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생태보고서
2. 삭막한 캠퍼스 - 명문대로 갈 수록, 지방대로 갈 수록
1. 20세가 되는 순간 그들의 몸에는 돼지고기마냥 선명한 도장이 찍힌다. 인간을 판단하는 기준 중 가장 효과적인 것, 대학이다. 명문대 A+~B+, 지방대 B0~C-, 고졸 D+~F, 물론 이 등급에 따라 꼭 가격이 매겨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저 도장은 꽤나 선명하고 깊숙이 몸속에 새겨진다. 그리고 세상 앞에 보여진다. “얜, 이런 놈이야”
2. 너무 묶어둔 거다. ‘자유’가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약 20년 동안을 저렇게 묶어놓았으니, 갑작스럽게 찾아온 ‘자유’는 그들의 모든 것을 앗아갈 수 있다. 특히 ‘소비의 자유’에 빠진 그들은 자본주의가 파놓은 수렁에 빠져든다. 그렇게 서서히, 서서히 갉아먹힌다.
‘등급’과 ‘자유’, 갑작스럽게 찾아온 이 두 가지가 이제 막 20대에 진입한 대학생들의 인생을 규정한다. 저 두 가지를 어떻게 잘 컨트롤 하느냐. 이것이 그들의 앞으로의 인생에 영향을 미친다. 물론 그 방법은 가장 ‘상대적’이여야 하고, 가장 ‘효율적’이어야 한다. 그 앞에 낭만 따위, 미안하지만 없다.
사실 이 파트를 쓰며 굉장히 많은 고민을 했다. 일종의 경향성에 불과하고, 그 경향성을 입증할 만큼 연구(?)가 충분하거나 자료가 완전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런 글을 쓰는 것은 그 확실하지도 않은 경향성이 지닌 무서운 함의다. 안구에 습기 차나 결론부터 얘기하면 이렇다. ‘그들의 패배는 그때부터 이미 시작되었다’고.(아니, 이제 유치원부터라지?)
일단 이 얘기부터 시작하자.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루저의 난’.(별로 언급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만약. 그 친구가 나름 명문에 속하는 ‘홍익대’를 다니지 않았다면, 즉 처음 듣는 대학교 이름이 자막에 나왔다면, 그가 받은 열광(?)의 종류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아니 TV에는 나왔을까?
아마 그 열광의 종류는 더욱 다양화 되었을 것이고, 그에 대한 공격은 한 층 더 강해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유형의 사람들은 “학교 다닐 때 공부도 지지리 못 하던게 어디 누구에게 루저니 뭐니 지렁이야? 말버릇 하곤”이라며 발끈했을 거다. 그러나 이는 그들이 울컥했던 ‘루저’의 논리를 ‘키’에서 ‘학벌’로 바꿔 그대로 차용한 거다.
아니면 오히려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갔을 수도 있다. 그럴 경우에도 “뭐야 쟤는? 지도 잘난 거 하나 없구만”이 되겠다. 키 크고, 느.. 늘씬하고, 예.. 예쁘.. 아. 그건 상대적이니까. 어쨌건 그런데다 학벌까지 좋은 그녀였기에, 오히려 더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그 논리 그대로다.
자 이제 1번이다. 명문대로 갈수록, 지방대로 갈수록 사람도, 인상도, 느낌도 다르다. ‘끼리끼리 논다’(-_- 이 말, 참 싫어하는 말인데;;)는 말이 여기서 이렇게 통용된다. 등급을 기준으로 하는 집단에 대한 인상, 그 인상이 곧바로 개인에게 옮겨진다.
어릴 때 똘똘했다고 자기 자신과 그의 어머니가 보증하는 A는 대입 수학능력시험에서 그동안 보아왔던 모의고사 점수와 비슷한 점수를 맞았다. ‘그래, 최선을 다했어’라고 안도하는 순간, TV뉴스에는 “사상 최대로 쉬웠던 수능”이란 방송이 흘러나온다. “이런 니미..”
대입차트를 촥 펼쳐놓고, 점수대에 맞는 대학을 하나하나 골라가며 찾다보니, 이런 망할, 있는지도 몰랐던 대학의 이름이 떡 하니 붙어있고, 내가 “그래, 저기라도 가주마”라고 했던 대학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있다. “재수할까? 말까?” 고민하던 그는 재수는 “공무원 때나 하는 거라며(1-1 참조 홍홍홍..)” 대학을 간다.
