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산업생태계 구조적 특징과 위기①
    재벌대기업과 협력중소기업, 동반성장과 약탈 사슬
        2019년 04월 04일 10:25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이 글은 [진보평론] 2019년 봄호에 실린 남종석 씨의 글(1)이다. 진보평론 편집부와 필자의 동의를 얻어 레디앙에 2회에 나눠 게재한다. 한국경제 산업생태계의 구조적 특징에 대한 연구 분석이며, 이런 과정을 통해 경제에 대한 진보적 대안을 어떤 방향에서 구체화시켜 나갈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는 게 필자의 문제의식이다. 논문이 긴 분량이어서 나누는데, 1회 분량이 조금 길다. 경제에 대한 구체적 대안과 접근을 고민하는 이들이라면 다소 길더라도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편집자>
    ————————- 

    1. 들어가며

    한국의 수출주도 제조업 기업들은 지난 20년간 이후 급속한 성장을 경험해 왔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중화학 공업화는 1980년대 3저 호황과 함께 고도성장의 길에 들어섰다. 1987년 이후 노동운동의 급속한 성장은 대기업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을 상승시켰고 이에 대응하여 대기업들은 고용 증가를 억제하고 유형고정자본 투자를 확대하면서 성장을 주도해 왔다. 1997년 IMF 구조조정 이후 시장개방과 해외직접투자 과정에서도 한국 수출주도 대기업의 성장은 멈추지 않았다.

    2000년대 이후 수출주도 대기업들의 경영전략에서 큰 변화를 보여준 것은 글로벌 생산네트워크의 확대이다. 글로벌화의 심화와 투자자 보호와 같은 새로운 투자 환경이 조성되면서 한국 수출주도 대기업들은 현지시장 개척, 중간재 투입비용 절감, 신기술 획득, 자원개발 및 확보 등 다양한 이유로 해외직접투자를 급속히 증가시켜 왔다. 그와 함께 대기업들이 생산하는 재화의 가치사슬 구조도 세분되고 글로벌화 되었다. 한국 대기업들은 전자, 자동차, 석유화학, 부품소재 등 다양한 산업분야에서 선발주자를 추격하기 위한 독특한 가치사슬를 만들어 왔으며 그 과정은 놀라운 성공만큼이나 또한 많은 한계와 문제점을 낳기도 했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는 뉴 노르말(New Normal) 시대로 진입했다. 과거 세계경제는 구조적 위기 이후에 빠른 회복을 보였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는 세계경제의 양상이 달라졌다. 2010년 이후 미국과 유로존은 양적완화를 통해 은행들이 보유한 부실채권들을 매입하며 경기부양 정책을 꾸준히 추진했다. 그러나 세계경제는 회복되지 않았다. 금융자산과 부동산자산 가치는 상승했지만 실물경제 회복은 지체되었다. 경기가 하강곡선을 그리고 회복되지 않았다. 미국의 붕괴 이후 유럽의 재정위기가 확산되었고 자원수출에 의존하고 있던 러시아나 라티아메리카 국가들도 자원 수요 감소와 석유가격 하락으로 장기적인 경기침체에 빠졌다. 중국경제는 의도적으로 내수를 증진시키면서 해외수요 의존도를 낮추면서 성장률은 점차 6%대에서 안착하는 상태이다. 세계의 저성장은 세계 무역의 비중을 줄이도록 했다.

    2009년 음의 성장 이후 한국 경제는 다시 회복기를 맞는 듯했다. 2009년 위기 시점에서도 제조업 산출을 꾸준히 증가하면서 한국 경제가 큰 위기에 직면하지 않는 듯했다. 그러나 2011년 이후 제조업 주력 수출 산업에서부터 내수에 이르기까지 장기적인 침체로 진입했다. 가장 먼저 붕괴된 산업은 조선업이다. 조선업 총산출은 2010년 고점 대비 2017년 총산출이 40%나 감소했다. 자동차 산업은 2015년 이후 총산출이 감소로 전환되었다. 자동차 산업과 조선업의 산출 감소는 일반기계 산업과 철강금속 산업의 산출 감소로 이어졌다.(2) 해외시장 축소 및 경쟁압력의 증가, 조선업, 자동차 산업의 산출 감소, 철강-기계 산업의 정체가 이어지며 제조업 전체 산출이 정체하는 국면이 된 것이다. 2014년 한국 제조업은 역사상 처음으로 음의 성장을 기록한다. 제조업 매출액은 2016년까지 음의 성장을 했으며 2017년, 2018년 반도체 등 전자업종의 수출증가로 매출액성장률이 양으로 다시 진입한다.

