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정원과 민주노총...
    어떤 관성들과 단절해야
    [기자생각] ‘국정원 점퍼’의 신시대
        2023년 01월 21일 08:0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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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안을 생명으로 하는 정보기관인 국정원이 직원 점퍼에 버젓이 ‘국정원’ 표지를 달고 민주노총에 대해 대대적인 압수수색 퍼포먼스를 하는 걸 보며 신세대 공안조직의 낯설음을 느꼈다. 또 자동적으로 나오는 “공안탄압 규탄” “공안통치 부활”이라는 구호를 보며 낯익음을 느끼기도 했다. 독재-반독재 민주-반민주의 논리, 저들이 공격하고 탄압하니 우리는 방어하고 대응한다는 식을 넘어서는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윤석열 정권의 공격 대상, 집행 과정, 목표를 살피고 노동-진보세력의 약점과 한계, 장점 그리고 우리가 서 있는 엄중한 국내외 정세 상황을 시야에 넣는 고민과 실천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물음에 대한 잡다한 생각의 여러 조각들을 모아본다.

    사진=노동과세계

    윤석열 정부가 최근 일관되게 강조하고 밀어붙이려 하는 게 3대 개혁, 노동-교육-연금 개혁이다. 우리 사회의 전략적 갈등 지점이고 미래를 위해 풀어야 할 주제인 것은 맞다. 그러나 사회적 합의와 공감대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 개혁 과제에 대해 어떤 방향으로, 어떤 프로세스로 진행할 것인지 윤 정부의 입장은 모호하거나 없다. 이러저런 집단(연구팀)을 통한 간보기나 시대 역행적 방향을 일방적으로 강행하겠다는 경고와 협박만을 반복한다.

    하지만 정부여당은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3대 개혁 과제는 법·제도의 상당한 변화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국회의 입법 절차가 필수적이다. 과거 박근혜 정부 때와 같은 시행령 정치는 미봉책일 뿐이다. 하지만 국회에서 정부여당은 소수파이다. 절대 다수 의석을 갖고 있는 민주당과 정부여당은 이재명 사법리스크 등을 둘러싸고 강경한 대치 상황이다. 민주당으로서는 내심 공감하는 방향이더라도, 윤석열 정부에 정치적 주도권을 쥐어 줄 정책 추진에 손을 들어줄 리가 없다. ‘저들이 하면 나는 반대한다’는 게 기본 스탠스이니…

    결국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내년 총선에서 다수 의석을 확보하는 것을 핵심 목표로 하면서 그 시간까지는 ‘여론전’을 통한 3대 개혁(개악) 추진의 사회적 분위기 형성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 거 같다. 이들에게 교육-연금-노동 중 가장 만만하고, 자신들에게 우호적이고 유리한 분위기를 형성할 수 있는 게 노조와 노동운동에 대한 공격이다. 노동조합, 특히 대공장-공공부문-정규직 노조운동이 일하는 대다수 노동자들을 대변하지 못하고 조직된 일부의 이해관계만을 대변하는 ‘당신들의’ 운동이라는 사회적 비판 여론이 정부 공격에 알리바이를 제공하고 있다. 지금 건설노조를 주요 타켓으로 한 노조 비리-부패 이슈의 부각은 그 첫 공격이다.

    올해 1월 1일 윤석열 대통령이 “기득권 유지와 지대 추구에 매몰된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면서 “가장 먼저, 노동 개혁을 통해 우리 경제의 성장을 견인해 나가야” 하며 “변화하는 수요에 맞춰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바꾸면서 노사 및 노노 관계의 공정성을 확립하고 근로 현장의 안전을 개선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신년사에서 말한 본심이기도 하다.

    그리고 노동운동과 직간접적 연관을 맺고 있으면서 북한에 우호적인 일부 진보정치와 야당세력에 대해 공안, 대공 사건을 조작하거나 침소봉대하는 것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노동운동, 노조에 대한 공격을 보완하는 것과 함께 국정원 등 공안기관 대공 활동의 부활을 도모할 수 있다는 쌍끌이 효과를 노리고 있는 거다. 이런 공안 사건의 이슈화에는 경찰로 이관될 예정의 국정원 대공수사권 유지라는 속셈도 있지만, 윤석열 정부 등장 이후 북한이 보여주고 있는 공격적이고 위협적인 행동과 발언, 핵-탄도미사일 능력의 고도화 법제화, 남북 간의 안보 위기 심화라는 것이 더 큰 배경으로 깔려 있다. 남북 간의 안보 위기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북에 우호적이거나 연계를 맺는 세력들에 대한 대공 수사와 제재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국정원이 최근 발표하고 있는 제주, 창원 등지의 일부 인사와 세력들을 대상으로 한 공안 사건 추진, 민주노총과 일부 산별노조 관계자에 대한 보여주기식 압수수색 퍼포먼스, 그리고 양대노총 건설노조에 대한 대대적 압수수색은 서로 별개가 아니라 윤석열 정부의 2023년 전략적 방향으로 보여주는 모습들이다. “크게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가 아니라 “물기 전에 크게 짖는다”.

