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
뇌의 용량은 안되고, 욕심은 나고, 때문에 무려 3달 가까이 이 책을 읽었음에도 사실 이 책의 약 2% 정도 밖에 건지지 못했다. 그 2%는 ‘읽는 것’이 아니라 ‘훑던 중’ 몇몇 인상 깊었던 구절에 밑줄을 좀 쳐 놓았던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사법부의 뒷담화를 하려 한다.
아마 이 어려운 책 와중에 그나마 인상 깊었던 구절들이 남아있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인 ‘법’과 ‘사법부’가 실제로 ‘민주주의’에 근간하는 것인지 헛갈리는 지금의 시대상 때문일 것이다. 지금 ‘법’은 통치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으며 우리는 법에 접근하는 모든 경로를 막혀버렸다. 이 와중에 이 책이 나온 것은 그야말로 시기적절하다. 물론 어렵지만 않았다면.
이명박 정부는 처음부터 ‘법치’를 내세웠다. 문제는 그 법이 누구에 의해 만들어지고 누구에 의해 지배당하는가라는 문제다. 현 정부가 자주 쓰는 단어인 ‘떼법’이란 말도 그렇다. 떼가 원하면 법이 되거나, 최소한 논의라도 되어야 한다. 그런데 떼법은 늘 척결 대상이 된다.
그리고 그 ‘떼’는 고상한 분들, 예컨대 삼성처럼 돈이 많다거나, 어떤 법의 망도 피해갈 수 있는 권력이 있다거나, 그런 분들을 제외한다. 여기서 떼는, 비정규직, 장애인, 소수자, 빈민, 철거민들이다. 이들 중 국가에 충성을 다하는 사람들은 그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법치의 안전함 속에 들어온다. 이처럼 법은 권력자들에게 유용한 자산이다.
이는 최장집 교수님의 지적대로 “법과 관련된 모든 제도와 실천이 민주화 이전 권위주의시기에 만들어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대한민국 헌법이 나름 이쁘게 만들어졌다지만, 이 헌법에 기초한 진정한 ‘법치’가 안되는 이유는 이미 헌법을 파괴하면서 법을 엉뚱하게 적용했다는 군사독재시절을 거쳤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권 하에서 건설업으로 큰돈을 벌었던 현대건설 이명박 사장이나, 5~6공 시절 헌법의 파괴를 통해 부와 권력을 맛봤던, 혹은 시장권력에 붙어 단맛을 보고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한나라당이 보는 ‘법치’가 지금의 이와 같은 상황을 만들었던 것은 단지 우연은 아닐 것이다.
어쨌건 우리는 ‘선거’라는 대의 민주주의를 통해서 ‘법치’를 실현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과정이 어찌되었던 우리는 프레임 구도에서 한나라당 속으로 들어갔고, 결국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상황에 까지 이르렀다. 헌법에 명기된 표현의 자유도, 인간의 존엄성도 그들의 법치 앞에서 처절하게 무너지고 있다.
이는 지난 10년간 정치적 권위주의를 일정정도 청산했으나 경제적 권위주의에 권력을 빼앗긴데 기인한다. IMF라는 특수한 사정이 있었다지만, 지난 10년간의 ‘법’의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고, 이 시장이 이명박 대통령을 만들어냈다.
어쨌건 항상 고민이 된다. 대한민국의 진정한 법치는 올까?, 아니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가 동시에 발전하기 어려운 것이라면 우리에게 보다 낳은 판단은 무엇이 되는 걸까?
책갈피
1.법의 지배와 계보(스티븐 홈스)
p.75 정부는 항상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집단들, 즉 자신들이 판단하기에 협력이 필요한 집단들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기 마련이다. 대지주의 권리는 고아의 권리보다 훨씬 오래전에 보장되었다.
p.88 운 좋은 소수는 돈으로 최고의 의사를 살 수 있겠지만, 가난한 이웃들 속에 잠복해 있는 전염병으로부터 자신을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는 없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만 예방접종을 받아서는 아무 소용없는 전염병이 발생하는 것을 줄이기 위해 공중 보건 계획에 돈을 기꺼이 내놓을 것이다.…그런 재분배들은 자선이 아니라 신중한 계산의 산물이다.
