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생태보고서(Ⅱ)

1. 뭉쳐야 하는 이유, 뭉칠 수 없는 이유 - “20대, 불만을 쏟아낸다면”

어차피 “모여라”고 소리쳐봐야 모일 사람들은 많지 않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의 상징이 될 수는 있다. 지난 2002년 미선이, 효순이 장갑차 사건 때 처음 모여든 촛불이 그렇고, 2008년에는 “광우병 쇠고기가 먹기 싫다”며 들어올린 촛불이 그렇다. 권력자들이 ‘겁을 먹을’만 한 일임은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앞으로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 같다. 97년 노동법을 총파업으로 막아냈다고 세상이 바뀌지 않았다.(이 노동법은 2009년 ‘중재안’이란 이름으로 통과되었다) 오히려 그 이후 국가가 나도 모르게 내 통장을 보증으로 세운 빚잔치가 ‘뽀록’나며 더 힘든 세상의 수렁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미선이 효순이의 염원을 받아 당선된 노무현 전 대통령도 세상을 바꾸지 못했다. 집값은 무섭게 올랐고, 물가도 팍팍 올랐는데 어찌된 것이 월급만은 아무런 변화가 없다. 광우병 쇠고기를 반대해 들었던 촛불도 100만 명의 시민을 광장 앞에 불러 모았지만 아무런 변화를 이끌어 내지 못했다. 미국산 쇠고기는 편안하게 수입되고 있고,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 쇠고기를 먹고 마시고 있을 수도 있다.

어 리를(a little...) 거슬러 올라가 봐도, 우리나라 역사에서 많은 세력들이 정권을 잡고 스러져 갔으나 우리의 삶은 변한 게 없다. 이식된 자본주의는 더 많은 사람에게 기회를 열어주었을지 몰라도 더 많은 사람들의 노동력을 ‘합법’이란 이유로 착취해 갔다.(설령 그것이 우리가 아니더라도 아프리카 소년이, 동남아시아의 소녀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기계가 일하듯 하루 종일 온갖 스트레스를 받으며 탈모와 두통에 시달리고 있다. 일하던 중 새참을 먹는 것도, 막걸리 한 잔 하며 덩실덩실 노는 것도 사라졌다.

그나마 우리가 얻어낸 투표의 평등도 ‘돈이면 다 되는’ 요지경 세상은 앗아가고 있다. 일당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용직 노동자들은 투표권 없는 투표권을 가지고 있을 뿐이고, 일에 치이는 대한민국에서 투표일은 휴일 이상의 의미를 갖기가 어렵다.(정치가들에게 가장 행복한 것은 무관심이라, 그들은 이러한 현상을 개선할 의지도 없을 것이다. 일부러 짜증나게 하는거 아냐?!)

                  △저.. 이거 언제 해결하실래요?

왜 이 빌어먹을 고단한 삶은 끝나지 않고 오히려 점점 우리를 짓누르는 것인가? 아파트 값은 어디까지 오를 것이며, 이발 한 번 하는게 큰 맘까지 먹어야 하는 내 월급으로, 몇 백만원의 사교육비를 감당하며 아이를 ‘이 나라가 원하는 새세상 일꾼’으로 키울 수 있을까? 그나저나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도 이 세상은 변하지 않는 것인가? 도대체 몇 명이 모여 어떤 소리를 질러야 저들은 우리의 말을 들을 것인가?

그 얘기에 관계되었지만 조금은 다른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이러한 질문에서 나온 첫번째 이야기는 신자유주의적 사고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세상은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신자유주의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이 모여 소리를 지른다고 세상이 변할 것인가?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게 앞서 언급한 내 고민의 또 다른 축이자. “내 아주 전반적으로다가” 말하고 싶은 핵심이다.

앞서 나온 몇몇 가지 사례들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보자. 나는 2001년 대학에 입학해 “동작 봐라”와 “개념 없다” 등 군사용어가 난무하는 살벌한 술집에서 막걸리 두 통을 담은 냉면 사발, 그것도 두 그릇을 원 샷 해야 했다.(두 그릇인 이유는 또 다른 군대용어 ‘연대 책임’이다) 그들은 신자유주의자였는가? 아니다. 그들은 운동권이자 열렬한 반신자유주의자들이다. 반미주의자들이었으며, 우리 민족의 대동단결을 말하는 사람들이었다.

