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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바랜 물건으로 추적한 근현대사
    [책]『역사 컬렉터, 탐정이 되다』(박건호/휴머니스트)
        2023년 01월 21일 08: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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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물건에서 출발해
    거대한 역사로 건너가는 역사 컬렉터의 추리극

    호적 문서 속에는 111세까지 해방되지 못한 노비의 비밀이, 졸업 사진 속에는 3·1운동 중 행방이 묘연해진 소년의 사연이, 유언장 속에는 아내와 아이를 버리고 떠나야만 했던 청년의 사정이 숨어 있다. 역사 컬렉터의 수집품들은 얼핏 빛바래고 사소해 보이지만, 그 속에 숨겨진 증거와 단서를 건져내자 시대의 놀라운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역사를 파헤치는 집요함, 공백을 채우는 상상력,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겸비한 역사 컬렉터 박건호! 《컬렉터, 역사를 수집하다》에서 시대·사람과 깊이 교감하며 생동감 넘치는 역사 이야기로 독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그가 ‘역사 탐정’이 되어 돌아왔다. 이번 책에서 그는 탐정과 같은 예리함으로 수집품에 담긴 역사를 더욱 밀도 있고 입체적인 방식으로 좇아 나선다. 빛바랜 물건으로 추적한 한국근현대사 열 장면을 만나보자.

    #1 예사롭지 않은 사건의 냄새, 수집품 속 숨겨진 이야기를 뒤쫓다!
    _집요한 호기심과 탐구심, 행간을 이어 붙이는 역사적 통찰과 상상력
    _독자와 동행하는 색다른 스타일의 역사 읽기

    저자가 우연히 마주한 130여 년 전 호적 자료엔 기이하고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초고령의 노비, 갑덕의 사연이 담겨 있었다. 조선시대 당시로는 상상하기 어려웠을 나이인 111세가 되도록 주인집에 딸려 있던 것이다. 노파가 그토록 오래 신분적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아니, 애초에 그녀가 실존 인물이긴 했을까?

    저자는 자료마다 불쑥 솟아나는 질문을 붙들고 흥미로운 추리를 시작한다. “수집한 자료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꼭 남겨 달라는 애타는 부탁, 어쩌면 절규”가 들려온다는 저자는 증거물을 그러모으는 탐정처럼 자료 더미를 파헤쳐 나간다. 풀리지 않는 의문을 해결하고자 경매에 올라온 문서를 죄다 사 모으는가 하면, 힌트가 있을 만한 곳이라면 수소문해 전국 어디든 달려간다. 몇 날 며칠 자료가 뚫어질 듯 관찰하는 건 기본이요, 혹시 지나쳤을 정보가 있을까 사진 뒷면을 칼로 긁어 해부하기에 이른다. 그의 긴장 어린 호기심이 이끄는 곳엔 언제나 예사롭지 않은 사건의 냄새가 나고, 예리한 눈과 집요한 손으로 포착한 정보들은 시대를 추적하기 위한 단서가 된다.

    하지만 파편적인 자료들은 스스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법이 없다. 서로 무관해 보이는 자료들 사이의 연관성을 발견해내고 행간을 이어 붙이는 건 바로 저자의 역사적 통찰과 상상력이다. 역사학과 기록학을 전공하고, 수십 년간 학생들에게 역사를 가르쳐온 선생님이기도 한 저자는 해박한 역사적 배경지식을 통해 맥락을 잇는다. 그리고 그의 상상력은 건조한 자료 속 무표정의 얼굴, 낯선 이름, 추상적인 숫자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에피소드마다 다채롭게 전개되는 이야기를 통해 그는 자연스럽게 독자를 일제강점기 도심 한복판으로, 1960년대 초등학교 교실로 데려간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역사자료를 전지적 관점에서 설명하는 대신, 그 자료들이 가진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독자와 동행하며 찾아”간다. 그 이야기의 끝엔 한국근현대사의 중요한 장면이, 그 장면을 이루었던 평범한 사람들의 사연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추론의 결론이 불완전하면 불완전한 대로 저자는 해석의 여지를 남기며 독자에게 후속의 추리를 맡긴다. 고유하고 색다른 박건호식 역사 읽기의 미덕은 바로 여기에서 빛을 발한다. 원하는 결론을 위해 무리한 해석을 덧붙이거나 섣불리 넘겨짚는 것보다 “그것을 도출하는 역사학적 사고의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따라가던 독자는 역사 해석에 있어 가장 까다롭지만 그렇기에 매력적인 과정에 능동적으로 동참할 기회를 얻게 된다.

