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조 운동이 직면한 현실,
    한국 산업생태계 구조적 특징과 위기②
    세계경제 정체, 제조업 위기···계급적 대응 모색해야
        2019년 04월 05일 10:3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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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진보평론] 2019년 봄호에 실린 남종석 씨의 글이다. 진보평론 편집부와 필자의 동의를 얻어 레디앙에 2회에 나눠 게재한다. 한국경제 산업생태계의 구조적 특징에 대한 연구 분석이며, 이런 과정을 통해 경제에 대한 진보적 대안을 어떤 방향에서 구체화시켜 나갈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는 게 필자의 문제의식이다. 논문이 긴 분량이어서 나누는데, 1회 분량이 조금 길다. 경제에 대한 구체적 대안과 접근을 고민하는 이들이라면 다소 길더라도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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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산업생태계 구조적 특징과 위기① “재벌대기업과 협력중소기업, 동반성장과 약탈 사슬”

    4. 한국 제조업의 위기와 협력중소기업

    한국 산업생태계는 시장성장을 이끄는 선도기업과 이에 납품하는 협력기업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 절에서 필자는 한국 산업생태계에서 선도기업들은 주요 계열사를 통해 핵심부품을 납품받으면서 동시에 비계열사 협력중소기업으로부터도 중간재를 납품받고 있음을 보였다. 이 경우 선도기업들은 중간재를 공급하는 비계열사 협력기업에 대해 우월한 협상력을 통대로 중간재 공급가격을 낮춰 높은 수익성을 추구할 수 있음을 보였다. 또한 선도기업들은 세계시장의 불확실성으로부터 초래되는 위험을 일부분 협력기업에 분담시킴으로써 협력기업을 경기완충의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음을 보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선도기업들은 협력기업들에게 안정된 중간재 시장을 보장함으로써 협력기업을 성장시키는 측면도 존재했다. 현대자동차나 삼성전자 등 한국의 주력대기업들은 상대적으로 낮은 중간재 가격으로 인해 가격경쟁력을 갖는 반면 경쟁하는 선진국 기업들에 뒤지지 않는 제품경쟁력을 통해 세계시장에서 점유율을 꾸준히 확대해 왔다. 이는 다시 중간재를 납품하는 협력기업들의 성장을 유인했다. 협력기업은 선도기업이 요구하는 부품을 상대적으로 낮은 단가에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다면 꾸준한 시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한국의 대중소기업간 거래는 단기적 시장계약의 형태를 띠기보다 장기적인 관계적 거래 관행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협력기업들의 수익률은 선도기업에 비해 낮았지만 매출액성장률은 선도기업 성장률과 같은 궤적을 그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관행은 협력기업들의 혁신성과 세계시장에 대한 적응력을 낮추는 결과를 초래했다. 협력기업들은 선도기업이 요구하는 사양에 맞춰 중간재를 공급하면 되었기 때문에 공정혁신을 통해 제품 단가 인하를 위한 노력은 충실히 수행했지만 제품개발을 통해 새로운 시장 개척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세계 시장의 개척은 선도기업의 과제였고 협력기업들은 그 선도기업의 경쟁력에 의존하여 매출액을 증가시키고 기업규모를 확대하고자 했다. 선도기업들은 자사의 주요 협력기업들에게 다른 기업들에게 납품하는 것을 제한함으로써 그와 같은 폐쇄적인 생태계를 더 강화시켰다.

