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늬우스’, 환영한다.

‘이명박 정부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더니, 이젠 대한늬우스의 부활이다. 하긴, 늦은 감이 있다. 검찰과 경찰은 이미 80년대 수준으로 돌아갔고, 정부여당의 관계도 딱 그 시점의 수준이니까. 게다가 해방공간에서나 활동했던 서북청년단(국민행동본부??)까지 이미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에서 난동을 피우며 그 활동을 재개했다.

이정도 되면 ‘대한늬우스’는 애교다.(여기에 이에 맞는 개그 프로그램으로, 이미 종영된지 좀 지난 ‘대화가 필요해’를 집어넣었다!) 다만 바로 그 대한늬우스의 홍보대상이 하필 이 정부에서 가장 기분나쁜 정책인 대운하인지, 4대강 살리기인지 여서 그렇지, 솔직히 광고 한 편, 문제될 것 까진 있겠나?


나는 오히려 ‘대한늬우스’를 환영하며, 적극 권장한다. 물론 모처럼 좋아하는 사람들과 즐거움을 만끽하며, 영화를 보고자 하는 분들은, 제 돈 내고 들어와서 별 시덥잖은 이야기를 늘어놓는 모습을 보며 “성질이 뻗칠 수도”있겠으나, 사실 1분 30초 정도 딴생각만 하고 있는다면, ‘대한늬우스’정도 참고 넘어가 줄 수 있다.

문제는 이 정부가 ‘대한늬우스’로 그칠 것 같지가 않다는데 있다. 어제 자 <한겨레> 신문을 보니 정부 홍보 예산을 <MBC>만 제외하고 타 방송사들에 뿌릴 만큼, 대놓고 <MBC>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청와대 관계자들이 엄기영 사장에 대해 “물러나라 마라”할 만큼 이 정권에 미운털이 박힌 <MBC>가 결국 ‘MB씨’에 의해 점령당해, 내내 ‘MB늬우스’를 틀어댈까봐, 그게 걱정이다.

여기에 ‘미디어법 6월 국회 표결처리’라는 민주당의 옛 싸인 한 장 손에 들고 법석을 피는 한나라당은 “미디어위 자체가 여론이다”는 다소 민망한 논리로 미디어법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고, 개인의 이메일까지 공개하는 인터넷 시대 초유의 쪽팔린 상황을 조성하며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당연한 책무를 지닌 시사 교양프로그램 PD를 사법처리 하려던 검찰은 언론의 비판에 재갈을 물린다.

이렇게 되면 <MBC>뿐이 아니다. 이 땅의 모든 방송들에서, 언론들에서 ‘MB늬우스’는 방송된다. 조지님(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암울하고도 짜증나는 상황이, 브이 포 벤데타의 갑갑하고 삭막한 세상이 광한리 앞바다 마냥 펼쳐지는 셈이다. 생각해 보라. 180여개 채널을 가지고 있어도 180여개 채널에서 모두 이 대통령이 삽을 들고 ‘4대강 살리기’에 엄지손을 치켜들고 있다면? 어휴..

그래서 나는 ‘대한늬우스’를 적극 찬성한다. 다만 미디어법이니, 신문발전법이니 하는 것으로 다른 언론들을 손대는 상황은 만들지 말았으면 한다. 그냥 ‘대한늬우스’나 만들어 짧은 광고나 몇 편 때리는 것에 무슨 잘못이 있겠나? 세금때문에 눈물이 그렁그렁해 지지만, 우린 1분 30초만 ‘욕’만 좀 하면 되는 것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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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와 브라더들, 그리고 머더

스포일러 있습니다.

‘내 배 아파 난 새끼’라는 모성을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 못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로선 부성을 고민하기에도 머리가 많이 아프니까. 철딱서니 없는 내가 내 아이를 낳아, 우리 부모님처럼 헌신할 수 있을까? 그건 나로서는 막상 눈앞에 펼쳐지지 않으면 모를 일이다.

‘마더’는 엄마, 모성에 관한 영화다. 단 음습하고, 건조하며, 섬칫하고, 잔인한 영화다. ‘살인의 추억’부터 ‘괴물’에 이르기 까지 이놈의 사회, 공권력의 무능을 비웃어온 봉준호 감독이, 이제 그 무능한 권력의 속에서 살아가는 단 한명의 엄마에 카메라 초점을 맞추고, 낱낱이 까발린다.

