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구야화 연재를 시작하며
    [제1화] 실러 제이드, 왕을 만나다
        2021년 06월 23일 09: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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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구야화 연재를 시작하며

    <김민수전>에 이어 <구구야화 1. 문법 편>을 연재합니다. 원래 제목은 그렇지만, <구구야화>라는 제목으로 연재하겠습니다. 구구는 구십구를 의미하고, 어느 나라 남자 국왕과 다른 나라 출신 여자 노예의 99일 밤 동안의 이야기입니다. 밤에 이루어지는 성애적인 사랑 이야기는 아닙니다. <천일야화(One Thousand and One Nights)>의 주인공 셰에라자드가 국왕에게 매일 밤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던 것과는 다르게, 이 소설의 주인공 Sheila Jade는 국왕에게 Wanglish(왱어)를 가르칩니다.

    엉뚱한 면을 가지고 있는 왕은, 재치있는 Sheila Jade에게서 왱어뿐 아니라 여러 가지 ‘문화’와 관련된 것들을 배우게 됩니다. Wangland에서 아버지의 도박 빚 때문에 노예가 되어 고려국으로 팔려온 그는, 매우 지적이고, 아주 다양한 것들을 알고 있는 여성입니다.

    왕은 왱어를 배울 것이고, 그 과정에서 노예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생각까지 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왕이라도 마음대로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습니다. 호족들의 지지를 잃는 순간, 그의 권좌는 위협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구구야화 1. 문법 편>은 왕과 호족들의 투쟁을 그리는 글은 아니고, 영문법을 대화를 통해 익히는 과정까지만 그릴 예정입니다. 저는 이 소설을 이미 2008년에 썼었는데, 이번에 고쳐 쓰면서 몇 가지 시도를 하고자 합니다. 먼저 많은 사진과 그림을 이용할 생각입니다. 이 글의 기본적 대상은 성인이지만, 성인들도 이미지의 도움으로 좀 더 명확하게 문법을 알 수 있을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자동사는 주어, 혹은 주체의 움직임이나 상태를 표현하는 술어입니다. 타동사는 주어, 혹은 주체가 목적어, 혹은 객체에 영향을 미침을 표현하는 술어입니다.”

    왼쪽 사진은 완전자동사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완전자동사는 주체의 움직임만을 나타내는 동사이죠. “A bird is flying.” 혹은 “A bird flies.”를 이미지로 제시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시도는 동영상입니다. 레디앙에 소설이 연재되고, 편파TV에는 소설 관련 동영상이 게시되는 것입니다. 50 넘은 나이의 87학번인 남자들 몇이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지요. 즐거운 감상 바랍니다.

    <구구야화 1-1> 동영상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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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구야화 1화

    실러 제이드, 왕을 만나다/ 영어의 verb와 한국어의 동사

    프롤로그

    시간을 알 수 없는 과거에 어느 은하계에 어느 행성이 있었다. 이 행성에 고려 왕국이 있었다. 그 나라의 왕 이강산은 이십 대 중반에 즉위했고, 그때는 이십 대 후반이었다. 이강산은 외교 업무 때문에 왱글랜드(Wangland)에 갔다가 어느 파티에서 한 아가씨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왕은 시각적으로 민감한 사람이었고, 그 이름 모를 여성의 푸른, 혹은 초록빛 눈에 빨려들었다. 그는 자신이 자기도 모르게 Guns n‘ Roses의 <Sweet Child o’ Mine>의 어느 부분을 흥얼거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She’s got eyes of the bluest skies
    As if they thought of rain
    I’d hate to look into those eyes and see an ounce of pain
    Her hair reminds me of a warm safe place
    Where as a child I’d hide
    And pray for the thunder and the rain to quietly pass me by

    그는 마치 비를 생각하고 있는듯한,
    가장 파란 빛의 하늘 같은 눈을 가지고 있어요.
    나는 그의 눈을 들여다보며 조금의 고통도 보고 싶지 않아요.
    그의 머리칼은, 어린 시절 내가 숨어서
    천둥과 비가 조용히 지나가길 빌곤 했던,
    따뜻하고 안전했던 어떤 곳을 떠오르게 해요.(영상 링크)

    그는 그 여성에게 즉시 ‘작업을 걸기’를 바랐지만, 그에게는 왱어 실력이 별로 없었다. 읽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했고, 왱글랜드와 아메니카의 록 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에 상당한 수의 단어들도 알고 있었지만, 말하기와 쓰기 능력은 본인의 표현에 의하면 ‘꽝’이었다. 물론 통역관이 있기는 했지만, 통역관을 통한 사랑이라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었다.

