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생태보고서

2. 삭막한 캠퍼스 - 명문대로 갈 수록, 지방대로 갈 수록

1. 20세가 되는 순간 그들의 몸에는 돼지고기마냥 선명한 도장이 찍힌다. 인간을 판단하는 기준 중 가장 효과적인 것, 대학이다. 명문대 A+~B+, 지방대 B0~C-, 고졸 D+~F, 물론 이 등급에 따라 꼭 가격이 매겨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저 도장은 꽤나 선명하고 깊숙이 몸속에 새겨진다. 그리고 세상 앞에 보여진다. “얜, 이런 놈이야”

2. 너무 묶어둔 거다. ‘자유’가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약 20년 동안을 저렇게 묶어놓았으니, 갑작스럽게 찾아온 ‘자유’는 그들의 모든 것을 앗아갈 수 있다. 특히 ‘소비의 자유’에 빠진 그들은 자본주의가 파놓은 수렁에 빠져든다. 그렇게 서서히, 서서히 갉아먹힌다.

‘등급’과 ‘자유’, 갑작스럽게 찾아온 이 두 가지가 이제 막 20대에 진입한 대학생들의 인생을 규정한다. 저 두 가지를 어떻게 잘 컨트롤 하느냐. 이것이 그들의 앞으로의 인생에 영향을 미친다. 물론 그 방법은 가장 ‘상대적’이여야 하고, 가장 ‘효율적’이어야 한다. 그 앞에 낭만 따위, 미안하지만 없다.

사실 이 파트를 쓰며 굉장히 많은 고민을 했다. 일종의 경향성에 불과하고, 그 경향성을 입증할 만큼 연구(?)가 충분하거나 자료가 완전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런 글을 쓰는 것은 그 확실하지도 않은 경향성이 지닌 무서운 함의다. 안구에 습기 차나 결론부터 얘기하면 이렇다. ‘그들의 패배는 그때부터 이미 시작되었다’고.(아니, 이제 유치원부터라지?)

일단 이 얘기부터 시작하자.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루저의 난’.(별로 언급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만약. 그 친구가 나름 명문에 속하는 ‘홍익대’를 다니지 않았다면, 즉 처음 듣는 대학교 이름이 자막에 나왔다면, 그가 받은 열광(?)의 종류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아니 TV에는 나왔을까?

아마 그 열광의 종류는 더욱 다양화 되었을 것이고, 그에 대한 공격은 한 층 더 강해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유형의 사람들은 “학교 다닐 때 공부도 지지리 못 하던게 어디 누구에게 루저니 뭐니 지렁이야? 말버릇 하곤”이라며 발끈했을 거다. 그러나 이는 그들이 울컥했던 ‘루저’의 논리를 ‘키’에서 ‘학벌’로 바꿔 그대로 차용한 거다.

아니면 오히려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갔을 수도 있다. 그럴 경우에도 “뭐야 쟤는? 지도 잘난 거 하나 없구만”이 되겠다. 키 크고, 느.. 늘씬하고, 예.. 예쁘.. 아. 그건 상대적이니까. 어쨌건 그런데다 학벌까지 좋은 그녀였기에, 오히려 더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그 논리 그대로다.

                 △한 지방대의 공대시험문제(좌), 한 명문대의 공대시험문제(우), 같은 대학생, 아니던가

자 이제 1번이다. 명문대로 갈수록, 지방대로 갈수록 사람도, 인상도, 느낌도 다르다. ‘끼리끼리 논다’(-_- 이 말, 참 싫어하는 말인데;;)는 말이 여기서 이렇게 통용된다. 등급을 기준으로 하는 집단에 대한 인상, 그 인상이 곧바로 개인에게 옮겨진다.

어릴 때 똘똘했다고 자기 자신과 그의 어머니가 보증하는 A는 대입 수학능력시험에서 그동안 보아왔던 모의고사 점수와 비슷한 점수를 맞았다. ‘그래, 최선을 다했어’라고 안도하는 순간, TV뉴스에는 “사상 최대로 쉬웠던 수능”이란 방송이 흘러나온다. “이런 니미..”

대입차트를 촥 펼쳐놓고, 점수대에 맞는 대학을 하나하나 골라가며 찾다보니, 이런 망할, 있는지도 몰랐던 대학의 이름이 떡 하니 붙어있고, 내가 “그래, 저기라도 가주마”라고 했던 대학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있다. “재수할까? 말까?” 고민하던 그는 재수는 “공무원 때나 하는 거라며(1-1 참조 홍홍홍..)” 대학을 간다.

“그래도 쟤는 하다못해 지하철은 타고 다니겠지”라며 칭찬하던 친척들은 그의 대학소식에 안타까움을 금하지 못하며 추모논평을 발송해댄다. “아아.. 우리 가문의 영광이”, 그런데 묘하게. 어디에선가는 ‘안도감’이 느껴진다. “흐흐. 내후년에 시험 보는 내 아들은 더 좋은데 가겠지?”라는

그렇게 간 대학이다. 이미 패배의 멍에는 뒤집어썼다. 명문대로 갈수록 멍은 옅고, 지방대로 갈수록 멍은 진하다. 그리고 그렇게 지어진 패배의 멍에는 점차 번져 나간다. 결국 그 멍은 사회생활에서 이렇게 번진다.

‘명문대생일수록 대화에 당당하고 지방대생일수록 대화에 눈치를 본다’는 것, 왜? “혹시 어느 대학 나오셨어요?”물어볼까봐 “그거 어디에 있는지 설명하는 시간이 가장 짜증나고 초조”하기 때문에. 이 질문에 동감하던, 아니면 이 질문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여기에 자유로운 대한민국 사람이 있는가?

‘학생운동진영’이라는 곳에서도 마찬가지다. 왜 학생운동 ‘수장’들은 대부분 SKY출신인가? ‘It's different’라서? 하긴. 다르긴 다르다. 묘한 발언의 힘과 그 역학관계, 그리고 동문, 선배, 후배들의 ‘학연’이라는 라인, 모두 다를 수밖에. 서울대 총학생회장 선거는 뉴스도 타지 않았나? 이제 그나마도 없지만.

이제 2번으로 가자. 사실 이런 경향성, 정말 부분적인 것이고 이 경향성이 맞는지도 확신할 수 없다. 어느 정도 삶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며 들었던 이야기와 다소 느껴지는 것을 엮어 과장한 측면도 있다. 그렇기에 조심스럽게 이 이야기를 한다.

대학에 첫 입학한 명문대 생 B는 진정한 지성의 장은 ‘강의실’이 아닌 ‘막걸리’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오랜 전통처럼 내려온 지하조직 학회, 그 안에서 니체와 맑스를 논하던 선배들, 세상 더러운 것 깨닫고 바뀌어야 한다는 본능이 불끈댄다. “그래, 운동이야” 그는 책을 읽고 토론을 하고, 대자보를 쓴다.