이 영화에서 마더는, 약자인 자신의 아들을 둘러쌓고 핍박하는 세상 모든 브라더들의 무능과 사악함에 모성이란 이름으로 혈혈단신 저항한다. 그야말로 미치지 않고서야 불가항력적인 이 혼란스런 상황을 마더는 통곡과 애통함 보다. 춤으로 표현한다.

마더 자신도 약자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강하다’는 이 사회의, 남성주의의 이상향 아니었던가? 전태일 열사의 마더도, 이한열 열사의 마더도, 저항에 그친다. 사회의 광기와 폭력에 자신의 아이들이 위기에 처하더라도, 마더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 있는가?

어쨌건 이 잔인한 비극을 거친 마더는 그러나 결국 또 다른 브라더가 된다. 자신의 아들을 대신해 사로잡힌, 젊은 남성에게 “엄마 없니?”라며 오열하는 마더의 모습은 모성이 가진 절대적인 성스러움의 가면을 벗겨내고, 모성 역시 인간적인 한 감정의 부분일 뿐이라며 세상의 엄마들을 위로한다.

덧붙여 뭐랄까, 아주 재미있는 영화였다. 곳곳에 숨은 ‘봉테일’의 손길은 여전히 여러사람들을 울리고 웃겼다. ‘추격자’만큼 섬칫했던 마을의 전경, 현장검증을 보는 사람들의 표정 하나하나, 마더의 머리위로 떨어지는 변기 뚜껑, 아무 것도 아닌거 같은데 뭔가 있을 것 같은 봉테일의 손길은 역시...

특히 영화 중에는 심각한 반전이 있을 것이라 예견했던 ‘농약 박카스 사건’을 풀어가는 방식은 경악의 수준, 정말 예상 못했다.

또 하나 덧붙이자면 김혜자 씨는 물론 이 영화 캐스팅이 정말 마음에 들었는데, 원빈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격하게 아끼는 우리 ‘진구’가 이 영화에 나온다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어디서든 카리스마 매력발산 때려주시는 우리 진구 덕에 영화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영화에 계속 나와줘~

Posted by dalgona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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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국민대회가 성공하려면

나이조차 기억 안나는 그야말로 ‘꼬맹이’ 시절이다. 흐릿하지만 당시 나의 기억 속에는 최루탄의 매캐한 냄새와 자욱한 연기 그리고 비명소리와 화염병이 여전히 각인되어 있다. 인천시 주안동에 살고 있던 나는 그 당시 그 최루탄 냄새를 맡고 실신 직전까지 갔었다.

당시의 최루탄은 1987년, 이른바 인천민주화항쟁 당시 우연히 집밖을 나갔다가 내가 겪은 일이다. 그리고 이듬해, 두 대학생의 안타까운 죽음이 6월을 불렀고, 호헌철폐를 이끌어 냈다. 그리고 이후 내가 내 나이를 어렴풋이 인지하던 시절부터는 최루탄 냄새를 맡지 못했다. 그래. 민주주의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2009년, 다시 6월이다. 올해로 22주년, 그런데 요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민주주의 질식”이란 비명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각계각층에서는 ‘그 때’처럼 ‘시국선언’이 쏟아지고, 조중동 방송이 등장하면 일본 자민당, 이탈리아 베를루스코니 형 정치지형이 만들어진다는 우려가 속출한다.

그리고 정부는 소통의 공간인 광장을 틀어막고 있다.(뉴라이트까지 이건 욕하더라) 실제로 민주주의가 질식된 것이다. ‘벤자민 버튼’처럼, ‘이명박 정부의 시간은 거꾸로 흘러’간다. 매일매일 접하는 저들의 막말과 무개념에서 무기력감을 느끼고 분노를 토해낸다. 다시 87년의 결연함이 느껴진다.

이런 상황에서 오늘 범국민대회가 열린다. 6월 항쟁을 기념하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추모하며 ‘다시 민주주의’를 외친다. 야당이 이 범국민대회에 총력을 기울이는 만큼, 아마 성사여부에 따라 향후 정국운영이 갈릴 것이다. 이 정부에 다시 1년을 넘겨줄 것인가, 아니면 민주주의를 우리 손으로 되찾을 것인가 갈림길이다.

그런데 문제가 좀 있다. 민주주의 전선은 명확한데, 민주주의 개념이 명확하지 않다. 광장을 열고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인터넷 자유를 보장하는 것, 물론 그것은 민주주의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분명하지 않다.