    제조업의 붕괴는 한국 산업 전반의 침체로 이어졌다. 한국 산업생태계는 대중소기업간 거래관계로 구성되어 있다. 수출주도 선도기업이 최종재를 생산하고 이에 납품하는 1차 협력기업, 2차 협력기업 등으로 다층적으로 산업생태계가 구성되어 있다. 수출주도 대기업의 수출 감소와 산출 감소는 협력중소기업의 산출 감소를 초래하며 기업 전반적으로 매출액성장률 정체과 영업이익률 감소로 이어졌다. 2010년 이후 한국 경제의 장기 침체는 한국 경제사에서 매우 예외적인 경우임을 보여준다. 한국경제는 경제위기로 산업이 침체되어도 곧바로 회복되었다. 그러나 2014년 이후 한국 경제의 장기침체는 지속되고 있다. 더불어 대기업의 경영상태는 악화되었으며 중소기업의 재무구조는 더 악화되었다. 수출에 의존하던 한국경제 전체가 위기에 직면한 상황이다. 조선업에서 시작된 구조조정은 장기적으로 지속될 것임을 예견한다. 이는 한국 제조업의 구조적 변화만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일자리 및 노동조합 운동에도 큰 변화를 예고한다.

    필자는 이 글에서 2000년대 이후 대중소기업간 거래관계 중심으로 구축된 한국의 산업생태계의 구조적 특징을 분석하고 계층적 공급네트워크 하에서 가치분배가 어떻게 이뤄지는가를 보이고자 한다. 이 글은 한국의 대중소기업간 거래관계의 다층적인 면모를 보여줌으로써 한국 경제의 빠른 성장이 가능했던 제도적 조건과 그로부터 야기되는 고유한 모순이 무엇인가를 논한다. 한국 산업생태계는 비판자들이 흔히들 주장하는 것처럼 그렇게 비효율적이지 않지만 여러 모순을 내포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필자는 한국 산업생태계의 다층적인 면모를 제대로 볼 수 있어야 한국 사회에 필요한 제도적 개혁, 급진적 개혁의 과제를 제대로 선별할 수 있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한국 제조업의 위기를 살펴보고 노동운동 직면한 현실을 논하고자 한다.

    2. 한국 산업생태계의 구조적 특징

    1) 계열사를 활용한 수직적 분업구조

    한국 산업화는 대규모 기업집단인 재벌기업 주도로 이루어졌다. 기원이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한국 재벌기업들은 1970년대 중화학공업화를 주도하면서 이후 한국 산업화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재벌계열사를 중심으로 한 기업집단의 형성을 통해 재벌가 총수들은 적은 지분에도 불구하고 계열기업 전체를 지배하는 소유경영자가 되었다. 재벌로 표상되는 한국의 기업집단은 후발주자로서 선진국을 추격하는데 매우 효율적인 체계로 작용했다.

    재벌기업들은 특정 성장 단계에서 수익률이 가장 높은 계열사를 통해 이윤을 축적하면 이를 새로운 사업 분야, 새로운 계열사의 확장을 위한 자본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자본축적-집중 방식은 재벌가의 입장에서는 매우 효율적인 성장체제였다. 새로운 산업분야로 계열사가 진출하면 이미 다른 계열사에서 확보하고 있던 인적자원(엔지니어), 제조공정의 노하우, 설계기술 등을 지원하고 세계시장 개척을 위한 시장정보와 판매경로를 제공하고 물류관리를 지원했다. 또한 재벌기업의 우월한 지위를 활용하여 금융자원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으며 투자증권회사, 보험사, 카드사와 같은 금융기업들을 계열로 거느리며 자본 동원을 손쉽게 할 수 있었다.

    한국 제조업은 성장초기 조립가공을 통한 수출 중심으로 성장해 왔다. 설계기술이나 중간재를 일본이나 독일로 수입해서 이를 조립 가공하여 최종재를 시장에 판매하는 방식으로 성장해왔다. 초기의 조립가공은 이미 만들어진 여러 부품들을 단순히 조립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기술수준이 높지 않았고 최종재의 순부가가치도 높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 제조업 기업들은 실행을 통한 학습, 자체적인 설계능력 확보, 공정혁신, 숙련된 엔지니어의 축적, 공격적인 유형자산 투자를 통해 최종재의 생산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춰 나가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00년대 이후 석유화학, 전자, 선박 제조, 자동차 등에서 세계시장 점유율을 급속히 확대해 갔던 것이다.

