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다. '서태지'의 무모함이
가끔 어떤 음악이 바짝 ‘땡길’때가 있지 않나? 어제가 그랬다. 문득 서태지의 음악이 땡겼다. 그리고 퇴근과 동시에 모 인터넷 음반 싸이트에서 거금을 치르고 서태지와 아이들 및 서태지 싱글 앨범 전곡을 mp3로 다운로드 받았다. ‘지름신’이 왕림하신 것이다.
초등학생 때 그의 1집을 접했으니 옛 앨범들은 참 오랜만에 듣는 것인데, 그럼에도 나는 웬만한 노래의 가사는 아직도 외우고 있었다. 크.. 태지횽, 그의 음악을 내가 좋아하긴 많이 좋아했나 보다.
어쨌건 이중 3집 앨범을 듣고 있는 가운데 타이틀곡 ‘발해를 꿈꾸며’가 들려왔다. 노래를 들으며 옛 뮤비의 배경이었던 폐건물(?)을 떠올리며 흥겹게 듣고 있는데, 문득 이 앨범이 발표된 것이 1994년경이었다는 것을 떠올렸다.(백과정보-1994년 8월 10일 발매)
그러네.. 1994년, 사실 어릴 때야 이 노래를 아무생각 없이 “아~ 통일되면 좋겠다”라며 해맑게 듣고 있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이 시점, 통일을 노래하기 참 미묘한 시점이었다.
1994년을 잠깐 알아보자. 이 해는 북한이 영변 실험용 원자로에서 사용한 폐연료봉을 재처리 하여 무기 제조용 플루토늄을 추출했음이 밝혀진 해로, 남-북관계는 물론 북-미관계까지 매우 악화된 시점이다.
후대에 밝혀진 일이지만 당시 클린턴 행정부는 영변 폭격계획까지 세웠다고 한다. 그만큼 북한을 둘러싼 국제관계가 심각하게 악화되었을 때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만 해도 남북관계가 악화되면 국내에 ‘공안쓰나미’가 휘몰아치곤 했다. 이때는 더욱이 핵위기 얼마 후 김일성이 죽고(1994년 7월) 이로인해 ‘전쟁설’이 나도는 등 남북관계의 긴장이 극한으로 치달았을 때다. 이런 상황을 김영삼 정부는 국가보안법이라는 조미료를 곁들여 자신의 기반을 공고히 하던 때였다.(당시 분위기를 보여주는 오마이뉴스 기사-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081128085204285&p=ohmynews)
이 와중에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높으신(?)분들이 보기에 고작 20대 중반에 불과한, 그렇지만 대형 인기가수가 '공산주의'의 상징인 '옛 조선노동당사'에서 뮤직비디오를 찍으며 ‘평화’를 얘기하다니..(앞서 말한 바로 그 폐건물이 옛 조선노동당사다) "노동자"란 말만 꺼내도 "국가체제 전복기도"란 죄목이 씌여지는 상황에서 당시 얼마나 파장이 컸겠는가? 당시 조중동 기사라도 보고싶다!!(게다가 이 앨범에는 ‘교실이데아’가 수록되어 있다. 흐미...)
어쨌건 이후 개연성이 있건 없것, 사탄설이니 뭐니 그를 둘러싼 악소문이 뿜어져 나오기도 했다.
3집에서 당당히 자유와 사회를 노래한 '서태지와 아이들'의 4집에는 그 유명한 ‘시대유감’파문이 있다. 1995년, 김영삼 정부 산하에서 이 곡은 ‘가사의 저속함’ 등의 이유로 ‘사전심의제도’에 의해 방송불가 판정을 받았는데, 서태지는 아예 가사를 다 삭제하고 음악만 넣었다.
높으신(?) 분들이 보기에 건방지리만큼 강력한 항의다. 결국 서태지의 항의는 팬의 반발을 불렀고, 이는 뉴스가 되었다. 그리고 ‘자유’의 가치를 ‘국가’가 강제하는 ‘사전심의제도’에 대한 논란까지 이어졌다. 결국 1996년 사전심의제도가 폐지되었고, 그는 그제서야 싱글 앨범으로 노래를 공개했다.
당시 김영삼 정부가 군부보다는 진일보한 측면은 있으나 지금의 이명박 정부에 비해 그다지 ‘민주적’인 정부는 아니었다. 오히려 민주노조 운동을 짓누르는 수구보수전선이 너무나 강력했을 때였다. 그런 상황에서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었지만 불과 20대 초중반에 불과했던 젊은 가수 서태지의 도전은 자못 무모해 보인다.
2008년은 어떤가? 이명박 정부 시대는 인터넷에 글 하나 썼다고 구속되는 시대다. 살기위해 몸부림 친 철거민들이 '도심 테러리스트'로 구속되는 시대다. 얼마나 유감스러운 시대인가? 지난해 서태지는 8집 컴백을 하며 코엑스 공연에서 수 많은 히트곡 중 시대유감을 노래했다. 어떻게 보면 무모했던 짓이 아닐 수 없다.(정직한 사람들의 시대는 갔다.)
어쨌든 오늘날의 젊은 가수들은 쌍큼함과 발랄함, 그리고 멋과 개성으로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노래들도 많이 연습하고 갈고 닦아 참 잘한다. 이 역시 대중가수의 몫임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내가 당사자가 아니라 그런지)서태지를 비롯해 무서운 시대를 관통했던 여러 대중스타들이 가끔은 보여주었던 무모함이 종종 아쉬울 때가 있다. ^^;;;;;;
하여간에 무엇보다 젊은 대중스타들이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마음 놓고 밝히지도 못하는 이 나라가 참 이상하다는 생각도 든다. 탤런트 김민선씨가 미국산 쇠고기 의견 한 번 피력했다가 수구꼴통사이에서 못들을 말을 얼마나 들었던가!!
그런데, 나이 든 대중스타들은 종종 국회의원(주로 어느쪽에 붙지만..)도 하고, 장관도 하고 그러지 않나?
ps1. 부족한 제 글을 다음 관계자분들이 '정치적 성향을 밝힌 서태지가....'라는 제목으로 블로그뉴스 베스트에 올려주셨습니다. 관심가져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그런데 제 글의 주제는 '정치적 성향을 밝힌 서태지의 당당함'이 아니라 '시대의 무시무시함과 상관없이 현 시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얘기할 수 있는 젊은 가수 서태지의 무모함'입니다. 혼란 없으시길 바랍니다.
ps2. '하여간에~'이후부터 '정치적성향'이란 단어가 나와서 다음 측에서 그렇게 판단하신 것 같습니다. 사족으로 붙인 문장인데 "참~ 뜬금없져이~" 어설픈 글로 현혹시켜 죄송 ㅠㅠ
ps.3 중요한 오류가 있는데요, 댓글로 지적해 주신 분들이 있는데, 제가 서태지 혼자 힘으로 사전심의제도를 폐지하게 만들었다는 느낌으로 썼습니다. 서태지씨 외에도 많은 분들이 이전부터 노력해주셨는데요;; 이것도 바로 잡습니다. 관심과 댓글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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