p.128 부유하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이 세상이 자기들 덕분에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곤경에 처하게 된다.…문제는 기억상실증이다. 부유하고 권력을 가진 자들은, 대의 정부가 관리하고 있는 자원들이 약하고 가난한 자들이 제공한 것이며, 자신들이 그들의 협력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종종 잊곤 한다. 많은 재산을 소유한 사람은 자국의 경계선이 일반 시민들의 금전적․인적 기여에 의해 보호되지 않으면 자신이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때때로 망각하는 것 같다.…결국 이런 무도한 행위들은 최소한 사보타주라든가 때로는 반란 같은 형태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2. 권력, 규칙, 그리고 준법(이그나시오 산체스-쿠엔카)
p.153 부정행위가 규칙에 대한 실제적인 위반은 아니다. 부정행위를 한 사람은 규칙을 따르지 않은 셈이지만, 규칙을 위반한 것은 아니다. 규칙 위반은 눈에 보이는 행위인 반면, 부정행위는 언제나 몰래 이뤄진다.
4. “민주주의의 정치적 토대와 법의 지배”에 대한 발문(배리 웨인개스트)
p.208 “국가의 행위를 규제하고자 하는 (시민들의) 책임 의식이 상당히 신뢰할 만한 수준일 경우에만 … 여당, 대통령 혹은 주권자는 게임의 규칙들을 지키면서 자신의 이익을 실현시켜 나간다. 바로 이것이 헌법적 규칙들을 자기 강제적인 것으로 만든다. 시민들은 법의 지배의 주요 제도들을 수호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5. 정당은 왜 선거 결과에 복종하는가?(아담 쉐보르스키)
p.215 민주주의의 생존 확률은 1인당 국민소득이 증가할수록 높아진다. 1인당 국민소득이 1,000달러 미만인 나라의 경우에 특정 해에 민주주의가 붕괴될 확률은 0.1636인데, 이는 이들 나라에서 민주주의의 기대 수명이 대략 6년 정도임을 의미한다. 1,001~3,000달러인 나라들의 경우에는 그 확률이 0.0561, 3,001~6,055달러인 나라의 경우에는 확률이 0.0216으로, 6,055달러를 넘는 나라에서는 민주주의가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다.(근데 우린 왜이럴까?)
9. 수평적 책임성의 도구로서 법원
p.372 일반적으로 별 주목을 못하고 있지만, 사실상 조직 내에서 나타나는 위계질서의 역할이야말로 판사집단 내에서의 실제적인 역학이라던가 법원의 정치적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밝히는데 결정적이다. …사법조직은 전통적으로 피라미드 형태의 조직 구조 내에서 작동한다.…개인적 영향력은 개인이 위계질서를 차지하고 있는 위치에 달려 있으며 오직 승진을 통해서만 증가될 수 있다.…이때 성과에 대한 판정은 평가 대상이 되는 판사가 수행한 업무에 대한 상급자들의 평가를 통해 이뤄진다.(신영철 사건의 전모다)
p.374 이탈리아 사법 제도는 커다란 변화를 겪어 왔다. 그 결과 최고사법평의회는 판사와 검사의 지위와 관련된 모든 결정을 내리는 일을 맡게 되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들의 채용, 임명, 승진, 전보, 그리고 징계 절차가 법무부 장관의 손을 떠나 평의회에 집중되었다.…평의회 구성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탈리아에서 사법부의 ‘자치’가 어느 정도로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좀 더 잘 살펴볼 수 있다.…사실상 사법부 밖의 구성원들은 야당을 포함해 의회가 대표하는 여러 정치 세력들의 힘을 반영할 수 있도록 선정된다.(그럼 합리적 대안은?)
11. 정치적 무기로서의 법의 지배(호세 마리아 마라발)
p.439 다수의 변덕을 제어할 수 있는 그 어떤 합법적 경계가 없을 때, 이는 자유주의가 민주주의와 관련해 염려하는 가장 끔찍한 악몽이다. 이는 또한 ‘위임 민주주의’의 주요 특징이기도 하다. 즉 정부에 ‘다른 제도들, 예를 들어 법원과 입법부는 귀찮은 존재일 뿐이다.…그런 제도들에 대한 책임성은 단지 성가신 장애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통상적으로 그런 혐의를 받는 이는 국민투표제적․표퓰리즘적 정치인으로, 이와 관련된 예는 무수히 많다.(우리는 악몽을 꾸고 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