    최종재를 공급하는 시장을 확보하면서 재벌기업들은 한편으로 하청업체들에게 중간재 투입시장을 제공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중간재를 투입하는 부품계열사를 설립하고, 이들의 기술력을 높여 주요한 공급라인을 구성해 왔다. 이와 같은 방식은 기업간 거래관계에서 작용하는 불확실성, 거래비용을 줄이면서 효율적인 공급라인의 구축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중간재를 공급하는 기업의 기술적 경쟁력을 높임으로써 세계시장에 중간재를 수출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재벌계열사 기업들은 최종재를 세계시장에 공급하는 모회사라는 확실한 중간재 납품시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공격적인 설비투자와 연구개발투자를 할 수 있었다. 기업으로서는 확실한 수요처를 확보함으로써 투자의 불확실성을 제거할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최종재를 생산하는 모회사로부터 설계지원, 중간재 경쟁업체로부터 획득한 기술 및 정보 확보 등 다양한 자원을 지원 받을 수 있으므로 다른 경쟁자에 비해 우월한 지위를 확보할 수 있다. 이는 중간재를 공급하는 계열사의 수익성을 개선하고 새로운 투자를 촉진함으로써 계열기업 전체의 빠른 성장이 가능하도록 하는 체제였다. 이런 점에서 재벌기업 집단은 추격자로서의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있어 효율적인 체계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재벌기업군의 성장은 한국 수출주도 업종 기업들 내부에서 독특한 가치사슬 구조를 만들어 내었다. 최종재를 생산하는 모회사는 계열사를 가치사슬의 전반부에서 후반부에 이르는 전 과정에 배치함으로써 가치사슬 전 과정을 통제한다. 최종재는 계열사를 비롯한 공급기업들이 공유하는 플랫폼이며, 계열사에게는 고부가가치를 낳는 핵심부품을 납품하도록 배치한다. 계열사 내부에서 직접 생산할 수 없는 핵심 중간재의 경우 외부 공급기업 특히 해외 공급기업으로부터 조달하지만 선도기업인 재벌기업들은 경쟁업체가 공급하는 부품의 기술 및 설계도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한 계열사 내부에 새로운 공급라인을 만들려고 한다.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면 말이다. 그래야 독점적으로 고부가가치 부품을 납품하는 공급기업의 협상력을 낮출 수 있으며 장기에서는 계열사 체계 내로 핵심부품 업체를 유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한국 수출주도 제조업 기업들의 계열사 조달 비중, 계열사 조달 체계는 매우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다.

    스마트폰은 대표적인 플랫폼이다. 국내 기업 중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세계에서 높은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중국 업체들의 빠른 성장으로 시장경쟁은 더 치열해졌지만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여전히 세계시장의 주요 경쟁자이다. 한국의 양대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스마트폰의 핵심부품(AP, 반도체, 디스플레이, 배터리, 카메라모듈)의 조립, 판매 물류 서비스 영역 등 가치사슬의 전반을 수직계열화하고 있다. 부품가공만이 아니라 구매와 판매도 계열회사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아 계열사 위주로 가치사슬을 형성하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림 1>은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의 삼성전자 매출비중을 보여주고 있다. 삼성그룹의 전자관련 계열기업의 삼성전자 매출비중을 보면 2015년 현재 삼성디스플레이 56.0%, 삼성SDI 20.1%, 삼성전기 18.3%, 삼성SDS 8.7%, 에스코어 44.9%, 스테코 94.4%, 세메스 55.1%, 삼성전자로지텍 84.3%, 삼성전자서비스 44.9%이다. 삼성전기, 삼성SDS, 삼성SDI를 제외하면 매출의 절반 이상을 그룹내부 매출에 의존하고 있다. 계열사 내부에서 매출비중이 낮은 세 기업은 상대적으로 오랫동안 영업을 해온 기업으로서 세계시장에서 반도체 판넬, 배터리, 반도체 공급기업으로 자리잡았거나 자리잡아가고 있는 기업들이다. 상대적으로 삼성전자 의존도가 낮은 이유는 그동안의 기술축적으로 다른 기업들에게 자사의 제품을 납품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세메스나 스테코는 반도체 장비나 반도체 소자를 생산하는 기업이며 삼성전자로지텍은 삼성전자의 물류 및 시스템 지원 부분을 담당한다. 삼성전자판매와 삼성전자서비스는 판매와 사후 서비스를 담당하기 때문에 삼성전자 의존도가 매우 높다.

    <표 1>은 삼성그룹 계열사간 구매-판매 매트릭스 이다. 세로축은 삼성그룹 계열사로부터의 구매액과 총매입액 대비 계열사 매입액을 보여주며 가로축은 계열사로의 판매액을 보여준다. 매출액 비중은 공급기업의 측면에서 모회사에 대한 의존도를 보여준다면 매입액 비중은 선도기업의 측면에서 계열사의 납품비중을 보여준다. 매입액 비중을 보면 삼성전자 32.3%, 삼성디스플레이 26.9%, 삼성 SDI 1.4%, 삼성전기 16.3%이다. 매출액 비중에서 삼성계열사들이 삼성전자 의존도가 높지만 매입액 비중에서 삼성전자의 계열사 비중이 32.3% 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나머지 68.7%는 다른 공급기업으로부터 조달한다. 다른 계열사의 매입비중은 삼성전자보다 더 낮다.

