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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당과 정책 경쟁하는 제1야당으로
    [당당히 앞으로 ④] 김혜련 전 경기도 고양시의원
        2018년 09월 11일 10:0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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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회찬이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말.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다짐으로 <레디앙>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야 할 짐을 진 노회찬의 후배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연속 인터뷰를 마련했다. 두번째 인터뷰는 김혜련 전 고양시의원, 3번의 기초의원을 역임하고 이번에 경기도의원에 도전했다가 고배를 마시고 다음의 정치행보를 고민하고 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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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당히 앞으로 ③] 최연소 기초의원 당선자에서 3선 거쳐 지금은 이후 모색하는 낙선자

    고양시의원 시절의 모습(사진=김혜련 페이스북)

    이광 :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하지만 우리 당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1명 뽑는 곳에 당선되는 일의 어려움을 말했다. 선거법 개정을 위한 노력은 해야겠지만, 현재 조건을 상수로 놓고 이를 돌파할 방안을 찾는 게 중요하다는 견해도 많다. 당이 선거법 개정에만 매몰되면 선거 전략도 비례 전략밖에 없게 된다는 지적이다. 중앙당에서 지역 돌파 전략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기도 하다. 어떻게 생각하나?

    김혜 : 지역 돌파 없이 비례대표만 가지고 우리 당이 유지가 될까? 4년 전의 전략이었지만 실패했다. 개인적으로는 심상정 의원이 정개특위 위원장이 됐기 때문에, 정의당 방식대로 완벽한 연동형 비례대표까지 되지는 않겠지만 현재 47석에서 60~70석까지는 심상정이 돌파할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그 이상이 가능할까? 의문이다. 우리가 백퍼센트 독일식 연동형 제도를 제출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최대치가 지역구 변동 없이 비례 의석수가 좀 늘어난 수준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우리가 비례후보 전략을 택해서 15% 정도 지지를 받고 의석수도 일정 부분 확보했다고 치자. 그럼 2024년에는 어떻게 되나? 지역 기반 만드는 게 정말 너무 어렵다. 기초의원은 항상 지역을 돌아다닌다. 국회의원은 못한다. 심상정, 노회찬도 지역 활동을 열심히 했지만 떨어졌고, 간신히 당선됐다. 지역 활동하지 않던 비례대표 의원이 4년 의정활동을 하면서 지역 기반을 만든다? 불가능한 일이다.

    2010년보다 2024년이 더 걱정이다. 내가 지금 지역 득표 1등을 기록한 곳에서 살고 있지만, 사람들이 내 이름은 알지만 얼굴을 못 알아본다. 이런 상황인데 자기가 비례대표 국회의원이라고 하고 다니면 누가 알아보겠나. 정의당 비례대표 의원 4명 중에 이번 지방선거에서 성과를 낸 사람은 김종대 의원밖에 없다고 본다. 물론 다른 평가도 있을 수 있을 거다. 김종대 의원은 청주에서 비례대표 의원 한 명을 만들었다. 다른 분들은 걱정을 많이 하고 있을 것 같다. 얼마 전 김종대 의원을 만나서 청주 비례대표 의원과 매주 지역민을 만나 민원 상담의 날을 꾸준히 실행하라고 조언했다. 국회의원 이름 밝히고 현수막 걸 수 있는 일은 그게 유일하다. 내게 돈을 주면 지역 활동 어떻게 하는지 컨설팅해 주겠다고 말했다.(웃음)

    젊은층 지지가 상대적으로 낮은 이유는?

    이광 : 정의당 지지율이 두 자리 수를 넘어섰다. 40~50대 지지율이 높은 것으로 나온다. 젊은 층이 지지가 낮은 이유와 대안은 무엇이라고 보나?

    김혜 : 20대가 정의당에 대한 경험이 있을까? 진보정당에 대한 경험 없다고 본다. 왜 40대는 정의당 지지율 높을까, 내가 계속 생각하는 주제다. 나는 2000년에 취직하자마자 민주노동당에 입당했다. 당 활동은 하지 않았다. 환경운동연합에 있을 때 참여연대 안진걸 씨가 종로구 민주노동당 당원모임 한 번 하자고 제안했다. 활동가들 몇 명이 모이기도 했다. 그때는 민주노동당을 키워야 한다는 일종의 당위적 분위기가 있었다.

