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재판 앞두고 다시 예열 시작
    '국제노동조합'에 퇴직금 받아내는 분투기 최종편-③
        2021년 07월 22일 01:5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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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노동조합’에 퇴직금 받아내는 분투기 최종편-②

    2021년 6월 22일 첫 재판을 앞두고
    왜, 너만 옳고 나는 틀려?! – 다른 입장 되어보기

    ‘기다림’의 시간 동안 내 인생 최초의 주식공부는 그간 알고 있던 세계 너머를 보게 했다. (②편 마지막에 담은 중간보고서 속) 주식공부 방법론으로 보자면, 내가 익히 봐왔던 정세분석 방법론과도 맥이 닿아 있다. 다만 그 용도가 다를 뿐이다. 주식공부를 목적으로 읽어본 책들이나 2개 라디오 채널의 경제방송을 통해 다른 세계를 들여다보니 그들의 눈에 내 모습은 어떨까 뒤집어보게 됐다. 누구의 말처럼 ‘다툼이 있을 때는 상대가 옳다는 것을 전제로 나의 논리를 개발하고 대응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 생각에 갇혀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거니와 문제 해결의 실마리도 잡기 쉽지 않다.

    마찬가지 의미로 IUF는 ‘근로계약서 조항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한편의 ‘진실’에 갇혀 ‘퇴직금 지급은 대한민국 근로기준법상 강행규정’이라는 다른 한편의 진실인 내 주장을 무시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각종 근로 관련 수당 등 법이 보장한 금전 청구를 막았던 IUF의 포괄계약서가 문제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아무런 말 없이 서명한 내게도 분명 잘못은 있었다. 하여 아쉬운 건 나니까 우선 그들의 주장에 빙의해봤다. IUF도 억울할 것 같다. ‘애초 계약서 잘못 쓴 네(나) 탓도 해야지, 이제 와 이런 식으로 하면 곤란하잖아?’ 뭐, 그 말도 일리는 있다.

    그렇다고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나로서는 1년 넘는 괴롭힘 끝에 해고까지 당했는데, 복직투쟁으로 너희(IUF)를 성가시게 하는 것 대신 법정 퇴직금이라도 받아내야지 덜 억울하겠다고 생각해 맞섰던 거다. 더군다나 이렇다 할 다른 경력 없이 노조 활동만 20년인데 퇴직금도 못 받고 쫓겨났다고 하면 어디 가서 명함을 내밀쏘냐. 나도 사람인데 ‘실수’할 수 있다. 그 ‘실수’를 (쉽지 않더라도) 방법이 있다면, 혹은 찾아낼 수 있다면 만회하고 싶었던 거다. 그래야 앞으로 사는 내내 덜 창피할 것 같았으니까.

    제네바 소재 피고1에 송달이 되다

    올 1월 초 변호사가 내게 연락했다. 재판부에서 2020년 11월 26일자로 피고1에게 소장과 증거서류, 변론기일통지서 등이 송달됐다는 소식을 알려왔다고. 마치 판결문을 받은 것처럼 기뻐했다. 송달이 안 되면 사건 진행이 되지 않는다. 계획했던 제2, 제3의 대응을 할 수는 있겠지만, 승소판결문이라는 ‘뒷배’를 가질 수 없으니 또 다른 방법을 찾아나서야 한다. 그러니 새해 첫 선물로 이만한 게 있을까 싶을 정도로 너무나 기뻤다.

    내 사건 재판부도 국제소송에서 ‘송달’이 쉽지 않다고, 그 첫 관문 중 하나로 법원행정처 국제심의관실을 예로 들었다. 국제심의관실은 관련 송달 서류 검토를 까다롭게 하는 걸로 유명해 한두 차례 서류가 반려 당하는 건 일도 아니라고 했다. 그럴 경우 시간 지연은 물론이고, 이미 번역공증을 받은 서류에 대해서도 보정을 명령한다면 그에 따른 추가 수정작업과 함께 추가 공증비용도 지불해야 한다. 그럴 수 없다는 각오로 영어, 불어, 인도네시아어로 된 3개 언어 번역본을 받아들고 눈에 불을 켰다. (퇴직금 받아내기 2년차 분투기에 썼지만) 한글 소장과 국영문 혼용의 원본 증거서류에 맞춰, 3개 번역본의 내용은 물론 형식까지 최대한 똑같이 만들었다.

