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반MB와 ‘묻지마’ 통합지도부

민주노총이 오늘 대의원대회를 통해 새로운 위원장을 결정한다고 한다. 사실 노동‘판’도 잘 모르고, 1번 이건, 2번 이건 누가누군지 이름도 헷갈리는 판국에 글을 쓰는 건 조심스럽고(이 동네 사람들은 상당수가 제시되는 비판에 대해 ‘니가 뭘 알아!!’란 반론을 달기에, 잘 모르긴 모르니, 더 할 말이 없지 않은가!!), 이미 다 끝나가는 마당에 이런 비판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지만, “꼭 한 번 말하고 싶었~ 습니다!”

이달 중순부터 선거‘판’이 시작되었는데, 초기부터 알 수 없는 일 투성이었다. 대충 밖에서 봐도 저 동네 알력(?)다툼이 심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특히 이번 선거과정에선 더욱 더 심했던 것 같다. 국민파 후보니, 중앙파 후보니, 현장파 후보니 어쩌니 저쩌니 하더니, 통합지도부로 기울었느니 하더니, 안 나오겠다던 임성규 전 위원장이 나온다 하더니, 사퇴한다더니 어쩌더니 저쩌더니,


그 중 내가 가장 의문스러웠던 것은 ‘통합지도부’에 대한 맹신이다. 이거, 요새 나도 많이 보고 있다. 바로 ‘반MB 전선’이 그 모양이다. 잠깐 ‘반MB’의 논리구조를 살펴보자.

1. 한나라당을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을 꺾어야 한다.
2. 야당 각각의 힘이 너무 약하다.
3. 그런데 단순 여론조사를 합산해 보면 음.. 1+2+3+4+…하면 이길 수도 있을 것 같다.
4. 그러므로 힘을 합해야 한다.
5. 여기에 동의 안하면 이명박 잘되라고 저러는 거다. 나쁜 놈!

나 역시, 적어도 연대연합을 이루어 한나라당을 꺾는 것이 좀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했고, 지금도 한나라당의 재집권을 생각만 하면 영 속이 편하지 않다. 그런데 저 논리에는 몇 가지 맹점이 있다. 바로 이거다.

1.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상승 중이다. 그리고 한나라당 단체장의 지지율도 상승중이다.
2. ‘이명박을 꺾자’ 외에, 그 다음에 뭘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3. 솔직히 민주당 지자체장도 경험해 봤는데, 솔직히 차이가 뭔지 모르겠다.
4. 민주주의 위기는 맞는 것 같은데, 선거 한 번으로 바뀔까 의심스럽다.

나는 야권이 연대를 할 수 있으면 하되, ‘뭘 가지고’, ‘뭘 어떻게’ 할 지, 누가 얘기를 해줬으면 좋겠다. ‘복지’는 다들 동의하는 것 같은데, 지금 지자체 재정구조에서 ‘복지’를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국정이 안 바뀌는데 지자체가 어떻게 바꾸겠다는 건지, 그걸 모르겠다. 그걸 모른 상태에서 이명박을 꺾자니, 그 마음은 백번천번 동의하나, 사실 미래가 잘 안그려진다.(여기에 민주당이 한미FTA는 묻어가자고 한다. 한미FTA이 발효되면 서민-농민의 삶이 한번에 뒤집어지는데, 이걸 왜 묻고가는지 이해를 할 수 없다)

그런데 민주노총에서 나오는 통합 얘기는 이것보다 논리가 더 성립되지 않는다.

1. 민주노총의 위기다.
2. 정파갈등으로 위기가 왔고, 정파간 싸움을 하면 위기가 더 커진다.
3. 그러므로 통합지도부를 구성해야 한다.

이 논리에도 솔까말, 이해 안 되는 측면이 있다.

1. 예전부터 위기였는데, 지금이 왜 특히 위기라는 건지?
2. 임성규 통합지도부가 내부 통솔에 용이했다는데, 그 통솔로 쌍차를 막았는지, 노동법을 막았는지?
3. 뭘 놓고 ‘통합’이라는 건지, 정파감정? 그럼 정파도 없고 별 감정도 없는 조합원들, 현장 노동자들, 민주노총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비정규직들은?

차라리 ‘공동의 정책’, 즉 “우리 힘을 합쳐서 조직률을 15%까지 올려보자, 우리 통합해서 정파 활동가들이 한 번 다 나서보는게 어떠냐”라던지, “비정규직 노조를 10개 조직해보자”라던지, 구체적인 합의점이 있으면 차라리, 오, 그거 좋겠다 라는 심정적 동조도 들겠다. 그런데 위기를 만들었다는 정파들이 지금 와서 통합지도부를 구성한다고 위기가 멈추리란 논리는 무엇인가?

정파간 담합으로 극복될 위기라면, 그게 무슨 위기인가? 그냥 하면 되는 거지, 이미 두 후보가 출마한 상태에서 몇몇 산별위원장이란 분들이 통합지도부를 구성한다며 임성규 위원장을 재출마시킨것도 납득 안되고, 임 위원장 사퇴 이후, 통합에 실패했다며 개탄하고 사퇴한 부위원장들도 납득 안된다.

나도 잘 모르겠지만 노동은 노동의 가치와 방향이 있을텐데, 이거 너무 정치적으로 접근하는 거 아닌지, 몰라서 하는 말이지만 걱정이 된다. 여기나 저기나 묻지마 통합이 종교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은 정상적인 국가, 조직이 아니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건 인정하는 것이고, 통합, 연합을 하려면, 뭔가 보는 사람 마음에 와닿는 ‘그 무언가’부터 내놓아야 하는 것 아닌가?

ps. 이번 선거 끝나면, 조직분열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일부 전망도 분명한 사실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위기라며? 힘 모으자며? 그럼 이번 선거를 치르면서, 마음에 안드는 후보가 있더라도 "그래, 누가 되든 해보자"는 얘기는 없고 "이제 x됬다"는 말만 있으니, 대체 누가 이 위기를 만들었고, 누가 위기를 조장하고, 누가 갈등을 부추기는가?

특히 답합과 패권을 부렸던 것으로 알고 있는(정파간 정책, 노선 경쟁은 100%찬성하지만) 일부 정파쪽에서도 이런 얘기가 나오는게 참 가당치 않다.  글을 쓰다보니, 왜 민주노총이 위기인지 알 것 같다. 노동운동가들이 정치가랑 많이 닮았으니

Posted by dalgona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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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erson 2010/01/28 2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에도 또 국민파 후보가 당선되었군요. 정승호씨 같은 비정파 후보는 떨어지고. 이게 그토록 염원하던 통합의 결과인건지....