    2004년 민주노동당 지지층 대부분은 30대였다. 이들은 자기한테 구체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없다 해도 이런 정당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계속 진보정당을 찍은 사람들이다. 주로 70년대 태어난 이들은 IMF 세대, 청년 실업의 고통을 겪은 세대다. 이들은 대학 졸업 후 전전긍긍 어렵게 지내다가 늦게 취직한 사람 많다. 이 사람들의 상당수가 정의당 지지층이라고 본다. 2004년 민주노동당에 표를 준 사람들이다. 노회찬과 심상정은 내 손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지지가 다시 복원된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20대는 그런 경험 없다. 20대들은 민주노동당을 알겠나? 모른다. 20대와 40대는 우리 당에 대한 정서가 기본적으로 다르다. 정의당은 20대를 위한 정치를 꾸준히 해야.

    이와 함께 40대 지지자를 위해서는 그들을 향해 더 밀고 들어가는 전략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이들 지지도 한꺼번에 훅 빠질 수 있다. 민주당으로 지지를 옮겨갈 것이라고 본다. 이런 문제 의식이 크다.

    이하 사진은 김수정 정의당 서울시당 청년국장

    이광 : 더 밀고 들어가기 위해서는 당에서 무엇을 해야 한다고 보나?

    김혜 : 40대를 어떤 식으로든 호명해야 한다. 40대는 20대의 고리다. 2002년은 저출산이 시작된 해다. 출생아 수가 50만 명 미만이 된 첫 해다. 70년대 출생한 사람들부터 저출산이 시작됐다. 청년 실업 경험이 저출산으로 이어진 것이다. 40대 비혼율 굉장히 높다. 왜 그럴까? IMF 영향이 크다고 본다. 이 세대가 사회의 많은 것들을 변화시켰는데, 정치 과정에서는 자신들의 의견이 적게 반영됐다. 이들이 받은 충격을 얘기하는 세력도 별로 없다.

    내가 95년에 대학에 들어갔다. 90년대 초중반 때만 해도 상업계 고등학교 졸업하면 은행에 입사하고 대학 졸업하면 증권사 들어가는 게 일반적이었다. 고등학교 졸업하면 공무원 9급 시험에 응시하고, 대학 졸업하면 7급 시험을 봤다. 대학 졸업하고 은행에 취직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때다.

    그런데 내가 졸업할 무렵 언저리에 이런 것들이 확 바뀌었다. 9급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사람, 은행 취업을 원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과거의 패턴이 와르르 무너지던 시기였다. 그때 제대로 자리 못 잡은 사람 가운데는 지금까지도 못 잡은 사람이 많다. 내 주변에 결혼하지 않은 40대 중반이 굉장히 많다. 늦게 결혼한 사람 요즘 아기 낳는 사람도 많다.

    그리고 이런 세대들이 경기도에 많이 산다. 40대가 경기도에 많이 사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거다. 서울에서는 안정된 주거 공간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경기도로 오는 순간 출퇴근은 기본 1시간 이상으로 늘어난다. 40대 상당 부분이 사는 모습이다. 세대론으로 접근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정의당이 이들을 향해 진보정당을 지지해야 할 이유를 더 주어야 한다. 그들에게 맞는 공약을 내야 된다. 그렇게 되면 이들의 지지율을 더 높아질 것이다.

    이광 : 정의당은 소수자 운동을 지지한다고 한다. 이때 소수는 양의 개념이 아니라고 본다. 양적 소수에는 한 줌 안 되는 자본가도 포함된다. 양적인 소수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배제되고 고통을 받는 세력을 말한다고 본다. 사실 비정규직이나 영세 자영업자는 소수가 아니다. 정의당이 말로는 모든 소수자 운동을 지지하고, 비정규직, 여성, 농민, 소상공인을 지지한다고 할 수는 있지만, 역량에는 한계가 있다. 정의당이 선택과 집중할 곳은 어디라고 보나?

