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고생 아빠들을 생각하다
    [누리야 아빠랑 산에 가자-31] 자녀
        2017년 12월 05일 10:1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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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고등학생 아빠, 대체로 40대부터 50대까지의 연령대다. 청춘과 노년 사이의 중간이다. 팔팔하던 시절은 다 지나갔고 갈수록 힘이 떨어진다.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압박감은 최고조에 달한다. 자식에게 한창 돈이 들어가는 시기다. 일자리가 본격적으로 불안해지는 시기다. 그러다 보니 돈을 벌기 위해 양심이고 자존심이고 내팽개치고 악착같이 일에 매달린다.

    육신과 정신이 모두 피곤할 수밖에 없다. 과로사가 급증한다. 심신이 극도로 피곤하면 두뇌는 되레 술을 요구한다. 술자리가 잦고 길어진다. 가정에서의 대화는 급격히 줄어든다. 집은 하숙집에 불과하다. 아내는 불만이다. 여성은 남성호르몬 분비가 늘어서 이전과 달리 거칠어지는 시기다. 다툼이 잦아지게 되고, 대화는 또 줄어든다. 아내의 불만은 자식의 마음에 전이된다.

    자식은 머리가 컸다고 말을 안 듣는다. 그 시기 아이들이 그렇다는 것은 들어서 알고 있지만, 이유 없이 대들면 부아가 치민다. 참지 못하고 혼쭐낸다. 폭력을 사용하기도 한다. 자식은 아빠와의 대화를 차단한다. 마지못해 하더라도 형식적으로 응한다. 아빠는 용돈이나 주는 기계가 되어 간다. 돈도 못 벌면 자식으로부터 취급을 못 받는다. 대놓고 무시당하기도 한다. 가족들로부터도 힘든 처지와 마음을 인정받지 못하는 외로운 상태에 빠진다.

    거의 대부분 중고생 자식의 학업에 관심을 기울일 심신 상태가 아니다. 아내에게 맡기고, 자식에게 용돈 적당히 주는 것으로 할 일 다 했다고 생각한다. 아내가 없이 아이를 혼자 키우는 아빠는 어려움이 더하다. 아이 밥 챙기는 것만으로도 버겁다. 밑바닥 비정규직이나 하청 노동자 생활을 하는 아빠들은 자식 교육을 아예 포기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한편 한국의 입시 세계엔 이런 말이 있다. 아이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려면 아빠가 무관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시대의 아빠들은 자신이 버티고 있는 사회에 약육강식 논리가 팽배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안다. 본인 스스로 갑질을 하고 갑질을 당한다.

    그런 일상을 버티면서 제 자식은 자신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란다. 자식을 공부하라 다그친다. 좋은 대학에 입학하라고 주문한다. 각종 시험 결과를 확인하고, 점수가 낮으면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심지어 폭력도 행사한다. 그러면서도 정작 제 자식의 적성에 대해선 무관심이다. 자식이 무슨 과목과 내용을 좋아하는지, 어떤 과목을 어려워하는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성적만 따지면서 좋은 대학을 강요하니까, 그래서 반발심만 키우거나 주눅 들게 하니까, 차라리 무관심한 게 도움 된다는 이야기다.

    언젠가 나는 인천의 아빠들을 대상으로 노동교육을 한 적이 있었다. 제조업에서 일하는 30대부터 50대까지의 아빠들, 50여 명이 모였다. 본 주제 강의에 앞서, 잠깐 자식 교육 얘기를 했다. 강단으로 관심을 집중시키려는 요량이었다. 중고생 자녀를 둔 사람 손들어 보라 했다. 절반 넘게 손을 들었다. 그중 과외·학원비가 월 100만 원 이상 나가는 사람 손들어보라 했다. 열 사람 정도 손들었다. 그런 다음에 다시 모두에게 자식이 무슨 과목을 좋아하고 어떤 고민을 하는지 아는 사람 손들어 보라 했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이 시대 중고생 아빠들은 자식과 대화하는 방법을 잘 모른다.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대화법을 익히지 못한 때문이다. 직장 생활에서 지시받고 지시하는 습성이 체질화 된 때문이다. 본인의 일방적 주문을 대화로 오판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것은 자식에게 시끄러운 잔소리고 소음이다. 자식 얘기를 그냥 들어주는 것으로 소통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소통은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일부를 수용하는 것이다.

    중고생 자녀와의 대화는 의외로 간단하다. 우선 자식에 대한 욕심을 모두 내려놓는다. 자식의 그 상태 그대로 인정하면 된다. 그리고 처음에는 말이 되건 안 되건 많이 듣고 수용한다. 답답하다고 훈계부터 늘어놓으면 안 된다. 그러면 나중에는 자식이 알아서 아빠 얘기를 듣는다. 심지어 본인 스스로 알아서 아빠의 희망을 채우려고 노력한다.

    대화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식을 믿고 있다는 얼굴 표정만으로 충분한 대화가 된다. 어깨 한 번 두드려 주는 것, 손 한 번 잡아주는 것, 술 한 잔 나누는 것, 자식이 담배를 태운다면 남몰래 담배 한 갑 슬쩍 밀어주는 것 등등이 모두 훌륭한 대화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였다. 중동에서 휴가차 나온 아버지는 나를 조용히 부르더니 말보로 한 보루를 슬쩍 내밀었다. 친구들과 나눠 피우라 했다. 엄마 모르게 준 것이었다. 아버지는 나와 친구들이 담배를 태우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외국 담배가 귀할 때였다. 나와 친구들은 담배를 나눠 태우면서 아버지를 무척 존경하게 되었다. 우리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내 아버지가 어떤 이야기를 하면, 우리는 일단 수긍부터 했다.

    필자소개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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