지방대학에 입학한 C는 진정한 대학의 재미는 ‘술’에서 느껴진다는 것을 깨닫는다. 소주를 먹고 불쇼를 벌였다는 전설의 3~4학년 선배들은 스펙전장에 나갔지만 아직 우리에겐 ‘여소남대’의 황금비율의 동기들과 팔짱 한 번에 밥을 얻어먹을 수 있는 2학년 선배들, 그리고 철없는 복학생들이 있다. 대단한 C. 그녀, 밥값을 자신의 돈으로 낸 적이 없다.

이 빌어먹을 명문대라는게, 대체로 전통도 있는 학교여서 분위기가 많이 차이날 수밖에 없다. 물론 그 전통마저 사그러드는 것이 현실이지만, 아직 분위기의 차이는 꽤 난다. 내가 왠만한 노력으로는 그들의 인맥을 잡을 수도, 웬만큼 공부하지 않으면 그들만큼 사유하지도 못한다는 느낌을 지워버리기 어렵다.

결국 지방대생일수록 쉽게 신자유주의의, 신자유주의적 방식의 포로가 된다. 돈은 달콤하고 소비는 황홀하다. ‘고민’이 담긴 술자리 보다. ‘즐거움’이 담긴 술자리가 자리 잡고 TV에서 버젓이 방송하는 야한 커플게임 같은 놀이들이 술자리를 지배한다.

대학 4학년 때, 늘그막이(-_-) 학생회 간부활동을 하면서, 당시 2학년 학생들과 충돌을 한 적이 있다. 학술발표 때였는데, 나는 “적어도 학술발표에 있어서는 지겹고 짜증나도 발제와 토론으로 가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후배들은 “그거 보는 사람도 없는데, 그런거 하느니 연극과 노래로 재미있게 구성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아. 내가 완전 노인네(-_-)구나”라는 한탄을 하면서도 적어도 1년에 1번, 그것도 공부하는 학회에서 학술적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에 ‘연극과 노래’로 1년의 고민을 풀자니, 납득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결국 실세(-_-)는 그들이고, 나 역시 말년병장의 심정이었기에 이를 용인할 수밖에 없었고, 문제의식없이 단지 ‘웃음’이 주가 되는 연극을 지켜봐야 했다.

커리큘럼도, 공부하는 방식에 대한 전통적 고민도 없는 곳에서, 이들은 ‘학회’라는 곳에 소속되어 있지만, 그마저 술과 노래가 아니면 별다른 의미를 찾기 어려운 곳이 되어간다. 반면 아직 ‘전통’이란 이름으로 비교적(그나마도 시간이 지나면 옅어지나) 사회를 바라보는 눈이 갖춰지는 명문대생들은 점차 성장해 나가고, 그들이 사회적 지도층으로 재생산되는 것은 ‘불평등’의 관점을 넘어 자연스러운 ‘현상’이 된다.

이제 점점 학번이 내려갈수록 함께 술을 마시는 후배들에게서 ‘사회’에 대한 고민을 듣기 어려워졌고, 나 역시 그 얘기를 굳이 하지 않는다. 어떤 방식으로든, 사회적으로 앞서가는 이른바 명문대생을 보면, 이게 사회의 문제인지, 아니면 개인의 문제인지. 난 이제 알쏭달쏭이다.

***

PS. 하지만 20대의 고민은 그 고민대로 의미가 있다. 다들 비슷하고, 그런 점에서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88만원세대 2탄)에서 나온 20대의 글들은 참으로 울림이 있는 글들이었다. 다만.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는 테이블이 서울의 한 명문대 학생들에게만 주어진 것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대 다니는 학생들의 고민을 온전히 담을 수 있는 글이 그들에게서 나올 수 있을까? 명문대를 우러르고, 지방대를 너무 폄하한다고? 지방대생인 나 역시 그래서 미치겠는거고, 그래서 이 글을 쓰는 거다.

# 잘 읽으셨나요? 괜찮으셨나요? 가벼운 추천 한 방이 달고나를 춤추게 합니다. 크윽 ㅠㅠ

Posted by dalgona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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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풍 2009/11/28 09: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춤춰봐-

  2. 더 모우 질라 2009/11/29 23: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에겐 4명의 친구가 있지요. 고등학교 시절 봉숭아 밭에 모여 앉아 태어난 날이 다르니까 당연히 죽는 날도 달라야 한다며.. 저 녀석 보단 어떻게든 오래 살꺼라며 서로가 다짐하던 돈독한 우리 독수리 오형제!! 그 시절 우리는 공부를 못하지는 않았습니다. 수능도 다들 상위 10% 초 중반대의 성적을 받았습니다.(재수 포함ㅋ) 하지만 모두가 지방대를 갔지요.ㅡㅡ; 100명중 최소 20등 안에 드는 성적으로간 지방대에서 우리들은 나름 공부하며 착실히 졸업도 했습니다.(아직 3명은 미졸 이구나ㅡㅡ;) 그런데 지금 우리 독수리 오형제들의 사회 초입 성적표를 보자면 정말 안습입니다. 지구를 지키기는 커녕 지구에서의 안정적인 일자리도,, 집도,, 여자친구도,,(이건 나만 그렇군요ㅡ.,ㅡ내가 젤 불쌍하군) 없습니다. 솔직히 10명 중 5등하는 학생이 공부를 못한 걸까요? 아니죠 중간은 한거죠.. 근데 우리들은 10명중 2등 했거든요.. 근데 사회는 우리보고 공부 못하고 능력이 없다네요. 상위 5%가 되지 못하면 너무나 막막한 현실에 나머지 95%는 먼산만 바라보지요. 저 추천 했습니다.. 춤춰 주세요..ㅋ

  3. 절대지존 2009/11/30 13: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댄스타임. 원츄~

  4. 녹우 2009/11/30 16: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30대 초반 모 신문 기자였는데 그렇게 진보적인 기사(?)를 쓰던 양반도 술이 얼큰히 들어가니 어느 대학 나왔냐고 물었던 일이 있어요. 바로 오그라들더라고요. 그 기자 양반은 명문대 출신이었고 자기 대열에 나를 끼워줄 수 있나 없나 간보는 중인 듯했어요. 학벌 뭐가 중요하냐 호기롭게 손사래 쳐도 가만 보면 지들끼리 잘 뭉쳐요. 특히 지식인들요.
    지식인 사회에도 계급이 존재하는 듯해요. 상층에 끼어들어 지식인 행세 좀 하려면 명문대 나와야 할 거예요. 아는 이 중에 글도 잘 쓰고 알 만큼 아는 이 있는데 그 놈의 명문대 출신이 아니네. 학사 출신이고. 안타깝죠. 상층으로 아등바등 올라가려 해도 걔들이 끼워줘야 말이지.

