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씨앗에서 식탁까지,
    인간과 자연 살리는 푸드 민주주의
    [책소개]《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반다나 시바/ 우석영(옮긴이)/ 책세상)
        2017년 11월 26일 07:1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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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식탁이 위협받고 있다. 2017년 여름의 살충제 계란 파동에서 다시 확인했듯, 공기와도 같은 우리의 삼시세끼가 안전하지 않다. 농수산물 안전성 조사를 확대하겠다는 대책이 대통령 시정연설에 포함된 것도 이러한 밥상의 공포를 반영한 것일 테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직면한 ‘먹는다는 것’의 문제는 유해물질 규제 같은 안전 관리의 문제를 넘어선다. 그것은 음식과 이 세계를 대하는 패러다임의 문제이자, 일상생활에서 거시적인 권력관계까지를 포괄하는 식량 민주주의의 문제다.

    인도 출신의 세계적인 생태사상가, 운동가인 반다나 시바의 신간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는 음식에 대한 총체적이고 통합적인 시각에 기초해 음식과 농업을 둘러싼 지식과 사유와 실천의 패러다임 전환을 주장하는 책이다.

    세계화와 GMO에 반대하며 경제 정의, 식량 정의, 젠더 정의를 옹호해온 수십 년 동안의 지적 실천적 역량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에서 시바는 ‘착취의 법칙에 기초한 산업 패러다임’ 대 ‘반환의 법칙에 기초한 생태 패러다임’의 전쟁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식량 위기의 근원이라고 지적한다.

    탐욕과 이윤을 동력으로 하는, 화학비료와 GMO 등에 의존하는 세계화된 산업농이 자연의 상호 연결성과 생물 다양성에 기초한 소농을 파괴함으로써 식량과 농업 시스템의 붕괴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현재의 푸드 시스템은 지속 가능성, 정의, 평화 같은 중요한 모든 기준에서 볼 때 심각하게 고장 나 있다.

    이 책은 폭력적인 산업 패러다임에서 토양과 동식물과 인간의 건강을 증진하는 생태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것만이, 산업화 세계화된 푸드 시스템에서 생태 친화적이고 인간 친화적인 푸드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것만이 지구의 안녕과 사회의 안전을 지키는 길이라고 말한다. 이 전환은 하나의 선택지가 아니라 우리의 생존 자체와 직결된 절체절명의 과제이다.

    미디어를 중심으로 ‘맛있고 멋있는 음식을 어떻게 잘 먹을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는 이른바 ‘먹방’의 시대에, 맛과 영양과 이윤의 차원을 넘어 씨앗에서 식탁까지를 아우르는 사회 정치 생태 문화적 맥락으로 시야를 확장하는 반다나 시바의 목소리는, ‘먹는 인간’인 우리로 하여금 ‘먹는 것’과 ‘먹는 일’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넓고 깊은 생명의 그물을 성찰하게 한다.

    살아 숨 쉬는 씨앗, 살아 숨 쉬는 토양, 살아 숨 쉬는 식량, 살아 숨 쉬는 농민

    이 책은 농생태학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단지 당위 차원에서 강변하는 책이 아니다. 반다나 시바는 이론과 주장을 펴는 데 머무르는 사상가가 아니다. 1970년대에 목재회사의 삼림파괴에 맞서 여성들이 마을의 나무를 껴안고 숲을 지켜냈던 인도의 ‘칩코운동’에서서부터 지구와 생명과 여성의 권리를 지키는 다양한 행동에 투신해온 반다나 시바는, 구체적 실태와 자료를 들어 산업농 시스템의 허구적 신화를 논파하고, 자신의 경험을 포함해 생태적이고 민주적인 푸드 시스템을 위한 다양한 실천들을 소개한다.

    반다나 시바의 연구와 실천을 대표하는 것이 각각 이른바 ‘녹색혁명’에 관한 연구와 ‘나브다니야’ 운동이다. 시바에 따르면, 녹색혁명이란 인도에 도입된 화학물질 기반의 농업 모델에 붙여진 잘못된 이름이다. 전쟁 무기를 생산했던 화학기업들이 2차대전 후 화학비료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으며, 1960년대 중반에 녹색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종자·화학물질’ 패키지를 남반구 국가들에 수출했다는 것이다.

    녹색혁명이 식량문제를 해결했다는 신화가 만들어졌지만, 시바는 현실은 다르다고 말한다. “펀자브의 녹색혁명이 남긴 것은 사막화되다시피 한 토양, 고갈된 대수층, 생물다양성의 손실, 농가 부채, 살충제 탓에 암에 걸린 환자들을 라자스탄으로 태워 가는 ‘암 기차’였다.” 오늘날에는 GMO를 기반으로 하는 2차 녹색혁명이 진행 중인데, 시바에 따르면 이로 인해 이득을 얻는 것은 오직 기업들뿐이다.

