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생태보고서(Ⅱ)
1. 뭉쳐야 하는 이유, 뭉칠 수 없는 이유 - “꼰대와 또라이들”
기획의도를 설명했다. 그러자 “음… 그래서 결론이 뭔데?” 라는 답이 돌아왔다. “응?”, 이건 대답이 아닌 나 자신에 대한 반문이다. 원래는 내 주변에 있는 20대들, 그들의 고민 생각 그리고 그에 대한 나의 생각, 글로 엮어 쓰고 싶었다. 그것이 기획의도였고, 그것을 말했던 거다. 그런데 ‘결론’을 묻자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젠장, 거기까지 생각한거 아닌데, 그러고 보니 좀 그렇군. 그래서, 나는 어쩌자는 건가?
고백컨대 시작할 때의 기획의도와 지금의 기획의도는 다르다. 처음에는 결론이고 나발이고 그냥 그들의 이야기를 글로 한 번 써보고 싶었고, 아울러 내가 살면서 매일같이 살떨리게 매달려있는 절벽, 거기서 느끼는 절망감을 그려보고 싶었다. 그래서 여기저기 술자리에 염치불구 끼거나 아니면 이래저래 노가리 까면서 몇몇 가지 이야기들을 들어왔었다.
그러다 ‘결론’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자 걱정은 쓰나미가 되어 흘러들어왔고 뇌의 주름은 점점 깔끔하게 펴져만 갔다. 어쨌건 글을, 그것도 (내깟 능력으로)꽤나 긴 글을 써보자니, 결론은 필요한 것이었지만, 20대 이야기에 결론을 내리는 것은 (내깟 능력으로) 쉬운일은 분명 아니었다.
우선은 그동안 ‘20대의 얘기’들, 그것들을 모아놓고 보니(혹은 나 역시 20대로 살아가다보니) 도출되었던 결론은 역시나 자연스레 “20대들이여! 짱돌을 들자”였다. 그건 표절이다. 저 희대의 명저(레디앙 출판사) ‘88만원 세대’와 결론이 똑같다. 어쩌면 남들 얘기하는데로 따라가는게 제일 쉬운 20대 지방대 출신 불투명한 미래에 똑똑하지도 못한 청년으로서는 그와 같은 결론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글을 쓰고, 생각이 엉키고 섥히고 뒤집고 메치고 하다 보니 어느 순간 결론이 바뀌었다. 라면을 먹고 싶어 물을 올리고 라면의 면발을 넣었는데,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 자장라면 스프를 넣은 셈이다. 글이 조악하고 민망한 건 그 때문이다.
글을 써오면서 바뀐 기획의도는 이렇다. “그게 왜 20대 만의 문제냐”는 것. 비정규직이 어째 20대 만의 문제일까? 집 한 채 사기 힘든 것이 무슨 20대만의 문제인가? 연애하기 어려운 세상이 어찌 20대만 한정이 될까. 내가 30대가 된다고 해서 정규직화 되는 것도, 집이 나오는 것도, 빚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때문에 나는 ‘88만원 세대론’을 부정하며, 비판한다. 그것이 결론의 한 축이다. 그런데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고민을 하다 보니, 갑자기 또 다른 생각들이 차선을 변경해 ‘급’ 끼어든다. 머릿속에서 일종의 사고가 난 셈으로, 이것이 결론의 또 한 축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다음에 하도록 하고, 우선 20대 당사자인 내가 ‘88세대론’을 부정하는 이유부터 말하고자 한다.
나는 20대의 문제를 20대의 수준에서, 20대 차원으로 풀어내는 것을 반대한다. 20대 문제는 10대의 문제이며, 30대의 문제이며, 40대의 문제다. 즉 ‘대한민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 한계다. MB가 저 자리에 있는 한 ‘후덜덜 대한민국’은 바뀌지 않는다. 더 나아가 신자유주의가 지금처럼 우리 생활을 지배한다면 ‘거덜덜 대한민국’도 바뀌지 않는다.(더 무서운 건 신자유주의가 아직 확장의 여지가 남아있다는 것일 테다.)