    이는 선도기업에 대한 협력기업의 의존도를 높이고 협상력을 더욱 낮추는 결과를 초래했다. 제품개발 능력의 부재와 독립적인 수요처를 확보하지 못하는 협력기업들은 기업의 생존을 선도기업의 수요에만 더욱 의존하도록 만든 것이다. 한국제조업의 고도성장기에는 이와 같은 산업생태계는 매우 효율적으로 작동했다. 수출주도 대기업들은 산출을 꾸준히 증가시켰고 협력기업도 동반 성장했다. 선도기업의 수익성이 높고 선도기업에 소속된 노동자들의 임금이 더 빠르게 상승했지만 협력기업들의 생산성도 꾸준히 향상되었고 실질임금도 증가했다. 한국은 OECD 국가들 가운데 노동생산성 상승률, 총요소생산성 상승률, 실질임금 상승률이 가장 높은 국가군에 속했다.(6)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한국 경제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다. 한국의 총수요 구성요소 중 수출비중은 43%로 주요 선진국들 중 가장 높다.(7) 중국은 총수요에서 수출비중은 20% 내외이며 일본은 15% 내외이다. 총수요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한국이 압도적으로 높다. 높은 수출 의존도를 지닌 경제구조이기 때문에 세계수요의 감소는 경제성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림 7>와 <그림 8>은 각각 세계산출에서 세계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의 추이와 한국 주력 제조업의 산출 추이를 보여준다. <그림 7>에서 보듯이 1980년대 중반 이후 꾸준히 성장하던 세계무역비중은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하락하고 있다. 2009년 무역비중은 대폭 하락했다가 2010-2011년 회복되지만 그 이후 다시 하락한다. <그림 8>은 한국 자동차, 전자, 조선, 금속철강, 기계업종의 산출추이다. <그림 8>에서 보듯이 2009년 이전 한국 제조업은 지속적으로 상승해 왔다. 그러나 2010년 이후 주력 제조업의 산출은 정체되거나 감소하는 국면으로 진입한다. 전자업종의 경우 꾸준히 산출 성장을 기록하고 있지만 철강산업이 포함된 1차 금속은 정체하고 있고 조선은 붕괴 수준으로 하락했다. 자동차의 경우 2015년 하락국면으로 진입했으며, 지금도 2019년 현재도 그 경향이 변하지 않고 있다.

    세계수요 감소에 따른 산출 감소는 한국 제조업의 장기적 경기하강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그림 9>과 <그림 10>은 기업유형별 매출액성장률 추이와 영업이익률 추이를 각각 보여주고 있다. 기업유형은 거래단계에 따라 선도기업, 1차 협력기업, 2차 협력기업이다. 선도기업은 수출주도 대기업 297개사이고 협력기업은 이들 대기업에 납품하는 기업들이다. <그림 9>에서 보듯이 2010년 이후 한국의 모든 유형의 기업들은 매출액상승률은 하락한다. 그 가운데서도 각 업종의 주력 선도기업들의 매출액성장률 감소가 가장 크다. 대기업들은 세계경쟁에 노출되어있으며, 세계수요의 변화에 따라 산출성장률이 크게 변한다.

    <그림 9>는 제조업과 비제조업 기업이 포함되어 선도기업 매출액성장률이 최하점을 기록한 2014년과 그 이후도 매출액성장률은 양의 값을 보여주지만 제조업만을 분리시켜 보면 제조업 선도기업의 매출액상승률은 음의 값을 보인다. 제조업 산출 감소는 2016년까지 지속된다. 반면 비제조업의 경우 해외수요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매출액성장률이 음의 값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독립기업의 경우 2008년까지 협력기업들보다 매출액성장률이 높게 나타나지만 2008년 경제위기 이후 매출액성장률은 협력기업의 그것보다 더 크게 하락한다.

    기업유형별 영업이익률 역시 2010년 이후 하락한다. 그 가운데 선도기업 영업이익률 하락이 가장 크다. 이는 세계시장, 가격변동에 가장 민감한 기업이 선도기업임을 보여준다. 반면 협력기업들의 영업이익률 하락폭은 선도기업에 비해 크지 않다. 이는 선도기업이 세계시장의 위험에 더 크게 노출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독립기업의 영업이익률은 협력기업들의 그것보다도 더 낮다.

    <그림 11>와 <그림 12>는 유형자산 투자율 추이를 보여준다. <그림 11>에서 보듯이 선도기업 및 협력기업의 투자율도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그림 12>은 제조업 투자율 추이이다. 2012년 이후 제조업 투자율은 0.1 내외에서 변동하고 있다. 투자율이 0.1%대에서 움직인다는 것은 선도기업의 경우 대체투자 즉 감가상각만 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는 한국 제조업 역사에서 매우 예외적인 상황이다. 다른 국가들에 비해 한국의 투자율은 여전히 높지만 장기추세에서 투자율 하락경향은 뚜렷하다. 투자율 하락은 기업의 생산성 상승을 정체시키고 장기적으로 기업경쟁력을 약화시킨다. 한국 제조업 전체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제조업 중 2010년 이후 가장 큰 산출 감소를 겪은 업종은 조선업이다. <그림 7>에서 보았듯이 조선업의 붕괴는 매우 컸으며 조선 3사 중 대우조선은 수년간 산업은행의 공적자금 투자를 통해 유지되다 최근 현대중공업에 매각결정을 했다.(8) 조선업 주요 3사(현대중공업, 대우조선, 삼성중공업)의 존재마저도 세계시장에서 과잉공급 수준에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산업의 경우 한국 중간재 시장에서 80%의 부품을 구매하는 현대자동차의 매출감소가 협력기업들에게는 가장 큰 시장 위험요소이다. 더 중요한 것은 자동차산업의 구조변동이다. 지난 2015년 폭스바겐의 디젤게이트 이후 유럽의 환경기준은 대폭 강화되었으며 이 기준을 넘어서려면 전기자동차 등 미래자동차에 투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내 자동차 협력기업 가운데 미래자동차에 필요한 부품생산을 체계적으로 준비하는 기업이 거의 없다. 기계업종은 원전 생산 감소와 조선 산업 및 조선 기자재 수요 감소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업종이 되었다. 기계업종은 군수수요가 없었다면 더 큰 붕괴에 직면했을 것이다.