    김혜 : (웃으면서) 나는 표가 많이 되는 정책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사실 고민이 많은 지점이다. 개인적으로는 군 사병들의 안전한 군 생활에 관심이 많다. 우리 애가 갓 태어났을 때 심상정 의원에게 “이 아이가 다 컸을 때는 군대 안 가도 되겠죠?”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자 심 의원은 “내가 우리 애 태어났을 때도 그런 생각했거든. 그런데 아무것도 안 하니까 우리 아들도 군대 가더라.”라고 답했다. 그 말이 너무 와 닿았다. 내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우리 애도 지금 이 상태의 군대에 가겠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안 남았다. 애가 여섯 살이다. 14년만 있으면 입대다.(웃음) 국회의원 선거 3번 하면 군대 가는 거다. 그래서 이거 안 되겠다, 인권 보장되고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군대를 만들어야겠다, 빨리 뭔가를 해야겠다, 하는 생각이 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닐 거다. 아들 있는 모든 엄마들의 생각이다.

    흔히 분단으로 인한 남북 대치라는 특수성 때문에 징병제가 유지돼야 한다고 말하는데, 내가 볼 때 그건 연관 고리 없다. 현재 상태로도 충분히 모병제가 가능하다. 사병 입대 제도는 분단 상황이 아니라 남한의 인구 구조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본다. 현재 출산 아동이 40만 명이 안 되는데 남자는 20만 명이 채 안 된다. 머지않아 이들이 모두 군대에 가면 우리 사회가 유지되기 어렵다. 그 전환에 대해서 우리는 지금 무슨 고민을 하고 있나. 이런 생각을 많이 한다. 김종대 의원을 더 쪼아야 하나?(웃음) 또 국가가 징병제를 유지하려면 병사의 복지와 사고에 대한 대책 등에 지금보다 훨씬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소수자 운동과 관련해서는 세상을 소수자 시각에서 보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절감하고 있다. 솔직히 나는 소수자로 살아본 적 별로 없다.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으로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다면 여성이라도 항상 머릿속에 소수자 의식을 가지고 살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 개인적으로는 일찍 권력이라는 것에 접근했다. 비록 작은 힘이긴 하지만 기초의원만 돼도 남이 내게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는 경험을 했다. 물론 결혼 후 가부장제도 아래 부당한 일을 겪어야 하는 것은 세상에 만연한 일이다. 요즘 페미니즘, 장애인, 성소수자 등 소수자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정말 어렵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그들과 함께 실천해야 조금이라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이광 : 최근 당 지지율이 높아지면서 정의당의 문호를 활짝 열어야 된다는 의견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김혜 : (웃으며) 얼마 전에 그 얘기했다가 비례 대표 준비하는 사람한테 혼났다. 절대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나로서는 어려운 문제다. 비례 후보는 철저하게 우리 당의 득표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여부가 기준이 돼야 한다. 우리 당의 비례후보 1, 2번 정도 되면 국민들이 높은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하다. 순전히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우리당 득표율을 높인다는 목표를 분명히 하면서 여기에 맞는 인물에게 비례후보를 배치하는 것을 검토해 볼 수는 있다고 본다. 적잖은 사람들이 이런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2020년 총선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이광 : 2020년 총선에서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보나?

    김혜 : 우선 지금 비례대표 의원 4명 지역구 당선과 창원에서 의원을 배출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심상정 의원은 4선이 되고. 지금부터 지역구에 대한 집중적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몇 분 의원들을 만나보면 지역의 기초, 광역 의원과 국회의원이 어떻게 결합해서 일을 해야 되는지 잘 모르더라. 우리 지역의 경험을 공유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나는 당에서 전략 지역 활동을 위해 과감하게 돈을 써야 한다고 본다. 당선되고 어떤 식으로 돌려받더라도 출마 예상 후보나 해당 지역에 최소 한 달에 150만 원 정도는 지급해야 한다. 총선 준비를 위해 써야 한다. 나만 해도 지금 수입이 없다. 하지만 하다못해 경조사 다닐 일은 항상 생긴다. 지방 경조사라도 생기면 교통비 포함 몇 십만 원이 훅 나간다. 문자 한 번 보내도 3,000통이면 10만 원이다. 당에서 지금부터 몇 군데라도 확실하게 찍어서 집중 지원을 해야 한다고 본다.