    그는 왱어 공부를 제대로 하기로 마음먹고, 고려로 돌아와서 왱글랜드 출신의 노예들을 수소문했다. 왕은 야행성으로, 동이 틀 때쯤 잠자리에 들고 한낮에 일어나곤 했다. 그는 자정 무렵부터 새벽 다섯 시의 시간대에 왱글랜드 출신 노예들과 왱어 공부를 했다. 그런데 왕은 피곤하기도 하고 집중력이 부족하기도 하여, 자꾸 잠들곤 했고, 잠이 들면 노예들의 강의 역량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계속 노예들을 벌주고 쫓아냈다.

    학습의 진척은 지지부진했고, 왕은 새로운 조치를 시행했다. 그는 만일 수업 중 자신이 잠이 들면, 그 노예는 사형에 처하겠다고 발표했다. 적절히 학습이 진행되어 왕의 실력이 발전하는 경우, 그 노예는 자유인으로 풀어주고, 많은 재산도 주겠다는 발표도 함께 이루어졌다.

    모든 왱글랜드 출신 노예들과 노예 주인들이 공포에 떨던 이때,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몹시 원하는 Sheila Jade Smith라는 노예가 왕의 교육에 자원했다.

    첫날 밤 이야기

    새로 왕을 가르치기로 한 노예, Sheila Jade Smith는 시종의 안내를 받아 왕의 공부방으로 향했다. “자게 하면 죽인다.”는 말을 곱씹으며 그는 두려움을 느꼈다. 그는 약해지는 마음을 추스르며 고려말로 번역할 수 있다면 ‘비참한 상태, 매우 힘든 상황’의 뜻을 가진 왱글랜드의 록 그룹 Dire Straits의 <Why Worry>를 속으로 부르며 걸어갔다.(영상 링크)

    Baby, I see this world has made you sad
    Some people can be bad
    The things they do, the things they say
    But baby, I’ll wipe away those bitter tears
    I’ll chase away those restless fears
    That turn your blue skies into gray
    Why worry
    There should be laughter after pain
    There should be sunshine after rain
    These things have always been the same
    So why worry now

    그대여, 나는 이 세상이 당신을 슬프게 했음을 알아요.
    어떤 사람들은 나쁘지요.
    그들이 하는 짓들, 그들이 하는 말들.
    하지만 그대여, 나는 그 쓰라린 눈물들을 닦아줄 거에요.
    당신의 파란 하늘을 잿빛으로 변하게 하는,
    그 어찌 못할 두려움을 쫓아버릴 거에요.
    왜 걱정하고 있나요?
    고통 후에는 웃음이 있을 것이고,
    비가 온 후에는 햇빛이 비칠 거에요.
    이런 일들은 언제나 그래왔어요.
    그러니 이제 걱정하지 말아요.

    왕의 방으로 들어간 그는 왕이 앉아있는 테이블 앞에서, 땅바닥을 응시하며 서 있었다. 왕이 그에게 말했다. “고개를 들어라. 너는 내 스승이 되는 것인데, 내가 얼굴을 보아야 하지 않겠느냐?”

    제이드는 고개를 들었고, 왕은 깜짝 놀랐다. 갈색과 빨강이 섞인듯한 머리칼, 초록빛에 가까운 두 눈, 곧게 솟았지만, 튀르크인들처럼 너무 크지는 않은 코, 짙은 쌍꺼풀, 계란형의 얼굴 모양, 화장기도 없는데 붉고 도톰한 입술. 왕은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그는 깊은 호흡을 했고, 평정을 되찾은 후 말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노예는 대답했다. “미옥이라고 하옵니다.”

    “미옥이? 그건 우리 이름 아니냐?”

    “예, 원래 이름은 Sheila Jade Smith입니다. Jade가 옥이라는 의미여서 제 주인이 예쁜 옥, 미옥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래? 미옥이보다는 원래 이름이 더 좋은 거 같은데. 이제부터는 원래 이름을 쓰도록 하여라. 나는 그냥 제이드라 부르겠다.”

    “감사합니다. 폐하.”

    왕, 이강산은 눈앞의 노예가 왠지 마음에 들었지만 그래도 자기를 가르칠 사람이니 출신 학교와 전공을 확인하고 싶었다. 사실 노예의 출신 학교와 전공을 확인하는 것은 대개 무의미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너는 대학을 다녔느냐? 다녔다면 어느 과 출신이냐?”

    “미학과에 들어갔다가 갑자기 노예가 되어 삼 개월밖에 다니지 못하였습니다.”

    “미학과? 아니 그럼 너는 <미학 일리아드>를 쓴 진충권과 <너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우리 문화재청장을 하는 육홍준과 동문이라는 거냐?”

    “폐하, 두 분은 셔ᄫᅳᆯ 대학교 미학과 출신이고 저는 론돈 대학을 다녔습니다. 비록 3개월이지만 말입니다.”

    “그렇구나. 내가 잠시 착각을 하였구나. 다행이로다. 덩(dung) 씨 성을 가진 휘재라는 자와 만날 일이 없었을 것이니.”