    2018년 제조업 산출은 크게 회복되었지만 이는 반도체 매출증가가 크게 반영된 결과이다. 그러므로 가중치를 반영한 제조업 총산출은 증가했지만 개별기업의 산술평균 매출액증가율은 여전히 높지 않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특정 업체의 영업이익이 평균을 크게 증가시키기 때문에 대기업 영업이익률이 개선되었지만 개별기업들의 경우 대기업-중견기업조차 제조업은 여전히 상황이 좋지 않다. 이는 기업의 이자보상배율 통계를 보면 알 수 있다. 이자보상배율이란 기업의 영업이익을 총이자비용으로 나눈 값이다. 이자보상배율이 1보다 적으면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는 기업이다. <표 5>에서 보듯이, 제조업 기업 중 영업이익으로 이자부담도 하지 못하는 중소기업이 50%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추세적으로 보아도 그렇다. 중소기업의 경우 2015년 이후 이자보상배율 평균이 꾸준히 하락했으며 2018년 2.9%로 가장 낮다. 반면 이자보상배율이 1%미만 기업 비중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한국중소기업의 위기는 현재진행형이다.

    한국 중소기업의 위기는 수익성을 개선시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매출액성장률이 멈추면서 직면하게 된 위기이다. 호황시절 수익성 개선을 통해 자본축적 및 현금흐름을 개선한 상황이라면 위기에 대한 대응능력을 기를 수 있지만 한국 중소기업들은 그럴 여력이 없었다. 현재는 협력기업들만이 아니라 수출주도 대기업마저 매출액성장률이 정체한 국면에서 선도기업들은 협력기업들에게 중간재 시장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 특히 조선산업과 같은 구조조정에 직면한 업종이나 시장변동에 따른 구조조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자동차산업 협력업체들이 문제이다. 이들 업종에서의 구조조정은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

    2010년대 한국 제조업의 위기는 그 이전 단기적인 위기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국 자본주의가 음의 성장을 했던 1980년, 1998년, 2009년에도 제조업은 성장하고 있었다. 구조조정 이후 한국 제조업은 곧바로 경제위기에서 회복되었다. 1982년, 1999년, 2010년 경제성장률은 매우 높았다. 그러나 2014년 한국 제조업은 최초로 음의 성장을 한다. 중화학공업의 과잉투자도 아니고 외환위기 국면도 아니며 금융위기도 아닌 시점에서 음의 성장을 기록했다. 이는 세계자본주의의 저성장과 연동된 위기이다. 한국 대기업들도 항구적인 저성장 체제에 적응해야 할 상황이다. 세계 총수요는 정체되고 있으며 마컵률(mark-up rate)을 높여 독점지대를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다. 저가격 경쟁자가 세계시장에 꾸준히 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안정적으로 유지되던 대중소기업간 거래관계도 이제 근본적인 변화를 맞고 있다. 이는 한국 경제의 장기적인 구조조정을 예견한다. 2000년대 안정적으로 유지되던 제조업 일자리들이 2014년 이후 줄어들기 시작했다. 노동자운동에게 새로운 시기가 도래하고 있다.

    5. 나오는 말 : 제조업 위기와 계급적 대응

    좌파이론가들, 운동단체들의 고질적인 문제점은 늘 위기를 말해왔다는 점이다. 1990년대 한국 제조업이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갈 때도 진보진영 학자들, 운동단체들, 정세분석가들은 경제위기라는 말을 남발했다. 2000년대 이후에도 그런 경향은 반복되었다.

