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라빚 말고 가계빚 걱정이 먼저다
    [정의로운 경제] 가계부채, GDP 대비 100% 넘어서
        2021년 04월 09일 01:3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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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기적으로 부풀려지는 나라빚 공포

    며칠 전 수많은 언론에서 나라빚이 드디어 국가경제규모를 뛰어넘었다면서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예를 들어 중앙일보는, 지난해 241조원 넘게 불어 1,985조원을 기록했다고 보도하면서 규모에서나 증가 속도에서나 역대 최고이고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라고 문제시했다.

    여기에 전문가들까지 가세한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같은 언론 인터뷰에서 “2025년이면 GDP 대비 부채(일반정부 부채 기준) 비율은 이미 60%를 넘어설 전망”이라며 “코로나19 이후 재정 건전성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대책을 정부가 서둘러 내놔야”고 걱정스런 충고를 덧붙인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우리는 지난해 코로나19 대응으로 부채가 늘어났다고 하더라도 GDP 대비 40~50퍼센트 사이로 알고 있었고, OECD 평균 110퍼센트에 비하면 아직 크게 우려할 수준이라는 말을 들어왔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도 한국은 확대재정을 할 여력이 있는 국가라는 조언도 여러 번 했다. 그런데 어떻게 갑자기 두 배가 뛰었던 것일까?

    국가부채가 100퍼센트를 넘었다는 주장의 황당함에 대해서 나라살림연구소 이상민 연구위원이 상세히 풀어서 이렇게 논평했다. “국가부채 지표는 D1(국가채무), D2(일반정부 부채), D3(공공부문 부채) 이렇게 세 종류”가 있는데 정부가 발표한 2,000조원 부채는 이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그냥 재무제표상 부채 총액’이라는 것이다. 이 부채총액에는 공무원이나 군인이 공무원 연금이나 군인연금에 돈을 납입하면 회계상으로 발생하는 연금충당부채가 포함된단다. “국가는 공무원나 군인이 납입한 돈에 일정부분을 보태서 나중에 줘야할 돈이니 부채로 인식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인데, 미디어가 이를 통상적인 부채와 섞어버리면서 국가부채를 과장했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일부 언론과 학계 등에서는 주기적으로 ‘미래세대의 부담’이라는 언사까지 동원하면서, 시민들의 사회안전망이나 복지를 위한 확장재정이 이슈가 될 때마다, 어김없이 나라빚의 위험성을 다양한 방식으로 과장해왔다. 이번에도 그 연장선에 다름 아니다.

    처음으로 GDP보다 커진 것은 가계부채다

    나라 빚의 위험성을 주기적으로 강조해오고 있는 미디어나 학계인사들이, 가계빚에 대해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조용한 기조를 유지한다. 지난 4월 8일 한국은행은 2020년 자금순환 동향을 발표했는데, 여기서 가계부채가 역사상 처음으로 2,000조원을 넘어서 GDP 대비 106.6퍼센트에 이르렀다. 이는 주요 선진국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인 것인데, 증가율도 9.6%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 뉴스는 과장된 나라빚 걱정이 조명받던 것과는 달리 그다지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림 자금순환표상의 가계 및 비영리단체 금융부채잔액(한국은행)

    대체로 미디어에서는 이같은 심각한 가계부채 증가를 외면하거나 아니면 부채뿐 아니라 자산도 함께 늘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위험성을 저평가한다. 물론 지난해 가계부채 증가와 함께 자산이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하여 4,000조원을 돌파했고, 그 결과 가계의 금융부채 대비 자산비율이 두 배를 넘긴 것은 사실이다. 특히 지난해 지분증권 및 투자펀드자산 증가율이 무려 37퍼센트가 증가하여, 2019년 720조원 규모에서 990조원까지 늘었다. 최근 1년 사이 주식계좌수가 3천만 계좌에서 4천만 계좌로, 주식투자인구는 600만에서 1천만 명으로 늘어난 사실과 부합한다.

    여기에는 부동산 투자나 주식투자를 위해 ‘영끌’로 빚을 늘린 것도 상당 정도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부채보다 자산이 더 많이 늘었으니 큰 걱정 안된다고 호언할 수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문제는 부동산이나 주식등의 자산가격이 현재 안정되게 유지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투기적 붐으로 가격상승이 계속되고 있지만, 거품이 꺼져 급격한 조정이 시작될 경우, 자산 대비 부채가 갑자기 커져 보이게 될 수 있고 곧 상환불능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빚을 얻어 증권투자를 하거나,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경우 위험은 한층 증폭된다.

    나라빚 줄이려다 가계빚 늘리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지난해 코로나19 재난에 따른 실업과 휴직, 영업 중지나 영업시간 단축 등 각종 경제활동 제한으로 인해서 거의 모든 계층이 근로소득과 사업소득이 줄어드는 것을 경험했다. 특히 하위 20퍼센트 소득계층은 지난해 근로소득이 2분기에 -17.9퍼센트, 3분기에 -11.2퍼센트, 4분기에 -13.6퍼센트 등 연속적으로 두 자리 수 감소를 기록했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전체 경상소득은 대체로 줄지 않고 전년 수준을 유지했다. 정부가 재난지원금 등으로 국가부채 증가를 감수하면서 공적지원을 확대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2분기 공적이전소득이 128.1퍼센트, 3분기 28.7퍼센트, 3분기 22.2퍼센트씩 각각 증가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공적이전이 있었기 때문에 특히 서민가정에서 추가적으로 빚을 덜 지면서 생활을 꾸려나가는 것이 가능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는 나라빚이 가계빚을 상쇄시킨 중요한 사례다. 어려운 재난의 시기에 나라가 추가적인 빚을 감당하면서 시민들의 사회안전망과 소득지원을 늘려나가면 가계부채는 덜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국가빚 걱정한다면서 재정지출에 인색하면 할수록 가계는 생존을 위해서 빚을 늘릴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게 된다.

    자 어떻게 할 것인가? 아직 코로나19 재난이 끝나려면 멀었다. 부분적으로 경제회복이 시작되고 있지만, 일부 수출기업과 온라인 플랫폼만 호황일 뿐 대부분은 여전히 회복을 느끼지 못하는 K자 회복이 계속되고 있다. 이 와중에 나라빚 걱정한다면서, 민생지원에 소홀하는 순간 가계빚은 계속 최고치를 경신할 것이고, 국가빚으로 나라가 흔들리기 이전에 가계빚으로 민심이 통째로 흔들릴 것이다. 나라빚 걱정에 가계빚을 외면할 것인가 아니면, 먼저 국민을 살리고 볼 것인가?

    필자소개
    정의정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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