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기후위기 시대, GDP 의미는?
    [에정칼럼] 새로운 시대엔 새로운 가치, 목표 필요
        2021년 04월 20일 09:0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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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한 해 동안 전 세계는 코로나19 사태로 전대미문의 시대를 겪었다. 그리고 2021년 현재 여전히 그 시대를 경험하면서도 그 너머를 상상하거나 기획하지는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에는 많은 것들이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대전환을 한때 이야기했지만, 이제는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기만이라도 바라는 수준이 되었다. 코로나19는 국제적인 협력이 선진국의 자국 우선주의에 얼마나 취약한 것인지를 재확인해줬고, 국가, 인종, 계급, 계층, 세대, 젠더 간 불평등이 이전보다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것을 환기해줬다. 오랜 시대는 저물어가는데, 새로운 시대는 오지 않고 있다.

    ‘추월’과 ‘회복’의 기준은 여전히 GDP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가치와 목표가 필요하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 국가들은 여전히 과거의 낡은 가치와 목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특히 한국이 더 그런 것 같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로 올라섰고 1인당 국내총생산(GDP)도 처음으로 이탈리아를 추월한 것으로 나타났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7일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경제 중대본) 회의 겸 뉴딜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선진국 중 한국을 비롯한 3개국만이 올해에 코로나19 사태 이전 수준의 경제 규모를 회복할 것이라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세계경제전망을 소개했다. 한국은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다른 국가를 ‘추월’했고, 올해는 ‘회복’할 것이라는 소식이다. 그렇다. 추월과 회복의 기준은 여전히 GDP다.

    GDP의 탄생,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

    국가별 GDP 총액과 순위(IMF) 박스 안은 루즈벨트

    GDP는 거시경제학과 함께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을 계기로 탄생했다. 대공황 직후인 193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Roosevelt)는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뉴딜(New Deal) 공약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서는 연방정부의 적극적인 경제 개입이 전반적인 사회 전체의 발전 정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아야 했다. 하지만 그 당시 정부가 확인할 수 있는 정보는 주가, 철도 운송량, 철강 생산량 등 산재된 통계뿐이었다. 전반적인 경제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지표가 없었기 때문에 경제가 전체적으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추측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미국 상무부는 국가 경제의 흐름을 보다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경제학자 사이먼 쿠즈네츠(Simon Kuznets)에게 GDP 통계를 개발하도록 하였다. 쿠즈네츠는 1934년 ‘국민소득, 1928~32.’ 보고서를 미국 의회에 제출했고, 이 보고서는 루즈벨트 대통령의 2차 뉴딜 정책의 기반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국민계정은 대공황과 함께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전쟁을 준비해야 할 필요성에서 나왔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년 뒤인 1940년,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는 저서 ‘전비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서 국가가 전쟁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 국가의 생산능력 지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국가의 생산능력에 정부의 지출 항목까지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1930년대 말과 1940년대에 국민계정 전문가들은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케인스의 개념을 받아들여 정부 지출이 직접적으로 국가의 산출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보기 시작했다. 근현대 경제사상의 역사상 최초로 정부 지출이 중요성을 인정받은 것이었다.

    케인스의 개념은 빠르게 받아들여졌고 GDP 추계 방식에 대한 최초의 세계 표준지침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국제연합(UN)은 1953년에 미국과 영국의 방식을 상당 부분 반영한 ‘국민계정 체계’(System of National Accounts, SNA)를 처음으로 발간했고, 이후 국제표준으로 확대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GDP는 전 세계 국가들의 경제가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보여주는 핵심지표로 자리잡게 되었고, 전 세계적으로 경제분석과 정책 결정에 중요하게 활용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1957년 한국은행이 국민소득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래, UN에서 발표한 국민계정기준에 따라 GDP 등을 작성해 발표하고 있다.

