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생태보고서(Ⅲ)

결론 - 20대가 20대에게. part#1

1.

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많은 어른들이 말해왔다.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안타깝게도 어린 나는 직감했다. ‘훌륭한 사람’과 ‘돈 잘 버는 사람’의 등식은 성립되는 것이라고. 돈이 있어야 ‘성공’을 붙일 수 있는 것이고, 돈이 있어야 남을 도울 수 있는거다. 때문에 훌륭한 사람은 돈이 많아야 하는 것이고, 내가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전두환 정권 이후, 아직 군사독재에서 벗어난 시국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바로 우리 윗세대들과는 조금 다른, 그리고 그보다 더 윗세대들과는 꽤나 다른 현실에서 살아왔다. 우리가 사춘기 때에는 대한민국에 마지막 호황기가 찾아왔을 때였고, 어떤 소비도 큰 어려움 없이 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소비에 길들여져 갔다.

그러나 우리가 대학에 들어갈 시점에서, 대한민국은 장기침체를 맞았다. 여기에 부모님과 삼촌, 형 누나들이 뽑아놓은 대통령은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경쟁’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우리의 대학도 경쟁이 시작되었다. ‘질’의 경쟁이 아닌, ‘돈’의 경쟁, 1학년 때 입학금 포함, 210만원, 2학년 입학금 제외하고 210만원, 복학하고 3학년 270만원, 4학년은 300만원 선에 도달했다.

그러나 '자본주의'를 몸으로 체득한, 우리의 소비는 멈추지 않았다. 해마다 새로운 것들이 나왔고, 여기에 적응하지 못하면 이 세상에서 도태된다는 강력한 경고가 나왔다. 우리는 TV를 보며, 인터넷을 보며 흉내내고 따라했으며, 내 주변 친구들과 함께 소비하고 향락했다. 반면 대학에서 졸업한 우리는 비정규직, 외주 노동자로 밀렸고, 우리의 이마에 ‘88만원 세대’라는 딱지가 붙었다.

그리고 그런 어려움에 처했지만 현실에 순응만 하며, 투표조차 안하는 ‘한심한 세대’, 10대들이 청계천에서,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 동안, 도서관에 틀어박혀 토익책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딱한 세대’가 되어버렸다. 30살이 다 되어서도 부모 곁에서 떠나지 못하는 세대가 되었고, 결혼해도 아이조차 제대로 낳지 않는 세대가 되어버렸다. 그게 우리 20대다.

그러니, “20대들이여! 일어나라”는 말이 나온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인지 모르겠다. 일본처럼 대한민국에도 ‘청년유니온’이란 세대별 조직이 나타난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귀결인지 모르겠다. 오늘도 여기저기서 20대들의 실상을 알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도 당연한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게 안 된다. 일어나라고 아무리 흔들고 깨워도 20대들은 일어나지 않는다. 비정규직 비율이 10%가량 더 늘어나면, 그제서야 일어날까?, 공무원 선발기준을 강화하고 선발인원을 축소시키면 일어날까? 아니, 그럴 가능성은 없다. 청년유니온에 청년들이 가입할 가능성은? 민주노총이 주최하는 청년캠프에 청년 비정규직들의 관심이 쏟아질 가능성은? 진보정치가 주최하는 20대 대상 강연회에 운동권이 아닌 학생들이 찾아올 가능성은? 이 가능성이 모두 10%를 넘을 가능성은? 없다. 단언한다.

그들은 ‘저항’보다는 ‘도태’를 택할 것이다. 아주 어릴 적부터 자본주의 사회에 맞춤형으로 길러졌기 때문이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말하는 ‘동물의 왕국’은 안타깝게도, 이들이 사는 ‘인간의 왕국’ 그대로다. 이들은 자책은 해도, 원망은 하지 않는다. 때문에 절망은 해도 변화를 위한 행동에는 나서지 않는다.

2.

기성세대가 20대들을 이끌어내기가 이렇게 어렵다. 그럼 20대 스스로가 20대를 위해 나설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가? 우리들은 우리 스스로 우리를 적으로 규정하고 스스로를 압박하며 다그친다. 함께 사는 법보다 혼자 살아남는 법을 배우고 익히면서, “사자는 자기 새끼를 절벽에서 떨어트린다”는 자본주의적 명제를 받아들이고 도태를 자연스럽게 여긴다. 그것은 동물의 왕국이지, 인간의 왕국이 아니다. 우리가 우리를 우리 안에 가둬놓는 비극적인 풍경인 것이다.

우리는 더 큰 적을, 우리의 삶을 파괴하고 피폐시키는 적을 앞에두고 우리 끼리 갈라져 싸운다. 20대 정규직은 20대 비정규직을 무시하고, 20대 비정규직은 20대 백수, 공시족들을 무시한다. 20대 백수, 공시족들은 같은 처지의 그들을 무시하고 비난한다. 학교다닐 때 친구였던 이들이다. 한 운동장에서 뛰고 축구하고 수다떨던 그들이다. 맨 앞 글에서 말했다. 한 선생님이 그랬다고 “너희 졸업하면 그 관계 유지될 것 같냐?”는.

경쟁에 밀려난 사람들을 향해 혀만 끌끌 차는 것으로는 우리 20대들은 우리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없다. 나 혼자 살아남기 위해 토익책을 파고들면, 독서실 앞에 앉으면, 그래 나는 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친구들의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삶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태어나자마자 내 아이에게 엄마 아빠의 따뜻하고 정감 있는 대화보다 영어테이프를 들려줘야 하는 끔찍한 상황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앉아있어도 내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앞으로 비정규직의 수는 더욱 늘어날 것이고, 정규직의 문은 좁아질 것이다. 스펙은 높아질수록 더욱 올라갈 것이고, 그렇게 들어간 회사에서 우리는 관계법령도 모른 체, 자연스럽게 노동을 착취당할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은 다 그런거야, 이런거 못견디는 사람이 어디있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런 당신이 어느날, 계약해지를 당할 수 있다. 정리해고를 당할 수 있다. 갈 곳 없는 찬바람에 몸을 뉘여야 하지만 어느 누구도 당신을 보듬어주지 않는다. 그런 상황이 올 수 있다. 동화책에 자주 나오는 이야기 아닌가?

3.

설령 그들이 모두 자본주의적 삶의 방식을 극복하고, 스스로 경쟁을 거부하고 연대에 나선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세상은 변할 것인가? 혁명을 위한 모든 조직이 ‘혁명의 성공’을 명분으로 ‘효율성’을 찾아 ‘군대식 문화’를 찾아왔다. 인민들의 평등한 삶, 자본주의적 삶을 배척위해 건설되었다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진보적인가?

진보진영 내에 존재하고 있는 상명하복의 문화, 토론 없는 일방주의, 파시스트적 성격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 것에 대한 해소 없이 진정한 연대가 가능하겠는가? 민주노총이 성폭력 사건에 대한 분명하고도 단호한 징계 없이 남성-여성 노동자들의 연대를 이끌어 낼 수 있겠는가? 그것은 조직의 보위를 위한 것인가? 조직을 망치기 위한 것인가?

본의는 아니겠지만, 사회적 시선을 의식해 ‘서울대’라는 이름 하나 앞에 떡 붙여놓고 책을 내며 “학벌철폐”를 주장하는 진보, ‘사랑’과 ‘호감’이란 이름으로 자연스럽게 성폭력, 성추행을 저질러 놓고도 “내 마음은 순수했다”고 드라마 찍는 진보, 이런 진보와 연대가 가능한가? 물론 대부분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일부를 바탕으로 전체를 판단하는 것도 오바다.

그렇지만, 지금의 진보운동에 권위적이고 정파적인 분위기는 굉장히 일반적이다. 물론 그들의 민주화-노동운동의 경력은 존경하고 존중한다. 그러나 그 기억에 휘둘려 “니들이 뭘 알아?”, “이게 얼마나 중요한 건지는 알아?”, “왜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앉아있냐?”라고 묻는 분위기에, 그 딱딱함에, 20대들은 지쳐 튕겨 나오지 않을까?

4.

20대 사이에서는 어떤가? 29살은 25살에게 떳떳한가? 25살은 21살에게 떳떳한가? 우리는 어른들에게 봐왔던 파시즘을 자연스럽게 내 안에 넣고 있지 않은가? 일병이 이등병을 갈구고, 상병이 일병을 갈구고, 병장이 상병을 갈궈도 군대는 변하지 않는다. 결국 적은 ‘간부’란 농담이 있듯.

그런데 우리 스스로 ‘꼰대’라 무시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닮아간다. 20대 조직문화는 진보적일 수 있는가? 내 대학 다닐 때, 했던 사발식, 그리고 줄빳다 현장, 당시 ‘왕고’라는 사람도 지금의 나보다 나이가 많지 않았다. 이런 조직문화는 왜 20대 사이에 남아있고 존재해야 하는가?

문화적으로 세상을 뒤바꾸려면 20대가 가장 큰 동력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스스로 그렇지 못하다. 20대 여성은 20대 남성에게 “돈 많이 벌어오라”로 닥달하고, 20대 남성은 20대 여성을 향해 ‘된장녀’라며 화살을 날린다. 이런 상황에서 같은 비정규직이여도 20대 남성과 여성의 연대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같은 조직 내 말단직원으로 같은 설움을 받고 있어도 연대는 없다.

20대 남성에 의한 ‘보건휴가제 전면도입’ 투쟁, 20대 여성에 의한 ‘군인 월급 현실화’ 투쟁은 보기 힘든 것일까? 대학을 경험한 20대 후반이 20대 대학생들을 위한 등록금 투쟁에 어깨를 걸고, 20대 대학생들이 20대 후반이 겪고 있는 현실이자, 앞으로의 미래가 될 수도 있는 비정규직 철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불가능한가?

왜 우리는 관전 중인 문제들을 두고, 왜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일까? 20대 남성과 20대 여성이 어깨걸고 부모세대를 향해 “사랑하니 결혼하게 해달라”고 절규하고, 더 나아가 국가를 향해 “사랑만으로 결혼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는 그 날을 진심으로 기원하고 있다.

Posted by dalgona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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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림동 박 2010/03/29 17: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읽으면서 눈물이 나잖아요. ㅠㅠ 이번 결론 part1은

    개인적으로 매우 훌륭한 글이라 인정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판례를 많이 보다 보니 이런 문장이 더 익숙해 졌습니다.ㅡㅡ;)

    개인적으로 한마디 덧붙이자면 저의 지상 최고의 바램으로서 30대 남성이 20대 초반 여성과

    국가를 향해 “사랑만으로 결혼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는

    그 날이 오기를 누구보다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ㅡ.,ㅡ

    • ..!.. 2010/03/31 21:44  댓글주소  수정/삭제

      판례를 많이 보니 머리가 많이 빠지지 아니할 수 없다고 할 수 없다.

  2. 연예인 2010/04/01 17: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완전ㅇ부모시발놈은인생의걸림돌엄마가대신디져

  3. 부리 2010/05/22 20: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회에 입성한지 1달째, 도무지 이 이상한 사회에 적응하기가 힘든,
    그렇다고 소리를 내지도 못하는 저의 마음을 대변해주고계시네요...

  4. 동명대 2010/05/28 19: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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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생태보고서(Ⅱ)

2. 20대에게 정치는 “없다”

결론을 내기에 앞서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20대에게 정치는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내까짓게 정치를 정의내릴 수 있을 만한 사람도 아니지만, 앞으로 이야기를 위해 ‘전제’정도라도 해 본다면, 정치는 피통치자의 동의를 얻어 통치자가 우리 사회를 전반적으로다가 조정하고 실행하는 어떠한 행위다. 이런 전제하에, 우리가 신경을 쓰든 안 쓰든, 이 행위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다. 태어나면서 부터 죽을 때 까지, 우리가 이 정치에 영향을 받지 않은 적은 없고, 또 없을 것이다.

20대 역시 마찬가지다. 오히려 지금 이 하수상한 시기에 20대 만큼 정치에 큰 영향을 받는 집단이 있을까? 그런데 기성세대로 부터 이 20대들이 “정치를 배제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말일까?

사실관계부터 짚어보자. 지난 2007년 17대 대선 당시 꺾인 20대들의 투표율은 42.9%, 아직 안꺾인 20대 투표율은 51.1%였다. 전체투표율은 63%. 2008년 18대 총선투표율은? 20대 전반이 32.9%, 20대 후반이 24.2%였다. 전체 투표율은 45.9%였다.

최대한 많이 잡아도 ‘투표율만 놓고’ 보면 지금의 20대의 절반 이상이 정치에 관심 없는 셈이 된다. 이처럼 ‘참담한’ 수준의 결과가 나오자 이 사회는 20대를 향해 ‘걱정’이 약 10%, ‘비난’이 약 90%섞여진 비판을 날려대기 시작한다. “쟤네 어쩌려고 저러니, 이렇게 관심이 없어서 큰일이야” 등등등

정말 20대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을까? 물론 실제로 몇몇 사람들은 “투표날은 곧 쉬는날”이란 대명제하에, 빨간날 아닌 빨간날을 기념하야 쌔끈하게 휴일을 즐기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그게 꼭 20대만의 문제일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30대도, 40대도 그런 사람들은 있을 것 아닌가? 상대적으로 그 비율이 높다고? 이 역시 확인할 길 없다. 단순히 투표율만 놓고 투표날 놀러가는 몇몇 20대들을 인터뷰 한 다음, “20대는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 옳지 않다.

그렇다고 내 주변 사례를 빌어 “20대는 정치에 관심이 많다”고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다만 낮은 투표율이라는 숨길 수 없는 사실, 그리고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든, 없는 사람이든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몇몇 이야기들을 듣다보면, “20대는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얘기 대신 이런 얘기는 할 수 있을 것이다. “20대에게 정치는 없다”고.(그리고 이것 또한 20대만의 문제는 아니니라)

사실 20대는 전반적으로 MB를 무척이나 싫어한다. 20대 누군가가 20대 집단이 모여있는 곳을 가서 “사실 난 MB찍었어”라고 말했다간 즉각 “정신나간 녀석”이란 낙인이 찍히기 마련이다. 객관적 지표를 봐도. 각종 여론조사 대통령지지도를 살펴보면 보통 20대 층에서 가장 대통령 지지율이 낮은 것으로 나온다. 즉, 현 정권에 대해 가장 많이 반대하는 세대가 20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비판이 그들의 정치적 성향을 규정하는 것은 아니며, 그들을 투표장으로 인도하는 것도 아니다. 젊은 층들이 비교적 많이 모여 있는 인터넷 상에서는 친노적 성향이 강하고, 그 외 많은 20대들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성향이 강하게 남아있지만, 실질적인 표를 계산하면 그 비중이 크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강한 것은 ‘MB효과’라고 보는 것이 맞다. 참여정부 말기를 돌이켜보면, 20대가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거나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이룩한 민주주의의 성과(?)가 다시 노무현을 호출한 셈인 것. 즉, ‘반대를 반대’하기 위해 노무현을 선택했을 뿐, 그들의 정치적 성향은 오로지 노무현에만 향해있지는 않는다.

