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생태보고서'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0/02/16 돈 없는 '찌질남'들을 위하여 (9)
  2. 2009/12/18 비정규직을 거부하는 사람들 (10)
  3. 2009/12/08 창의력 자격증 시대
  4. 2009/12/04 영어가 죽거나, 내가 죽거나 (2)

20대 생태보고서

6. 20대, 사랑을 뺏기다. - “형, 전 알렉스가 싫어요”

일반화 시킬 수 없는 이야기지만, 20대 남성들에게 ‘연애질’이 점점 위험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몇 해 전인가. 한 후배 녀석은 나와 술을 먹다가 여자친구와 싸웠다며 진심어린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형, 전 알렉스가 싫어요”

‘우리 결혼했어요’란 프로그램은 ‘현실감’을 강조하지만, 사실은 ‘판타지’를 자극하는 소재다. 특히 프로그램의 초반에 등장했던 몇몇 커플들은 그야말로 초현실적인 결혼생활로, 오히려 너무 빈곤한 설정이었던 정형돈-사오리조를 ‘현실적’이라며 돋보이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특히 신애와 가상 결혼생활을 했던 알렉스는 요리, 빨래, 청소 등 우수한 집안일 실력과 다정함, 그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이벤트로 누군가에겐 부러움을, 누군가에겐 절망감을 안겨주었다. 나 역시 다소 이 사람에게 절망감을 느꼈던 적이 있는데, 그건 내가 그다지 갖지 못한 다정함 때문이 아니라 이 사람과 나의 상황차이 때문이었다.

                              △그냥 '동화 속 연인'인 두 사람. 그것이 이 프로그램의 본질은 아니나
                           현실에서는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이 우결이라는 프로그램 말고도 드라마 등 TV에서 나오는 20대 남성들의 대부분은 안정적인 수입을 가진 정규직이거나 돈을 많이 버는 전문직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알렉스와 신애가 했던 결혼생활도 정작 결혼생활에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이 제외된 체 펼쳐지고 있었고, 또는 고소득 전문직이 시청자가 초현실적으로 받아들일만한 아름다운 집에서 그림 같은 신혼생활을 꾸릴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문제는 영향력이다. ‘픽션’에서 무언가를 만들지 못해낼 것이며, 무언가를 이뤄내지 못할 것인가? 드라마의 주 시청 층이 여성들이다 보니 그들의 환타지를 자극할 소재를 만들어내야 하고, 이것이 드라마 속 남자들과 현재의 남자들의 사이를 계속 갈라놓는다.

4시간 잔업까지 끝마치고 밤 10시가 넘어서야 집에 도착해, 다음날 다시 새벽 6시에 일어나야 하는 생산직 노동자가 1급 호텔 셰프같은 요리를 만들어 대접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며 한 달 150만원도 채 못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겐 여자친구가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오빠 감동이야!”라는 말을 듣고자 하는 욕심 전에 다음 달 막아야 할 카드값이 눈 앞에 아른거릴거다.

물론 여성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남성이 알렉스와 같은 ‘상황’에 놓이길 바라는 것은 아니”라는 말을 한다.(그 상황이 되면 좋기야 하겠지만) “그가 가진 ‘다정함’, 혹은 눈에 띄는 ‘노력’에 감동한다”고 말하곤 하는데, 여성들의 그와 같은 생각과는 별개로 실질적으로 ‘비교대상’이 되는 남성들은 나름 고민과 노력을 기울여도 여간 초라해 질 수 밖에 없는 자신의 모습에 좌절을 하곤 한다.

나와 술을 마셨던 친구도 여자친구와 함께 우결을 보다가 싸웠단다. 뭔가 유치한 것도 같지만 이 친구는 아무리 자기가 노력해도 시간과 돈 없이는 저런 이벤트를 해 주는 것이 불가능한데,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여자친구는 눈이 하트가 되어 바라보고 있으니 가슴이 아팠고, 쪽도 팔렸고, 그래서 “저렇게 좀 해봐”라는 애인에게 울컥 열이 받아 말을 다소 거칠게 했다는 것이다.