    • 달고나 2010/02/02 15: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딱 52%였다죠, 그 52%에게 당선자의 공약과 정책에 대해 한 번 물어봐서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지 알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ㅋㅋㅋㅋ

20대, 생태보고서

5. 부모님은 인생의 걸림돌이다 - 꿈을 눈치 보는 사람들

“어릴 때부터 그러셨던 거 같아요. 그렇다고 우리 부모님이 유별난 것은 아니지만 간섭은 좀 많으셨어요, 하나부터 열까지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고 말씀은 하셔서 지금껏 그렇게 해오긴 했는데, 막상 지금 와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보니 막막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엄마가 싫어하는데, 정말 짜증나는 상황이야, 엄마랑 얘기도 하기 싫어, 00오빠랑 헤어질 수는 없지만, 엄마한테 얘기하면 언제나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말이 안 통하니까 말을 하기 싫은 거야, (그래서? 결국 엄마 말 들으려고?) 그건.... 나도 모르겠어, 아 짜증난다. 정말 (뭐야 -_- 그럼 어쩌라는 거야?)”

앞서 뜬금없이 ‘레지스탕스’들에 대한 얘기부터 하면서, 부모자식간의 문제가 그야말로 ‘개인적 문제’로 치환된 면이 없지 않지만, 사실 그 안에는 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지스탕스’ 이야기를 먼저 한 것은, “이 글에 대한 자세를 어떻게 견지할 것인가”에 대한 밑밥성의 성격이 있다.

                               △자식은 부모에게 기대지만, 사실 부모도 상당히 고단하다.

협소한 인간관계이지만 사실 내 주변에 레지스탕스가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다. 대부분이 서른 가까이 되어서도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오늘도 내일도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착한 어린이 생활을 하고 있다. 물론 아주 저항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주 소소한 부분들(이를테면, ‘밥 먹어’ 라던가, ‘씻어’라는 주문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싫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에 대해서는 저항할 수 있다. 그러나 인생의 큰 방향을 결정할 때 있어 저항은 쉽지 않다.

딱 잘러 말하자면 “꿈까지 눈치를 본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점은 있다. 어느 부모가 자식이 고생하는 것을 바라겠는가? 안정적인 삶을 원하지, 그리고 결국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 자신의 의지가 확고하면 결국 가장 열렬한 응원군이 되는 것 또한 부모님이 아니던가?

그런데 내가 얘기하고 하는 핵심은 그러한 반론 안에 있는 부분이다. “안정적인 삶”에 대한 무작정의 동경, 그리고 이에 휘둘리면서 자신의 미래에 대한 “의지가 확고하지 않아”진다는 것, 그리고 이 때문에 저항에 대한 의식을 갖고 있더라도 저항의 논리적 근거를 만들 만한 힘이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들에 대해 사이비 교주처럼 ‘의지박약’ 딱지를 머리에 붙일 수는 없다. 이것이 추세화 된다면 분명 저렇게 만드는 이 사회의 뭔가가 있을 것이다. 어른들은 요새 20대들이 “의지도 없고, 열심히 하려는 것도 없어”라며 혀를 끌끌 차지만, 정말로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면, 이 것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 관점에서 풀어봐야 한다.

바야흐로 젊은 사람들이 견지해야 할 ‘무한도전’의 정신을 펼치기 어려운 세상이다. 날마다 구조조정에 정리해고에, 어디 취업하려면 온갖 외주업체들이 남발되어 있지, 비정규직이지, 그야말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위한 노동유연화 속에 ‘무한도전’을 파묻히고, 국가가 우리의 뒤에 안전판 하나 제대로 설치해 주지 못하니, 현재 안정적인 부모님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높아지는 것이다.

이건 독이다. 부모님이 우리 곁에 평생 살아주지도 않고, 상황에 따라 우리도 곧 부모님이 되거나 부모님 없이 홀로 살아나가야 할 시점의 변화가 있는데, 사회는 계속 자립의지를 무력화시킨다. 이러니 그동안 정말 빡씨게 살아오셨던 우리 부모님들이 품안에 파고든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 정년을 연장하고, 퇴임 후에도 비정규직 노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맨 앞에 인용된 친구는 인생의 ‘선택권’을 부모님께 위임한 친구다. 고등학교도, 대학교도(물론 부모님이 원하는 곳에 들어간 건 아니나) 그리고 심지어 ‘전공’까지 부모님의 입김이 들어갔다. 물론 그에 따른 것은 그 친구의 선택이지만.

“과 선택을 부모님이랑 한 건 너무한거 아니냐?”
“근데 진짜 뭘 해야 할지 모르니까요”
“관심분야는 있을거 아냐, 고등학교 때 잘하던 과목이라도 있을테고, 아니 심지어 게임을 좋아한다면, 게임학과에 도전해보면 되는 거 아냐?”
“그건 부모님이 반대하니까”
“아 놔!”

결국  이 친구는 대학생활하면서 전공에 단 한 차례 관심 가져 본 바도 없고, 왜 이 과목(경영학)을 전공해야 하는지도 모른 체, 그냥 저냥 공부하다 MT한 번 못가고, 그 흔한 인문학 책 한권 못 읽고 대학생활을 다 보냈다. 그리고 그동안 스펙을 취득하라는 부모님의 설득에 아르바이트 한 번 한 적 없다. 그러던 이 친구가 다시 취업이라는 갈림길에 서자 고민을 시작한 것이다.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지금 생각하는 건 뭔데?”
“그냥 회사 들어가서 일하는 거”
“어떤 일? 뭐 이것저것 하다보면 딱히 떠오르는게 있을 거 아냐? 뭐 햄버거를 좋아하면 프렌차이즈에 입사 원서를 넣어보거나, 뭐 이런거”
“햄버거는 부모님이 안드시니까 (이 말은 ‘재미’를 위해 넣은 ‘픽션’입니다)”
“아 놔!”

두 번째 인용에 나온 친구는 ‘연애’에 대한 선택권마저 부모님에 의해 제압당한 친구다. 남자친구가 대학을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딱히 하는 건 없고, 그렇다고 집에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여자가 이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돈을 잘 버는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이 나라에서 가장 흔하면서도 가장 살아가기 힘든 비정규 인생이다.

