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 극우정당과 히잡
    [붉은오늘 사이드스토리] 반이슬람
        2018년 11월 23일 02:0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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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오늘20 ‘히잡을 견디지 못한 프랑스의 톨레랑스’

    독일녹색당을 말할 때 우리는 모두 녹색전사, 페트라 켈리를 떠올린다. 하지만 그의 대한 이런저런 평가를 제외한다면 당의 비약을 마련한 요슈카 피셔를 빼놓을 수 없다. 그에게도 몇 가지 꿈이 있었다. 독일녹색당 요슈카 피셔의 꿈은 살을 빼는 것과 대통령이 되는 것이었다. 자신의 책 <나는 달린다>에서 소개하고 있듯이 아마추어 최고기록 수준의 마라토너를 계속했다. 빠진 살 덕분에 새로운 피앙세도 만나는 겹경사를 얻었다. 허나 대통령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내각제인 독일에서 상징적인 존재인 대통령은 간선으로 뽑는다. 사민당과 적록 연정을 이끌어 낸 피셔가 마음만 먹으면 대통령의 자리에 오를 수도 있었다. 피셔의 꿈은 독일 대통령이 아니었다. 유럽연합의 대통령, 그것이 그의 오랜 꿈이었다. 적록 연정에서 외무장관을 맡은 피셔는 하나의 유럽을 위해 광폭 행보를 거듭했다. 하지만 시간은 그의 뜻과 달리 천천히 흘렀고 사민당도 더 이상 집권당이 아니었다. 꿈이 사라진 피셔는 곧바로 은퇴해 돈벌이에 전념했다.

    하나의 유럽이라는 꿈

    영국의 메이 총리가 유럽연합과 브렉시트 합의안을 내각회의 끝에 공동결정이라고 밝혔다. 내각에서 반발이 있었다는 뜻이다. 브렉시트 담당 장관과 4명의 장관이 줄을 이어 사퇴했다. 독자적으로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지 못한 보수당은 하원 통과마저 불확실해졌다. 그 사이, 당내 강경파 의원들이 당 선거관리위원회에 해당하는 1922위원회에 당내 경선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내기 시작했다. 외신에 따르면 42명의 의원이 서한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6명의 서한이 위원회에 도착하면 그것은 메이 총리의 정치생명이 끝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럽연합의 합의안에 대해 프랑스와 스페인이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프랑스는 영국과의 어업권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입장이며 네덜란드도 같은 입장이다. 프랑스는 명확한 보장이 없으면 합의안에 서명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스페인은 자국 영토에 있는 영국령 지브롤터의 처리 문제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스페인은 이 기회에 빼앗긴 지브롤터를 다시 찾을 기세까지 비추고 있다. 프랑스와 스페인은 다른 이해관계 때문에 합의문에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연합이 이탈리아의 내년 예산안에 대해 경고를 들고 나왔다. 유럽연합이 규정한 재정적자 허용한도(3%)와 관련하여 이탈리아가 국민총생산(GDP)에서 재정적자 규모가 초과하지 않았지만 경제상황으로 볼 때 초과한다고 본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대규모 국채를 발행하기로 한 것이다. 포괄정당인 오성운동과 극우정당인 동맹당의 연정이 (급진)좌파정권처럼 적자예산을 편성한 것이 유럽연합을 자극했다. 동맹당은 국채를 발행해 전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주자고 나선 것이다. 이탈리아 경제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지만 동맹당의 지지율은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동맹당의 살비니 당수는 규정을 준수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자격정지 등 강력한 제재를 운운하고 있지만 실현 여부는 미지수다. 이탈리아 국채 가격은 춤을 추고 있지만 연정의 한 축을 주도하고 있는 살비니 부총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는 것이 더 문제다.