미래가 불투명한 학생, 내지는 20대 비정규직이 대부분인 내 주변에선 아무리 고민하고 노력해도 미디어가 내품는 포스에 비해 연애의 영역이 좁은 것은 사실이다. 나 역시 투덜거리는 그 친구에게 “뭘 집을 사 달라 그랬냐?, 그냥 작은 거라도 해줄 수 있는 걸 찾아봐”라고는 말했지만, TV속 환타지가 범람하는 세상에서 ‘작은 것’이 ‘큰 것’에 비해 얼마나 소외받고 있고 ‘작은 것’ 하기조차도 얼마나 어려운지, 나 역시 모르지 않는다.

게다가 TV와 현실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잘생긴 고소득, 부자집 남녀들이면서도 달달한 말과 행동을 하는 ‘간지남’들이 브라운관을 장악하는 상황인데 오히려 시청자들의 삶은 점점 더 살아가기 어려운 세상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 나가는 상황이니 이들은 어떻게든 TV속 판타지와 현실의 격차를 줄이고자 할테고 이 반작용은 더더욱 심해지고 있다.

이 말같지도 않은 말을 현실적으로 응용해 보자면, 시청자 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꽤나 많은 여성들이 남성들을 ‘이 땅에서 살아가는 노동자’의 한 명이자, ‘한 명의 인간’으로 바라보기 보다. (TV속 간지남들처럼)자신들의 삶을 덮어줄 수 있는, 또 그래야 하는 대상화 한다는 것이다.

점점 여친에 대한 불만들을 털어놓는 친구들에게선 여친이 자신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어렵고 힘든 일들을, 단순히 ‘나에 대한 노력’이란 명목으로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는 푸념은 꽤나 자주 듣는 이야기다.(그리고 이를 실행하지 못할 때 쏟아지는 ‘변했다’는 말도 꽤나 답답해들 한다)

심지어 “없는 시간 쪼개가며 힘들게 이벤트 했는데, 그 다음엔 뭐하냐, 더 준비한 거 없냐며 화낸 여친”이야기, “아무리 부족해도 소소하게 20평 정도 되는 아파트에는 살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초롱초롱 눈을 뜨며 바라보던 여친이야기라던지, “적어도 데이트 비용은 남자가 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소개팅녀 이야기라던지, 가끔 이런 극단적인 예들도 심심찮게 등장하기도 한다.

남자들이 점점 더 투덜거리는 것도, ‘남성인권보장위원회’라는 개그 프로그램이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몇몇 사람들은 남보원이란 프로그램을 두고 남성들의 곤궁한 삶에 대한 비판의 대상이 여성이 아닌 보다 구조적인 측면에 맞춰야 함에도 개그 프로그램은 너무 남녀간 각 세우기에 촛점이 맞춰져 있다며 비판하곤 하는데 이러한 비판이 납득되지 않는 건 아니나. 절망에 가까운 남성 20대 비정규직의 현실에서 너무 멀직이 느껴지는 이 사회의 구조만 비판한다고 살림살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푸념도 이해한다.

즉, 비판의 대상이 ‘여성’이어야 한다는 데는 나 역시 부정적인 입장이지만, 그렇다고 남보원에 열광하는 남자들에게 ‘찌질하다’는 딱지를 붙이는 것엔 더더욱 반대한다는 것이다. 사회구조적으로 봤을 때 아직 남성이 여성보다 강자인 것은 맞지만, 동일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입장에서 그들의 감당해내야 할 몫이 더 커진다면 그 또한 되짚어봐야 할 부분이다.

(다음 장에서 여성의 입장에서 얘기하겠지만) 집 하나 있어야 결혼할 수 있다는 현실, 하지만 정작 사랑하는 사람과 데이트를 하기 위해서도 돈이 있어야 한다는 현실, 그 두 가지 현실 사이의 모순은 많은 20대 비정규직 남성들을 번민하게 하고, 고통스럽게 한다. 그들이 더 섭섭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가까이있는 여성 20대 비정규직들이 자신의 삶의 처지를 이해해 주지 못할 때 있을 것이다.