본회의 망치질만 눈 앞에 둔 한미FTA는 어떻게 되나? 대량해고가 예정된 비정규직 문제는 어떻게 되나? 가족만 보고 일해 온, 우리네 이웃 쌍용자동차의 해고노동자들은 어떻게 되나? 박종태 열사의 죽음에도 택배비 30원은 어떻게 되나? 우리네 살림살이는 어떻게 될 것인가? 명확하지 않다.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는 “경제적 민주주의 부분은 사회 양극화가 계속 심화되고 있는 오늘의 현상이 보여주고 있듯 지난 20년간에도 별로 진전된 바가 없다. 많은 국민들이 민주주의보다는 경제 성장이 중요하다고 여론조사에 나오는 건 사실 정치적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됐는데 경제적 민주주의는 왜 이렇게 진척이 없느냐는 불만의 표시다.

그런 점에서 민주주의의 양 날개가 그런 정치 제도적 민주주의만이 아니라 먹고사는 문제와 관련해서 기회의 균등이라거나 사회정의의 실현이라거나 소외계층을 위한 복지 확대라거나 하는 경제 민주주의라는 날개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다면 한 날개만으로는 하늘을 날 수 없다”(CBS라디오 인터뷰 6.9)고 말했다. 바로 이 문제다.

다시 민주주의를 외치자. 다만 기회의 균등, 복지사회도 함께 외치자. 이번 범국민대회를 시작으로 쌍용자동차 대량해고를 비판하고, 이건희 재판의 공정한 진행을 외치자. 다시는 BBK같은 투자사기극을 방지할 수 있는 경제정의를 주장하자. 광우병 쇠고기, 마구마구 들여오는 한미FTA도 반대하자.

너무 넓어서 어렵다면, 오늘 이후부터 계속 이 문제를 제기하면 되는 것 아닌가? 정치적 민주주의를 이루더라도, 살림살이는 나아질 것인가? “잘 살아보자”는 거짓말에 속아 60년 넘게 양극화에 시달려온 우리 국민들, 이젠 적어도 교육과 의료는 무상으로 보장받을 만한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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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개구쟁이 2009/06/10 15: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상의료? 무상교육?
    이런 빨갱이같으니라구. ㅋ

예비군 훈련의 진보적 가치

북한핵실험, 남한의 PSI 전면참여 선언 등 국지전을 넘어 전면전이라는 ‘전쟁공포’가 쓰나미 처럼 몰려오는 시점인 6월 1일부터 3일, 나는 본의 아니게 예비군 훈련을 떠나야 했다.

하필 동원예비군 마지막 년차에, 이런 해괴한 기분으로 예비군을 떠나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인 나는 군화끈을 질끈 동여매고, 써지지 않는 모자는 손에 든 체, 혹시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집을 한 차례 둘러보고 나섰다.

이 엄중한 현실 속에서 떠나는 동원예비군 훈련이기에 “혹시나 교육훈련이 거세진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하나”는 별 시덥잖은 걱정으로 버스타고 가는 내내 잠 한숨 못 이룬 나는 뙤약볕이 내리 쬐는 훈련장에 도착했고, 곧 부대 앞에서 입영열차를 타는 기분으로 입영 셔틀버스에 올라 마음을 안정시키려 노력했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뭐 정신교육이 좀 강도 높아지긴 했으나, 지난 동원예비군과 큰 차이는 없었다. 엄중한 전쟁위기의 현실을 바탕으로, 예비군 내 분위기를 전해볼까 고민하고 있었던 나는 별 차이 없는 상황에 허무함을 느낀 체, 예비군이 가진 진보적 가치들을 찾기 시작했다.