    사진 인화지와는 다른 누런 갱지가 뒷면에 붙어 있었다. 혹시 이 누런색 종이 안쪽에 또 다른 정보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 메타데이터를 찾기 위해 사진 뒷면을 ‘발굴’해보면 어떨까? 나는 혹시나 있을지 모를 새로운 정보를 찾아 마치 땅속에 묻힌 유물을 발굴하듯이 누런 종이 밑에 있는 글자를 파헤쳐보기로 했다. 커터 칼로 종이를 조심스럽게 떼내기 시작한 지 5분여 만에 첫 글자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_223 〈#9 인민군 철모를 쓴 한국군〉에서

    신상덕은 전당포를 빠져나와 집으로 향했다. 이 15냥으로 급한 불은 끌 수 있겠으나 앞으로 어떻게 살지 여전히 걱정인 상덕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몰락한 양반이라는 자신의 처지가 한탄스러웠다. 요즘 나라 상황도 뒤숭숭하기 이를 데 없는데, 전당포에 맡기는 폐탕건은 흡사 망해가는 나라 처지 같았다. 만나는 사람마다 대한제국이 곧 일본에 넘어갈 것 같다고 수군거리고 있었다. 문득 스치는 봄바람에 약간의 열기가 섞여 있었다. 이 나라가 이번 봄, 아니면 이번 여름까지는 버틸 수 있을까? 내 가족은 그때까지 무사할까? 온갖 걱정을 짊어지고 터덜터덜 걷던 상덕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경술년 나라 꼴이나 내 꼴이나…….’ _61 〈#2 “거지 같은 양반도 양반 아니오?”〉에서

    학생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더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3·1운동이 가장 뜨겁게 전개되던 시기에 촬영한 졸업 사진 속 학생 하나가 보이지 않는다면, 그 학생이 3·1운동과 연관되었을 개연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작은 수집품 하나에도 이렇게 많은 사연과 비밀이 담겨 있다. 내가 밝힌 것은 이만큼이다. 나중에 또 누군가가 사라진 생도의 행방에 대한 다른 추론이나 진실을 들고 나타날지 모르겠다. 그때를 기다려본다._111 〈#4 사라진 생도는 어디로 갔을까〉에서

    #2 가장 사적이고 미시적인 이야기에서 가장 공적이고 거시적인 역사로
    _평범한 사람들의 사소한 하루가 쌓여 역사가 되다

    교과서에서 배운 굵직한 사건, 거대한 정책, 비범한 인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역사의 빈칸들을 떠올려보자. 예컨대 교실에서 1960년대 현대사를 공부할 때면 ‘경제개발 5개년’, ‘경부고속도로’, ‘한일 협정’ 따위의 키워드를 달달 외운다. 그렇다면 이것이 바꾼, 혹은 바꾸지 못한 실제 삶의 풍경은 어땠을까? 큰 구조로 시작하면 평범한 사람과 일상의 자리는 사라지고, 건조하고 멀게 느껴지는 텅 빈 용어들만 남게 된다. 박건호의 역사 이야기는 거꾸로 작은 물건에서 시작해 큰 역사로 건너간다. 하나하나 모은 수집품을 통해 그 사진이 찍힌 시간으로, 문서에 담긴 사람으로, 사물이 놓인 공간으로 접속한다.

    위세를 잃은 지 오래지만 자존심을 지키려 궁리하는 양반, 3·1운동이 한창이던 때 졸업 사진을 찍으러 등교한 소년, 전쟁통에 아내에게 편지를 쓰는 청년……. 저자의 이야기에서는 평범한 사람들이 역사의 주인공이 된다. “역사의 구조만큼 역사 속 개인들이 가진 개별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저자는 “추상적 구조 뒤에 가려진 개개인의 삶을 찾는 일”에 본능적으로 관심과 마음을 쏟는다. “구조가 과거의 모든 역사를 설명할 수 없고, 구조가 사람 그 자체일 수는 없다”라고 말하며, 가장 사적이고 미시적인 이야기를 통해 가장 공적이고 거시적인 역사를 선보인다. 그렇게 저자는 이야기 곳곳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사소한 하루가 쌓여 역사가 된다’는 깨달음, ‘우리 모두가 역사의 주인공’이라는 감동을 선사한다.