그러니 어머니는 “맘에 안든다”부터 시작해, “남자가 비전이 없다”라든지, “너 걔랑 결혼이라도 하면 미래가 암울하다” 등등의 말들을 던지는 것을 비롯, 그녀의 핸드폰에 수색영장을 부여하며 검문검색을 강화하는 한 편, 한때 주말 외출금지까지 내리는 계엄령을 방불케 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내가 보기엔 딱히 고민할 문제가 아닌데, 술 먹으며 계속 그것으로 고민하기에 “어머니가 싫으면, 그 이유가 있겠지, 남자친구 포기할 수 있으면 어머니 말 대로 하면되고, 남자친구 포기할 수 없으면 이길 때 까지 싸우면 되는거잖아. 결혼은 니가 하지, 너희 엄마가 하냐”고 쿨 하게 대답해줬지만 돌아온 말은 위에서처럼 “짜증나”였다.(나보고 어쩌라고 ㅠㅠ)

다른 두 이야기인 것 같지만, 관통하는 부분이 있다. 지금 그들의 부모님들이 그들의 인생에 개입하는 부분에 ‘지금 한국에서 사는 것 자체가 사는 것에 위협받을 정도’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돈이 있어야, 돈을 벌어야 이 사회에서 주체가 될 수 있는 작금의 현실 속에, 비교적 안정된 삶을 살아가는 부모님이 불안정으로 살아가는 자식들에 대한 개입력이 높아지는 것이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 5등, 23등, 125등, 3,429등의 부모님들은 자식들이 받아야 할 고통의 크기를 너무나 잘 아시기에 후덜덜 하다. 결국 자식들의 꿈도 인생도, 사랑도 직접 보고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감에 견딜 수 없다. 자식들은 사실 '레지스탕스 운동'을 벌이지만, 당연히 부모님은 '나치'가 아니라는 거다.

Posted by dalgona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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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D 2010/01/22 17: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흠..수능 전국3,429등이라....괜찮은데????ㅡㅡ;

  2. 좋은생각 2010/01/22 18: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뭐라고 쓰고싶은 말은 많지만..제가 글주변이 없어서요...글 잘 읽고 갑니다..

  3. 블랙키드 2010/01/24 17: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딸 컴플렉스란 책에서 보이는 현상은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른 관점의 글인것 같네요,, 어쨋든 논점은 자녀들은 부모에게서 독립해야하겠다는 거겠죠?

    • 달고나 2010/02/02 15: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독립은 독립인데, 자녀도, 부모도 서로에 대한 정신적 독립을 할 필요성이 있다는 거 정도 되겠죠?

  4. 달달달 2010/01/26 16: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올려라 글올려라 글올려라 글올려라................................................................................................................................................글 올려줘욤...

  5. 요새반항중 2010/02/12 23: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오 글이 좋습니다.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거죠?^^:

  6. 요새반항중 2010/02/12 23: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모의 자녀에 대한 간섭을 심리학적 관점에서 부모의 열등감 투사로 분석했는데 현실에 기반을 두고 분석한 글이네요. 맘에 듭니다. 아 정말 글솜씨를 빼앗고 싶군요ㅋㅋ

  7. 요새반항중 2010/02/12 23: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모의 자녀에 대한 간섭을 심리학적 관점에서 부모의 열등감 투사로 분석했는데 현실에 기반을 두고 분석한 글이네요. 맘에 듭니다. 아 정말 글솜씨를 빼앗고 싶군요ㅋㅋ

20대, 생태보고서

5. 부모님은 인생의 걸림돌이다 - 달려라! 레지스탕스!

굳이 ‘부모가 인생의 걸림돌’이란 배은망덕한 제목을 달았던 이유는 간단하다. 새는 알을 깨고 나와 사방팔방 날아다녀야 하는데, 이 알의 강도가 세지고, 점점 두꺼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새가 알을 깨지 못하고, 외부에서 젓가락으로 톡톡 쳐 깨면, 제대로 날지도 못하는 기형적인 새가 된다. 그런 기형적 형태가 점점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뭔 소리냐. 어 롱 타임 어고, 보통 20세를 전후하면 잔혹해질 정도로 내팽개침(?) 당했던 부모님들이 과거의 기억에 분루를 삼키며, 자기 자식만은 유정란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운 뒤, 알 속에 무차별적인 영양소를 공급하고 적당한 때가 왔을 때 인공부화를 시키지만, 그렇게 나온 새들은 갑바만 좀 나왔지, 정작 날 줄 아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 부모님은 자식을 낳아주시만, 알은 스스로 깨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우리 부모님들은 그랬다. 일부 부잣집, 혹은 가난하더라도 소 팔아 대학 보내놓은 3대 독자 외아들을 제외하고는, 보통 20대 남짓해 노동자 생활을 시작했다. TV에나 나올법한 귀한 아드님이나 따님들 정도만이 부모님 등쌀에 삶이 규정되었을 뿐, 이른바 ‘70년대 산업역군’들은 자신의 생계와 삶의 방식에 대한 최소한의(자본주의적인) 선택권은 부여되었다.

오히려 20대인 그들에게 시골에 있는 부모님의 생계, 혹은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동생들의 생계라는 무거운 책임감이 부여되었던 경우는 있었을지라도, 부모에 의해 삶이 규정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우리 부모님들은 그것을 “고난과 역경”이라고 부르지만.

그런데 당시의 20대들이 부모가 되면서 너무 변했다. 물론 5~70년대 우리 부모님들의 삶과 2000년대 20대의 삶에 대한 직접 비교의 차원이 아니다. 그들의 ‘고난과 역경’도 (자본주의적 삶의 방식이니 만큼)굉장한 고통이 수반되었고, 지금의 20대들은 그러한 고난과 역경에 봉착하는 일이 흔치 않으나. 지금의 20대들은 30대가 되더라도 ‘결혼’이라는 외부적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면 부모님의 품조차 떠나기 어렵고, 심한 경우 그들에 의해 삶의 방향이 정해지기도 한다.