    민주당 후보들의 경우 후보 개인기로 당 지지율 이상의 득표를 하기가 어렵다. 거의 당 지지율만큼만 나온다. 우리 당의 후보들은 열심히 다니면 당 지지율을 넘어서는 개인 득표가 가능하다. 따라서 당 지지율을 20%까지만 올리면 거기 얹혀서 갈 수 있다. 이번 선거를 해 보면서 더 알게 됐다.

    고양시 전체는 당 지지율이 19.3%였고 고양 갑(심상정 지역구)은 27%, 내 선거구는 28%였다. 이번에 당 지지율 얹혀서 가는 게 어떤 건 줄 이번에 알게 됐다. 당 지지율 13% 이면 되면 거리에 나가서도 정의당을 알아보는 수준이 다르다. 우리 메시지가 생각보다 많이 전파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우리 당에서 조금 더 캠페인을 비롯해 활동을 많이 하면 다음 총선 전 지지율 20%를 만들 수 있고, 지역구 돌파도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광 : 당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나?

    김혜 : 국회의원들이 의정활동 우선 중요하다. 정의당이 이제는 자유한국당 까는 메시지는 그만 내보내도 된다. 국민들이 그 당에 기대를 별로 하지도 않는다. 그 당에서 가끔 맞는 말을 해도 안 받아들이는 수준이다. 민주당을 상대로 해서 우리 입장을 국민에게 정확하게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메시지는 반복이다. 우리가 제1야당이 되는 비전에 대해 국민들에게 계속 이야기해야 한다. 나는 국민들이 우리에게 ‘그래 정의당이 제1야당 해라’ 이렇게 해줄 것 같다. 지역구에서 의원이 활동하는 것과 당 지지율과는 차원이 좀 다른 문제다. 해당 지역의 개인 인지도 상승과 당 지지율이 함께 오를 수는 있지만 전국적인 정당 지지율은 다른 수준에서 고민해야 한다. 중앙당에서 지속적으로 정확한 메시지를 공급해 주는 게 필요하다.

    이광 : 어떤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내보내는 게 좋을 것 같나.

    김혜 : 제1야당에 관한 메시지가 좋을 것 같다. 민주당은 여당이다. 우리 당이 민주당과 정책 경쟁을 하는 정치를 상상해 달라는 요구를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많은 국민들이 정말 상상할 때까지. 나는 그게 가능하다고 본다. 거기다가 지역에서 자신들이 한 번이라도 봤던 구의원이든, 시의원이 있다면 그 경험을 통해서 더 상상할 것이다. 강력한 경쟁 정당, 아프게 지적하고 대안을 만들어 내는 실력 있는 제1야당으로 우리 위치를 가져가야 한다.

    또 당의 메시지가 선거 제도 개혁을 겨냥해서 배치돼야 한다고 본다. 선거 제도 개혁을 얻어내기 위해 당력을 집중하는 것에 동의한다. 물론 선거제도 개혁이 우리 당 힘으로만 되지 않고, 당이 이 전략에만 매몰될 때 생기는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이해하고 동의한다. 사실 제1야당 전략은 비례대표 전락이기도 하다. 지역구에서 1등 하겠다는 사람에게는 좋지 않은 전략이다. 지역구 후보를 찍지 않는 것에 대한 면피가 될 수 있다. 이번 지역 선거를 끝내고 당 지도부에게 이런 전략을 바꿔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지역에 출마해서 후보가 “저 말고 비례후보를 위해 당을 찍으세요.” 이렇게 말하면 얼마나 웃기고 말이 안 되는 소리가 되겠나.

    또 선거법이 개정되더라도 반드시 우리에게 유리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른 정당 먹을 수도도 있다. 우리 실력으로 지역구를 돌파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당의 노력과 지역구 돌파를 위한 노력이 배타적인 게 아니다. 동시에 지향해야 할 당면 과제다.

