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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민수전』⑩
    헤겔 비판, 다가오는 대선
        2021년 05월 08일 01:5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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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크스에 매료되다” 9회차

    (10화) 헤겔 비판, 다가오는 대선

    민수가 고1의 말엽에, 그러니까 1985년 1, 2월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었던 신한민주당에서 1987년 4월에 소위 상도동계라고 불리던 김영삼 지지파와 동교동계라고 불리던 김대중 지지파가 탈당해 만든 정당이 통일민주당이었다. 이민우가 내각제 개헌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얘기를 꺼내고 이철승 등에 의해 내각제 개헌 지지파들이 결집하자 그들은 탈당했고, 통일민주당은 6월 항쟁 기간에 거리에 나서 6. 29 선언을 이끌어내는 데 기여했다.

    통일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가 누가 될 것인지는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 둘은 당을 만든 초기에만 해도 서로 양보할 것 같은 발언을 하기도 했지만 7월부터는 분열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소위 재야진영과 운동세력들도 다양한 모습을 보였다. 무조건 둘이 단일화해야 한다는 이들도 있었고, 김대중이 김영삼보다 더 선명한 민주주의자이니 그를 밀어야 한다는 이들도 있었다. 둘 다 한계가 있으므로 노동자 농민 중심의 민중세력이 대통령 선거에 독자적으로 출마해야 한다는 이들도 있었다.

    9월이 되었고 민수는 학교로 돌아갔다. 1학년 학생들 사이에는 약간 찬바람이 불었는데, 6월 항쟁 기간에 동맹휴업과 시험거부를 주장하며 적극적으로 가두시위에 나가던 아이들과 시험을 거부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던 아이들 사이에 약간의 벽이 생긴 것이었다. 민수는 아무 데도 속하지 않았고 모든 이와 부담 없이 얘기하며 2학기를 시작했다.

    주로 진보적인 문학 작품들과 역사서들을 읽고 토론하던 ‘학회’에 참가하는 학생들은 태반으로 줄었다. 3월만 해도 전원이 참가했었다. 민수는 학회에서 나오지 않았고 열심히 참가했다. 책을 읽는 일은 그에게는 가장 즐거운 일이었기 때문이었고, 이미 마르크스의 글을 읽은 그는 어떤 책도 두려워하거나 미리 색안경을 끼고 거부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선배 김영철과의 공부는 종료되었다. 선배가 3학년 2학기를 맞이하자 대학원 준비를 시작했던 것이다. 민수는 이해했고, 김영철이 선물한 엥겔스가 지은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고전철학의 종말>을 한 달에 걸쳐 틈틈이 읽었다. 혼자 읽기 어려웠지만 그는 읽고 또 읽으며 엥겔스가 하고자 하는 얘기들을 대략은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헤겔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엥겔스의 헤겔 비판을 받아들여도 되는지를 조금 고민했다.

    어느 날 민수는 유정의 방에서 고등학교 동문인 미학과 선배에게 받은 헤겔 사상을 요약하는 글을 읽었다. 그는 유정 앞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책을 읽는 것은 조심스러워했으나 헤겔은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마르크스를 읽었어도 괜찮았을 것이다. 유정 역시 변화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글을 읽은 그는 혼자말로 신랄하게 헤겔을 비판하였다.

    세계사는 절대정신이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다.

    “이 사람이 왜 유명하지? 완전히 얼치기 목적론이네.”

    인간의 역사 역시 변증법적 발전을 겪는데 그 결과 이성이 최고의 발전 단계에 이르러 더 이상의 변화가 필요 없는 상태로 간다고 하고 그걸 역사의 종말이라고 불렀다.

    “웃기는 사람이네. 그럼 자신이 이 모든 것을 다 깨달았으니 이성의 최고단계에 도달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잖아. 그럼 자신이 살던 그 당시가 역사의 종말 단계라고 해야만 일관적이 되는 거잖아. 나중에 개 쪽 좀 당했겠군.”

    헤겔은 실제로 당대 독일(프로이센)이 역사의 종말 단계에 들어섰다고 주장하였다가 많은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었다.

    “지가 프레디 머큐리냐, 키스냐. 말이 되는 얘기를 해야지.”

    유정이 글을 읽으며 열을 내는 민수를 보고 왜 그러냐고 물었다.

    민수가 말했다. “로맨틱하지 않은 얘기해도 되지?”

    “응. 너는 로맨틱 그 자체인데 굳이 로맨틱한 얘기만 할 필요는 없잖아.”

