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과 삶의 질, 그 '부등가 교환'
    “위장 취업자에서 늙은 노동자로, 어언 30년" (7)
        2018년 02월 05일 11:05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심야노동 탈출기

    군대에 다녀온 대한민국 남성들의 공통점은 제대 후에도 군대와 관련된 악몽을 비교적 자주 꾼다는 점이다. 특히 군대에 다시 끌려가는 꿈이 대표적이다. 나도 나이 마흔이 넘어서까지 입영 영장이 나와서 정말 미치고 환장을 하다가 꿈에서 깨고는 ‘휴~ 다행이다’ 하면서 한숨을 쉬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다른 악몽도 꾸었는데 그 중 하나는 공장에서 컨베이어 라인을 타는 꿈이다. 컨베이어 라인 작업을 하는데 라인 속도를 따라 잡지 못해서 계속 뒤로 밀린다. 내가 작업하던 차를 놓쳐서 그 차를 찾아 헤매다 보니 내가 알지 못하는 이상한 공장에서 헤매고 있다. 그런데 주간연속 2교대제가 도입되고 나서 그런 꿈을 더 이상 꾸지 않는다.

    내가 처음 대우자동차에 입사했을 때 주48시간 노동이었고, 잔업은 주간 근무 때는 3시간, 야간 근무 때는 2시간이었다. 주간 근무는 아침 8시에 출근해서 저녁 8시 반에 퇴근했고, 야간 근무는 저녁 8시 반에 출근해서 아침 8시에 퇴근했다. 주간과 야간 근무는 1주일 간격으로 바뀌었다. 문제는 주간조에서 야간조로, 야간조에서 주간조로 근무 방식이 바뀔 때 몸이 미처 바뀐 근무 방식에 따라가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항상 내 몸의 생체리듬이 엉클어져 있었다. 야간 근무 때 잠이 몰려오면 라인을 타다가 서서 졸고, 손이 느려지면서 라인 속도는 쫓아가지 못하고, 잠은 깨지 않고 정말 미칠 것 같았다. 쉬는 시간이나 식사 시간마다 동료들이 바닥에 박스를 깔고 시체처럼 드러누워 잠을 청했다. 나는 잠을 잘 자는 편이지만 야간 근무 때 잠을 못 자는 사람들은 하루하루가 고통의 연속이었다.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찬 소주를 붓는다.’ 새벽이 되면 박노해의 시에 곡을 붙인 노래 말이 자연스럽게 입에서 흘러나온다.

    영화 심야극장 포스터

    ‘심야식당’이라는 일본 영화를 봤다. 밤에만 여는 술집에 얽힌 이야기다. 우리 회사 주변에는 24시간 영업하는 술집들이 많다. 새벽까지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오래전에 늦은 밤부터 새벽까지 술을 마신 적이 있다.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차근차근 들어온다. 학원 선생들, 밤늦게까지 영업을 한 술집 주인들, 술집에서 일하는 젊은 여성들도 옆에서 술을 마신다. 어쩔 수 없이 마시는 술로 인한 스트레스를 자기들만을 위한 술로 푸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야간 근무를 마친 우리 동료들이 들어온다.

    나도 야간 근무를 마치고 사람들이 아침에 출근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술을 마셨다. 그리고 벌겋게 달아오른 내 얼굴을 사람들이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하곤 했다. 야간 근무를 마치고 집에 가서 잠을 청할 때면 우리 집 아파트 위층 어디선가에서 항상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잠결에 들리는 그 피아노 소리가 정말 좋았다. 만일 피아노 소리가 내 귀에 거슬렸다면 잠을 방해하는 끔찍한 소음이었을 것이고, 고통의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피아노를 쳤던 그 누군가에게 감사하고 있다.

    야간 근무를 마친 토요일 낮에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에 잠을 깨 거실로 나가서 아내와 아이들에게 인사한다. “얘들아, 그동안 잘 지냈니” 1주일 만의 가족 상봉이다. 작은딸이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빠는 언제나 자고 있었다. 과자를 사 먹겠다고 500원만 달라며 자고 있는 아빠를 깨운다. 아빠는 잠을 더 자기 위해서 얼른 500원을 주고 다시 잠을 청한다. 깨우기만 하면 군말 없이 500원을 주는 아빠. 작은딸은 학교에서 집에 오자마자 무조건 아빠를 깨운다. 그래서 잠을 편하게 자고 싶은 아빠는 자기 전에 머리맡에 500원을 꺼내 놓고 자기시작했다.