    복병은 공증사무소에서 나왔다. 공증사무소는 그간 교차번역문의 공증 사례가 없었다고 한다. 내 사건에서 왜 국영문 혼용 증거서류가 있을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공증사무소가 납득한 것은 변호사와 나의 3번째 공증 시도 실패에서였다. 이해가 되니 그 다음은 빨랐다. 마침내 서류 꾸미기 4번째에 공증사무소의 도장을 받았다. 그럼에도 3차례 시도와 실패로 인한 심리적, 체력적 감당은 나와 변호사의 몫이었다.

    이어서 다시 마음을 졸이게 한 법원행정처 국제심의관실의 서류 심사 과정. ‘코로나 대유행으로 인해 스위스로 가는 항공편에 추가 송달료 납입이 필요하다’는 말로 국제심의관실에서 우리가 낸 서류가 별 탈 없이 통과된 것을 알게 됐다. 휴~ 그렇게 (이듬해 1월 알게 됐지만) 2020년 11월 26일, 헤이그송달협약(국제민사사법공조법)에 따라 스위스 중앙당국에서도 별 문제제기 없이 내 사건 관련 서류 일체가 피고1에게 송달이 된 것이다. (판결 이후 제2단계 투석投石으로 국제형사사법공조법을 이용하려 계획 중이었으니, 이 때에도 사건 관련 내용과 형식을 민사소송 때처럼 최대한 갖춘다면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희망을 갖게 해줬다.) 반면, 인도네시아는 소식이 없었다.

    피고 분리 시사

    [대법원 나의사건검색 사이트]에 접속해 사건번호와 이름, 자동입력방지문자를 입력하면 내 사건진행정보를 알 수 있다. 피고1(제네바 본부) 송달 이후 피고2(인도네시아 아태지역본부) 송달은 여전히 감감무소식이다. 4월 중순 변호사에 연락, 두 피고 중 한 곳만 송달될 경우 재판 진행이 어떻게 되는지 재판부에 문의해줄 것을 요청했다. 5월 초 변호사는 ‘인도네시아 송달이 안 되고 있지만 일단 6월 22일 첫 재판까지 기다려보되, 그때까지 안 될 경우 피고 분리를 고민 중에 있다’는 재판부 입장을 전해왔다.

    ‘피고 분리’의 의미는 우선 송달된 피고1을 대상으로 재판을 진행한다는 말이다. (첫 재판 가서 알게 됐지만) 피고2에 대해서는 별도의 변론기일과 선고기일을 지정해 사건을 진행한다는 의미다. 고로 소송을 취하하지 않는 한 규정대로 재판은 진행되는 거고 (재판 도중 피고2에게 송달이 되어 다시 사건이 병합되지 않는다면) 피고1에 대한 판결이 먼저 내려질 가능성이 크다는 거다. 다행이다.

    다른 한편, 예상치 못한 피고 분리라는 상황에 놓였으니 그에 따른 이후 대응을 어떻게 할지 생각해봤다. 대응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았다. 피고1에 대해서 내가 승소한다면 그 자체로 유효수로 활용 가능하고, 더군다나 조직의 평판에 책임이 있는 건 본부가 더 클 수밖에 없을 테니, 제2, 제3의 대응이 갖는 효과 측면에서는 더 낫지 않을까 하는 긍정적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게 다시 판결 이후 대응 가능한 수를 머릿속에서 돌려봤다.

    6월 15일 변호사에 연락해 피고 분리 및 재판 진행 여부를 재확인 문의했다. 재판부에 문의해본 변호사는 예정대로 변론은 진행되고 피고 분리 건은 당일 재판에서 거론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제 정말로 재판이 시작되는구나!

    필자소개
    전 IUF 아태지역 한국사무소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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