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생태보고서(Ⅲ)
결론 - 20대가 20대에게. part#1
1.
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많은 어른들이 말해왔다.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안타깝게도 어린 나는 직감했다. ‘훌륭한 사람’과 ‘돈 잘 버는 사람’의 등식은 성립되는 것이라고. 돈이 있어야 ‘성공’을 붙일 수 있는 것이고, 돈이 있어야 남을 도울 수 있는거다. 때문에 훌륭한 사람은 돈이 많아야 하는 것이고, 내가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전두환 정권 이후, 아직 군사독재에서 벗어난 시국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바로 우리 윗세대들과는 조금 다른, 그리고 그보다 더 윗세대들과는 꽤나 다른 현실에서 살아왔다. 우리가 사춘기 때에는 대한민국에 마지막 호황기가 찾아왔을 때였고, 어떤 소비도 큰 어려움 없이 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소비에 길들여져 갔다.
그러나 우리가 대학에 들어갈 시점에서, 대한민국은 장기침체를 맞았다. 여기에 부모님과 삼촌, 형 누나들이 뽑아놓은 대통령은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경쟁’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우리의 대학도 경쟁이 시작되었다. ‘질’의 경쟁이 아닌, ‘돈’의 경쟁, 1학년 때 입학금 포함, 210만원, 2학년 입학금 제외하고 210만원, 복학하고 3학년 270만원, 4학년은 300만원 선에 도달했다.
그러나 '자본주의'를 몸으로 체득한, 우리의 소비는 멈추지 않았다. 해마다 새로운 것들이 나왔고, 여기에 적응하지 못하면 이 세상에서 도태된다는 강력한 경고가 나왔다. 우리는 TV를 보며, 인터넷을 보며 흉내내고 따라했으며, 내 주변 친구들과 함께 소비하고 향락했다. 반면 대학에서 졸업한 우리는 비정규직, 외주 노동자로 밀렸고, 우리의 이마에 ‘88만원 세대’라는 딱지가 붙었다.
그러니, “20대들이여! 일어나라”는 말이 나온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인지 모르겠다. 일본처럼 대한민국에도 ‘청년유니온’이란 세대별 조직이 나타난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귀결인지 모르겠다. 오늘도 여기저기서 20대들의 실상을 알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도 당연한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게 안 된다. 일어나라고 아무리 흔들고 깨워도 20대들은 일어나지 않는다. 비정규직 비율이 10%가량 더 늘어나면, 그제서야 일어날까?, 공무원 선발기준을 강화하고 선발인원을 축소시키면 일어날까? 아니, 그럴 가능성은 없다. 청년유니온에 청년들이 가입할 가능성은? 민주노총이 주최하는 청년캠프에 청년 비정규직들의 관심이 쏟아질 가능성은? 진보정치가 주최하는 20대 대상 강연회에 운동권이 아닌 학생들이 찾아올 가능성은? 이 가능성이 모두 10%를 넘을 가능성은? 없다. 단언한다.
그들은 ‘저항’보다는 ‘도태’를 택할 것이다. 아주 어릴 적부터 자본주의 사회에 맞춤형으로 길러졌기 때문이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말하는 ‘동물의 왕국’은 안타깝게도, 이들이 사는 ‘인간의 왕국’ 그대로다. 이들은 자책은 해도, 원망은 하지 않는다. 때문에 절망은 해도 변화를 위한 행동에는 나서지 않는다.
2.
기성세대가 20대들을 이끌어내기가 이렇게 어렵다. 그럼 20대 스스로가 20대를 위해 나설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가? 우리들은 우리 스스로 우리를 적으로 규정하고 스스로를 압박하며 다그친다. 함께 사는 법보다 혼자 살아남는 법을 배우고 익히면서, “사자는 자기 새끼를 절벽에서 떨어트린다”는 자본주의적 명제를 받아들이고 도태를 자연스럽게 여긴다. 그것은 동물의 왕국이지, 인간의 왕국이 아니다. 우리가 우리를 우리 안에 가둬놓는 비극적인 풍경인 것이다.
우리는 더 큰 적을, 우리의 삶을 파괴하고 피폐시키는 적을 앞에두고 우리 끼리 갈라져 싸운다. 20대 정규직은 20대 비정규직을 무시하고, 20대 비정규직은 20대 백수, 공시족들을 무시한다. 20대 백수, 공시족들은 같은 처지의 그들을 무시하고 비난한다. 학교다닐 때 친구였던 이들이다. 한 운동장에서 뛰고 축구하고 수다떨던 그들이다. 맨 앞 글에서 말했다. 한 선생님이 그랬다고 “너희 졸업하면 그 관계 유지될 것 같냐?”는.
경쟁에 밀려난 사람들을 향해 혀만 끌끌 차는 것으로는 우리 20대들은 우리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없다. 나 혼자 살아남기 위해 토익책을 파고들면, 독서실 앞에 앉으면, 그래 나는 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친구들의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삶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태어나자마자 내 아이에게 엄마 아빠의 따뜻하고 정감 있는 대화보다 영어테이프를 들려줘야 하는 끔찍한 상황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앉아있어도 내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앞으로 비정규직의 수는 더욱 늘어날 것이고, 정규직의 문은 좁아질 것이다. 스펙은 높아질수록 더욱 올라갈 것이고, 그렇게 들어간 회사에서 우리는 관계법령도 모른 체, 자연스럽게 노동을 착취당할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은 다 그런거야, 이런거 못견디는 사람이 어디있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런 당신이 어느날, 계약해지를 당할 수 있다. 정리해고를 당할 수 있다. 갈 곳 없는 찬바람에 몸을 뉘여야 하지만 어느 누구도 당신을 보듬어주지 않는다. 그런 상황이 올 수 있다. 동화책에 자주 나오는 이야기 아닌가?
