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가지 질문들과 새로운 연재
    <김민수전> 작가 정재영의 기고문
        2021년 06월 21일 09:42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안녕하세요. <김민수전>의 작가 정재영입니다. 이 소설에 대한 레디앙 독자들의 많은 성원에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어렸을 때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했고 많은 글을 썼었지만, 이런 사랑은 처음 받아보았습니다. 저는 <It’s not Grammar>라는 책을 출간해 몇만 권을 판매해본 일이 있었지만, 영문법 책에 대한 독자들의 사랑과 이 소설에 대한 독자들의 사랑은 차원이 달랐던 것 같습니다. 다시 감사드립니다.

    이 소설과 관련한 많은 질문을 여러 경로로 받았습니다. 비슷한 질문이 많은 관계로, 그에 대한 제 생각을 레디앙 지면을 빌어 말씀드립니다.

    1. 자전적인 소설인가?

    예. 어느 정도 그러합니다. 박정희가 죽던 1979년 10월부터 대학에 입학하기 직전의 1987년 2월까지는 거의 제 경험에 근거한 글입니다. 저는 실제로 서대문구 홍제동에 있는 안산 초등학교에 다녔고, 삼대 세습이 이루어진, 서울 종로구에 있는 대신 중고등학교에 다녔습니다.

    질문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기는 하지만, 제가 요즘 느끼고 있는 점을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이 학교 정말 대단합니다. 제가 <김민수전>을 탈고하고 나서 이런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2437112

    이 기사는 사실을 말하기는 하지만, “김 씨는 A고 설립자의 손자이자 명예 이사장의 아들로 이 학교에서 재직했다.”라고만 말하고 있습니다. “교장으로 재직했다.”라고 했어야죠. 저는 기자의 글을 윗선의 누군가가 손보았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에게 재떨이를 던져 서양사학과가 아니라 영문학과로 마음을 바꾸게 했던 1987년 당시의 교장과 삼대 세습으로 교장이 되었던 그때 교장의 아들이 소송을 벌이고 있네요.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학이 어디 그곳뿐이겠습니까?

    그 기사를 보면서 저는 제가 좋은 글을 썼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제가 소설에서 인용했던 한 구절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부르주아계급은 가족관계조차 감상의 장막을 걷어버리고 순전히 금전 관계로 만들었다.” – 칼 마르크스

    김민수가 대학에 입학한 후의 일들은 과거에 있었던 사건들에 기초하고 있기는 하지만 허구입니다. 저와 김민수는 완전히 다른 사람입니다. 예를 들면 저는 ‘5학년’ 때까지, 그러니까 1987년부터 1991년까지 학생운동 및 사회운동을 한 후 1992년 여름에 군대에 갔고, 소설의 캐릭터 김민수는 1989년 가을에 군에 입대합니다.

    소설은 허구이지만, 완전한 허구란 없습니다. 모든 소설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작가의 삶의 경험을 반영합니다. 그래서 주인공 김민수와 작가 정재영을 동일시하는 분들이 생깁니다. 정재영이라는 작가가 실제로 누구인지 아는 분들이 자꾸 질문합니다. 예를 들어 이렇습니다. “형. 형이 1989년에 군에 갔어요? 이상한데. 90년에도 본 것 같은데.”

    저는 김민수가 아닙니다. 저는 1989년 9월부터 그해 말까지 서울대학교 ‘민중운동 탄압 분쇄 및 악법 철폐를 위한 특별위원회’에서 일했고, 11월 12일에 서울대에서 열렸던 노동자대회에 참가했고, 그 날 ‘사노맹’ 창립 선언문이 대회장에 뿌려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소설 주인공 김민수는 군에 있었죠.

    2. “연재 주기가 짧을뿐더러 펑크를 낸 일도 없다.”라는 칭찬에 대하여

    어쨌든 칭찬에는 감사드립니다. 진실은 이렇습니다. <김민수전>은 4월 28일부터 레디앙에 연재되기 시작하여 6월 10일에 마지막 편인 25화가 올라갔습니다. 저는 이미 4월 중순에 글을 다 쓴 상태였습니다. 저는, 완성되지 않은 글을 가지고 정종권 레디앙 편집장과 만날 만큼 간이 큰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완성도를 알 수 없는 글을 연재할 만큼 용기가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일단 완성하고 연재를 시작했고, 중간에 조금씩 손을 보았습니다.