물론 노무현이 가진 인간적인 모습도 젊은 층위에겐 호감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인간 노무현’을 좋아했을지 모르겠지만 참여정부 말기 ‘대통령 노무현’에는 큰 호감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노무현 지지세력 만큼 ‘노무현 세력’에 불신을 가진 20대 또한 많다. 그리고 이는 박근혜도 비슷하다. 도토리 중 왕도토리인 박근혜에게 불신을 가진 20대가 많으나 호감을 가진 20대도 있다. “신뢰감”, “도덕성(적어도 그 놈 보다야..)” 같은 것들이 주된 이유다. 그러나 이 역시 ‘인간 박근혜’에 머물러 있다. ‘정치인 박근혜’에 대해서는 불신이 있다.


본론으로 넘어가자. 정치에 큰 영향을 받고 있고, 혹은 정부를 비판하며 노짱이든 박근혜든 정치를 관심있게 지켜보는 20대들에게까지 정치가 사라진 이유는 무엇인가? 현 정부를 반대하는 20대들은 왜 그 어떤 정치세력도 선택하지 못하고 있는가? 이것이 우리가 관심가져야 할 지점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들에겐 김대중 정부 때나, 노무현 정부 때나, 이명박 정부 때나 등록금이 기하급수적으로 오르는 것은 똑같다. 그 어느정부 때나, 아니 오히려 IMF이후 집권한 이 세 정권 하에서 살아가면서 오히려 ‘제대로 된’ 직장잡기, ‘예쁘게’ 결혼하기, ‘알콩달콩’ 살아가기가 더 어려워졌다. 그들 앞에 놓여있는 것은 불안한 현실이다. 저임금에 목숨 간당간당한 직장, 결혼하면서 얻어야 할 수천만원의 빚, 낳지도 않은 아이들 걱정, 온통 막막하고 답답한 현실 뿐이다.

그러니 심정적으로 ‘누군가’를 지지하면서도, 현실에선 투표를 하기 어려워진다. A를 뽑아도, B를 뽑아도, C를 뽑아도, 심지어 D를 뽑아도 이 현실이 바뀔 것이란 판단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투표는 해야죠, 근데 누굴 뽑아야 해요?”라는 ‘헐~’소리 나는 질문도, 나는 이 때문에 이해할 수 있다. ‘반값 등록금’을 보고 뽑아도 1년 만에 “난 그런 소리 한 적 없는데?”라 말하는 대략난감 대통령을 가진 나라에서 살아가다 보니 그런 것 아닌가?

노짱이거나 근혜공주거나 어차피 정치인들이 우리의 현실을 바꿔주지 못할 것이란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무관심해지고, 무관심은 다시 정치인들의 교만으로 이어진다. 어디서 부터 잘못된, 어디서 부터 문제인지 알 수 없는 묘한 방정식이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여전히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긋지긋한 흘러간 옛 노래가 틀어지고 있다는 것이고, 이는 다시 한 번 유권자들의 무관심을 부를 것이다.

그럼 아직 집권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던, 진보정치는 어떤가? 그들은 차선조차 아니다. 불신이고 나발이고, 20대들은 아예 그들을 모른다. “노회찬, 심상정, 강기갑, 열심히 하는 건 알지, 그런데, 뭐 찍으면 당선되겠나”는 의문, 아예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보다는 ‘운동’으로 취급받고 있는 현실,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20대들에게 진보정치는 ‘꽝, 다음기회에’에 다름 아니다.

왜 그럴까? 20대들 사이에서도 그들에게 “뭔가 아마추어적인 냄새, 다듬어지지 않은, 폭력적인, 비현실적인”과 같은 단어들이 나오고 있다. ‘조직’이 선거에 중요하긴 하지만, 민주노총에 안주해 대중으로 확장하지 못하고 있는 진보정치에 대한 일종의 냉소도 보낸다. “어차피 너네는 너네끼리 노니까”와 같은.

비정규직과 실업에 고통받고 있는 20대들을 위한 사업이라고 벌이는 것이. 고작 ‘강연회’정도인 상황에서 20대 마음잡기는 쉽지 않다. 한 명 딱 찍어서 쫒아다니며 달달달달 볶으면서 진보정치의 아름다움을 설파해도 그들의 마음의 벽을 허물기가 쉽지 않은데, 딱히 말하지 않아도 이쪽 진영에 관심을 보이는 20대들만 모아놓고 강연회를 벌이고, 이젠 모이지도 않는 학생조직 움직여서 선거운동원으로 동원하는 형태의 20대 사업이, 20대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눈에 선 하다.

진보 쪽에 아예 관심도 없는 한 친구는 “진보정치인들이 노량진 와서 같이 수업 들어보고, 같이 밥 먹어보라 그래, 같이 원룸 구하러 다녀보고, 20대 처럼 데이트 해보라 그래, 그 쪽 사람들이랑 놀지 말고, 우리랑도 놀아줄 수 있는 얘길 해보라 그래”라며 푸념을 늘어놓는다. 그래, 그런거다.

20대가 정치에 관심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을 품을 정치가 없다. 20대들과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인들과 전문가들이 쑥덕쑥덕 얘기하다 떡 하니 뭘 내놓아 봐야, 무슨 말인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다. 세상은 변하고 20대들도 많이 변했다. 그런데 정치는 변하지 않았다. 기성세대는 그런 정치에 대해 20대들이 관심을 가지라고 닥달한다.

표는 거짓말 하지 않는다. 나 역시 MB가 너무 싫지만, 참여정부의 공과로 인한 평가가 표로 표출되어 그를 당선시켰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래”라고 하고 싶지만, 언제까지나 그건 자위일 뿐이다. 아무리 자위하고 다른 사람을 닥달해 봐야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특히 진보세력에게 이번 지방선거는 그동안의 온갖 판단미스와 2004년 이후 더 이상 국민들에게 다가가지 못한 전략상의 오류를 심판받아야 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어줍잖은 꼼수로 야당에 묻어가면서 그것을 ‘국민적 염원’이라고 말하지 말고, 확실하게 죽은 다음, 그들의 장점인 밑에서 부터 살아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그 방식은 예전보다 더 세련되고 참신해야 한다. 무엇보다 20대를 품고자 한다면, 앞선 편에서 말한 듯이 조직문화 개선이 진보정치에 가장 시급한 과제다.

Posted by dalgona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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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effian 2010/03/23 11: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용 자체에는 불만이나 이의거리가 없지만..
    끝에서 두번째 문단(개중 첫째 문장)을 보고.. '추천'하지 않기로 맘 먹었답니다.

  2. 동의합니다. 2010/03/23 16: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만 보면 대부분 20대들이 이명박 대통령 비판을 넘어 인간적인 모욕까지 주는 댓글을 쓰지만, 정작 현실 여론조사르 보면 다르죠.
    이번 지방선거에서 20대의 투표율과 결과에 따라서 인터넷에서만 갇혀있는 20대 유권자들에게 충격이 될지 지켜 봐야 겠네요.

  3. 합체 2010/03/25 0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보진영이라면서 갈라선 민노당-진보신당...아마도 다들 그 이유는 관심없을 것이다. 갈라섰다는 사실이 웃긴거다...그러면서 20대에 뭘 기대하나?

    뭐...누구 잘못인가 뭐 이런거 따지는 것은 우습고...아무튼 가출한 노회찬은 바보다.

    1923년에 임시정부가 민족의 염원에 부흥하지 못하고 띵까띵까 놀고 있을 때 정국 타계를 위해 회의를 열었었는데, 다들 나가고 결국 임시정부를 지킨 분은 김구 선생님이었다. 끝까지 지키면서 윤봉길 의거를 해내고, 광복군을 만들고...비록 이후에 일제의 항복, 이승만의 역적질로 임정 정통성을 제대로 잇지는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도 끝까지 임정을 지키면서 민족의 해방과 하나됨을 위해 힘쓰신 김구 선생님을 최고의 투사로 기억하고 있다.

    각자 나름대로의 방법과 노선으로 저마다의 일을 해내는 것이 물론 중요하겠지만, 무언가 쟁취하기 위한 길에 단결은 제 1의 기치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득권 내지 강대국 같은 존재들은 분열을 조장하는 데 힘써왔었다. 그들도 아는 것을 진보진영이 모르면 되겠는가?

    그 이름이 민노당이 되건 뭐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제발
    다시 모여라

  4. Kill Dal 2010/03/26 20: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초심을 잃지 마세요...화요일과 목요일 연재....지키세요..
    기대 하겠어요...달 기자님..

  5. 한니발 2010/03/28 06: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터넷에서 정치인 욕하는 사람들 중 과연 투표한 사람은 얼마나 될런지...
    물론 저는 대선 때 군인이라 강제(?)참여를...

20대 생태보고서(Ⅱ)

1. 뭉쳐야 하는 이유, 뭉칠 수 없는 이유 - “20대, 불만을 쏟아낸다면”

어차피 “모여라”고 소리쳐봐야 모일 사람들은 많지 않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의 상징이 될 수는 있다. 지난 2002년 미선이, 효순이 장갑차 사건 때 처음 모여든 촛불이 그렇고, 2008년에는 “광우병 쇠고기가 먹기 싫다”며 들어올린 촛불이 그렇다. 권력자들이 ‘겁을 먹을’만 한 일임은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앞으로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 같다. 97년 노동법을 총파업으로 막아냈다고 세상이 바뀌지 않았다.(이 노동법은 2009년 ‘중재안’이란 이름으로 통과되었다) 오히려 그 이후 국가가 나도 모르게 내 통장을 보증으로 세운 빚잔치가 ‘뽀록’나며 더 힘든 세상의 수렁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미선이 효순이의 염원을 받아 당선된 노무현 전 대통령도 세상을 바꾸지 못했다. 집값은 무섭게 올랐고, 물가도 팍팍 올랐는데 어찌된 것이 월급만은 아무런 변화가 없다. 광우병 쇠고기를 반대해 들었던 촛불도 100만 명의 시민을 광장 앞에 불러 모았지만 아무런 변화를 이끌어 내지 못했다. 미국산 쇠고기는 편안하게 수입되고 있고,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 쇠고기를 먹고 마시고 있을 수도 있다.

어 리를(a little...) 거슬러 올라가 봐도, 우리나라 역사에서 많은 세력들이 정권을 잡고 스러져 갔으나 우리의 삶은 변한 게 없다. 이식된 자본주의는 더 많은 사람에게 기회를 열어주었을지 몰라도 더 많은 사람들의 노동력을 ‘합법’이란 이유로 착취해 갔다.(설령 그것이 우리가 아니더라도 아프리카 소년이, 동남아시아의 소녀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기계가 일하듯 하루 종일 온갖 스트레스를 받으며 탈모와 두통에 시달리고 있다. 일하던 중 새참을 먹는 것도, 막걸리 한 잔 하며 덩실덩실 노는 것도 사라졌다.

그나마 우리가 얻어낸 투표의 평등도 ‘돈이면 다 되는’ 요지경 세상은 앗아가고 있다. 일당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용직 노동자들은 투표권 없는 투표권을 가지고 있을 뿐이고, 일에 치이는 대한민국에서 투표일은 휴일 이상의 의미를 갖기가 어렵다.(정치가들에게 가장 행복한 것은 무관심이라, 그들은 이러한 현상을 개선할 의지도 없을 것이다. 일부러 짜증나게 하는거 아냐?!)

                  △저.. 이거 언제 해결하실래요?

왜 이 빌어먹을 고단한 삶은 끝나지 않고 오히려 점점 우리를 짓누르는 것인가? 아파트 값은 어디까지 오를 것이며, 이발 한 번 하는게 큰 맘까지 먹어야 하는 내 월급으로, 몇 백만원의 사교육비를 감당하며 아이를 ‘이 나라가 원하는 새세상 일꾼’으로 키울 수 있을까? 그나저나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도 이 세상은 변하지 않는 것인가? 도대체 몇 명이 모여 어떤 소리를 질러야 저들은 우리의 말을 들을 것인가?

그 얘기에 관계되었지만 조금은 다른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이러한 질문에서 나온 첫번째 이야기는 신자유주의적 사고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세상은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신자유주의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이 모여 소리를 지른다고 세상이 변할 것인가?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게 앞서 언급한 내 고민의 또 다른 축이자. “내 아주 전반적으로다가” 말하고 싶은 핵심이다.

앞서 나온 몇몇 가지 사례들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보자. 나는 2001년 대학에 입학해 “동작 봐라”와 “개념 없다” 등 군사용어가 난무하는 살벌한 술집에서 막걸리 두 통을 담은 냉면 사발, 그것도 두 그릇을 원 샷 해야 했다.(두 그릇인 이유는 또 다른 군대용어 ‘연대 책임’이다) 그들은 신자유주의자였는가? 아니다. 그들은 운동권이자 열렬한 반신자유주의자들이다. 반미주의자들이었으며, 우리 민족의 대동단결을 말하는 사람들이었다.

또 하나. 지난 2008년 말 촛불집회가 사그라지던, 그리고 정권이 복수의 칼날을 갈던 그 엄중한 시기, 민주노총 000위원장이 피신해 있던 한 여성 조합원의 집에서 있어서 안될 일이 일어났다. 민주노총 간부에 의한 조합원 성폭행 사건, 그 이후에 어떻게 되었나?

민주노총은 아직도 그 사건에 대해 ‘징계’ 등 어떠한 결정을 내린 바 없고 이 안건은 몇 차례 대의원 대회를 통해 “이거 우리 다음에 하자”는 결정이 떨어졌다. 피해자와 피해자 지지모임 중심으로 다행히 계속 문제가 제기되고 있지만(왜 이런 문제를 피해자 본인이 직접 나서야 하는가!) 언제 해결이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민주노총 총연맹이 신자유주의자들의 집합소인가? 아니다. 그들은 열렬한 반신자유주의자들이다.

자. 당신은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을 반대한다. 그런데 어떤 다른 사람도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을 반대한다. 그러면 당신은 그와 연대해야 할 것이다. 함께 소리를 지르고, 돈이 아닌 사람이 사는 세상을 만들자고 함께 외치고 주장해야 한다. 그런데, 그 사람이 파시스트라면?, 권위주의자라면? 그 사람이 성매매를 한다면, 그와 연대할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

그런데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을 반대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이른바 ‘진보적’인 사회에서도 지독할 정도로 이딴 것들이 만연하다. 나이가 어리다고 의견결정에서 배제되고 성희롱과 성추행은 만만치 않게 그 사회에서도 만연되어 있다. 신자유주의 전선 하나에는 비교적 강고하게 맞서고 있지만, 그 내부에서 발생하는 문제들, 만만치 않다.

집회에 한 번 나와 본 후 나 역시 폭력적이고 차별적인 조직문화에 적응하지 못했고, 이제 그나마 명맥도 끊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대전선을 쳐야 할 진영, 그리고 그 안의 어른들은 주구장창, 신자유주의에 물든 아이들을 개탄한다.

