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생태보고서

4. 사회생활 지침서 - 세상에서 회식이 제일 싫어요

“아. 난 세상에서 술 먹는게 제일 싫어;;”
“그럼 넌 여기서 왜 대체 나랑 술을 먹고 있는거냐?”
“여기서 먹는 술이랑 회사에서 먹는 술이 같아? 다르지 -_-+”

나 같이 빈곤한 심신에 맛난거 마음껏 먹을 수 있고, 술 먹고 떡실신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회식자리만을 눈 초롱초롱하게 기다리는 사람도 물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회식자리를 기피하는 20대가 상당히 많다. 이거 왜 이럴까?

아까도 말했지만 나의 경우 지금 회사에서는 딱히 회식자리가 기피된다거나 부담스러운 적은 없었다. 그런데 원래 그랬냐고 물으면, 그렇지 않다. 내 전 직장을 떠올려 보자면, 나 역시 세상에서 회식이 제일 싫었다. 아니, 굳이 회식이 아니더라도, 직장상사와 술을 먹는 것, 그 자체가 난 너무 싫었다.

                                 △맛나겠어염

이렇게 되면 답은 빨리 나온다. 회식자리가 싫은 것은 일의 연장선이기 때문이다. 업무에서의 관계가 회사 밖 회식자리에서 까지 유지된다. 그러니 “눈치가 보기 싫어”서, 혹은 “그 자리에 있는 것 자체가 너무 짜증나서” 안가는 경우가 많다.

나도 전 직장에서 그랬다. 군대도 제대한지 꽤 되었는데 술 먹으러 가면 이등병 마냥, 쓰다듬으면 쓰다듬는 대로, 칭찬하면 감흥없어도 “감사합니다”해야 했고, 욕 하면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해야 했다. 내 생각과 다른 생각을 말해도, 만장일치로 찬성해야 한다. 사회생활 초년생이 뭐 아는거 있고 힘 있나?(지금은 그 힘이 생겼다는 건 아니지만) 그러니 회식자리가 싫었을 수밖에.

본질은 그것이다. ‘술을 먹느냐, 안 먹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회사에는 이런 사람도, 저런 사람도 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도, 술을 한 잔도 못 먹는 사람도, 술은 싫어해도 안주는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을 모두 하나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회식의 목적이다. 그러니 공적관계를 유지해야 하고, 그래서 술자리가 답답하고 짜증난다.

특히나 지금 같은 연말이 되면 20대들의 눈치 보기는 더욱 심해진다. 술을 싫어하는 친구는 술을 먹으러 가자고 해서, 그럼 끝을 봐야 하니까 싫고, 술을 좋아하는 친구는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깨끗한 송년회를 위해 영화관을 가자고 한다. 그럼 회식도 가기 싫고, 다음날 내가 모르는 동료들의 정신잃은 무용담을 듣다보면 그들에게서 멀어지고, 결국 회사로의 출근자체가 싫어진다. 이런 악순환.

작은 회사에 경리로 일하고 계시는 내 동갑내기 A씨는 연말 회식이 무척이나 짜증난다. 우선 하나. “이런 젠장할,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연말에 칙칙한 아저씨들이랑 술 마시고 싶겠냐?, 그들은 가족도 없다니?” 그리고 이런 푸념 뒤에는 본질이 나온다.

“고작 일주일 전에 무조건 한 날짜를 정해 놓고, 사람 사정도 없이 그 날자는 송년회니 무조건 참석해야 한다고 하고, 일과 시간 중에 가는 것도 아니고 일 다 끝나고 난 다음에 피곤해 죽겠는데 술을 먹으러 가자니 -_-+, 그래놓고 내일 쉬는 것도 아니잖아?

술 먹을 때라고 해서 편하게 해주는 것도 아니야, ‘김양아 이리 와서 술 한 잔 따라봐라’며 짜증을 돋구다가, ‘여기까지 와서 한 잔도 안하냐’며 억지로 술 먹여 놓고, 그렇게 죽어라 마시게 해놓고, 다음날 죽으면 죽었다고, 요즘 애들은 의지박약이라며 뭐라하고,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고 짜증나 죽겠네”

(사족으로 그런 엄중한(?) 분위기 속에 있는 건 아니지만, 예전에 친한 친구가 회식에 대해 했던 푸념도 본질도 같다. “이런 우라질 것들이 난 술을 먹고 싶은데, 지들은 술 먹기 싫다고 우르르 밥 먹으로 갔다가, 밥만 먹고 나와서 극장가자고 하고, 난 영화보기도 싫단 말이야, 나에게 술을 줘, 술을, 으악!!”)

그래, 본질은 그렇다. 자리의 구성이 강제고, 자리의 행위가 강제된다. ‘하나’가 되기 위해 회식자리를 마련한다지만, 그 하나는 수평이 아니라 수직이다. 내가 회사를 옮기고 난 후, 비교적 회식자리가 싫지 않았던 것은 좌파매체라는 이 회사에서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기울기가 기울여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아니면 천성적으로 수직구조를 좋아하거나)

그렇게 구성된 회식자리에서 늘 외친다. ‘우리는 하나’라고, 그런데 회식자리에서 ‘하나’를 외치면 ‘하나’가 되나? 그렇게 ‘하나’가 된다고 뭔가 더 좋아지나? 그럼 대한민국 사람들 다 모아놓고 한 날 한시에 술 마시면 우리나라 좋은나라, 선진국 되겠다. 747도 뛰어넘을 테고.

‘하나’가 되고자 하면 평소에 잘했어야 했다. 회사는 노동자들을 해고자-비해고자니, 정규직-비정규직으로 갈라치기 하면 안되고, 디테일하게는 회사 상사들은 보다 인격적으로 직원들을 대해야 했다. 그것 없이 자신들이 준 스트레스는 회식자리에서 날려버리라며 폭탄주 한 잔 말아들고 원샷을 외쳐봐야 기만과 가식일 뿐이다.

“아무리 좋은 상사도 없는게 낫다”는 말이 있다. 물론 휘하직원들에게 ‘인격적으로 대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연들이 속출할 수도 있다. 그런데 더 알고(지식에 대한 권력), 더 번다면, ‘착한 상사’가 되기는 어렵더라도, ‘술 한 잔 하고 싶은 상사’는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친구 가라사대. “사무실에서도 진상인 놈들이 회식자리에서도 진상”이라 했다. “사무실에서 매너가 회식자리에서의 매너”라고도 했다. 그거슨 진리.

어쨌던 20대들은 자신들이 다니는 회사에서 만든 ‘상품’들로 인해 상당히 개인화 되어 있다. 예전 어른들처럼 싫은 자리에도 가족과 친구들을 내팽겨치고 ‘온리 회사’에 열광하는 바보는 없다는 거다. 이 사회도 ‘구조조정’이니, ‘명예퇴직’이니, “온리 회사는 바보 같은 짓이야”라고 충고해 오지 않았던가?

그런 20대들에게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생각하며 “무조건 집합”, “단체로 원샷”을 외쳐봐야 반발밖에 더 사겠나? 물론 어른들에게서는 “요즘 애들은 회식자리라고 하면 다 집에가고, 예전과는 달라달라”라는 푸념도 꽤나 들었지만, 과연 그것이 단순히 ‘요즘애들’탓일까?

어쨌건 우리 20대들이야, 그들에 비해 엄연한 ‘약자’가 아니던가? 계급장 한 번 떼고, 노사자율(?)에 맡기며 마음을 열고 놀아보는 건 어떨까?(보복하기 없기! 퉤퉤퉤!)

“위하여!”, 뭘?, “지화자!”, 안 신나는데?

Posted by dalgona82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삼각이 2009/12/29 14: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회식은 업무의 연장 몰라?

  2. 회식좋지.. 2009/12/29 14: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얼굴만 봐도 까칠하고 피곤한 상사와 거기에 손비비는 깝죽이만 없으면...

  3. 좋은세상 2009/12/29 14: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본인돈으로 회식 안하는것 만으로도 좋은겁니다. 저 아시는분은 직원들이
    2만원씩 내면 팀장이 돈한푼 안내고 거기에 꼽사리 낀다구 합니다.

  4. 내가 바라는 회식 2009/12/29 15: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볼링을 치던 영화를 보던 하려면 먹기전에 일단 다 끝내고..그 다음에 맛있는거 먹고..먹으면서 업무 얘기 안하고...자리배치 강요하지 말며..
    1차에 맛있는거 먹었으면 2차에는 상사들은 봉투주고 지들끼리 먹으러 가고 나머지는
    알아서 먹던지 노래방을 가던지 갔다가...살짝 아쉬우면 다음날 업무량 봐서 한잔들
    더 하던지하고...다먹었으면 개인적으로 다음날 출근은 제대로...(괜히 같이먹고 아침에 일찍 출근한 사람만 양쪽으로 다 욕먹습니다.ㅡㅡ) 이게 제가 바라는 회식..

  5. 달달달 2009/12/29 15: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달님 드디어 올리셨군요..기다렸습니다. 이걸 안보고 있으면 어찌나 손발이 떨리고
    일이 안잡히는지...앞으론 하루에 한편씩 쓰세요...

  6. 뽀글 2009/12/29 16: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 정말 싫을듯해요^^;;

  7. 현직 과장 2009/12/29 16: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제가 많은 회식 문화를 접하셨군요... 요즘은 많이 달라 졌는데..
    오히려 젊은 친구들 눈치보기 힘듭니다

    세월은 무척 빠릅니다
    지금 신입이나 경력이 아직 적으신 분들도 곧 여러분이 그토록 함께하기 싫어하는 상급자가 되지요..