    “덩(dung) 휘재? 똥 휘재? 아, 변 휘재! 크크크크크.” 왕의 유머에 감탄하며 손뼉을 치며 한참 동안 웃던 제이드는, 자신이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지닌 왕의 앞에 있음을 상기하고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강의 준비 자세로 돌아갔다. 다행히 왕은 제이드를 혼내지 않았다. 자신의 유머를 제이드가 알아들은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제 공부를 시작하자. 그나저나 벌써 약간 졸린대.”

    제이드는 그 순간 고려국에 와서 배운 말, ‘모 아니면 도.’를 생각했다. 왕이 수업 중 잠이 들면 자신은 죽는다. 그렇다면, 위험을 무릅쓰는 일을 할 필요가 있다. 그는 용기를 내며 이렇게 말했다. “폐하, 그럼 제가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해드릴까요?”

    “그래, 들어보자.”

    제이드가 귀여운 목소리로 말했다. “싫은데요.”

    왕은 노발대발하여 말했다. “뭣이라. 이런 쳐 죽일 년을 보았나. 감히 뉘 안전이라고.”

    “폐하. 잠이 달아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고 보니 그렇구나.”

    왕은 더 화를 내지 않았다. 이 재치있는 젊은 여성의 장난은 통하였던 것이었다. 제이드는 말했다. “폐하, 먼저 다음 문장을 국어로 한 번 옮겨 보시겠습니까? She is really cute.”

    “그녀는 정말로 귀엽다.”라고 왕이 말했다.

    “폐하께서는 당신께서도 모르시는 상태에서, 니뽄(1)의 영향을 받은 말을 하고 계심을 아십니까?”

    “그게 무슨 얘기냐?”

    “폐하, ‘그남’이라고 말해 보십시오.”

    “그남. 어색하군.”

    “그것만큼이나, ‘그녀’도 어색한 말입니다. 어법상 틀린 것이지요. 이 노트를 읽어보시겠습니까?””

    왕은 그의 노트를 읽더니 감탄하며 말했다. “오, 맞는 얘기로다. 너는 어떻게 이런 것을 아느냐? 원어민도 아닌데.”

    “가끔은 외부인이 더 잘 들여볼 수 있지요. 내부에 있는 이는 상황에 매몰되어, 자신의 주위를 돌아보지 못하기 일쑤지요.”라고 제이드가 말했다.

    “맞는 얘기로다. 그런데 니뽄 얘기는 왜 한 것이냐? ‘그’와 ‘그녀’가 그곳에서 수입되었다는 것이냐?”

    “예, 니뽄어의 3인칭 대명사는 남성은 彼(피), 여성은 彼女(피녀)를 사용하는데, 그것이 그와 그녀로 차용된 것이지요.”

    왕은 그 얘기를 듣고 제이드의 지식에 감탄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주제와 관련 없는 얘기를 꺼냈다. 아마도 ‘피’라는 발음에 반응한 것으로 보였다. “너는 혹시 피천덕이라는 이에 관해 들어보았느냐?”

    제이드는 놀랍게도 그를 알고 있었다. “예, 알고 있습니다. 폐하. 제 주인의 아들딸들이 <인연>이라는 소설을 읽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소설? 그것은 수필이 아니더냐?”

    “제가 보기에는 소설입니다. 왜 그걸 수필로 분류하는지 모르겠습니다.”(2)

    “하긴 그게 뭐 중요하겠느냐? 너는 근데 <인연>의 주인공 아사코가 우리말로 조자(朝子)라는 것은 아느냐?”

    “예, 자식을 ‘코’라고 부른다는 것을 음식을 먹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오야코동’이란 게 있더군요. 부모와 자식을 다 잡아먹는 요리, 즉 닭과 달걀이 함께 들어간 덮밥의 이름이 그러하더이다.”

    “‘오야코동’, ‘모녀 덮밥’, 그거 전문용어지.”

    눈이 커진 제이드가 말했다. “예?”

    “음, 이게 야,,, 흠, 아니다. 그만 넘어가자.”

    “그래서 저는 ‘그녀’라는 용어는 앞으로 공부할 때 사용하지 않을 것이고요. 3인칭 단수 대명사를 쓸 때는 남자든 여자든 다 ‘그’라고 하거나, 구어체를 써서 ‘걔’나 ‘그분’이라고 할 것입니다. 성의 구분이 꼭 필요할 때는 ‘그 남자’와 ‘그 여자’를 사용할 것입니다.”

    “그렇구나. 알겠노라. 니뽄 잔재는 다 없애야지. 그럼 공부를 시작하자꾸나.”

    제이드가 왕에게 물었다. “폐하, 요즘 왱문법의 어느 부분을 배우고 계셨습니까?”