이미 돈이면 다 되는 세상에 익숙해져 버린 젊은 친구들을 조직하자고 동분서주 해 대지만 이따위 조직문화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옛 민주노동당 조합원들의 노조결성의 앞길을 막아선 것 또한 민주노동당이며 한 진보적 단체는 월급은 커녕 ‘활동은 순수해야 한다’는 이유로 그들의 재산권과 노동권을 아무렇지도 않게 착취하고 있다.

민주노총에 젊은 활동가들이 이제 얼마나 남았는가? 진보정당에 젊은 정치인은 몇 명이나 있는가? 어차피 이 사회가 젊은 리더들을 좀처럼 용납할 수 없는 분위기라고는 하지만, 진보진영 내부에서는 그 분위기에서 자유로운가? Never.

(그렇다고 우리는 김문수와 이재오가 간 그 길을 가야 할까? 그렇지는 않다. 그래도 비교적 저쪽보다는 이쪽의 분위기가 더 나으니까.)

만약, 누군가의 말 대로 20대가 연대를 형성하고 짱돌을 들어야 한다면, 그것은 신자유주의가 아닌 권위주의, 파시즘, 왜곡된 여성주의, 반여성주의에 맞서 들어야 할 것이다. 일종의 문화혁명일 것이다. 권위를 배격하고 자유와 다양성을 찾아야 하며, 나이살 좀 많다고 “000 나와!, 어디서 그냥”이라고 말하는 어른들을 부끄럽게 해야 한다.

20대, 불만을 쏟아내야 할 지점은 거기다.(물론 이 불만을 쏟아낼 때도 인간에 대한 애정과 기본적인 상호존중은 품고 있어야 한다. 그것 없이 불만만 쏟아내는 것도 ‘나쁜 짓(???)’이다.) 다만 신자유주의와 맞서 싸울 때는 강고한 전선을 형성해야 한다.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 수준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우리의 의사가 반영될 수 있는 조직문화를 만드는데 앞장서야 한다. 그리고 물론 이는 여기에 동의하는 3~40대, 50대, 60대 그리고 10대와도 함께 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얘기를 가다듬어야 하며, 어른들은 인간에 대한 존중을 잃지 말아야 한다.

대표와 일반사원이 사단장과 이등병 만나듯 ‘훈육’이 아닌, 맞담배 피며 활발하게 조직문화를 놓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의원이 보좌관에게 까지 정보를 숨기는 형태를 비판하고 ‘함께 얘기하자’고 말해야 한다. 정당의 대표는 당원과 자주 논의할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대통령은 다수, 소수정당 가릴 것 없이 여야 대표들을 열어놓고 만나야 한다.(응? 이건 아닌가?)

빠르게 돌아가는 사회, 경쟁을 위해서는 그러한 것이 효율성에 침해된다고 반박할 수 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효율성 보다 합리성, 경쟁력 보다 연대를 신경 써야 할 것이다. 그게 안된다면 그것은 신자유주의자가 아닌게 아니다(뭔 말이래...)

어른(?)들은 내가 지금 여기에 하고 있는 것처럼 쓰잘데기 없는 얘기도 듣고 자신의 의견을 말해야 한다.(징징대는 건 아니구요 뭐..) 그들의 논리전개가 미흡하고 비록 알아듣기 어려운 부분이 있더라도 함께 논의하고 종국에는 서로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조직문화의 혁신 없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권위주의 왕조를 교체해 봐야 또 다른 권위주의 왕조가 나왔던 것 처럼.

당신은 성매매 하는 비정규직, 권위적인 진보정치인과 믿고 함께 갈 수 있는가? 성희롱 전력이 있는 정치인을 중앙당에서 의욕적으로 영입하는 개혁정당에 투표할 수 있는가? 난 그럴 수 없다.

Posted by dalgona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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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algona82 2010/03/09 14: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와서 보니 비정규직이 다 그런것 같은 뉘앙스가 있는 제목이네요, 급허게 제목을 달다보니, 그런 거 아니란거. 아시죠? ^^

  2. HD 2010/03/09 23: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헐...ㅋㅋ제목 어쩔거임 ㅋㅋㅋ 안티 양산을 위해서 이런거 아니죠?ㅋㅋ

  3. outOfBrain31 2010/03/11 13: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연재물(?) 잘 읽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힘내세요~

  4. ..!.. 2010/03/12 09: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추천을 원하시면 "아으어우어어엉으어어응아어아오으응"을 외쳐주세요!

  5. 달달달 2010/03/15 08: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가 돌아왔다............I'm back....
    요즘 졸 바쁜가보오......여자만나느라....ㅡㅡ;
    나도 안 만나주고..ㅋ

  6. 새글좀 2010/03/21 00: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디 여행 가셨나요?바쁘신가?ㅋㅋ

  7. 옳거니 2010/03/22 09: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지요.
    말 한번 시원하게 잘 하시네요.

20대 생태보고서(Ⅱ)

1. 뭉쳐야 하는 이유, 뭉칠 수 없는 이유 - “20대의 착각, 40대의 착각”

앞선 얘기를 소중한 사례를 들려준 친구들에게 전하자, 친구들은 기가 막힌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묻는다. “그게 돼?”, “응?”, 이건 대답이 아닌 나 자신에 대한 반문이다. 그냥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서 말한 건데, 내가 할 것도 아니면서 생각해보니 너무 세게 질러버렸다. ‘뭘 해야 할지’는 머리 속에 둥둥 떠다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는 도통 생각이 나지 않는다. 젠장, 거기까지 생각한 적 없는데, 이거 어떻게 해야 하는건가?

‘어떻게’라는 막연한 물음에 앞서, ‘해야 할 것’을 생각했을 때 암담한 것들을 몇 가지 떠오른다. ‘연대’, ‘공동행동’, 말이야 좋다. 그런데 이것을 누가 할 것인가? “‘그 무언가’에 피해를 보는 대중들”이 해야 한다. 그런데 대중들이 플래시몹도 아니고 힘들고 위험한 이것을 할 것인가? 아마 하지 않는다는 쪽에 돈을 거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유모차에 태워진 아기부터 7~80대 까지, 촛불은 이들을 포괄할 수 있었다.

‘민중들의 고통을 깃발로 승화시킨 대한민국 집회들’은 사실 이미 조직된 노동자들(그나마도 노조 상층에 있는 전임자들)이거나 운동에 눈을 뜬 학생들이 중심이 된다. 2008년 촛불집회는 그렇지 않았지만, 흘러간 역사는 흘러간 역사일 뿐, 다시 그들이 광장에 모이리란 보장이 없다. 오히려 촛불집회로 인해 관철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슬프지만 ‘패배의 경험’이 다시 그들을 광장으로 불러내지 않을 것이다.

실제 평범한 20대들, 바쁜 30대들, 자식 걱정하는 40대들, 명예퇴직을 앞둔 50대들은 거리로 나오지 않는다. 그러한 상황에서 “달님께서 가라사대, 고통 받는 자. 이리로 모이라”고 해봐야, 그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아마도 그들은 군사독재시절 용어같은 ‘연대’란 것을 거부하고, 스스로 이 고통 속에서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것이다.

20대들은 토익책을 들고 자격증을 딴다. “남보다 나부터 잘 사는 사회”, ‘루저’가 되지 않는 편이 진정 이 싸움에서 승리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3~40대 옛 ‘전사’들은 그런 20대를 비난한다.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쟤들은 정말 스스로 무덤 파는지도 모르고 편안하게들 살어~”라며, 50대는 “그놈이나 그놈이나”라며. 그래 그와 같은 20대의 착각, 40대의 착각이 이 연대를 방해하는 핵심적인 것들이다.

그런 착각을 만든 장본인은 이명박이지만 이명박이 아니다. 착각은 ‘자본주의를 쿨하게 살아가는 방식’이란 측면에서 대한민국 자본주의 상징인 이명박이 만들었지만, 단지 이명박으로 인해 이러한 세태가 만들어 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명박은 아니다.

이런 복잡한 관계이기에, 우리는 이명박을 반대하면서도 이명박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보이는 반민주성에 반대하지만, 그가 반민주성을 가장 아름답게 구현하는 방식, 그리고 그 방식에 믿는 구석이 바로 자본주의라는 점에서, 자본주의에 순응하는 우리가 이명박을 지지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뭉칠 수 없는 이유다. 우리는 하나하나 갈라져버렸다. 노동자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려버렸다. 20대들은 원스펙과 식스펙으로 갈려버렸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비정규직의 비율은 점점 늘어만 가는데 이상하게도 우리는 정규직이 될 일만 도모한다. 여섯 가지 스펙으로도 취직을 이뤄내기가 어려워지는데, 우리는 이상하게 더 스펙을 취득할 일만 도모한다.

이는 지배층이 언제나 ‘예외적 현상’을 두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는 ‘개천에서 용나는’ 경우를 용납한다. 덕분에 언제나 “자기만 열심히, 성실히 노력”한다면 신분상승의 기회는 주어진다. 문제는 이 등용문의 폭이 상당히 좁고, 그나마도 점점 줄어든다는 것일테다.

개천에서 용이 등록금을 감당 못해 스러지거나, 미꾸라지들이 아픈 몸 하나 돈 없으면 치료받지 못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언제나 “예외적 현상”을 생각하고 행복해 한다. 모든 미꾸라지가 용꿈을 꾸는 처지, 때문에 미꾸라지가 주변의 미꾸라지를 비웃는 일들, 이것이 우리의 연대를 막는다.

“저항하자”고 외치는 사람이 ‘루저’가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여기에 순응해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루저’가 된다. 우리의 마음은 저항에 가 있는데 현실이 뒷받침하지 못하는 탓이다. 때문에 우리는 순응하면서도 저항한다. 진보적이면서도 아파트 땅 값에, 자식 교육에 보수적이 된다. 이러한 피지배층의 정체성 혼란, 이 땅을 지배하는 지배층이 지배하기 딱 지배적인 방식이다.

(이는 가장 기본적인 연대인 ‘선거연대’조차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을 반영한다. 이명박 반대의 기운이 높다지만 정부 국정지지율은 50%를 넘고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나머지 모든 정당을 합친 지지율보다 높다. 그런 상황에서 반MB한다고, ‘일 낼 수’있겠는가?)

그리고 연대를 가로 막는 더 큰 문제가 있다. 그 문제는 다음번에..

Posted by dalgona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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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J 2010/03/02 23: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감가는 글입니다.

    세대가 중요한게 아니라 착취 당하는 노동자끼리 연대해야하는데 덜착취 당하는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착취한다는데 현실이군요.

    전 20대는 아니지만 애정을 가지고 대화해보면 그들도 우리세대랑 많이 다르지는 않더군요.

    단지 제가 사회들어올때보다 힘들어 져서 안타깝더군요.

    물론 네가지 없는 20대도 있지만 다른 세대에도 그런 사람은 있지 않나요

  2. dent 2010/03/03 0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착취"하는 면이 없는 건 아닙니다. 요즘은 그 부분에 대한 비판이 많이 쏟아져 나오는데 정규직에 도덕적 비난만 퍼붓는 건 사태를 일면적으로 바라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랜드, 뉴코아, 쌍용을 보세요. 비정규직과 연대해 투쟁했던 정규직 (쌍용은 이 범주에 넣기 좀 거시기하지만) 이 얼마나 '작살'이 났습니까. 김경욱 위원장 등은 어떤 고초를 겪고 있습니까. (그 분 요즘 어찌 지내시는지 정상근 기자님이 한 번 취재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뜻있는 사람'은 세대를 초월해 언제나 소수일 수 밖에 없는데 지금은 그 소수들의 입지가 너무나 줄어버렸어요. '정규직'을 비판 하더라도 그들 가운데 뜻있는 사람들, 뜻은 있지만 나설 순 없는 사람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면서 그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넓혀주는데 힘을 보태야 하지 않을까요?

    • dalgona82 2010/03/09 14:40  댓글주소  수정/삭제

      김경욱 위원장님은 작은 사업 하나를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확인해보고 기사든 블로그든 쓸게요 ^^

  3. أحمد 2010/03/03 07: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사귀게 된 와 함께 이슬람 )))

    http://www.acquainted-with-islam.blogspot.com/

  4. 필자가여자네 2010/03/03 21: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서 다음편도~~~

  5. 회사원 2010/03/08 07: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전문성이 느껴진다....~~~

20대 생태보고서(Ⅱ)

1. 뭉쳐야 하는 이유, 뭉칠 수 없는 이유 - “꼰대와 또라이들”

기획의도를 설명했다. 그러자 “음… 그래서 결론이 뭔데?” 라는 답이 돌아왔다. “응?”, 이건 대답이 아닌 나 자신에 대한 반문이다. 원래는 내 주변에 있는 20대들, 그들의 고민 생각 그리고 그에 대한 나의 생각, 글로 엮어 쓰고 싶었다. 그것이 기획의도였고, 그것을 말했던 거다. 그런데 ‘결론’을 묻자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젠장, 거기까지 생각한거 아닌데, 그러고 보니 좀 그렇군. 그래서, 나는 어쩌자는 건가?

고백컨대 시작할 때의 기획의도와 지금의 기획의도는 다르다. 처음에는 결론이고 나발이고 그냥 그들의 이야기를 글로 한 번 써보고 싶었고, 아울러 내가 살면서 매일같이 살떨리게 매달려있는 절벽, 거기서 느끼는 절망감을 그려보고 싶었다. 그래서 여기저기 술자리에 염치불구 끼거나 아니면 이래저래 노가리 까면서 몇몇 가지 이야기들을 들어왔었다.

그러다 ‘결론’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자 걱정은 쓰나미가 되어 흘러들어왔고 뇌의 주름은 점점 깔끔하게 펴져만 갔다. 어쨌건 글을, 그것도 (내깟 능력으로)꽤나 긴 글을 써보자니, 결론은 필요한 것이었지만, 20대 이야기에 결론을 내리는 것은 (내깟 능력으로) 쉬운일은 분명 아니었다.

                        △저기.. 대장, 전선을 잘 못친거 같은데요?

우선은 그동안 ‘20대의 얘기’들, 그것들을 모아놓고 보니(혹은 나 역시 20대로 살아가다보니) 도출되었던 결론은 역시나 자연스레 “20대들이여! 짱돌을 들자”였다. 그건 표절이다. 저 희대의 명저(레디앙 출판사) ‘88만원 세대’와 결론이 똑같다. 어쩌면 남들 얘기하는데로 따라가는게 제일 쉬운 20대 지방대 출신 불투명한 미래에 똑똑하지도 못한 청년으로서는 그와 같은 결론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글을 쓰고, 생각이 엉키고 섥히고 뒤집고 메치고 하다 보니 어느 순간 결론이 바뀌었다. 라면을 먹고 싶어 물을 올리고 라면의 면발을 넣었는데,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 자장라면 스프를 넣은 셈이다. 글이 조악하고 민망한 건 그 때문이다.