    ‘나브다니야’는 반다나 시바가 1987년에 종자 보존, 생물 다양성 보호, 생태농법 보급을 목표로 조직한 공동체이자 운동이다. 시바는 1994년부터는 고향인 둔 밸리에서 나브다니야 농장을 시작했다. 100개 이상의 마을에 여성들이 운영하는 종자은행을 만들어 3천 종이 넘는 쌀 품종을 보존하는 등 나브다니야는 소농들과 함께 지구 자연과 화해하는 식량·농업 시스템을 실천하고 있다. 이들의 활동은 생물 다양성 기반의 생태농업이 토양의 비옥도를 높이고 온실가스를 감축하면서 건강하고 풍요로운 먹을거리를 생산할 뿐 아니라 농가 소득 증대에도 유리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반다나 시바는 나브다니야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푸드 시스템의 움직임을 제시하면서, 세계 식량의 70%를 생산하는 소농들에게 권력을 이동시켜야 하며, 종자 독립과 생태농법을 실천할 기회와 권리가 실질적으로 농민들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권력 전환을 통한 ‘푸드 민주주의’는 농지와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에 기여함으로써 ‘지구 민주주의’의 확립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지금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고 있는 이는 누구인가?

    오늘과 내일의 세계를 누가 먹여 살릴 것인가? 반다나 시바는 이 질문에 분명하게 답한다. ‘푸드’가 생명의 그물이고 ‘세계’가 가이아(다채로운 존재와 생태계 그리고 여러 민족과 문화로 활력이 넘치는 어머니 지구)라면, 이 세계를 먹여 살리는 것은 생물 다양성과 소농들의 지혜라고. 화학비료와 농약, 단일경작, 종자 독재에 기초한 대규모 산업농은 세계를 부양하는 것이 아니라 위협하고 있다고. “30여 년의 연구와 삶의 경험은 내게 한 가지 진실을 가르쳐주었다. 식량 문제의 해답은 산업농이 아니라 농생태학에, 생태농업에 있다.” 반다나 시바는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해 기초해 농생태학이 발전시킨 실천들, 즉 이 세계를 먹여 살리는 주체를 구체화한다.

    # 지금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은 화학비료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토양이다.

    화학비료에 기초한 세계 농업 시스템에서 매년 240억 톤의 비옥한 토양이 사라지고 있으며, 토질 악화는 청정수 감소, 기후변화, 식량불안, 그리고 빈곤의 가능성을 증대시키고 있다. 비옥한 토양이 식량 생산의 기초다. 비옥한 토양을 만들어내는 것은 군집의 형태로 토양 내 먹이 그물을 구성하는, 무수히 많은 토양 유기체들이다. 생물 다양성, 그리고 유기 물질이 풍부한 토양은 기후 적응과 수자원 보존을 위한 최고의 방책이기도 하다. 물은 살아 활동하는 토양에 꼭 필요한데, 유기농법은 유기물 재순환을 통해 토양의 보수력을 키워 물을 보존한다. 이런 토양은 스펀지같이 되어 더 많은 물을 흡수하고 이로써 농업용수 사용량을 줄이고 기후변화 회복력에 기여한다. “건강한 흙이 건강한 식물을 생산한다.”

    # 지금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은 독과 살충제가 아니라 꽃가루 매개자들이다.

    벌과 나비 같은 꽃가루 매개자들은 한 식물에서 다른 식물로 꽃가루를 옮기며 이 과정에서 식물을 수정시킨다. 아인슈타인이 “마지막 벌이 사라질 때 인류도 사라질 것”이라고 얘기했듯, 꽃가루 매개자들이 없다면 식물은 자기를 재생산할 수 없고, 식물이 재생산을 못하면 식량 공급이 위태로워진다. 2차대전 당시 화학전을 위한 실험실에서 탄생해 전후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유해생물억제제(농약)는 인간을 비롯해 표적으로 삼지 않은 수많은 유기체들에게도 독성을 발휘한다. 해충을 박멸하겠다고 죽음의 물질을 끌어들여 불균형을 심화할 것이 아니라 꽃가루 매개자들과 해충의 자연적 균형을 복구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먹을거리가 가진 영양과 건강, 생태계들 내의 지속 가능한 삶을 복구해야 한다.

