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대 발언 논란,
    그리고 정의당의 사과
    [기자수첩] 당의 흔들림과 우왕좌왕
        2017년 11월 23일 02:4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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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대 정의당 의원이 연일 논란이 되고 있다. 김종대 이름 석 자가 하루 종일 포털 실검을 장악하는가 하면, 김종대 의원의 페이스북 글을 포함해 ‘김종대 vs 이국종’ 대립구도를 부추기는 기사들은 순식간에 인기 기사로 떠올랐다.

    정의당 온라인 당 게시판도 시끌벅적하다. 김종대 의원의 발언을 둘러싼 찬반 논쟁이 벌어지고 있고 일부는 탈당하겠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그리고 23일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김종대 의원의 발언) 취지와는 달리 이국종 교수가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과정에서 부담을 안기게 된 점은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사실상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김종대 의원의 페이스북 게시글은 뜯어보면 이국종 교수를 겨냥한 어떤 말도 찾아볼 수 없다. 선정적 보도만을 앞 다툰 언론과 이국종 교수가 거부한 기자회견을 부추긴 병원과 정부에 대한 강한 비판을 담고 있다.

    김종대 의원은 “‘이런 환자는 처음이다’라는 의사의 말이 나오는 순간, 귀순 병사는 더 이상 보호받아야 할 인간의 정상성을 상실하고 말았다. 우리 언론은 귀순 병사에게 총격을 가하던 북한 추격조와 똑같은 짓을 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어 “그런 그에게 기자회견이 끝나고 또 찾아가 괴롭히던 기자들은 다음 날 몸 안의 기생충에 대해 대서특필하는 보도를 내보냈다. 여기서 보호받아야 할 존엄의 경계선이 허무하게 무너졌다. 의료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가 부정됐다”고 덧붙였다.

    ‘우리 언론은 병사에게 총격을 가하던 북한 추격조와 똑같은 짓을 한 것’, ‘(이국종 교수를) 찾아가 괴롭히던 기사들은 기생충에 대해 대서특필했다’는 김종대 의원의 지적처럼, 김 의원이 겨냥해 비판한 대상은 언론이다.

    이어 “15일 기자회견에서 수술을 집도한 이국종 의사는 ‘나는 오직 환자를 살리는 사람이다’라며 언론의 과도한 관심과 정략적인 외부 시선에 대해 절규하듯이 저항했다. 기자회견 역시 의사가 원해서 한 것이 아니라 국가기관과 병원 측의 압박에 의한 것임을 실토했다. 누가 이 기자회견을 하도록 압박을 넣은 것인가. 처음부터 환자를 살리는 게 목적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으로 관리됐다”고 밝혔다.

    이 또한 이국종 교수가 거부한 기자회견을 압박한 병원과 국가기관 비판이다. ‘언론의 과도한 관심과 정략적인 외부시선에 절규하듯이 저항했다’는 김종대 의원의 표현은, 오히려 병원과 국기관이라는 거대 권력의 압박에 의해 괴로움을 토로했던 이국종 교수를 피해자로 보고 옹호하고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끝으로 “저는 기생충의 나라 북한보다 그걸 까발리는 관음증의 나라, 이 대한민국이 북한보다 나을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적었다.

    결국 김종대 의원이 비판한 쪽은 귀순병사를 인권을 보호받아야 할 한 개인으로 보지 않고 ‘표본실의 청개구리처럼’ 만들어 버린 우리 사회의 단면이다. 그 단면은 귀순병사를 이데올로기적으로 관리하는 정부와 의료진 개인을 압박한 병원권력, 선정적 보도만을 쫓는 언론의 합작품이다.

    김종대 의원은 분명한 어조로 비판의 대상을 겨냥하고 있음에도 쏟아지는 비난을 보며 지난 황우석 사태가 떠올랐다. 황우석 박사가 우리 사회의 영웅으로 추대된 이후 여론과 정치권은 일제히 황우석 박사의 연구에 의심을 제기하는 세력을 비난하고 매도했다. 자기 일 열심히 해 이 나라에 기여하는 과학자에게 그 무슨 망발이냐는 분위기였다. 물론 이국종 교수와 황우석 박사를 비교할 대상이 아니지만, 누군가를 영웅으로 찍어놓기 시작하면 그의 성과는 별개로 제기되는 비판을 못 견뎌야 하는, 그야말로 이성이 마비된 상황이 그 때와 다르지 않는 것이다.