    위험한, 아주 위험한 캐스팅 보트

    스웨덴 총선이 끝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정부 구성이 표류하고 있다. 중도좌파연합을 이끌고 있는 사민당(녹색당+좌파당)이 간발의 차이로 1당을 차지했지만 과반수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중도우파연합을 이끌고 있는 보수당(중앙당+기독민주당+자유당) 역시 마찬가지였다. 선거 결과 좌파연합의 의석수는 144석, 우파연합의 의석수는 143석이었다. 175석 과반을 확보할 수 없는 대규모 교착상태에 빠진 것이다. 연립정부에 끌어들일 남은 정당은 극우정당 스웨덴민주당(62석)뿐이었다.

    사민당이 네오나치를 표방하는 극우정당과 연정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사민당이 우파연합에 속한 다른 정당, 이를테면 농어민 정당인 중앙당과 손을 잡고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것은 불가능할까. 녹색당이 동의할 가능성도 거의 희박하지만 좌파당이 받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사민당의 스테판 뢰벤 총리가 신임투표에 나섰지만 우파연합은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민주당 역시 마찬가지였다. 연정 구성이 공전을 거듭하자 국회의장이 보수당의 크리스테르손을 총리 후보로 추천하고 나섰다.

    불과 한 석이지만 좌파연합이 1당인데다 신임투표에서 총리를 불신임해 버린 우파연합의 손을 들어줄 이유는 현재로서는 없다. 우파연합의 남은 선택지는 극우정당인 스웨덴민주당뿐이다. 동유럽에서는 중도우파정당이 극우정당과 연정을 하는 경우(오스트리아)가 간혹 있지만 북유럽의 정서는 완전히 다르다. 그 때문에 선거가 시작되기도 전에 우파연합은 선거결과에 관계없이 민주당과의 연정은 없다고 공언해왔다. 그런데 우파연합이 집권하기 위한 선택지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연정 구성을 위임받은 크리스테르손은 민주당과 비공식(?) 협상을 추진했다. 크리스테르손의 요청은 민주당이 요구하는 정책(연합)을 받고 내각에는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극우정당과 포괄정당의 득세로 흔히 등장하는 소수내각을 크리스테르손이 민주당에게 요청한 것이다. 민주당의 임미 오케손 당수는 내각에 참여하지 않는 연정은 연정이 아니라고 단호히 거부했다. 당연하게도 민주당의 지지가 없다는 것은 누구도 정부 구성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크리스테르손이 민주당과 손을 잡았다.

    교착 상태를 벗어나려는 것이 크리스테르손의 목적인지, 오랜 야당생활이 지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독이 든 사과를 건네받았다. 하지만 크리스테르손의 기대는 어긋났다. 우파연정에 참여한 중앙당과 자유당이 이탈해 반대표를 던진 것이다. 집권을 하더라도 극우정당과는 불가하다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었다. 중도우파정당이라고 하더라도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이 있다는 것이다. 사민당의 스테판 뢰벤 전 총리를 다시 인준하는 투표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이마저도 여의지 않아 보인다. 보수연합의 중앙당과 자유당이 민주당과 손을 잡는 것을 반대한 것이지 좌파연합에게 권력을 내줄 생각은 없기 때문이다.

    남은 선택지는 중앙당에게 총리를 내어주고 사민당과 보수당이 사실상의 대연정을 하는 방법과 재선거가 남아있다. 재선거를 하더라도 현재의 구도가 바뀌기는커녕 지금의 추세라면 민주당의 의석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것이 악재다.

    극우정당과 유럽회의주의

    한동안 한국의 보수언론들이 단골로 쓰던 기사는 “유럽이 우향우하고 있다”였다. 그건 유럽의 중도좌파인 사민주의 정당이 권좌를 내주고 그 자리를 중도우파 정당들이 차지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20세기 동안 보편적 복지를 내세워 유럽을 휩쓸었던 사민주의 정당들은 세기가 끝나가면서 경기침체와 실업률의 상승으로 위기를 맞자 복지와 노동조건을 스스로 뒤로 돌리며 전통적인 지지기반인 노동계급에서 멀어져갔다. (녹색당과) 하르츠 법안을 만든 독일사민당의 슈뢰더가 대표적이었다. 그 후 20년 동안 지지율 상승은 일어나지 않았고 추락을 거듭했다. 그 빈자리를 중도우파인 기민당이 가져간 것이 아니라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차지했다. 공산당선언에 비유하자면 유럽은 지금 하나의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극우주의라는 유령이.