    아마 그때가 되면 지금 그토록 싫은 상사가 조금은 이해가 될 것 입니다
    저 역시 그랬으니깐요...

    좀 마음에 여유를 가지세요.. 그게 좋습니다

  8. 더 모우 질라 2009/12/29 17: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느 집단,모임이든 나이,직책에 상관없이 절대적 혹은 상대적 진상들이 있지요. 회식자리에 여자분들만 따로 앉으면 아주 노골적으로 뭐라하는 사람들.. 젊은 여자분들 있는 술자리에서 아들 낳는 법(?) 혹은 자기들 부부관계 이야기하는 사람들.. 그리고 대표적 단골 진상인 못 먹는 술 자꾸 권하는 사람들.. 회식 다음날 출근하면 속이 뒤집어져도 정신력 약한 사람처럼 보일까봐 멀쩡한듯 일해야 하는데..ㅠㅠ
    (개콘 남보원 버전)

    나~ 괜히 취직했어....
    나~ 괜히 출근했어....
    나~ 그냥 사표 쓸까봐...

    뾰료룡~~~

    시바~ 밀린 카드값~~

  9. 괭이 2009/12/29 18: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회식 날짜는 한달 전에 정해주는데
    회비가 있음 -_-;
    빠져도 상관은 없지만 어쩐지 눈치가 보임.
    ((빠진 사람의 뒷담화는 순리이기 때문에;;))
    그래서 눈물을 흘리며 참석함.

    각자 회비내서 하는 회식이기 때문에 죽어라 먹이거나
    권하지 않음.
    도리어 너무 많이 먹으면 눈치 보임 ㅋㅋ
    절대 막차 끊어지기 전에 끝냄.

    이상 도쿄에서의 회식이었습니다;;

  10. 동감 2009/12/29 19: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동감동감동감
    회식 진짜 우리나라에서 없어지던지 좀 뜯어고쳐야 할 문화중 하나라고 생각함
    억지웃음 억지술 억지인간관계의 극치...
    사실 술먹고 친해지기도 하지만
    술깨면 도로 어색함 -..-
    차라리 진지한 이야기 한번 하면서 친해지는게 ㅏㄴㅅ지

  11. 커피믹스 2009/12/30 00: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억지 웃음 웃어야 한다면 괴롭겠어요
    그나저나 닉네임이 참 재밌습니다.ㅎㅎ

  12. mimi 2009/12/30 01: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회식은 거의 없고 있다면 오랫동안 일했던 동료가 그만두거나 전체 직원 회의 때 다같이 점심을 먹어요. 점심이기 때문에 술을 마실일이 없고 저녁에 회식을 한다는 것 자체가 거의 없는 분위기. 미국사람들은 가정을 정말 중요시 하기 때문에 가족 있는 사람들이 늦게까지 남아서 일한다거나 매일 술마시거나 하면 아주 이상하게 생각하는 듯해요. 가끔 젊은 동료들끼리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일 끝나고 해피아워라고 해서 간단히 칵테일이나 맥주 한잔 하는 문화는 있어도 한국처럼 부어라 마셔라 그런 건 거의 경험해보질 못했어요.

    이상 워싱턴 디씨에서 5년차 직장인이었습니다.

  13. HD 2009/12/30 01: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제 저런 술자리라도 좋으니 회식자리좀 가보고싶다...나중에 욕하더라도 취직해서 회식자리좀 ㅡㅡㅋ 엉엉ㅠㅡㅠ

  14. 직딩4년차 2009/12/30 02: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정말 싫은 회식자리겠네요.
    하지만 어느 직장이든 회식은 중요합니다
    회식은 놀이가 아니라 잘 아시는대로 업무의 연장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야근수당을 준다거나 하는건 아니지만
    회식시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는 ..미래에 아주 큰 영향은 아니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치거든요.

    곧 30이 되고 40이 될거예요
    그때 지금 싫었던 상사모습을 염두에 두셨다가
    그런분이 안되면 되십니다.

    어차피 피하기 힘든 자리라면 어떤 방식으로든 즐기시라고
    말씀 드리고 싶네요.

  15. 바보온달왕자 2009/12/30 08: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냥 술 싫다 ~
    먹지도 못하겠고 내 몸만 피폐해지는...
    나한테 미안해서라도 안먹어야지 ㅠㅠ

  16. 한니발 2010/01/01 01: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회식이 저런거였군요
    전 그냥 즐거운건 줄만 알았네요 ㅡㅡㅋ


    그나저나 술은 맘 맞는 사람끼리 먹어야 제 맛 ㅋㅋ

  17. 소주싫어 2010/01/02 14: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스 자체가 술을 좋아해서인 경우도 있지만..
    일부 과잉충성분자들이 보스 옆에서 '회식 해야합니다. 축구 해야합니다. 그래야 친목도모가 됩니다. 직원들이 좋아합니다'하고 부추기는 탓도 있는듯..
    그럼 보스는 그게 정말인줄 알고 그 사람보고 모임을 추진하라고 하고..
    충성분자는 자기가 보스의 오른팔이라도 된양 의기양양하게 추진..
    (업무능력에 자신 없는 사람들이, 이런걸로라도 존재감을 어필하려고 함)
    그런데 불참자가 있거나 다 참석하더라도 술을 안마시는 사람이 있으면 자기가 보스한테 난처해지고, 자기의 추진에 대해 반항(?)한다고 생각해서 뒷담화를 까고.. 술을 강권하게 됨..
    아무튼 보스와 일부 술좋아하거나 뭔가 그런자리라도 주도해서 존재감을 나타내려 하는 사람들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피곤해지는..
    진정한 친목도모는 정말 마음맞는 사람들끼리 삼삼오오 나가서 마시는거지.. 그냥 단체 회식은 아랫사람들에게는 업무의 연장일 뿐이고 피곤하고 짜증날뿐임..

  18. 오늘 회식 2010/01/05 17: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짜 가기 싫어 죽겠습니다

    가기 싫다고 말도 못 꺼내고 지금부터 소화가 안돼 죽겠어요

    제발 살아올 수 있게 기도해주세요 ㅠㅠ

  19. 개인적으로 2010/01/12 11: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회식자리에서 강권하는 사람입니다.
    .. 그런거라도 없으면, 하도 재미가 없어서 말이죠 -_-;
    못먹는 사람이라던가 먹기 싫어하는 사람은 안건드리고.
    같이 재미없어 하는 사람. 또는,
    당하는걸 즐기는 사람. 집어서 같이 노는 수준이죠.
    이정도면 매너 강권이라고 자처하고 싶은데.
    뭐 어쨌거나.

    사회생활 10년 넘게 해온 내 경험상으로.
    회식. 업무에 도움 되는거 없습니다.
    -악효과라면 모를까-
    회식이 업무의 연장이다.
    하는 사람중에
    현실적이고도 전문적인 관리능력을 갖춘 사람
    못봤습니다.

  20. 절대공감 2010/04/21 23: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같은 회식. 무조건 참석???
    억지웃음. 억지친목도모에 손발이 오글거린다. ㅅㅂ

  21. 레이피엘 2010/05/07 1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완전 백배공감합니다.. ㅜㅠ
    진짜 회식 가기 싫어요~ 가서 자기들이 한 짓은 생각도 안 하고 일 이야기 계속 하고-_-

20대, 생태보고서

3. 저임금 정규직, 혹은 비정규직 - 저임금 늪에 허우적 대다

쓰읍, 월급명세서만 보면 엄지와 검지가 자연히 양 쪽 눈 사이로 올라간다. 아.. 안습이로구나, 내 나이 곧 30. 내 30이면 적어도 200은 받을 줄 알았건만, 아직 100만원 대, 그것도 100만원 대 초반이라니! 이 무슨 운명의 장난질인가?

뭐시기 취업사이트에서 조사한 결과만 보면, 무슨 대학 졸업자 초봉이 2천 얼마 어쩌구저쩌구 하더니만, 거긴 대체 어떤 엄마친구아들이 가는 곳인가? 애초에 대학을 졸업하고 내가 갈 수 있는 곳의 연봉은 1,500만원 이하였다. 그래도 갔다. 열심히 살면, 월급은 점점 더 오르지 싶었다. 그런데 왜 난 아직도 이 월급을 받고 있는가?(ㅠㅠ)

세상엔 그리 직업도 많다지만, 20대에 놓인 선택지는 두 가지다. 고임금, 아니면 저임금(직업선택의 주요기준이 ‘잘 먹고 잘사는 것’이니까), 이 중 고임금은 애초에 갈 엄두도 안 나는 곳이었다. 함락하기 어렵다는 ‘속함성’처럼. 물론 ‘열심히’하면, 갈 수도 있겠지만, 언제까지, 얼마만큼 열심히 해야 하는 건지, 보장할 수는 없으니.

                         △거 봐요, 저임금 많아진다니까요, 아.. 물론 고임금도 많아지구요

그래서 갔다. 저임금이라도. 일단은 여기라도 들어가야 시작된 등록금 대출 원금상환을 해 낼 수 있으니까. 집에서 바닥 좀 긁고 있어도 백수라고 눈치 안볼 수 있으니까. 혹은 입에 풀칠이라도 하니까. 그런데 이런 젠장. 그걸 몰랐다. 낮은 임금 수준을 감당하고 저임금의 세계에 빠져드는 순간 그곳이 늪이란 곳임을.