1. 평등

예비군은 평등하다. 이들은 입소와 동시에 공동체를 형성한다. 나이,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이곳에서는 ‘아저씨’란 호칭이 통한다. 구분이 어려울 경우, 현역시절 소속 사단의 번호가 동원된다. 나는 ‘30사단 아저씨’였고, 내 옆자리는 ‘9사단 아저씨’였다. ‘아저씨’ 앞에는 빈부격차가 소용없다. 심지어 하사, 소위, 소령도 상관없다. 오로지 ‘아저씨’일 뿐,

다만 아쉬운 것은 그 평등이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비군들을 통제하는 현역병들에게는 반말이 사용된다. 반면 현역들은 예비군에게 존대말을 쓴다. 참고로 나는 만인평등을 주장하기 때문에 현역병들에게도 존대말을 사용했고, 앞으로도 예비군 훈련을 가는 분들이 현역병들에게도 존대말을 썼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2. 평화

군대조직에 무슨 평화냐고? 이들은 엄청난 평화주의자다. 이들은 단연코 전쟁을 거부한다. “아 놔, 제대도 했는데 전쟁나면 어떻해?”라는 우려섞인 목소리는 이번 예비군 훈련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게다가 이들은 현역 때와 달리 집총을 거부하는 사례도 높은 편이다. 이들은 총 자체를 굉장히 싫어하기에(무거우니까;;) 꼴보기 싫은 물건 아무데나 던져놓고 자기 볼일을 보는 경우가 많다. 사실 그 이유가 평화적 관점이라기 보다 ‘귀찮아서’라는 표현이 맞지만.. 어쨌든 집총은 거부하니까.

그 뿐인가? 교육훈련 중 수류탄, 지뢰 같은 대량살상무기 관련 교보재라도 만질라 치면 기겁을 한다. 이들은 평화주의자이기 때문에 무엇인가 던지고, 터트리고, 지뢰를 설치하고 이런 행위들을 무척이나 싫어한다.

3. 생태

예비군 훈련은 자연을 벗 삼는 과정이다. 이들은 예비군 훈련 입소 동시에 생태주의자로 거듭난다. 종이컵은 대체로 사용하지 않고 남이 먹던거든 뭐든 정수기 옆 쇠컵을 이용한다.(이 역시 ‘귀찮아서’;;) 또한 교육훈련 중에는 뒤편에서 야산에 누워 하늘을 보거나 풀 내음을 맡으며 잠을 청한다.

벌레가 기어 올라와도, 옷이 더럽혀 져도 상관없다. 마지막 날에는 잠시 소낙비가 내렸는데, 이들은 판쵸우의를 바닥에 깔고 다시 판쵸우의를 덥고 삼삼오오 잠을 청했다. 역경 속에서도 자연과 함께하는 이들은 엄청난 생태주의자다. 그야말로 이 시간동안은 자연과 하나가 되는 과정인 셈이다. '물아일체'

4. 연대

개인행동을 즐겨 할 것 같은 이들이지만, 이들의 연대 정신은 엄청나다. 기본적으로 평등사회이기 때문에 내무실 안의 대상들의 빈부격차와 상관없이 동일한 돈을 걷어 PX로 향한다. 한 명이 줄을 서면, 다른 한명이 그의 식판을 갖다놓는다. 엄청난 연대의식이다.

훈련 중 교육훈련이 과하다 싶으면 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야말로 한 목소리로 ‘쉬었다 합시다’를 외친다. 아침 점호 중 간부가 늦게라도 나올라치면 이들은 한 덩어리로 그냥 내무실로 들어간다. 이것이 바로 연대 아닌가?


ps1. 정신교육을 받으면서 느꼈던 부분이 있다. 중학생 대상 여론조사를 했는데, 가장 전쟁위협적인 국가로 미국과 일본을 꼽았다며, 교육관이 안보의식이 엉망이라고 푸념했다. 나는 그 얘기를 들으며, 아 우리 청소년들의 세계관이 정확하구나 싶었다. 미국은 지난 몇 십년 간, 발생했던 전쟁의 대부분에 관여했던 국가고, 일본은 핵무장과 선제타격론을 주장하는, 그야말로 정신나간 국가다. 게다가 또 다른 전쟁위협국인 북한이 3위를 했으니, 큰 오류는 아니다. 

ps2. 참고로 위에 '평등-평화-생태-연대'의 가치는 진보신당이 전면에 내세우는 가치다. 거기서 모티브를 얻었기에 출처를 밝히지만, 나는 진보신당 당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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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예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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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개구쟁이 2009/06/05 16: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비군이 되고 나서야 군대가 철저한 계급사회인 것을 깨닫게 되듯
    진보신당 당원이 되면 더불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의 가능성을 믿게 됩니다.

    왜 논리가 이상해? 뭐가 뭐가 뭐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 정확한 해석 2009/06/05 16: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신줄 놓은 일본
    조폭 두목 미국

  3. 개구쟁이 2009/06/08 09: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대와 달리 안 터졌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