대출도 천만원이 훌쩍 넘어버렸어, 내년부터는 원금도 값아나가야 할 텐데, 등록금은 매년 올려놓고, 학자금 대출 이자도 올린다고 하고, 나라가 이렇게 장사해도 되는거야?”

“그래, 그럼 그거 좀 바꿔달라고, 나와서 얘기하면 되지”, 안되는 거 뻔히 알면서도 나는 그랬다. 그러자 돌아온 냉소, “안되는 거 알잖아? 그럴 시간에 영어공부나 해야지”, 꼭 집혀져 뜨끔한 마음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작년, 여름.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던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 많은 친구들에게 ‘한 번 나와보라’고 설득했던 적이 있다. 물론, 나온 친구들도 꽤 되었지만 나오지 않은 친구들도 꽤 있었다. ‘광우병’은 이들이 동의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부모님의 ‘으름장’에, 혹은 ‘이런데 나와서 잘 못되면 받을 부모님의 상처’에 나오지 못했다.

그리고 ‘사회적 목소리’에 대한 이들의 거부감도 있었다. 당장 자신의 목을 죄어오는 ‘등록금’에 대한 것도 있지만, 집회에서 내는 목소리와 분위기에 동의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비정규직 철폐’ 구호를 놓고 한 친구는, “나는 왜 그렇게 주장하는지 모르겠어. 어차피 자본주의 사회고 이 사회도 경쟁인데, 열심히 노력해서 정규직이 될 수도 있는거고, 회사 사정에 따라 비정규직을 쓸 수도 있는거지, 무조건 철폐하라고 한다면 그게 가능한 거냐고”라 말했다. 이 친구 부자냐고? 물론 아니다.

PS. 마치 이 땅의 대학생들이 모두 생활고에 시달리고 장래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다는 걸, 나 역시 잘 알고 있다. 20대는 소비에 능하고, 사치를 즐기는 세대. 그리고 대한민국은 그런 20대들의 습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회다. 그 얘기는, 다음편에 하도록 하자.

Posted by dalgona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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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니발 2009/11/29 2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 학교 앞도 김밥천국이 사라지고 카페들만 생기고 있어요 GG
    그리고 매년 학생회에서 등록금 인하를 공약으로 내걸고 출마하는데
    막상 당선되도 등록금은 오르기만 하더군요
    군대 갔다오니 역시나 2년전보다 더 올랐어요

  2. BD 2009/12/15 19: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악순환의 반복...교육비가 올라가지만..요즘 부모님들은 하나씩만 낳아서 제대로
    키운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버티어 낸다. 그러니 등록금은 올라가는데..대졸자는 더 많아지고 가게부채는 사상 최악이겠지..어찌보면 못배우고 못먹던 시절에 한이 맺혔던 그때그시절의 교육열부터 시작됐다고 봐야겠군요..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이제 앞으로 저출산이 빚어내는 문제점들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