옳은 일은 아니다. 농촌을 떠나 경험적으로 산업화, 자본주의화 된 부모님의 삶 속에서 아이들의 삶도 자본주의적 삶 정도로 규정되고, 여기에서는 자발적 결정이 개입될 여지가 축소된다. “우리 아들은 무엇을 하고 싶니?”보다. “우리 아들은 커서 의사가 되어야 해(10~15세)”, “좋은 대학을 가야해(15~19세)”, “대기업에 가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해(20~25세)”라는 선을 제시하는 부모님들에 의해 인생의 선과 기준이 그어진다. 그 다음에 알을 깨고 나온들, 나이도 먹었는데, 삶의 길을 찾지 못하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앞으로 약 3회 동안 부모님, 그리고 마지막엔 ‘조국’ 즉, 부모화 된 국가의 틈바구니 속에서 신음하는 20대의 이야기를 다룰 예정이다. 그리고 그 처음으로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온 자랑스런 ‘레지스탕스(저항군)’들의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알을 깨는 과정’은 물론 고통이 수반된다. 나는 그 과정을 꽤나 잘 알고 있다. 내 스스로가 그 알을 깨고 나왔기 때문은 아니다. 누나가 깨고 나오는 과정을 지켜봐 왔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본 후, 나는 부모님의 틈바구니에서 고민에 빠진 후배들을 향해 늘 내 누나의 얘기를 한다. 그의 인생이 더할나위없이 완벽하기 때문은 아니다. 다만, 그가 스스로의 길을 찾는 과정이, 지금의 20대들이 찾지 못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조짐(?)은 13년 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누나가 모 대기업 사원으로 입사하면서부터 시작된다. 부모님은 당연히 안정적인 대기업에서 안정적인 수입으로 돈을 벌다가 시집을 가서 조만간 “‘손주’라고 쓰고 ‘모든 것’이라 불리는” 아이 하나를 부모님께 떡 안겨드리는 훈훈한 풍경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누나는 달랐다.(물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사는 삶이 불행한 삶이라는 건 절대 아니다. 나도 그거 하고 싶으니까,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삶일 수 있다. 다만 누나가 가진 ‘기준’에 근거해, 그가 삶의 방식을 규정한 과정에 초점이 있다)

저항은 시작되었다. 당시 16~17세 정도인 나는 “나 사춘긴데”라며 부르짖었지만 소수의견으로 취급, 묵살되었고 그야말로 하루가 멀다하고 부모님과 누나의 전쟁이 이어졌다. 초반은 압도적 화력을 앞세운 부모님의 유리한 판세로 진행되었다.

밤마다 늦게 들어오는 누나에게 화도 내고, 달래도 보고, 술도 멕여 봤다. 부모님이 할 수 있는 온갖 방법을 총 동원했지만, 낙동강 전선을 눈앞에 두고 “회사를 그만두고 컴퓨터 관련업에 종사하고 싶다”, “나가서 살고 싶다”는 누나의 계획을 함락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부모님도 만만치 않았고(하긴, 어느 부모님이 쉽게 포기하겠나?) 이 전쟁은 약 5년 간 이어졌다. 누나 역시 설득과 강공 등 레지스탕스 운동을 벌이며 저항을 이어갔고, 결국 불리하던 판세는 비밀리에 서울 상륙작전을 준비하던 누나의 공격에 단박에 역전되었다. 부모님은 결국 누나가 알을 깨고 나오는 장면을 지켜봤고 누나는 고시원 생활을 하면서도 결국 ‘자신의 길’을 찾아갔다.

지금은? 정전-평화협정 7년 후, 누나는 돈 잘 버는 ‘둘도 없는 효녀’다. 몇 십만원으로 시작했던 누나의 월급은, 내 3~5달치 봉급 수준으로 올라갔고, 번 돈은 여행 등 인생을 즐기는 방법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근 아이티 옆(고인들의 영복을 빕니다...)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프리랜서 프로그래머로 활동했다. 누나가 거기 있는 덕분에 우리 부모님은 남매의 좌우합작으로(물론 소득수준에 따라 불균등한;;;;) 무려 40시간 넘는 비행기를 타고, 지진 전 까지 생소하기만 했던 도미니카 공화국 여행도 갈 수 있었다.

(그리고 누나는 그 곳에서 나와 미국과 유럽 등지를 여행하고 다녔으며, 우연치 않게도 바로 오늘 오후 4시 인천공항으로 귀국했다.)

그의 저항 덕에 난 손도 안대고 코 풀었다. “그래도 집에는 들어오는” 아들내미에 대한 부모님의 통제와 간섭은 거의 없다. 나는 내 신념과 꿈에 따라 직장을 선택했고, 턱도 없는 저임금을 받고 있지만 부모님은 내 미래에 대해 신뢰를 보내주고 계신다. 한 번 깨진 알은, 또 한 번 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사례 뿐 아니다. 부모님의 틈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은 꽤나 많다. 그들이 돈을 잘 벌건, 잘 못벌 건, 그런 기준을 떠나, 그들은 적어도 혼자 이 젠장맞을 세상을 ‘즐겁게’ 살아가는 법을 아는 사람들이다.

부모님 눈치와 등쌀에 사랑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갑바나온 새들이 가엾거나 한 것은 아니다. 그들 역시 스스로의 선택이었을 테니, 하지만 T자 코스, S자 코스를 따라다니는 면허시험보다. 재미있는 것은 도로주행이 아니던가.

Posted by dalgona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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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더 모우 질라 2010/01/21 0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른들이 보시면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는 내용이네요. 20세기는 지식사회, 21세기는 창의력 사회라고 하지요. 20세기는 부모 말 잘 듣고 공부한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였지요. 하지만 21세기는 가치 창출의 루트와 직업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인터넷이나 출판물 등의 범람으로 개인의 지식 축적이 예전처럼 중요한 사회가 아니지요. 지식은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으니 지식의 창의적인 활용도가 더 중요해 지고 있습니다. 다람쥐 쳇 바퀴 돌듯한 주입식 교육과 진로만 열창하고 있으면 3등은 해도 죽어도 1,2등은 못합니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인지라 어떻게든 1등이 되어야 하는데 기자님의 누님처럼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서 거기서 1등이 되어보는것이 우리 젊은이들이 택할 수 있는 또 다른 길 이겠지요. (아~ 말은 참 쉽다..ㅋㅋㅋㅋ)

20대, 생태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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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띠리링’, 메신저에서 한 후배 녀석이 말을 걸었다.

“고민 상담할 것이 있어요.”
“응, 그런 건 돈을 주고 하는 거야, 내 계좌는…”

물론 돈을 받지 않고 고민 상담은 시작되었다. 딱히 해결해준 것도 아니고, 아니, 해결해 줄 수조차 없었던 이 친구의 고민은 자못 심각했다. 그가 대학을 휴학하고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일을 하고 있는 회사에서 벌어지는 일들로, 그 회사는 사장과 직원 하나, 그리고 이 친구까지, 단 세 명이 근무하는 사실상 가내수공업 형태에 가까웠다.