    기후위기와 불평등, 삶의 질 반영하지 못하는 GDP

    하지만 GDP가 기후위기나 환경오염, 사회·경제적 불평등, 여가 및 건강 등 인간의 행복이나 삶의 질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지표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기후위기에 따른 기상 이변으로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재해가 발생하고 있고 그 피해액 또한 막대하다. 공장에서 대기나 수질을 악화시키는 공해 물질이 방출되면 인근 주민들의 삶의 질이 나빠지지만 GDP에는 드러나지 않는다. 독감이 유행해 의료비 지출이 늘어나면 건강 수준이 나빠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GDP는 증가할 수 있다. 또한 GDP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경제활동만을 포함하기 때문에 자원봉사, 가사노동 등 비시장적 생산활동을 포함하지 않는다. GDP는 또 사회적인 부가 과연 사회구성원에게 고르게 분배되고 있는지 알려주지 않으며, GDP 증가가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도 아니다.

    2007~2008년 경제위기 이후 탈세계화, 기후위기, 디지털화, 불평등 확대 등 다양한 종류의 불확실성이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지만, GDP는 이러한 변화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코로나19는 이러한 변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GDP에 대한 대안으로 제기된 지표 중 가장 오래된 것은 1990년부터 공표되기 시작한 유엔개발개획(UNDP)의 ‘인간개발지수(Human Development Index, HDI)’다. HDI는 국가 간의 사회진보 수준 및 삶의 조건을 비교하기 위해 GDP뿐만 아니라 자산, 교육여건, 기대수명 등 다양한 요소를 포괄하고 있다.

    무수히 많은 GDP의 대체 및 보완지표들

    2007년에는 유럽위원회, 유럽의회, 로마클럽,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50여 개국 대표들이 모여 ‘GDP를 넘어(Beyond GDP)’서는 사회성장 개념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는 GDP 통계의 범위를 벗어나 삶의 질, 주관적 행복, 웰빙, 지속가능한 발전 등을 포괄하여 경제성과와 사회발전을 측정하려는 시도나 연구, GDP 대체 및 보완지표의 개발 등을 통칭한다.

    2008년 프랑스 정부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와 아마티아 센(Amartya Sen), 장 폴 피투시(Jean-Paul Fitoussi)에게 요청해 설립된 ‘경제 실적과 사회진보의 계측을 위한 위원회’도 보고서를 통해 GDP가 경제적 성과나 사회적 성장을 측정하는 지표로 한계가 있음을 지적했다. 이들은 미래 세대를 위한 광의의 자본(산업, 환경, 자원)의 지속가능성을 강조하면서 생산 측면을 강조하는 GDP 통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삶의 질 지표 개발을 제안했다.

    사실 지난 수십 년 동안 진보적 경제학자들, 생태적 성향의 싱크탱크와 NGO들은 GDP가 정책 결정에 미치는 영향을 제한하기 위해 많은 비판을 해왔고, 이를 수용한 UN과 OECD 등 국제기구들과 주요 국가들이 무수히 많은 대안 지표들을 만들어 제시한 바 있다. ‘더 나은 삶의 지수(Better Life Index, BLI)’, 환경지속성 지수(Environmental Sustainable Index, ESI) 및 환경역량지수(Environmental Performance Index, EPI)를 비롯해 지속가능한 경제적 후생지수(Index of Sustainable Economic Welfare, ISEW) 및 참진보지수(Genuine Progress Index, GPI)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각 지표에 대한 불완전성을 감안하더라도 GDP를 대체할 만한 정치적 지위를 얻을 수는 없었다.