    이광 : 다음 총선 출마가 고민의 대상 가운데 하나인가?

    김혜 : 당직 출마 의사는 이미 밝혔다. 총선 출마는 여러 가지 상황을 봐야 된다. 근데 이런 건 있는 것 같다. 내가 떨어지고 나서 지역 주민들에게 “전 앞으로도 정의당에서 정치할 겁니다.”라고 말하면 “그게, 뭔데?”라고 물어볼 것이다. 특히 동네 사람들과 그동안 나를 많이 도와준 사람들이 궁금해 할 거다. 내가 총선이나 아니면 다른 선거라도 다음 선거에 나가려 하니까 좀 도와달라는 말을 해야 한다. 그런 비전이 있어야 함께 움직일 수 있다. 그냥 흘려버리기엔 좀 애매한 측면이 있다.

    드라마 <정도전>을 쓴 작가 정현민 씨는 친하게 지내는 선배인데 어느 날 “정치인은 장사꾼과 유사하다. 장이 서면 무조건 판을 깔아야 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지역 주민들과 지속적인 연결을 갖기 위해서는 함께 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도 고민을 하는 중이다.

    “문재인 정부, 뭐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광 : 문재인 정부 1년 평가를 부탁한다.

    김혜 : 지금 뭐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누구나 초기에 기대 많이 했다. 여러 가지 얘기할 게 있지만 개헌과 선거법 개정에 대한 현 정부와 여당의 태도에 대해서만 말하겠다. 올 초에 자치분권 개헌 연대인가 하는 곳에서 주최한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한 적이 있다. 민주당의 힘 있는 의원들이 많이 왔다. 그들은 개헌의 당위성만 이야기했다. 촛불 정신을 이어받은 정권이라면 어떤 개헌인가가 중요한데 그런 데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개헌 자체가 아니라, 어떤 개헌을 어떻게 할 것이라는 책임 있는 태도가 전혀 없으면서 그냥 개헌 타령만 했다. 선거제도도 국민의 뜻 반영하는 방향으로 가겠다는 뚜렷한 모습도 안 보이고, 지역 수준에서는 자유한국당과 짬짜미만 하고, 집권당으로서 책임 의식이 전혀 없다. 집권 자체가 목표인 것 같다. 장악한 권력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식과 대안이 없는 것 같다.

    페미니즘과 정의당

    이광 : 정의당에서 페미니즘 주제를 어떻게 다뤄야 할 것이라고 보나?

    김혜 : 제기되는 문제에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동네에서 만나는 40대 초중반 엄마들은 불법 촬영, 즉 몰카에 상대적으로 관심이 없다. 모텔에 갈 나이도 지났고,(웃음) 딱히 공중 화장실을 이용할 일도 별로 없어서 그런 것 같다. 전업 주부도 더 그렇다. 그 문제가 심각한 것 같긴 한데 내 삶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근데 이게 복잡한 문제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인 우리 딸에게 조금 더 자라면 남자들이랑 섹스하지 말라고 얘기할 것 같다.

    이광 : 왜 그런가?

    김혜 : 언제 몰카에 찍힐지 모르니까. 차라리 섹스하고 임신하는 게 리스크가 적다. 한 번 찍혀서 돌아다니면 이건 정말 큰 문제다. 예를 들면 그렇다는 것이다. 좀 복잡하긴 한데 몰카가 나나 내 또래의 일상을 지배하는 문제는 아니지만, 딸에게는 굉장히 위협적인 현안이다. 그런데 이 문제가 현실적으로 잘 결합이 안 된다. 어려운 문제다.