    그러나 데이터는 이를 증명하지 않는다. 1980년, 1998년, 2009년 한국 경제는 음의 성장을 기록한다. 그러나 제조업은 꾸준히 성장했다. 큰 구조조정이 있었지만 성장 동력은 약화되지 않았다. 1990년 이후 세계 제조업의 장기 침체 국면에서도 한국 제조업은 눈부신 성장을 했다. 이런 장기 성장 속에서도 진보진영은 늘 경제위기 담론을 퍼뜨렸다. 특정한 국면의 경제정세 하에서 성장의 침체는 있었지만 한국 제조업은 늘 그 과정을 성공적으로 극복했다. 그랬기 때문에 2010년 이전 한국 사회에서 ‘탈산업화’의 담론은 특별한 영향력이 없었다. 산출도 늘어나고 고용도 늘어나거나 꾸준히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빠른 성장과 추격 과정에서 재벌(기업집단)들이 구축한 공급 생태계는 큰 역할을 담당했다. 앞에서도 보았듯이 한국의 산업생태계는 선도기업-1차 협력-2차 협력기업으로 이어지는 공급체계를 갖추었고 1차 하청업체의 핵심은 재벌 계열사로 구축되어 있었다. 재벌들은 핵심부품을 계열사로부터 납품받는 구조를 정착시킴으로써 중간재 공급을 안정화시키고 공급가격을 낮게 유지했으며, 계열사 외 협력업체의 협상력을 매우 낮춰 관리했다. 이와 같은 공급체계는 한국 제조업 선도기업들이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했다. 중국, 유럽, 아시아로 확장된 글로벌 생산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선도기업들은 매우 빠른 시간에 현지 생산라인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도 이와 같은 공급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이와 같은 생산체제는 협력기업들의 독립적인 유통망 형성, 제품개발능력을 발전시키는 데 매우 소홀히 하도록 했으며 선도기업이 제공하는 중간재 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크게 높였다.

    지금까지 한국 노동운동은 임금상승을 비롯한 사업장의 노동환경 개선에만 큰 관심을 두어왔다. <그림 8>에서 보았듯이 한국 제조업은 1990년대부터 2010년까지 지속적인 성장세를 유지해왔으며 노동생산성도 지속적으로 상승시켰다. 2000년대 이후 한국은 OECD 국가 중 노동생산성상승률, 총요소생산성 상승률이 가장 빠른 국가였다. 노동조합운동은 사업장에서 임금인상 투쟁에 집중해 왔다. 생산성 상승하고 산출이 증가하니 임금이 인상하는 것도 당연했다. 노동조합 조합원들에게 기업은 성장하고 임금은 당연히 오르는 것으로 학습되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경쟁력 약화로 퇴출되는 기업이 존재했지만 서유럽과 미국 1970년대, 1980년대 이뤄졌던 광범위한 탈산업화와 제조업 몰락은 한국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제조업 도시가 몰락한 디트로이트의 풍경도, <나, 다니엘 브레이크>의 주인공 같은 이도 크게 주목을 받지 않았다. 그것은 산업이 몰락한 국가들의 현실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오면 한국 선도기업들, 수출주도 대기업들은 비약적으로 성장하면서 이에 고용된 노동자들의 지위도 크게 개선된다. 협력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실질임금도 상승하지만 대기업들의 임금상승률과 폭은 더 컸다. 그 결과 한국 사회에서 주요 쟁점으로 부상한 것은 노동자 내부의 임금격차였다. 대중소기업 간 임금격차,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간의 임금격차,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 제조업과 비제조업의 임금격차, 성별 임금격차가 그것이다. 더불어 임금격차의 확대는 계층간 소득 불평등을 강화시키는 핵심적인 이유가 되었다. 불평등에 대한 한국 사회의 관심과 민감도는 매우 높다. 노동자 내부에서도 그와 같은 인식은 크게 확산되었다.

    그러나 노동자 내부의 임금격차를 조정할 수 있는 기제는 없었다. 한국 노동운동은 무늬만 산별이지 실질적인 산별체계로 노동조건이 교섭되지 않는다. 노동자계급 내부의 임금격차를 조정할 수 있는 모멘텀은 지난 지 한참 되었다. 임금격차 확대는 노동자 운동 내부의 단결을 무색하게 한다. 이것은 제1노총인 공공운수노조와 제2노총인 금속노조의 단체교섭에서 공동 교섭안이 마련될 수 없는 핵심적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미 임금 격차가 너무 확대된 상태에서 공동교섭의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업종의 특성이 유사하고 개별 과업의 성격이 크게 다르지 않는 보건의료노조 등은 공동교섭안의 마련이 가능하지만 공공산별이나 금속노조의 경우 이는 거의 현실성이 없게 되었다. 제1노조와 제2노조의 산별 단결이 무화되면서 한국 노동운동의 응집력은 매우 약화된 상태이다.

