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휴일노동 수당 할증 폐지 등
    청와대·민주당, 노동법 개악으로 가나
    “장시간 노동, 임금 삭감”...양대노총 등 강력 반발
        2017년 12월 13일 06:4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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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가 휴일근로의 연장근로수당 중복 할증’ 문제와 관련해 중복할증을 폐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장시간 노동 금지일자리 창출이라는 공약을 파기한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13일 <경향신문>에 따르면, 노동시간 단축과 관련해 12일 열린 비공개 당·정·청 회의에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중복할증 문제는) 환노위 여야 3당 간사가 합의한 대로 시행하자”는 취지로 발언했다고 복수의 민주당 관계자는 전했다. 한 참석자는 “장 실장 사견을 전제로 이야기하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장 실장이 그런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은 사실이라는 것이다.

    이 회의엔 장하성 정책실장과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김동연 기획재정부 장관,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 참석했다.

    ‘환노위 여야 3당 간사 합의안’은 토·일 최대 8시간 휴일노동에 대해 연장근로수당(50%)은 주지 않고 휴일근로수당(50%)만 지급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1주일’이 ‘5일’이라며 휴일노동을 연장노동으로 보지 않는 전 정부의 행정해석을 입법화하겠다는 것이다.

    앞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여야 3당 간사는 주말 등 휴일노동에 대해 8시간까지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합의안을 도출했으나, 민주당 이용득·정의당 이정미 의원과 노동계의 반대에 합의안을 폐기한 바 있다.

    노동계 등이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는 중복할증 폐지가 결과적으로 ‘장시간 노동’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장시간 노동을 금지하겠다는 정책 기조와도 역행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회에 이어 청와대까지 중복할증 폐지를 주장하면서 노정 간 갈등은 극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현 정부에 우호적인 한국노총마저도 중복할증 폐지 문제에 대해선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복할증 폐지가 전체 노동자에 안길 부작용은 상당하다. 휴일근로에 대한 중복할증은 근본적으로 휴일근로에 사용자가 더 많은 임금을 지급하게 함으로써 장시간 노동을 방지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중복할증이 폐지되면 사용자는 저렴한 인건비로 주말에도 일을 시킬 수 있게 된다.

    8일 민주노총의 근기법 개악 저지 결의대회 모습

    “중복할증 폐지, 정부가 휴일노동 강제해 장시간 노동 합법화하는 것”

    민변 노동위원회 김상은 변호사는 “중복할증은 임금을 더 받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휴일근로를 싼 가격으로 시킬 것이냐의 문제”라며 “휴일근로 중복할증이 폐지되면 사용자들은 휴일에도 별다른 부담 없이 노동을 시킬 수 있게 된다”고 우려했다. 김 변호사는 “중복할증 폐지는 결국, 정부가 휴일노동을 강제해 장시간 노동을 합법화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노총도 이날 성명을 내고 “중복가산수당을 폐지하겠다는 것은 적은 임금으로 휴일노동을 오히려 장려하겠다는 것”이라며 “근기법이 개악되면 2021년까지 주 68시간이 보장되는 중소영세기업 노동자들의 등골을 더 쥐어짜게 될 것이고, 재벌자본과 기업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재벌비호법”이라고 질타했다. 노조가 없는 영세사업자 노동자들은 중복할증 폐지로 더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 역시 “노조가 없는 경우에는 법률이나 노동청 행정지도에 의해 장시간 노동을 방지해왔는데 이제 입법 자체를 휴일근로를 연장근로가 아니라고 해버리면 노조라는 보호막조차 없는 사업장에선 장시간 노동 문제가 더 심각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휴일근로가 많거나, 상시적인 비정규직 노동자의 경우 임금삭감 가능성이 높다. 특히 최저임금 수준을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우 중복할증 폐지가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업종별로 휴일근로가 일반화돼있는 비정규직은 임금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생활임금도 못 미치는 최저임금 비정규직의 경우 중복할증 폐지 자체는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자리 창출의 제1의 목표로 삼고 있는 정부가 중복할증을 폐지해 사실상 장시간 노동을 합법화하는 것도 모순적이다. 중복할증을 법적으로 인정하게 되면 사용자는 기존 노동자들에게 모두 전가했던 휴일근로, 야근 등 장시간 노동을 대신해줄 노동자를 채용해야만 한다. 일자리가 늘어날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노동시간을 주 최대 52시간을 즉각 시행하는 것은 기업의 일자리 창출을 끌어내는 효과로 이어지는 반면, 주 68시간 보장과 휴일근무 임금삭감은 기존 인원으로 더 적은 임금과 더 많은 노동시간을 보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청년일자리 창출을 이야기하고 일자리위원회까지 만든 정부가 인원충원 없는 휴일근로, 장시간 노동을 장려하는 법을 만드는 것은 일자리 창출 정책의 이중성과 기만성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청와대의 ‘중복할증 폐지 결론’은 사실상 사법부에 가이드라인을 준 셈이 됐다. 대법원은 내년 1월 18일 휴일근무의 중복할증 수당 지급문제와 관련한 공개변론을 열기로 한 바 있다.