20대, 생태보고서

2. 삭막한 캠퍼스 - 등록금 인하 대신 스타벅스를

투덜대도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라고, 그것이 ‘추세’이자 ‘현실’이라고 설득했다. 나 역시 대학 다닐 때 운동권 언저리에서 서성거리기만 했고, 녀석도 운동권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변해가는 캠퍼스의 분위기와 후배들의 행동을 녀석은 납득하지 못했다.

불과 몇 년 사이었다. 물론 선배들 말에 따르면 예전부터 변화의 폭은 크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의 캠퍼스에 ‘심정적 변화’만을 느끼는 건 아니었다. 최신식의 건물, 프리젠테이션 형태의 강의장은 책상 질질 끌고 옹기종기 모여앉아 토론했던 추억을 망가뜨렸다.

                  △근조. 대한민국 부모님들의 등골.

학교 주변의, 3000원 짜리 백반, 찌개집은 사라지고 그 자리는 프렌차이즈 패스트푸드가 들어섰다. 과방에서 기타치고 노래하는 선배들의 모습은 신기루처럼 사라져갔고 그 자리를 매운 것은 과방 안의 컴퓨터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간지 나는 싸이 사진을 보는 후배들이었다.

사실 얼마 전(나 대학 1학년 때, 그러니까 불과, 아주 엄청나게 얼마 전, 매우 근접한 과거 -_-)부터 조짐은 보였다. 내가 얘기하는 변화의 기준은 “대학생이 되면 운동을 해야지!”가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인가 대학생들의 요구가 굉장히 소소해지고 지엽적이 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학교 곳곳에 내걸렸던 ‘비정규직 철폐’ 플랫카드는 각종 광고게시물로 채워졌고, ‘등록금 인하’를 외치던 총학생회장 선거공보물은 ‘교내 스타벅스 등 편의시설 설치’로 바뀌어졌다. 나쁘다고는 볼 수 없다. 앞서 설명했듯이 그 역시 ‘추세’고 ‘현실’이니, 다만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는거다.

자기고백부터 시작하자면, 사실 ‘운동’이 싫었다. 뭐 다른 이유가 아니라, “부모님이 걱정할까봐”, 그래서 싫었다. 뭐 그 이후부터 싫었던 것은 다른 이유들이 좀 있었지만, 당시로서는 굳이 부모님에 걱정을 끼쳐드리면서까지 운동이란 걸 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부채감’은 좀 있었다. 알몸으로 누운 채 짓밟히는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의 모습을 비디오를 통해 보면서, 철거촌에서 용역깡패들과 매일같이 살 떨리는 전쟁을 벌여야 하는 세입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들에게 힘이 되어주지 못했던 미안함은 있었다.

그런데 그 ‘부채감’도 사라졌다. 후배들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야. 그래도 대학 다니면서 학고도 한 번 맞아보고, CC도 한 번 해보고, 운동도 한 번 해봐야지”라고 툭 던졌을 때, ‘운동’부분에서 만큼은 힉겁한 반응이 돌아왔다. “네? 그런 걸 왜 해요?”

맨 앞에, 고민을 털어놓은 그 친구 역시 딱히 운동 때문에 고민을 털어놓은 것은 아니었다. 단지 학생회 출신으로서, 그리고 지금 근접한 거리에서 지금의 대학생을 바라보면서, “저들은 왜 이렇게 자꾸 개인주의화 되어갈까?”라는 고민이었다. 저들을 집단화 시켜 운동권을 만드려는 욕심도, 이명박 정권에 맞서 싸움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왜, 이제. MT조차 가려고 하지 않을까”라는 고민, 그거. 그래. 이제 그 단계까지 온 것이다.

앞에서 한참을 주저리 주저리 “마치 대학생들은 이제 기대할 것도 없다”는 것 마냥, 푸념을 늘어놓았긴 했지만 사실 내가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그들을 위한 ‘변명’이다. 뭐, 앞으로 나올 얘기들이야 모두 다 아는 이야기일 테지만.

A는 등록금 고지서를 받고 나서 ‘후덜덜’한 가슴을 둘 곳 없다고 했다. 올 해 한 학기 등록금만 거의 400만원, 방학동안 아르바이트를 내내 한다고 해도, 두 달 내내 한 푼도 안 쓰고 모은다고 해도 대학생들이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120만원 남짓, 등록금의 1/4도 모으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그는 이번에 아르바이트 자체를 포기했다. 등록금에 ‘보탤 수라도 있는’ 금액도 모으지 못할 바에는 방학동안 공부나 한다고. 그래서 장학금을 받든, 취업을 빨리 하든 하는게 더 낫다고 했다. 그리고 부모님들도 “그것이 낫다”고 동의했다.

아마 그는 등록금 뿐 아니라 생활비까지 부모에게 받아써야 할 것이다. 그렇게 계산해보면 그가 부모님에게 받아야 할 돈의 액수는 ‘천만원’을 훌쩍 뛰어넘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에게 ‘사회적 목소리’를 요구해? 이런 현실을 함께 바꿔보자고? 당장 내일 바뀔 것이라는 보장을 주지 않는 이상, 그에게 이런 요구는 가당찮다.

A는 그랬다. “우리 집 사정이야, 내가 잘 아는데, 솔직히 엄마한테 ‘만원 만’하기가 쉬운게 아닌거, 형도 알잖아. 나 때문에 집이 휘청거려서 휴학할까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데 이미 학자금 대출도 천만원이 훌쩍 넘어버렸어, 내년부터는 원금도 값아나가야 할 텐데, 등록금은 매년 올려놓고, 학자금 대출 이자도 올린다고 하고, 나라가 이렇게 장사해도 되는거야?”

“그래, 그럼 그거 좀 바꿔달라고, 나와서 얘기하면 되지”, 안되는 거 뻔히 알면서도 나는 그랬다. 그러자 돌아온 냉소, “안되는 거 알잖아? 그럴 시간에 영어공부나 해야지”, 꼭 집혀져 뜨끔한 마음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작년, 여름.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던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 많은 친구들에게 ‘한 번 나와보라’고 설득했던 적이 있다. 물론, 나온 친구들도 꽤 되었지만 나오지 않은 친구들도 꽤 있었다. ‘광우병’은 이들이 동의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부모님의 ‘으름장’에, 혹은 ‘이런데 나와서 잘 못되면 받을 부모님의 상처’에 나오지 못했다.

그리고 ‘사회적 목소리’에 대한 이들의 거부감도 있었다. 당장 자신의 목을 죄어오는 ‘등록금’에 대한 것도 있지만, 집회에서 내는 목소리와 분위기에 동의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비정규직 철폐’ 구호를 놓고 한 친구는, “나는 왜 그렇게 주장하는지 모르겠어. 어차피 자본주의 사회고 이 사회도 경쟁인데, 열심히 노력해서 정규직이 될 수도 있는거고, 회사 사정에 따라 비정규직을 쓸 수도 있는거지, 무조건 철폐하라고 한다면 그게 가능한 거냐고”라 말했다. 이 친구 부자냐고? 물론 아니다.