“그래도 쟤는 하다못해 지하철은 타고 다니겠지”라며 칭찬하던 친척들은 그의 대학소식에 안타까움을 금하지 못하며 추모논평을 발송해댄다. “아아.. 우리 가문의 영광이”, 그런데 묘하게. 어디에선가는 ‘안도감’이 느껴진다. “흐흐. 내후년에 시험 보는 내 아들은 더 좋은데 가겠지?”라는
그렇게 간 대학이다. 이미 패배의 멍에는 뒤집어썼다. 명문대로 갈수록 멍은 옅고, 지방대로 갈수록 멍은 진하다. 그리고 그렇게 지어진 패배의 멍에는 점차 번져 나간다. 결국 그 멍은 사회생활에서 이렇게 번진다.
‘명문대생일수록 대화에 당당하고 지방대생일수록 대화에 눈치를 본다’는 것, 왜? “혹시 어느 대학 나오셨어요?”물어볼까봐 “그거 어디에 있는지 설명하는 시간이 가장 짜증나고 초조”하기 때문에. 이 질문에 동감하던, 아니면 이 질문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여기에 자유로운 대한민국 사람이 있는가?
‘학생운동진영’이라는 곳에서도 마찬가지다. 왜 학생운동 ‘수장’들은 대부분 SKY출신인가? ‘It's different’라서? 하긴. 다르긴 다르다. 묘한 발언의 힘과 그 역학관계, 그리고 동문, 선배, 후배들의 ‘학연’이라는 라인, 모두 다를 수밖에. 서울대 총학생회장 선거는 뉴스도 타지 않았나? 이제 그나마도 없지만.
이제 2번으로 가자. 사실 이런 경향성, 정말 부분적인 것이고 이 경향성이 맞는지도 확신할 수 없다. 어느 정도 삶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며 들었던 이야기와 다소 느껴지는 것을 엮어 과장한 측면도 있다. 그렇기에 조심스럽게 이 이야기를 한다.
대학에 첫 입학한 명문대 생 B는 진정한 지성의 장은 ‘강의실’이 아닌 ‘막걸리’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오랜 전통처럼 내려온 지하조직 학회, 그 안에서 니체와 맑스를 논하던 선배들, 세상 더러운 것 깨닫고 바뀌어야 한다는 본능이 불끈댄다. “그래, 운동이야” 그는 책을 읽고 토론을 하고, 대자보를 쓴다.
지방대학에 입학한 C는 진정한 대학의 재미는 ‘술’에서 느껴진다는 것을 깨닫는다. 소주를 먹고 불쇼를 벌였다는 전설의 3~4학년 선배들은 스펙전장에 나갔지만 아직 우리에겐 ‘여소남대’의 황금비율의 동기들과 팔짱 한 번에 밥을 얻어먹을 수 있는 2학년 선배들, 그리고 철없는 복학생들이 있다. 대단한 C. 그녀, 밥값을 자신의 돈으로 낸 적이 없다.
이 빌어먹을 명문대라는게, 대체로 전통도 있는 학교여서 분위기가 많이 차이날 수밖에 없다. 물론 그 전통마저 사그러드는 것이 현실이지만, 아직 분위기의 차이는 꽤 난다. 내가 왠만한 노력으로는 그들의 인맥을 잡을 수도, 웬만큼 공부하지 않으면 그들만큼 사유하지도 못한다는 느낌을 지워버리기 어렵다.
결국 지방대생일수록 쉽게 신자유주의의, 신자유주의적 방식의 포로가 된다. 돈은 달콤하고 소비는 황홀하다. ‘고민’이 담긴 술자리 보다. ‘즐거움’이 담긴 술자리가 자리 잡고 TV에서 버젓이 방송하는 야한 커플게임 같은 놀이들이 술자리를 지배한다.
대학 4학년 때, 늘그막이(-_-) 학생회 간부활동을 하면서, 당시 2학년 학생들과 충돌을 한 적이 있다. 학술발표 때였는데, 나는 “적어도 학술발표에 있어서는 지겹고 짜증나도 발제와 토론으로 가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후배들은 “그거 보는 사람도 없는데, 그런거 하느니 연극과 노래로 재미있게 구성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아. 내가 완전 노인네(-_-)구나”라는 한탄을 하면서도 적어도 1년에 1번, 그것도 공부하는 학회에서 학술적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에 ‘연극과 노래’로 1년의 고민을 풀자니, 납득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결국 실세(-_-)는 그들이고, 나 역시 말년병장의 심정이었기에 이를 용인할 수밖에 없었고, 문제의식없이 단지 ‘웃음’이 주가 되는 연극을 지켜봐야 했다.