    <표 2>는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의 내부매출 비중을 나타낸다. <표 1>이 구매-판매 매트릭스라면 <표 2>는 계열사들이 삼성전자 관련 기업들에게 납품 비중을 나타낸다. 각 계열기업의 전체 매출에서 계열사 내부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으로 계산한 결과이다. 삼성그룹의 전자 관련 주요계열사의 그룹내부 매출비중을 보면, 삼성SDI가 27.2%, 삼성전자서비스가 45.2%, 삼성전기가 47.6%, 삼성디스플레이가 56.0%, 에스코어가 61.8%, 삼성전자판매 70.2%, 삼성SDS가 88.5%, 삼성전자로지텍이 93.0%, 세메스가 93.1%, 스테코가 94.4%, 에스유머티리얼 100%로 거의 모든 계열사가 매출의 상당부분을 다른 계열사에 의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계열사 내부거래에 의해 다른 계열사들의 경영을 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삼성전자의 매출 비중이 워낙 크기 때문에 삼성전자를 정점으로 한 여타 계열기업의 영업구조는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만 이런 내부 계열화가 진척된 것은 아니다. 엘지전자,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SK하이닉스 등 한국의 수출주도 대기업 전체가 이와 같은 복잡한 내부 계열사 체계를 지니고 있다. 계열사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가 자주 언론의 비판대상이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계열사 위주로 조달하기 때문에 계열사 외부의 독립기업이 성장하기 어렵다는 비판이다. 계열사 조달체계에 대한 또 다른 비판은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경쟁력이 없는 계열사에 수익을 몰아줌으로써 재벌집단의 자원 배분이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흔히들 터널링 효과(Tunneling effect)라고 한다.(3) 터널링이란 재벌의 핵심기업이 자사에서 창출된 수익을 상장하지 않거나 재벌가의 특정인 지분이 많은 계열사로 가치를 이전시키는 것을 일컫는다. 이런 관행은 선도기업 주주의 이익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비판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비판도 존재한다. 재벌기업들은 방만하게 계열사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기술적 연관성이 높은 공급라인을 중심으로 계열사를 확장하면서 공급라인의 응집성이 높아지고 집합적 수준에서 기술력도 상승하고 있다는 것이다.

    2) 전속적 거래구조와 폐쇄적 가치사슬

    앞 절에서 수출주도 대기업의 계열사 내의 수직적 분업구조를 갖는다는 것을 보았다. 국내 대기업의 가치사슬구조의 또 다른 특징은 중간재 납품업체의 다층적인 위계적 거래구조이다. 가치사슬을 핵심을 구성하는 플랫폼을 제공하는 선도기업들은 최종재를 조립 가공하여 시장에 공급하면서 동시에 협력기업들로부터는 중간재를 매입한다. 앞 절에서 보았듯이 수출주도 대기업들은 많은 자회사들을 통해 중간재를 공급받기도 하지만 그 보다 더 많은 1차 협력업체들로부터 중간재를 납품받으며 이를 최종적으로 조립 가공하여 시장에 판매한다. 대기업들은 가치사슬 상에서 고부가가치를 낳는 중간재에 대해서는 계열사 내부에서 조달하는 반면 상대적으로 부가가치 비중이 낮은 중간재는 협력중소기업으로부터 조달하는 형식을 취해왔다. 특정한 업종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수의 업종에서 이와 같은 계층적인 질서가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그림 2>은 전자, 자동차, 조선 매출 1위 선도기업 1사의 거래네트워크를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4) 선도기업은 각 업종 내에서 중간재를 매입거래만 하고 최종재를 시장에 판매하는 기업이다. <그림 2>에서 보듯이 한국의 수출 선도기업들은 다수의 중소 협력기업들로 부터 중간재를 매입하고 있으며, 이들에 납품하는 기업들은 다시 2차, 3차 협력기업들로부터 중간재를 공급받는 구조를 띠고 있다. 거래네트워크는 핵심 선도기업을 중심으로 다층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한국의 수출주도 대기업들은 중화학공업 발전 초기부터 중간재를 납품받아 최종재를 조립가공하여 수출하는 기업들이었다. 초기 산업화 당시 이들 기업들은 핵심 중간재를 일본 기업으로부터 수입했었다. 그 결과 수출이 증가하면 대일무역적자도 동시에 증가하는 수입-수출 구조를 갖고 있었다. 1980년 이후 대기업들은 부품 국산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당시 한국의 중소기업들은 규모뿐만 아니라 기술수준, 인적자원 모든 면에서 열악한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수출주도 선도기업들은 중간재를 납품하는 협력 중소기업들에게 기술지도, 설계지원, 엔지니어 교육 등을 제공하며 이들 기업의 성장을 견인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후견-피후견 관계(patron-client relationship)로 발전해 왔다.

    대기업이 부품국산화 및 기술고도화를 추진한 것은 단지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핵심 부품을 일본 공급업자에 의존하면서 재화의 가치사슬에서 중간재를 납품하는 일본기업들의 부가가치는 높은 반면 가공조립을 하는 대기업 자신의 부가가치 비중은 크지 않았다. 대기업들은 중간재 납품하는 국내 기업들을 양성함으로써 비용을 낮추고자 했다. 대기업들은 일본 부품기업들로부터 입수한 중간재 설계도를 국내 중소기업들에게 제공하고, 생산과정의 공정혁신을 위한 지원 등 다양한 형태로 중소기업 성장을 유인해 온 것이다.