    왕은 인상을 찌푸리며 답했다. “아, 법이라고 하는 건데. 내가 헌법이나 형법, 왕실보안법 이런 건 잘 아는데. 훔친 놈은 손모가지를 자른다. 왕실을 엎으려 하는 놈은 때려죽인다. 얼마나 법이라는 게 간단한 거냐? 근데 이놈의 가정법이니, 직설법이니 이런 건 통 느낌이 안 와.”

    “폐하, 그렇다면 제가 재미있는 얘기를 먼저 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안 속는다. 또 ‘싫은데요.’ 그러려고?”

    “아닙니다. 이번에는 진짜입니다.“

    제이드의 이야기

    옛날 어느 나라에 서문정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의 아버지는 그가 20대 중반이었을 때 돌아가셨고, 그는 많은 재산을 물려받았습니다. 그는 그 재산을 물 쓰듯이 쓰며 살았고, 여자들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그는 부인이 있었지만 계속해서 첩들을 취했습니다.

    그는 부인 하나와 세 첩이 있었지만, 다시 세 명의 처녀들에게 동시에 반했습니다.

    첫 번째 처녀에게 그가 구혼했습니다. 그 처녀는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당신의 과거에 대해 모두 다 들었답니다. 저는 결코 당신과 결혼하지 않을 것입니다.”

    약간 낙심한 그는, 두 번째 처녀의 집으로 가서 구혼했어요. 두 번째 처녀는 성격이 괄괄하였고, 이렇게 말하였어요. “내 눈앞에 다시는 나타나지 마. 꺼져버려. 집에 가서 발 닦고 잠이나 자.”

    충격을 입은 서문정은 세 번째 처녀의 집으로 가서 또 구혼했어요. 처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내일 아침에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당신과 결혼하겠습니다. 저 동해의 바닷물이 다 말라버린다면 당신과 결혼하겠습니다.”

    이야기를 듣더니 왕이 말했다. “참 뻔뻔한 놈이군. 세 명한테 다 거절당한 것도 당연하지. 그런데 그 얘기는 왜 해준 것이냐?”

    제이드가 답했다. “폐하께서 법이란 것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고 하셔서 그 얘기를 했습니다. 사람들은 같은 내용을 이야기할 때에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지요. 그런 표현의 방식을 설명하는 것이 ‘법’이라는 개념입니다. ‘나는 당신과 결혼하지 않을 거예요.’라는 표현은 가장 직접적인 방식으로 말하는 이의 뜻을 전달하죠. 그래서 직설법이라고 합니다.

    같은 내용을 전달하지만, ‘꺼져버려. 집에 가서 잠이나 자라.’고 말하면, 그것을 명령법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당신과 결혼할게요.’라는 말은 가정법입니다. 세 가지 말은 모두 ‘나는 당신과 결혼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정보를 전달하지만, 그 방식이 다르지요.”

    “오, 그렇구나. 정보를 전달하는 서로 다른 방식이라. 근데 왜 법이라는 말을 써서 사람을 헷갈리게 하는 거야?”

    “그 용어도 옆의 섬나라 출신 아니겠습니까?”

    “학자란 것들이 니뽄 용어를 무분별하게 도입하고, 아직도 고칠 생각을 하지 않다니. 암튼 재미있구나.“

    “법을 왱어로는 mood라고 합니다.“

    “호. 그건 기분이라는 뜻 아니냐. 그걸 법이라고 번역하다니. 그나저나 기분에 따라 말하는 방법이 달라질 테니 mood는 이해가 쉽구나.“

    제이드가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예 그럼 가정법으로 문장 하나 만들어보시겠습니까? 내가 너라면 자살한다.”

    “아니, 이 무엄한 것이. 방자하구나.”

    “폐하. 가정법 문장을 만들라는 얘기입니다.”

    “아, 그렇지. If I am you, I will kill myself.”

    “틀렸습니다. ‘If I were you, I would kill myself.’입니다.”

    “아, 그렇지. 배운 기억이 난다. 현재에 대한 가정은 가정법 과거. 그런데 왜 현재에 과거형 동사를 쓰는 거냐?”

    “폐하, 현재형은 기본적으로 현재의 사실을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I am a student.’라고 말한다면 그는 자신이 학생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죠. 하지만 누군가가 ‘내가 너라면’이라고 말한다면 그는 ‘나는 네가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 차이를 나타낼 필요가 있고, 그것을 일반적 시제와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겁니다.”

    왕이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일반적 시제와 다른 방식의 표현이라. 현재의 사실이 아님을 드러내기 위해 과거형 동사를 쓴다는 거냐?”

    “예. 그리고 주절에서는 조동사의 과거형을 쓰는 것이고요.”

    “그럼 과거의 일에 대해 가정할 때에는 과거형을 쓰면 안 되겠네. 헷갈릴 테니까.”

    “맞습니다. 과거의 일에 대해 가정할 때에는 과거완료의 형식을 쓰는 것이지요.”

    “그럼 연습을 해볼게. 맞나 봐 줘. 내가 노예라면 나는 자살한다. If I were a slave, I would kill myself.”