희한하게도 내 주변 20대 친구들 중 안정적으로 월 200만원을 넘는 수입을 기록하는 ‘괜찮은 일자리’를 가진 사람이 없다. 모조리 저임금인 셈인데. 심지어 한 달 150만원이 채 안되는 ‘차상위계층(???)’도 꽤나 많다.

당연한 얘기지만 저임금일수록 삶은 팍팍해지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커진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이런 것들 때문에 현실을 도피하려는 인식도 함께 높아진다는 것이다.

A는 ‘저임금 정규직’이다. 급여수준은 수당 붙이고 세금 떼고 해서 110만원 정도. 자. 이제 세금 말고 한 달 고정적으로 나가는 돈을 떼기 시작한다. 우선 가장 큰 것은 월세방 월세금. 이게 30만원, 그리고 대학등록금 대출 원리금 상환으로 15만원이 들어간다. 보험료가 토탈 8만원, 전화비 5만원, 전기세, 수도세 등 각종 공과금이 10만원 정도 들어간다. 벌써 68만원.

이제 남은 돈은 42만원. 밥을 먹고 살아야 하기에 기본적인 한 달 생활비가 20만원이 들어간다. 그럼 순수하게 자기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돈은 22만원에 불과하다. 이 중 반만 띄어서 미래를 위해 적금을 부어봐야 매달 10만원 씩, 그렇게 1년을 부으면 110만원이 모인다. 1년에 모은 적금 110만원, 변변한 중고차 하나 사기 힘든 돈이다.

취미는 커녕, 연애조차 제대로 할 수 없고 오로지 일에만 매달리고 끝나면 집에 와서 소심하게 불 끄고 TV봐야 한다. 전기세 많이 나가니까. 빨래는 1주일 동안 모아둔 뒤 돌려야 한다. 방이 싼 만큼 눅눅한 반지하방이라 도무지 빨래는 마를 기미가 없고, 덕분에 곰팡이는 핀다.

열심히 산다고 인정이라도 받나. 친구들 못 만난지 오래다. 만나면 얻어먹어야 하니까. 그것도 한 두 번이지 어디 민망해서.. 회사에서는 도시락 싸들고 다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차마 그럴 수도 없다. 같이 점심 먹으로 갈 때. 난 라면먹고 싶은데 스파게티 집으로 가잔다. 젠장, 같은 면인데. 가격차는 얼마인가?

요즘은 5,000원 짜리 점심도 굉장히 저렴한 편, 3,000원짜리는 희귀상품으로 학계등록이 시작된지 오래다. 담배 한 갑 사는 것도 후덜덜. 요즘은 소주 한 병에 5,000원 하는 상개념없는 집도 있다지? 정말 월급에서 떼는 국민연금이 몇 백원 올라간 것만 봐도 눈썹 한쪽이 올라가는 요즘, 이런 낮은 임금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나 힘들다.

“집에 와서 멍~하니 있다가, 밥 차려먹고, 그냥 TV나 돌리며 앉아있는데, 이렇게 살아 뭐하냐 싶더라고, ‘좋은 집’은 생각도 없고, 그냥 좀 살만한 집으로 갈려고 알아보면 월세가 금방 5~60만원으로 튀어버리니... 적금 부어도 저렇게 부으면 10년 모아야 천만원 생기는 건데, 그 돈으로 결혼이나 하겠냐고. 월급이 오를 가능성도 없고, 회사나 망하지 않으면 다행인데, 다른데 가고 싶어도 요새는 의지도 없고~ 생각도 없고~ 뭐 그래”

물론 개개인의 능력과 사정에 따라 다른 급여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해봐도, 지금 대한민국에서 저임금은 자못 심각한 문제다. 친구의 아는 형에 따르면 “그 형이 97년인가? 입사를 했는데, 당시 연봉수준이 지금 초봉 연봉수준이랑 똑같데 -_-;;”라고 한다. 임금 수준이 똑같다니. 지난 10년 간 부동산은 몇 배가 폭등했고 기타 물가도 수배 치솟았다. 그런데 임금이 똑같아?

대기업들은 해마다 매출신기록을 달성하고, 임원들은 몇 십억이나 되는 성과금을 뿌려대며 쿨하게들 살아가는데. 대기업 비정규직들은 왜 월급이 똑같아야 하고, 중소기업들은 직원들 월급주기 어려울 만큼 버거워 해야 하는가?, 그 돈. 다 어디들 들어갔나?

지표도 증명한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저임금 노동자의 비율은 2002년 10%에서 2004년 15.3%로(최근 것은 확인 못하였으나) 꾸준히 높아지는 추세라 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그리고 올해 최저임금 결정과정을 보라. 경기 좋을 때는 “경기 안 좋아질 때를 대비한다”며 동결을 주장하고 경기 나쁘니까 “경기 나쁘다”며 내놓은 최저임금 초안이 ‘마이너스’안 아니었던가?

이런놈의 나라에서 저임금 A가 가장 힘들어 하는 부분은 “내 인생 참 찌질하다”는 자기애 상실이다. 매장은 커녕 지하상가에서 청바지 하나 사는 것도 몇 번을 마른 침을 삼켜야 하는 자기 자신이. 누구에게 시원하게 밥 한 번 사주지 못하는 자기 자신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현실을 타파할 수 있는 방법을 전혀 찾지 못하는 자신이 참 찌질하고 한심하기 그지없다.

거리를 나다녀 보면, TV를 보면, 참 사람들, 잘 벌고 잘 먹고 잘 살더만, 세상에 나만 동떨어진 것 같다. 돈 많은 사람만 대접하는 더러운 세상, 이제 이렇게 울적 할 때 술 한 잔 마시려 해도, 소주값도, 배달 음식값도 오르는 치사한 세상.

이 정도 월급으로 살기가 너무 힘들어도 혹여 회사 망할 까, 말도 못하고 오늘도 회사를 위해, 자기 자신을 위해 성실히 일해보지만 한 2,400정도에 받아야 그래도 여유롭게 살만한 것 같은 이 나라에서 연봉 1,500이 간신히 맞춰 살아봐야 남겨지는 것은 절망 뿐이다. 언제 이 생활이 끝날지 모르는 절망감.

더욱이 이제 울나라 사람들에게 주는 저 정도의 월급도 ‘고임금’이라며 더 낮은 월급을 주기 위해 외국을 휘젓고 다니며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하는 우리 기업들(모든 기업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저들의 치졸함에 우린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당신은 고임금인가? 그래서 안심이 되는가? 저임금으로 가는 방법은 간단하다. 요새 유행하는 ‘구조조정’, ‘정리해고’, 그거 한 번이면 된다. 높은 수익을 기록한 모 통신사에서 1만여명의 구조조정계획을 세우지 않았나? 그 빈자리는? 외주업체가 들어온다. 저임금 용역. 어차피 말단 직원들 줄 돈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으니까.

이 글은 원래 화요일 연재이나 직업의 특성상 하루 종일 밖에 나가있는 일도 있어 당일에 올리지 못했습니다. 가끔 이런일이 발생할 수도 있는바. 당일에 못올린 글은 다음 연재 기간에 올려집니다. 즉, 화-금요일 만 올라갑니다. 감사합니다 ^^

Posted by dalgona82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09/12/25 14: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 입니다

    • dalgona82 2009/12/29 14:08  댓글주소  수정/삭제

      상황에 따라 다르겠죠 ^^ 제가 보기엔 많지만, 선생님은 자식들이 있으시니, 앞으로 들어갈 돈이 많으시겠죠 ㅠㅠ 다만 제가 이 글에서 얘기한 저임금은 연봉 2,000 이하를 말하는 것입니다.

  2. 혜정 2009/12/26 13: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어보았습니다. 저는 용역회사 있을 때는 70~80만원이었고 중소기업 경리자리로 들어갔을 땐 월급이 110만원이었네요. 요즘 직장을 못 구하고 있다가 닥치는대로 벌려고 생산직 면접을 봤습니다. 시끄럽고 먼지 많이 나는 곳이긴 하지만 되면 다녀야죠... 성탄절 날 부모님하고 크게 싸웠습니다. 대학 4년을 가르쳐놓고 학원비까지 보태줬는데 넌 결국 그 모양이라고, 돈 다운 돈도 못 벌면서 큰 소리나 치면서 산다고, 짤리는 것도 니 잘못이라고... 이제 30인데 왜 내 인생이 실패일까요? 특별히 아프거나 사고 나지 않는 이상 50년은 더 살 인생인데... 너무 씁쓸합니다.

  3. 겔러 2009/12/26 2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주일 내내 일해봤자 돌아오는소리는
    "이번달에도 적자라 힘들다" 입니다
    사업규모나 수입 지출 규모를 알고있던 모르고있던
    상관없습니다.
    무조건 적자라고 말하는거지요 ㅎㅎ
    생각보다 이런식으로 퉁치려는 오너들 참 많은데요

    저도 드러워서 오너되려구요
    오너되서
    "이번달에도 적자라 힘들다" 하렵니다

  4. 2009/12/27 07: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댓글 달기가 민망하네요..
    힘내세요
    어느 책에선가 인생에 3번은 직업을 바꿔야 한다고 하더군요

  5. 미니젬 2009/12/27 08: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힘들지만 힘내세요,,라는 말밖에는 해줄말이 없네요.
    40대 중반으로 저도 별반차이 안나는 사람이에요,
    그래도 애들을 위해서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6. 학력사회 2009/12/27 09: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학력사회라 그럽니다.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 23살 대학생입니다. 운이좋은건지 머리가 좋은건지 어찌어찌 명문대에 입학했습니다. 솔직히 고3과외 일주일에 2시간씩 2번하면 한달에 50만원 법니다..; 두개 정도는 학교다니며 할 수 있으니 100만원입니다. 조금 빡세개 3개해서 150씩 벌던때도 있었지요.