또 하나. 지난 2008년 말 촛불집회가 사그라지던, 그리고 정권이 복수의 칼날을 갈던 그 엄중한 시기, 민주노총 000위원장이 피신해 있던 한 여성 조합원의 집에서 있어서 안될 일이 일어났다. 민주노총 간부에 의한 조합원 성폭행 사건, 그 이후에 어떻게 되었나?

민주노총은 아직도 그 사건에 대해 ‘징계’ 등 어떠한 결정을 내린 바 없고 이 안건은 몇 차례 대의원 대회를 통해 “이거 우리 다음에 하자”는 결정이 떨어졌다. 피해자와 피해자 지지모임 중심으로 다행히 계속 문제가 제기되고 있지만(왜 이런 문제를 피해자 본인이 직접 나서야 하는가!) 언제 해결이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민주노총 총연맹이 신자유주의자들의 집합소인가? 아니다. 그들은 열렬한 반신자유주의자들이다.

자. 당신은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을 반대한다. 그런데 어떤 다른 사람도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을 반대한다. 그러면 당신은 그와 연대해야 할 것이다. 함께 소리를 지르고, 돈이 아닌 사람이 사는 세상을 만들자고 함께 외치고 주장해야 한다. 그런데, 그 사람이 파시스트라면?, 권위주의자라면? 그 사람이 성매매를 한다면, 그와 연대할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

그런데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을 반대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이른바 ‘진보적’인 사회에서도 지독할 정도로 이딴 것들이 만연하다. 나이가 어리다고 의견결정에서 배제되고 성희롱과 성추행은 만만치 않게 그 사회에서도 만연되어 있다. 신자유주의 전선 하나에는 비교적 강고하게 맞서고 있지만, 그 내부에서 발생하는 문제들, 만만치 않다.

집회에 한 번 나와 본 후 나 역시 폭력적이고 차별적인 조직문화에 적응하지 못했고, 이제 그나마 명맥도 끊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대전선을 쳐야 할 진영, 그리고 그 안의 어른들은 주구장창, 신자유주의에 물든 아이들을 개탄한다.

이미 돈이면 다 되는 세상에 익숙해져 버린 젊은 친구들을 조직하자고 동분서주 해 대지만 이따위 조직문화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옛 민주노동당 조합원들의 노조결성의 앞길을 막아선 것 또한 민주노동당이며 한 진보적 단체는 월급은 커녕 ‘활동은 순수해야 한다’는 이유로 그들의 재산권과 노동권을 아무렇지도 않게 착취하고 있다.

민주노총에 젊은 활동가들이 이제 얼마나 남았는가? 진보정당에 젊은 정치인은 몇 명이나 있는가? 어차피 이 사회가 젊은 리더들을 좀처럼 용납할 수 없는 분위기라고는 하지만, 진보진영 내부에서는 그 분위기에서 자유로운가? Never.

(그렇다고 우리는 김문수와 이재오가 간 그 길을 가야 할까? 그렇지는 않다. 그래도 비교적 저쪽보다는 이쪽의 분위기가 더 나으니까.)

만약, 누군가의 말 대로 20대가 연대를 형성하고 짱돌을 들어야 한다면, 그것은 신자유주의가 아닌 권위주의, 파시즘, 왜곡된 여성주의, 반여성주의에 맞서 들어야 할 것이다. 일종의 문화혁명일 것이다. 권위를 배격하고 자유와 다양성을 찾아야 하며, 나이살 좀 많다고 “000 나와!, 어디서 그냥”이라고 말하는 어른들을 부끄럽게 해야 한다.

20대, 불만을 쏟아내야 할 지점은 거기다.(물론 이 불만을 쏟아낼 때도 인간에 대한 애정과 기본적인 상호존중은 품고 있어야 한다. 그것 없이 불만만 쏟아내는 것도 ‘나쁜 짓(???)’이다.) 다만 신자유주의와 맞서 싸울 때는 강고한 전선을 형성해야 한다.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 수준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우리의 의사가 반영될 수 있는 조직문화를 만드는데 앞장서야 한다. 그리고 물론 이는 여기에 동의하는 3~40대, 50대, 60대 그리고 10대와도 함께 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얘기를 가다듬어야 하며, 어른들은 인간에 대한 존중을 잃지 말아야 한다.