    유럽의 정당들은 지지자들이 한눈에 알 수 있도록 당 이념을 축소한 이데올로기(Ideology)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대표적인 중도좌파정당인 독일사민당을 보면 사회민주주의(Social democracy)와 친유럽주의(Pro-Europeanism) 두 가지를 표방하고 있다. 기민당 역시 보수주의와 친유럽주의를 내세우며 크게 다르지 않다. 사민당과 기민당의 차이는 사민주의냐 보수주의냐하는 것으로 쉽게 구별할 수 있다.

    그렇다면 3당으로 뛰어오른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어떨까. AfD가 전면에 내세우는 이데올로기는 유럽회의주의(Euroscepticism)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유럽연합을 탈퇴하자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동맹당, 프랑스의 국민전선, 그리고 스웨덴의 민주당 역시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유럽회의주의다.

    유럽회의주의와 함께 내세우는 것은 당연하게도 민족보수주의(National conservatism)이지만 나머지는 안티 이슬람(Anti-Islam), 안티 이주민(Anti-immigration)을 강조하고 있다. 극우정당들이 유럽회의주의를 강조하는 것은 실업률이 오르는 것과 일자리가 부족한 것이 모두 이주민 탓이라는 주장이다. 이들의 주장은 경기가 침체하면서 유권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게다가 지난 2~3년 동안 불어온 유럽의 대규모 난민 유입으로 반난민 정서를 앞세운 극우정당들의 지지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극우정당들은 유럽회의주의와 반난민을 선동하면서 기존의 중도좌파와 중도우파의 야당체계를 허물고 3당으로 뛰어오르면서 교착상태를 만들어버렸다. AfD와 손을 잡을 수 없었던 독일의 기민당은 사민당과의 대연정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고 사민당도 다른 대안이 없어 하위파트너로 전락한 상태다.

    무슬림 여성들의 히잡

    유럽회의주의와 함께 내세우는 것이 민족보수주의다. 이주민과 난민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이슬람을 겨냥한 것이다. 이주한 이슬람들이 자신들의 보수기독교주의에 바탕을 둔 문화를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 원외의 극우정당들이 거리의 부랑자처럼 반이슬람의 깃발을 들고 떠돌 때는 이들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거나 폭력을 휘두르면서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 손쉬운 방법이 사용했다. 하지만 극우정당들이 원내에 진출하기 위해 ‘캐비어 극우주의’로 새롭게 단장하기 시작하면서 거리의 부랑자들을 당에서 추방했다. 원내에 진출하자 새로운 문제가 뒤따랐다. 기성정당이 반이슬람주의, 즉 종교의 자유를 공식적으로 부정하는 정치는 불가능했다. 극우정당들은 우회로를 찾았다.

    무슬림(이슬람 신자) 여자들이 머리에 가리는 스카프, 히잡(Hijab)이 먹잇감이었다. 공공기관에서 히잡의 착용을 금지하자는 주장이 신호탄이었다. 반복되는 테러도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독일은 올해 니더작센주 공공기관에서 히잡 착용 금지를 결정했다. 베를린에서는 초등학교 수업에서 교사가 히잡을 쓰는 것을 금지하는 결정이 이어졌다. 바이에른주에서도 유사한 결정들이 이어질 예정이다. 그런데 중도좌파의 희망인 사민당이 이 문제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취하면서 사실상 손을 들어주고 있다. 이런 태도가 독일사민당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럽 중도좌파정당들의 전선은 이제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필자소개
    인문사회과학 서점 공동대표이며 레디앙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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