    졸업한 형, 누나들 CPA 붙어서 삼일회계법인같은데 가니 초봉이 4000입니다.

    솔직히 이 글보고 놀랐습니다. 설렁설렁 학교다니며 과외해도 100만원 버는데 열심히 일해서 120이라니 사회가 좀 잘못되었네요. 저는 '너네도 공부좀 열심히 하지 그랬어' 라든가 제 자랑질 하려고 이 댓글을 다는게 아니니 오해마시길 바랍니다.

    다만 어떤 사회문제때문에 이런일이 생기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도 궁금하네요.

    • 역시 좋은 대학 나와야하는군요 2009/12/27 17:29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지잡대 4년제 출신입니다만 졸업평점도 좋고 토익도 괜찮은 점수인데요
      20대때 부끄럽지만 단 한번도 월급 백만원을 넘긴적이 없습니다.
      뉴스에서 기업 신입 연봉 평균2천7백만원 어쩌고 그러는게 먼나라 사람들 얘기같고 그랬습니다.
      솔직히
      고딩때 공부 좀 못한게 이렇게 클 줄 몰랐습니다.

    • dalgona82 2009/12/29 14:10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말 뉴스에서 초임 어쩌구 저쩌구 할 때면, 절망감만 들어요. '니가 말한 초임이 아기가진건 아니겠지~'

  7. 막창 2009/12/27 13: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0년 전, '내 나이 서른엔 매달 200만원만 꼬박꼬박 통장에 들어오면 좋겠다'던 나의 소박한(?) 꿈이 이제는 좌절과 한숨의 이상이 돼 버렸다.

  8. 오마이치킨 2009/12/28 1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고임금도 많아지지만 저임금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들도 많은것이 사실입니다. 큰 문제군요..사측에 저임금을 높여 달라고 하고 싶지만
    중소업체중에선 직원들 월급 맞춰주기도 어려운 회사들이 많습니다. 이건 저임금과 고임금의 양극화보단..기업들간의 양극화가 점점더 심해지기 때문인것 같은 개인적 생각이 드는군요..

  9. 증인 2009/12/28 11: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자회사(휴대폰부품..)...1400
    단순노무 테이프및포장...1500
    화장품및 약품가공업....1600
    기계관련 노무 및 가구등등 1800
    주야교대........1800~2000.....상기 금액은 잔업포함(일부는 보너스까지)
    임금..ㅡㅡ; 이것이 생산직...
    사무직- 2,3년제 대졸...초임 1600
    4년제...초임 1800
    기술직- 전기분야(대부분 경력자만 뽑음)...2000..
    캐드및 성형(대부분 경력자만 뽑음)..2200 경력없으면 생산직..ㅡㅡ
    관리직-대리급..2200~ 과장급2400~ 공장장급(부장급)~ 3000~
    .......이것이 대다수 중소업체 정규직 임금현실입니다...ㅡㅡ

    • 증인2 2009/12/28 11:29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번엔 비정규직에 대해...
      알바중 편의점, pc방, 호프집등등...시급2700원~
      전단지..장당30원, 시간당4000원~5000원
      노가다 일당..잡부 6만원, 목수 6만5천, 그외 힘든일 7만~ (도로포장 12만원~)
      아웃소싱 공단알바 최저임금+1000원..약 일당32000원??
      텔레영업 80+수당(200~300ㅋㅋㅋ)300이상이라고 주장
      등등...암담 합니다.....ㅡㅡ;

    • dalgona82 2009/12/29 14: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비교적 합리적인 정보네요.

  10. ... 2009/12/28 12: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700마넌

  11. 응달 2009/12/28 23: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잘 읽었습니다.

    "친구들 못 만난지 오래다. 만나면 얻어먹어야 하니까. 그것도 한 두 번이지 어디 민망해서.. " <- 이게 근래 몇년의 제 실제 상황입니다.

    알찬 후속보도 부탁드립니다.

  12. 월급 300미만은 2009/12/29 08: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두 루저...ㅋㅋㅋㅋㅋ

  13. HD 2009/12/30 01: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제 얼마 안되는 그런 돈이라도 좀 받고 싶네요...2010년엔 꼭 합격해야지 ,,ㅡㅡ

  14. 헝그리정신 2010/01/05 00: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절. 대. 공. 감

    저도 1년백수찍고
    연봉1200 그냥 기술배우려니하고 살고
    있습니다.!

  15. 징징징징~ 2010/01/05 02: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월급 따지기 전에, 남들이 뭔가 열심히 노력할때 여러분은 겜방이나 술집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는지도 한번 생각해 보심이...진심으로 가슴에 손을 얹고.

  16. 진심 2010/02/04 13: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타까운일입니다.

    하지만, 저의 경우에도 대학시절 낮에는 학교 밤에는 아르바이트 및 리포트로 자정이 넘은 시간까지 돈벌고 방세내고 등록금낸다고 친구만나는 것도 거의 못하고
    찌질의 극치로 살았습니다.
    거의 4년동안...통학시간도 거의 하루에 왕복해서 4-5시간...
    하지만 열심히 실력을 쌓고 능력을 키우니 지금 월500가까이 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도 없고 대학시절과 어린시절부터 찌들어온 가난한 생활덕분에..

    오뎅하나 먹을때도 목욕탕 한번 가고싶을때도 돈을 생각하며 참거나 집에서 샤워합니다.

    그래 그래 살아가니 돈이 모아지는군요.(상당히 빠르게...)

    학교다닐때 라면한그릇 사먹고 싶어도 참고 또 참아서 냉수한컵 먹든가 라면사와서 집에서 끓여먹었는데...

    지금은 조금 좋아졌지만...역시 구질구질...그때의 초년시절 경험이 뼈속에 박혀서..

    이상 자랑도 아니고 그냥 혼잣말입니다.

    열심히사세요... 그것만이 희망입니다. (하루에 10분이라도 낭비시간이 없도록

    실제 체크해보세요...)

20대, 생태보고서

3. 저임금 정규직, 혹은 비정규직 - 비정규직을 거부하는 20대

혹시, 이런 논쟁, 해본 적 없는가?

“야야, 젊은 애가.. 어딜 가면 어때? 어디가서든 잘하면 되는 거지, 너무 처음부터 목표를 높게 갖지 마, 한 단계, 한 단계 천천히 밟아나가면 충분히 커 나갈 수 있는거야, 야. 뭐가 무서워서 망설이냐? 그냥 어디든 원서 내고!, 붙고! 거기서 열심히 해, 사회에서는 열심히 하는 사람이 된다니깐”

“웃기지마, 야 무조건 남은 시간동안 공부 열심히 해서, 일단 좋은 기업을 들어가야해, 솔직히 한 달 100만원 받는 직장이랑, 한 달에 250만원 받는 직장이랑 차이가 얼마나 나는 줄 알아? 시작부터 좋은데 가지 않으면 넌 평생 그 바닥에서 썪는다. 거기서 빠져나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몰라서 그래 니가”

술만 먹었다 하면, 어느 후배가 “나 이제 뭐먹고 살아요?”라는 질문을 던지고, 이 질문을 받은 사람들은 패가 둘로 갈리어 공박을 주고받는다. 물론 서로가 서로에게가 아니라 서로가 이 친구에게, 결국 이 친구는 양 측 얘기를 조용~히 경청하다. GG를 선언한다. “결국, 모르겠네요 ㅠㅠ”

‘시작은 좋은 술로’라는 CF 카피처럼, 사회생활의 시작을 적어도 남들이 알아주고 인정해주는, 돈도 많이 받고 직원복지도 빵빵한, 그래서 윤택한 삶을 살 수 있는 ‘있는 기업’으로 진입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비정규직을 거부한 자들’, 이 안에는 대기업 지망생도, 공무원 시험족도 포함된다.

                                           △비정규직은 아프지도 못하는 더러운 세상

뭐 거창하게 3어절이나 들였지만, 딱 2글자로 축약하면 이들의 정체는 ‘백수’되겠다. 통계적 가치는 전혀 없지만 내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20대 후반의 백수, 아니 정확히 얘기하면 실업률에도 포함되지 않는다는 ‘취업준비생’

결국 이렇게 보내다간 30대에 접어들면 비정규직으로라도 시작할 수밖에 없다는 걸, 이들이 모를 리가 있나? 잘 알고 있다. “나는 노는게 아니라 살기위해 이러고 있는거다”는 한 친구의 절규는 이를 잘 드러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시작’을 꿈꾸는 이유는 단순하다. 앞서 누군가 말한 바대로, 영원한 비정규직의 늪, 그게 두려워서다.

전편에서도 조금 설명한 바 있지만, 사실 ‘비정규직’이란게 벗어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낮은임금, 그리고 비정규직 특유의 격무(아니, 돈을 적게 주려면 일을 덜 시켜야 하는게, 그들이 말하는 ‘자본주의 논리’아닌가?), 그리고 노동유연성이란 멋진 이름의 ‘외주화’까지 덮치자, 비정규직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구멍은 ‘바늘구멍’이 되어버렸다.