    이렇게 피후견인으로 성장한 중소기업들은 자체 기술역량이 크지 않았다. 중소기업들은 수요기업인 대기업이 요구하는 설계사양에 따라 중간재를 공급했기 때문에 수요기업의 요구에만 맞는 제품을 생산하는 관행이 굳어져 왔다. 중소기업 스스로 독자적인 기술개발, 설계능력 함양, 다양한 수요처 개척을 통해 공급하는 재화의 다양성을 높이기보다 수요독점적 지위를 지닌 선도기업의 요구에 맞는 중간재를 납품하는 관행이 굳어져 온 것이다.

    2000년대 이후 한국에서도 승인도 방식으로 부품을 공급하는 협력기업들이 성장한다. 지난 수십 년간 기술축적을 한 결과 자사가 공급하는 중간재에 대한 설계능력을 갖춘 기업들이다. 이들 기업들은 선도기업에게 엔지니어를 파견하여 선도기업 연구소에서 함께 제품개발을 하는 경우도 있고 자사 내에서 연구개발을 하는 경우도 있다. 전자를 게스트엔지니어링(guest engineering)이라고 한다. 선도기업은 최종재에 대한 설계를 하고 각각의 부품에 대해서는 대략적인 설계만을 제시하며 구체적인 설계는 협력업체에게 맡긴다. 협력업체들은 공급하는 중간재의 설계를 세부적으로 해서 시제품과 설계도를 수요기업에게 제공한다. 수요기업은 최종재에 부품을 결합시켜 실험한 결과 제품의 질 등을 확인하면 납품계약을 구체화 한다. 설계기술의 소유권은 협력업체에 있으며 수요기업인 선도기업은 제품개발 비용과 일정한 수익을 보장하는 수준에서 공급계약을 맺는다. 한국 주요 대기업의 협력업체들은 자체 설계능력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3. 비용연동가격제(cost plus pricing)과 약탈적 가치사슬

    자동차나 휴대전화, 조선 등 한국의 주력 수출 상품의 가치사슬의 특징은 제품개발, 연구개발투자, 최종재의 조립가공, 마케팅 등은 선도기업이 담당하고 부품은 계열사나 협력중소기업으로부터 공급받는다. 앞 절에서 보았듯이 납품 받는 부품 중 부가가치가 큰 중간재의 경우 자회사를 통해 조달하는 반면 상대적으로 부가가치가 적고 기술수준이 높지 않은 중간재는 협력중소기업으로부터 납품 받는다. 선도기업들은 자회사를 통해 핵심 중간재를 매입함으로써 공급라인의 불확실성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있으며 행여 있을 수 있는 거래의 불확실성을 제거했다. 뿐만 아니라 여타 중간재를 공급하는 협력중소기업들을 공급네트워크 내의 위계적인 질서에 편입시킴으로써 이들 조직을 준 내부조직과 같이 관리할 수 있었다. 선도기업들은 협력중소기업들에게 중간재 납품시장을 제공하고, 기술지원을 해 왔을 뿐만 아니라 성장의 유인책을 제공함으로써 폐쇄적인 공급라인을 유지할 수 있었다. 가치사슬은 위계적이고 폐쇄적인 공급라인을 통해 구축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공급구조는 비록 선도기업의 성장이 협력기업의 성장을 유인하는 측면이 있었지만 선도기업과 협력중소기업 간의 구조적 격차를 심화시키고 약탈적인 가치사슬을 정착시켰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협력중소기업들이 특정 선도기업에만 납품하는 구조 속에서 수요 독점적 지위를 지닌 선도기업들과 협력기업들 간의 구조적 불평등 관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협력중소기업들은 주거래 기업 외에 다른 수요처를 개척하지 못했으며, 선도기업의 매입거래가 기업 존속 및 성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기 때문에 선도기업의 부당한 권력행사인 일방적인 단가인하(cost reduction)나 기술탈취 등에 대해 적절하게 대응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제조업 선도기업들은 협력중소기업과의 납품단가를 결정함에 있어 비용연동가격제(cost plus pricing)를 적용한다.(5) 비용연동가격제란 중간재의 납품가격을 제조원가에 일반관리비, 연구개발비, 이익 마진 등을 가산하여 가격을 결정하는 방식을 일컫는다. 선도기업들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위해 중간재를 공급받을 때 거래관계를 유지해온 공급기업들에 새로운 발주를 하는데, 중간재의 계약기간 중이라도 비용변동요인이 발생하면 납품가격을 재조정하는 방식이다.

    이는 미국과 같은 서구에서 일반화된 고정가격제와는 큰 차이를 보여준다. 미국 등에서 발달된 시장형태의 가치사슬이나 모듈형 가치사슬에서는 중간재를 공급하는 공급기업과 수요기업 간에는 대등한 계약관계가 성립하며 계약기간 중에는 납품가격이 변동하지 않는다. 납품 단가를 인하해도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될 시점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단가조정을 한다는 계약 하에서만 가격조정이 이뤄진다. 반면 비용연동가격제 하에서는 비용변동 요인이 발생하면 수시로 납품단가를 협의 하에 변동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고정가격제와는 차이가 있다. 비용연동가격제 하에서는 납품단가는 조정되지만 협력기업에게 보장된 마진폭은 일정하게 유지된다. 앞에서 보았듯이, 한국의 선도기업들은 중간재를 공급하는 중소기업들에게 특정한 제품 사양, 설계도 등을 제시하고, 기술 지원을 하는 등 장기적인 계약관계를 유지해왔기 때문에 주요 협력기업의 생산 공정을 잘 알고 있으며 비용에 대한 정보가 축적되어 있다. 이와 같은 정보를 토대로 납품가격을 협상한다.