PS. 마치 이 땅의 대학생들이 모두 생활고에 시달리고 장래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다는 걸, 나 역시 잘 알고 있다. 20대는 소비에 능하고, 사치를 즐기는 세대. 그리고 대한민국은 그런 20대들의 습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회다. 그 얘기는, 다음편에 하도록 하자.

Posted by dalgona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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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니발 2009/11/29 2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 학교 앞도 김밥천국이 사라지고 카페들만 생기고 있어요 GG
    그리고 매년 학생회에서 등록금 인하를 공약으로 내걸고 출마하는데
    막상 당선되도 등록금은 오르기만 하더군요
    군대 갔다오니 역시나 2년전보다 더 올랐어요

  2. BD 2009/12/15 19: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악순환의 반복...교육비가 올라가지만..요즘 부모님들은 하나씩만 낳아서 제대로
    키운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버티어 낸다. 그러니 등록금은 올라가는데..대졸자는 더 많아지고 가게부채는 사상 최악이겠지..어찌보면 못배우고 못먹던 시절에 한이 맺혔던 그때그시절의 교육열부터 시작됐다고 봐야겠군요..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이제 앞으로 저출산이 빚어내는 문제점들이 아닐까요...

20대, 생태보고서

1. 공시족 랩소디 - "'한 방'을 노리는 또 다른 이유들"

“아침부터 줄을 서서 도서관에 들어가면 말이지, 나도 모르게 항상 가던자리로 가거던, 그런데 내가 늘 앉던데 앉으면? 다른 사람들도 자기 앉는데 앉는단 말이지, 그럼 서로 얼굴을 알어. 그럼 인사 해야해? 그럴 순 없지. 그런 일 겪어봤어? 안 겪어봤으면 말을 하지 마. 엄~청 뻘쭘해”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앉아서 책이나 보고 있는데 말이죠, 음... 배가.. 금방 꺼져요. 이상하게, 난 한게 없는데, 그럼 일어나서 밥을 먹으러 가요. 밥 먹고 오면 졸립죠, 그럼 좀 자요. 그 다음에 일어나요. 그럼 배가 고파요! 으악!!”

“평균 잠드는 시간? 음.. 새벽 3~4시 쯤 되지? 물론 피곤하지 집에 오면. 그런데 잠이 안와. 그냥 멍하니 있거나. TV를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그럼 그 때쯤 잠이 들어. 그리고 한 10시 쯤 일어나나?(그러니까 밤에 잠이 안오지!!!)”

‘무기력’, 누군가. 20대는 ‘철근도 씹어 먹을 수 있는’ 나이라고 했다. 20대 특유의 경쾌함.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그리고 때로는 건방지기 까지 한 그들만의 매력. 그리고 멀리 꿈을 향해 뻗어있는(공익광고 같다능;;) 아름다운 그 길, 그 길에 대한 그들의 그림을 보고나면 때로는 전율도 일곤 했다.(나도 20대인데;;;)

그런데 꽤 많은 공시족들에게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무기력감’이었다. 그 또한 꿈인데. 그 꿈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못한다. “이게 맞나?”, “다른 애들은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내가 될까?”, “안되면 어떻게 하나?”, “그럼 난 무엇을 해야 하나?”

                           △두껍아. 넌 내 기분 알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우선 성취의 끝이 단순히 ‘시험통과’이기 때문이다. 즉 꿈에 단계가 없고 과정의 그림은 너무나 단순하다. 일종의 ‘도박’, 그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잡힌 친구들은 꿈을 발전시킬 수 없고, 꿈으로 향하는 길은 너무나도 지루하고 따분하다.

“힘이 든게 아니라, 이젠 아주 힘이 없는거지. 문득 아. 이러면 안되지. 하며 정신차리고 공부하다가도 계속 책상머리 앞에 앉아있다 보면 그게 너무 힘들어. 기운도 빠지고, 잠만 오고. 나한테 짜증은 계속나고. 너무나 답답하고, 뭐가 뭔지도,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겠는데, 난 어떻게 해야해?”

두 번째. 그렇다고 그 꿈 비스므레 한 것을 포기하기에는, 이 사회가 거기에 너무나 많은 선물을 걸어 놨다. ‘합격만 된다면’, 그야말로 모든 것이 변한다. 반찬이 변하고 주변의 느낌이 변한다. ‘엄마미소’와 ‘자체발광’작렬.

개인의 인생에 개인의 평가보다 주변의 평가가 우선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역시나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승리감’이다. 그리고 어느것 하나 안정적인 것이 없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적어도 ‘성실’만 하다면 굳건히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안전지대에 돌입했다는 ‘안도감’도 얻어낸다.

그리고 여기에 부차적으로 쏟아지는 것들-세상을 다가진 기분과 엄마친구 아들로의 당당한 전환, 결혼 상대방 집안에 대한 떳떳함, 태양처럼 쏟아지는 부러움의 시선 등등등-은 서비스다. 포기하기엔. 너무 찬란한 미래 아닌가? 물론. 붙.으.면.

A(27)는 졸업 후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다가 공무원시험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다니던 직장에서 일했던 시간이 2년, 길진 않지만 짧다고도 할 수 없는 시간이다. 하지만 이 친구는 주저 없이 사표를 사장 얼굴에 던지고(그 녀석 표현대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친했던 사람은 아니라, 꽤나 오랜만에 그 친구를 만났고, 그때는 이미 1년에 걸친 공부 끝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뒤였다. 여러 사람들이 함께 있는 자리였는데, 이곳에는 여전히 공무원시험에 매진하고 있는 친구도 있었다.

느껴지는 분위기는 ‘묘’했다. 축하의 인사를 전하나. 축하의 분위기는 아니고, 기쁨을 나누나 무거운 느낌. 뭐. 그런거. 마치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우고 돌아온 유신랑을 끌어안던 비담랑의 얼굴이랄까? 복잡미묘한 느낌이 술자리를 내내 감쌌다.

나 역시, 이제 다시 사회생활의 고행길이 열리는 순간임에도 “축하한다”는 말 외에 적절한 인사를 찾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말을 건네자 그 친구는 겸양쩍어 했다. “9급 공무원인데 뭘”, 이 친구, 왜 회사를 그만두고 ‘공무원’의 길에 접어들어야 했을까?