TV라는 초현실적인 영역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순간 불행해 진다. 그러나 언제나 초현실은 현실을 압도하고 그 사이 현실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가정도, 경제도, 로멘틱도 점점 더 남성 쪽으로 기울여져 가는 미디어의 영향력이 계속 이대로 영향을 미칠 결우 20대 여성과 20대 남성의 연대는 요원해지고 ‘연애’한 번 하기 어려운 20대의 현실은 더 절망 속으로 빠져든다. 결국 미디어도 그들의 연대를 막는 셈이 된다.

ps. 우결을 싫어하진 않습니다. 전 즐겨보는 프로이여요~ ㅋㅋㅋ

Posted by dalgona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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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림동 박 2010/02/16 20: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나 찌질남인 저는 우결을 제대로 본적도 없고 (개인적으로 이런 과대 포장된 쇼 프로그램 보면서 박수치고 좋아하는 사람들 정말 미련해 보입니다. 참고로 저도 미련한 사람인지라 아주 가끔 보면서 웃을 때도 있습니다.) 알렉스에 대해서는 단지 주변 사람들을 통하여 들었을 뿐이지만 그 사람도 진심이라기 보다는 먹고 살자고 한것이 정도가 좀 과했다고 봅니다.ㅎㅎ 그나저나 우결은 정말 무서운 프로그램이네요.. 영화나 만화는 대놓고 초현실적 이야기를 다루지만 이런 프로그램은 현실에는 없지만 있을법한 이야기를 다루니까 더 그럴듯한거 같네요. 그런데 요즘 주변을 보면 여자친구 있는 남자는 별로 없는데 상대적으로 남자친구 있는 여자들은 많다.. 왜 그럴까?

    여성도 결국은 피해자다.

  2. 흠... 2010/02/19 15: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상이 너무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저는 그냥 먹고 사는게 막막할뿐...ㅡㅡ

  3. 예비 2010/02/19 16: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롤러코스터-남녀탐구생활'을 보면서 웃지만 말고 서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부담되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들좀 해봤으면 좋겠네요.
    롤코 이번트 편에---없는 시간 쪼개가며 힘들게 이벤트 했는데, 그 다음엔 뭐하냐, 더 준비한 거 없냐며 화낸 여친---요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ㅋㅋ정말 여자분들 대부분이 이런 마음이라면 남자들은 안습 ㅜ.ㅜ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에게 뭐든지 다 해주고 싶은게 남자입니다. 다만 현실적인 문제(시간,돈 등)가 되어야 가능한거죠 ㅎㅎ

  4. 달달달 2010/02/23 11: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 20대의 연애,사랑얘기는 재미있군요...마치 경험이 풍부하신듯.....ㅡㅡ
    글 쉬지말고 올리세요..

20대, 생태보고서

3. 저임금 정규직, 혹은 비정규직 - 비정규직을 거부하는 20대

혹시, 이런 논쟁, 해본 적 없는가?

“야야, 젊은 애가.. 어딜 가면 어때? 어디가서든 잘하면 되는 거지, 너무 처음부터 목표를 높게 갖지 마, 한 단계, 한 단계 천천히 밟아나가면 충분히 커 나갈 수 있는거야, 야. 뭐가 무서워서 망설이냐? 그냥 어디든 원서 내고!, 붙고! 거기서 열심히 해, 사회에서는 열심히 하는 사람이 된다니깐”

“웃기지마, 야 무조건 남은 시간동안 공부 열심히 해서, 일단 좋은 기업을 들어가야해, 솔직히 한 달 100만원 받는 직장이랑, 한 달에 250만원 받는 직장이랑 차이가 얼마나 나는 줄 알아? 시작부터 좋은데 가지 않으면 넌 평생 그 바닥에서 썪는다. 거기서 빠져나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몰라서 그래 니가”

술만 먹었다 하면, 어느 후배가 “나 이제 뭐먹고 살아요?”라는 질문을 던지고, 이 질문을 받은 사람들은 패가 둘로 갈리어 공박을 주고받는다. 물론 서로가 서로에게가 아니라 서로가 이 친구에게, 결국 이 친구는 양 측 얘기를 조용~히 경청하다. GG를 선언한다. “결국, 모르겠네요 ㅠㅠ”

‘시작은 좋은 술로’라는 CF 카피처럼, 사회생활의 시작을 적어도 남들이 알아주고 인정해주는, 돈도 많이 받고 직원복지도 빵빵한, 그래서 윤택한 삶을 살 수 있는 ‘있는 기업’으로 진입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비정규직을 거부한 자들’, 이 안에는 대기업 지망생도, 공무원 시험족도 포함된다.