그렇다면? 나는 아웃소싱으로, 아르바이트로, 아니면 어떤 형태의 비정규직으로 사회에 진출하거나 진출한 후에 이에 벗어나지 못하면서, ‘88만원’의 월급을 감당해야 하는 20대가. 이미 오래전부터 대오를 형성하고 있는 조직노동자들과 연대를 하거나, 혹은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힘을 합쳐 또 다른 유니온을 형성하길 바라고 있다.(그리고 결론의 또 한 축은 이게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자면 요새 1~20대들의 ‘2AM’만큼 정치-시민사회권에서 한참 유행하고 있는(조만간 티셔츠로도 나올 것 같은데) ‘반MB연대’스러운 것을 구성하는 것으로. 힘들게 모아낸 그 칼 끝을 아깝게시리 저 조악한 정부에게만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 매년 기록적인 매출신장을 이루면서도 노동자들을 해고 시키고 그 자리에 비정규직을 쓰는 ‘그들’, 하루 12~16시간 일만하는 로보트로 만들어 놓고서는. 코딱지만한 월급으로 내 집 하나 사지 못하게 만드는 ‘그들’을 향해 저항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 무언가’를 통해 살아가고 있는 만큼, ‘그 무언가’를 바꾸는 것, 최소한 치명적인 ‘상처’ 한 방 내자는 것이다. ‘그 무언가’는 어른들이 말하는 신자유주의라는 말이 붙을 수도 있고, 치사한 빵꾸똥꾸란 말이 붙을 수도 있다.
그렇지 않고 40대 정규직이 20대 비정규직을 착취한다며 20대가 40대들에게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들면 이상한 전선이 만들어 진다. 프랑스군이 기껏 직선주로에 마지노선을 쳐놨더니 우회전으로 들어온 나치군에 점령당했듯, 이상한 전선은 ‘그 무언가’를 기반으로 한 ‘그들연대’에게 금새 함락당할 가능성이 높다.
20대는 4~50대를 ‘꼰대 아저씨’라 부를테고, 4~50대 아저씨들은 20대 아해들에게 ‘또라이들’이라고 할 것이다. 그 사이 20대 자본가와 40대 자본가는 연대하고(자본끼리의 연대는 기름없이 부친 계란프라이 마냥 아주 척 달라붙는다) 그렇게 만들어진 제3군이 양 군을 무력화 시킨다. 20대는 비정규직으로, 40대는 정리해고로.
어차피 20대가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들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3~40대와 함께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지난 2008년 촛불이 그랬다. 10대 친구들이 선봉에 나서긴 했지만 결국 바리케이트는 모두가 한 자리에 나왔을 때 쳐졌고, 짱돌도 들렸다. 함께 저항해야 할 ‘요즘 안경쓰고 다니시는 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 무언가’(신자유주의라는 말이 너무 입에 안 붙어서, 죄송..)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그 무언가’ 때문에 피해를 보는 대중들의 연대가 필요하다. 여기서 20대 끼리 따로 전선을 만든다면 그 작전은 실패의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20대 간의 연대’고 ‘피해자들 연대’고 나발이고, 이 사회가 어떤 연대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데 있다. 20대들은 자신들이 피해자가 아니라고 착각을 하고 있고, 40대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피해자가 되지 않을거라는 착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20대들의 대다수는 피해자이며, 40대들 대다수 역시 피해자이고, 그들의 아이들이 피해자가 될 확률은 높다.
“무엇을 위해 연대하냐”고, 이것이 중요하다. 어떤 사람들은 “자본가 놈들 싹 갈아엎자”는 사람도 있을테고 “미제 앞잡이들 쓸어버리자”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난 겁이 많아서 그렇지는 않고, ‘최소한의 삶’은 보장받아야 하는 것이 우리가 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고민이다.
그냥 몸이 아픈 것은 돈이 없어도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공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최소한의 살 집은 마련해줘야 한다. 아니면 적어도 3~4년은 돈 모으면 집 하나는 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돈을 벌고자 하는 ‘저들’에게는 단 하나도 양보할 수 없는 것들일테다.
자. 이제 앞으로 이어지는 글들이 본격적인 결론이다.
ps. 2부 부터는 되는데로 올립니다. 빨리 끝내야지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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