    3. “왜 이 시점에 이 글을 연재하였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별로 대답하고 싶지 않은데, 왜냐하면 제 글을 읽으시면 그것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더 설명을 원하신다면, 몇 가지 단어만 나열하겠습니다.

    부동산 보유세 완화 움직임. 이재용 사면 논의. 10억 아파트, 4년 만에 20억. 법무부 장관 후보자들.

    물론, 저는 아직은 세련되지 못한 지배계급의 새내기 분파보다는 오랜 역사를 가진 지배계급의 분파를 더 미워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미워하는 정도의 차이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4. 22화 ‘학원에도 그들은 있었다’가 학력주의에 기초한 글이라는 비판에 대해

    어느 독자는 장세훈 캐릭터가 했던 말에 기초하여 이 글을 비판하였습니다. 그분이 지적한 것은 이 부분입니다.

    김민수가 확실히 성골치고는 예의가 있다니까. 고대 출신이랑 얘기한다고 서 연 고가 아니라 서 고 연이라고 하네. 어쨌든 성골들이 그렇다고. 서울 상위권 대학 말고는 전혀 모르지. 그런데 그때 지방 학교들은 있잖아, 졸업정원제 할 때는 그냥 아무나 다 들어갔어.”- 장세훈

    “그럴 수도 있었겠네. 원래 정원의 거의 두 배를 뽑았던 때도 있었으니까. 우리 과 정원은 원래 35명이었는데 84학번은 거의 60명이었어. 서울 학교들 정원이 1.8배가 되었다면 국립대 아닌 지방 학교들은 진입 장벽이 거의 없었겠네. 그런데 그게 내가 인신공격을 당하는 상황과 연관이 있는 건가?”- 김민수

    “나도 NL 출신이지만 이 조직이 정말 대단한 조직이었나 봐. 다른 학교의 운동하는 애들을 만나면서 기가 막힌 모습을 많이 봤어. 책을 읽고 고민하고 토론하고 이런 거는 전혀 안 하는 것 같은데, 운동을 엄청 열심히 하는 거야. 걔들과 얘기도 해 보고 생각도 해 보니 결론이 나오더라고. 걔들에게는 하나의 중요한 원칙이 있었고, 그게 효과가 있었다는 거야. 선배 하나를 주군으로 모시고 그의 말을 일사분란하게 따르는 거지. 이게 혁적 수령”- 장세훈

    (김민수가 장세훈의 말을 끊음)

    이 글은 소설입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잘못과 저자의 잘못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살인을 다루는 소설, 성폭행을 다루는 소설의 작가는 살인과 성폭행과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비판은 애당초 빗나간 것입니다. 또한, 장세훈 캐릭터의 말도 별로 문제없어 보입니다. 그는, 그의 경험을 얘기한 것입니다.

    서울대 출신으로 묘사되는 캐릭터 김민수와 고려대 출신으로 묘사되는 캐릭터 장세훈의 대화가 ‘학력주의’에 기초한다는 판단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무슨 글을 읽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이 글에 등장하는 나쁜 놈들은 한둘이 아니지만, 박정희나 전두환 등 역사적인 인물이 아니라 작가가 창조한 소설 속의 캐릭터들만을 놓고 보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김민수와 가장 첨예하게 갈등을 빚었던 이는, 바로 서울대 영문학과 출신이고 그러므로 김민수의 과 선배인, 그에게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가르쳤지만, 나중에는 악덕 소유주가 되었던 김종찬입니다. 가장 나쁜 놈은 서울대 출신이라고 소설은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학력주의’라고요? 남의 글을 비판하려면 먼저 독해부터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말은 언제나 옳은 얘기입니다.