글을 써오면서 바뀐 기획의도는 이렇다. “그게 왜 20대 만의 문제냐”는 것. 비정규직이 어째 20대 만의 문제일까? 집 한 채 사기 힘든 것이 무슨 20대만의 문제인가? 연애하기 어려운 세상이 어찌 20대만 한정이 될까. 내가 30대가 된다고 해서 정규직화 되는 것도, 집이 나오는 것도, 빚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때문에 나는 ‘88만원 세대론’을 부정하며, 비판한다. 그것이 결론의 한 축이다. 그런데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고민을 하다 보니, 갑자기 또 다른 생각들이 차선을 변경해 ‘급’ 끼어든다. 머릿속에서 일종의 사고가 난 셈으로, 이것이 결론의 또 한 축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다음에 하도록 하고, 우선 20대 당사자인 내가 ‘88세대론’을 부정하는 이유부터 말하고자 한다.

나는 20대의 문제를 20대의 수준에서, 20대 차원으로 풀어내는 것을 반대한다. 20대 문제는 10대의 문제이며, 30대의 문제이며, 40대의 문제다. 즉 ‘대한민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 한계다. MB가 저 자리에 있는 한 ‘후덜덜 대한민국’은 바뀌지 않는다. 더 나아가 신자유주의가 지금처럼 우리 생활을 지배한다면 ‘거덜덜 대한민국’도 바뀌지 않는다.(더 무서운 건 신자유주의가 아직 확장의 여지가 남아있다는 것일 테다.)

그렇다면? 나는 아웃소싱으로, 아르바이트로, 아니면 어떤 형태의 비정규직으로 사회에 진출하거나 진출한 후에 이에 벗어나지 못하면서, ‘88만원’의 월급을 감당해야 하는 20대가. 이미 오래전부터 대오를 형성하고 있는 조직노동자들과 연대를 하거나, 혹은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힘을 합쳐 또 다른 유니온을 형성하길 바라고 있다.(그리고 결론의 또 한 축은 이게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자면 요새 1~20대들의 ‘2AM’만큼 정치-시민사회권에서 한참 유행하고 있는(조만간 티셔츠로도 나올 것 같은데) ‘반MB연대’스러운 것을 구성하는 것으로. 힘들게 모아낸 그 칼 끝을 아깝게시리 저 조악한 정부에게만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 매년 기록적인 매출신장을 이루면서도 노동자들을 해고 시키고 그 자리에 비정규직을 쓰는 ‘그들’, 하루 12~16시간 일만하는 로보트로 만들어 놓고서는. 코딱지만한 월급으로 내 집 하나 사지 못하게 만드는 ‘그들’을 향해 저항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 무언가’를 통해 살아가고 있는 만큼, ‘그 무언가’를 바꾸는 것, 최소한 치명적인 ‘상처’ 한 방 내자는 것이다. ‘그 무언가’는 어른들이 말하는 신자유주의라는 말이 붙을 수도 있고, 치사한 빵꾸똥꾸란 말이 붙을 수도 있다.

그렇지 않고 40대 정규직이 20대 비정규직을 착취한다며 20대가 40대들에게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들면 이상한 전선이 만들어 진다. 프랑스군이 기껏 직선주로에 마지노선을 쳐놨더니 우회전으로 들어온 나치군에 점령당했듯, 이상한 전선은 ‘그 무언가’를 기반으로 한 ‘그들연대’에게 금새 함락당할 가능성이 높다.

20대는 4~50대를 ‘꼰대 아저씨’라 부를테고, 4~50대 아저씨들은 20대 아해들에게 ‘또라이들’이라고 할 것이다. 그 사이 20대 자본가와 40대 자본가는 연대하고(자본끼리의 연대는 기름없이 부친 계란프라이 마냥 아주 척 달라붙는다) 그렇게 만들어진 제3군이 양 군을 무력화 시킨다. 20대는 비정규직으로, 40대는 정리해고로.

어차피 20대가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들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3~40대와 함께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지난 2008년 촛불이 그랬다. 10대 친구들이 선봉에 나서긴 했지만 결국 바리케이트는 모두가 한 자리에 나왔을 때 쳐졌고, 짱돌도 들렸다. 함께 저항해야 할 ‘요즘 안경쓰고 다니시는 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 무언가’(신자유주의라는 말이 너무 입에 안 붙어서, 죄송..)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그 무언가’ 때문에 피해를 보는 대중들의 연대가 필요하다. 여기서 20대 끼리 따로 전선을 만든다면 그 작전은 실패의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20대 간의 연대’고 ‘피해자들 연대’고 나발이고, 이 사회가 어떤 연대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데 있다. 20대들은 자신들이 피해자가 아니라고 착각을 하고 있고, 40대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피해자가 되지 않을거라는 착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20대들의 대다수는 피해자이며, 40대들 대다수 역시 피해자이고, 그들의 아이들이 피해자가 될 확률은 높다.

“무엇을 위해 연대하냐”고, 이것이 중요하다. 어떤 사람들은 “자본가 놈들 싹 갈아엎자”는 사람도 있을테고 “미제 앞잡이들 쓸어버리자”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난 겁이 많아서 그렇지는 않고, ‘최소한의 삶’은 보장받아야 하는 것이 우리가 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고민이다.

그냥 몸이 아픈 것은 돈이 없어도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공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최소한의 살 집은 마련해줘야 한다. 아니면 적어도 3~4년은 돈 모으면 집 하나는 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돈을 벌고자 하는 ‘저들’에게는 단 하나도 양보할 수 없는 것들일테다.

자. 이제 앞으로 이어지는 글들이 본격적인 결론이다.

ps. 2부 부터는 되는데로 올립니다. 빨리 끝내야지요 -_-

Posted by dalgona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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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 2010/07/28 11: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블로그의 글들을 하나 하나 다 읽었는데요
    가장 공감이 되는 글 입니다.

20대 생태보고서

6. 20대, 사랑을 뺏기다. - “된장녀의 비극”

앞서 20대 남성, 특히 비정규직 혹은 저임금 정규직인 그들에게 가장 비극적인 사실은, 다름 아닌 “20대 비정규직 혹은 저임금 정규직 여성들에 의한 외면”이란 생각을 잠깐 끄적거린 바 있다. 그럼 이런 얘기가 나올 법도 한데, 과연 20대 남성들은 어떤가? 그들은 20대 여성들과 열린 마음으로 통 크게 연대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대한민국 사회에서 남성들만큼 여성들에게도 ‘연애질’이 위험해졌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사실이다. 여성이라고 대학졸업 후 정규직이 되는 것도 아니고, 여성이라고 아웃소싱 거치지 않고 취업하는 길이 열려있는 것도 아니다. 여성이라고 남성들이 생각하는(심지어 ‘비웃음 날리는) 것처럼 자신들의 현실과 앞으로의 목표가 난관에 부딪혔다 해서 남성에게 무작정 의지할 수 있는 것만도 아니다.

“안 되면 시집이나 가야지”라는 말은 일종의 수사일 뿐, 곧이 곧대로 받아들일 만 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이 사회 구성원 중에서 정말로 그러한 생각을 품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그 사회는 중증암에 걸린 사회일 것이다.(이럴 경우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수술에 들어가야지) 대체 무엇이 그들의 꿈과 기회를 가로막고 있는가?

다시 20대 남성들의 연대의지로 돌아가자. 그들은 20대 여성에게 얼마나 열려있는가? 그들이 20대 여성들을 지칭하는 말 중에 ‘된장녀’라는 말이 있다. 인터넷으로부터 비롯된 용어이고 이 용어는 일부 여성들을 지칭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그들에 대한 비판이 시작되었고 그들을 조롱하는 시리즈가 나왔다. 그리고 이 단어는 “사회 현실을 반영한다”는 말과 별개로 점차 여성을 피동적으로 만들었다. 결국 조롱을 위해 만들어진 단어가 20대 여성을 옭아매고 있는 셈이다.

저 같은 단어는 일부 20대 여성을 지칭하는 말이지만, 사실 현대 생활에서 대부분의 여성이 하고 있는 생활이기도 하다. 된장녀란 말이 ‘모든 여성’이 대상이 아니라 “스타벅스를 가고, 스파게티를 먹고, 명품백을 들고 다니고 신상구두를 보면 눈이 돌아가는 여성”들을 의미하는 말이라고 하는데, 사실 이러한 삶은 아주 일상적인 자본주의적인 삶의 방식일 뿐, 그들에게 특별한 명사를 부여할 만큼 특별한 현상은 아니다.

‘명품’을 만들어 소비자들의 욕구를 살살 간질이는 것도, 한 켠에서 비정규직을 양산하며 소득양극화를 이끌어 내는 것도 모두 ‘자본주의적인 삶’일 뿐이다. 아닌가? 그럼 지금의 남성들의 소비성향도 비슷하게 변해가고 있는 것을 보라, 자본은 남녀를 구분해 “여성에게만 이런 것을 팔아야겠어!”라는 결심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되는 것”을 찾아간다. 최근 남성들을 대상으로 한 패션잡지, 명품방송이 늘어나는 것도 이런 관점에서 당연한 귀결이다. ‘돈이 되기’ 때문이다.

(그 단어의 또 다른 의미가 선배들에게 졸랑졸랑 달려가 “오빵~ 밥사주세용~”이라고 말하며 매달리는, 즉 ‘남자의 재력에 기대는’ 어떤 여성들을 지칭한다고 하지만, 그 현실은 또 누가 만들었는가? 솔직히 까고 말하자. ‘오빠들’ 자신 아닌가?)

그런데 남성들은 이들에게 ‘된장녀’란 말을 붙이며 ‘삶의 방식’자체에 문제를 삼고 ‘20대 여성’의 삶과 문화에 대해 ‘된장녀’라 낙인찍고 조롱한다. “스타벅스는 아프리카 아이들의 노동착취로 만들어진 커피지”라는 점잖은 충고도 아닌 “너 돈도 없는게, 왜 거기서 자판기 커피보다 약 20%정도 달지 않으면서도 200%가량 비싼 커피를 먹고 있는게야”란 평가인 셈이다.

지난해 ‘루저의 난’이란 사건이 있었다. 한 대학생이 방송가에 나와 “뭐 키는 184정도? 거 안되면 루저(looser) 아니겠어요”라며 대한민국 남성의 약 80%를 패배자로 만든 일이다. 남성들은 발끈해 그의 신원을 확보했으며 그가 다니는 학교 교문에 까지 “이 밑으로 다 루저”라는 낙서를 하기도 했다.

나 역시 그 말이 참 어처구니없긴 했으나, 사실 “네, 저도 님 별로예염”정도지, ‘열폭’할만한 가치를 찾지는 못했었다. 그런데 만약 그녀가 “적어도 연봉 3000만원 이상은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 이하는 루저 아니겠나요”라고 했다면 당시 같은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났을지 궁금하다.

나는 “이런 젠장 빌어먹을 우라질레이션 지랄리스틱한 일이 있나!”며 분노했겠지만, 아마 그 정도 ‘열폭’이 일어나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자본주의적 삶의 방식’에서 우리가 비판할 수 있는 부분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삶의 방식’이니까.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불편한 그 무엇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적’을 바꾸지 못하면 ‘삶의 방식’ 또한 바뀌지 않는다. 거 바뀐다면 거짓말이지.

남성이나 여성이나 상위 몇 %로 올라갈수록 더 대접받는 사회에서 그 아래를 떠받들고 있는 것은 썩 내키지 않는 일이자 고단한 일이다. 특히나 여성은 남성화된 사회에서 적응해내야 하는 의무를 부여받고 ‘버텨냄’과 ‘악다믐’이 미덕이 되는 사회에서 생리휴가조차 제대로 얻어내지 못하고 있다.

참고로 내 주변에서도 보건(생리)휴가의 개념을 모르는 친구들이 태반이다. 그들에게 “그 회사는 보건휴가가 없냐”고 물으면 “그게 뭔데?”란 대답이 돌아왔고, 그걸 설명하면 “오, 그런게 있었나”라면서도 “그런데 눈치 보여서 그걸 어떻게 써”라는 대답이 돌아오곤 했다. “그거 하는 날은 힘들다며”라고 물으니 “참고 일해야지, 별 수 있나”란 대답이 돌아온다.(예비 엄마들을 학대하는 이런 애미애비없는 세상. ㅡㅡ;;)

때문에 20대 비정규직 남성들이 20대 여성들과 연대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삶에 된장을 바르기전에 “그들에게 보건휴가를 달라”고 주장해야 한다. 그들을 비판하고 조롱하기에 앞서 그녀들을, 혹은 20대 남성들을 옭아매는, 우리가 우리를 상대로 적개심을 느끼게 하는 그 무언가를 찾아 그놈부터 흠씬 두들겨 패야 한다.

누구나 3~4년 열심히 벌어 집 한 채 살 수 있는 사회라면 “장가 올 때 집 하나 해와”라는 말이 이렇게 비참하게 들리진 않을 것이다. 커피 한 잔에, 휴대폰 요금에, 바느질 꼼꼼히 하고 ‘명품’이란 딱지 붙은 그 무엇에 너무 지나친 ‘돈벌이 욕심’이 개입되지 않는다면, 혹은 시장 아지매들이 예쁘고 잘 만든 물건도 ‘명품’이 되는 사회라면 딱히 우리가 우리끼리 적개심을 느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그게 잘 안된다. ‘돈벌이’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우리보다 더 치사하고 교활하기 때문이다.

ps. 마지막으로 결혼을 앞둔 20대 여성들이 주고 받았던 대화다.

“그래서? 뭐가 더 부족하다고?”
“몰라, 오빠네 집에서는 이거면 되겠냐는거야, 아니 그 집도 잘 사는것도 아니고 우리집도 잘 사는거 아니란 거 알면, 좀 적당히 해야지, 이거 해와라, 저거 해와라, 거의 대놓고 그러잖아 우리집에서 그걸 어떻게 다 해?”
“오빠는 뭐라고 해?”
“별말 안하지, 솔직히 오빠 하나 믿고 그 집에 가는 건데, 돈도 그래, 나는 왠만하면 내가 모은돈으로만 결혼 하려고 했는데, 오빠는 어떻게 그게 되겠냐는거야, 집에서도 받고, 내가 모은 건 또 모은데로 쓰고”
“어우, 너무하다 진짜, 장난 아니다”

중간에 “저기..”라고 껴들다 “좀 조용히 하라”고 면박받긴 했지만, 대한민국에서 결혼하는 것이 두 사람의 감정이 아닌 이것저것, 앞집뒷집, 상하좌우, 동서남북 다 껴드는 현실은 20대(물론 결혼을 하는 모든 연령대가 포함된 이야기겠지만)‘여성’에게도 만만치 않은 과정이다.

Posted by dalgona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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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달달달 2010/02/23 15: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글 분량을 더 늘려라~~더 많이 쓰란말얏!!!