    제이드의 눈이 붉어지고 목소리가 떨렸다. “흑. 맞습니다. 폐하. 정답입니… 흑흑.”

    왕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미안하다. 제이드. 짐이 실수를 했느니라.”

    제이드는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폐하. 음. 음. 그럼 이 말도 해 보세요. 그때 나의 아버지가 도박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노예가 되지 않았을 것이었는데.”

    “도박하다가 뭐냐?”

    “gamble이라고 합니다.”

    “If my father had not gambled, I had not become a slave.”

    “폐하. 두 번째 절, 즉 주절에서는 조동사의 과거형을 쓰고 완료적 형태를 씁니다. 다시 말해서 would have 과거분사와 같은 형태를 쓰셔야 해요.”

    “다시 해 볼게. If my father had not gambled, I would not have become a slave.”

    “예, 정확하십니다.”

    “그런데 정말로 네 아비가 도박했기 때문에, 네가 노예가 된 것이냐?“

    제이드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흘렀다. 잠시 후 조금 진정한 그는 자신이 노예가 된 이유를 설명했다. 왕도 가슴 아파하며 제이드의 얘기를 들었다.

    왕이 말했다. “네게 그런 슬픈 사연이 있었구나.”

    제이드가 대답했다. “천한 것의 얘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수업을 다시 하겠습니다.”

    “그러자. 가정법 얘기를 계속해야지.”

    “아닙니다. 가정법 얘기는 나중에 하고, 왱어를 이해하는 기본부터 이야기했으면 좋겠습니다.”

    “기본이라. 그래 기본이라는 것이 무얼 말하는 것이냐?”

    “저는 왱어와 국어의 근본적 차이를 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제가 국어 배울 때 그것 때문에 고생했거든요.”

    “왱어와 국어의 차이라. 뭐 다 다르지. 단어도 다르고. 발음도 다르고.”

    제이드가 잠깐 뜸을 들이더니 갑자기 말했다. “I love you.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무엄하다. 어찌 노예가 왕에게 감히 사랑을 논한단 말이… 아니다. 지금 공부하는 것이지. 그래 그 얘긴 왜 꺼냈느냐?”

    “두 문장의 차이를 말해 보십시오. 단어가 다른 것 말고요.”

    “차이라. 음. 알겠다. 말의 순서가 다르구나.”

    “맞습니다. 왱어는 주어-동사-목적어 혹은 보어의 어순을 갖는 데 반해, 국어는 주어 – 목적어/ 보어 – 동사의 순서에요. 그게 가장 큰 차이 중 하나입니다. 근데 그거 말고 또 중요한 문제가 있어요. 동사의 개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동사의 개념의 차이라니? 그게 무슨 얘기냐?”

    “음, 다른 얘기 좀 해도 될까요? 폐하께서는 고대 구리이스 신화를 읽어보셨나요?”

    “읽었지. 그런데 그건 왜 물어보느냐?”

    “그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이야기를 읽으시면서 무슨 생각이 드셨어요?”

    “글쎄, 꽤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지. 신 중의 으뜸이라는 사람은 바람을 피우다가 마누라한테 들키질 않나. 여신들끼리 서로 누가 더 예쁜지 싸우다 전쟁을 일으키질 않나.”

    “폐하께서 우스꽝스럽게 느꼈다는 것은, 결국 폐하의 마음속에 신에 대한 어떤 이미지가 있다는 얘기일 것입니다. 폐하께서 생각하시는 신은 인간적 감정을 지닌 존재는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고대 구리이스인들의 신에 대한 생각은 달랐던 것이죠. 결국 신이라는 개념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죠.”

    이강산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것을 본 제이드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신에 대한 생각은 각 신을 믿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일신교를 믿고, 어떤 사람들은 다신교를 믿는데, 양 종교의 신의 이미지는 매우 다릅니다. 일신교의 신은 전지전능한 세상의 창조자이며 결함을 가질 수 없는 절대적 존재입니다. 다신교는 다양한 신을 가지고 있으며, 신들은 인간의 성질을 갖기도 하며 자연계의 어떤 특징들의 반영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다신교의 신들의 이미지는 일신교의 신의 이미지와는 다르지요. 예를 들어 구리이스 신화의 신들은 인간이 가지는 약점들도 가지고 있는, 질투하고, 욕심도 있고, 문제도 있는 인간에 가까운 존재들입니다.”

    왕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그럼 구리이스 신화에서 욕심도 있고, 문제도 있는 신의 얘기를 좀 해줘. 재미있을 것 같네.”

    제이드는 약간 고민했다. 이십 대 초반의 여성이 왕 앞에서 신들의 왕이 여성들을 성폭행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야기를 전하겠다고 결심했다. 왕이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절대로 잠이 들지 않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레다와 백조>라는 이야기를 들어보셨나요?”