                                           △비정규직은 아프지도 못하는 더러운 세상

뭐 거창하게 3어절이나 들였지만, 딱 2글자로 축약하면 이들의 정체는 ‘백수’되겠다. 통계적 가치는 전혀 없지만 내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20대 후반의 백수, 아니 정확히 얘기하면 실업률에도 포함되지 않는다는 ‘취업준비생’

결국 이렇게 보내다간 30대에 접어들면 비정규직으로라도 시작할 수밖에 없다는 걸, 이들이 모를 리가 있나? 잘 알고 있다. “나는 노는게 아니라 살기위해 이러고 있는거다”는 한 친구의 절규는 이를 잘 드러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시작’을 꿈꾸는 이유는 단순하다. 앞서 누군가 말한 바대로, 영원한 비정규직의 늪, 그게 두려워서다.

전편에서도 조금 설명한 바 있지만, 사실 ‘비정규직’이란게 벗어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낮은임금, 그리고 비정규직 특유의 격무(아니, 돈을 적게 주려면 일을 덜 시켜야 하는게, 그들이 말하는 ‘자본주의 논리’아닌가?), 그리고 노동유연성이란 멋진 이름의 ‘외주화’까지 덮치자, 비정규직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구멍은 ‘바늘구멍’이 되어버렸다.

공장노동자 A의 탐구생활이다. “6시에 일어나요. 씻고 준비하고 밖으로 나와 버스를 타고 공단으로 향해요. 이런 젠장, 오늘도 버스는 만원이예요, 같은 돈을 내고 타는데 누군 앉고 누군 서서가나 싶어요, 사람이 다 앉았음에도 세워서 버스를 태우는 기사아저씨가 나쁜사람처럼 보여요.

공장에 도착하자마자 출근카드를 찍어요, 이게 조금만 늦게 찍어도 시급이 날아갈 위험이 있어요. 오늘도 일찌감치 일어나 출근 10분전에 도착해 카드를 찍는 내가 자랑스럽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일해요. 부품을 끼는 일이예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쉬는 시간이래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점심시간 이예요, 급식을 주는데로 가요, 복날이라 닭을 준다더니 아직 머리에 피도 안마른 병아리를 푹 고아왔어요, 뼈까지 바스러지는 병아리를 음미하며, 이 닭을 과연 얼마나 삶아댄 걸까라는 생각에 빠져요.

오후 시간이에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잠깐 쉬어요, 쉴때는 역시 코카스 한 모금이 내 심금을 녹여줘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끝났어요, 근데 이런 염병할로겐. 잔업이 있데요, 그래도 돈을 더 버니 그려려니 해요

저녁을 먹고,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끼워요. 드디어 보람찬 하루 일이 끝났어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다시 버스를 타러 와요, 밤늦은 시간이라 그래도 자리에 사람이 많지는 않아요, 자리에 앉아 엠피삼을 귀에 꼽고 낭만을 느끼려 하는데 잠이 미친듯이 쏟아져요. 그래도 오늘은 영어공부좀 하다 자야겠어요.

집에 가자마자 씻어요, 씻고나오니 이런 젠장, 선덕여왕을 하고 있어요, 어차피 방금 목욕하고 나와 몸도 노곤하고, 지금 자리에 앉아봐야 집중도 안될 것 같으니 일단 선덕여왕을 보고 일하기로 해요. 선덕여왕이 끝나고 세상돌아가는 이치를 파악하기 위해 잠시 컴퓨터를 켜요, 헉. 장동건과 고소영이 열애를 한데요, 미친듯이 클릭해요. 그러다 시계를 보니 12시예요. 6시에 일어나야 하니 잠을 자야겠어요, 종일 서서 일했더니 다리가 저려요, 눕히지 않으면 내일 개고생할 것이 눈에 보여, 그냥 잠을 청하기로 했어요”

이렇게 5일이다. 그리고 주말잔업까지 하면 6일, 혹은 7일(즉, 다음주까지, 최소 13일 이상)을 일해야 한다. 아웃소싱 소속의 비정규직인데, 이런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새로움을 찾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일을 그만두거나 해야 하는데, 이 일을 그만두면 당장 다음 달 적금은 어떻게 메우나?