“그 회사 다녀야 한 달에 100만원 조금 넘게 받는데. 그 돈으로 학자금 대출 이자 갚고, 이것저것 내고, 내 쓸거 쓰고 하면 남는 게 없잖아, 언제까지 이런 생활을 할 수는 없으니까. 게다가 거기서 계속 일해 봐야 나중에 어떻게 될지도 모르겠고, 회사가 망할 수도 있는거고, 앞으로 결혼도 해야 하고 아기도 키워야 할텐데

그리고 친구들이나 친척들에게 ‘나 이 회사 다녀’라고 하면 솔직히. 비웃음이야. 거기서 얼마 받냐고, 그 돈으로 어떻게 살겠냐며, 결혼은 하겠냐며, 계속 그러니까 나도 자꾸 그렇게 생각이 되고, 좀 도박을 해서라도 공무원이 되어야 겠다라고 생각했어, 적어도 ‘공무원’이라고 하면 ‘와, 괜찮다’, ‘좋다’, 이런 말들을 하잖아”

공무원 시험에 당당히 합격한 이후, 이 친구 예측대로 모든 것이 변했다. 직장 때려치고 공무원 시험 준비한다 했을 때부터 못마땅해 하던 부모님들은 합격이후 180도 달라졌고, 그렇게 무시하던 주변사람들의 대접도 달라졌다.

그런데 자기 자신은? 9급 공무원이 되면 그 다음은? “그런데 솔직히, 공무원이 돼서 뭘 해야 하는 건지는 모르니까. 딱히 재미있을 것 같지는 않고, 일단 뭐 일을 해 봐야지 뭐, 그래도 성실히만 다니면 딱히 잘릴 위험은 없는 거니까 잘 다녀야지 뭐”

A는 ‘승리감’과 ‘안도감’속에서 휘몰아치는 매력을 뽐내고 있었고,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함께 우울’했던 친구들과는 현격히 다른 자태를 지니고 있었다. 물론 의도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요 작은 집단 사이에서, 불과 20대 중반 정도 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미 ‘위너’와 ‘루저’는 정해져 있었다.

어영부영 술자리는 금새 끝났고, 공시족들은 총총 자리를 빠져나갔더랬다. 부러움, 질투심, 원망과 한스러움, 그리고 무엇보다 ‘무기력함’을 노출시키며. 왜. 붙지 않은 자들은 저렇게 무기력해야 하는건가? 누가 저렇게 만드는 건가? 그게 자기 자신 만인가, 아니면 공시족을, 적은 돈으로도 열심히 살아가는 노동자들을 ‘루저’로 취급하는 이 사회인가?

(1. 공시족 랩소디. 끝. 2탄은 '대학생' 이야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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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더 모우 질라 2009/11/21 09: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치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우고 돌아온 유신랑을 끌어안던 비담랑의 얼굴이랄까?" 아~ 소름돋아ㅋ.. 어렸을때 어른들에게 들었던 말이 떠오르는군요..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은 틀려 먹었어~ 어려서 천재 소리 듣던 아이도 재능을 살릴수가 없어서 나중에는 고작 동사무소에서 일이나 하고 있지.. 인재를 키울줄 몰라..." 그런데 요즘은... 어려서 천재 소리좀 들어봤어야 9급 공무원 시험 합격해서 동사무소에서 일한다네요..ㅎㅎㅎ

20대, 생태보고서

1. 공시족 랩소디 - “나도 그냥 일하고 싶은데”

26살, A는 다시 생계전선에 나서야 했다. 오랜 공무원 시험 준비로 ‘실탄’이 바닥났기 때문이다. 학원에 등록해야 하고, 참고서도 사야 한다. 차비도 있어야 하고 밥값도 있어야 한다. 밥값. 차라리 학교라면 밥값이라도 저렴할 텐데, 이제는 5천 원 짜리 점심도 싼 축이다.

술만 마시면 A는 “그냥 다 때려치우고 일할까?”라는 말을 달고 살았더랬다. 그럼 정말 때려치우면 되지,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왜? 반복된 공부에 실력은 늘어가니까. 그래 그 빌어먹을 ‘가능성’이 계속 앞길을 막아선다. 그것이 그에게 “마지막 한 번만, 한 번만 더 도전하자”고 속삭인다.

실탄은 없지, 가능성은 속삭이지, 그래서 선택한 것이 아르바이트, ‘주경야독’의 생활이다.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인 다른 아르바이트에 비해 ‘필요한 돈만 버는 것’이기에 아르바이트를 선택하는 기준도 까다롭다. ①무엇보다 공부가 우선, 몸이 피곤해선 안 된다. ②이왕이면 일하면서 공부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그래서 이러한 생활을 하는 아르바이트생의 대부분은 편의점이나 PC방, DVD방 같은 곳의 문을 두드린다. 카운터에 앉아(편의점은 앉지도 못한다. 한 때 편의점 알바생으로 강력히 규탄한다) 책을 펴고 밑줄을 그으며 공부한다. 그런데 솔직히. 이렇게 되면 일에도 공부에도 집중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내 친구 가라사대. “공부? 그거 돈 있는 애들이나 하는 거 아냐?”라고 했다. 공시족이라고 다 같은 공시족이 아니다. 부모의 지원으로 원활한 학업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람들, 이렇게 계급이 나뉜다.

본의 아니게 일과 공부를 병행해야 하는 이들의 생활은 더욱 퍽퍽하고 절망적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공시족이 이런 고민을 품어봤을 것이다. 이번 이야기는 이와 관련된 이야기다.

A를 만난 것은 올해 3월, 노량진역 인근 편의점이다. 수많은 공시생들이 퀭한 얼굴로 “앞에서 두 번 째줄 여자는 머리를 묶는 게 이쁘다”는 수다를 떨어가며 담배를 사고 사발면을 끓였다. 이들의 공세로 바쁘게 손을 놀려야 했던 그를 기다리다 대충 일을 끝낸 그를 ‘내일부터 공부 열심히 하라’는 격려의 의미로 술을 먹이기 위해 인근 술집으로 이끌었다.

퀭한 얼굴과 진한 다크서클, 삭막한 눈빛과 무미건조한 표정, 일반적인 ‘공시족+비정규직 노동자’의 마스크를 동시에 지난 그의 얼굴 자체만으로도 ‘안습’이었다. 학교 다닐 때 만해도 이렇게 ‘쩔어 있지’ 않았거늘, 술집에 앉아 그를 바라보는 것 자체도 마음이 무거웠다.

A의 스케줄을 점검해 봤다. 7시 기상, 8시 학원으로 출발, 9시부터 종합반, 12시 점심, 1시부터 9시까지 편의점 아르바이트, 그리고 10시에 귀가 새벽 2시 정도까지 못다 한 자습을 한다 했다. “4당5락이라 했으니 넌 떨어졌다(5시간 자니까)”고 말했다가 한 대 맞을 뻔 한 나는 다시금 진지한 얼굴로 “힘드냐”고 물었다. 그런데 그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불안하다”였다.

어떤 친구들은 새벽 5시에 일어나 동도 트기 전에 독서실에서 공부를 시작한다고 했다. 돈을 벌어야 하는 A로서는 자신이 일하는 그 시간에 남들이 공부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했다. ‘공부량’이 ‘성적’과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워낙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일을 하는 시간에도 잡념이 끊이지 않는다고 했다.

