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태인의 귀환을 기원하며
    [기자생각] 진보의 "유기적 지식인"
        2022년 07월 05일 09:3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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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도 갑자기 불러갔다. 이광호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정태인 박사와 술을 먹고 있는데 너가 보고 싶다고 하면서 불러내라고 하니, 시간 되면 오란다. 사당역이었다. 오는 거 안 막고 가는 거 안 잡고, 오라고 하면 그냥 가고 가고 싶을 때는 가지 못하는 그런 웃기는 스타일이어서 그날도 바로 나갔다. 하지만 이미 취기가 많이 된 상태여서 대화는 제대로 못했다. 이러 저런 일방적인 질타와 문제제기 그리고 화두를 던져주고는 자리를 파했다. 왜 불렀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호출을 이전에도 몇 번 당했다.

    정태인 박사와는 민주노동당 때부터 안면을 트고 인연이 생겼다.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 경제 비서관 출신이라는 것, 박현채 선생의 마지막 제자임을 자처한다는 것, 심상정 의원의 절친, 천재의 면모와 보헤미안의 기질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정도를 알 뿐이었다. 그런 이가 민주노동당의 지식인, 진보정치의 내부인이라는 게 반가웠고 고마웠다.

    그럼에도 아니 그렇기에, 나와는 별로 접점이 없었다. 살가운 인연을 두둑하게 쌓은 사이도 아니었지만 생각의 방향과 결도 비슷하지 않았다.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시니컬함과 노동운동 계급운동에 대한 거리두기, 진보정치의 역사와 방향에 대한 생각의 차이 등을 느꼈고 그래서 몇 번 부딪힐 때는 나도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좌파적 자유주의, 자유주의 좌파의 이념을 고수하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물론 그건 틀리고 맞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진보정당 내의 소중한 지식인이고 중요한 이념가, 정책가라는 생각이었다. 진보정당 외부의 방관자 관전자가 아니라 진보정당 내부의 사람이면서 생각과 정책과 이슈에 대해 거리낌 없이 발언하는 그의 태도가 좋았고 그 부딪힘이 진보정치를 풍성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민주노동당 이래 지금의 정의당까지 진보정치의 역사는 한 측면에서는 노동자 농민 등 계급 대중의 실천과 운동에 접목하면서 발전하거나 거리를 두면서 휘청거리는 곡절의 길이었다고 한다면, 다른 한 측면에서는 진보적 좌파적 변혁적 지향의 지식인 공동체와 굳건하게 결합했다가 그 고리들이 하나씩 흔들리고 떨어지고 마모되는 과정이었다.

    계급 대중 혹은 다양한 사회운동이라는 아래로부터의 운동과 우리 사회의 변화 방향에 대한 이념, 지성의 고민이 결합하고 견제하고 서로 자극을 주고받는 관계가 이상적인 모델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 양쪽에서 조금씩 퇴행해왔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 지점에 지금 우리가 반성하고 성찰하고 회복하고 업그레이드를 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을 보통 기득권 거대양당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그게 단지 의석수의 양적 수치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그 양당 주변의 수많은 인프라와 네트워크들이 한국 사회를 장악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지식인 사회 또한 마찬가지이다. 가장 좌파적이고 급진적인 담론과 논리를 펴는 이들이 정치적 입장에서는 마치 강력한 자석 주변의 철가루처럼 양당 주변으로 무력하게 혹은 자발적으로 흡수되는 모습을 우리는 가끔, 아니 자주 본다. 역설적이고 아이러니한 모습이지만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그런 모순덩어리이기도 하니…

    그런데 진보정치와의 동맹자였던 진보 지식인 공동체는 어떤가를 돌아본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런 지식인 개개인의 선택과 모습이 아니라 그런 지식인들에 대한 진보정당의 계획, 고민, 관계를 돌아보게 된다. 진보정당의 이념과 지식의 토대는 탄탄한가? 진보정당의 유기적 지식인들은 안녕한가? 사회변화에 대한 치열한 논쟁과 고민들은 과거형이 아닌 현재형으로 진행되고 있는가?

    그래서 더더욱 정태인이 보고 싶다. 진보정치의 유기적 지식인이고 진보의 관성적인 모습에 저항하고 질타하는, 그러면서도 디테일한 면까지 고민하는 정책가 정태인이 보고 싶다. 위중한 환자의 처지에서 암세포에 지지 않으려 분투하고 있는 정태인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페북에서 가끔 보이는 그의 삐뚤삐뚤하고 무너져있는 글자들이 쓰리고 또 반가운 이유이다.

    나는 그와 생각이 적지 않게 다르다. 그 다름을 확인하고 부딪히고 배우고 싶다. 동료이자 선배이자 진보정당의 소중한 사람으로 그가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며….

    정태인의 페이스북 이미지. 함께 아는 친구가 1천명이 넘는구나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장, 전 진보신당 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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