문제는 이 사장‘놈’, 이 친구에게 들었던 얘기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지만, 더 놀라웠던 것은 이 친구의 고민을 들은 다른 여성 친구들의 반응이었다. “응? 그게 왜? 하루에 몇 번씩도 겪고 있는 것 아냐?”, 바로 직장 내 성희롱, 없어지지 않는 그 놈의 문제다.(여기 와서 ‘예쁜여자’ 타령하는 ‘놈’들은 꺼지시라)

                           △내가 하면 로멘스, 남들이 하면 성추행

사연인 즉 이랬다. 외근이 많은 회사의 특성상 주로 사장‘놈’과 후배, 둘이서 한 사무실에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처음에 와서 다정하게 말도 걸고, 장난도 치고 편하게 대해줘서 고맙던 사장‘님’이 점점 장난의 강도가 심해지더니 뭔가 부적절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머리를 쓰다듬더니, 어깨를 주무르고, 어깨를 주무르는 손이 점점 밑으로 내려가는 이해하기도 어려운 기괴한 현상, 어느 날은 출장을 같이 가자하더니 지 나름대로 전망 좋은 곳에 차를 세우고 갑자기 허벅지에 손을 올리지 않나, 해괴망측한 분위기를 연출해대더니, 급 “나는 너를 사랑한다”며 유부남인 자신과 ‘부적절한 관계’까지 제안했다고 한다.

“이러지 마세요”라고 했더니 들리는 답은 더욱 가관, “그럼 여기까지 왜 따라왔냐?”느니, “그냥 오빠 대하듯 편하게 대하면 된다”느니, “월급을 좀 더 올려주겠다느니” 따위의 3류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대사들을 주르륵 읊는데, 얘기를 들으면서, 역시 철딱서니 없는 어른들은 야동을 좀 끊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더욱 절망적인 것, 이런 개 같은 상황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친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정도를 넘어선 들이댐에 계속 거부야 하고 있지만, 저 섀이는 ‘좋아서 저러는 것’이라 생각하는지 도통 씨알도 안 먹히고, 그렇다고 여기서 그만두면 딱히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현실적으로도 몇 달만 더 버티면 퇴직금이 나오는데 그 돈을 쉽게 포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른사람들에게 얘기하자니? 그 공포, 알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런 고민을 내게 얘기하는데, 내가 딱히 해줄 말이 없었다. 나로서는 도저히 경험할 수 없는 일이니까. 이건 바로, 대한민국 사회에서 여자만이 느낄 수 있는(때로는 남자들도 느낄 수 있는 일이지만, 그 강도의 차이는 사실 비교하기 어려운 것 아닌가?), 그들의 ‘사회생활’이기 때문이다.

여성, 특히 최대 약자인 20대 비정규직 여성이 직장생활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음을 느꼈다. 아빠 보다 고작 몇 살 어린 그 사장놈은 "그녀를 좋아하니깐"따위의 ‘호감’이란 그럴싸한 명목으로 자신의 죄를 사하며, 후배에게 정신과 육체를 요구했고, 그 친구는 ‘사장’이라는 권위에 짓눌려 저항의 수단을 찾지 못했다.

여자는 사회생활이 편한가? ‘남성’인 나 역시 부끄럽지만 고백컨대, 사실 같은 생각을 잠깐이나마 한 적이 있다. 함께 일해 본 바 있는 여성들은 좀처럼 사회생활에 ‘참여’하지 않았다. 무슨 ‘약속’은 그리 많은지, 그래도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데 좀 ‘성의’는 보여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도 했었다.

종종 인터넷에는 간간히 “여성의 70%, 남성보다 빨리 퇴근” 따위의 제목의 기사가 날아다니며 사람들을 농락하고, 여기에 발끈한 남성 네티즌들께서는 “이거봐, 남자는 일 열심히 하는데, 여자들은 똑같은 돈 받고 야근도 안하고, 내가 더 힘들어”를 외친다.

대학때 부터도 그랬다. ‘오빠’들은 여후배들의 손을 잡아끌고 “단체생활이야”라며 자못 진지한 얼굴로 떡실신 할 때 까지 술을 멕이고, 여후배들은 “아, 원래 술자리가 이려려니”라며 받아들인다. 술자리에선 “재미로 하는” 키스게임이 난무하고 이를 거부하는 사람은 “사회(대학)생활 박약”이란 딱지를 붙이며 “산통 다 깨는, 혹은 못생긴게 까칠한, 재수없는 년”으로 낙인찍힌다.

대학도 이런데, 사회생활은 어떻겠는가? 대학생활이야, 그냥 학교다니면서 공부만 하고 학교일에 참가하지 안으면 그만인데, 사회생활이 어디 그렇게 되나? ‘남성화’된 대한민국 사회에서 여성들이 그 분위기에 적응 못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지 않는가? 

지역에서 기자질을 처음 시작할 때도 어느자리에서나 ‘남성화된 대한민국’을 늘 느껴왔고, 술자리에서 목격한 상상을 초월한 성희롱 광경도 많이 봤다. ‘술’에는 왜 그런지도 모르게 ‘여자’가 있어야 했고 여자가 있는 자리에서도 노래방에선 도우미를 부르는 경우도 있었다. 대놓고 룸사롱을 가자던 양반들도 있었다. “남자가 사회생활 하는데, 이런 곳은 한 번 가봐야 한다”며.

당시 20대 중반의 나는 노래방에 가면 도우미 아줌마들과 4~50대 아저씨들의 광란의 몸부림 속에서 대한민국에서는 ‘오바스러울’지도 모를 모멸감을 느끼며 구석에 앉아있었고, 나와 나이차이가 크게 나지 않았던 여성 실장님은, 자기 눈 앞 에서 노래방 도우미 분의 몸을 더듬는 그들을 보며 몸서리가 쳐졌다고 한다.

나는 그때도, 그 이후로도 그들의 채근에도 룸살롱은 기어이 가지 않았다. 처음 뵙는 사람과 초면에 살 부대끼느니 “사회생활 못하는 놈”이란 평가가 차라리 나았으니까.

지금은 진보매체에서 일하고 있고 접촉하는 사람들이 다 그 동네 사람들이라 그런 일이 흔치 않지만, 사실 ‘진보’라는 사람들도 ‘남자’에선 자유롭지 않다. 너무나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언어들, ‘관심’과 ‘호감’의 이름으로 이뤄지는 스킨십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특별히 할 말도 없는데 반드시 둘이 한 번 술 먹자고 채근하는 사람이 있지 않나. 챙겨주는 거라며 쉽게 어깨에 손 올리는 사람이 있지 않나.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첫차 올 때 까지 자고가라는 사람이 있지 않나, 그냥 궁금해서 보는 거라며 남의 핸드폰을 열어 문자보는 사람이 있지 않나, 그런 사람이 어디 있냐고? 우짜나. 모두 ‘진보’라는 판에서 본 사람들이다.