여기서 문득 생각난 장면, 지난해 초겨울 한 출판기념회를 갔다가 그곳에서 질펀하게 술을 먹고, 그러고도 새벽에 PC방 가서 기사를 쓰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 적이 있다. 대방역 인근이었는데, PC방에서 나온 시간이 새벽 5시, 그런데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줄’이었다. 이 새벽에 웬 줄? 노숙하시는 분들이 밥을 먹기 위해 선 줄인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이 줄을 선 곳은 ‘경찰공무원 학원’ 앞, 이들은 단지 ‘앞자리’에 앉기 위해서 동도 트지 않은 새벽에 일어나 부르튼 눈을 부여잡고 줄을 서고 있던 것이다.

이처럼 누구는 잠자고, 누구는 일 할 시간에, 또 다른 누군가는 경쟁에서 앞서 나가기 위해 잠을 끊는다. 매일 같이 그런 경쟁자들과 맞상대해야 하는 A, 그는 일을 하면 불안감, 일을 안 하면 절망감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주저앉아 있었다.

이날 술자리에서 그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저임금 정규직인 내가 “부럽다”였다, “그래도 형은 하고 싶은 거 하잖아”라며, “결혼도 못 할 만큼 돈 버는 게 뭐가 부러워”라며 그를 달래도 그는 “무엇인가 하는 것” 자체를 부러워했다. 자기는 “시간을 버리고 있다”고 했다. “20대가 사라졌다”했다. “뭐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 다음 부록처럼 따라다니는 말은 “나도 그냥 일하고 싶다”다. 그런 그에게 내가 “그럼 일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일하고 싶다’는 말은 ‘무엇을 할지 모르겠다’란 말과 같은 뜻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내 갈 길 가고 있는 거면 좋겠는데, 이게 내 길이 맞는지도 혼란스럽다”며, “하루에도 몇 번씩 가야할 길에 대해 고민하지만 보이는 시야에는 이 길 밖에 없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이 길이 맞는지도 모른 채, 그냥 앞서가는, 혹은 뒤에서 쫒아오는 친구, 형제들을 뿌리치고 달릴 수밖에 없다.

A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11시가 훌쩍 넘었다. 금요일 밤, 주5일제 직장인인 나는 쉴 수 있지만 이 친구는 내일도 7시에 일어나 도서관에 가야 한다고 했다, 헤어지면서도 “공부하러 가야겠다”며 굳은 결의를 보여준 대단한 친구, 부모에게 손 안 벌리려 일과 공부를 병행하며 성실하게 살고 있는 친구.

이 친구, 공무원 삼수생이다.

*      *      *

P.S 공부와 노동 사이에서 고민하는 A에게 일어나고 있는 또 하나의 문제는 ‘노동권’이다. ‘효율성’이 깃든 아르바이트는 최저임금조차 보장받지 못할 만큼 열악했다. 편의점 알바 시급 3000원~3500원, 정규직-비정규직을 통틀어 최저임금은 법으로 규정된 가장 낮은 임금임에도 그 만큼의 급여도 받지 못한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효율성과 편리함 뒤에 노동권은 질식되어 있다. 공무원이 되건, 아니면 다른 직장을 갖건, 어쨌거나 노동자가 될 이들이 첫 발을 들여놓는 곳에서부터 노동의 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은 여기서부터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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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니발 2009/11/20 23: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편의점 알바가 쉬운데 급여가 싸죠 ㅋㅋㅋ

20대, 생태보고서

1. 공시족 랩소디 - 대학 때도 안한 4수.

‘장수’는 하는데, 딱 지금 죽겠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기분을 무려 몇 십만이나 되는 대한민국의 20대가 똑같이 느껴야 하다니!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 보자. 초등학교, 아니 중학교 때 까지만 말이다. 어른들이 머리를 쓱싹 만지며 “넌 무엇이 되고 싶니?”라 물었을 때, “네, 저는 9급 공무원이 되어서요, 간석3동사무소에서 등본 띄어드릴 생각이에요, 뭐, 월급도 꼬박꼬박 나오고, 공무원연금도 받고, 나중에 결혼해 애 키우기 좋잖아요”라고 대답한 자, 몇 명인가?

그 이후 불과 10년이다. 20대 젊은이들 상당수가 저렇게 ‘겉늙은’ 대답을 하고 있다. 그리고 '꿈'이 아닌 '삶'을 위해 전쟁터 피폭현장 같은 노량진역 계단을 오르내린다. 화장기 없는 얼굴과 등산용 가방, 생기라고는 눈 씻고 찾아보기 어려운, ‘쩔어’있는 얼굴을 하곤.

희안하게도 내 가장 친한 친구들 5명 중 1명은 저임금 정규직(나), 1명은 비정규직, 3명은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그야말로 20대 생활의 축소판인데. 이 중 28살, A는 ‘4수생’이다. 대학 때도 재수 없던 그가 4년째 도전 하고 있는 것, 다름 아닌 ‘9급 공무원’이다.

그래, A는 ‘공시족’이다. 그리고 그것은 4년째 현재진행형이다. 어느덧 30줄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고 그 사이 좋은 사람과 결혼도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9급 공무원’의 꿈을 놓지 못하고 있다. 대체 9급 공무원이 뭐 길래?

27살, B는 소방관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B역시 ‘공시족’이다. 그런데 그는 좀 아쉬웠다. 의무소방대를 나와 해당자만이 응시할 수 있는 특채에 도전했고 한 번에 필기시험도 떡하니 붙었다. 그런데 실기에서 낙방했다. 그렇게 B도 팔자에 없는 재수생이 되었다.

고등학생 때, 우리는 객기부릴 나이에도 온 세상을 다 가질 욕심은 없었다. 세계를 통치하겠다는 허황된 꿈을 꾼 적도 없다. 그냥 ‘먹고 살 만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그런데 20대가 저물어가는 지금, 우리의 이마에 ‘미래차압딱지’가 붙어있다. 백수라는 이름으로, 비정규직의 이름으로, 저임금이란 이름으로.

                        △고등학교때 봤던 저 곳,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나?

몇 차례 노량진을 가봤을 때 개그콘서트에서 “몇 년 만에 창문 있는 방을 마련한” 고시생 ‘노량진 박’의 이야기가 떠올라 씁쓸하게 웃음 지었다. 수많은 공시족들이 서식하는 땅, 그들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희망과 절망의 경계선.

9급 공무원 ‘당첨’이라는 꿈 하나를 붙잡고 그 경계에서 외줄타기를 하는 이곳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점점 ‘다수생’이란 늪에 빠져든다. 그리고 ‘뽕 맞은 것처럼’, 희망고문으로 구멍 난 가슴에는 바람이 숭숭 들어오고 생기는 잃어가고 총기는 줄어든다.