    “프레디 머큐리가 솔로 활동할 때 부른 노래 중 하나가 ‘I was born to love you.’야. ‘나는 당신을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다.’ 그게 여자 꼬드기려고 충분히 할 수 있는 얘기이기는 하지만 비과학적인 말이지. 우리는 어떤 목적을 갖고 태어나지 않아. 그냥 태어나는 거야. 누구도 정치가가 되기 위해 태어나지 않으며 살인자가 되기 위하여 태어나지도 않지. 그런데 이 헤겔이란 소위 철학자는 세계의 역사가 어떤 목적을 향해 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어. 이것도 말이 안 되지. 역사는 있었던 일의 기록일 뿐이고 미래는 확정된 게 아니야. 역사가 변화 발전하다가 최고 단계에 오르면 그 때부터는 변화 또한 없다는 것인데 어떻게 그게 가능하겠어. 물질의 운동이 있는데 어떻게 변화가 없는 세상이 있을 수 있겠어. 물은 흐르고 또 흘러 바다로 가기도 하고 증발되어 구름이 되었다가 비가 되기도 하고. 이런 변화들이 어떻게 사라질 수 있겠어? 아직 과학이 충분히 발전하지 않은 상황에서 머리만 굴리며 짜낸 학설 같아.”

    “기독교 비슷한 거네. 세상은 어딘가를 향해 간다는 거니까. 기독교의 경우에는 예수의 재림과 종말을 향해 가는 거고.”라고 고등학교 중반까지는 가끔 교회에 가다가 당시에는 전혀 가지 않던 전 기독교인 유정이 말했다.

    민수는 그 순간 유정이 기독교와 완전히 결별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키스는 또 무슨 얘기야? 그 귀신 화장한 혀 내미는 이상한 그룹 얘기하는 건지는 알겠어.”

    “이 키스라는 밴드도 ‘I was made for loving you, baby. You were made for loving me.’ 이런 노래를 불렀거든. 너와 나는 서로를 사랑하도록 만들어진 적 없어. 그런 사전 계획을 어떤 창조자가 만든 게 아니야. 너와 나는 자신의 뜻으로 주체적으로 사랑하는 거지. 사랑해.”

    “나도 사랑해. 너도 참 대단하다. 헤겔 공부하다가 로맨스로 넘어가네. 아유. 예뻐 죽겠어.”

    “기왕 키스 얘기도 나왔는데.”

    민수의 얼굴이 유정에게 다가갔고 유정이 눈을 감았다.

    10월이 왔고 그는 김현우와 대선과 관련하여 학생들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현우가 물었다. “민수는 앞으로 학생들이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일단은 노태우가 되는 것을 막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지요. 재야 진영과 학생들이 대선에서 후보를 낼 수는 없을 것이니 통민당 후보를 지원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김영삼과 김대중 중에는 어떤 사람이 더 나은 것 같아?”

    “글쎄요. 동네 꼴통 아저씨들이 DJ를 더 미워하는 것을 보니 DJ가 더 나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야기를 하며 민수가 웃었고 1년 선배 현우도 웃었다.

    “꼴통 아저씨들은 친 정부 세력인가 봐.”

    “그게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요즘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더라고요. 동네에 안동에서 이사 온 쌀장수 아저씨가 장사가 잘 되면서 영향력이 강해졌는데, 술을 잘 사거든요, 그러면서 없는 집 사람들 사이에서도 노태우 지지자들이 생기는 것 같더라고요. 우리 동네는 예전엔 정말 단순했었는데. 많이 잘 살거나 공무원이면 민정당, 나머지는 거의 반정부적이었어요. 이를테면 우리 동네에 뚱땡이라는 친구가 있는데 걔네가 좀 사는 집안이거든요. 그 집이나 의사하는 어느 집, 그리고 교도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좀 있어요. 제가 독립문 역 근처에 살거든요.”

    “현저동?”

    “아니, 그 대로 건너편 무악동이요. 형은 광주 출신인데 어떻게 현저동을 알아요?”

    “나 작년에 서대문형무소에 한 달 정도 있었잖아.”

    “아, 건대에서 그랬군요. 그런데 서대문형무소라고 하네요. 지금은 서울구치손데.”

    “역사적인 의미가 있잖아. 그렇게 부르면 독립투사들이나 김원봉이나 여운형 후예 같기도 하고 말이야.”

    “그렇겠네요. 암튼 하던 얘기를 끝내자면 잘 사는 사람들과 교도관들뿐 아니라 경상도에서 온 사람들이 가난한데도 노태우 많이 찍을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는 DJ가 더 득표력은 약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박정희 때부터 영호남 문제를 악용했다고 들었어요.”