대표와 일반사원이 사단장과 이등병 만나듯 ‘훈육’이 아닌, 맞담배 피며 활발하게 조직문화를 놓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의원이 보좌관에게 까지 정보를 숨기는 형태를 비판하고 ‘함께 얘기하자’고 말해야 한다. 정당의 대표는 당원과 자주 논의할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대통령은 다수, 소수정당 가릴 것 없이 여야 대표들을 열어놓고 만나야 한다.(응? 이건 아닌가?)

빠르게 돌아가는 사회, 경쟁을 위해서는 그러한 것이 효율성에 침해된다고 반박할 수 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효율성 보다 합리성, 경쟁력 보다 연대를 신경 써야 할 것이다. 그게 안된다면 그것은 신자유주의자가 아닌게 아니다(뭔 말이래...)

어른(?)들은 내가 지금 여기에 하고 있는 것처럼 쓰잘데기 없는 얘기도 듣고 자신의 의견을 말해야 한다.(징징대는 건 아니구요 뭐..) 그들의 논리전개가 미흡하고 비록 알아듣기 어려운 부분이 있더라도 함께 논의하고 종국에는 서로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조직문화의 혁신 없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권위주의 왕조를 교체해 봐야 또 다른 권위주의 왕조가 나왔던 것 처럼.

당신은 성매매 하는 비정규직, 권위적인 진보정치인과 믿고 함께 갈 수 있는가? 성희롱 전력이 있는 정치인을 중앙당에서 의욕적으로 영입하는 개혁정당에 투표할 수 있는가? 난 그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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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algona82 2010/03/09 14: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와서 보니 비정규직이 다 그런것 같은 뉘앙스가 있는 제목이네요, 급허게 제목을 달다보니, 그런 거 아니란거. 아시죠? ^^

  2. HD 2010/03/09 23: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헐...ㅋㅋ제목 어쩔거임 ㅋㅋㅋ 안티 양산을 위해서 이런거 아니죠?ㅋㅋ

  3. outOfBrain31 2010/03/11 13: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연재물(?) 잘 읽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힘내세요~

  4. ..!.. 2010/03/12 09: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추천을 원하시면 "아으어우어어엉으어어응아어아오으응"을 외쳐주세요!

  5. 달달달 2010/03/15 08: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가 돌아왔다............I'm back....
    요즘 졸 바쁜가보오......여자만나느라....ㅡㅡ;
    나도 안 만나주고..ㅋ

인류의 역사를 뒤바꾼 위대한 생각들

“공자님 말씀 따위로 세상은 변하지 않아”, 오답이다. 공자님 말씀은 ‘중국왕조의 공식사상’으로 천년의 세월을 지내왔다. “마르크스의 세상은 죽었다”, 오답이다. 세계에 사회주의 혁명은 일어난 바 없다. 마르크스의 세상은 탄생하지도 않았다. 때문에 죽을 리 없다.

차라투스트라가 무슨 말 했는지에 별로 관심도 없고, 은행 외에 내가 어떤 사회랑 계약을 했는지도 모르는 20대 끝자락 청년은 그래도 뭔가, 이 빌어먹을 놈의 세상을 설계하고 혹은 바꾸려한 사상에 대해 궁금증 하나는 놓지 않았다.

자본주의 세상이 딱히 끌리지 않지만, 사회주의가 뭔지는 알지도 못하고, 민주주의가 좋은 거 같긴 한데 선거라는 민주주의 행위의 결정체의 결과물이 지금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찬란한 업적들을 보면 이거 꼭 민주주의 해야 하는 건가란 생각도 들고,

뭘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계시’라도 받지 않는 다음에야 그냥저냥 한숨만 푹푹쉬며 그냥 내일 출근이나 해 대니, 그런 궁금증 놓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요순시대는 그런거 몰라도 좋았다는데, 정말 좋긴 좋았나 보다)