    # 지금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은 독성 어린 단일 경작이 아니라 생물 다양성이다.

    7천 종이 넘는 생물이 인류를 먹여 살려왔지만, 오늘날엔 단 30종의 작물이 인류의 식단에서 90%의 칼로리를 제공하며, 3종의 작물(쌀, 밀, 옥수수)이 칼로리 섭취의 50%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 화학물질에 기초한 산업농 시스템이 종자?식품 대기업들의 통제와 결합해 획일적인 단일경작에 집중함으로써 생물 다양성이 사라지고 식탁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지구를 먹여 살린다는 것은 토양에서 해양에 이르기까지, 미생물에서 포유동물에 이르기까지, 식물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온전함과 다양성을 갖춘 푸드웹(먹이그물)을 지속시킨다는 것을 뜻한다. 이 시스템의 기초는 이 행성이 생명을 만들어내고 유지하고 재생하는 과정인 생태 과정이다. 지구의 통화는 생명이고 푸드다. 자연은 산업농이 말하는 것과 다르게 살아 숨쉬고 있으며 이 자연의 다양성이 우리를 먹여 살린다. 단일경작에서 다양성으로의 전환, 단위 면적당 산출량이 아니라 단위 면적당 ‘영양과 건강의 총량’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은 대규모 산업농이 아니라 소농, 농사짓는 가정, 텃밭 일꾼들.

    우리의 식탁에 식량을 제공하는 것은 전 세계의 소농들이다. 소농들이 토양과 식물과 동물을 더 잘 보살피고 생물 다양성을 키우기 때문에, 화석연료나 유독성 화학물질, 부주의한 테크놀로지들로 대체하는 대규모 산업농보다 오히려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한다. 농민은 식물을 번식시키는 자, 종자를 보존하는 자, 토양을 보존하고 만들어내는 자, 물을 보호하고 수호하는 자다. 농민은 식량을 생산하는 자다. 오늘날 세계의 소농은 세계 자원의 30%만 사용하면서도 세계에 필요한 식량의 70%를 공급하고 있다. 여기에 크고 작은 텃밭들을 추가한다면, 사람들의 입으로 들어가는 식량의 대부분이 작은 규모의 땅에서 재배된다는 것은 한층 더 분명해진다. 식량 문제에 관해서라면 생태학적·문화적으로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작은 것이 크다.

    #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은 종자 독재가 아니라 종자 독립이다.

    씨앗은 푸드 시스템의 첫 번째 연결점이다. 씨앗이 없으면 식량도 없다. 씨앗이 다양하지 않으면, 생명체의 건강에 꼭 필요한 식량과 영양도 다양할 수 없다. 씨앗의 다양성이 사라지면, 기후 혼돈과 기후 불안정성의 시대에 기후 회복력도 있을 수 없다. 수천 년간 자유롭게 진화해오며 지구 생명의 다양함과 풍부함을 제공해온 씨앗을 기업들이 사유화하고 있다. 이윤을 위해 종자를 통제하고 개조하고 유전적으로 변형시키는 글로벌 기업 10곳이 230억 달러 규모에 달하는 세계 상업종자 교역량의 1/3을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종자를 장악해 푸드 시스템을 장악하려는 기업들의 종자 독재에 맞서 종자 독립을 실현해야 한다.

    #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은 세계화가 아니라 지역화이다.

    푸드는 세계 어디에서나 판매 가능한 향수나 보석 같은 상거래 품목이 아니다. 지상의 모든 존재가 푸드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개입하며, 모든 문화나 지역이 자체적으로 푸드를 생산한다. 모두가 먹어야만 하므로, 지역의 식량 주권은 식량 안보의 관건이다. 세계화 20년은 우리에게 농업 위기, 식량 위기, 감염병, 음식 폐기물과 점점 심각해지는 생태 위기를 남겼다. 하나의 푸드 시스템으로서의 산업형 세계화는 지구와 인류를 망쳤다. 이제는 지역 경제, 지역 푸드 시스템에 집중하는 새로운 푸드 생산?유통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렇게 지역을 살리는 시스템이 우리에게, 생명의 그물의 일부인 살아 숨 쉬는 진짜 식량을 가져다줄 것이다.

    #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은 기업이 아니라 여성이다.

    종자, 생물 다양성, 토양, 물과 더불어 자연의 법칙, 생태학의 법칙에 따라 일하기. 이것이야말로 식량 생산의 기초다. 그런데 이와 관련된 지식과 실천은 전통적으로 여성의 몫이었다. 여성은 씨앗, 생물 다양성, 영양에 관한 광대한 지식을 보유하고 있다. 세계 사회들을 통틀어 식량?영양?음식물의 재배와 공급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것은 여성들이며, 이러한 여성들이야말로 농업을 진화시킨 장본인들이다. 지금도 여성이 세계 식량 생산자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여성 농민들과 생물 다양성 간의 파트너십이 인류 역사에서 세계를 먹여살려왔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식량 안보를 위해 보존하고 진흥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파트너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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