공장노동자 A의 탐구생활이다. “6시에 일어나요. 씻고 준비하고 밖으로 나와 버스를 타고 공단으로 향해요. 이런 젠장, 오늘도 버스는 만원이예요, 같은 돈을 내고 타는데 누군 앉고 누군 서서가나 싶어요, 사람이 다 앉았음에도 세워서 버스를 태우는 기사아저씨가 나쁜사람처럼 보여요.

공장에 도착하자마자 출근카드를 찍어요, 이게 조금만 늦게 찍어도 시급이 날아갈 위험이 있어요. 오늘도 일찌감치 일어나 출근 10분전에 도착해 카드를 찍는 내가 자랑스럽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일해요. 부품을 끼는 일이예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쉬는 시간이래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점심시간 이예요, 급식을 주는데로 가요, 복날이라 닭을 준다더니 아직 머리에 피도 안마른 병아리를 푹 고아왔어요, 뼈까지 바스러지는 병아리를 음미하며, 이 닭을 과연 얼마나 삶아댄 걸까라는 생각에 빠져요.

오후 시간이에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잠깐 쉬어요, 쉴때는 역시 코카스 한 모금이 내 심금을 녹여줘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끝났어요, 근데 이런 염병할로겐. 잔업이 있데요, 그래도 돈을 더 버니 그려려니 해요

저녁을 먹고,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드디어 보람찬 하루 일이 끝났어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다시 버스를 타러 와요, 밤늦은 시간이라 그래도 자리에 사람이 많지는 않아요, 자리에 앉아 엠피삼을 귀에 꼽고 낭만을 느끼려 하는데 잠이 미친듯이 쏟아져요. 그래도 오늘은 영어공부좀 하다 자야겠어요.

집에 가자마자 씻어요, 씻고나오니 이런 젠장, 선덕여왕을 하고 있어요, 어차피 방금 목욕하고 나와 몸도 노곤하고, 지금 자리에 앉아봐야 집중도 안될 것 같으니 일단 선덕여왕을 보고 일하기로 해요. 선덕여왕이 끝나고 세상돌아가는 이치를 파악하기 위해 잠시 컴퓨터를 켜요, 헉. 장동건과 고소영이 열애를 한데요, 미친듯이 클릭해요. 그러다 시계를 보니 12시예요. 6시에 일어나야 하니 잠을 자야겠어요, 종일 서서 일했더니 다리가 저려요, 눕히지 않으면 내일 개고생할 것이 눈에 보여, 그냥 잠을 청하기로 했어요”

이렇게 5일이다. 그리고 주말잔업까지 하면 6일, 혹은 7일(즉, 다음주까지, 최소 13일 이상)을 일해야 한다. 아웃소싱 소속의 비정규직인데, 이런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새로움을 찾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일을 그만두거나 해야 하는데, 이 일을 그만두면 당장 다음 달 적금은 어떻게 메우나?

비정규직으로 살다보니 4대 보험은 개뿔, 만약 4대 보험이 적용되어 다행히 실업연금이라도 탈 만하다 생각이 들면, 이 실업연금을 타는 것도 까다롭다. 회사에서 ‘잘려’야 하니까. 옘병. ‘그만두’어서는 안된다나? 이를 증명하기 위해 회사에 가서 “나 잘린 걸로 해달라”고 졸라야 하는데, 회사 찾아가기도 민망하고, 회사가 해줄지도 모르겠고, 그냥 포기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또 하나. 비정규직 경력으로는 이력서에 나름 ‘경력사항’을 기술하기조차 민망시렵다. “자네는 학교 졸업하고 3년 동안 특별한 경력이 없는데, 이 때 뭘했나?”라 물으면 “네 저는 비정규직 노동자였습니다”라고 답해야 하나.

취업준비생 B의 고민도 여기 있었다. 돈을 벌어야 하는데, 일단 어디라도 들어가서 일해야 한다는데 이 일이 뭐 하나 내 경력에 도움 되지 않을 것 같은 느낌. 그리고 비정규직으로 일해야만 한다면 내가 일하고 싶은 직종에서 시작하고 싶은데. 이게 뭔 법칙인지 꼭 그런 곳은 ‘정규직만 취급’한다며 불평하곤 했다. 비정규직은 인생에서 버리는 시간이라며.

“쯧. 젊은 나이에, 어디가면 일 할 곳이 천진디”라며 혀를 차는 어른들에게 “네 저는 일 할 곳 천지인 곳에 가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성실히 일하고 있습니다. 따님과 결혼을 허락하시겠습니까?”라고 물어보자. 모든 부모들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아마도 “지랄하고 자빠졌네”란 소리가 나올 것이다.

B의 두려움에는 내적인 고통과 함께 외적인 고통도 있다. 좋지도 못한 대학이지만, 어쨌건 대학까지 나와서 월 120정도에 불과한 비정규직 노동자로 들어가면, 쏟아지는 주변의 애정어린(?)시선이다. ‘루저’란 딱지 아마도 그것.(키 180cm에 ‘루저’딱지를 붙여놓았을 때 발끈했던 대한민국 남성들이 우리가 실질적으로 겪고 있는 비정규직을 대하는 방식은 왜 이리 쿨한가!, 아직도 노력여하에 달려있다고 믿는가)

비정규직을 거부하는 20대. “그래도 열심히 살아야지”라며 혀를 차는 사람들이 있을 거다. “놀면 뭐해”라며 욕하는 사람들도 있을거다. 뭐 천성적으로 오지랖이 넓어 그들을 안쓰러워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욕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그들이 비정규직에 대해 느끼는 공포, 그거 다 우리가 만들어놓은 것들 아닌가?

비정규직 노동자도 비정규직 노동자를 한심해 하는 세상, 당신은, 이 대한민국 땅에서 비정규직으로 살 자신이 있나?

Posted by dalgona82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09/12/18 17: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품 끼우기면 그나마 전자회사..여자도 많고..힘도 덜 들고..덜 위험하고..
    최상의 직군이군요..대신 급여가 좀 작지요ㅠㅠ 어쨌든 그런곳 구하기도 쉽지않은데..ㅡㅡ

  2. 만j.a자 2009/12/18 18: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 경리사원 3,4명이 월말에 야근 하면서 하루종일 걸리던 일이 요즘은 한명이 커피 마셔가며 컴퓨터로 두들기면 반나절에 끝나지요. 어디서나 있는 평범한 인력이 필요 없는 시대 입니다. 영국 산업혁명 이후 각 국가들의 고도 발전시기에 수 많은 노동자들은 항상 비참하게 죽어 나갔지요.. 그리고 우리는 그때 죽지 않고 살아남은 승리자들의 후손입니다. 지금도 마찮가지 입니다. 살아남으면 후손을 남기고 아니면 죽는 것이고.. 이것이 반복되어온 역사적 흐름 입니다.. 제 말이 100% 정답은 아닐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른 의견이 있으시면 댓글 달아주세요.

    • 만j.a자 님 보시오. 2009/12/19 14:05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죠?

      이 세상의 이치가 약육강식이니까 비정규노동자가 되면 이치에 맞게 죽어라?

      이런분들 덕분에 세상은 점점 답이 없어지는 듯해서 정말 안타깝군요.

    • 만j.a자 2009/12/20 10:41  댓글주소  수정/삭제

      하고 싶은말 위에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분들이란 누구를 말하는지?.. 왜 답이 없나요? 전 다른분들 의견을 듣고 싶은 것이지 일부러 앞 뒤도 없는 비판을 받자고 댓글 쓴거 아닙니다. 구체적인 의견과 타당한 비판도 없이 뭉뚱그려서 그냥 안타깝기만 하고 별다른 의견은 없으시군요. 저도 안타깝습니다.

    • 흠.. 2009/12/22 10:23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람들이 항상 잊고 있는것이 있습니다..필요하지 않은 인력이란 없죠. 비록 단순한 스티커 붙이는 작업이라도..
      아무리 기계화가 됐어도 기계가 해내지 못한는 일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단순하다고 해서 힘만쓰거나 지저분하고 위험하다고 해서 그런일들을 천시하죠. 점점 육체노동의 가치를 잊어가는것 같습니다. 그나마 노동자를 보호하는 사회적 장치로 최저 임금제나 아니면 근로법에 나와있는 1인이 들수있는 무게 한정등이 있지만..여러모로 교육제도나 사람들 인식이 아직은 많이 부족한게 안타깝네요...

    • dalgona82 2009/12/29 14:07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ㅋㅋㅋ 후손까지 뭘.. ㅋㅋ

  3. ..!.. 2009/12/22 09: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격론은 그만하고 우리 코카스(게시자 주 : 박카X와 맛이 비슷하지만 양이 한모금 정도 더 많고 가격은 박카X와 같은 소중한 건강기능음료. 절대 유사품은 아니라고 자부하지 않음)나 한 병 마십시다. 마트에서 파는 것을 내가 보았소.