    나의 노동에 대한 기억 대부분은 심야 노동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심야 노동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은 자동차 산업을 비롯한 모든 교대제 근무 노동자들의 가장 큰 꿈이었다.

    주간연속 2교대제의 실현은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에서 주도했지만 그 단초는 옛날 대우자동차 노동조합에서 시작됐다. 90년대 중반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은 일본의 이스즈와 스즈끼 자동차 공장에 연수 명목으로 6개월씩 일을 하고 왔다. 지금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산업연수라는 명목으로 값싼 임금으로 착취당했던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아마도 회사는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이 일본 자동차 공장의 노동 규율을 배우기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서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조합원들은 우리와는 다른 일본의 근무 형태를 이야기했다. 주야 8시간 노동에 잔업을 주야 1시간 정도 해서 새벽 2시면 근무가 끝나는 형태다. 이를 연속 2교대제라고 불렀다. 조합원들은 일본에서 경험한 근무 형태가 좋다고 했다. 지금 우리가 시행하고 있는 주간연속 2교대제보다는 잔업의 여지를 열어놓은 조금 느슨한 형태이다.

    그래서 나와 동료들은 연속 2교대제의 실행을 위원장 선거 공약으로 제출하고, 당선이 되고 난 후 ‘심야 노동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과 ‘연속 2교대제와 월급제 시행 방안’이라는 연구 사업을 진행하고 그 결과를 책자로 발행했다. 그리고 1997년 단체교섭을 통해 ‘연속 2교대제 시행’에 대한 노사 간의 합의를 이끌어 냈다. 구체적인 시행 방안은 추후에 노사 간에 협의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97년 말 IMF 사태가 터지면서 그 합의는 시행되지 못하고 공중으로 증발해 버렸다. 그 후에 우리는 구조조정과 정리 해고라는 위기에 대응하는 데 모든 것을 걸어야만 했다.

    대우자동차에서 증발해 버린 심야노동 철폐의 꿈을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다시 살려냈다. 대우자동차 노동조합이 생각했던 ‘연속 2교대제’에서 잔업의 여지를 없애고 보다 급진화시켜 ‘주간연속 2교대제’라는 이름으로 부활한 것이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2000년대 초부터 주간연속 2교대제를 교섭 의제로 제기하기 시작해 2010년 합의에 이르기까지 10년 가까이 노사 간 치열한 공방이 계속됐다. 그리고 2012년과 2013년에 걸쳐 한국GM 노사도 주간연속 2교대제 도입에 합의했다.

    전반조는 아침 7시 출근해서 8시간 노동을 하고 오후 3시 40분에 퇴근하고, 후반조는 오후 3시 40분에 출근해서 8시간 노동 후 다음날 12시 20분에 퇴근한다. 식사시간은 이전 50분에서 40분으로 줄었다. 필요시 10분 휴식 후에 1시간 20분 잔업을 할 수 있고, 잔업을 마치면 새벽 1시 50분에 퇴근하는 근무 형태가 합의 내용이었다. 나는 노동조합 정책실장으로서 주간 연속 2교대의 실무 협상을 진행했고 합의에 도달했을 때 노동조합이 과제를 완수했다는 기쁨과 함께 나 자신이 심야 노동에서 해방됐다는 것 때문에 정말 기뻤다. 노동조합 간부의 임기를 마치고 현장으로 복귀했을 때 밤샘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하루가 너무 좋았다.

    10년 이상 진행된 자동차 완성사–부품사 중심의 주간연속 2교대제 쟁취 투쟁은 임금–고용에 갇혀 있던 대기업 정규직 노동조합 운동에서 ‘삶의 질 변화를 추구한’ 아주 중요한 투쟁이었다. 한국GM 노동자들 삶의 질도 주간연속 2교대제로 커다란 진전을 이루었다. 조합원들에게 ‘주간연속 2교대제 이전으로 돌아가라’는 것은 군대 다시 가라는 것과 같아서 꿈에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주간연속 2교대제로 삶의 질을 풍요롭게 만들 기회를 우리는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 심야 노동에서 해방되고 주중 잔업이 줄었지만 토요일, 일요일 특근이 늘어나는 일종의 풍선 효과가 발생했다. 상여금이 통상임금화되고 잔업, 특근수당이 대폭 늘어나면서 잔업, 특근에 대한 조합원들의 집착은 더 커졌다. 주간연속 2교대제의 노동시간 단축–여가시간의 확대의 의미가 퇴색되어 버린 것이다. 또 하나는 문화와 여가 활용 등 시간의 여백을 채울 능력을 키울 조건을 만들지 못했다. 반면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주간연속 2교대제 시행으로 임금 보전이 안 되면서 실질 임금이 대폭 하락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제 우리는 주간연속 2교대제로 인해 만들어진 삶의 질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왜 닫혔는지, 어떻게 다시 그 가능성을 열 수 있는지를 모색해야 한다.