    왜 그 한 명의 생도는 졸업 사진에 등장하지 않은 걸까? 그리고 그는 누구일까? 이 궁금증이 쓸모없다 여겨질 수도 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하나의 단서 속에 중요하고 거대한 사실이 담겨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3·1운동이 가장 뜨겁게 전개되던 시기에 촬영한 졸업 사진 속 학생 하나가 보이지 않는다면, 그 학생이 3·1운동과 연관되었을 개연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작은 수집품 하나에도 이렇게 많은 사연과 비밀이 담겨 있다. _111 〈#4 사라진 생도는 어디로 갔을까〉에서

    순진무구한 아기라고 해서 역사의 격랑에서 비껴 서 있을 수는 없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그 시대의 자식’이 된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아빠와 아기의 이별은 가장 사적인 동시에 공적인 이야기이며, 가장 미시적이면서 거시적인 역사가 된다. 전체 속에 하나가 있지만, 하나 속에 또 전체가 있는 것이다. 일제강점기는 부모와 자식뿐만 아니라 남편과 아내, 친구나 연인 간의 수많은 이별 이야기로 촘촘하다. 그래서 이 시대의 이야기는 슬프다. _194~195 〈#8 ‘묻지마라 을축생’ 태봉의 유언장〉에서

    그들은 신분제가 붕괴해가던 조선 왕조의 황혼기에 양반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거나, 최소한 그 시기의 쓸쓸함과 초라함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짠한 인물들이다. 시대의 애잔함은 개인의 애잔함으로 이어졌다. _43 〈#2 “거지 같은 양반도 양반 아니오?”〉에서

    #3 시대를 관통하는 한국근현대사 열 장면
    _신분제 동요, 3·1운동부터 한국전쟁, 1960년대 경제개발까지

    《역사 컬렉터, 탐정이 되다》의 열 가지 에피소드는 신분제 동요, 3·1운동, 일제강점기 무단통치, 창씨개명, 아시아·태평양전쟁, 한국전쟁, 1960년대 경제개발 등 한국사 교과에서 익히 다뤄온 주제들을 시간순으로 관통해나간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운 역사의 맥락을 되짚으면서도 심도 있게 파고들 수 있으며, 성인 독자들은 익숙한 줄로만 알았던 사건들의 이면을 생생하고 풍성하게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역사를 대하는 저자의 충실한 태도와 인간을 향한 애정 어린 시선은 남녀노소 모두에게 깊은 울림을 남긴다. 30여 년이 넘도록 역사 컬렉터로 살아온 그의 마음을 빼앗는 것은 희귀하고 환금성 높은 물건이 아니라, 언제나 ‘사람’과 ‘역사’가 담겨 있는 물건이었다. “사소한 자료는 있어도 사소한 사람과 사소한 역사는 없다”라고 말하듯, 그에게 중요한 것은 수집품 그 자체보다 그것이 품고 있는 생명력이기 때문이다. 역사 탐정의 추리극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은 우리가 왜 끊임없이 역사를 되돌아봐야 하는지, 거기에서 무엇을 건져내야 하는지에 대해 곰곰이 되묻게 될 것이다.

    우리 역사는 굶주림과 늘 함께했다. ‘찢어질 듯’ 가난해 보릿고개를 넘지 못하고 굶어 죽는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정도로 생존에 급급한 삶이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굶주림의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그저 조상들의 배고픔과 고난의 삶을 살펴보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더 나아가 현재 우리 주변에 그런 고통 속에서 도움을 호소하는 이들이 없는지 늘 귀 기울여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역사학은 공감과 연민의 학문이다. 공감은 연민의 바탕이고, 그 연민은 부조리한 현실을 개선하려는 실천의 출발점이 된다. _261 〈#10 ‘넘지 않을 수 없는 운명의 해발 구천 미터’〉에서

    이렇게 호구단자 하나에도 그 시대 사회상과 역사가 반영되어 있다. 교과서에서 조선 후기 노비가 도망하는 일이 많았다고 간단히 서술하고 있다면, 옛 기록물은 그 이면에 숨은 이야기들을 생생하게 증언해준다. 문서의 맥락, 역사의 맥락을 가지고 자료 속의 사실을 제대로 읽어내는 것은 오롯이 오늘날 우리의 몫이다. _30~31 〈#1 죽지 않는 노파, 갑덕의 비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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