    김상은 변호사는 “쟁점이 되고 있는 중복할증 문제에 대해 최근 홍영표 환노위원장에 이어 청와대까지 이렇게 재계에 유리한 입장을 밝히는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 “대법원이 판단 내리기 전에 국회와 청와대에서 사용자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의견을 피력한다면 재판에 부정적 역할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도 “대법원 공개변론을 앞두고 근기법 개악 강행을 서두르는 것은 사법부 판결에 영향을 미치려는 불순한 정치적 행위”이라고 비판했다.

    2013년 통상임금 대법원 공개변론을 앞두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미국 GM회장을 만나 통상임금 문제해결을 약속한 후 대법원이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나 추가임금청구에 대해서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는 모호한 판결을 내렸던 바도 있다.

    청와대의 입장 표명이 사법부에 충분히 정치적 압박이 될 수 있으며, 그런 전례도 있다는 것이다.

    앞서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관련 소송 5건 중 서울고법은 1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휴일근로 시 연장근로수당까지 줘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근로기준법의 ‘1주’를 7일로 이해해야 하며 근로기준법이 연장근로와 휴일근로에 각각 따로 50%의 가산수당을 주도록 규정한 것은 “연장·야간·휴일 근로가 기준 근로시간 내의 근로보다 더 큰 피로와 긴장을 주고 근로자가 누릴 수 있는 생활상의 자유시간을 제한하는 것이므로 이에 상응하는 경제적 보상을 해야 한다”는는 것이 판결의 이유였다.

    일각에선 중복할증 폐지가 문재인 대통령의 의중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당정청 회의 전날 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과제”라고 촉구한 바 있다. ‘여야 3당 간사 합의안’의 수용을 전제로 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사실이라면 장시간 노동을 막겠다던 공약파기라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

    양대노총 등 노동계 강하게 반발할 듯

    노동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당장 내일 청와대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개최할 계획이다.

    민주노총은 “장하성 실장은 근기법 개악 강행에 날개를 달아주는 입장을 즉각 철회하라”며 “근기법 개악 강행은 노-정관계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는 것일 수 있음을 강력히 경고한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노동시간 단축, 쉼표 있는 삶을 공약했고, 대통령 스스로 연차휴가를 사용하면서 휴가와 휴식보장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며 “그런데 대통령과 청와대 정책실장이 휴일근무 근절과 방지가 아닌 장려와 촉진을 하는 것은 공약 파기이고 일구이언하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한국노총도 같은 날 보도자료를 내고 “1주일을 5일로 해석하고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서 제외해 주68시간 장시간노동이 가능하게 한 노동부의 행정해석은 대표적으로 잘못된 노동적폐 정책”이라고 규정했다.

    특히 한국노총은 홍영표 환노위 위원장이 야당 시절 휴일근로의 중복할증을 골자로 하는 근기법 개정안을 발의한 점을 지적하며 “정권을 잡고 여당이 되었다고 해서 기존 정책을 뒤집고 지난 정권의 잘못된 행정해석에 면죄부를 주는 것은 노동자와 국민에 대한 배신이며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대법원 판결에 앞서 근기법 개악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서도 “노동자의 처지는 외면한 채 사용자들의 입장만 듣고 근기법 개악을 서두르는 국회의 행태는 입법부의 횡포”라며 “정부는 즉각적으로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서 제외한 잘못된 행정해석을 폐기하라”고 촉구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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