    시간에 대하여: 돈과 삶의 부등가 교환

    금요일 작업이 끝났다. 나는 토요일과 일요일의 달콤한 휴식을 그리며 탈의장을 나선다. 한 동료가 나에게 말한다.

    “주말이네”

    그에게는 주말이 아니다. 토요일, 일요일 특근을 위해 출근해야 한다.

    퇴근하면서 내가 그에게 인사한다.

    “주말 잘 보내라고 말은 못하겠고, 고생 좀 해.”

    그가 대답한다.

    “열심히 돈 벌어야지요.”

    주말과 휴일을 보내고 월요일 출근 길, 공장에서 만난 동료들은 주말 특근으로 피곤한 얼굴들이다. 내게 말을 건네는 말에 부러움이 묻어난다.

    “푹 쉬어서 좋겠네.”

    나는 동료들의 건강이 걱정된다. 하지만 동료들은 나의 얄팍한 월급봉투를 걱정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의 휴일과 돈은 교환된다. 나는 가끔 월차휴가를 사용한다. 직장에게 문자로 휴가를 쓰겠다고 하고 집에서 쉰다. 초등학교 다니던 작은딸은 이런 아빠를 너무 부러워했다.

    “우리도 가끔 학교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되면 좋겠어!”

    나는 딸에게 말했다.

    “너는 방학이 있는데 아빠는 방학이 없어. 아빠 월차 쓰는 거하고 너 방학하고 바꿀까”

    “싫어!”

    사실 나는 딸에게 거짓말을 한 거다. 과연 우리에게 방학이 없을까? 한국GM을 비롯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생산직이든 사무직이든 법으로 정해진 휴가 일수보다 훨씬 많은 휴가일수를 단체협약으로 보장받고 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긴 휴가를 즐길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그 휴가를 쓰지 않고 돈으로 받는다. 그렇게 우리의 휴가 갈 권리는 돈과 교환된다.

    내가 처음 대우자동차에 입사했을 때 노조의 주요 요구 중 하나가 ‘강제 잔업, 특근 거부’였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도 강제로 잔업하고, 특근하고, 연월차 대신 수당으로 돈을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돈을 벌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말 자발적인 선택인가? 강제적인 건 아닌가?

    한국GM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잔업, 특근과 연월차 사용의 제한이 명백히 강제적이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잔업, 특근에 빠지든지, 연월차 휴가를 쓰면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있는 인원이 없다. 구조적으로 잔업, 특근과 연월차 사용 제한을 강제하고 있다. 또한 잔업, 특근을 하지 않으면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최저임금 수준의 낮은 임금도 잔업, 특근을 강제하는 경제적 요인이 된다. 정규직 동료들도 이야기한다. “누가 잔업 특근 하고 싶어서 하나? 먹고 살려니 어쩔 수 없는 거지.”

    하지만 정규직 노동자들은 생활은 조금 쪼들릴지 모르지만 잔업, 특근에 목을 매지 않아도 생활할 정도의 임금 수준은 된다. GM이 대우자동차를 인수하고 나서 GM 경영진들은 대우자동차를 ‘꿈의 공장’이라고 불렀다. 지금은 임금이 올랐지만 당시만 해도 상당히 낮은 임금 수준에, 품질도 좋고, 파업도 별로 안 하고. 여기에 결정적 이유가 하나 더 붙는다. 주문하는 대로 만들어 내는 공장!

    아마도 GM의 전 세계 공장 중에서 주문 물량에 맞추어서 생산량을 맞출 수 있는 공장은 한국GM이 유일할 것이다. 한국 경영진들은 GM에 가서 ‘우리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으니 물량만 달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부평 1공장은 풀 잔업, 풀 특근을 해야 겨우 맞출 수 있는 물량을 따왔다. 회사 경영진은 입이 벌어졌고, 조합원도 좋아한다. 하지만 군산, 부평 2공장, 엔진공장 등 나머지 공장은 잔업, 특근은커녕 비계획적 휴무(TPS. 생산 물량이 없거나 장비 고장 등의 사유로 인한 휴무)를 반복하고 있다.