  2. BD 2010/02/23 17: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생수도 명품이 나오는 더러운 세상....

  3. 좋은생각 2010/02/23 17: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명품이란 비싼것이 아니라 값싸고 품질좋은 것들 인것을....(비싼것=고급) 이라는 인식들을 버려야 발전되는 사회가 되겠져....

  4. 지나가던 남자 2010/02/23 18: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된장녀문제의 본질은 여성의 소비성향이 단지 여성의 삶을 넘어서 남성에게도 직접적인 부담으로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데이트비용, 기념일의 선물 등등 여성의 소비욕구를 잘 충족시켜주는 남자를 능력있는 남자로 정의하는 현대 사회의 문제죠. 결혼을 위해 집 장만으로 등골이 빠지는 대부분의 남자들에게 집 말고도 차, 명품백 등 남성의 경제적 부담감은 더욱더 늘어만 가니 그 시선이 곱지 않은 것이 당연한 것아니겠습니까?? 단적인 예로 27살에 사회에 나온 남자가 결혼하기 위해서는 월 평균 400만원을 버는, 절대 떨어지는 능력을 가진 남자가 아니라도, 월 300만원씨 저축해서 3년동안 1억을 모아 겨우 장가갈 수 있습니다. 허락된 용돈이 100만원 이하란 이야깁니다. 남성들이 된장녀(굳이 된장급이 아니더라도 훨씬 편하게 소비하고 있는 일반적 여성들도 상관없음)에게 느끼는 박탈감은 당연한 것이죠. (왜 20대 해외여행객의 대부분은 여성일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남성들이 가기 싫어서 가지 않는게 아니죠)

    그리고 루저녀의 발언이 문제가 된 것은 "패배자"라는 표현입니다. 그전에 어떤 여성이라도 tv에서 키큰 남자가 좋다고 해서 문제된 적은 없습니다. 단지 자신의 기호일 뿐이니까요. 같은 의미로 남자가 이쁜 여자를 좋아한다고 하여 문제가 된 적도 없죠. 하지만 사회적 패배자란 표현은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단순히 사회생활에 불리한 핸디캡이란 표현만 썼더라도 큰 문제가 되진 않았을 겁니다. 반대로 한 남자가 못생긴 여자는 왜 사는지 모르겠다고 표현했다면 여성들이 가만히 있었을까요??

    • dalgona82 2010/02/24 13:18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걸 모르는 건 아니죠 ^^ 몇몇 사람들 중에는 그 정도가 매우 심각한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다만 '여성의 소비욕구를 잘 충족시켜주는 남자를 능력있는 남자로 정의하는'사회보다 여성에 대해 더 큰 적개심을 가진 사람들을 생각해 이 글을 쓴 것입니다. 저 역시 27살에 사회에 나와서 월 평균 100만원 조금 넘게 버는데, 그걸 모르겠어요 ^^ 댓글 감사합니다. 루저 관련해서는 밑에 지적한 분이 계셔서, 그쪽에 달아놓을게요 ^^

  5. 흠;; 2010/02/23 19: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기 주인장 여자지?? 글 논조를 보니 딱 인데;;

  6. 2010/02/24 01: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곰곰히 읽었는데.. 말하고자 하는 바가 도대체 뭔지....

    • dalgona82 2010/02/24 13: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남성과 여성이 연대하자는 얘기죠,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세상을 해체하기 위해, 제 글을 쭉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7. 된장여성부 2010/02/24 07: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난해 ‘루저의 난’이란 사건이 있었다. 한 대학생이 방송가에 나와 “뭐 키는 184정도? 거 안되면 루저(looser) 아니겠어요”라며 대한민국 남성의 약 80%를 패배자로 만든 일이다. 남성들은 발끈해 그의 신원을 확보했으며 그가 다니는 학교 교문에 까지 “이 밑으로 다 루저”라는 낙서를 하기도 했다.나 역시 그 말이 참 어처구니없긴 했으나, 사실 “네, 저도 님 별로예염”정도지, ‘열폭’할만한 가치를 찾지는 못했었다. 그런데 만약 그녀가 “적어도 연봉 3000만원 이상은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 이하는 루저 아니겠나요”라고 했다면 당시 같은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났을지 궁금하다]

    본문에 이 글을 읽고 적습니다. "키 180이하는 루저(패배자)라고 생각한다"고 그 여자분은 분명히 말했고 사람들이 이 글에 분노하는 이유는 자신의 의지와 노력과는 상관없이 타고난 키에대해 인신공격의 발언을 한거와 마찬가지 이기 때문입니다(작은 키로 인해 패배자가 되버린 겁니다). 키 작은 사람보고 난장이라고 놀리는거와 같은거지요.

    연봉 3000만원 같은 노력과 의지에 의해 취하거나 만들수 있는 결과와는 다르다는 말입니다.

    똥 오줌 못 가리면서 아는척 잘난척 글 쓰지 마시고 기본부터 다시 공부하세요 .

    • dalgona82 2010/02/24 1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 감사합니다. 많이 분노하신거 같은데, 사실 그 사람이 '180이하는 루저'라고 했다고 그들이 '루저'가 된 것은 아니죠 ^^ 그냥 "지랄하고 자빠졌네"하고 넘어가면 될 일을 마치 정말 자신들이 패배자가 된 것처럼, 정도를 넘어선 과도한 복수(?)를 감행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누가 '루저'논란을 확대시켰냐는 거죠.

      그런데 왜 연봉 3000과 비교하냐구요? 저임금 노동자들은 실제로 이 사회에서 루저잖아요

      실제로 키가 노력과 의지에 의해 만들수 없는 것이라면, 그 자체가 잘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되어야죠(그건 댓글달아주신 분과 저나 똑같은 생각일 겁니다) 물론 '루저'라는 표현이 기가막히기는 하나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키 작은 사람이 차별을 받고 있나? 그런 경향이 없지는 않겠지만 실생활에서 얼만큼 느껴지는지 정말 180이하가 차별을 받고 있는지, 그건 아니잖아요. 소득별 차별만큼은 아니겠지요.

      소득별 차별, 하나만 예를 들어봅시다. 아파보세요.

  8. pk 2010/02/24 07: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은 왠만하면 잘 안 쓰는데 보건휴가 얘기를 쓰자면...

    보건휴가가 의무화 되어 있는 나라가 세계에 몇이나 된다고 그 나라 여성들은 안 아픈가.?

    아프면 진단서 받아서 제출하고 쉬면 되지 않나? 심하게 아픈 사람의 비율이 얼마나 된다고

    사실 그거 다 여자들이 (통들어서) 만들어 놓고 욕먹는거 아닌가 그때문에 회사는 기피 하게 되고 스스로 여자들이 그걸 폐기하고 정말 아픈 여성들이 갈수 있게 하는게 어떠실지요?

    • dalgona82 2010/02/24 1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왠만하면 글 안쓰시는데 댓글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그런데 '얼만큼 아프다고..'는 당사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얘기겠죠 ^^

  9. why 2010/02/24 08: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결론은 잘못된 세상속에 남녀 싸울 필요없이 잘못된 세상을 고치자? 모 이런 것인가요?

    어떻게 고칠껀데요?

  10. DarkNess 2010/02/24 09: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필자가 여자네. 된장녀는 스타벅스 커피 마신다고 된장녀가 아니다.
    글에도 언급을 했지만 남자의 경제력에 기대기만 하는 여자가 된장녀라는거다.

    근데 그 의존성이 단순히 '선배 밥사주세요' 수준이 아니라니까
    순진한건지 그냥 자기변명인지 원...

    그리고 그런걸 당연하게 생각하는게 오빠들이라고?
    시대가 바뀌어서 이제 그렇게 생각 안한다.
    여자가 스스로 문제의식을 가지고 바꿀 생각은 안하고
    남탓만 하는게 한심하기 짝이 없다.

    이래서 독일 페미니스트들은 군대 보내달라고 시위할때
    우리나라는 군가산점 없애라고 난리치는거지.

    일단 인터넷에 다 보라고 글을 썼으니 이런 반박은 예상했을듯.

    • dalgona82 2010/02/24 13:29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런 반박은 예상했지만, '필자가 여자네'라는 건 예상 못했네요 ㅋㅋㅋㅋㅋ 위에 댓글들과 관련있어 따로 적지는 않겠습니다 ㅋㅋㅋㅋ

  11. Loquacity 2010/02/24 09: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훌륭하시네요. 아주 훌륭하십니다.

    박정희 전두환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그들이 독재를 획책하게 만든 국민들이 잘못이지요.

    • dalgona82 2010/02/24 13:30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차피 이 사회에서 살기 고단한 건 남성이나 여성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독재자랑 비교를 하십니까?

  12. jeffian 2010/02/24 17: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후훗..

    소위 '된장녀들의 교과서'라고 말하여지는 SATC에서 사만다가 남친에게 이별을 고하는 명대사가 있지요.

    '미안.. 난 나를 더 사랑해.'

    스스로를 사랑하면 '된장녀'가 되고..
    스스로를 사랑하면 '가꾸지 못하는 추녀'가 되는..

    뭐.. 좀 이상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하는 생각은..
    '된장녀'라는 말의 범위가 너무 넓어서..
    적당한 수준의 '스타일리쉬한 삶을 추구하는 여성(혹은 남성)'까지도 같은 호칭 안에 묶이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13. 회사원 2010/02/24 19: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글은 욕을 좀 먹었군요...ㅋ 글만 보고는 이해못하는 사람들도 당연히 있겠지요..전 그래도 댁과 자주 이런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으니 이해하지만..이번글은
    약간의 오해의 소지가 있었던건 사실...하고싶은 말이 엉키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달기자님 어쨌든 노력하는 모습 보기 좋습니다. 수고하세영.
    - 근무중 이상무-

  14. sudajang2 2010/02/25 09: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악 그냥 혼자살래 악

  15. 필자가여자네 2010/02/27 21: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자한테 기대고 바라면서 주체성을 잃는 것 보다는 자기 능력에 맞게 자신을 당당하게 가꾸는 된장녀가 차라리 나을지도 모릅니다.

  16. 흠 -_-a;; 2010/03/04 13: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필자의 취지는 제가 볼때. 괜히 눈에 보여 만만해 보이는 -약자- 인 서로를 두들겨패지 말고, 이런 사회를 만드는게 무엇인지 쉽게 보이진 않으나 분명히 존재하는 그 근본적인 것 -강자- 를 분석하고 파악하고 고치는데 같이 힘을 쓰도록 마음을 돌려보자.. 뭐 이런것 같은데 말입니다.
    남자고 여자고를 떠나서 서로 적 이 아닌 함께 사는 사람들로서 같이 조금 더 좋은 세상 만드는데 힘쓰는게 맞는 방향이 아닐까요.
    그런 쪽으로 나아가야 우리나라가 복지 사회로 가는 길이 열리지 않을까 합니다.

    남자가 여자의 생리휴가와 출산휴가연장에 핏대를 세우며 반대하는 것 보다,
    여자가 남자의 군가산점에 침 튀기며 반대하는 것 보다,
    좋은 것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챙겨주며,
    어떻게 하면 야근을 안하고 정시퇴근을 할 수 있도록 업무체계를 바꿀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고민하고, 어떻게 하면 입을 모아 기득권 층에게 어필을 할지 고민하고, 자기일 끝내고 정시에 퇴근하는 사람에게 '눈치 없다'며 눈총을 주고 질시어린 뒷담화를 하기 보단, 어떻게 하면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여 동참하다 보면,
    삐걱삐걱 이 사회가 변화해 갈 수 있지 않을까요.

    앞으로 나아가 큰 목소리를 낼 용기가 없다면, 일단 우리들 스스로에게 박혀 있는 인식부터 바꾸려 노력하는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나도 안되는데 사회가 바뀔까요 과연.

    그렇게 개인간의 힘이 커진다면, 이 황당하기 그지없는 우리나라의 살인 노동시간은 줄어갈 수 밖에 없을테고. 그렇다면 억지스러운 기업정책들도 좀 더 효율적으로 바뀔 수 밖에 없을테고. 계약직을 고용하는 회사에 대한 눈치를 우리가 줄 수 있는 입장으로 바꿀 수 있게 된다면, 강경한 불매 운동이라도 할 수 있을테고.

    직업적으로 정말 여러 회사를 돌아다니며 일을 하고 있는데, 실제로 그런것들이 이미 서서히 시작이 되고 있었습니다. 작지만 변화의 조짐들. 하지만, 그분들의 가장 큰 고민은, 상사가 주는 눈치가 아닌, 동료들이 주는 눈치라고 했습니다 -_-. 이런 분들이 사회탓을 하십니다. -돌연변이가 나타난다면 죽이려 들지 말고 한번 따라가 보는것도 괜찮을텐데 말입니다- 이런 변화들에 대한 시선이 질투 시기가 아닌 동참으로 이어진다면, 여느 유럽국가들 부럽지 않을 날이 오지 않을 까 하는 희망을 담아봅니다.

    이기는 것 보다 윈윈이 되는 걸 더 좋아하는 시대가 열리기를 정말 바래봅니다.

  17. montreal florist 2010/03/05 04: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 아가씨들 옛날 부터 많았어여. 그래도 결혼할땐 참한 아가씨 잘 골라서 결혼하드라구여

  18. 한니발 2010/03/07 01: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그래서 연애 안합니다
    못하는거 아닙니다...

  19. 근대엽 2010/03/10 21: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도 된장녀가 많으니,,,ㅡ..ㅡ
    화장품명품들먹이며,,그저 별다른직없으니 대학원이라도진학 그다 고상한척 궁상떨며..
    누구하하는 인터몰하다 망하고..얼굴도 원래이쁘지도않은데다,, 성형녀는 더싫고~
    그저 물좋은남자 만나면 결혼도하기전에 남자부모에게 별 가진 궁상을떨며,,...ㅡㅡ 하도이런여자들많이봐서요....역겨워요.....

    정말,,, 자연미인에다..눈이호수처럼이쁘고,,,깊이있는눈빛을가진~매력있는여자~참한 직업을가지고,,맘과 개념이 지대로 박혀있는 생각이참된 좋은여자만나고싶은데,,,그런우연의 인연이 어디있을까요........

    • 아마도 2010/03/22 10:00  댓글주소  수정/삭제

      자연'미인' , 눈이 호수 처럼 '예쁘고' 처럼, 님이 가지고 계신 이런 여자에 대한 기준들이 바뀐다면, 이 사회엔 좀 더 '개념'이 제대로 박혀있는, 생각이 '참된', '좋은' 여자들이 늘어나지 않을까요.

  20. moova 2010/07/31 17: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에 쓰인 이미지좀 허락없이 가져갑니다. 된장녀에 대한 단상이란 제목으로 글을 쓰려구요.