    <표 3>은 자동차 업종에서 거래단계별 납품가격 결정식이 제시되어 있다. 1차 협력기업의 납품단가 계산에는 연구개발비가 포함되어 있지만 2차, 3차 협력기업에는 빠져 있다. 1차 협력기업의 경우 선도기업이 상세설계 도면을 제시하고 그에 따라 부품을 제조만 해서 공급하는 대여도 방식의 공급기업과 선도기업의 부품 설계는 최종재의 사양에 맞춰 개괄적인 것만을 제시하고 세부설계는 협력기업에게 맡기고 사후적으로 승인하는 승인도 부품 방식의 공급기업 간에 원가계산에서 연구개발비 인정방식에 차이가 난다. 전자의 경우 원가에 포함된 연구개발비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다. 발주를 하는 선도기업이 부품의 구체적인 부분을 모두 설계해서 제조만을 공급기업에게 의뢰하기 때문에 공급기업이 설계 능력 향상을 위해 연구개발투자를 할 유인이 상대적으로 적다. 승인도 부품 제작에서는 협력기업의 설계능력, 제품혁신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연구개발투자가 필요하며, 이를 납품가격 책정에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표>에서 보듯이 이익마진은 가공비와 일반관리비와 비례하여 책정된다.

    이와 같은 가격제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선도기업은 공급기업이 납품하는 중간재의 원가를 정확히 계산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비용부분의 가격변동이 있을 때 이를 납품단가에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원자재의 가격변동으로 수입가격이 상승하면 이는 비용인상이 발생했기 때문에 납품단가는 상승할 수 있다. 석유가격 하락으로 비용이 인하되는 상황에서는 공급단가가 하락한다. 반면 계약기간 중 인건비의 상승은 원가상승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인건비 상승은 비용절감 노력을 통해 해결해야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 점에서만 보아도 비용연동이 비대칭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공급기업이 직면하게 되는 모든 비용 상승 요인을 가격책정에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원자재 가격 인상 같은 불가피한 측면만 가격책정에서 고려하는 대상이다. 또한 수요기업이 공급기업이 납품하는 중간재의 원가파악 능력이 있어야만 비용연동가격제가 제대로 작동한다. 공급기업의 공정 과정에 대한 지식, 기술혁신 정도에 대한 파악능력이 원청기업에게 요구된다.

    문제는 선도기업의 원가파악 능력은 협력기업의 기술력이 향상되면서 점차 약화된다는 점이다. 비록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모듈형의 위계적인 가치사슬 구조에 편입되어 있다 해도 협력기업들의 기술력, 노하우, 숙련의 축적이 많이 이루어져 왔다. 이는 중간재 공급방식에서 승인도 부품이 확산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선도기업은 협력기업이 부품설계를 사후적으로 승인하기 때문에 협력기업의 제품개발 능력, 연구개발 능력이 중요하다. 승인도 부품이 확산되면 선도기업들은 이 부품의 제작을 위한 실제 원가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할 수 있다. 이 경우에 선도기업들은 대응하는 방식은 정기적인 단가 인하이다. 협력기업들이 원가 정보를 누락하는 식의 기회주의적 행동을 통제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일률적으로 단가를 인하하는 것이다. 대기업들은 주기적인 단가인하를 통해 시장경쟁에서의 우월한 지위를 확보하고 경기변동에 따른 불안정 요인을 원가삭감을 통해 중소기업에게 전가함으로써 협력기업들을 경지변동의 완충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선도기업의 위험을 협력사에 분담시키는 이와 같은 가격체계는 위험분담율 결정의 자의성과 일방성으로 대기업의 신뢰 훼손과 협력사의 수익성 악화를 유발할 수 있다. 선도기업들은 석유가격 하락과 같은 비용감소 국면에서는 이를 단가 하락에 100% 반영하는 반면 재료비의 상승이 발생했을 때는 납품가격에 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선도기업들은 비용인상요인 발생 시 일부분만 이를 납품단가에 반영하고 나머지는 협력기업의 원가절감 노력으로 해결하도록 한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비대칭성은 가치사슬 내부에서 선도기업과 공급기업의 비대칭적 권력구조가 반영된 것이다. 자동차산업의 사례를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표 3>는 자동차 산업 선도기업과 협력사의 원가구성을 보여준다. 선도기업은 매출액 100이고 영업이익률 10이며 협력사의 부품 납품가격은 50이다. 협력사의 부품 구입비는 30이며 제조원가는 48, 영업이익은 2이다. 선도기업이 원자재가격 상승 시 납품단가 반영율 25%, 하락시에는 납품가격 반영률 75%이라고 하자. 원자재 가격이 10% 상승하면, 납품단가에는 25% 반영하여 납품 단가는 50.75가 되지만 48이던 제조원가는 51이 되기 때문에 협력중소기업은 적자 상태가 된다. 공급단가가 0.75 상승해도 선도기업의 영업이익은 10에서 0.75 감소함으로써 9.25가 된다.