  4. HD 2009/12/30 01: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규직만 사람인 더러운세상!

20대, 생태보고서

3. 저임금 정규직, 혹은 비정규직 - 그가 승진에 밀린 이유


“뭐, 고졸이라 그랬겠지”
“너무 담담하게 얘기하는거 아니냐 -_-”

초여름 무렵, 가장 친한 친구에게 문자가 왔다. “나 승진 떨어졌다. 그런데 그게 왜 인줄 아냐? 내가 대학 안 나와서다. 술이나 한 잔 하자 ㅋㅋㅋㅋㅋㅋㅋ”

‘영업직’ 사원이라, 실적에 따라 나보다야 돈을 더 받는 친구지만 이 친구는 비정규직이다. 기본급도 없고 1년 이상 일해도 퇴직금이라는 것은 꿈도 못 꾼다. 그런 이 친구에게 ‘승진’은 하늘로 올라가는 동아줄과도 같다. 영업 인센티브로 돈을 받는 그에게 적어도 비교적 안정적인 ‘기본급’과 노동자라면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4대 보험’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동아줄을 끊어버린 건 다름 아닌 ‘학력’이었다. 나름 괜찮게 영업해서 꾸준히 실적도 내고, 생긴 것 자체부터가 워낙 웃겨먹은 녀석이라 회사 사람들과도 잘 지내는 괜찮은 친구인데, 가정 형편으로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대학 공부가 그의 동아줄을 끊어버린 셈이다. 그것도 생일 얼마 전에.

술 한 잔 나누면서, 우리야 속상한 마음에 “거 봐, 대학 졸업장은 따야한다고 했잖아”라며 녀석에게 푸념밖에 할 수 없었지만 근본적으로 따져 봐도, 객관적인 이유 없이 단순히 ‘학력’이라는 이유 하나로 승진대상 제외가 되는 현실은 납득할 수 없는 것임은 분명하다.

만약에, 혹시라도 이 회사가 다른 이유 때문에 이 친구를 승진에서 제외시켜놓고, 그 사실을 차마 밝힐 수 없어, 그에게 승진실패의 다른 이유로 ‘학벌’을 제시했을런지야 모르겠다. 그렇지만 ‘학벌’이 승진의 ‘사유’가 될 수 있다는 것, 나는 그것 자체도 납득되지 않는다.

아이폰이 날아다니는 지금의 이 사회에서도 ‘지방대졸’과 ‘전문대졸’은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 그런 대한민국 사회에서 ‘고졸’인 20대가 느끼는 벽의 두께는 얼마나 두텁고 높을까? 나의 친구는 이 ‘고졸’이란 벽에 가로막혀 나이 28살에 심한 좌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옮긴 친구를 위해 건배를!)

                        △요즘은 알바도 '대졸'을 구한다지

물론 무조건 ‘고졸’이라고 해서 바로 ‘사회 최하층’으로 편입되는 것은 아니지, 전문직종에서 행복하게(이 나라에선 돈 버는게 행복한 거니까 -_-) 잘 살아나가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20대 생태계에서(어느세대가 다르겠냐만은) ‘고졸 20대’가 차지하고 있는 영역은 먹이사슬 맨 아래일 가능성이 높다. 이 지랄맞은 ‘학벌민국’에서 고졸들이 겪었던, 겪고 있는, 언젠가는 겪어야 할 고통이다.

주변 고졸들이, 사회생활을 겪고 난 후, 방송통신대든 야간대학이든, 어떻게든 대학에 가려 애쓰는 이유를 난 이렇게 사회에 나와서야 알았다. 4년제 다니는 사람들에게야 대학생이라는 것이 술도 좀 먹고, 미팅도 좀 하고, 이렇게 반쯤 즐기다 나오는 하나의 ‘코스’에 불과하지만, 이들에게는 대학졸업장이란 종이 하나가 무척이나 절박하다.

30대 초반의 행님 A도 결국 ‘벽’을 극복하지 못하고 방송통신대학에서 ‘학사’학위 하나 얻고자, ‘주경야독’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 선배도 결국 ‘승진’이 문제였다. “대졸이란 것과 고졸이란 것이 승진체계가 달라.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올라갈 수 있는데 한계가 있거든, ‘학사 학위’ 한 장, 내게는 그게 필요해”

“솔직히, 너 같으면 고졸 상사 밑에서 일하고 싶겠냐? 또 요즘 애들 다 대학 나와서, 능력도 좋고 스펙도 빵빵한데, 나 같은 사람이 상사로 와봐, 뒤에서 씹어대는게 장난 아니지, 회사도 그게 싫고, 나도 그게 짜증나니까. 이래저래 대학졸업장은 필요한 것이지, 그러니 너도 기를 쓰고 대학 졸업해, 당장 돈 번다고, 그게 중요한 게 아냐”

결국 그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피곤한 삶’을 살고 있다. 공부가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된 체, 이 사회에서 그렇게나 강조되는 ‘능력’은 이처럼 ‘학벌’ 앞에 부차적인 문제로 치부된다. 아니, 신자유주의국가라면서 학력과 같은 몇 가지 부분들을 대하는 방식은 전근대적 방식으로 통용되는가? 난 이해가 좀 안된다.

고졸이 겪는 또 하나의 고통, 바로 ‘생산직 고졸’들의 삶이다. 매일 기계처럼 반복되는 고된 육체노동과, 매일같이 느껴지는 무기력함, 하루 8시간 노동에 잔업에 특근에 뼈빠지게 일해야 얻어지는 120~150만원의 월급, 빠져나갈 길 없는 우울함이 이들을 괴롭히는 요인이다.

특히나 최근 공장들이 직접고용보다 대부분이 ‘아웃소싱’이라는 인력업체를 거치면서, 비극은 더 커졌다. 한 녀석은 그렇게 아웃소싱 업체를 전전하는 자신을 ‘돌림빵 인생’이라고 냉소했다.

그 녀석은 몇 가지 푸념을 만날 때마다 늘어놓곤 하는데, 대체로 이런 얘기들이다. “이런 젠장할, 왜 이 추운날 밖에서 일하는 우리보다 안에서 따뜻하게 앉아있는 사무직 애들이 돈을 더 받는거야”라던지, “생산이 얼마나 중요한데, 왜 꼭 사람 자르려면 생산부터 자르는거야”라던지, “왜 회사는 어차피 똑같은 돈을 줄 거면서 아웃소싱으로 사람 사고, 업체에 돈을 주는거야?" 라던지, "왜 똑같은 일을 하는데, 돈은 덜받아야 하는거야? 일은 내가 제일 열심히 하는데!” 등등.

녀석은 작은 업체에서 생산직으로 일하다보니 언제 잘릴지도 모를 살얼음판 걷는 기분으로 살아가고 있다. 거기서 거의 하루 12시간 노동을 하고서도 손에 쥐는 돈은 달랑 최저임금 수준, 잔업에 특근까지 하루도 쉬는 날이 없는데 고작 120만원 받는데 그친다.(그래도 시간이 없으니 돈 쓸데도 없어, 돈 모으기 쉽다는 낙관적인 녀석 -_-)

어디 다른데 취직하고 싶어도, 저들처럼 따뜻한 사무실에 앉아 일하고 싶어도, 그놈의 ‘대졸’ 자격이 뭐기에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냐”는 걱정을 하게 만드는 건지, 공장장까지라고 올라가고 싶은 꿈이 있는데, ‘아웃소싱’이란 발에 묶여 그 꿈마저도 포기해야 하는 건 대체 누구의 장난질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취업은 했으나, 일하고 있으나 희망은 없는 절망적인 20대들, ‘고졸’이란 딱지를 평생 이마에 붙이고 살아야 하는, 그래서 그 딱지를 떼고자 다시 대학에 다녀야하는, 그 가운데 ‘취미’라는 단어는 개나 줘버린 그들은 이 세상이 마이 아프다.

Posted by dalgona82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 2009/12/15 15: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생일 얼마전이라..얼마나 슬프셨을까....ㅡㅡ

  2. BD 2009/12/15 15: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돈이 적어도 버틸수있다..일이 힘들어도 버틸수있다..그러나 고졸 현장직의 가장큰 문제는 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급여 수준이 똑같다..ㅡㅡ 오히려 나이가 들어
    젊은 힘좋은 친구들을 뽑고 내쫒기지 않으면 다행..ㅡㅡ

  3. 달달달 2009/12/15 16: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달님! 블로그 제목처럼 글도 달달하고 참신하고 참좋군요..
    앞으로도 계속 많은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4. 더 모우 질라 2009/12/15 20: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회가 졸업장을 우대하는 이유는 졸업자의 지식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4년의 시간 동안 투자한 시간과 금전을 우대하는것 입니다. 그리고 똑같이 4년을 투자했다면 이번에는 좀 더 들어가기 힘든 학교를 우대하지요..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교적 동일한 기회에서 비슷하게 투자할 여건이 되는냐는 것입니다. 사교육이 공교육을 식모 부리듯 하는 현실이지만 그래도 사회에 비하면 고등학교때 까지는 할만 합니다. 그리 극복하지 못 할 난이도도 아니고 수능 시험지는 거지 자식부터 재벌 자식까지 동일 하니까요. 근데 이 다음 단계 부터는.... 다들 말 안해도 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양극화 현상을 해결하지 못 할 것이라면 여기서 저는 정부에 아주 기막힌 제안을 한가지 하겠습니다. 개인의 노력 부족이 아니라 타고난 상황에 다음 계단을 오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국가는 매주 로또 5장씩 무료로 나눠주기 바랍니다. 우리의 스칼렛 오하라님 말씀처럼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또 떠오르듯 로또는 사람으로 하여금 일주일을 버티게 합니다. 죽으려다가도 다음주에 혹시 로또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삶을 이어갈 수 있지요.. (절대 개인적 경험 아님ㅡㅡ)등록금이 반토막 나지않는 이상 이것보다 좋은 정책 있음.... 010-344*-abcd로 전화 주시지 말고..그냥 마음에만 담아두세요.(ㅡ.,ㅡ);

  5. 연속좌절 2009/12/15 21: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학교 가야 하는데... 검정고시 출신이고, 아직 수학능력시험 못 봤습니다... 차라리 수학능력시험 응시하지 말고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 갈까요?