    민주노총이 만들어졌던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였으며 산별교섭의 가능성은 높았다. 임금격차가 크게 벌어진 것도 아니었다. 당대 노동운동 지도부 일부와 지식인들은 산별체계를 공고히 하고자 하는 의지는 있었지만 노동운동의 구조는 그것을 실행할 만큼의 준비도, 역량도 없었다. 더군다나 민주당 정부 하에서 사문화 되어 있던 노동쟁의 민사상 손해배상 제도의 효력이 실질화되자 대기업 노동조합운동은 합법적인 파업 즉 자사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투쟁에 집중하면서 내부의 격차는 더 커졌다. 대기업은 빠르게 성장했고 소속 노동조합은 임금인상 투쟁을 통해 그 성과를 내실화 할 수 있었지만 중소기업은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동자운동이 직면하게 될 더 크고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 제조업이 항구적인 구조조정으로 진입하고 있는 경제적 현실이다. 현재의 위기는 딱히 한국 산업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세계자본주의의 정체와 경쟁 압력의 심화, 기업수익성 하락이 결합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시장의 한계 속에서 새로운 경쟁자, 진입자들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특히 한국 수출주도 산업 중 전자업종만 제외하고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기계, 철강금속 업종이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도 본격적으로 탈산업화-제조업 공동화 이야기가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이제 노동자운동은 실질임금 상승, 노동자 내부의 임금격차 해소라는 힘겨운 과제만이 아니라 산업 위기, 기업 위기의 속에서 어떤 대응을 해야 하는가를 스스로에게 심각하게 질문해 보아야 한다.

    한국의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임금인상 도구이자 민원해결 도구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다. 민주노총 사업장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임금은 오르는 것이고 노동조합 지도부의 역량은 얼마나 많이 임금을 올리느냐에 따라 평가 받았다. 그러나 이런 관행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 금속노조는 이제 조합원의 고용조건 개선이라는 단기적인 시야에서 벗어나 금속산별 산하 업종별로 산업현실을 분석하고 이에 맞선 산업정책과 노동조합의 계급적 요구를 고민해야 할 시점에 도달해 있다. 공공부분이나 서비스 분야 노동조합은 세계시장에 노출되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경쟁압력이 크지 않다. 제조업 산출물들은 교역재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세계 경쟁에 노출되어 있고 저비용 경쟁자들이 언제든지 한국 기업들의 시장을 빼앗을 수 있다. 이것이 장기적으로 누적되면 산업의 붕괴로 귀결된다.

    노동조합의 과제는 산업경쟁력을 유지하면서 노동자계급 내부의 연대를 새롭게 구축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노조 스스로 경영을 책임지겠다는 의지, 실력이 어느 때 보다 필요하다. 그런 능력을 함양해야만 제조업 위기, 기업 위기에 직면하여 노동자계급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

    <요약 글>

    필자는 이 글에서 2000년대 이후 대중소기업간 거래관계 중심으로 구축된 한국의 산업생태계의 구조적 특징을 분석하고 계층적 공급네트워크 하에서 가치분배가 어떻게 이뤄지는가를 보이고자 한다. 이 글은 한국의 대중소기업간 거래관계의 다층적인 면모를 보여줌으로써 한국 경제의 빠른 성장이 가능했던 제도적 조건과 그로부터 야기되는 고유한 모순이 무엇인가를 논한다. 마지막으로 한국 제조업의 위기를 살펴보고 노동운동이 직면한 현실은 무엇인가를 밝힌다.

    [각주] 

    6. OECD statistics, https://stats.oecd.org/ (2018. 12. 접속)

    7.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https://ecos.bok.or.kr/ (2019. 01. 접속)

    8. 산업은행은 유상증가 1조 5천억 및 운영자금 1조원을 지원할 뿐만 아니라 새롭게 출범하는 지주회사의 지분을 습득하는 조건으로 현대중공업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이는 산업은행이 대우조선 인수의 위험을 떠 분담하면서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을 인수하는 방식이다.

    필자소개
    경남연구원 연구위원. 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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