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지대장을 다 태워버리자
    [서울시 이야기] 급진적인 게 가장 현실적인 시간
        2021년 04월 28일 01:1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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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밭에 우후죽순 박힌 향나무를 기억하는가. 산으로 가야 할 나무가, 밭에 심어야 할 작물 대신 흉물스럽게 박혀 있는 모습은 초현실적이다. 시흥에 재개발 예정 지역에 있는 사진으로 알려진 장면이다. 이날 LH 로고가 버젓이 박힌 옷을 입은 직원이 직접 와 밭에 나무를 심고 갔다는 소문이 있다. 지역 농민들은 이 황당한 상황을 망연자실 지켜봐야 했다.

    정부 여당에 대한 배신감이 보궐선거에 표출되는 것을 보면서 2018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대 최고의 집값 상승이라는 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아래 벌어진 일은 모두를 경악케 했다.

    2018년 3월 21일 청와대는 헌법 개정안에 토지공개념의 내용을 규정하려고 했다. 공익을 위해 토지의 소유와 처분을 국가가 제한하도록 토지공개념을 도입하려는 시도였다. 이러한 토지공개념 법제정을 염두에 둔 전 여당 대표는 국회 연설(2018. 6. 19) 중 헨리 조지(Henry George)를 소개하면서 “그가 살아 있었다면 땅의 사용권은 인민에게 주되 소유권은 국가가 갖는 중국 방식을 지지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자체로는 환영할 만한 발언이었다.

    하지만 토지공개념의 근거를 헌법에 명문으로 신설하는 것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 무슨 소용일까 싶었다. 현행 헌법에 이미 토지공개념의 근거 조항들이 있으며, 이러한 근거에 기초해 이미 다수의 토지공개념 법률들이 구체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소유와 처분을 공익을 위하여 제한하자는 것으로 개인의 재산권은 보장하지만, 그 이용은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자는 것을 전제로 한다.

    토지가격 급상승으로 경제에 큰 부담을 주는 경우 택지소유상한제, 토지거래신고제, 농지취득자격증명제, 개발이익환수제, 유휴지제, 토지초과이득세 등 토지의 소유와 거래 및 세금과 관련된 정책을 수립하여 시행하였다. 그렇지만 1989년에 제정된 토지공개념 3법 중에 택지소유상한에 관한 법률은 위헌, 토지초과이득세법은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았고, 개발이익환수에 관한 법률에 따른 개발부담금은 2004년부터 부과가 중지되었다. 부동산 투기 개발 바람에 맞춰 법은 춤을 췄다. 그러면서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은 정권의 입맛에 따라 많은 이들의 삶에서 실종되었다.

    게다가 헌법재판소의 결정들은 정권이 바뀜에 따라 5년마다 부동산 정책의 각종 규제 폐지, 관련 법제도 개정 등 제멋대로 해석됐다. 매 정권마다 “부동산 정책 패러다임 전환”을 내세웠지만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한마디로 ‘사기’에 가깝다. 공식적으로 표방하는 바와 실행하는 제도가 반대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현 정부의 부동산 안정 대책은 괄호 치고 “인상 후 안정”이라는 말을 슬쩍 뺀 결과다. 특히 민간임대사업자에게는 역대급 특혜를 줬다. 물론 특정 사업의 양성화를 위해 인센티브를 줄 수야 있겠지만 임대사업자는 꾸준히 증가했다. 소위 임대사업은 몇 가지 약소한 규제만 지키면 ‘돈 되는 일’이 된 것이다. 2017년도 12월에 임대사업자 종합대책 이후 혜택은 쏟아졌다. 조세 혜택을 확대했고, 무제한 담보대출을 허용하고 건강보험료까지 감면했다. 송파 세 모녀에게도 깎아주지 않은 건보료 인하가 임대사업자에겐 가능했던 것이다.

    여말선초에 토지대장을 다 태워버렸다는 기록을 보면 토지개혁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토지공개념이 무슨 공산주의 아니냐는 질문에 이젠 입이 아프다. 자유무역의 신봉자인 헨리 조지는 자본주의 최대 실수를 토지 사유로 언급했다. 토지에 대한 사유재산권이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사회악’이라 비판했다. 이 마당에 한국에서 토지 공개념을 급진적인 대안, 비현실적인 일이라 말하는 일은 실상 낯 부끄럽다. 역으로 망원동 9평이 3억 9천인 서울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보다 더 경악스럽다.

    한국에서 이미 부동산은 재산 증식의 수단이었다. ‘믿을 건 땅뿐’인데, 마치 부동산이 모든 정부의 풀기 어려운 숙제라는 말은 보기 좋은 핑계다. 실상 부동산 정책이 누굴 대변하고 있느냐 그 한 가지만 따지면 모든 답이 나온다. 모름지기 정책이 모두를 만족시킬 순 없다. 하지만 다주택자 비율이 꾸준하게 늘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안다. 원칙적으로 공급을 늘리는 것이 문제 해결의 열쇠 같지만, 실상 무주택자보다 다주택자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 아무도 없는 빈집이 널렸다는 점은 공급 만능론의 허상을 보여준다.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 없이 부동산 숙제를 백날 풀어봤자 오답이 될 터이다. 30년간 수많은 통계와 수치가 이를 대변하고 있으며 이미 소득격차는 자산격차에서 오고 자산격차는 부동산 격차에서 온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여기에 부동산에 대한 욕망을 통제해야 된다고 운운하지만, 헌법은 토지에 관한 내용과 한계에 대하여 법정주의를 선언하고 있다. 재산권은 어차피 경제활동을 통해 형성되고 국가 경제에 따라 좌우된다. 즉 재산권의 내용과 한계는 국가의 경제질서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헌법은 재산권에 대해 이미 공공 복리성을 강조하고 있다. 안전보장, 질서유지 및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 법률로 제한할 뿐만 아니라, 공공필요성이 발생하는 경우 법률로 공용 수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특히 공용 수용제도는 토지 재산권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토지공개념 위헌성 논란은 의미 없는 말장난이다. 뭐가 됐든 다수의 기본권의 절대적 보장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재산권의 제한 또한 널을 뛰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부동산 문제가 풀기 어려운 숙제라 말하는 것은 기만이다. 무주택자와 다주택자 둘 중 누굴 먼저 대변할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면 된다.

    여말선초 백성들은 송곳 꽂을 땅 하나 갖지 못한 채 자영농에서 소작농으로, 소작농에서 노비로 몰락해갔다. 무리한 개혁이라도 강행해야 했던 당시, 조준의 과전법(科田法)은 1390년 고려의 토지대장을 모두 불태운다. 물론 그 이후 과전법은 퇴행됐다. 그렇다 하더라도 작금의 현실은 한국의 토지대장을 다 불태워야 할 만큼 비상한 시기가 아닐 수 없다. 소위 급진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다. 매일 가파른 비탈에 서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람을 보라. 다주택자, 건물주들의 토지대장을 불태워도 시원찮다.

    (4월 21일 지담에서 열린 김정진 변호사의 ‘토지 공개념’ 정책교육 강의를 듣고)

    필자소개
    정의당 서울시당 공동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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