    보수가 버리지 못하는 종북 마케팅
    김종대가 우려한 탈북민의 ‘인권’

    일부는 김종대 의원을 비롯한 정의당의 이념을 문제 삼고 있다. 김종대 의원의 글을 실은 기사의 댓글에도 ‘종북 간첩에 가깝다’, ‘좌빨’ 등의 표현들이 난무한다.

    김종대 의원이 북한을 옹호하기 위해 그런 글을 썼다고 보는 셈이다. 이러한 여론에 보수정치인들도 가세하고 있다. 하태경 바른정당 최고위원은 23일 MBC 라디오 ‘변창립의 시선집중’과 인터뷰에서 “북한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식을 하게끔 하는 것에 대한 즉자적인 반발과 본능적인 반발감이 있다”고 말했다. 하 최고위원은 전날 당 국회의원·원외위원장 연석회의에서도 “정의당의 북한 인권에 대한 무관심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진보라는 그런 브랜드 사용하지 말길 바란다”고 했다.

    김종대 의원과 정의당은 싸잡아 비난한 것이다. ‘북한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에 대한 본능적 반발감’이라는 표현을 비춰 볼 때, 보수정치권이 진보정당을 상대할 때 자주 사용하는 ‘종북’ 마케팅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기생충과 인권이 무슨 상관인가’라는 비난 섞인 의문도 나온다. 기생충에 대한 생생한 묘사, 그와 관련한 사진들이 보도된 후에 기생충 확인법이나 예방법, 구충약 열풍까지 일어난 현 상황은 그 의문에 답을 준다. ‘그게 인권이랑 무슨 상관이냐’는 안이한 의문과 달리, 기생충의 나라에서 벗어난 남한 땅에선 그에 대한 혐오감, 공포감이 잔뜩 일고 있다는 뜻이다.

    혐오와 공포 혹은 우려의 대상은 당연히 귀순 병사를 포함해 ‘자유와 행복을 갈망하던 한 존엄한 인격체’인 탈북주민들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충격인 묘사와 이미지로 시작된 혐오와 공포는 결국 탈북민에 대한 편견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높다.

    탈북민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가장 처음 하는 일이 기생충약을 먹고 치료받는 일이라 하더라도, 그래서 그들이 그것에서 해방되고 건강해졌다고 하더라도, 그런 사실관계는 현실에서 어긋나기 마련이다.

    실제로 귀순병사의 몸 안을 묘사한 기자회견 이후 일부 탈북민들도 그런 상황을 우려했다고 한다.

    김종대 의원 역시 22일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에서 “제가 제일 걱정하는 건 자칫 혐오의 감정이 2만 명이 넘는 탈북민들에게 튈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그런 우려사항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을 했다”며 “(한 탈북인은) ‘탈북민들하고 앞으로 식사하기가 꺼림칙하다’는 말도 들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어 “탈북인들에게 전화가 많이 왔는데 유일하게 격려를 받고 있다”며 “처음에 그(귀순병사 기생충) 뉴스가 나갔을 때 자기들이 불안했는데 일단은 제가 문제제기를 해서 추가보도를 막았고 그래서 본인들에겐 잘된 일이다, 고맙게 생각한다. 이런 입장을 여러 사람들이 전달해 왔다”고 덧붙였다.

    탈북민들이 벌써부터 겪고 있는 이러한 상황은 ‘그런 편견 없으니 괜한 트집 잡지 말라’는 말들이 얼마나 안이한 상황인식이 보여준다. 결국 또 누군가는 북한 주민의 배 속에 의심을 품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실관계와 무관한 편견들이 존재한다는 현실을 충분히 경험해왔고 지금도 경험하고 있다. 장애인 학교가 들어서면 범죄가 벌어질 수 있다는 근거 없는 걱정이나, 특정 지역 사람들은 어떻다더라 하는 무례한 규정들, 한국인을 비롯한 동양인 유학생들을 향한 백인들의 편견. 그런 편견들이 종국엔 차별을 만들어낸다는 사실도 우리는 목도하고 있지 않나.

    이정미의 공식 사과, 정의당엔 옳고 그름의 기준이 없나.