    노동운동, 노조운동은 당연히 조직된 조합원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하지만 동시에 노조운동 특히 총연맹이나 산별노조의 운동은 조직노동자만이 아니라 노동자의 보편적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사회 전체의 이익, 공익을 대변하려는 노력을 지향해야 한다. 그런 모습이 약하고 역할이 미비하면 노조운동은 조직된 집단의 이해를 극대화하려는 수많은 이익단체의 하나로 전락할 뿐이다. 이익단체에게는 이익의 극대화가 알파이고 오메가이다. 근래 강해지고 있는 노동조합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자본과 권력의 여론조작과 개입만이 아니라 이익집단화에 대한 냉소가 반영되어 있다는 점을 돌아봐야 한다.

    부활을 위한 국정원의 몸부림 그리고 친북적 일탈행위에 대한 관용

    제주, 창원, 진주 지역의 일부 개인들이나 민주노총의 전현직 활동가 개인들이 북한 공작원과 연계를 맺거나 금품을 수수하는 등 부적절하고 일탈적인 행위를 했다고 한다면 당연히 비판해야 한다. 중대한 실정법 위반이 있다고 한다면 법적 처벌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북한 사람과 만났다는 것 자체가 불법인 시대는 지났다. 이화영 전 경기도 부지사나 아태협 책임자들은 더 높은 지위의 북한 공직자들과 접촉하고 불법적인 금품 전달 등의 혐의를 받고 있지만 이들을 공안사범으로 취급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중대한 실정법 위반 문제가 아니라면, 노동운동이나 시민단체, 진보정치 내부적으로 북한과 관련한 부적절 일탈적 편향적 행위들에 대한 평가-비판-숙정하는 모습이 필요한데, 늘 공안사건이라는 이유로 이런 내부 자기정정의 노력은 사라지거나 미래의 일로 유예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일심회’ 사건의 예에서 보듯이 오류와 잘못을 바로잡겠다는 그 미래는 오지 않는다. 사회적 불신과 비판만 누적될 뿐이다.

    관련하여 하나 덧붙이면, 우리는 미국의 대 한반도 정책이나 행위들을 분석하고 때로는 강하게 비판하고 규탄 등의 대응 행동을 조직한다. 강제동원 관련 일본의 입장을 넘어 일본 내부의 주요 정책, 예를 들어 안보정책의 변화 등에 대해서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비판의 톤을 높이기도 한다. 또 중국의 여러 정책들에 대해서도, 홍콩의 국가보안법 도입과 홍콩인에 대한 탄압에 대해서도 분노하고 연대하고 규탄하기도 한다. 그런데 미국, 일본, 중국 등 외국에 대한 잣대와는 달리 유독 북한의 정책, 행보, 발언들, 특히 우리의 안위와 직결되는 핵과 탄도미사일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반응하지 않는다. 북한의 퇴행적 위협적 적대적 행동과 정책 추진에 대해서 침묵하거나 우회하는 게 진보정치와 시민사회의 모습이었다. 북에 대한 비판적 접근은 보수파와 보수세력의 전유물이고, 진보세력이 이와 유사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반북반공, 반통일, 보수에 투항하는 것으로 치부하는 관성과 관습이 친북적 일탈행위에 대해 면죄부를 부여하고 반복하게 만든 원인이라는 생각이다.

    건설노조에 대한 비리-부패 혐의를 둘러싼 문제도 마찬가지 양면적 모습이 있다. 건설노조 관계자들이 공기 단축이나 장비 납입 등을 이유로 건설사들을 협박하고 압박하여 부정한 비용을 뜯어내거나 특혜를 요구하고 받아냈다는 게 연일 정부 발표와 보수언론의 지면을 덮고 있다. 그런데 돌아보면 속칭 노가다로 불렸던 건설노동자들은 여러 업종에서도 을 중의 을이었고 건설사들이나 중간관리자들은 갑 중의 갑이었다. 지금도 산재 사고가 가장 많은 게 건설현장인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런 현실에서 건설노조가 조직력을 강화하고 건설사에 대한 대항력을 가지면서 일방적인 권력관계가 어느 정도는 바뀌고 있다. 그렇지만 힘관계의 일방성을 바꾸려는 과정에서 위법적인 폭력과 집단행동, 금품요구들을 약자들의 정당한 방어행위로 옹호할 수는 없다. 이런 지점에 대해 노조 스스로도 자기평가와 성찰, 반성과 변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건설노동자와 건설노조가 건설자본과 회사들 위에 군림하는 지배권력인 양 마녀사냥하는 것은 앞뒤가 바뀌었다. 법적 제재와 규제가 필요한 지점이 있지만, 노조 스스로 자기정화를 하는 게 최선인데, 윤석열 정부는 건설노조를 조폭 취급하는 방향으로만 치닫고 있는 듯하다. 정치적 이득을 위한 소탐대실로 귀결될 것을 우려한다.