    잔업과 특근의 강제성은 일차적으로 기존 인원과 설비를 최대한 활용하고, 생산량의 변동은 초과근무를 최대한 활용해 대응하는 자본의 생산 전략에서 나온다. 추가적인 인원 채용보다는 기존 인원의 잔업, 특근 증가로 생산량 증가에 대응하는 것이다. 잔업, 특근과 연월차 사용 제한을 통해서만 유지되는 자본의 생산 시스템 자체가 구조적인 강제다.

    잔업, 특근과 연월차 사용 제한이 원활한 생산의 전제가 되기 때문에, 이 문제를 둘러싸고 현장 관리자들과 노동자들 사이에 일상적인 갈등이 발생한다. 근태 관리를 잘못하는 직장은 상급자에게 무능한 직장이라고 질책을 받는다. 직장은 노동자들을 심리적으로 압박한다. 관리자들의 압박을 받는 노동자는 ‘에이 차라리 잔업, 특근을 하자. 어차피 공짜로 일하는 것도 아니고 나도 돈을 벌어서 좋은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것이다.

    잔업과 특근을 거의 안 하고, 연월차를 대부분 사용하는 한 동료가 불만을 토로한다. “왜 다들 나를 이상한 놈으로 취급하는지 모르겠어.” 공장에는 잔업, 특근 빠지지 않고 연월차 사용을 거의 하지 않는 근태가 좋은 사람과 그 반대인 근태가 나쁜 사람이 있다. 물론 여기서 좋다, 나쁘다는 회사 쪽 입장에서 볼 때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틈에 근태가 좋은 사람은 성실한 사람, 근태가 나쁜 사람은 불성실한 사람이 됐다. 사람 자체에 대한 평가 기준으로 슬그머니 바뀌어 버린 셈이다.

    그런데 이러한 근태에 관한 가치 규범은 회사에 의해서 강제로 지속적으로 만들어진다. 부서를 옮기고 싶어서 신청하면 받는 해당 부서는 ‘근태 좋은 사람을 보내라’며 근태가 나쁜 사람은 받지 않겠다고 한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발탁 채용할 때도 근태가 중요한 기준이다. 이 때문에 정규직이 되고자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 기준에 들기 위해 아파도 쉬지 못하고 일해야 한다. 2001년 정리 해고 순위를 정할 때도 근태는 중요한 기준 항목이었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은 자신은 돈 때문에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본에 의한 강제를 노동자들 스스로 내면화시키면서 자발적인 선택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다. 자본은 홈을 파고 생산에 유용한 방식으로만 노동자 욕망이 흐르도록 노동자를 훈육한다. 이들에게는 노동자들의 풍부한 욕망, 삶의 총체적 실현은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효율적인 노동력만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흐름에서 벗어나는 노동자들을 제재한다.

    근태를 기준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고 여기에 상벌 체제를 부과한다. 그리고 자본이 생산의 필요에 의해서 만든 이 규범은 사람의 질을 평가하는 규범으로 확대된다. 근태가 좋은 사람은 성실한 사람, 근태가 나쁜 사람은 불성실한 사람이 되고 이러한 규범을 노동자들 스스로 내면화한다.

    얼마 전 한 직장 동료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잔업과 특근이 많은 부서에서 근무하는 한 조합원이 있다. 이 조합원은 휴일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출근했다. 그런데 그의 아내는 휴일에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출근하는 남편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어느 날 이 아내의 통장에 1,000만 원이 입금됐다. 남편이 보낸 것이다. 아내가 물었다.

    “뭔 돈이야”

    “휴일에 출근하는 나한테 불만이 많았지? 이 돈 만드느라 그랬어.”

    이러한 남편의 선물에 아내는 감동한다. 정말 착하고 좋은 남편이다. 하지만 남편이 아내에게 주는 선물이 휴일을 통째로 반납하고 얻은 1,000만 원이 아니라 휴일에 가족과 함께 즐겁게 보내는 하루하루의 일상일 수는 없었을까 생각했다.