    이정미 대표는 이날 오전 YTN 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 나와 “(김종대 의원의) 취지와는 다르게 이국종 교수가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과정에서 부담을 안기게 된 점은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논란에 대해 당 대표가 공식적으로 사과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그런 뜻은 아니었지만 어찌됐든 논란을 일으켜 죄송하다는 말로 읽힌다. 포털 사이트에 김종대 이름이 하루 종일 오르내리고 있고, SNS에도 그에 대한 비난이 폭주하고 있으며, 정의당 온라인 당원 게시판엔 김종대 의원의 사과를 촉구하는 글과 나아가 탈당하겠다는 글까지 올라온다. 당 대표로서 그냥 넘어가긴 어려운 상황일 것이다. 어떻게든 진화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정미 대표가 사과를 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라고 본다.

    우선 논란을 일으킨 쪽이 누구인가. 보수언론이다. 김종대 의원의 글이 논란이 된 시점은 사흘 후다. 한 종합편성채널에서 김종대 의원이 이국종 교수를 비판했다는 그물을 던진 후부터다. 김종대 의원 역시 자신의 글이 이국종 교수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김종대 의원의 글을 제 입맛에 맞게 두루뭉술하게 뭉쳐서 불을 지피고 불씨를 만들고 부채질까지 한 쪽은 보수언론과 보수정치인이다.

    정의당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확대되는 것을 진화하기 위한 선의의 이유라도 이해할 수가 없다. 과거 모 당원의 김대중 전 대통령 비판 사건 때처럼 욕설과 비하가 난무한 글도 아니었다. 국회의원이라면 충분히 하고도 남을 권력집단에 대한 비판일 뿐이다.

    이정미 대표는 해당 인터뷰에서 “제가 알기로는 회충 얘기가 나오고 난 이후에 언론 쪽에서 지속적으로 몸 안에 기생충 문제에 대해서 선정적으로 보도해나가면서 이것이 외부적으로 공개되고 국민들 앞에 환자의 몸이 다 드러나게 됐던 과정에 대한 지적을 했다”며 “김종대 의원은 귀순병사 수술 과정에서 군 당국과 언론의 태도를 문제 삼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미 대표도 김종대 의원의 발언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지 않은 것으로 읽힌다. 그러나 이런 식의 사과는 김종대 의원의 글의 취지까지 부정하는 것으로 대중에게 비춰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정미 대표는 “논란을 일으켜 죄송하다”는 사과가 아니라, 세간의 왜곡으로 인해 눈덩이처럼 커버린 논란에 맞서 정의당의 언어로, 당원과 정의당을 지지하는 이들에게 분명하게 설명해야 했다. 시답지 않게 툭하면 색깔론을 꺼내드는 보수정치인들을 맞서서도 예민하게 대응하고 날 세워 비판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정의당을 두고 북한 인권에 관심이 없다는 한 정치인의 매도에도 입을 닫았고, 김종대 의원을 두고 종북 간첩이니 어쩌니 하는 비난에도 이정미 대표와 정의당은 대응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반박하는 대변인 브리핑 한 줄 나오지 않았다. 이것이 정의당의 고질적인 문제인지, 당 지도부의 성향인지 아직 판단하긴 섣부르지만, 의석수는 적더라도 틀린 것에 대해 틀렸다고 당당하게 진보정당의 언어로 외쳐왔던 진보정당의 전투력을 현재의 정의당에선 도저히 찾아볼 수가 없다.

    달아오른 여론 앞에 선 정의당은 나름의 옳고 그름의 기준은 없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다시 생긴다. 정의당을 뒤흔들었던 매 사안마다 당 지도부는 언제나 함께 흔들리고 우왕좌왕했다. 중식이밴드 사건부터 메갈리아 사태, 지난 대선 당시 심상정 후보의 문재인 후보 비판 논란까지. 진보정당이라는 정체성만 바로 서있었다면 좀 소란스럽더라도 지도부 차원에서 잘 정리할 수 있었던 문제들이었다. 하지만 당 지도부는 일부 당원들이 사과를 요구하고 탈당을 선언하면 눈치를 보기 시작하고 결국은 사과를 하고 만다.

    도대체 정의당은 언제까지 여론을 이끌지 못하고 끌려가는 신세로 지낼 생각인가. 일부 당원들, 또 다른 진보정당 당원들 사이에선 정의당은 더 이상 진보정당이 아니라는 질타가 나온다. 당 지도부는 이번에도 양 쪽 모두에게 비판 혹은 비난 받을 선택을 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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