    협력중소기업의 원자재 구입비가 10% 하락하면 이 하락폭의 75%를 반영하여 납품단가는 2.25 감소하여 47.75가 된다. 이 경우 협력기업의 제조원가는 45로 감소하기 때문에 개당 영업이익은 2.75가 되고 영업이익률은 5.5%가 된다. 반면 대기업의 영업이익은 개당 12.25이고 영업이익률도 12.25%가 된다. 협력기업의 원자재 구입비가 감소할 때는 그 감소분이 선도기업의 수익률을 크게 개선하고 협력기업의 원자재 구입비가 상승할 때는 그 비용 상승의 부담을 협력기업이 더 많이 지게 되는 것이다. <그림 3>은 이와 같은 변화를 그림으로 보여준다. 원재료 가격변동이 납품단가에 반영되는 비율이 비대칭적일 때 선도기업과 협력기업이 수익배분 및 비용분담이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준다.

    가로축은 원자재의 가격변동을 보여준다. 가로축의 음의 값은 원자재 가격하락을 의미하는 반면 양의 값은 원자재 가격 상승이다. 위의 실선과 점선은 대기업의 이익을 보여주는 반면 아래 실선과 점선은 협력사의 이익을 보여준다. 중간재를 생산하는 협력기업의 원자재 가격하락 시 선도기업들은 이를 제품단가에 크게 반영함으로써 공급단가를 낮추게 되고 그 결과 대기업의 수익폭은 크게 증가한다. 반면 중소기업은 원가절감으로 인한 수익을 대기업보다 훨씬 적게 누린다. 원자재 가격하락률이 커질수록 선도기업과 협력기업의 수익의 격차는 확대된다. 2·4 분면 검은 실선과 붉은 실선의 차이가 왼쪽으로 갈수록 커지는 것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중간재의 원자재 비용이 상승하게 되면 대기업들은 원자재 상승분의 25%만 가격인상에 반영하기 때문에 협력기업들은 원가상승에 준하는 만큼 납품단가를 인상할 수 없다. 위의 예에서는 원자재 가격이 10%만 상승해도 협력중소기업의 영업이익은 음의 값을 갖게 된다. 협력기업 원자재 가격 상승폭이 커질수록 협력기업이 부담하는 비중은 커진다. 원자재 가격 상승에도 불구하고 선도기업의 이익 하락폭은 매우 작은 반면 협력기업의 비용상승은 훨씬 크다.

    선도기업이 시장에 공급하는 최종재의 가격 변동에서도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최종재의 가격이 하락하면 선도기업은 이를 협력중소기업에게 일부 전가할 수 있으므로 선도기업은 가격하락 충격을 완화할 수 있다. 반면 최종재의 가격이 상승할 경우 상승분은 모두 선도기업의 수익률 개선으로 나타난다. <도표 5>에 따라 최종재의 가격하락이 10%이면 최종재 가격은 90이 된다. 이 경우 최종재 가격 하락률의 50%인 5%를 협력기업 납품단가 하락률에 적용하면 협력기업의 납품단가는 50에서 47.5로 변한다. 협력기업의 공급단가가 48이므로 공급기업은 개당 -0.5의 적자를 떠안는다. 선도기업은 10의 최종재 하락 액 중 2.5를 협력기업에 전가하고 7.5를 자사가 분담하는 것이다. 이 경우 선도기업의 제조원가는 87.5로서 개당 2.5의 흑자를 기록한다.

    <그림 4>는 최종재의 가격 변동이 선도기업 및 협력기업의 영업이익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준다. 가로축은 최종재의 가격변동율을 보여주며 세로축은 선도기업과 협력기업의 영업이익을 보여준다. <그림 4>은 최종재 가격하락률의 50%를 협력중소기업의 납품단가 하락에 반영한다는 가정 하에 그려진 것이다. 그림에서 보듯이 최종재의 가격하락률이 커질수록(가로축의 왼쪽으로 갈수록) 협력중소기업의 영업이익도 줄어든다.