20대 생태보고서

6. 20대, 사랑을 뺏기다. - “형, 전 알렉스가 싫어요”

일반화 시킬 수 없는 이야기지만, 20대 남성들에게 ‘연애질’이 점점 위험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몇 해 전인가. 한 후배 녀석은 나와 술을 먹다가 여자친구와 싸웠다며 진심어린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형, 전 알렉스가 싫어요”

‘우리 결혼했어요’란 프로그램은 ‘현실감’을 강조하지만, 사실은 ‘판타지’를 자극하는 소재다. 특히 프로그램의 초반에 등장했던 몇몇 커플들은 그야말로 초현실적인 결혼생활로, 오히려 너무 빈곤한 설정이었던 정형돈-사오리조를 ‘현실적’이라며 돋보이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특히 신애와 가상 결혼생활을 했던 알렉스는 요리, 빨래, 청소 등 우수한 집안일 실력과 다정함, 그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이벤트로 누군가에겐 부러움을, 누군가에겐 절망감을 안겨주었다. 나 역시 다소 이 사람에게 절망감을 느꼈던 적이 있는데, 그건 내가 그다지 갖지 못한 다정함 때문이 아니라 이 사람과 나의 상황차이 때문이었다.

                              △그냥 '동화 속 연인'인 두 사람. 그것이 이 프로그램의 본질은 아니나
                           현실에서는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이 우결이라는 프로그램 말고도 드라마 등 TV에서 나오는 20대 남성들의 대부분은 안정적인 수입을 가진 정규직이거나 돈을 많이 버는 전문직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알렉스와 신애가 했던 결혼생활도 정작 결혼생활에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이 제외된 체 펼쳐지고 있었고, 또는 고소득 전문직이 시청자가 초현실적으로 받아들일만한 아름다운 집에서 그림 같은 신혼생활을 꾸릴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문제는 영향력이다. ‘픽션’에서 무언가를 만들지 못해낼 것이며, 무언가를 이뤄내지 못할 것인가? 드라마의 주 시청 층이 여성들이다 보니 그들의 환타지를 자극할 소재를 만들어내야 하고, 이것이 드라마 속 남자들과 현재의 남자들의 사이를 계속 갈라놓는다.

4시간 잔업까지 끝마치고 밤 10시가 넘어서야 집에 도착해, 다음날 다시 새벽 6시에 일어나야 하는 생산직 노동자가 1급 호텔 셰프같은 요리를 만들어 대접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며 한 달 150만원도 채 못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겐 여자친구가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오빠 감동이야!”라는 말을 듣고자 하는 욕심 전에 다음 달 막아야 할 카드값이 눈 앞에 아른거릴거다.

물론 여성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남성이 알렉스와 같은 ‘상황’에 놓이길 바라는 것은 아니”라는 말을 한다.(그 상황이 되면 좋기야 하겠지만) “그가 가진 ‘다정함’, 혹은 눈에 띄는 ‘노력’에 감동한다”고 말하곤 하는데, 여성들의 그와 같은 생각과는 별개로 실질적으로 ‘비교대상’이 되는 남성들은 나름 고민과 노력을 기울여도 여간 초라해 질 수 밖에 없는 자신의 모습에 좌절을 하곤 한다.

나와 술을 마셨던 친구도 여자친구와 함께 우결을 보다가 싸웠단다. 뭔가 유치한 것도 같지만 이 친구는 아무리 자기가 노력해도 시간과 돈 없이는 저런 이벤트를 해 주는 것이 불가능한데,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여자친구는 눈이 하트가 되어 바라보고 있으니 가슴이 아팠고, 쪽도 팔렸고, 그래서 “저렇게 좀 해봐”라는 애인에게 울컥 열이 받아 말을 다소 거칠게 했다는 것이다.

미래가 불투명한 학생, 내지는 20대 비정규직이 대부분인 내 주변에선 아무리 고민하고 노력해도 미디어가 내품는 포스에 비해 연애의 영역이 좁은 것은 사실이다. 나 역시 투덜거리는 그 친구에게 “뭘 집을 사 달라 그랬냐?, 그냥 작은 거라도 해줄 수 있는 걸 찾아봐”라고는 말했지만, TV속 환타지가 범람하는 세상에서 ‘작은 것’이 ‘큰 것’에 비해 얼마나 소외받고 있고 ‘작은 것’ 하기조차도 얼마나 어려운지, 나 역시 모르지 않는다.

게다가 TV와 현실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잘생긴 고소득, 부자집 남녀들이면서도 달달한 말과 행동을 하는 ‘간지남’들이 브라운관을 장악하는 상황인데 오히려 시청자들의 삶은 점점 더 살아가기 어려운 세상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 나가는 상황이니 이들은 어떻게든 TV속 판타지와 현실의 격차를 줄이고자 할테고 이 반작용은 더더욱 심해지고 있다.

이 말같지도 않은 말을 현실적으로 응용해 보자면, 시청자 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꽤나 많은 여성들이 남성들을 ‘이 땅에서 살아가는 노동자’의 한 명이자, ‘한 명의 인간’으로 바라보기 보다. (TV속 간지남들처럼)자신들의 삶을 덮어줄 수 있는, 또 그래야 하는 대상화 한다는 것이다.

점점 여친에 대한 불만들을 털어놓는 친구들에게선 여친이 자신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어렵고 힘든 일들을, 단순히 ‘나에 대한 노력’이란 명목으로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는 푸념은 꽤나 자주 듣는 이야기다.(그리고 이를 실행하지 못할 때 쏟아지는 ‘변했다’는 말도 꽤나 답답해들 한다)

심지어 “없는 시간 쪼개가며 힘들게 이벤트 했는데, 그 다음엔 뭐하냐, 더 준비한 거 없냐며 화낸 여친”이야기, “아무리 부족해도 소소하게 20평 정도 되는 아파트에는 살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초롱초롱 눈을 뜨며 바라보던 여친이야기라던지, “적어도 데이트 비용은 남자가 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소개팅녀 이야기라던지, 가끔 이런 극단적인 예들도 심심찮게 등장하기도 한다.

남자들이 점점 더 투덜거리는 것도, ‘남성인권보장위원회’라는 개그 프로그램이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몇몇 사람들은 남보원이란 프로그램을 두고 남성들의 곤궁한 삶에 대한 비판의 대상이 여성이 아닌 보다 구조적인 측면에 맞춰야 함에도 개그 프로그램은 너무 남녀간 각 세우기에 촛점이 맞춰져 있다며 비판하곤 하는데 이러한 비판이 납득되지 않는 건 아니나. 절망에 가까운 남성 20대 비정규직의 현실에서 너무 멀직이 느껴지는 이 사회의 구조만 비판한다고 살림살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푸념도 이해한다.

즉, 비판의 대상이 ‘여성’이어야 한다는 데는 나 역시 부정적인 입장이지만, 그렇다고 남보원에 열광하는 남자들에게 ‘찌질하다’는 딱지를 붙이는 것엔 더더욱 반대한다는 것이다. 사회구조적으로 봤을 때 아직 남성이 여성보다 강자인 것은 맞지만, 동일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입장에서 그들의 감당해내야 할 몫이 더 커진다면 그 또한 되짚어봐야 할 부분이다.

(다음 장에서 여성의 입장에서 얘기하겠지만) 집 하나 있어야 결혼할 수 있다는 현실, 하지만 정작 사랑하는 사람과 데이트를 하기 위해서도 돈이 있어야 한다는 현실, 그 두 가지 현실 사이의 모순은 많은 20대 비정규직 남성들을 번민하게 하고, 고통스럽게 한다. 그들이 더 섭섭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가까이있는 여성 20대 비정규직들이 자신의 삶의 처지를 이해해 주지 못할 때 있을 것이다.

TV라는 초현실적인 영역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순간 불행해 진다. 그러나 언제나 초현실은 현실을 압도하고 그 사이 현실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가정도, 경제도, 로멘틱도 점점 더 남성 쪽으로 기울여져 가는 미디어의 영향력이 계속 이대로 영향을 미칠 결우 20대 여성과 20대 남성의 연대는 요원해지고 ‘연애’한 번 하기 어려운 20대의 현실은 더 절망 속으로 빠져든다. 결국 미디어도 그들의 연대를 막는 셈이 된다.

ps. 우결을 싫어하진 않습니다. 전 즐겨보는 프로이여요~ ㅋㅋㅋ

Posted by dalgona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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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림동 박 2010/02/16 20: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나 찌질남인 저는 우결을 제대로 본적도 없고 (개인적으로 이런 과대 포장된 쇼 프로그램 보면서 박수치고 좋아하는 사람들 정말 미련해 보입니다. 참고로 저도 미련한 사람인지라 아주 가끔 보면서 웃을 때도 있습니다.) 알렉스에 대해서는 단지 주변 사람들을 통하여 들었을 뿐이지만 그 사람도 진심이라기 보다는 먹고 살자고 한것이 정도가 좀 과했다고 봅니다.ㅎㅎ 그나저나 우결은 정말 무서운 프로그램이네요.. 영화나 만화는 대놓고 초현실적 이야기를 다루지만 이런 프로그램은 현실에는 없지만 있을법한 이야기를 다루니까 더 그럴듯한거 같네요. 그런데 요즘 주변을 보면 여자친구 있는 남자는 별로 없는데 상대적으로 남자친구 있는 여자들은 많다.. 왜 그럴까?

    여성도 결국은 피해자다.

  2. 흠... 2010/02/19 15: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상이 너무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저는 그냥 먹고 사는게 막막할뿐...ㅡㅡ

  3. 예비 2010/02/19 16: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롤러코스터-남녀탐구생활'을 보면서 웃지만 말고 서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부담되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들좀 해봤으면 좋겠네요.
    롤코 이번트 편에---없는 시간 쪼개가며 힘들게 이벤트 했는데, 그 다음엔 뭐하냐, 더 준비한 거 없냐며 화낸 여친---요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ㅋㅋ정말 여자분들 대부분이 이런 마음이라면 남자들은 안습 ㅜ.ㅜ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에게 뭐든지 다 해주고 싶은게 남자입니다. 다만 현실적인 문제(시간,돈 등)가 되어야 가능한거죠 ㅎㅎ

  4. 달달달 2010/02/23 11: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 20대의 연애,사랑얘기는 재미있군요...마치 경험이 풍부하신듯.....ㅡㅡ
    글 쉬지말고 올리세요..

20대, 생태보고서

6. 20대, 사랑을 뺏기다. - 졸업이 앗아간 연애세포

‘데모’, ‘학사경고’와 함께 대학에 들어오면 반드시 해 봐야 하는 것이 ‘연애’라고 했다. 이른바 캠퍼스 커플, CC, 얼마나 예쁘고 귀여운 이름인가? 출근 시간도 없고, 퇴근 시간도 없다. 업무 스트레스라는 것도 없다. 그냥 만나서 즐겁게 놀기만 하면 그만이다. 이것이 ‘연애’ 아니던가.

비극은 대학 졸업 후 시작된다. 그 전까진 버틸만 했다. ‘돈 없는 것’도 학생이기에 용서된 일이다. 함께 나눠먹는 자장면 하나에 행복해 하고, 최신영화 조조할인을 받고 쾌재를 지르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자판기 커피 한 잔에 1시간 데이트 할 수도 있는 것이 대학 연애다. 학생이니까.

그런데 영원히 학생이란 것은 없다. 어쨌거나 초등, 중등, 고등과정을 거쳐 대학교 까지 졸업해 ‘학생’이란 보험 보증서 기간이 끝나면, 환급금도 없이 ‘사회생활’이라는 새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누구나 겪는 일이고 정해진 환경과 조건에 따라 갈릴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데. 얼마나 잘 프로그래밍된 새 보험에 가입하느냐에 따라 인류의 보편적 특권(아니, 모든 생명체의 보편적 특권)인 ‘연애특약’이 달라진다는 것이 문제다.

‘대기업-고연봉 보험’의 경우 연애특약은 완전보장, ‘안정되고 꾸준한(물론 일정수준 이상의 소득이 보장되는) 직장보험’의 경우도 보장성이 크다. 문제는 20대 대다수가 들어야 하는 ‘비안정적-일반소득 보험’, 심지어 ‘비정규직-저소득 보험’의 경우다. 이들의 경우 연애특약의 보장성이 깊지가 않다.

이 경우 연애특약이 가진 효과를 누리기 위해서는 따로이 집을 한 채 가지고 있다던가하는 또 다른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이러한 프로그램들 중 심각할 경우 연애특약의 보장성과는 아무런 상관조차 없는 부모님 재력이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고려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그래도 였는데.

사정이 이러니 이도저도 어렵고 힘든, 아예 연애특약 자체를 포기하려는 사람들도 생겨난다. 연애가 이성에 의해 통제되는 것은 아닐텐데, 스스로 내재된 연애세포 죽이기에 혈안이 된 사람도 있다. 연애가 무서워서다. 결혼이 겁나서다. 이 나라 이 땅에서 살아남기가 자신이 없어서다.

K군은 졸업 후 CC였던, 사랑하는 친구와 결국 이별했다. 연애들 감당 못할 만큼의 ‘성격차’가 주된 이유였지만, 졸업 후 이들이 처한 상황이 이들의 성격차를 더욱 벌려놓는 기폭재가 되었다. 둘 다 본의아니게 백수가 된 탓이다. 여자는 공무원 시험 준비로 백수의 길을 택했고, 남자는 나름 미래를 위해 더 공부하고자 했다. 그게 문제였다.

“싸웠냐고? 그렇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대학 다닐 때 보다 싸움도 없었죠, 근데 왜 헤어졌냐면, 서로 싸울 의지조차 없었기 때문이죠 미래에 대한 자신도 없고, 내가 하고 싶은 걸 이해할 수 있는 현실이 아니었으니까. 점점 여자친구는 저에 대한 믿음을 잃어갔던 거 같아요. 어쨌거나 저쨌거나 대학 때는 자주 보고 별 생각없이 같이 다니니까. 잘 지냈는데, 졸업하고 나니까 ‘현실’이 들이닥친 거예요. 마음은 점점 불안해지고, 불안해지는 되는 건 없고, 아무것도 안되니 만나는 시간도 줄어들고 서로 흥미도 잃어가고, 어쩔 수 없죠. 그냥 참 자연스럽게 헤어진 것 같아요”

여자는 남자가 일단 어디라도 취직해서 돈을 벌길 바랬고, 남자는 좀 시간을 갖고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고자 했다. 여자도 남자도 대학 졸업 후 빚을 지고 있으니, 처음 사회생활 들어가면서 ‘돈에 대한 갈망’을 느끼고는 있는데, 그럴 수록 ‘무언가 열심히 일해봐야겠다’는 생각보다 ‘돈을 많이(혹은 안정적으로)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그런데 현실은 녹록치 않은 상황. 이 상황에서 연애가 개입할 여지는 많지 않았다.

L모군의 경우 아직 연애는 하고 있으나, 헤어지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는 단계다. 윗 친구처럼 백수는 아니고, 급여는 많지 않지만 그래도 괜찮은 중소기업을 다니고 있는 친구다. 그럼에도 이별을 고려하는 것은 딱히 사랑이 식어서가 아니라, 무언가 외부적 변수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부모님’이다.

