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속을 떠난 걸승이
    어떻게 주 수상이 되지?
    [인도 100문-19] 세상 중심의 종교
        2017년 10월 13일 10:3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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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다는 세상을 버리고 떠난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시간이 흐르면서 세상을 정복한 사람이 되었다. 이를 학문적으로는 World Renouncer, World Conqueror라고 한다.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그의 말을 듣고 따른다면 그건 충분히 일리가 있긴 한데, 붓다가 하지 말라고 한 걸 꾸역꾸역 하면서 세상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그의 말을 듣는다는 건 좀 뭐하지 않는가? 승 법륜이 엄마들에게 아이 키우는 법을 가르치는 코미디 같은 일도 일어나는 걸 보면 전혀 이해 못할 바도 아니지만.

    힌두 사회는 전적으로 세상 중심의 물질적 사회로 카스트 체계 토대 위에 세워져 있다. 그런데 그 사회 안에는 그 물질 추구의 문화를 버리고 즉 세상을 부인하고 세상 밖으로 나가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세상 안에 남아 있는 사람들로부터 큰 존경을 받는다.

    무슨 심리일까? 우선은 세상을 더러운 것으로,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상을 극복하는 자는 초월자로서 대단히 뛰어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스승은 세상 안이고 밖이고 간에 모든 걸 다 꿰뚫고 안다는 것이다. 몇 년 전에 서울시장 오세훈씨가 서울시장 직을 초개와 같이 버리고 밖으로 나가버린 후 정치인으로서 그의 인기가 치솟은 적이 있는데, 그것과 백퍼 동일한 이치다.

    엄밀히 말하자면 김구 선생이나 인도의 간디에 대한 평가 또한 마찬가지다. 백범은 무장 투쟁을 지도한 전사의 우두머리일 뿐 정치를 통해 나라를 경영할만한 능력이 있는 것인지의 여부는 검증되지 않은 지도자다. 존경할만한 분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그렇다고 그가 훌륭한 정치인일 것이다, 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간디 또한 마찬가지다.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사상가이자 실천가이자 운동가이지만, 그가 과연 정치를 잘했고, 독립 연방 공화국 인도의 수많은 난제를 잘 헤쳐 나갈 수 있으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인도에서 인구 면으로 볼 때 가장 큰 주는 북부 인도의 한 가운데 있는, 옛날 고대부터 지금까지 가장 많은 전쟁과 교역이 이루어져 온 웃따르 쁘라데시Uttar Pradesh다. 이 주의 수상으로 요기 아디야나트 Yogi Adyanath라는 사람이 최근에 선출됐다.

    그런데 그는 세상을 버리고 출가한 걸승(sadhu. 힌두교 수행자. 성직자)이다. 21세 때 출가를 해 어떤 승려 집단으로 입문을 했다. 그러면 이 대목에서 동일한 의문이 들 수 있다. 세상을 버리고 떠난 사람이 왜 세상 정치를 하나? 그리고 극우 힌두주의자가 정치를 하면 혹시 자본주의 시장질서가 어지러워지는 거 아냐? 이런 고민을 하는 게 자연스럽다. 그에 대한 답을 미리 하면 그런 걱정은 사실과 너무나 다르다. 그 이유는 당신은 종교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통일신라부터 고려를 거친 긴 시간에 나라의 중요한 일을 맡은 자의 태반이 불교 중이었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불교는 이 점에서 힌두교와 같다. 힌두교는 철저히 세상 중심의 종교다. 세상의 도덕과 법을 따르면서 물질을 추구하는 게 그들이 바라는 바다. 힌두교를 중심으로 놓고 보면 종교적이라는 말은 곧 물질적이라는 말이 되는 것이다. 물론 힌두교에서는 그 물질적이라는 것과 정신적/영적이라는 게 쉽게 구분이 되지 않지만.

    세상을 버리는 것은 세상을 정복하는 것이다 @이광수

    주 수상 요기 아디야나트가 발표한 올 2017-18년도 예산안을 보면 전형적인 시장주의자의 면모를 볼 수 있다. 인프라에 대대적인 투자를 해서 경제를 활성화하고, 농업을 포함한 산업 발전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그런데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이 있다. 갠지스 강의 수질 개선을 위해 오염물질 방출 공장 규제 조치와 같은 대규모적인 사업을 시행하여 어머니 갠지스 강을 살리겠다고 하는 것과 인도 최대 관광지인 타지마할에 대한 보수 비용을 따로 책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둘 다 종교적인 제스처를 쓰면서 민생을 돌보는 이중 포석이다. 타지마할에 예산 책정을 하지 않은 것은 결국 중앙 정부 예산으로 보호를 하겠다고 이해를 해야지, 과거 자신이 주수상 아닌 일개 정치인으로 있었을 때 했던 발언 즉 타지마할은 이슬람 유적이니 우리 (힌두의) 위대한 유산이라고는 볼 수 없다, 라고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물질적인 힌두교의 걸승이니 자본주의와는 잘 맞아 떨어지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다만, 선거가 임박해오면 다시 이슬람을 겁박해 표를 쓸어올 수도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나만 잘 살면 되지 다른 놈 죽든지 말든지 무슨 상관이야? 부자 되시고, 대박 나세요, 라고 연일 소리 높이는 한국 자본주의와 같은 길을 가는 인도가 씁쓸할 뿐이다. 그 길에 세상을 버린 걸승이 앞장선다고 하는 것은 전혀 아이러니가 아니다.

    필자소개
    역사학자. 사진비평가. 부산외국어대학교 인도학부 교수. 저서로는'사진인문학', '붓다와 카메라', '제국을 사진 찍다' (역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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