    우리 노동자들은 정말 착한 사람들이다. 자기 혼자 잘 먹고 잘 살려고 쉬지도 못하면서 잔업, 특근에 매달리는 건 아니다. 예전에 누군가 나에게 말했다. “나도 부인이 맞벌이를 하면 잔업, 특근 안 해.” 가만히 계산을 해 보니 쥐꼬리만 한 내 아내 월급이 내가 잔업, 특근을 풀로 했을 때 버는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많은 조합원들은 부인이 맞벌이해서 가정 경제의 부담을 나누기 바란다. 그런데 조합원들의 잔업, 특근 수당은 많이 늘었지만, 부인들의 수입은 고생하는 것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적다. 그러면 남편은 말한다. “내가 특근 한 대가리라도 더 할 테니까 당신은 고생 그만해.” 그렇게 아내는 가정으로 소환된다.

    그래서 남편은 돈을 잘 버는 가장이 되고 가족들은 돈 잘 버는 가장을 응원한다. 남편이, 아빠가 휴일에도 열심히 나가야 우리 집은 부자가 된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남편을 위해 보약은 챙겨 줘도 “여보, 휴일에는 쉬어”라고 말하는 부인은 드물다. 건강도 열심히 챙긴다. 병들어 돈을 못 벌어오면 안 되기 때문이다. 아내들은 남편들의 월급을 비교하고, 자식들은 좋은 메이커 운동화를 사달라고 하면서 열심히 남편, 아빠의 등을 공장으로 떠민다.

    나는 잔업은 좀 하지만 휴일 특근은 하지 않는다. 그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원칙이 흔들린 적이 있었다. 대의원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조합원들과 좀 더 가까워지려면 그들에게 성실한 이미지를 줘야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아내에게 말했다.

    “이제 나도 휴일 특근 좀 해야 할 것 같아.”

    아내는 발끈한다.

    “평일에도 얼굴 제대로 못보고 사는데 휴일마저 떨어져 지내자고? 집안일도 나 혼자 다하라는 거야? 그건 안 돼!”

    “조합원들 눈치도 있고 해서……”

    아내는 단호하다.

    “눈치보고 살려고 노동운동 했어”

    나는 지금도 그때의 아내를 고맙게 생각한다.

    내 가까이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대부분 맞벌이다. 맞벌이를 해야 간신히 아이들 학비도 마련하고 생활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정규직의 경우는 잔업, 특근으로 벌어들이는 남편의 수입이 비정규직 노동으로 벌어들이는 부인의 총수입보다 훨씬 많다. 이런 커다란 격차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경제는 남자가 책임지고 여자는 가정을 책임진다는 남성 가족 부양자 모델을 강제하면서 잔업, 특근의 굴레에 더욱 얽매이게 만든다.

    이제 남편과 부인은 가정 경제를 공동으로 책임지면서 부인은 자기실현의 기회를 찾고 남편은 잔업, 특근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데 전제가 있다. 같이 돈을 벌면 가사노동도 같이 책임져야 한다. 가사노동이 하기 싫어서 부인이 맞벌이하는 것을 반대하는 동료도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특근 몇 개 더 하고 말지. 청소 설거지는 죽어도 하기 싫다.”

    가족은 남편과 부인이 공동으로 책임을 지는 거다. 함께 돈도 벌고, 함께 가사노동도 분담하고, 함께 쉬고 함께 놀아야 한다. 그리고 아내의 노동, 여성 노동의 값어치가 올라가야 한다. 자식들의, 청년들의 노동 값어치도 올라가야 한다. 그리고 정규직 남편은 더 적게 일해야 한다.

    초과근로를 비노조원보다 노조원들이 많이 한다? 몇 년 전 노동시간과 관련해서 금속노조가 개최한 토론회에서 배규식 박사는 ‘노동조합이 초과근로를 줄이는 역할보다는 오히려 늘리는 역할을 한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노동조합은 실제 노동시간 단축보다는 잔업, 특근 확보를 통해 임금 총액을 늘리는 데 관심이 더 많다는 것이다. 급여 수준이 낮으면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 잔업, 특근을 많이 한다. 그런데 급여 수준이 높아지면서 잔업, 특근이 다시 급상승하는 연구 결과도 발표됐다. 말하자면 잔업, 특근이 돈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공장 규모가 커질수록 연차 소진률이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연차를 휴가로 쓰는 것이 아니라 돈으로 타는 경향이 커진다는 뜻이다.

    유럽의 노동시간 단축 경로를 보면 단축에 관심이 많은 노동조합이 임금총액 증가에 관심이 많은 개별 조합원들을 설득하면서 진행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지금도 유럽 노동조합 간부들은 잔업, 특근을 너무 많이 하는 조합원들을 찾아가 노동시간을 줄일 것을 설득한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노동조합이 잔업, 특근을 늘리는 데 앞장을 선다. 조합원들은 “잔업 특근 없어서 못 살겠다”고 외치고, 노동조합은 “잔업, 특근 없는 고통을 바로 잡겠다”고 답한다.