3.
설령 그들이 모두 자본주의적 삶의 방식을 극복하고, 스스로 경쟁을 거부하고 연대에 나선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세상은 변할 것인가? 혁명을 위한 모든 조직이 ‘혁명의 성공’을 명분으로 ‘효율성’을 찾아 ‘군대식 문화’를 찾아왔다. 인민들의 평등한 삶, 자본주의적 삶을 배척위해 건설되었다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진보적인가?
진보진영 내에 존재하고 있는 상명하복의 문화, 토론 없는 일방주의, 파시스트적 성격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 것에 대한 해소 없이 진정한 연대가 가능하겠는가? 민주노총이 성폭력 사건에 대한 분명하고도 단호한 징계 없이 남성-여성 노동자들의 연대를 이끌어 낼 수 있겠는가? 그것은 조직의 보위를 위한 것인가? 조직을 망치기 위한 것인가?
본의는 아니겠지만, 사회적 시선을 의식해 ‘서울대’라는 이름 하나 앞에 떡 붙여놓고 책을 내며 “학벌철폐”를 주장하는 진보, ‘사랑’과 ‘호감’이란 이름으로 자연스럽게 성폭력, 성추행을 저질러 놓고도 “내 마음은 순수했다”고 드라마 찍는 진보, 이런 진보와 연대가 가능한가? 물론 대부분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일부를 바탕으로 전체를 판단하는 것도 오바다.
그렇지만, 지금의 진보운동에 권위적이고 정파적인 분위기는 굉장히 일반적이다. 물론 그들의 민주화-노동운동의 경력은 존경하고 존중한다. 그러나 그 기억에 휘둘려 “니들이 뭘 알아?”, “이게 얼마나 중요한 건지는 알아?”, “왜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앉아있냐?”라고 묻는 분위기에, 그 딱딱함에, 20대들은 지쳐 튕겨 나오지 않을까?
4.
20대 사이에서는 어떤가? 29살은 25살에게 떳떳한가? 25살은 21살에게 떳떳한가? 우리는 어른들에게 봐왔던 파시즘을 자연스럽게 내 안에 넣고 있지 않은가? 일병이 이등병을 갈구고, 상병이 일병을 갈구고, 병장이 상병을 갈궈도 군대는 변하지 않는다. 결국 적은 ‘간부’란 농담이 있듯.
그런데 우리 스스로 ‘꼰대’라 무시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닮아간다. 20대 조직문화는 진보적일 수 있는가? 내 대학 다닐 때, 했던 사발식, 그리고 줄빳다 현장, 당시 ‘왕고’라는 사람도 지금의 나보다 나이가 많지 않았다. 이런 조직문화는 왜 20대 사이에 남아있고 존재해야 하는가?
문화적으로 세상을 뒤바꾸려면 20대가 가장 큰 동력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스스로 그렇지 못하다. 20대 여성은 20대 남성에게 “돈 많이 벌어오라”로 닥달하고, 20대 남성은 20대 여성을 향해 ‘된장녀’라며 화살을 날린다. 이런 상황에서 같은 비정규직이여도 20대 남성과 여성의 연대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같은 조직 내 말단직원으로 같은 설움을 받고 있어도 연대는 없다.
20대 남성에 의한 ‘보건휴가제 전면도입’ 투쟁, 20대 여성에 의한 ‘군인 월급 현실화’ 투쟁은 보기 힘든 것일까? 대학을 경험한 20대 후반이 20대 대학생들을 위한 등록금 투쟁에 어깨를 걸고, 20대 대학생들이 20대 후반이 겪고 있는 현실이자, 앞으로의 미래가 될 수도 있는 비정규직 철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불가능한가?
왜 우리는 관전 중인 문제들을 두고, 왜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일까? 20대 남성과 20대 여성이 어깨걸고 부모세대를 향해 “사랑하니 결혼하게 해달라”고 절규하고, 더 나아가 국가를 향해 “사랑만으로 결혼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는 그 날을 진심으로 기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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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읽으면서 눈물이 나잖아요. ㅠㅠ 이번 결론 part1은
개인적으로 매우 훌륭한 글이라 인정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판례를 많이 보다 보니 이런 문장이 더 익숙해 졌습니다.ㅡㅡ;)
개인적으로 한마디 덧붙이자면 저의 지상 최고의 바램으로서 30대 남성이 20대 초반 여성과
국가를 향해 “사랑만으로 결혼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는
그 날이 오기를 누구보다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ㅡ.,ㅡ
판례를 많이 보니 머리가 많이 빠지지 아니할 수 없다고 할 수 없다.
완전ㅇ부모시발놈은인생의걸림돌엄마가대신디져
사회에 입성한지 1달째, 도무지 이 이상한 사회에 적응하기가 힘든,
그렇다고 소리를 내지도 못하는 저의 마음을 대변해주고계시네요...
20대를 200%즐기기 위한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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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하구 20대끼리 많은 이야기나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