    • dalgona82 2009/12/18 15: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님 닉네임이 가슴아프네요, 어느쪽에 가시던 고민이 많으시겠어요 ㅠㅠ

    • BD 2009/12/18 17: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방통대는 직장인들이 정말 시간여유없을때 가구요..수능을 보시고 차라리 국가에서 운영하는 직훈과 전문대를
      병행하심은 어떨지..4년제가 힘드시다면요..ㅡㅡ

  6. HD 2009/12/18 13: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무원들도 그놈의 학력 때문에 고민하지요...
    연식이 조금 되신, 고졸 공무원들중 어떤 분들은 승진을 위해 어떻게든 방통대 졸업장이라도 따려고 한답니다.

  7. 더러운 세상 2009/12/26 17: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도 학력에 밀렸는데......

20대, 생태보고서

3. 저임금 정규직, 혹은 비정규직 - 취직 섭렵기(2) 창의력 자격증 시대


“뭐야, 무슨 놈의 창의력이야 -_- 이걸 어떻게 증명해, 자격증이라도 있어야 하는거 아냐?”

한 후배의 푸념에 뿜어버렸다. ‘창의력 자격증’, 아니 대체 누가, 창의력을 척도해 자격증으로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러한 형용모순은 말도 안 되는 지금의 시대상을 정확히 반영하는 말이었다.

‘스펙’이란 말이 떠오른 것이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군대를 다녀오기 전까지 이 ‘스펙’이란 단어는 그다지 빈도 높게 사용되는 단어는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말이 서서히 20대를 ‘잠식’하더니, 이제 20대를 ‘질식’시키고 있다. 이제는 취직할 때는 물론, 결혼할 때, 그리고 아이를 낳을 때도 필요한 말이 되었기 때문이다.

친구의 친구(즉 ‘남’), 대기업 입사를 꿈꾸는 A는 대학2학년 때부터 본격적인 ‘스펙’관리에 돌입했다. 나름 기본스펙(대학)이 탄탄한 그는 대략 초봉 3,800만원 가량의 럭셔리한 삶, 인생의 지름길을 돌파해보자고 결의했고 이를 위해 대기업 입사에 필요한 모든 것을 스캔, 구체적 로드맵을 만들어 고행의 길을 내딛었다.

그는 영어학원은 물론, 자신의 전공을 더욱 빛나게 해줄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컴퓨터 학원을 다녔고, 기어이 대학 4학년 때까지 바람직한 스펙의 형태를 갖춰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대학 4학년, “나 뭐해?”라고 묻는 한심한 청춘들에게 썩소 한 방 날리며 평소 관심 있었던 엘 모 대기업에 입사를 지원했다.

그는 모집요강 맨 위에 적혀있는 “창의력 있는 젊음의 도전을 기다립니다”는 문구를 가벼이 지나친 후, 기본입사자격과 자신의 스펙을 비교했고, “해온 것이 있는데, 뭐 아, 이 정도라면”이란 자신감으로 당당히 인터넷을 통해 이력서를 제출했다.

△인간이 수치화 되는 시대, 게임같은 세상

그런데 이런 제길슨. 경쟁률이 300대 1, 그가 술도 안마시고, 심지어 CC도 안해보고 모든 대학생활을 바쳐 얻어냈던 스펙은 다른 경쟁자 300명도 역시 얻어낸 스펙이었다. 그래, 대학생활을 바쳐 얻어낸 스펙인데, 이제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은 것이다.

그리고 그는 다시 한 번 밤낮없이 공부해가며 시험을 치렀다. 그리고 떨어졌다. 다시 공부하고 가산점을 붙일 수 있는 자격증을 물색했다. 또 떨어졌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남들은 안 따는 자격증을 물색했다. 떨어졌다. 떨어졌다. 떨어졌다. 붙었다. 면접에서 떨어졌다.

친구와의 모임까지 거부하며 인생 목표를 향해 전력질주를 하던 그를 내 친구가 모처럼 다시 만난을 때는 그야말로 ‘쩔어’있는 상태라고 했다. 명문대에 진학한 후, 자신만만함을 가지고 살던 그가. 자신은 꿈이 있다며 그리고 그 꿈을 향해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며 언제나 큰소리쳤던 그가, 이제 30대를 눈앞에 두고 얻은 계급은 ‘백수’다. 토익 900, 수많은 자격증을 가진 ‘백수’.

“어디 작은 기업이라도 들어가”라고 했지만, 소용이 없다. 이미 전쟁을 통해 얻어낸 수많은 스펙(그 스펙에 발려진 돈을 계산해보라!)을 가지고 중소기업에 들어갈 자신과 용기가 없었다. 레벨이 그리 높은데 경험치도 안나오는 필드를 뛸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모두 그가 좋은 기업에 취직할 것이라 했고, 그 역시 그렇게 믿었다. 그 믿음만큼. 그는 절망했다.

절망적인 일이다. ‘스펙’을 강요하는 사회, ‘스펙’이 필수된 사회에서 20대들은 필수화된 스펙을 취득하기 위해 아등바등 살고 있다. 그렇게 따낸 스펙으로 얻어낸 것은 ‘대기업에 입사 지원 자격’, 거기에 써먹지 못하면, 그렇게 얻어낸 스펙은 무용지물, 휴지조각이다.

애초부터 연봉 3,800만원과 연봉 1,500만원의 출발선이 인생 전체를 규정한다고 믿고 살아왔다. 그래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왔다. 그런데 그건 그 뿐만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런 세상에서 살고 있는 20대는, ‘스펙’을 신봉해왔다. 그런데 이제 그들은 또 다른 ‘스펙’을 요구받고 있다.

기업님들은 재수 없게도 ‘스펙’이 보편적 기준이 되자 새로운 ‘스펙’을 요구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창의력’이고, 이 창의력도 '스펙'으로 만들었다. 이 시대가 그렇다. 대학가 게시판에는 ‘등록금 인하’를 요구하는 대자보 대신 붙어있는 공모전 포스터, 인턴 등 기업체험프로그램 안내가, 그리고 스터디 모임 홍보 포스터가 붙어있다. 이것이 새로운 ‘스펙’의 시대를 연 요소다. 하물며 자원봉사까지 ‘스펙’으로 관리되는 현실이니.

엠비님과 한나라당님들이 주구장창 말하는 ‘글로벌 스탠다드’, 그리고 여기에 맞는 ‘글로벌 인재’는 자신의 모든 능력을 수치화해서, '스펙'이란 이름의 자격증 문서로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인재를 말하는 것인가?(입학사정관제가 생기자 그거 관리하는 학원이 생겼다. 오 마이 갓)

그래 솔직히 이제 ‘면접 때 말 잘하는 법’ 까지 학원에서 배우고 책으로 나온 상황에서, 이 나라가 주구장창 강조하는 기업들이 요구하는 ‘창의력 배양’은 거짓말이다.

물론 잔디밭에 누워 책 보고, 술 마시고, 기타치며 노래한다고 해서 물론 창의력이 불끈불끈 샘솟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꽉 막힌 도서관 한 귀퉁이에서 ‘4시간 자면 대기업, 5시간 자면 대기자’ 포스트-잍 붙여놓고, 문제집 술술 풀어대는 것이 창의력 배양에 보탬이 될 리는 없다.

20대 들이 멋쩍은 창의력보다 확실한 최소기준인 ‘스펙’사냥에 더 열을 올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게 더 쉽고, 그걸 해야 잘 되니까. 그렇게 스펙을 만들어 자신을 수치화 시켜야 한다. 그리고 그 이후 수천명, 수만명이 응시하는 일반적인 대기업 시험에서 1차 저지선을 통과하기 위해 ‘객관식’이라는 참호를 격파해야 한다.

참호격파는 전술이지 전략이 아니다. 그들은 '족보'와 '학원' 등으로 이미 그려진 전술을 따라 움직이는 보병부대에 불과하다. 그러니, 그들에게 창의력이란 좀 나중의 얘기일 수 밖에.

추천 한 방으로 세상이 따뜻해집니다. 하하하하

Posted by dalgona82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대, 생태보고서

3. 저임금 정규직, 혹은 비정규직 - 취직 섭렵기(1) 영어와 나, 둘 중 하나는


내 평생 영어를 부여잡은 시간만 계산해 보자. 중학교 일주일에 4회, 45분 씩, 방학제외 약 40주. 고등학교 일주일에 8회(보충까지) 40주, 대학교 영어교육 학점 6학점(최소한만 들었다능;;) 일주일에 1회, 1년 반 강의 2시간 약 105주, 그리고 사회 나와서 나름대로 매일매일 했던 영어교육까지 합하면.

연애도 하고 운동도 좀 해야 할 내 소중한 인생 중 이 ‘영어’란 놈이 혼자 잡아먹은 시간만 해도 계산불가. 어마어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처음 받은 토익 점수는.. 크윽.. 그리고 난 혹여나 다시 한 번 시험을 본다면 이 점수조차 넘지 못하는건 아닐까 무서워, 여전히 토익책을 공부하면서도 토익시험은 보지 못하고 있다. 이정도면 울렁증을 넘어 진정한 공포다.