    30대 후반, 40대 여성에게 페미니즘은 무엇인가. 이른바 경단녀에게 페미니즘은 무엇인가? 여성주의 정당으로서 다양한 세대, 다양한 처지에 있는 여성들에게 삶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정책과 비전을 주는 것이 당의 모습이 돼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메갈리아, 워마드 같은 곳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 그 문제가 내 삶의 중심에 들어와 본 적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은 상식 수준이다. 여성으로서 차별을 없애고, 남녀가 평등하게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운동이다. 그런데 최근 논란이 되는 주제는 여성주의 또는 페미니즘 논쟁을 너무 한정시키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불법 촬영을 하는 이들은 나쁜 사람들이다. 총기 구입이 불법인 것처럼 카메라 제조나 유통을 불법으로 만들어 버리는 수준으로 이 문제에 대처하든지 해야 한다. 진선미 의원이 공중화장실 몰카 금지 관련 법안을 만들어서 지방자치 단체 수준에서 화장실을 일일이 체크하도록 했는데, 이건 말도 안 되는 법이다. 누가 그걸 일일이 다 체크할 수 있나. 이 문제에 대해 우리 당은 불법 촬영을 근절시킬 수 있는 근본적 대안을 만드는 것이면 된다.

    나는 페미니즘이나 메갈 또는 워마드 논쟁을 당이 주요 이슈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이렇게 몰카가 창궐하고 우리 사회가 여자를 이렇게 우습게 대하면 우리 사회가 과연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출산은 궁극적으로 여성의 결정이다. 우리 사회가 여성 친화적으로 가지 않으면, 여성들이 그런 사회로 가고 있다고 확신하지 않는 이상 여성들은 출산을 결심하지 않을 것이고, 출산률이 높아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가열찬 저출산 투쟁과 출산 파업에 동참해야 하는데, 아이를 둘이나 낳아 버렸으니.(웃음)

    10년 후의 김혜련은?

    이광 : 노회찬은 10년 안에 진보정당 집권, 진보 대통령 탄생이 가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10년 후 정치인 김혜련을 한 번 그려볼 수 있나?

    김혜 : 10년이면 2028년, 그때쯤이면 경로는 잘 모르겠지만 국회의원을 하고 있어야 되지 않을까?(웃음) 인생은 타이밍이다. 내 인생의 목표를 이루는 과정이 만들어낸 결과이지 국회의원 그 자체를 목표로 삼는 건 아니다. 단기적으로는 우리 지역에 ‘추천인 김혜련’인 당원들을 많이 늘리는 것이 중요한 목표다. 이런 기반이 있어야 내가 어디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한편으로는 나는 직업으로 정치인 생활을 12년 했다. 이거 말고 다른 직업 없나, 생각도 해 봤다. 일반 직장인들은 이거 저거 하는데 직업 정치인은 다른 직업 갖지 못할까? 남들 말대로 이게 병이어서 그런가, 하는 생각도 해봤는데 앞으로 최소 2년은 당과 관련된 일 말고 다른 일 할 생각은 전혀 없다.

    이광 :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꼽아 달라.

    김혜 : 장점은 잘 지내는 거다. 사람들과 얘기하는 것 좋아하고, 친화력이 있다는 얘기를 듣는다. 인상이 좋다는 것도 장점이다. 이건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게 아니라 부모님께 감사할 일이다.(웃음) 직관적인 판단력이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평가도 받는다. 의정 활동 과정에서 크고 작은 많은 결정들이 크게 잘못된 것들이 없었다.

    특별히 내가 훌륭해서라기보다 여러 경험에서 오는 것이라고 본다. 내가 잘 모르는 현안 문제에 대해서는 당의 메시지가 뭔지, 심상정이나 노회찬은 어떤 말을 했는지,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본다. 또 주민들을 만나면 현안에 대한 이야기를 꼭 나눈다. 이런 과정이 판단력에 도움이 됐을 것 같다.

    이광 : 지역구 주민들과 만나면 남자들은 술을 자주 마시는 것 같은데.