“플라톤이 사과 심겠다는 그 사람 맞나용?”이란 무식한 생각이나 떠올리는 내게『인류의 역사를 뒤바꾼 위대한 생각들』은 분명 좋은 계기가 된 건 사실이다. 그만큼 재미도 있고 이해도 쉽다.(저 어려운 얘기를 쉽게 전한다는 것은, 저 어려운 얘기를 마스터 했다는 것 아닌가! 경의를 표한다)

재미있는 것은 서양과 동양철학이 양분되면서도 혼재되어 있다는 것, 정약용과 루소가, 마키아벨리와 한비자가 조우하는 기가 막힌 장면을 이 책에서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재미나다.(저 만남을 성사시킨다는 것은 저 어려운 얘기를 마스터 했다는 것 아닌가! 경의를 표한다)

*                   *                 *

“1917년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났다. 그런데 이 혁명은 봉건제도의 낡은 틀을 깨고 나오기 위한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이었지 결코 사회주의 혁명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왜 사회주의 혁명이 영국 같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일어나지 않고 러시아와 중국 같은 농업 국가에서 일어나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지만 1917년 10월 러시아 혁명은 눈 씻고 봐도 사회주의 혁명이 아니었다. 사회주의자들이 집권한 혁명이었지, 사회주의 혁명은 아니었다는 말이다.(p50. 평등 사회를 향한 인류의 꿈)

“100년 전 영국에서도 ‘사회주의자’ 혹은 ‘공산주의자’라고 하면 공포의 대상으로 간주되거나 경멸의 대상으로 비웃음을 받았던 모양이다. 그러한 사회주의에 교양과 품위의 옷을 입혀준 이들이 바로 페이비언 협회 회원들이었다. 따라서 페이비언 사회주의는 마르크시즘의 영국식 변형이 아니었다. 오히려 영국의 사회주의를 마르크시즘으로부터 구제한 것이 페이비언주의이다. 100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의 관점에서 재평가하면 대륙의 마르크시즘이 영국의 사회주의에 미친 영향보다 페이비언주의가 대륙의 사회주의에 미친 영향이 더 크다고 해야 할 것이다”(p60. 평등 사회를 향한 인류의 꿈)

“플라톤을 비롯한 그 시대 지식인들의 말을 통해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원래 아테네에서 사용된 민주주의란 말은 ‘민중에 의한 지배’를 의미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민주주의라는 말의 원 뜻이다. 그런데 민중이란 누구인가? 국민 대다수를 이루는 민중은 어느 시대든 재산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었다. 바로 ‘가난한 사람들’인 것이다”(p73. 역사상 가장 안정적이고 강력한 정치사상)

“다른 것도 그렇지만 나치의 유태인 정책을 보면 이성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그러나 그들은 아주 태연하게, 확신에 차서 학살을 저질렀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히틀러를 비롯한 나치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그릇된 신념은 크게 세 가지였다. 하나는 투쟁과 적자생존을 강조하는 사회진화론이었고, 두 번째는 민족 안에서 우수한 집단을 창출하려 한 우생학이었다. 나머지 하나가 바로 파시스트들이 광신한 인종론이었다”(p124. 왜 그들은 나치즘에 열광했는가?)

“(전략)유학이 아닌 다른 사상을 공부해서는 벼슬자리를 얻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 다양한 사상을 주장하는 것은 ‘국론 통일’이라는 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가에서는 이를 보이지 않게 금지했다. 당태종은 즉위한 지 얼마 안 되어 과거제를 법으로 정하고 실핼했는데 첫 과거 때 전국의 수재들이 줄지어 시험장에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고 한다. 아아, 이로써 천하의 호걸들이 모두 나의 영향권 아래에 들어왔군 그래’”(p158. 중국 왕조의 공식 사상)

“중국 역사에 나오는 탕임금 이야기를 통해 논리를 펴고, 마지막에는 장자의 말을 인용해 점잖게 끝맺고 있지만 우리는 정약용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왕은 잘못하면 갈아 치울 수 있는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푼수를 떠는 사람일랑 부끄러운 줄 알고 가만히 있어라!’ 조용한 듯하면서도 천둥소리가 나는 글이다”(p246, 조선왕조 재건 프로젝트)