남들은 문제집에서 정해주는 코스만 따라가면 ‘3달 완성’으로 900점은 넘는다는데, 대체 영어 잘하는 이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미국인인가?(영어 원어민 강사를 하고 있는 아일랜드의 한 20대 친구는 우리나라 토익이 왜 이렇게 어렵냐며 짜증내 했다) 아니, 이들은 둘째 치고, 그럼 나름 노력해 봐도 영어가 안 되는 나의 정체는 무엇이냔 말이다.

                        △사실 영어완전정복은, 아직까지 내 꿈이다.

자기합리화를 시켜보면, 나는 사실 어학에 소질이 없다.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당위성을 맞받아칠 수 있는 궁색한 논리는 이것뿐이다. 똑같은 단어를 달달달 외워도 하루만 지나면 처음 뵙는 단어다. 저 단어는 나에게 인사하는데 난 초면이라 어쩔 줄 몰라 하며 다시 상호소개에 나서지만 여전히 내일이면, 우린 생판 남남일 것이다.

‘다양성의 시대’에 개인의 소질과 적성과는 상관없이 단지 ‘영어’하나가 정규직의 척도로 자리 잡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나 같은 현실은 완전 젠장이다. “다양성은 어디에 있냐”고 항명해 봐야 소용없다. 외국어는 다양하니까 중국어, 일본어, 인도어, 아랍어...... 그야말로 ‘외국어’의 시대, 그것도 ‘점수’로 관철되는 어학. 다른 말로 ‘스펙’의 시대다.

아무리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아야 저임금 정규직의 삶을 받아들여야 하는 한 ‘어학 패배자’의 푸념일 뿐, 내가 이 어학의 그늘에서부터 벗어날 출구는 없다. 다시 공부를 하던, 안하던, ‘20대 생태’에 있어 영어(내지는 외국어)는 먹이사슬의 선을 가르는 주요한 기준이기 때문이다.

그 생태계의 강자로 올라서기 위한 20대들의 몸부림에 영어는 필수다. 집에 토익책 한 권 없는 20대를 본 적이 있던가? 이렇게 모든 20대가 영어에 달달 매달리니 영어점수는 오르고 시험은 더 어려워지고, 도전은 다시 거세진다. 영어는 ‘점수를 따기 위한’ 수단이 되고, 운전면허 시험처럼 정해진 공식과 틀이 제공된다.

이런식으로 익숙해진 영어이다보니. 토익에 높은 점수가 나오더라도, 회화가 되지 못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공식’은 알아도 ‘응용’은 못하는 셈이다. 그나마 요즘에는 ‘말하기 면접’을 보는 기업들이 많아졌지만 이마저도 “영어 면접 잘 보는 법”이란 제목으로 서점에 전시되어 있다.

예전 대학에서 고난의 행군 끝에 떠났던 유럽 배낭여행 당시 ‘나 영어 좀 한다’는 20대 남성을 만난일이 있다. 그와 여행에 대한 정보를 좀 나누던 중, 영어이야기가 나왔고, ‘토익(당시 영어시험이었는데, 꽤 옛날이라 잘 기억은 안난다 -_-)에 꽤나 자신 있었다’는 그에게 은은한 존경과 찬사어린 눈빛을 쏘아대며, 입으로 부러움의 따발총을 쏘아댔다.

그런데 그런 그가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이역만리 낮선 외국땅에 내렸을 당시, 공항입국심사에서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습기찬 안구만 굴려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아! 나나 쟤나란 생각에 영어에 대한 허무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 사람은 누군가 “하와유”라는 말을 걸어올 때, “파인 쌩큐 엔유?”를 외치지 않으면 그가 날 목 졸라 죽일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며, 그렇게 10년을 깨알같이 공부해 와도 결국, 외국에서 3일 만에 트인 귀와 입이 더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사실, 그것도 옛이야기다. 이런 상황이 뉴스에도 나오는 ‘너무나 뻔한 이야기’가 되어버리자. ‘영어’의 차별화를 위해 ‘고급화 전략’이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남들과 다른”, 좀 더 취업에 유리한 스펙을 위해 등록금도 혼자 댄 적 없는(아니, 우리나라에서 댈 수도 없는) 친구들이 영어공부를 위해 이역만리 타국으로 떠나는 상황이 그거다.

‘어학연수’라는 개념이 생긴 것이다. 수많은 선배들 중 ‘어학연수’를 다녀온 사람은 1~2명에 불과했는데, 몇 되지도 않는 후배들 중에서는 7~8명이나 되었다. 이들은 필리핀으로, 영국으로, 미국으로, 호주로, 캐나다로, 영어를 쓰는 곳이라면 파주영어마을을 제외한 어디라도 날아가 그곳에서 책 몇 권을 양 손에 쥐고 도도하게 걸으며 ‘유학생’의 티를 내고 다녔다.

토익책 보다 더욱 비싸고, 대신 더욱 고급스러워진 이 방법이 다시 유행이 되고, 부모님들은 “내 자식이 어학연수를 가지 못해, 삼성전자 면접 2차, 세 번째 면접관의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못하면 어쩌지”란 근심과 걱정을 안고 살아간다.

부모님들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인생 한방에 훅 갈지 모르는 근심과 걱정을 안고서도 수백, 수천만원을 ‘투자’의 개념으로 아이들을 떠나보내고 스스로 ‘새(기러기)’가 된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곳에서 “세계인은 나빼고 친구”임을 느끼며, 외로움을 달래줄, 함께 타향살이 하는 한국친구들과 어울린다. 열심히 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A역시 캐나다 어학연수를 6개월여 다녀왔다. 부모님께 가겠다고 했고, 부모님은 고민 끝에 ‘밀어주기’위해 보냈다고 한다. ‘대학’을 가는 것이 아닌, 말을 떼기 위한 ‘연수’라. 간 학교에는 많지는 않아도 몇 명의 한국친구들이 있었고, 그 곳에서 그 동네 유치원에서 가르친다는 영어교육을 받고 한갓지고 여유롭게 생활했다.

캐나다로 ‘어학’을 배우러 연수를 다녀왔다는 그에게, “그래, 캐나다는 조사의 용법이 어떻게 되던가”란 질문이 차마 나오지 않아, “거기 멋져?”란 질문을 날려댔고, 그 역시 “록키산맥이 죽이더라”며, “또 한 번 가고 싶다”며 호들갑을 떨면서도, 딱히 거기서 무엇을 배워왔는지, 어떤 일을 했는지 말을 하진 않았다.

물론 다녀오는 사이에 안구정화도 시키고, 세계가 참 오라지게 넓다는 진리도 깨달으며, 영어실력도 일취월장 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넓은 세계에 다녀온 뒤 “여기서 뭐할꺼야?”란 질문에 “취업해야지”라고 답하는 걸 보면, 6개월 동안 소요된 약 500만원의 금액이 아깝다는 느낌도 조금, 아주 조금(내 돈 아니니까) 들기도 했다.

김영하씨 소설에는 “역대 최고의 스펙을 가진 20대가 지금 사는 모습을 보라”는 문구가 나온다. 다양한 책도 읽으면서 교양을 쌓고 창의력을 발달시키면서 공모전에도 나가고, 또 그러면서도 영어를 잘하면서 제2외국어도 어느 정도 할 줄 아는 것을 바라는 건 아무리 봐도 욕심이다. 그런데 기업들은 이를 요구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20대들은 이를 해내려 한다.

그러다 보니 온통 ‘참고서’다. 토익 참고서, 토플참고서, 일어 참고서, 면접 참고서, 논술 참고서.. 그렇게 남이 정해준 가이드라인만 믿고 10대를 보냈듯, 20대를 보내고 있는 것이 지금 사람들의 현실이다. 이러니 그야말로 역대 최강의 ‘스펙’을 지닌 지금의 20대는 얼마만큼 성숙한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물론 신자유주라는, ‘세계화’라는 것이 영어의 가치를 높였고, “이왕이면 외국어 잘하는 녀석”이 상한가를 치는 건 당연한 경쟁의 원리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목적도 없는 영어공부를 하는 20대, 쓸모도 없는 토익점수를 요구하는 기업, 물론 이 모습이 전부는 아니지만, 이 모습 또한 20대들의 현실 중 하나라는 것이 왠지 씁쓸하다.

특히 나 같은 ‘영어무능력자’들은. 이 대한민국 땅에서, 영어와 나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한단 말인가.

***

PS. 전 편 "'모모모'사이트에 절망하셨나요?"가 누군가에 의해 권리침해 신고를 받아 블라인드 처리된 상황입니다. 국내 최대 취업포털이 보잘 것 없는 제 글로 인해 명예가 훼손되었다고 하는데 글쎄, 딱히 무슨 명예가 훼손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혹시 "그 곳도 돈을 버는 기업"이라는 것이 명예훼손인지, "돈 주는 회사의 크기대로 어떤 정보에도 불구하고 전면에 배치한다"는 것이 명예훼손인지 알 수 없군요. 이와 관련한 생각은 이후 정리해 올리겠습니다.

Posted by dalgona82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한니발 2009/12/19 18: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인이 영어 잘해야 하는 더러운 세상

attention기타권리침해 접수에 의해 임시 접근금지 조치된 글입니다. 관련내용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