20대 여성의 사회생활이 쉬워 보이는가? “아버지나 오빠처럼 생각하라”며 뻗어오는 징그러운 손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그들을 덮칠지 모른다. 그래도 그들은 감당하며 산다. 돈 벌어야 하니까,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거 참지 못하면 도태되니까. 게다가 그런 짓들을 벌이는 남자들은 자꾸 자기 마음은 순수하다고 강조하기까지 하니까. 괜히 자기 기분만 나쁘고 오바쟁이까지 되는 것 아닌가?

그들은 왜 회식에 가지 않고 일찍 가는가? 남성화된 사회에서 그들을 애써 소외시킨 체, 그들에게 “적응 불가”라는 딱지를 남성들이 부착했던 것 아닌가? 가끔 조중동에서 나오는 쓰잘데기 없는 통계분석 기사를 보며, 그리고 그 밑에 입에 거품 물고 댓글 다는 남성들을 보며, 그들에게 “여성화된 사회라면 적응할 수 있겠나”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아. 이건 ‘남자’이기 때문에 당연한 본성이라고? 그럼 동물 하시던가.

ps. 물론 모든 남자들이 그런 것도 아니고, 오히려 그런 시선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는 남성들도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런데 어쩔 수 없다. 우리 스스로 계속 성찰하고 돌아보는 수 밖에, 나 자신도 모르게, 정말 좋아하는 마음이라도, 상대방의 기분에 따라 ‘실례’, 혹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될 수도 있지 않은가? 어렵지만, 이런 건 ‘쿨함’보다 ‘조심함’이 맞다.

Posted by dalgona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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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좋은생각 2010/01/15 16: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직딩의 입장으로 떠날수도 없고 그렇다고 버티자니 즐긴다고 생각들 하고...참 안타깝네요..여자들 뿐만 아니라 남성들도 전런 성희롱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습니다. 다만.."남자"니까 하면서 넘기는 경우가 많을 뿐이죠..남자,여자 모두 직장내 성희롱 문제에서 자유롭진 못한것 같네요..물론 여성분들의 고충은 더 크겠지만..
    다행인것은 그나마 요즈음 변화의 바람이 불긴 하지만 너무 미미합니다. 직장내 신고함이라든지 아니면 조금씩 변해가는 인식들..제도적 보완도 더이루어져야 할 듯..싶네요. 어쨌든 변화가 더 큰 바람이 되서 사회 곳곳에 있는 안 좋은 생각들과 관습등을 멀리 보냈으면 하네요..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dalgona82 2010/01/19 18:08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 경우도 있죠, 그런 경우도 정말 안타깝긴 하지만, 사회적 위치와 지위를 통틀어 여자의 강도만큼은 안되는 것 같아요 음.. 댓글 감사합니다 ^^

  2. 달달달 2010/01/15 16: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항상 지켜보고 있소...오늘글도 나쁘지 않군요..ㅎ

  3. BD 2010/01/15 16: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가 말한 지방이 서X은(는) 아니겠지....???

  4. 2010/01/15 16: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 입니다

  5. Bar 2010/01/15 16: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자도 성차별과 희롱을 당하고 본의 아니게 억울함을 갖고 산다..
    왜 남자화장실을 아줌마들이 청소하냔 말야...글구 남자 화장실이 꼭 입구 앞쪽에 보이는 곳에 위치하고..여자가 동료남자 엉덩이 때리면서 지나가면 왜 주위에서 부러운 시선으로 보는건데?? 글구 MT나 축제때 놀러가면 왜 항상 여장을 시키냐고??
    요즘은 눈치 보여서 회식자리에서 고기도 남자들이 자르고 술도 권하면 권한다고
    뭐라 그러고 안권하면 재미없다 그러고...
    마지막으로..왜??? 남자 수영복은 가슴을 안가리는데????ㅡㅡ;

  6. 더 모우 질라 2010/01/15 18: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기는 남자들만 들어오나.. 왜 다들 남자도 억울하다며 울먹거리는지..ㅎㅎ 그나저나 글에 나온 그 여자분.. 정말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안타깝네요..
    `20대 비정규직 여성` 우리 달 형제님이 쓰신 이 한 문장이 많은것을 내포하네요. 대머리에 배나오고 여자 밝히는 사장님들은 남자들도 싫어 하는데 여자들은 얼마나 소름이 끼칠까. 요즘은 사회가 남녀에 따라 좋고 나쁘다기 보다는 그냥 남녀 둘다 죽어나네요.ㅠㅠ
    그나저나 위에 이대통령 사진 쩌네요..ㅋㅎㅎㅎ 아직 형제님이 세상 물정을 모르시네요.. 잘못하면 아이리스 요원들한테 잡혀서 쥐도 새도 모르게 고기없는 단식원으로 끌려갑니다.ㅋㅋㅋ

  7. 레이라 2010/01/15 2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때때로 자기가 잘못하고 있다는 걸 모르고 계속 실수를 범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사람이 자신의 윗사람이라 (도대체 우리 나라는 뭔놈의 직급이 이렇게도 막강 파워가 되어버리는건지 -_- 글쓰면서도 솔직히 쪽팔립니다) 직접 대놓고 말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면, 그 사람 보이게 뒤담 까면서 키키 거려도 조금이나마 효과는 있을겁니다. 부끄러운 짓이라는 걸 알려 줘야죠.
    좀 더 배포가 있는 분이시라면, 남자로 정중히 대해주는 방법도 있습니다. -마음은 정말 감사합니다만. 사장님한테는 마음이 조금도 안 끌립니다. 전혀 제 타입이 아니십니다- 강력하게 거절하는 겁니다. 먹힐때도 있고 안먹힐때도 있지만. 배포있게 컨트를 하신다면. 잘하면 사장님의 위에 서실 수도 있습니다.
    주변의 남자 친구들에게 부탁해서 도움을 받는것도 한가지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등등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수치스러운 행동을 하면 질타를 받는 다는걸 못배워먹고 자란 분들이 도를 넘는 뻔뻔한 행동을 주로 하시니, 그럴땐 '망신'을 베풀어 주는게 가장 효과적입니다만, 그 회사 계속 다니고 싶으시다면, 그 분이 '아리까리' 해 하도록 하면서 점점 강도를 높여가시구요.
    라고 했지만. 생각처럼 쉬운일이 아니라는건 잘 알고 있습니다.
    그저, 달님 말씀처럼 남성분들이 좀 더 조심해주시고. 여성분들도 좀 더 오픈된 마인드로 남성분들을 대해, 직장내에서 '남자 여자' 가 아닌. 진정한 '직장 동료'관계가 성립될 수 있는 사회가 빨리 왔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8. HD 2010/01/19 01: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 자식이나 애인이 똑같이 당하는게 좋으면 계속 그렇게 하쇼!' 라고 말해주고 싶다. 도대체가 이넘의 인간들은 '역지사지'라는 말을 왜 모르고 사는걸까.
    '생각을 해봐 이자식아!너라면 좋겠냐!'

