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 포함'
    대법원 판결에 노동계 "환영", 경총 “유감"
    "신의칙에 위반되는지는 신중하고 엄격하게 판단해야"
        2019년 02월 14일 08:0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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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원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해주지 않은 하급심 판결을 파기하고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14일 인천 시영운수 소속 버스기사 20여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사건의 상고심에서 원고인 노동자 패소였던 원심 판결을 파기 환송했다.

    2013년 3월 시영운수 소속 버스기사들은 통상임금에서 정기상여금을 제외하는 단체협약이 무효라며, 통상임금에 상여금을 포함해 재산정한 뒤 늘어난 시간외수당을 추가로 지급해달라고 소송을 냈다.

    하급심 재판부는 모두 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인 2013년 12월, 대법원 판단에 따른 판결이었다. 당시 대법원은 갑을오토텍 통상임금 사건에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한 노사 합의는 무효라고 판단하면서도, 미지급된 임금을 청구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에 의해 제한될 수 있다고 밝혔다. 신의칙은 민법상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이행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한 협상을 한 이상, 회사의 경영상 어려움이 있을 경우 통상임금 재산정에 따른 추가 수당을 제한할 수 있다는 뜻이다.

    1·2심 재판부는 이러한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통상임금 재산정으로 인한 시간외수당 추가 지급을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재정적 부담”이라며 이로 인해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게 된다”고 판단했다. 추가로 지급해야 할 수당이 7억 원에 달해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할 정도여서 이를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본 것이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아도 된다는 하급심 결정을 뒤집었다. 주목할 만한 점은, 회사가 경영상의 어려움을 이유로 추가 수당을 주지 않는 것이 기업 경영에 따른 어려움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것”이라는 취지의 판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기업을 경영하는 주체는 사용자이고 기업의 경영 상황은 기업 내·외부의 여러 경제적·사회적 사정에 따라 수시로 변할 수 있다”며 “통상임금 재산정에 따른 근로자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를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는 이유로 배척한다면 기업 경영에 따른 위험을 사실상 근로자에게 전가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시영운수가 노동자들에게 추가 법정수당을 준다고 해서 경영상 어려움이 생길 것이라고 보지도 않았다.

    우선 대법원은 추가 수당이 7억 원이 아닌 4억 원 상당이라고 봤는데, 그 규모가 시영운수 연간 매출액의 2~4%, 2013년 총 인건비의 5~10% 정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시영운수의 2013년 기준 이익잉여금만 하더라도 3억원을 넘는다”며 “시영운수는 2009년 이후 5년 연속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하고 있고, 꾸준히 당기순이익이 발생하며 매출액도 계속 늘고 있다. 특히 버스준공영제를 적용받고 있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안정적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을 것”고 판단했다.

    아울러 대법원은 “노동자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가 사용자에게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여 신의칙에 위반되는지는 신중하고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근로관계를 규율하는 강행규정보다 신의칙을 우선해 적용할 것인지를 판단할 때에는 근로조건의 최저 기준을 정해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향상시키고자 하는 근로기준법 등의 입법 취지를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신의칙에 관한 이 전에 대법원 판결을 유지하면서도 ‘신중하고 엄격해야 한다’는 조건을 붙인 것이다. 다만 ‘경영상 어려움’이라는 모호함은 여전히 남아있다.

    노동계, 진전된 내용이라며 ‘환영’…경총 “대법원 파기환송에 유감”

    김형석 민주노총 대변인은 “대법원이 이번 판결에서 신의칙을 버리지는 않았지만 ‘신의칙에 위반되는지는 신중하고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하며 원심을 뒤집은 것은 그나마 진전된 내용”이라고 논평했다.

    한국노총은 “통상임금 관련 대법원의 판결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한국노총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우리는 이번 판결이 노동자들의 정당한 통상임금 청구권을 제한해온 ‘신의칙’에 제동을 걸고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했다는 측면에서 환영한다”고 이같이 밝혔다.

    한국노총은 “통상임금을 둘러 싼 소송으로 노사 간 분쟁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연장·야간·휴일 노동 수당 등 변동적 성격의 임금을 제외한 고정적 성격의 모든 임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도록 정부와 국회가 법제도를 정비해줄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경총은 “경영계는 대법원이 원심 판단을 파기 환송한 것에 대해 유감”이라고 밝혔다.

    경총은 이날 입장문에서 “통상임금 소송에서 신의성실원칙이 나온 기본 취지는 근로자 측이 일방적으로 합의를 깨고 추가 법정수당을 청구하는 것은 노사 관계의 특수성과 합의를 둘러싼 신뢰 등에 반하기 때문”이라며 “재판부가 근로자 보호만을 강조해 노사합의 파기를 용인하고 약속에 대한 신뢰 훼손을 방치하는 것은 결코 미래지향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경총은 “통상임금 사안에 대한 결론이 재판부마다 서로 다르고 쟁점별로 엇갈리게 나오는 사법적 혼란 상황에서 이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임금체계 전반에 대한 입법적 개선이 필요하다”며 “지금처럼 기업의 경영상황에 따라 형식적 법적 논리로 판단하는 것은 경영의 불확실성만 심화시킬 뿐”이라고 강조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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