    김혜 : 지역 주민들이 제가 술을 잘 마시는 건 안다. 하지만 아이가 어려서 술을 안 마신다는 걸 알고 있다. 가끔 마을의 큰 행사가 끝나고 뒤풀이가 있으면 세게 마셔 줄 때도 있다. 현실은 내 의정활동도 해야 되고, 심상정 의원 당선도 시켜야 되고(웃음), 아이들도 봐야 되고, 사실상 술을 마시기가 쉽지 않다. 자칫 잘못하면 내 일상이 무너진다. 참고로 주량은 소주 두 명 정도에 맥주 몇 잔 더?(웃음)

    내가 밖에 일이 있어서 돌아다니면 동네 나이 드신 아주머니들이 “그렇게 다니면 남편 밥은 어떻게 해 줘.”라고 말한다. 따지고 보면 성차별적 발언이긴 하지만 기분 나쁘지는 않다. 그분들 삶에서 그건 당연한 일이다. 정치를 하다 보면 오만 얘기들을 다 듣는다. 아저씨들 중에는 예쁘니까 찍어 준다는 말을 하는 분도 있다. 이런 분들에게도 감사하다고 한다. 사람 가리면서 표를 받는 게 아니다. 그 자리에서 성희롱 발언이니 뭐니 하면 안 된다. 장기적으로는 내 딸이나 후배들이 이런 성차별적 발언이나 모욕 받지 않고 정치를 할 수 있게 만드는 게 내 목표다.

    이광 : 부모님과 가족들이 많이 도와주나?

    김혜 : 부모님이 많이 도와준다. 어려서부터 밑에 남동생 있느냐는 질문을 엄청 많이 받았다. 딸만 둘이라서 그랬다. 나는 부산에서 나고 자랐지만 아버지는 고향이 완도다. 김대중 선생을 사랑하는 분이다. 내가 부산에서 자랐지만 그런 아버지를 보고 컸다. 아버지는 90년대 후반 호남 향우회 만들었다.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에도 참석하셨다. 나는 권영길 찍고 아버지한테 욕 무지 많이 먹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돈 들여 와가지고 왜 되도 않을 놈 찍느냐고, 정말 혼났다.

    요즘은 선거할 때마다 이 동네 와서 도와준다. 어머니는 3개월씩 애도 봐주시고 사위 밥 챙겨 주신다. 우리 당 정진후 의원 국회 세월호 특위 위원 할 때 외항선 선장 경력이 있는 아버지를 추천해서 특위 전문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51년생인 아버지는 본인의 직업과 활동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외할머니는 황해도 분이다.

    예전에는 ‘안 되는 당’이었는데 딸이 속한 당이기도 하고, 정진후 의원과 만나서 일도 같이 하면서 우리 당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부모님은 지금 창원에 계신다. 지난 총선 때 노회찬 후보가 될 거라고 이야기도 해줬다.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이 여동생인데 그래도 많이 도와준다. 시댁 부모님도 마음으로는 많이 지원해 주신다.

    심상정, 판단이 정확하고 치밀한 사람

    이광 : 지역에서 오랫동안 호흡은 맞춰온 심상정 의원은 어떤 사람인가?

    김혜 : 재미없어요.(웃음) 모든 분위기를 진지하게 만드는 탁월한 재주가 있는 분이다.(웃음) 판단이 정확하고 굉장히 치밀한 사람이다.

    당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심상정과 오랫동안 같이 정치를 하는 것도 행운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심상정 의원이 지역에서 자리 잡기까지 10년이 걸렸다. 그랬다고 다른 사람들한테도 다 10년 걸리라고 얘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시행착오를 1/3로 줄이는 게 굉장히 중요한 과제라고 본다.

    이광 : 노회찬 의원은 김혜란에게 어떤 사람인가?

    김혜 : 그의 삶은 존경스럽지만 그렇게 살 자신은 없다. 그분 삶의 궤적을 보면 저렇게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분에게 진보정당은 어떤 의미일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다. 나로 하여금 그런 생각을 계속 하게 만들어 주는 분이다.

    먼저 가신 노회찬 의원이나 오재영 선배 같은 분들이 살던 시절의 삶이라는 게 우리 시대와는 커다란 간극이 있다. 그러니 내가 그렇게 그분들처럼 안 살았다고 내 마음에 (부채의식으로) 두지 말자, 하지만 그분들의 마음에 대해서는 잊지 말자,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이광 : 마지막으로 노회찬 의원에게 하고 싶은 말 한 마디 부탁한다.

    김혜 : …… (흐르는 눈물 때문에 인터뷰가 잠시 중단됨) 뭐라고 해야 되지?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니 열심히 하는 건 당연하지. 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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