  9. 새옹지마 2010/02/13 02: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잘읽었습니다.^^

  10. 녹턴 2010/02/13 05: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자가 이런 글을 쓸수도 있군요. 글 잘읽었습니다.

20대, 생태보고서

4. 사회생활 지침서 - 남자, 군대를 찬양하다

“도당체, 이거이 20대랑 무슨 상관이야?” 라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군대는 20대들이 (주로)다녀오는 곳이지만, 그 이전에도 있어왔고, 앞으로도(이왕이면 앞으로는 없었으면) 있을 테니까. 즉, 대한민국 사회를 설명함에 있어 군대는 일종의 상수다. 변수가 아닌 것이다.

고민했던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이 ‘대한민국’에서 군대를 건드리는 것은 기름에 목욕재개를 한 뒤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일단 군대 얘기를 하기 위해서는 본인의 군번까지 까야 하는(군번이 없으면 자격도 상실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군대를 걸고 넘어진다? 이거 자살행위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20대 생태보고서’, 그 중 ‘사회생활 섭렵기’에는, 좀 뜬금없더라도 군대 얘기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 세상 참 빠르게 변해도 가고 있음에도, 20대에게 비교적 가혹한 사회생활 문화가 변화될 조짐은 없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사회문화 속에서 심지어 어떠한 인권침해를 당할 경우에도 피해자들은 “젊어서 고생을 사서도 한다”며 소주 한 잔에 털어 넘기려 하는 모습들, 이러한 현상들의 중심 중 하나에 버젓이 군대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즉 각종 변수에도 불구하고 도출되는 값이 잘 변하지 않는다면 상수가 문제인 것이고, 만약 사회가 의도적으로 어떠한 상수에 대해 일종의 ‘신성불가침’ 영역임을 선언한다면 “이 사회를 뭔가 바꿔봐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건드려야 하는 것이 이 상수 아니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의 핵심이기도 하다.

                   △이런 상상력이 필요해연

장면 #1. 20대 대학생들의 놀이 ‘사발식’

이거 점점 없어진다고는 하지만, 알게 모르게 하는 곳 많을거다. 나 역시 대학 1학년 입학하자마자 막걸리 두 통을 담은 냉면 그릇 하나를 ‘남자’라는 이유로 완샷 때려야 했고, “너 잘먹는다”는 이유로, 차마 다 마시지 못하고 ‘급 빈대떡’ 부쳐버린 동기의 새로운 한 잔도 내가 완샷 때려야 했다.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하며.

나중에 이들이 ‘신자유주의’에 분개하며 ‘이 더러운’, 혹은 ‘썩어빠진 세상’을 운운할 때, 개인적으로 이들을 대상으로 군대 유격조교가 한 번 되어보고 싶었다. ‘권위주의 정권’ 운운할 때는 차마 그때 못 부친 빈대떡(?)이 생각났으며(토할 뻔 했다는 의미..) ‘세상을 변혁해야 한다’고 할 때는 저들이 만들려는 세상에 겁을 집어먹기도 했다.

이 장면은 이 나라에 군대문화라는게 어디까지 파고들어가 있는지 보여주는 가장 분명한 모습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래, 소위 ‘진보’라는 자들의 머릿속에도 군대 spirit은 박혀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군대를 전역한 뒤 올해 향토 예비군으로의 전환을 앞두고 있는 나는? 나 역시 그거 없다고 자부 못하겠다.

장면 #2. 회식자리의 내무실 풍경

(예문) 왕고는 사람좋은 웃음을 터트리지만, 상병에게는 ‘요즘 애들이 빠졌구만’이란 기운을 내 뿜는다. 상병은 왕고에게 살살거리면서 일병과 이병에게 “어서 왕고에게 술을 따르라”, “니들이 빠져서는, 거기서 니들 끼리 노가리 까고 있냐? 와서 고참들과 얘기좀 해라”며 갈굼의 말과 눈초리를 날려댄다.

경험이 좀 있는 일병은 눈치 빠르게 “시정하겠습니다”를 외친 후 술자리 심부름에 나서고 어리버리 이등병은 뭐가 뭔지도 모른 체 상병의 손에 이끌려 왕고 옆에 각 잡고 앉아 왕고가 의도적으로 던지는 농담과, 진지한(혹은 과도한) 세태걱정에 대해 ‘네’, 혹은 ‘아닙니다’ 딱 두 단어로 약 세 시간의 피곤한 회식시간을 보낸다.

(예문1) 다음 예시에서 앞의 항목을 뒤의 항목으로 바꾼 뒤 그 차이점을 찾으시오.
① 이등병 = 신입사원 ② 일병 = 대리 ③ 상병 = 과장 ④ 왕고 = 부장 혹은 사장

장면 #3. 실질적으로 대입해 봅시다.

한 후배 녀석의 아는 형은 회식자리 3차 까지 갔다가 부장님 심기를 한 번 잘못 건드렸고,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쳤는데 굳어지는 그의 얼굴) 동기들이 싸그리 끌려가 과장에게 ‘개갈굼’을 당했다고 한다. 아 물론 ‘개갈굼’의 정도가 설마 군대에서의 그것과 같으리라 만은, 단순히 말실수 혹은 농담 한 번에 ‘집합’으로 이어지는 것은 남자들에게 왠일인지 낮설지가 않다.(이 형이란 사람은 후배녀석에게 ‘여자 없는 3차는 가지 말라’며 진심어린 걱정을 했다고 한다)

위의 것은 사실 나도 듣도보도 못한 극단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요즘은 아래 직원들이 작정을 하고 상사를 약 올리는 회식도 많고 보통 이것도 허허허 넘겨버리는 경우도 있으니까.(이것이 ‘진리’라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이런 문화가 깨어지고 있다는 반증일 거다) 그런데 회식이 아니라 ‘일을 하는 과정’을 놓고 보면, ‘군대’은 더욱 분명해진다.