    “나도 동의해. 그리고 또 DJ가 더 나은 것 같지만 그렇다고 그도 완전히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아니거든. 어쨌든 우리는 후보단일화에 초점을 맞추고 대선 관련 활동을 할 거야. 외부 활동이 있으면 알릴 테니까 생각 있으면 참가하고.”

    “예.”

    영문과의 학생운동 주도 세력들은 가끔씩 구로공단(1)이나 가리봉동 등에 노동자 파업 지원 투쟁을 나가면서 대선을 준비했다. 그러나 그들이 통일민주당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었고 재야 진영에서 나서 ‘후보단일화추진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었다. 그들의 노력으로까지 단일화 일보 직전까지 다가갔다는 얘기가 나왔으나 단일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1987년 10월 25일 고려대 집회에서의 김대중(왼쪽)과 김영삼

    그리고 민수가 처음으로 다른 학교 집회에 간 날에 사건이 터졌다. 10월 25일에 고려대학교에서 열린 ‘공정선거 보장을 위한 거국국민내각 쟁취 실천대회’에서였다. 민수는 영문과 사람들 열댓 명 사이에서 고대 민주광장에서 열린 그 행사를 경청했다. 몇 명의 연사가 등장한 후 김영삼이 등장했다. 민수는 실물로 처음 보는 그를 보고 TV로 보던 것보다는 잘 생겼다는 생각을 했다. 그의 연설은 그러나 야유에 묻히기 시작했다. 선배들의 인상이 일그러졌고, 상도동계 인사들의 인상은 더욱 일그러졌다.

    이윽고 “사퇴하라! 사퇴! 사퇴! 사퇴!” 하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김영삼은 끝까지 연설하는 강한 모습을 보였지만 다음 순서를 기다리지 않고 고려대를 빠져나갔다.

    선배들이 수군댔다. “비지파에서 작정을 한 것 같은데.” “DJ 지지자가 압도적으로 많아서 그런 거 같아.” “후(보)단(일화)은 물 건너가는 것 같은데.” “그거야 아직은 모르지. 시간이 남았으니까.”

    비지는 ‘비판적 지지’를 의미했고 재야 혹은 민중운동세력 중의 상당 부분이 방침으로 삼았던 것이었다. 상대적으로 선명한 김대중을 ‘비판적으로 지지’하여 대선에서 군사정권을 끝내고 DJ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민중운동세력이 얻을 것을 얻겠다는 생각에 기초한 것이었다. 민수가 생각하기에는 ‘비판적 지지’라는 말은 그 자체가 모순이었다.

    그리고 김대중이 연단에 올랐다. 김대중은 “김대중. 대통령.”을 연호하는 사람들의 환성과 함께 연단에 올랐고, 영문과 선배들은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민수도 그들을 따라 그곳을 빠져나왔다.

    다음날 들린 소식으로는 김대중이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저는 어떤 결단을 내려야겠다는 결심을 굳혔습니다!”라 했다고 했고 며칠 후 그는 뉴스를 통해 그가 탈당하고 새로운 당을 만들겠다고 한 것을 알게 되었다.

    민수는 12월 초에 통민당을 탈당한 김대중과 지지 세력이 만든 평화민주당에 들어가 단일화 요구 점거농성에 들어갔다. 그 날 영문과 선배 하나와 평화민주당 당원 하나가 논쟁을 벌였다. 정용하라는 이름의 민수가 별로 보지 못했던 85학번 선배가 말했다.

    “당신들은 이러면 결국 민중들의 죽창에 찔려죽을 거야. 민중의 염원을 이리 짓밟을 수 있는 것입니까?”

    반말과 존대가 뒤섞인 이 어쩌면 도발적이고 무례한 발언에 당원이 화를 내지 않고 차분히 답했다. “물론 우리도 40% 대통령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압니다. 최선을 다해 단일화를 이루도록 하겠습니다.”