당사자는 아니지만 관찰자로서 ‘공무원 시험’의 가장 큰 공포는 ‘다수생의 늪’으로 보였다. 가만히 생각해보자 엉덩이 들썩이는 20대에, 도 닦는 것도 아니고 매일, 몇 년을 똑같은 교재로 똑같은 공부를 하며 똑같은 생활을 해야 한다.(친구들 상태가 안 좋은 것도 혹시 이 탓?)

철없는 어른들과 객기 있는 아이들은 “그렇게 하면 붙어야지, 다 지 노력이 부족한 거야”라며 혀를 끌끌 찰지 모르겠다. 하지만 노량진 골목을 오가는 대부분의 ‘공시생’들은 이들처럼 다수생이다.(그리고, 다 떠나서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는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인가?)

A에게 물었다. “매일 똑같은 책, 똑같은 공부, 지겹지 않니?”, 뜸을 드리던 그는 “지겹다”고 답했다. 그럼 “그 지겨운 공부는 왜 하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에게 답이 돌아왔다. “이제.. 이제는 그만 하려고”, 헉. 이런 대답이 나올 줄은.

그러나 그는 오늘도 여전히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 빠져나올 수 없는 늪에 들어가 있으니까. 그리고 A는 아직은 오르지 못한 고지를 바라본다. 매번 그렇게 절망해오면서도, 손때 탄 행정학 책을 다시 손에 쥔다. 왜 이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을까?

그리고 왜 공무원일까?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다. 공자시절 가라사대 “할 일 없으면 공무원이나 하라”했다. 그래 그 말이 맞다. 지금 대부분의 20대들이 공무원이 되려고 하는 이유는 매우 역설적이게도, 공자시절 가라사대와 똑같다. “할 일 없으면 공무원이나 하라고 했으니”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A는 ‘공무원 붐’이 일어나기 전, 고등학생 때부터 공무원을 꿈꾸었고 대학도 행정학과를 갔다. 물론 ‘행정고시’의 포부는 ‘9급’이 되었지만 안정을 찾아 몰려드는 불안정한 20대들에 틈에 치여가며 불안과 초조로 고개를 떨궈가는 A를 보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더욱이 이 친구는 이번에 100점 만점에 92점 나왔다. 컷이 94점임을 감안하면 불과 1문제로 또다시 희망과 절망의 줄타기는 절망으로 기울었다. 이게 무슨 짓인가?)

어쨌건, 꽤 많은 공시족 장수생들은, 노스트라다무스도 아니고, 이들은 무려 40년 후를 내다보고 있다. 공익광고에서 나올법 한 샤방한 노후. 공무원 연금으로 살아가는 행복한 노후. 공무원에게 쏟아지는 각종 혜택을 기대한다. 사실 정확이 어떤 일을 하는지 관심은 많지 않다. 꿈이 아니라 현실을 찾고 있으니, 일단 되면, 끝.

B와 술을 마시던 중 소방관에 도전하는 이유에 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간단했다. “할 만한 일”이기 때문에, 게다가 결혼, 육아. 사방팔방이 핵폭탄처럼 불안정한 이 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정’을 찾아나서야 했다. 이는 ‘생존전략’이다.

그러다보니 ‘도전’이란 것이 20대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끝난다. 되면 위너, 안되면 루저, 안정적인 궤도진입을 하기도 전에 발사체 분리를 시도하니, 이들의 마음은 온통 불안과 초조로 가득 차 있다.

우습지만 우스울 수 없는. 이들의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했다. 달 밝은 밤, 먼 산을 바라보며 “이 길이 나의 길인가”를 탄식하기를 수 천번, “젠장, 나 몰라”를 수 백번 읊조린다. 나이는 먹어가지, 주머니에 돈은 없지 붙을 거란 보장도 없지, 그리고 주변의 무시까지. 달은 차오르는데, 우리는 어딜 가야 하나.

“집에 있는 것 자체가 싫다”는 말을 꽤 많은 친구들에게 들었다. 속 한 번 썩인 적 없는 부모님들의 ‘내 새끼’들은 트레이닝복에 떡진 머리로 아침마다 눈비비고 나오는 ‘저 왠수’가 되었다. 집에서 책 펴놓고 있으면 “나가서 뭐라도 좀 하라”고, 눈치껏 설거지라도 하고 있으면 “이럴 시간에 공부나 해라”며 면박이 돌아온다. 뭐. 어쩌라고?

더 큰 문제는 하나의 고민에만 매몰되다보니 다른 고민이 진입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최근 공시족의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고 있는 추세라 더 어린 친구들이 더 좁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위기에 봉착했다.

바로 이런 고민이다. 아래는 한 후배가 보낸 글이다.

“근데, 공부를 진짜 많이 안 했어요. 만약 붙는다면 다 운이겠죠 그런데, 그 동안 시험 볼 생각에 토익이며 자격증이며 하나도 준비 안 했었는데, 막상 지금 되니 임용고시 볼 자신도 없어요. 공부도 안 되고, 뭘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어느 때나 그랬지만 지금의 20대 역시 10대 때는 오로지 대학 하나만 보며 정해진 교과서, 참고서를 붙들고 살았더랬다. 대학가서 역시 정해진 커리큘럼에 족집게 도사처럼 시험문제 집어주는 친절한 교수님만 따르면 높은 학점도 얻을 수 있었다. 공무원을 결심하고서도 정해진 참고서만 붙들고 살았던 이들에게 “무언가 창조적인 일”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이것이 이들이 고통의 시간을 하루하루 이어가면서도 ‘다시 한 번’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는 이유다. “다른 것을 하자”고 결심하는 순간부터 이들은 행정법을 접고 토익 책을 꺼내든다. 아 놔, 이 참고서 생활, 대체 언제쯤이나 끝나게 될까?

ps. 개인적으로 이들이 공무원이 돼 사회에 나간다면 ‘공무원 시국선언’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을까 궁금하다. ‘안정’을 목표로 공무원이 되었기에,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최고의 선”이란 기준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갈 게 불을 보듯 뻔하다. ‘명령불복종’, ‘항명’이란 단어는 공무원 사회를 지배할 것이고, 공무원조직은 점차 군대조직을 닮아갈 것이다.

스펙은 높아지고 애들은 잘나지는데 공무원 조직은 발전없고 오히려 퇴보할 가능성이 높다. ‘안정’이 사회를 지배해버렸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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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모군 2009/11/13 17: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휴 대한민국의 20대로 살아가기 참 힘든거같네요. 이렇게 된 원인이 도대체 뭘까요?

    • dalgona82 2009/11/15 16:26  댓글주소  수정/삭제

      원인은 함께 찾아봐야죠 ^^ 정말 대한민국에서 20대로 살기 힘들어요.