    <그림 4>에서 보듯이 최종재의 가격이 하락하면 선도기업들은 그 부담의 일부를 협력기업에게 전가시켜 가격하락으로 인한 수익감소를 완화시킬 수 있다. 물론 <그림>에서 보듯이 최종재의 가격 하락률이 커지면 선도기업의 적자폭은 커진다. 협력기업이 가격하락폭만큼 부담을 떠안는 것도 아니다. 선도기업은 최종재 가격하락으로 인한 위험을 흡수함으로써 협력기업이 직면하게 되는 위험의 일부를 완화하는 기능도 담당한다. 선도기업이 최종재 가격하락의 충격을 협력기업에게 완전히 전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 가로축 오른편에서 보듯이 최종재의 가격이 상승하면 협력사의 이익은 납품 계약 시 약속한 마진만 보장한다. 가격상승으로 인해 발생하는 수익은 모두 선도기업에 귀속된다. 최종재의 가결하락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에 대해서는 협력기업에게 일부 분담시키지만 가격 상승으로 인한 이익이 커지면 그 성과는 올곧이 선도기업에게 귀속된다. <그림 4>의 제1분면에서 보듯이 최종재의 가격상승 시 선도기업 수익은 가격 상승률에 비례하여 상승하지만 공급기업이 추가적인 이익을 누릴 수 있는 기회는 없다. 이렇듯 비용연동가격제 하에서는 선도기업의 대규모 이익실현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은 기본적인 이익마진만 얻을 수 있다.

    <그림 5>와 <그림 6>은 비용연동가격제 하에서 자동차산업 협력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을 거래단계별, 기업규모별 보여주고 있다. <그림 5>는 자동차산업 1차 협력기업 영업이익률 추이를 보여준다. 자동차산업 협력업체 영업이익률 평균은 4.5%이다. 그런데 협력업체를 규모별로 추정해 보면 1000인 이상 대기업의 경우 영업이익률이 5%~6% 내외로 움직인다. 그러나 자동차 산업 1차 협력업체의 대부분이 포함된 100-1000인 이하 기업의 영업이익률은 3.5%~4.5% 포인트 내외에서 변동한다. <그림 6>은 2차 협력업체의 영업이익률 추이를 보여준다. 2차 협력기업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2.2%포인트이다. 대부분의 협력업체가 포함된 1000인 이하 기업의 경우 1%~2% 포인트 내외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1000인 이상 대기업의 경우도 3% 포인트 내외에서 움직이고 있다. 1차 협력업체와 2차 협력업체의 영업이익률도 뚜렷한 계층성을 띠고 있다. 이와 같은 결과는 선도기업-1차 협력기업-2차 협력기업의 계층적 거래네트워크 하에서 원가-가격 책정 방식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비용연동가격제 하에서 거래 및 수익의 계층성, 위계성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계속)

    [각주] 

    1. 이 글은 필자의 개인작업이 아니라 2013년 이후 부경대SSK 사업단의 연구진들이 공동으로 구축한 데이터베이스와 연구 성과를 활용한다. 또한 홍장표·하봉찬·김종호 『대중소기업간 동반성장 문화 확산을 위한 창조적 동반성장 모델 개발』 (대중소기업 협력재단, 20018)과 홍장표·장지상·김종호, 『한국 제조업 생태계 경쟁력 제고를 위한 대중소기업 공생적 발전방안』(서울사회경제연구소, 2015)에 크게 의존하고 있음을 밝혀둔다. 두 책자 모두 미발간 연구서이다. 이 글은 부경대 SSK사업단의 공동작업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글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필자에게 있다.

    2. 남종석, “대중소기업간 거래관계와 기업유형별 경영성과 분석 : 생산성, 성장성, 수익성을 중심으로” 조성재 외, 『수득불평등과 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전방위적 제도개선 방안』, 한국노동연구원, 2018, pp. 114-124.(미발간)

    3. 터널링효과는 원래 물리학에서 전자가 장벽을 통과하는 것을 일컫는 개념이다. 경제학 및 경영학 논문에서는 관계사로 특정 계열기업의 자원이 이전되는 것을 말한다.

    4. 한국기업데이터(주)의 데이터베이스는 “기업 간 거래 네트워크 분석에 필수적인 판매처별 판매액과 재무정보를 수록하고 있다.” 필자가 속해 있는 부경대SSK산업생태계 연구단은 제조업, 유통업, 건설업 및 지식서비스(통신 및 시스템통합) 산업을 14개 업종(식음료, 섬유의복가죽, 석유화학, 철강금속, 전자, 전기 장비, 기계, 자동차, 조선, 전력가스, 건설, 유통, 통신, 시스템통합)으로 분류하고 2011년, 2015년 재무정보에 기초하여 거래네트워크를 추적했다. 선도기업의 매입거래선(inbound)을 따라 거래네트워크를 추적한 결과이다. 각 업종별로 선도기업에 납품하는 기업을 1차 협력기업, 1차 협력기업에 납품하는 기업을 2차 협력기업, 2차 협력기업에 납품하는 기업을 3차 협력기업으로 하여 거래네트워크를 추적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2015년도 1차 협력기업이면서 2011년도 1차 협력기업이나 2차협력기업면 1차 협력기업, 2015 2차 협력기업이며 2011년도 2차협력기업이거나 3차 협력기업이면 2차 협력기업으로 분류했다.

    5. 홍장표 외(2011), pp. 3-6.

    필자소개
    경남연구원 연구위원. 경제학 박사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