커리큘럼도, 공부하는 방식에 대한 전통적 고민도 없는 곳에서, 이들은 ‘학회’라는 곳에 소속되어 있지만, 그마저 술과 노래가 아니면 별다른 의미를 찾기 어려운 곳이 되어간다. 반면 아직 ‘전통’이란 이름으로 비교적(그나마도 시간이 지나면 옅어지나) 사회를 바라보는 눈이 갖춰지는 명문대생들은 점차 성장해 나가고, 그들이 사회적 지도층으로 재생산되는 것은 ‘불평등’의 관점을 넘어 자연스러운 ‘현상’이 된다.
이제 점점 학번이 내려갈수록 함께 술을 마시는 후배들에게서 ‘사회’에 대한 고민을 듣기 어려워졌고, 나 역시 그 얘기를 굳이 하지 않는다. 어떤 방식으로든, 사회적으로 앞서가는 이른바 명문대생을 보면, 이게 사회의 문제인지, 아니면 개인의 문제인지. 난 이제 알쏭달쏭이다.
***
PS. 하지만 20대의 고민은 그 고민대로 의미가 있다. 다들 비슷하고, 그런 점에서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88만원세대 2탄)에서 나온 20대의 글들은 참으로 울림이 있는 글들이었다. 다만.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는 테이블이 서울의 한 명문대 학생들에게만 주어진 것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대 다니는 학생들의 고민을 온전히 담을 수 있는 글이 그들에게서 나올 수 있을까? 명문대를 우러르고, 지방대를 너무 폄하한다고? 지방대생인 나 역시 그래서 미치겠는거고, 그래서 이 글을 쓰는 거다.
# 잘 읽으셨나요? 괜찮으셨나요? 가벼운 추천 한 방이 달고나를 춤추게 합니다. 크윽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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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
저에겐 4명의 친구가 있지요. 고등학교 시절 봉숭아 밭에 모여 앉아 태어난 날이 다르니까 당연히 죽는 날도 달라야 한다며.. 저 녀석 보단 어떻게든 오래 살꺼라며 서로가 다짐하던 돈독한 우리 독수리 오형제!! 그 시절 우리는 공부를 못하지는 않았습니다. 수능도 다들 상위 10% 초 중반대의 성적을 받았습니다.(재수 포함ㅋ) 하지만 모두가 지방대를 갔지요.ㅡㅡ; 100명중 최소 20등 안에 드는 성적으로간 지방대에서 우리들은 나름 공부하며 착실히 졸업도 했습니다.(아직 3명은 미졸 이구나ㅡㅡ;) 그런데 지금 우리 독수리 오형제들의 사회 초입 성적표를 보자면 정말 안습입니다. 지구를 지키기는 커녕 지구에서의 안정적인 일자리도,, 집도,, 여자친구도,,(이건 나만 그렇군요ㅡ.,ㅡ내가 젤 불쌍하군) 없습니다. 솔직히 10명 중 5등하는 학생이 공부를 못한 걸까요? 아니죠 중간은 한거죠.. 근데 우리들은 10명중 2등 했거든요.. 근데 사회는 우리보고 공부 못하고 능력이 없다네요. 상위 5%가 되지 못하면 너무나 막막한 현실에 나머지 95%는 먼산만 바라보지요. 저 추천 했습니다.. 춤춰 주세요..ㅋ
내 춤춘단 말은 왜해서리.
오. 댄스타임. 원츄~
노땡큐 ㅋㅋ
30대 초반 모 신문 기자였는데 그렇게 진보적인 기사(?)를 쓰던 양반도 술이 얼큰히 들어가니 어느 대학 나왔냐고 물었던 일이 있어요. 바로 오그라들더라고요. 그 기자 양반은 명문대 출신이었고 자기 대열에 나를 끼워줄 수 있나 없나 간보는 중인 듯했어요. 학벌 뭐가 중요하냐 호기롭게 손사래 쳐도 가만 보면 지들끼리 잘 뭉쳐요. 특히 지식인들요.
지식인 사회에도 계급이 존재하는 듯해요. 상층에 끼어들어 지식인 행세 좀 하려면 명문대 나와야 할 거예요. 아는 이 중에 글도 잘 쓰고 알 만큼 아는 이 있는데 그 놈의 명문대 출신이 아니네. 학사 출신이고. 안타깝죠. 상층으로 아등바등 올라가려 해도 걔들이 끼워줘야 말이지.
정말, 올라갈 수 있는 부분은 무조건 막아내는 것 같아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