    하지만 ‘장시간 노동의 고통’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12시간 초과근로를 금지하는 법 조항이 만들어진 지는 상당히 오래되었다. 하지만 그 동안 이 법 조항은 거의 사문화됐다. 이는 자본과 노동 간의 오랜 기간 침묵의 카르텔 덕분이다. 회사는 법 조항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잔업, 특근을 시키기 위해서, 노조는 조합원들의 잔업, 특근에 대한 요구 때문에 공공연한 법 위반에 눈을 감고 묵인해 왔고, 감시와 감독을 해야 할 노동부 역시 자신의 역할을 방기해 왔다. 고용 문제가 쟁점이 되면서 몇 년 전부터 노동부에서 12시간 초과근로에 대한 제재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12시간 초과근로의 범주에 주말 특근을 제외됐다.

    컨베이어벨트의 노동자들(사진=금속노조)

    시간과 돈의 교환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노동조합과 회사는 교섭을 통해서 노동 강도, 노동의 인간화, 건강, 안전, 문화 등 삶의 질과 연관된 요구와 돈을 끊임없이 교환해 왔다. 자동차 공장에서 컨베이어 작업은 힘들다. 특히 조립 라인의 단순 반복 작업과 강도 높은 노동은 신체와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고 근골격계 질환 등 몸을 불구화시킬 수도 있다. 그래서 컨베이어 작업의 단순 반복성과 높은 노동 강도, 신체에 무리가 되는 작업 방식을 개선하고 노동의 보람을 더 느낄 수 있는 작업 방식으로 바꾸는 것, 즉 ‘노동의 인간화’는 전 세계 자동차산업 노동조합의 공통 과제였다.

    물론 한국GM 노동조합은 이러한 문제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조합원들 역시 노동 강도나 작업 방식을 둘러싸고 현장에서 많은 싸움을 한다. 그런데 컨베이어 노동에 대한 해결책은 결국은 수당으로 귀결되고 만다. 조합원들은 ‘조립 라인 노동의 고통을 보상하라’고 외친다. 그래서 라인 수당(컨베이어 라인 작업을 하는 모든 노동자들에게 주는 수당)이 생기고, SIC 수당(컨베이어 라인 작업의 강도에 따라 등급을 매겨 수당을 주는 방식)이 생기고, T/C 수당(컨베이어 라인 작업 중 가장 힘든 조립 라인에 근무하는 노동자에게만 주는 수당)이 생긴다. 컨베이어 노동의 고통에 대한 금전적 보상에 집중하는 만큼 근본적인 개선책을 만드는 노력은 소홀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유해 물질을 취급하는 것, 과도한 소음에 노출되어 있는 것, 위험한 작업을 하는 것에 대한 보상으로 특수작업수당을 받는다. 그러면서 유해 물질을 여전히 마시고, 과도한 소음에 노출되고, 위험 작업을 감수한다.

    87년 이후 우리는 많은 권리를 따냈다. 노동시간도 48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줄고, 휴가도 늘었고, 주간연속 2교대제도 시행되고 있다. 노동 강도, 산업 안전, 작업 환경에 대한 많은 권리들이 생겼다. 그런데 삶의 질과 관련되어 획득된 권리들이 다시 돈과 교환되고 있다.

    나는 이를 ‘돈과 삶의 질의 부등가 교환’이라고 부르겠다. 자본이 잔업과 특근, 연월차 사용을 제한하는 강제 구조가 있다. 그리고 노동조합과 조합원은 ‘돈과 삶의 질의 교환’을 반복한다. 그러면서 장기적으로 삶의 질보다 돈을 우선시 하는 가치가 내면화되고, 돈은 많이 받지만 장시간 노동 등 삶의 질을 개선하는 일은 여전히 안 되고 있다. 우리의 몸과 삶은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지만 돈과의 교환에서 그 고통이 ‘자발적인 선택’인 것으로 은폐되고 있을 뿐이다.

    이제 우리는 자본에 의한 장시간 노동을 강제하는 구조를 바꾸려는 싸움을 지속해야 해야 한다. 그런데 이 싸움에는 ‘돈과 삶의 질의 교환’을 반복하면서 삶의 질보다는 돈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우리 자신의 가치관의 변화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앞 회의 글 “현장 통제력, 노조와 자본의 대결”

    필자소개
    노동자. 한국GM 도장부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