    “아니. 처음 듣는데.”

    “제우스는 대단한 난봉꾼이었어요. 수백 명의 여성을 ‘건드렸는데’, 그중에는 당연히 유부녀도 있었죠. 레다는 스파르타의 왕 틴다레오스의 아내 레다가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독수리에게 쫓기는 백조로 변해서 레다와 성관계를 맺어요.”

    Léda et le cygne (‘Leda and the Swan’), Théodore Géricault (프랑스, 1791-1824)

    왕이 말했다. “그건 얼마 전에 새로 법이 만들어진 ‘위계에 의한 간음’ 아니냐?”

    제이드는 그 법률을 몰랐지만, 의미를 알 것 같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야기를 이었다. “레다는 그 후 두 개의 알을 낳았고, 그 알 중 하나에서, 헬레네가 태어나요.”

    “헬레네! 그 유명한 트로이 전쟁의 불씨가 되었던, 최고의 미녀였다는 여인 아니냐?”

    “예, 그렇죠. 트로이 왕자 파리스가 역시 유부녀였던, 스파르타 왕의 부인이었던 헬레네를,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도움을 받아 유혹해서 트로이로 데리고 가고, 그래서 트로이 전쟁이 일어나게 된 거죠.”

    이강산은 신이 나서 말했다. “하나만 더 얘기해 줘. 이거 진짜 재미있는데.”

    제이드는 이번에는 간략하게 에우로페 이야기를 전했다. 제우스는 에우로페의 아름다움에 반했고, 하얗고 멋진 황소로 변해서 그에게 접근해 그를 등에 업고 바다로 들어가 크레타로 납치해서 그를 성폭행한다. 에우로페의 이름으로부터 Europa, Europe 등 현재의 유럽의 이름이 나왔다.

    The Rape of Europa (1590), Maerten De Vos (네덜란드, 1532 – 1603)

    왕은 구리이스 신화의 신, 혹은 다신교의 신이 어떤 존재인지 확실하게 이해했다. 그는 이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다신교의 신이 어떤 존재인지 잘 알겠다.”

    제이드가 말했다. “두 명의 사람이 같이 신에 관해 얘기하고 있다고 해도, 그 두 사람의 신에 대한 생각이 다르면 의사소통이 안 되거나 오해를 할 수 있겠죠.”

    “그렇겠지.”

    “그렇게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말 중 하나가 동사라는 말입니다.”

    “흥미롭구나. 계속해 보아라.”

    “국어에서 ‘아름답다’라는 말은 형용사인가요, 동사인가요?”

    “나를 무시하는 거냐? 명색이 왕인데. 아름다운 것은 동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니까 형용사지.”

    “예, 저도 그렇게 배웠습니다. 그럼 두 문장을 말해 볼게요. 김태휘는 아름답다. Kim Taehwi is beautiful.”

    “태휘. 걔 참 예쁘지. 근데 연기력은 좀 …”

    “폐하. 체통을 지키시옵소서.”

    왕이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알았다. 그래 두 문장에 무슨 차이가 있다는 거냐?”

    “국어 문장을 문법적으로 분석하여 주세요.”

    “‘김태휘’는 명사. ‘는’은 조사. ‘아름답다’는 형용사지.”

    제이드가 말했다. “‘Kim Taehwi’는 명사. ‘is’는 동사. ‘beautiful’은 형용사.”

    “어, 국어에는 없던 동사가 왱어에는 있네.”

    “맞아요. 그게 국어와 왱어의 가장 큰 차이 중 하나입니다. 국어의 문장은 주어+동사, 주어+형용사, 주어+명사+‘이다(모음으로 끝나는 명사 뒤에서는 다)’, 이렇게 세 가지 기본 구조로 만들어질 수 있어요. 예를 들어주시겠어요?”

    “그거야 쉽지. 나는 움직인다. 나는 아름답다. 나는 왕이다.“

    ”모음으로 끝나는 명사 뒤에서 ‘다’를 활용하는 것의 예는요?“

    ”나는 가수다.“

    “예, 맞습니다. 결론적으로 국어에는 모든 문장에 동사가 있는 것은 아니죠. 하지만 왱어에서는 모든 문장에 동사가 있어야 해요. 어떤 의미에서는 ‘동사’라는 번역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어요. 왱어로는 verb라고 하는데, 사실 be 같은 말은 움직임과 관련된 말은 전혀 아니니까 동사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죠. 동사의 동자는 ‘움직이다’의 뜻이니까요. 아마도 ‘술어’나 ‘서술어’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노트에 있는 각각의 정의를 읽어보시죠.”

    Verb의 사전적 정의: a word or phrase that describes an action, condition, or experience. 어떤 행위나, 상태나, 경험을 묘사하는 단어 혹은 구.

    동사(動詞)의 사전적 정의: 사람이나 사물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품사이다. 형용사와 함께 용언에 속한다.