“내가 대학에 들어간 1977년 한국의 GNP는 1인당 1,000달러였다. 2010년도로 가고 있는 지금 한국의 GNP는 줄잡아 2만 달러이다. 우리는 마음껏 대학의 낭만을 향유했다. 요즘 대학생들은 경쟁의 현실에 목줄을 매고 다니는 애완용 강아지 같다. 왜 이러는가? 왜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자리를 잡지 못하는 청년이 300만 명에 육박하는가? 자본의 축적은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계급의 적대를 의미한다. 노동을 지배하려는 자본의 전략은 광범위한 근로 대중의 실업을 유발한다는 마르크스의 고발과 이데올로기의 종언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p298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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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생태보고서(Ⅱ)

1. 뭉쳐야 하는 이유, 뭉칠 수 없는 이유 - “20대의 착각, 40대의 착각”

앞선 얘기를 소중한 사례를 들려준 친구들에게 전하자, 친구들은 기가 막힌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묻는다. “그게 돼?”, “응?”, 이건 대답이 아닌 나 자신에 대한 반문이다. 그냥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서 말한 건데, 내가 할 것도 아니면서 생각해보니 너무 세게 질러버렸다. ‘뭘 해야 할지’는 머리 속에 둥둥 떠다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는 도통 생각이 나지 않는다. 젠장, 거기까지 생각한 적 없는데, 이거 어떻게 해야 하는건가?

‘어떻게’라는 막연한 물음에 앞서, ‘해야 할 것’을 생각했을 때 암담한 것들을 몇 가지 떠오른다. ‘연대’, ‘공동행동’, 말이야 좋다. 그런데 이것을 누가 할 것인가? “‘그 무언가’에 피해를 보는 대중들”이 해야 한다. 그런데 대중들이 플래시몹도 아니고 힘들고 위험한 이것을 할 것인가? 아마 하지 않는다는 쪽에 돈을 거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유모차에 태워진 아기부터 7~80대 까지, 촛불은 이들을 포괄할 수 있었다.

‘민중들의 고통을 깃발로 승화시킨 대한민국 집회들’은 사실 이미 조직된 노동자들(그나마도 노조 상층에 있는 전임자들)이거나 운동에 눈을 뜬 학생들이 중심이 된다. 2008년 촛불집회는 그렇지 않았지만, 흘러간 역사는 흘러간 역사일 뿐, 다시 그들이 광장에 모이리란 보장이 없다. 오히려 촛불집회로 인해 관철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슬프지만 ‘패배의 경험’이 다시 그들을 광장으로 불러내지 않을 것이다.

실제 평범한 20대들, 바쁜 30대들, 자식 걱정하는 40대들, 명예퇴직을 앞둔 50대들은 거리로 나오지 않는다. 그러한 상황에서 “달님께서 가라사대, 고통 받는 자. 이리로 모이라”고 해봐야, 그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아마도 그들은 군사독재시절 용어같은 ‘연대’란 것을 거부하고, 스스로 이 고통 속에서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것이다.

20대들은 토익책을 들고 자격증을 딴다. “남보다 나부터 잘 사는 사회”, ‘루저’가 되지 않는 편이 진정 이 싸움에서 승리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3~40대 옛 ‘전사’들은 그런 20대를 비난한다.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쟤들은 정말 스스로 무덤 파는지도 모르고 편안하게들 살어~”라며, 50대는 “그놈이나 그놈이나”라며. 그래 그와 같은 20대의 착각, 40대의 착각이 이 연대를 방해하는 핵심적인 것들이다.

그런 착각을 만든 장본인은 이명박이지만 이명박이 아니다. 착각은 ‘자본주의를 쿨하게 살아가는 방식’이란 측면에서 대한민국 자본주의 상징인 이명박이 만들었지만, 단지 이명박으로 인해 이러한 세태가 만들어 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명박은 아니다.