“어느 딸의 부모님이 적은 돈 벌고, 안정적이지도 않은 직장을 가진 남자에게 시집 보내려 하겠어? 나도 이해하지, 이건 ‘쿨 한거’를 바라는 것도 안되는 거잖아. 뭐 열심히 일해 봐야 서울 땅떼기에서 집 하나 살 가능성도 없는데, 걔네 집에서는 나 만나는 거 알고도 있는데 맞선도 보라고 한데, 맞선 상대가 뭐 공무원이니, 괜찮은 직장 있는 사람이니 한다는데, 어쩌겠어, 내가 내려놔야지, 어렵긴 해도”

무슨 신파찍냐고 따져물으려다 오죽 답답하면 저럴까 싶어 딱히 항의는 하지 않았다. 나 역시 그의 심경을 약 95%가량 이해하기 때문이다.(5%에 반대해서 문제지만) “그 친구가 그렇게 선 봐서 결혼한다고 행복하겠어?”라고 달래자 “행복할거야, 돈이 행복인데”라고 답하는 그를 보며 뭘 더 어떻게 얘기한단 말인가? 내가 돈이라도 있어야 “그 돈 별거 아니더만”이라고 얘기나 할텐데

비정규직, 저임금으로 내몰리는 노동자들의 삶, 그런 노동자 부모님(혹은 사회가)들이 노동자 자식에게 자본을 요구하는 현실, 이러한 것이 맞물려, 염통을 말랑말랑 쫄깃쫄깃하게 만들어야 할 연애도 점점 자본주의화 되어가고, 사랑하는 20대들에게 사랑의 권리를 빼앗아 간다.

결혼이 신분상승의 기재가 되던 옛 6~70년대 초 울트라 유치뽕짝 이야기, 초기 자본주의식 연애는 점점 더 진화했고, 이제 결혼이 계급유지의 수단으로 작용하고 인식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물론 여기에도 ‘사랑’이 작용할 수는 있겠으나, 어쨌거나 현실은 정규직은 정규직 끼리, 비정규직은 비정규직 끼리, 그렇게 계급이 나눠진다. 그리고 이로 인해 가난은 대물림된다.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는데, 이 정부는 참 어렵다. 어차피 건설회사 찌라시 처럼 보이기는 했다만, 신혼부부 반값아파트 공약은, 당선 되자마자 임무 마치고 퇴근했고, 최소한 ‘가난’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것을 막기 위한 ‘반값등록금’은 그 애비애미에 의해 존재자체를 부정당했다.

그리고 정부가, 대통령이 내놓은 해법은 간단하다. “20대 여러분이여! 지방 중소기업에라도 취업하라!”.... 거 참. 앞뒤, 전후사정 가리지 않고 일자리 문제만 단편적으로 생각하면 저런 비창의적인 발상도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왜 20대들이 지방 중소기업에 취업할 수 없는지 알 것이다. 뭐 맘만 먹으면 대기업에 자기 자식들도 취업시킬 수 있는 사람이 그 정서를 어떻게 알겠냐만은..

대학 졸업 후 MB님 말 처럼 지역에서 1년여 동안 일을 한 적이 있었는데, 생활 자체가 완전 파탄에 가까웠다. 연애를 할 곳도, 문화생활을 누릴 곳도, 뭐 아무것도 없이 단순히 ‘일만 하며’ 보낸 1년은 사실 지금 돌이켜 봐도 기억조차 나지 않는 나날이 많다.(매일 똑같으니까 -_-;;)

어쨌건. 주변 친구들 몸 속에서 점차 사라져가는 연애세포를 느낄 때 마다. 이 사회에 대한 한없는 이유있는 반항감이 생겨난다. “우리 그냥 사랑하게 해주세요”라는 정우성의 외침이 전근대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연애도 점점 A급 B급으로 나눠지는 현실에서 ‘연애 포기’라는 안타까운 선언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되게 슬픈 이야기다. ‘세포’, 즉 본능에 가까운 연애감정에 ‘현실적 판단’이라는 종양이 생겼는데, 이들은 연애세포의 시한부 인생을 받아들인다. 그런데 당사자이자 목격자인 나는 이것을 탓할 수도 응원할 수도, 비난할 수도 없다. 내 몸에도 연애세포를 죽이는 종양덩어리가 어른들이 말하는 소위 ‘사회생활’이란 모이를 먹고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기 때문이다.

Posted by dalgona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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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래도 2010/02/12 19: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님은 아직 열정이 남아있나봅니다. 반항심이 남아있다는게 그 증거죠.
    저항이니 반항이니 다 귀찮습니다. 포기? 포기도 의지있는 인간이 하는짓이죠
    감성이 마비된채 그저 하루하루 버티는걸 위안으로 살고 있는 30대 직딩입니다.
    좋은 글입니다. 잘읽었습니다

  2. 앙큼별 2010/02/12 19: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대의 불안을 고스란히 안고 가는 30대인 저에게도 해당 되는 말인 것 같아 씁쓸 하네요. ㅠㅠ

  3. 더레프트 2010/02/12 19: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글이네요. 사랑엔 돈이 들지 않지만 연애엔 돈이 많이 든다... 평소의 지론인데, 괜히 씁쓸합니다. 하하.

  4. 2010/02/12 1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닿네요-정말 서로가 좋아서 하는 연애는 학생때나 가능한거 같아요-

  5. 에휴 2010/02/12 19: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구구절절 가슴에 와닿네요. 집안에 돈이 좀 있거나 소수 대기업 고연봉 취직자들을 제외하고는 수도권에서 아파트 하나 마련하기도 등골이 빠지는 세상이니.. 나이가 있으면 나이가 있는대로 갖춘게 있어야 하고 젊으면 젊은대로 남자라서 써야하는 것들이 있는 사회다보니 갈수록 숨이 턱턱 막히는것 같네요.

    • dalgona82 2010/02/13 00:30  댓글주소  수정/삭제

      거 참 더러운 세상이네요 ㅡ_ㅡ

    • natas13 2010/02/17 15:13  댓글주소  수정/삭제

      소수 대기업 고연봉 취직자들이라....
      그 대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죽어 나갑니다.
      매일 매일이 야근에 연애는 무슨... ㅋ 남들이 들으면
      배부른 소리라 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만날 시간이 별로 없군요.
      연애하기도 참 힘드네요...
      ㅠ.ㅠ.

    • dalgona82 2010/02/23 14:45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군요, 정말 이래저래 연애하기 힘든 세상이예요.

  6. ^^ 2010/02/12 20: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저는 모 대학에 재학중인 학생으로, 언론사에서 수습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달고나님께서는 졸업과 동시에 연애세포가 없어진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하셨지만,
    제 생각에는..이런 비슷한 문제가 학생들에게도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이런 이유로 남자친구와 헤어지려 하고 있구요.
    그래서 현실때문에 어쩔수없이(?) 연애를 끝내야 하는 상황과 그에대한 안타까움에 대해서 글을 쓰고 싶었지만 제 역량이 부족해서인지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달고나 님의 글을 보니 어렴풋이 글의 방향이 잡힌것 같습니다만,,
    제 생각을 조금 더 구체화 시키고자 달고나님과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
    혹시 실례가 되지 않으신다면 메일 한번 주실 수 있으신지요.
    제 메일을 남기고 가겠습니다.
    lovingkmk@hanmail.net

  7. ㅠㅠ 2010/02/12 21: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학생인데도, 연애세포가 죽어가는 저는 어떻게 된건가요? 그냥 연애를 하면 꿈과 성공과 멀어지는 것 같아 무섭습니다. 비합리적인 생각인 거 알긴 합니다만.. 저뿐만 아니라, 요즘은 대학생 시절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8. ㅠㅠ 2010/02/12 21: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딩때 연애하느라 원하는고등학교 못가고 연애 포기한지 오래인 고딩입니다 전 강아지랑 살거에요

  9. 흠... 2010/02/13 02: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연애는 그래도 자기관리 잘하는 사람들은 자기 할일해나가면서 다 합니다. 결혼이 문제죠.

    근데 사회는 원래 유유상종인데 인간이란 것이 아는 게 많아질수록 본인의 분수를 왜곡하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아지는거 같아요. 그러면서 자기 수준도 모르고 바라는 것만 크고..
    물론 취직이 안 되는 것도 원인이 되기도 하죠. 이 측면에서 개선이 되어야 되겠지만 누군가는 연애할 동안 솔직히 자기계발 열심히 한 사람이 더 득보는게 당연한 이치죠.
    돈보고 선으로 결혼하려는 여자도 참 개념업고
    그렇다고 쉽사리 순수하게 결혼하지 못하는 현실도 맘에 안드네요.


    그만큼 다 사람들이 자기 이득만 챙기려는 거죠.
    고등학생이 저런 마음 먹다니...한편으론 씁쓸하고 한편으론 이 경쟁사회에 더 분발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드네요

    • dalgona82 2010/02/16 16:58  댓글주소  수정/삭제

      자신의 '능력'이 '연애'를 규정하는 세상이에요, 분발하는 것이 결혼할 수 있는 능력을 만들 수 있을지 몰라도, 분발이 사랑을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ㅠㅠ 댓글 감사합니다 ^^

  10. 새옹지마 2010/02/13 02: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읽었습니다.퍼갑니다.예나 지금이나 다 그랬던거 같은데 요즘이 좀 더 심해진감이 있습니다.감사합니다.

  11. 흠...... 2010/02/13 02: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쎄요..... 구지 연애니 뭐니에 상관하고 살지 않는 편이 맘 편하지 않을까요...?
    이 세상에 연애말고도 여러가지 하고 싶어지는 일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흠.. 연애라... '연령=솔로' 인 저에게는 별로 와닿지 않고, 공감도 되지 않는군요..........)

    저는 연애보다는.... 금전문제가 우선이군요.....
    나중에 노후문제라든지, 해고라든지,, 뭐 이런거 생각하다보면 연애, 결혼.....
    다 귀찮아집니다....귀찮다기보다는... 아예 생각조차 안 하게 되는군요.....

    전 솔직히 직장, 금전문제를 빼고는 유아처럼 아무 고민 없이 지내는 게 제 목표이고, 전 이걸 이루고 있다고(혹은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직장, 금전 문제 빼고는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게 최고입니다.....

    • 본능소년 2010/02/13 05:47  댓글주소  수정/삭제

      좀 씁쓸하네요. 07년에 작고하신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님은 유서에 다시태어나면 연애를 한번 잘 해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이말이 무슨뜻인지 잘 생각해보세요.

    • dalgona82 2010/02/16 16: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맘은 편하나.. 외롭지 않을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12. 수험생.. 2010/02/13 0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감합니다..
    제 남친은 졸업하기 전에 취직해서 열심히 일하면서 제 뒷바라지를 해주고 있습니다.
    전 공부중이고요.
    미안하고 한편으로는 고맙습니다.
    근데 또 생각해보면 남친이 취직을 못했다면 헤어지지는 않더라도, 이렇게 무난히 지내오지는 못했을 거 같아서 씁쓸하네요..
    함께 있으려면 어딘가에 있어야 하고, 학생이 아닌 이상 어딘가에 있으려면 돈이 필요하니까요.
    여하튼 빨리 공부 끝내고 저도 넉넉하게 남친에게 베풀게 되기를 바라고 있어요.

  13. @@ 2010/02/13 03: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데 돌이켜 보면 몇년 전만해도 이정도로 비관적이진 않았던 것 같아요.
    심지어 2008년까지만 해도 .... 이렇게 초예민 비관적이진 않았던 것 같은데
    요즘엔 다들 어렵네요. 언제 이런 고통이 끝날까요?

  14. 20대 대학생 2010/02/13 03: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정말 제대로 쓰셨네요 ㅎㅎㅎㅎ 저도 항상 이런 생각 하고 친구들하고
    이야기하는데 ㅎㅎㅎㅎ 이렇게 인터넷에서 글로 보는것은 처음인듯.......
    뭐 그런거죠. 근데 ㅎㅎㅎㅎㅎ
    짚신 벌레는 짚신 벌레하고나 결혼해야지 짚신 벌레가 어디 백조나 아님 꿩 하고 결혼 할 수 있겠습니까 ㅎㅎㅎㅎㅎ
    주변 선배들만 봐도 뭐...걍 노골적으로 자신의 여친을 이야기 하면서
    '나도 좀 더 조건이 좋았으면 더 좋은 여자 만날 수 있을텐데' 라던가 아니면
    '아 공무원만 붙음 진짜 집안 좋은 여친 사귀고 지금 여친 버려야지'라고 말하더라고요....뭐...그런거죠 씁쓸하네요. ㅎㅎㅎㅎㅎ 에휴 늘어가는건 담배뿐이 없습니다.... 수고하세요 글쓰신님도~

  15. 어익후 2010/02/13 04: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대학교 4학년 휴학생인데 공감대가 형성되는 글이네요
    아직 뭐 해놓은것도 없고 스펙도 남들보다 달리는거 같아서
    해준다는 소개팅도 마다하고 하다보니 연애라는게 현시점에서
    가능이나 할까라는 생각이드네요 취직한다고쳐도 돈버느라 바쁘면
    그때도 연애는뒷전이겠죠...

  16. 청운 2010/02/13 09: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쓰셨네요
    딱 20십대를 느끼게해주는 글이군요
    생각도 깊으신것같고 좋습니다
    저는 사주풀이를 전문으로 하고있는사람입니다
    취업이나 진로의대해서 글도써놨구요 오셔서 한번보시고 가시지요

    http://blog.daum.net/young9929

  17. 마중물 2010/02/13 11: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결혼 적령기에 든 20대 후반으로써 참 공감합니다.
    그래도 아직 로맨스는 남아 있겠죠?..
    남아 있길 바라면서..

  18. HD 2010/02/14 0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무원 시험 준비하던 커플 중에 한사람만 합격하게 되면, 많은 커플들이 헤어진다고 합니다. 아직도 시험에 허덕이고 있는 미래가 불투명한 지금 애인보다, 생활 수준이 비슷하고 안정적인 공무원 커플(부부)가 훨씬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겠죠.
    아...이거 솔직히 저도 같은 입장이 된다면 이러지 않을거라고 장담을 못하겠네요.
    그놈의 '생활','현실' 세포가 '사랑' 세포를 마구 잡아먹는...

    정말 '사랑'이 '현실'을 이기기는 어려운걸까요???

    • dalgona82 2010/02/16 17: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모든게 다 문제인 것 같아요, 옛 부터 사랑은 언제나 방해를 받아왔지요, '사랑할 자유를 달라', 20대 집회에 핵심적인 구호일 것 같습니다.