    보수의 업그레이드에 미달 또는 퇴행하는 윤석열

    윤석열 대통령은 검찰총장을 거쳐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되는 과정에서 가장 강조했던 게 ‘법치주의’와 ‘자유와 공정’이라는 것이었다. 법치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등을 강조하는 보수파라는 것을 분명히 했지만 ‘자유’를 반복적으로 강조하면서 자유주의의 어떤 가치들을 존중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러나 윤석열 집권 8개월을 통해 보여준 것은 업그레이드된 혁신보수가 아니라 과거의 낡은 보수정치로 퇴행하는 모습, 자유의 가치를 존중한다고 말은 하면서 행동과 정책으로는 그것을 부정하거나 훼손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2023년 벽두부터 보여주는 게 노동운동에 대한 혐오 마케팅과 공격, 낡은 국가보안법을 통한 반공 보수세력의 부활을 모색하는 모습이다. 문재인 정부가 노무현 정부의 업그레이드, 진화 버전이 아니었듯이 윤석열 정부 또한 박근혜 보수정부에서 진화되거나 혁신된 것을 없는, 오히려 퇴행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지금 여당의 윤핵관이라는 세력은 과거 여당 내의 친노-친문이라는 집단보다 더 얄팍하고 얕은 능력치를 보여줄 뿐이다. 이들에게서 이념과 비전은 없고 정치적 이해관계의 극대화만 존재하는 환관정치의 그림자를 본다.

    그렇다면 제도권 내에서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 여당에 대당하는 민주당과 정의당은 대안 세력으로서의 비전을 보여주고 있는가? 개인적으로 반복적으로 지적하고 있지만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5년에 대한 반성과 자기평가는 없다. 평가가 없으면 결코 진화하지 않는다. 이들은 그때가 지금의 윤석열 집권보다는 100배 나았다는 자아도취의 노래만을 반복할 뿐이다. 내로남불이라는 뼈아픈 지적들을 받아들이고 성찰하려는 시늉조차도 보지 못했다. 국회 역사상 역대급 다수 의석을 확보한 힘 있는 정당이지만 검수완박, 공수처 등 엉뚱한 곳에서는 힘자랑을 하면서 노란봉투법 등의 의제에 대해서는 힘 없는 소수파인 양 행세한다.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와 민주당의 방탄 행보는 ‘전대협 의장님 결사옹위’를 외치던 어떤 시절의 장면이 떠오를 뿐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정부와 이재명 민주당이 여야의 양 극단에서 서로를 비난하면서도 서로의 낮은 지지율을 의지하며 유지되고 있는 현재 정치상황에서 거의 유일한 제3세력 지대의 정의당이 윤석열-이재명 모두에 등을 돌리고 있는 사람들을 흡수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쉽다. 제3지대의 국민들은 민주당이나 국힘에게 모두 ‘수박’이겠지만 그곳에서 양당을 대체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법이다. 정의당은 그들을 끌어모을 구심력이 약한 이유에 대해 숙고해야 한다.

    관성적인 양비론은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 양비론에도 논리와 이론과 정세인식이 필요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국 시진핑 3연임 체제의 국제정치적 의미, 미국의 정치경제적 국제전략과 대 한반도 정책의 방향, 북중러와 미일 사이에서 우리가 서야 할 위치 등에 대한 자기정립이 필요하다. 노동과의 전략적 동맹을 복원하는 건 당연히 필요하지만 노동 내부의 분절과 이중구조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고 극복해야 할지에 대한 노선과 방향 정립도 필요하다. 기후 정치와 페미니즘 정치를 수용하되 당위 수준을 넘어 어떻게 대중화할 것인지 계획과 전략이 동반되어야 한다. 이런 이론적 논리적 기반 위에 설 때 양비론은 기회주의가 아니라 대안세력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무능과 무지는 때로는 죄악”이라는 말을 새겨야 할 때이다. 이 또한 당위이지만 어쩔 수 없다. 여기가 출발점인 것을.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장, 전 진보신당 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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