    왕은 두 용어의 정의를 읽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구나. 그래서 내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었나 보다. 내가 처음에 왱어 공부할 때 ‘너는 나쁘다’가 ‘You bad.’라고 생각했었지.”

    제이드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아메니카에 사는 흑인들 중 일부가 그렇게 말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래? 인종에 따라 말도 다른 건가?”

    “꼭 그런 건 아니고요. 방언 비슷한 거라고 볼 수 있어요. 사실 왱어는 나라마다, 지역마다 상당한 차이가 있어요. 왱글랜드와 아메니카 왱어가 다르고, 오스트레일라 말도 또 다르죠. 예를 들어 better 같은 단어의 발음 차이를 들어보셨을 거예요. 왱글랜드 식은 ‘베터’에 가깝고, 아메니카 식은 ‘베러ㄹ’ 같은 식이죠. 근데 웃기는 건 사람들이 왱글랜드에서는 단어 끝에 원래 그 [r] 발음이 없었는데, 아메니카에서 그렇게 발음하기 시작했다고 착각하는 거예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닌 가보구나.”

    “스펠링에 r이 들어간다는 것은, 그런 스펠링이 도입되던 때에는 분명히 그 발음이 있었다는 것이죠. 그렇지 않겠어요?”

    왕은 잠시 생각한 후 답했다. “그렇겠구나. 없는 음을 철자에 반영했을 이유가 없었겠구나. 그런데 왜 왱글랜드에서는 사라지고, 아메니카에는 남아있는 것이냐?”

    “여러 설이 있지만, 중심부와 주변부 설이 가장 큰 지지를 받고 있어요. 언어는 항상 변화하죠. 그래서 그 언어가 원래 탄생했던 곳인 왱글랜드에서는 단어 끝의 r 발음이 사라졌어요. 하지만, 다른 대륙으로 이민을 떠난 사람들은, 먼 고국에 있던 조상의 것을 지키고자 하는 애착이 더 강했다고 해요. 그래서 r 발음도 남은 것이지요.”

    이강산이 고개를 끄덕였고, 제이드가 말을 이었다. “셰익스피어의 발음을 연구했던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그의 발음은 현재의 아메니카 식 발음과 훨씬 가까웠을 거라고 해요. necessary를 예로 들면, 아메 식으로는 네써쎄리[nésəsèri]이고, 왱글 식으로는 네써써리[nésəsəri] 거든요. 아메 식에는 강세가 두 번 있고, 반면에 왱글 식에는 한 번만 있고, 발음도 달라요. 그의 시를 읽어보면 [nésəsèri]로 발음해야만 운율이 맞는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왱시의 운율의 기본은 약 강 약 강의 박자가 이어지는 것이거든요. [nésəsəri]로 발음하는 경우 세 음절 중 가장 앞의 네[né]에만 강세가 있게 되므로 운율이 깨져 버려요. 그러므로 현재의 왱어 발음은 아메 식이 왱글 식보다 더 과거와 유사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이지요.”

    왕은 이 노예의 학식에 감탄하며 말했다. “대단하구나. 다 일리가 있는 것 같다. 나도 그거와 비슷한 얘기는 들었다. 지나의 옛 시들을, 예를 들어 당시를 연구하다 보면, 각운을 맞추는 마지막 한자의 발음 변화를 알 수 있다고 하더라.”

    “그럴 수 있겠네요. 어쨌든 결론은, 말하는 방식의 차이와 인종 간의 관련성은 그다지 크지 않고, 지역적 차이가 더 본질적이라는 거예요. 아메니카 남부의 경우 흑인 노예들이 어린아이들을 돌보곤 했기 때문에, 백인들의 말투에도 흑인들의 말투가 영향을 많이 미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부 말은 북부와 많이 차이가 난다고 들었습니다. 고려도 마찬가지로 지역적 차이가 크죠. ‘너 어디 가니?’와 ‘니 어데 가노?’는 순전히 지역적인 차이 아니겠습니까?”

    왕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푸하하. ‘학실히’ 이해할 수 있겠노라.”

    제이드의 눈이 동그래졌다. “예? ‘학실히’라뇨?”

    “응, ‘확실히’를 ‘학실히’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거든. 아니다. 그 얘기는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하자꾸나.”

    “예. 자, 정리할게요. 왱어의 verb와 국어의 동사 개념은 일치하는 것이 아닙니다. 왱어에는 모든 문장에 verb가 다 들어가요. 그래서 많은 수의 사람들이 ‘문장의 형식’을 ‘동사의 형식’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강의도 하고 그래요.”

    왕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말한다. “너 혹시 1~5형식 얘기하려는 거냐?”

    “아닙니다. 저는 그런 식으로 강의를 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 용어들 또한, 아마 니뽄의 영향 아닌가 합니다.”