    5. “다음 작품은 김민수가 빙의한 금민과 전두환마, 사대강서, 무뇌귀녀 등과의 싸움을 다루는 무협 소설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하여

    이 역시 소설과 현실을 혼동하시는 질문 같습니다. 작품 마지막에 등장하는 김민수의 말은, 그가 다양한 방식의 글들을 통해 지배계급과 맞서는 삶을 지속한다는 것을 드러내는 장치일 뿐입니다. 어쩌면 나중에 제가 실제로 그런 무협 소설을 쓸 수도 있겠습니다만. ^^ 제가 레디앙에 올릴 다음 작품은, 영문법을 소설 형식을 통해 강의하는 <구구야화>입니다. 이 소설은 내일모레인 수요일부터 연재됩니다. 샘플을 조금만 공개하겠습니다.

    구구야화 1화

    실러 제이드, 왕을 만나다/ 영어의 verb와 한국어의 동사

    프롤로그

    시간을 알 수 없는 과거에 어느 은하계에 어느 행성이 있었다. 이 행성에 고려 왕국이 있었다. 그 나라의 왕 이강산은 이십 대 중반에 즉위했고, 그때는 이십 대 후반이었다. 이강산은 외교 업무 때문에 왱글랜드(Wangland)에 갔다가 어느 파티에서 한 아가씨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왕은 시각적으로 민감한 사람이었고, 그 이름 모를 여성의 푸른, 혹은 초록빛 눈에 빨려들었다. 그는 자신이 자기도 모르게 Guns n‘ Roses의 <Sweet Child o’ Mine>의 어느 부분을 흥얼거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She’s got eyes of the bluest skies

    As if they thought of rain

    I’d hate to look into those eyes and see an ounce of pain

    Her hair reminds me of a warm safe place

    Where as a child I’d hide

    And pray for the thunder and the rain to quietly pass me by

    그는 마치 비를 생각하고 있는듯한,

    가장 파란 빛의 하늘 같은 눈을 가지고 있어요.

    나는 그의 눈을 들여다보며 조금의 고통도 보고 싶지 않아요.

    그의 머리칼은, 어린 시절 내가 숨어서

    천둥과 비가 조용히 지나가길 빌곤 했던,

    따뜻하고 안전했던 어떤 곳을 떠오르게 해요.

    https://www.youtube.com/watch?v=1w7OgIMMRc4

    그는 그 여성에게 즉시 ‘작업을 걸기’를 바랐지만, 그에게는 왱어 실력이 별로 없었다. 물론 통역관이 있기는 했지만, 통역관을 통한 사랑이라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었다.

    그는 왱어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고, 고려로 돌아와서 왱글랜드 출신의 노예들을 수소문했다. 왕은 야행성으로, 동이 틀 때쯤 잠자리에 들고 한낮에 일어나곤 했다. 그는 자정 무렵부터 새벽 다섯 시의 시간대에 왱글랜드 출신 노예들과 왱어 공부를 했다. 그런데 왕은 피곤하기도 하고 집중력이 부족하기도 하여, 자꾸 잠들곤 했고, 잠이 들면 노예들의 강의 역량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계속 노예들을 벌주고 쫓아냈다.

    학습의 진척은 지지부진했고, 왕은 새로운 조치를 시행했다. 그는 만일 수업 중 자신이 잠이 들면, 그 노예는 사형에 처하겠다고 발표했다. 적절히 학습이 진행되어 왕의 실력이 발전하는 경우, 그 노예는 자유인으로 풀어주고, 많은 재산도 주겠다는 발표도 함께 이루어졌다.

    모든 왱글랜드 출신 노예들과 노예 주인들이 공포에 떨던 이때,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몹시 원하는 Sheila Jade Smith라는 노예가 왕의 교육에 자원했다.

    이 소설은 그림과 사진과 실러 제이드와 이강산의 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영문법을 익히고, 동시에 음악과 역사와 문학을 즐길 수 있는 일종의 그림책인 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2008년에 이미 완성하였던 글인데, 이번에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공개하고자 합니다.

    며칠 전에 <김민수전>이 전자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필자소개
    정재영(필명)은 서울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작가이다. 저서로는 「It's not Grammar 이츠낫 그래머 」와 「바보야, 문제는 EBS야!」 「김민수전」등이 있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