    코로나19와 기후위기, 새로운 시대엔 새로운 가치와 목표 필요

    코로나19 이후로 GDP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와 주장이 더욱 거세지고 새로운 지표에 대한 논의도 다시 등장하고 있다. 2015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앵거스 디턴(Angus Deaton) 프린스턴대 교수는 최근 ‘코로나19와 세계 불평등’을 주제로 논문을 발표해 GDP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GDP는 “코로나19로 인한 빈곤국에서 고통의 정도가 어떤지를 전혀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세계경제포럼(WEF)도 지난해 10월 GDP가 디지털 활동과 돌봄 노동, 환경착취 등의 요소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하며, 새로운 지표는 번영(prospersity), 지구(Planet), 사람(People), 제도(institutions) 등 4가지 측면에서 고안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UN은 최근 경제적 성과 측정 시 자연자본(natural capital)이 경제에 기여하는 바와 반대로 경제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까지 포함하는 새로운 프레임워크인 환경경제통합회계(System of Environmental-Economic Accounting—Ecosystem Accounting, SEEA EA)를 채택했다. 이번에 채택된 SEEA EA에는 생태계 범위, 생태계 상태, 생태계 물리적 서비스, 생태계 금전적 서비스, 금전적 생태계 자산 등 5단계 단계를 거쳐 자연자본 관련 회계 사항을 반영할 것을 권고한다. SEEA EA는 오는 5월 중국 쿤밍에서 개최되는 제15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와 더불어 11월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 상정되어 환경계획 수립과 이행 관련 의사 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GDP는 정치적이다. GDP가 발표되고 전망될 때마다 한 국가의 경제 정책의 성패가 판단되고 정권이 바뀌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한편으로 GDP는 정치적인 상황에서 발명되었고 그 시대의 정치적인 판단 기준에 따라 바뀌어왔다. GDP는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생산 증대를 통한 양적인 경제성장이 최고의 가치로 받아들여졌던 시기에 만들어졌다. 코로나19와 기후위기, 불평등 심화 등을 해결해야 하는 새로운 시대에는 맞지 않는 가치와 목표다. 그린뉴딜과 탄소중립이라는 시대적으로 시급한 과제와는 오히려 상충된다. 새로운 시대엔 새로운 가치와 목표가 필요하다

    “GDP를 어떻게 측정하느냐는 우리가 가치를 어떻게 재느냐에 달려 있고 그 결과로 나오는 GDP 수치는 우리가 무엇을 얼마나 생산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에 영향을 미친다.”

    – 마리아나 마추카토, 『가치의 모든 것』(2018)

    <에정칼럼> 연재 링크

    <참고문헌>

    권승문. 2020. ‘탈성장: 녹색성장과 그린뉴딜을 넘어’. Enerzine Focus, No.99.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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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아나 마추카토(Mariana Mazzucato). 2020[2018]. 『가치의 모든 것(The Value of Everything』. 안진환 옮김. 민음사.

    손종칠·임시영. 2016. ‘경제환경 변화에 대응한 국민소득통계 개선방안 연구: 디지털경제 및 가계의 삶의 질 측정 방안을 중심으로’. 『국민계정리뷰』, 2016-4호. 한국은행.

    이승주·최영준·이원재·고동현. 2020. ‘GDP를 넘어: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의 시대, 진정한 가치를 찾아서’. LAB2050 보고서.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아마티아 센(Amartya Sen)·장 폴 피투시(Jean-Paul Fitoussi). 2011[2010]. 『GDP는 틀렸다(Measuring Our Lives: why GDP doesn’t add up』. 박형준 옮김. 동녘.

    한국은행. 2019. 『알기 쉬운 경제지표해설』.

    World Economic Forum. 2020. ‘Dashboard for a New Economy Toward a New Compass for the Post-COVID Recovery’.

    지난해 한국경제 세계 10위…1인당 GDP 이탈리아 제쳐(종합) | 연합뉴스 (yna.co.kr)

    코로나가 불평등 완화?…‘GDP의 역설’ 개선 목소리 높아진다 : 경제일반 : 경제 : 뉴스 : 한겨레 (hani.co.kr)

    유엔, 자연자본 통합한 환경경제통합회계 채택… GDP 대신할 새로운 기준되나 < 정책 < 기사본문 – IMPACT ON(임팩트온)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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