    “오, 네가 정말 훌륭하구나. 니뽄의 잔재는 다 없애야지. 이놈의 나라의 호족들은 아직도 니뽄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

    그때 닭 울음소리가 들렸다. 새벽이 왔다. 이제 하늘은 붉게 물들어 있다. 왕은 새벽이 왔음에 기뻐했다. ‘나는 이 재치 있는 노예를 죽이지 않아도 되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하며, 왕이 말했다. “결국, 내가 졸지 않고 밤을 새워 공부하였구나. 이런 경우는 처음이네. 네 능력이 참으로 뛰어나구나.”

    제이드가 답했다. “황송하옵니다. 폐하.”

    “오늘 밤에 또 보자꾸나. 수고하였느니라.”

    제이드가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왕의 방을 떠났다.

    제이드의 요점 정리 노트

    1, 언어는 모두 다르며, 성과 관련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나는 언어가 있는가 하면, 상대적으로 그런 변화가 적은 언어도 있다. 한국어에는 남녀 차이에 의한 변화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반면에, ‘인도 유러피언 어족’이라고 불리는 언어들의 경우 성에 따른 변화가 상당히 많은 편이다.

    예) 독일어는 남성, 여성, 중성 명사 앞에 쓰이는 정관사도 다르다.

    Die Frau 성인 여성, Der Mann 성인 남성, Das Flugzeug 비행기

    그렇다고 우리가 die와 der, das를 다르게 번역할 이유는 전혀 없다.

    마찬가지로, 영어의 3인칭 대명사가 성에 따라 she와 he로 달라진다는 점 또한 우리의 언어생활에 영향을 미쳐야 할 그 어떤 이유도 없다. 우리말의 3인칭 대명사는 자신과의 관계(지칭하는 이의 지위, 지칭하는 이의 위치 등)에 따라 변화할 뿐이다. 사실 우리말의 대화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사람을 지칭하는 3인칭 대명사는 ‘걔’일 것이다.(3)

    2. 영국 영어와 미국 영어

    영어의 두 갈래 사이에는 발음의 차이가 두드러지며, 철자의 차이가 있기도 하다. 단어 숙어들의 차이가 있고, 동사의 사용도 다른 점이 어느 정도 있다.

    예)

    영: colour, flavour, centre, aeroplane

    미: color, flavor, center, airplane

    영: Have you got a car?

    미: Do you have a car?

    영: What have I got to do to make you love me? (Elton John,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 당신이 나를 사랑하도록 하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죠?

    미: What do I have to do to make you love me?

    영미어의 단어 차이 예시

    3. 국어와 영어의 어순 차이

    1) 주어 목적어 동사 대 주어 동사 목적어

    걔는 나를 사랑해. vs. He/ She loves me.

    2) 주어 동사 보어 대 주어 보어 동사

    그분은 음악가가 되었다. vs. She/ He became a musician.

    4. 국어와 영어의 동사/ verb 개념 차이

    1) 국어의 동사는 문장을 구성하는 술어 중의 한 종류.

    동사가 있는 문장: 로날도가 나를 때렸다.

    – 동사가 없는 문장

    크리스티나는 아름답다(형용사가 술어).

    케빈 듀랜트는 농구선수이다(명사+서술격 조사가 술어).

    2) 영어의 verb는 모든 문장에 필수적인 것이다. 영어의 verb는 동작뿐 아니라 상태도 나타내는 품사이다.

    Ronaldo hit me.

    Christina is beautiful.

    Kevin Durant is a basketball player.

    3) 국어와 달리 영어에는 모든 문장에 verb가 존재하므로 verb의 유형에 따라 문장의 유형을 나눌 수 있다.

    <각주>

    1. 필자는 일본을 비하하려는 의도로 이 말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판타지 소설의 특성상 국가 이름을, 한국은 고려, 일본은 니뽄, 중국은 지나, 영국은 왱글랜드, 미국은 아메니카, 이탈리아는 아이따리아 등으로 변형하였을 뿐이다. 그리고 ‘일본’은 일본인들도 ‘니혼’, ‘니폰’, ‘니뽄’ 등으로 발음한다.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유니폼에 ‘NIPPON’이 새겨져 있었음을 2002 월드컵 축구를 보셨던 독자들께서는 기억하실 수 있을 것이다.

    2. https://ko.wikipedia.org/wiki/피천득 참조

    3. 5일 정도 레디앙 사무실에서 사람들의 말을 청취한 결과, ‘그’나 ‘그녀’를 구어에서 사용하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사람들은 보통 3인칭을 지칭할 때 이름으로 부르거나(류호정, 이준석, 윤석열, 조국 등), 성으로 부르거나(심, 문 등), ‘걔’, ‘그놈’ ‘그 새끼’라고 불렀다.

    필자소개
    정재영(필명)은 서울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작가이다. 저서로는 「It's not Grammar 이츠낫 그래머 」와 「바보야, 문제는 EBS야!」 「김민수전」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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