이런 복잡한 관계이기에, 우리는 이명박을 반대하면서도 이명박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보이는 반민주성에 반대하지만, 그가 반민주성을 가장 아름답게 구현하는 방식, 그리고 그 방식에 믿는 구석이 바로 자본주의라는 점에서, 자본주의에 순응하는 우리가 이명박을 지지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뭉칠 수 없는 이유다. 우리는 하나하나 갈라져버렸다. 노동자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려버렸다. 20대들은 원스펙과 식스펙으로 갈려버렸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비정규직의 비율은 점점 늘어만 가는데 이상하게도 우리는 정규직이 될 일만 도모한다. 여섯 가지 스펙으로도 취직을 이뤄내기가 어려워지는데, 우리는 이상하게 더 스펙을 취득할 일만 도모한다.

이는 지배층이 언제나 ‘예외적 현상’을 두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는 ‘개천에서 용나는’ 경우를 용납한다. 덕분에 언제나 “자기만 열심히, 성실히 노력”한다면 신분상승의 기회는 주어진다. 문제는 이 등용문의 폭이 상당히 좁고, 그나마도 점점 줄어든다는 것일테다.

개천에서 용이 등록금을 감당 못해 스러지거나, 미꾸라지들이 아픈 몸 하나 돈 없으면 치료받지 못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언제나 “예외적 현상”을 생각하고 행복해 한다. 모든 미꾸라지가 용꿈을 꾸는 처지, 때문에 미꾸라지가 주변의 미꾸라지를 비웃는 일들, 이것이 우리의 연대를 막는다.

“저항하자”고 외치는 사람이 ‘루저’가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여기에 순응해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루저’가 된다. 우리의 마음은 저항에 가 있는데 현실이 뒷받침하지 못하는 탓이다. 때문에 우리는 순응하면서도 저항한다. 진보적이면서도 아파트 땅 값에, 자식 교육에 보수적이 된다. 이러한 피지배층의 정체성 혼란, 이 땅을 지배하는 지배층이 지배하기 딱 지배적인 방식이다.

(이는 가장 기본적인 연대인 ‘선거연대’조차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을 반영한다. 이명박 반대의 기운이 높다지만 정부 국정지지율은 50%를 넘고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나머지 모든 정당을 합친 지지율보다 높다. 그런 상황에서 반MB한다고, ‘일 낼 수’있겠는가?)

그리고 연대를 가로 막는 더 큰 문제가 있다. 그 문제는 다음번에..

Posted by dalgona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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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J 2010/03/02 23: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감가는 글입니다.

    세대가 중요한게 아니라 착취 당하는 노동자끼리 연대해야하는데 덜착취 당하는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착취한다는데 현실이군요.

    전 20대는 아니지만 애정을 가지고 대화해보면 그들도 우리세대랑 많이 다르지는 않더군요.

    단지 제가 사회들어올때보다 힘들어 져서 안타깝더군요.

    물론 네가지 없는 20대도 있지만 다른 세대에도 그런 사람은 있지 않나요

  2. dent 2010/03/03 0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착취"하는 면이 없는 건 아닙니다. 요즘은 그 부분에 대한 비판이 많이 쏟아져 나오는데 정규직에 도덕적 비난만 퍼붓는 건 사태를 일면적으로 바라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랜드, 뉴코아, 쌍용을 보세요. 비정규직과 연대해 투쟁했던 정규직 (쌍용은 이 범주에 넣기 좀 거시기하지만) 이 얼마나 '작살'이 났습니까. 김경욱 위원장 등은 어떤 고초를 겪고 있습니까. (그 분 요즘 어찌 지내시는지 정상근 기자님이 한 번 취재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뜻있는 사람'은 세대를 초월해 언제나 소수일 수 밖에 없는데 지금은 그 소수들의 입지가 너무나 줄어버렸어요. '정규직'을 비판 하더라도 그들 가운데 뜻있는 사람들, 뜻은 있지만 나설 순 없는 사람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면서 그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넓혀주는데 힘을 보태야 하지 않을까요?

    • dalgona82 2010/03/09 14:40  댓글주소  수정/삭제

      김경욱 위원장님은 작은 사업 하나를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확인해보고 기사든 블로그든 쓸게요 ^^

  3. أحمد 2010/03/03 07: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사귀게 된 와 함께 이슬람 )))

    http://www.acquainted-with-islam.blogspot.com/

  4. 필자가여자네 2010/03/03 21: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서 다음편도~~~

  5. 회사원 2010/03/08 07: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전문성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