  2. 모딜 2009/11/14 2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노스트라다무스도 아니고, 이들은 무려 40년 후를 내다보고 있다..."" 참 공감가는 글입니다. 글에는 나오지 않은 27세 공시족 친구C가 궁금하군요.. 좋은 사람과 결혼도 못하고 실기시험은 커녕 필기시험도 떨어졌다는 소문이 있던데..ㅡㅡ; 소문일 뿐인가!! 큰 틀에서 보면 같은 말이지만 그래도 고시족 생각하면 공시족은 그나마 약간 덜 우울하지요.. 고시족은 30대 층이 매우 두터워서..ㅡㅡ;

    • dalgona82 2009/11/15 16:27  댓글주소  수정/삭제

      27세 공시족 친구는 c가 아닌 m입니다. modile의 약자죠. ㅋㅋㅋㅋㅋㅋㅋㅋ

  3. 절대지존 2009/11/16 14: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앗, 내 초상권.

20대, 생태보고서

선생님들 가라사대, “니들이 여기서나 친구지, 졸업하면 뭐 얼굴이라도 볼 것 같으냐? 다 똑같아, 잘난 ‘애들’은 잘난 ‘애들’끼리 노는 거고, 못난 ‘놈’들은 못난 ‘놈’들끼리 노는 거야,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해야 해?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가, 결국 니들이 잘난 ‘애들’이 될 수밖에 없잖아? 그러니까 놀지 말고 공부해”

어릴 적부터 순진하지 못했던 나는 이런 비인간적인 교육에 대해 “암, 물론이고 말고”라며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뭐 실제로 그랬으니까. 이미 공부 깨나 한다는 애들은 ‘영수반’이니 ‘영재반’이니 해서 끼리끼리 모아둔 학교가 아니었던가?

                                 △ 20대가 왜 80km로 달리는가

대학에 가보니 현실은 더 절망적이었다. 한국 사람들 끼리 이야기를 나누면 반드시 “그런데 쟤 어느 대학 나왔데?”라는 질문이 나오기 마련이었고, 인간 아무개를 아는데 있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그 같은 질문에 따라 우월감이나 굴욕감을 가져가곤 했다.

‘사회’야 말 할 것이 있던가? 인간을 나누는 기준은 점점 협소해지고 혐오스러워졌다. 인간 아무개를 대표하는 것은 ‘연봉’뿐, 그 연봉 앞에 계급은 굳어지는 반면 욕망은 커져간다. 그리고 그 기준의 연령점은 점점 낮아지며 지금 이 순간, 개인의 인생을 대략 결정짓는 시점은 20대까지 내려와져 버렸다.(그리고 이 기준은 점점 낮아진다)

‘재미있는 일’ 보다 ‘먹고 살만한 일’을 찾아나서는, ‘내일이 기대’되기보다 ‘내일을 걱정’하는, 이런 비극적인 세상에서 살아가는 20대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것은 사실 어 리를 롱 타임 어고다.

‘88만원 세대’가 시대를 상징하는 용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 부조리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복불복으로, 예능 프로처럼 “나만 아니면 돼”를 외치는 이들을 보며, 이들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듣고, 풀어내고 싶었다. 또한 나 자신 역시 20대이기에 내 이야기를 하고 싶기도 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어르신’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너무 욕하지 마시라고, 아니 오히려 쪽팔려 하라고. 그리고 ‘친구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다들 그렇다고, 그러니 외로워하지 말라고. 지난해 촛불을 들고 나서며 그렇게도 20대를 욕하던 많은 10대들에게도 들려주고 싶었다. 미안하다고. 하지만, 우리도 열심히 살고 있노라며.

5월 정도부터 대부분 술자리를 순회하며 내 주변 20대 친구들, 선후배들의 이야기를 묶은 이 연재의 임시 제목은 『20대 생태보고서』다. 그래봐야 적은 수지만, 격무에 시달리는 저임금 정규직으로서 시간을 쪼개 꽤나 많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인터뷰했다.

연재 시작에 앞서 이 친구들 몇몇에겐 양해를 구했지만, 아직 양해를 구하지 못한 친구들이 상당하다. 때문에 사례는 대부분 익명으로 이루어진다. 연재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두 차례에 걸쳐 올라간다.

*             *            *


연재순서

Ⅰ. 20대 생태보고서

1. 공시족 랩소디
1-1 대학 때도 안한 4수.
1-2 “나도 그냥 일하고 싶은데”
1-3 ‘한 방’을 노리는 또 다른 이유

2. 삭막한 캠퍼스
2-1 등록금 인하 대신 스타벅스를
2-2 ‘명문대’로 갈수록. ‘지방대’로 갈수록

3. 저임금 정규직, 혹은 비정규직
3-1 취업포털에 낚이는 물고기들
3-2 취직 섭렵기 - (1) 영어와 나, 둘 중 하나는
3-3 취직 섭렵기 - (2) 창의력 자격증 시대
3-4 내 친구가 승진에 실패한 이유
3-5 비정규직을 거부하는 자들 - 노는 게 아니라 사는 거다
3-6 저임금 늪에 허우적대다.

3. 사회생활 지침서
3-1 세상에서 회식이 제일 싫어요
3-2 남자, 군대를 찬양하다.
3-3 여자는 사회생활이 편하다?

4. 인생의 걸림돌은 부모님이다.
4-1 레지스탕스, 우리 누나
4-2 꿈을 눈치 보는 사람들
4-3 부모와 국가에 저항은 없다

5. 20대, 사랑을 뺏기다.
5-1 넌 왜 사랑하지 않니?
5-2 졸업이 앗아간 연애세포
5-3 형, 전 알렉스가 싫어요.
5-4 된장녀의 비극.

Ⅱ. 어차피 희망이란 것. 없었다.

1. 어른들의 오만, 20대의 불만
1-1 꼰대와 또랑이들
1-2 20대의 착각, 40대의 착각
1-3 불만을 쏟아내다

2. 정치는 없다.
2-1 노짱이거나 한나라당이거나.
2-2 박근혜를 지지하는 이유
2-3 진보정치는 ‘차선’조차 아니다

3. 20대가 20대에게

Ⅲ. 연재를 마무리 하며

Posted by dalgona82
TAG 2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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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ywank 2009/11/10 17: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야~~ 신선한데 ㅋㅋ

  2. 모딜 2009/11/11 15: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대되는군...

  3. 한니발 2009/11/12 01: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흥미로운데요 ㅋㅋ 기대할게요

  4. 왕자님 2009/11/12 01: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남일같지가 않네요..
    우리의 일상..
    20대의 현주소
    기대되네요ㅋㅋ

  5. 레이라 2009/11/12 0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흥미로운 소재. 앞으로의 연재가 정말 기대됩니다.
    일주일에 두번.
    놓치지 않고 보기위해 노력할랍니다 :)

    - from. 레지스탕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