    민수는 옆에 앉은 현우에게 말했다. “형. 저 사람은 단일화를 하지 않아도 DJ가 40% 득표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봐요.” 현우도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점거농성이라고는 하지만 불안과 긴장을 일으키는 사람들이나 요소들은 없었다. 평화민주당은 당사를 점거한 서울대생들에게 도시락까지 제공하는 모습을 보였고, 민수는 어이없어 하면서도 도시락을 맛있게 먹었다. 다음날 만난 통일민주당 점거농성 참석자들은 평화민주당을 점거했던 이들보다 표정이 어두웠다. 말다툼도 많이 하고 박대를 당한 것 같았다. 아직 어린 민수는 평민당으로 간 것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민수는 일요일이었던 12월 6일에 유정과 함께 혜화역 근처 대학로로 데이트를 하러 갔고, 놀라운 광경을 목도했다. 몇 만 명의 군중들이 백기완 후보 연설회에 모여 있었던 것이다. 영문과에서 ‘제헌의회 그룹’에 속한 선배들은 전혀 볼 수 없었고 민수는 그들을 잘 알지 못했다. 그들과 소위 민중민주파가 주도한다는 백기완 선거운동본부를 그는 잘 알지 못했다.

    1987년 12월 6일 민중후보 백기완 집회

    “가자, 백기완과 함께 민중의 시대로!”

    “민중정당, 민중후보, 민중민주 앞당기자!”

    거기 모인 군중들의 구호는 힘찼고 그들의 얼굴에는 기쁨과 자신감이 보였다. 민수는 멍하게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유정이 그를 잡아당겼다. “뭐해? 맛있는 거 사준다며.”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민수가 평소보다 활기가 없어 보이자 유정이 말했다. “무슨 일 있어?”

    “아니, 그런 것은 아니고. 제헌의회 그룹이라고 있어. 운동세력 중에.”(2)

    “나도 알아. 과격하다고 들었어. 이대에는 없는 것 같아. 서울대에는 있겠지?”

    “응. 나는 그 사람들이 바보들이라고 생각했었거든. 이상한 구호를 외쳤어. “파쇼 하의 개헌 반대, 혁명으로 제헌의회.” 혁명이 목적인데 구호에 ‘혁명으로’라는 말이 들어가는 것은 뭐랄까, 결혼식장을 어디로 정할 지 묻는 연인에게 “우리는 예식장에서 결혼을 할 거야.”라고 대답하는 멍청한 남자 같아 보였거든.”

    유정이 웃으며 말했다. “너 우리 세 번째 만나던 날 빈센트 부른 거 이미 계획한 거였지?”

    “응. 어느 정도는.”

    “나를 유혹하려는 게 목표고 빈센트를 부르는 것은 그 뭐냐, 음, 전술을 구사한 거겠네. 그치?”

    “응. 맞아.”

    “그럼 그 사람들은 나에게 ‘노래로 너를 유혹하겠노라.’고 외치겠네. 멋진 노래를 불러주는 대신에.”

    민수는 웃었다. 유정의 비유는 일리가 있었고, 100% 정확한 비유인지는 좀 더 생각할 문제였지만 더 생각할 이유가 없었다. 유정도 자신처럼 그 구호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잠시 후에 말했다.

    “근데 조금 전에 그 사람들이 바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아까 본 집회는 “파쇼 하의 개헌 반대, 혁명으로 제헌의회.”를 외치며 신길동을 불바다로 만들었다던 ‘신길동 대첩’과는 달라 보였어.”

    “신길동 대첩? 그게 뭐야? 신길동은 또 어디고?”

    민수는 영등포구에 있는 신길동을 설명했고 신길동 대첩도 설명했다. 하지만 그 시위는 1986년 11월의 일, 학력고사를 며칠 앞두고 있었던 그가 정확히 그것을 알 리 없었다. 민수는 여러 선배들에게 들었던 얘기들에 기초하여 그것을 설명했다. 둘은 호프집으로 자리를 옮겨 제헌의회 그룹과 백기완 후보 얘기를 조금 더 하다가 후보단일화가 가능할 것인지를 얘기했다.

    민수는 유정과 공덕동으로 갔다가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버스 안, 그의 머릿속에는 ‘후보단일화 투쟁’이라는 것이 멍청한 짓이고 백기완 후보와 나선, 그가 멍청하다고 피상적으로 생각했던 이들이 옳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각주>

    1. 구로공단은 2,000년대부터 구로디지털단지라고 불렸다. 지하철 2호선 구로공단역은 2004년에 구로디지털단지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가리봉동은 1995년에 구로구에서 금천구가 분구될 때 가리봉동과 가산동으로 나뉘어졌다. 2005년에 가리봉역이 가산디지털단지 역으로 개명되었다.

    2. 1987년도의 MBC와 정부 발표를 믿을 수는 없는 일이겠지만, 이 동영상을 참조할 수 있다.

    필자소개
    정재영(필명)은 서울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작가이다. 저서로는 「It's not Grammar 이츠낫 그래머 」와 「바보야, 문제는 EBS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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