‘일’이란 것을 할 때는 진보고 나발이고 없는데, ‘경쟁사회’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회사를 컨트롤하기 위해 주로 차용되는 개념이 ‘군대개념’이다. ‘상명하복’은 상사에게 가장 효율적인 제도이며, ‘갈굼’은 ‘설득’보다는 자신의 의지를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 사원들에게 관철시키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다.

“노노, 이건 이렇게 하기 보다는 이런 방식을 쓰는게 어떨까?”보다는 “왜 이따구로 하나?”가 짧고 강렬하며, “이거는 한 번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 봤으면 좋겠는데?”보다는 “다시 해와”가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라고 믿는다. “나도 그렇게 배워왔다”며, “그렇게 배워야 안잊어 먹는다”며.

뭐가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결과를 위해 과정이 어떻게든 상관없다는 식의 저런 말들은 최근 한 2년 동안 집중적으로 들어본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행태는 적어도 내가 봤을 때, 보수건 진보건, 나이가 많건 적건, 군대처럼 상하가 분명히 나눠지는 조직에서는 분명히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토론’보다 ‘지시’, ‘설득’보다 ‘욕설’은.

그리고 이렇게 자라온 이등병들은 병장이 되면서 역시 같은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오히려 그 효율성에 감동어린 찬양을 바친다.(정말 뭐가 효율적일까?) 그렇게 군대 문화는 이 사회의 상수가 되었고, 여전히 말단인 20대들을 괴롭히고 있다. 그리고 가장 큰 피해자인 20대 남성들은 대부분 “젊을 때 버티면 나도 병장이 되니까”라며 참고, 눈물젖은 빵을 먹고, 오늘도 폭설을 뚫고 출근을 한다.(그러다 정리해고 당하면 우짜.)

그래, 문제는 군대다. ‘병영국가’라는 말은, 이미 제사상으로 고고씽했지만 그 실체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아니 변화할 생각조차 없다. ‘사내다움’, 그것이 이 사회를 지배하는 핵심이자 이 모든 모순의 출발점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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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D 2010/01/12 01: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

    한명 한명 올챙이 시절을 생각해서 지금의 올챙이들을 챙겨주려 한다면...
    좀 바뀌려나요??

  2. 정확히 짚으셨습니다. 2010/01/12 12: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 상사의 고함과 억지에
    주눅들고 효율을 내주는 우리 직원직원들의 자존감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가장 큰 문제는 그러면서도
    이 부분을 그저 '상사''문화''제도'탓만하고 있는
    무책임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걸. 그냥 남들이 바꿔주길 원하고만 있다는 거죠.
    또한 그걸 누군가 바꾸려 반향을 일으키면.
    "재 뭐니?""왜저래?" 하고 폭삭 주저 앉히는 풍조가.
    정말 슬프게도 우리에겐 있습니다.

  3. BD 2010/01/12 16: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젊어서 고생은 사서한다..이것은 옛날 없던시절 노가다 판에서 현장관리자들이
    단순히 일시키려고 하던말이라는...ㅡㅡ 제가 아는분이 그럽디다. 젊어서 그말듣고
    죽어라 힘썼다가 한방에 훅 갔다고........ㅠㅠ 몸은 젊었을때부터 지켜야합니다..
    ....지나가는 말이었씀다......

  4. 달달달 2010/01/12 16: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은 올리는게 뜸하시군요..20대들에 대한 사랑이 식었나요?..ㅠㅠ
    아님 혹시 이제 20대가 아닌건가요??ㅠㅠ

  5. 좋은생각 2010/01/12 17: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흠..꼭 군대문화라기 보단 제 개인적인 생각은..그냥 우리사회 자체가 그런건 아닌가 싶은데요..옛부터 이어져온 권위주의.....ㅡㅡ; 저랑 생각이 다르시면 말구...
    어쨌든 항상 좋은글 읽고 생각할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함당. 앞으로도 계속 좋은글 부탁드려요...^^

  6. 불쌍한 청춘... 2010/01/12 17: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군대가 군대냐ㅡㅡ ㅉㅉ 꼭 군생활 제대로 못한 것들이.....

    • HD 2010/01/13 01:56  댓글주소  수정/삭제

      군생활 제대로 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요즘'이라고 하신거보니 갔다 오신지 좀 된듯 하신데...어떻게 제대로 하고 오셨어요? 설마 '개고생'을 제대로 한 군생활이라고 생각하는 바보는 아니시죠?혹시나 해서...정말 궁금하네요 소위 말하는 '제대로' 한 군생활

    • 만j.a자 2010/01/14 01:31  댓글주소  수정/삭제

      왜 댓글이 이렇게 초딩처럼 달리는지.. 뭐.. 솔직히 인정하기 싫지만 나름 맞는 말 같은데... 글의 포스로 예상하건데 불쌍한 청춘님은 그 힘들다는 월남전 베트남 스키부대 출신 입니다.(농담입니다.^^) 다소 권위주의적인 사회라도 단점들로만 넘쳐나지는 않습니다. 역사적 그리고 사회적 요청에 따라 그 시대에 맞는 시스템이 있는겁니다. 솔직히 진짜 잘하는 사람들은 큰 불평 불만 없이 어디가서나 잘합니다.. 참고로 전 군생활 제대로 했습니다.. 진짜로.. ㅡㅡ;

    • dalgona82 2010/01/15 14:19  댓글주소  수정/삭제

      군생활 제대로 하려면, 고문관은 한 번 해봐야죠. 전 군생활 잘 못했습니다 ^^

  7. 더 모우 질라 2010/01/14 01: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안타깝지만 변하는게 쉽지가 않지요.. 개인의 능력에 따라 크게 좌우되는 직종이라면(광고회사나 스포츠 같은 분야) 그나마 나은데 연공서열을 중요시하는 공무원 이나 기업들은 여전하지요.. 연공서열을 중요시하는 일본이 요즘 박살나는것을 교훈삼아 우리도 변했으면 좋겠습니다. 대한항공보다 모든면에서 좋았던 JAL이 연공서열과 낙하산 인사로 쫄딱 망했습니다.(국가차원에서 어쩔수 없이 수습하겠지만 실질적으로 한번은 망한거지요.) 소주만 팔면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망할 수 없는 진로가 부도 나던때가 생각나더군요.ㅋ 우리나라 사람들이 권력에 너무 시달리다보니 권위까지 부정적인 이미지가 되어버렸네요. 진정한 권위도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기는 하지만..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