  19. 지나치다가 2010/02/19 23: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뭐랄까; 되게 동감되네요;^^
    저같은 경우는 계속 20살부터 쭉 걱정만 하고 살아왔데죠;ㅠ이글 동감이 많이 되서 퍼가고싶어요...
    소개팅을 해도, 사람을 만나도,제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하고 현실에대한 말로 표현할수없는 두려움; 이랄까, 계속 학벌세탁하려고 공부하고..
    등록금때문에 알바하고, 제대로된 남친한번 못사궈봤네요.^^
    만약 정말 알아주는 좋은 대학교를 가고, 잘난 학벌에 안정된 직업을 보장하는 과에 들어가고 ..이모든것이 완벽하게 되었다면, 연애 많이 했을것 같아요..

    2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계속 이러고 있네요...
    뭐가 안정되게 자리가 잡아야 누굴 만나고, 정말, 연애는 못해도 결혼은 잘하자. 근데,도전하는 일엔 번번히 실패하고..
    이런 생각이랄까;; 나이는 들어가고, 여자로서의 유통기한은 짧아지는데..이미 여자로서의 지각이없네요;ㅠㅠ 제가 잘되야 좋은 사람을 만나니까, 계속 뒤로 미루고 있네요.정말 두마리 토끼를 잡는건 어려워보이는데...그래도 외롭긴 외롭군요.ㅠㅠ

  20. 한니발 2010/03/07 01: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난 뉴캐슬과 결혼했다..

  21. 구직자 2010/03/31 14: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공감합니다. 이런 얘기에 대해서 현실에서 털어 놓으면 다들 껄끄러워 하는
    분위기가 많더군요.
    사회적으로 제대로 자리를 못잡고 현실 상황이 힘들어지면 아무래도 주변인들과도
    뜻하지 않게 자연스럽게 멀어지죠^^; 돈과 관련해서.ㅠ

    저도 이제 20대 중반 넘어가는데 참 답답하니다...

    연애를 할려면 돈을 비롯한 경제력과 안정적인 직장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통념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렇지못한 사람들한텐 난감하고 스트레스 많이 받는 일이죠..
    특히 남자분들한테는요.. 같은 상황에 쳐해 있다고 하더라도 한계가 있구요..

    연애하기엔 너무 세상이 삭막하고 여유가 없는 것 같아서 안타깝네요...ㅠ

20대, 생태보고서

6. 20대, 사랑을 뺏기다. - 넌 왜 사랑하지 않니?

백설공주가 꼴랑 키스 한 방에 일어나, 그동안 걷어줘, 먹여줘, 재워줘, 그렇게 정성을 들였음에도 밀린 월세조차 갚지 않고 떠났다는 그 사실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 대상이 하필 ‘왕자’냐는 말이다. 간지나는 ‘백마’까지 가진, 그가 왕자이기에 계모에 간괴에 넘어갔던 왕도 백설공주의 결혼을 허락할 수 있었고, 그가 왕자이기에 스토리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더래요”로 끝날 수 있었다.

그런데, 만약 그녀에게 키스한 것이 일곱 난장이 중 하나였다면? 과연 왕이 “내 이 결혼 허락함세”라고 할 수 있었을까? 작가가 “백설공주와 일곱 번째 난장이는 오래오래 산 속에서 행복하게 살았더래요”라는 끝을 맺을 수가 있었을까?(그런 면에서 슈렉은 훌륭한 동화가 아니던가?)

‘사랑’이란 것이 어쩌면 환상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너만 사랑해”라는 사랑의 세레나데를 읊으면서도, 누군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이 싫지만은 않은 것이 인간이고, 남들이 그런 사람들을 옆에 두는 것을 욕하면서도 자기는 끝까지 옆에 남겨두며 희망고문시키는 것 또한 인간이다. 그런 면에서 ‘사랑’이란 것, 정의내리기도 쉽지 않고 정의에 따라 신뢰할 만한 것도 아니다.

또한 사랑이란 것이 ‘20대’만을 위한 전유물은 아닐 것이다. 나이, 그리고 지위고하에도 막론하고 사랑은 누구나 향유하며 누구나 누릴 권리가 있다. 그리고 현실에서 사랑이 고통받는 것이 단순히 세대별 차이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런 면에서 ‘20대’만이 사랑을 빼앗긴 듯한 이 파트의 제목은 사실 모순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대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자 하는 것은 이 험난한 세상에서 그나마 염통을 쫄깃하게 만들었던 사랑이란 ‘감정의 부분’마저, 점점 이성의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스펙’은 연애와 연애를 구분짓고 분할시켜 놓는다.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하는 최고의 행위인 ‘결혼’에 ‘감정’이외의 것들이 징그럽게도 다닥다닥 붙어 들어간다. ‘사랑’만 얘기하면 철딱서니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세상, 그리고 최근의 상황은 그런 ‘철든세상’의 정점이며, 더 큰 문제는 답답하기만 한 상황이 개선되리라는 보장은 커녕, 오히려 악화될 것 같은 느낌이드는 것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면, 사랑의 영역이 점점 줄어들고 그 자리를 돈이 지배하는 구조가 되어간다. 돈의 지배를 받지 않는 연애와 결혼은 연인들에게 공포감을 가져다준다. 가장 단순하게 사랑해야 할 사람들이, 왜 이런저런 ‘현실’에 지배당할까? 그 현실은 누가 조장하는 것인가? 이것이 앞으로 총 4번에 거쳐 얘기하고자 하는 내용이다.

요새 연애 안하는 애들을 만나보면 “이제 여자(남자)한테도 관심없고, 그냥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말을 꽤나 자주한다. 그것이 사랑에 상처받아서 일수도 있고, 아니면 정말 관심없어서 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말이 꽤나 슬프게 들리는 것은 “누가 내 현실을 좋아하겠느냐”는 자괴감이 섞여있기 때문이다.

20대, 비정규직 혹은 실직자. 꿈도 미래도 불확실한 상태, 아니 꿈과 미래가 잡히지도 않는 상태에 처한 사람들에게 사랑이란 본능적인 감정은 이성에 의해 컨트롤 당한다. “상대 집에 인사가기도 민망하다”, “집에서 연애하는 거 알면(그것도 내세울 것 없는 사람과) 난리날 거다”라며 고개를 푹 숙인다. 가장 본능적인 감정이 다른 이유로 상처받는 것, 그게 우리들의 현실이다.

“시험만 붙으면, 남자(여자)는 언제든지 만날 수 있어”라는 그들의 결기(?)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하긴, 고등학교 급훈에 “성적에 따라 와이프 얼굴이 바뀐다”는 말이 등장하지 않았던가? 우습긴 하지만, 어떻게 생각해 보면 참 슬픈말이다.

“넌 왜 사랑하지 않니?”라는 질문이 어리석은 이유기도 하다. 사랑을 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기 때문에, 누군들 사랑이 싫지 않겠는가? 다만, 사랑하는 것이 너무나 겁이 난다는 것이다. 이제 앞으로 사랑을 포기하는 사람들, ‘스펙 좋은 사랑’을 찾아나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Posted by dalgona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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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개구쟁이 2010/02/10 11: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년은....ㅋㅋ

  2. HD 2010/02/11 0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약 독 먹고 죽은걸 알았다면 저 왕자는 과연 키스를 했을까요 안했을까요?

  3. 한니발 2010/03/07 01: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사랑하고 싶습니다 ㅋㅋㅋㅋㅋㅋ

20대, 생태보고서

5. 부모님은 인생의 걸림돌이다 - 가족과 국가에 저항은 없다.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옛 국기에 대한 경례 중)라고 하는 부분에 좀 이상한 점이 있지 않나? 조국(祖國), 민족(民族) 모두 ‘가족’의 개념이 들어간다. 그래, 우린 한 가족, 이 땅에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는 것 하나로 우리는 하나의 가족이 된 것이다. 우린 또 하나의 가족이라능.

대통령 아빠와 한나라당 엄마 때문에 속상해온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알 것이다. 국가에 저항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지난 2008년 여름, 나쁜 것 사와서 먹으라던 국가에게 까불었다가 우리는 얼마나 호되게 당했던가(당하고 있던가), 때리지, 밀지, 막지, 그리고 동네방네 싸가지 없는 놈이라고 (모 신문들을 이용해)소문내고 다니지.

                        △ 살 만한 세상은 저항을 통해 만들어져왔다. 4.19 혁명 장면.

다른 세대라고 특별히 다를 것은 없지만, 20대는 꽤나 애매모호한 국가관을 가지고 있다. 자기 자신의 이익과 결부될 경우 ‘국가’란 개념에 대해 언제든지 쿨한 척 하지만, 누군가 국가를 모독하면 눈에 쌍심지를 켜고 자판 앞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번에 얘기할 것은 그런 것 보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더욱 큰 특징, 국가에 저항할 수 있는 방법도 모르고, 저항할 의지도 없다는 것이다.

‘저항 보다는 순응’을 택하며, 순응하지 못하는 자에 대해서는 ‘패배자’, 즉 ‘루저’라는 딱지를 붙인다. 그들에게 부모가 저항의 대상이 아닌 것처럼, 이 국가와 사회 역시 저항의 대상이 아니다. 때문에 비정규직이 확산되도, 나 자신이 비정규직이 되어도, 해고자가 되도 그 지탄의 대상은 ‘국가’가 아닌 ‘내’가 되는 것이다.

이제는 30대인 선배A는, 회사의 일방적인 구조조정(작은 기업이라 ‘구조조정’이란 딱지를 붙이기도 민망하고, 그냥 ‘해고’를 당했다)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책’의 술 한 잔을 기울였다. “어. 000씨, 이거 참 미안하게 되었는데, 내일부터 나오지 말았으면 해”라는 말을 듣고 “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거 부당해고잖아, 이유도 없데?”라는 질문에 “어차피 비정규직이라 뭐, 젠장, 앞일이 걱정이 되긴 해도 어쩌겠어? 다 내가 부족한 탓이다”라며 ‘쿨하게’ 답했다. 자신이 비정규직이 된 것은 대학 때 스펙관리를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며, 부당해고를 당한 것은 자신의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며, 비정규직으로 근무해서 실업수당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 또한, 자신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상하네, 그게 아니지, 다 똑같은 국민인데, 정규직은 실업수당을 주고 비정규직은 실업수당을 안 주는게 어디있어? 이거 완전 불공평한 거잖아?”라며 대신 불평하자 “거도 그렇다”면서도 “그래도 어차피 경쟁이란 거니까. 경쟁에서 밀려난 건 나잖아. 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회사 들어가야지 뭐”라고 체념한다.

“‘남의 일’도 아니고 ‘자기 일’인데 어쩜 그렇게 쿨할 수 있냐, 형도 월급 받으면 꼬박꼬박 세금 내지 않았냐”고 물어봐야 소용없었다. 그에게 국가는 최소한 지켜져야 할 틀이었고, 그 안에서 국가에 저항해봐야 ‘패배자’라는 낙인밖에 더 찍히겠냐는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그렇게 찍히면 앞으로 취업도 안된다”는 것.

비정규직이 이렇게 늘어난 것은 국가의, 이른바 ‘노동유연화’ 정책 때문이고, 이 정책 때문에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받는 돈에 차이가 나는 그야말로 ‘불공평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왜 S그룹에서 일을 하면서, 월급은 A아웃소싱에서 받아야 하며, 아무 이유 없이 A아웃소싱에 자신의 월급 일부를 바쳐야 하는 것인가? 이 모두 잘못된 정책이 빚어낸 결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이 아닌, 거기에 적응하지 못한 자기 잘못으로 돌려버린다.

아직 대학생인 B는 이번학기 등록금을 400만원 넘게 납부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매년 등록금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데, 국가와 학교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 사실 이 사회 법안을 만드는 ‘분’들이 대부분 사학과 연계되어 있는 상황에서, 그들이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등록금 인하’ 혹은 ‘등록금 상한제’를 법안으로 채택할 리가 없다.

이번에 통과된 ‘등록금 상한제’도 인상은 하되, 그 인상률을 물가인상률 수준으로 줄이자는 것 아닌가? 이 역시 국가의 개입이 절실한 영역이지만, 국가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다. “반값등록금”도 “뻥이야!”라고 말한 대통령이 있는 이상, 앞으로도 가능성은 없다.

그럼에도 B는 알바만 열심히 하고 있다. 현실이기 때문에 알바를 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겠지만, 등록금에 대한 불만이 있어도 이에 저항할 의지는 없다. 실질적으로 몸으로 등록금 쓰나미에 부딪히는 사람들도 이런데, 부모님의 도움으로 등록금을 낼 수 있는 사람들이 등록금에 대해 저항할 의식이 있겠는가?

나 역시 그런 적은 없지만, 안타까운 마음에 “총장실에 계란 하나 안 던지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러자 들려오는 대답은 “데모하면 안좋아”라는 것, “아니, 데모가 아니라 등록금을 이제 낼 수가 없는 수준이잖아. 그럼 인하하도록 압박을 하던가. 죽을힘을 다해 등록금 인상 막겠다는 총학생회를 찍어주던가, 방법이 있잖아”라고 물어보자 “귀찮아”라는 답이 돌아왔다. ㅡ,.ㅡ

20대들에게는 경쟁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경쟁에서 낙오한 사람은 ‘패배자’일 뿐이다. 문제는 이런 생각이 결국 “게으른 ‘패배자’를 위해 ‘승자’가 나눠야 할 이유는 없다”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뭐, 아이티 지진같은 안타까운 일에 내 돈을 ‘기부’하는 ‘대인배’가 될 수야 있지만, 근본적으로 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국가가 내 돈을 걷어가 지원하는 것이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그들이 이렇게 사회여론주도층이 되면, 양극화의 가속도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데모’얘기만 하면 ‘기겁’하며 “나 그런거 안해요”라고 말하는 후배들을 보면서, 점차 순응의 농도도 더 짙어지는 걸 느낀다. “그래도 예전엔 ‘부채감’이라도 있었는데”라며 입맛을 다셔봐야, 그건 또 옛날이야기 일 뿐 아닌가?

“국가가 나한테 해준게 뭐가있냐!”며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 특히 이리 치이고 저리 눌리는 20대들은 국가에 보다 ‘싸가지 없게’ 대할 필요가 있다. 공동체 의식은 존중하되, 대통령 아빠, 한나라당 엄마가 나에게 적은 돈을 주면서(OECD 비정규직 최고수준), 많은 일을 시킨다면(OECD 노동시간 최장) “내가 친아들 맞나” 의심해볼 일이다.

나의 힘이 부족하다면, 내 옆 집에, 앞 집에, 뒷 집에 사는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 국가에 의해 억압받고 착취받는 사람들과 힘을 합쳐 볼 수도 있다. 이 국가가 우리의 부모도 아니고 게다가 대통령과 여당은 우리 손으로 뽑았음에도 자꾸 우리를 괴롭힌다면, ‘악’ 소리라도 한 번 질러봐야 할 판이다.

그게 겁나면, 제대로 한 번 뽑아볼 일 아닌가? 반만년이 넘는 세월동안 이 나라를 지배해 온 원조보수도, 아류보수도 아닌 진짜 제대로 서민 챙겨줄 사람들을.

Posted by dalgona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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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달달달 2010/02/05 15: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바쁘신듯.....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