비정규직으로 살다보니 4대 보험은 개뿔, 만약 4대 보험이 적용되어 다행히 실업연금이라도 탈 만하다 생각이 들면, 이 실업연금을 타는 것도 까다롭다. 회사에서 ‘잘려’야 하니까. 옘병. ‘그만두’어서는 안된다나? 이를 증명하기 위해 회사에 가서 “나 잘린 걸로 해달라”고 졸라야 하는데, 회사 찾아가기도 민망하고, 회사가 해줄지도 모르겠고, 그냥 포기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또 하나. 비정규직 경력으로는 이력서에 나름 ‘경력사항’을 기술하기조차 민망시렵다. “자네는 학교 졸업하고 3년 동안 특별한 경력이 없는데, 이 때 뭘했나?”라 물으면 “네 저는 비정규직 노동자였습니다”라고 답해야 하나.

취업준비생 B의 고민도 여기 있었다. 돈을 벌어야 하는데, 일단 어디라도 들어가서 일해야 한다는데 이 일이 뭐 하나 내 경력에 도움 되지 않을 것 같은 느낌. 그리고 비정규직으로 일해야만 한다면 내가 일하고 싶은 직종에서 시작하고 싶은데. 이게 뭔 법칙인지 꼭 그런 곳은 ‘정규직만 취급’한다며 불평하곤 했다. 비정규직은 인생에서 버리는 시간이라며.

“쯧. 젊은 나이에, 어디가면 일 할 곳이 천진디”라며 혀를 차는 어른들에게 “네 저는 일 할 곳 천지인 곳에 가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성실히 일하고 있습니다. 따님과 결혼을 허락하시겠습니까?”라고 물어보자. 모든 부모들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아마도 “지랄하고 자빠졌네”란 소리가 나올 것이다.

B의 두려움에는 내적인 고통과 함께 외적인 고통도 있다. 좋지도 못한 대학이지만, 어쨌건 대학까지 나와서 월 120정도에 불과한 비정규직 노동자로 들어가면, 쏟아지는 주변의 애정어린(?)시선이다. ‘루저’란 딱지 아마도 그것.(키 180cm에 ‘루저’딱지를 붙여놓았을 때 발끈했던 대한민국 남성들이 우리가 실질적으로 겪고 있는 비정규직을 대하는 방식은 왜 이리 쿨한가!, 아직도 노력여하에 달려있다고 믿는가)

비정규직을 거부하는 20대. “그래도 열심히 살아야지”라며 혀를 차는 사람들이 있을 거다. “놀면 뭐해”라며 욕하는 사람들도 있을거다. 뭐 천성적으로 오지랖이 넓어 그들을 안쓰러워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욕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그들이 비정규직에 대해 느끼는 공포, 그거 다 우리가 만들어놓은 것들 아닌가?

비정규직 노동자도 비정규직 노동자를 한심해 하는 세상, 당신은, 이 대한민국 땅에서 비정규직으로 살 자신이 있나?

Posted by dalgona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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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18 17: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품 끼우기면 그나마 전자회사..여자도 많고..힘도 덜 들고..덜 위험하고..
    최상의 직군이군요..대신 급여가 좀 작지요ㅠㅠ 어쨌든 그런곳 구하기도 쉽지않은데..ㅡㅡ

  2. 만j.a자 2009/12/18 18: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 경리사원 3,4명이 월말에 야근 하면서 하루종일 걸리던 일이 요즘은 한명이 커피 마셔가며 컴퓨터로 두들기면 반나절에 끝나지요. 어디서나 있는 평범한 인력이 필요 없는 시대 입니다. 영국 산업혁명 이후 각 국가들의 고도 발전시기에 수 많은 노동자들은 항상 비참하게 죽어 나갔지요.. 그리고 우리는 그때 죽지 않고 살아남은 승리자들의 후손입니다. 지금도 마찮가지 입니다. 살아남으면 후손을 남기고 아니면 죽는 것이고.. 이것이 반복되어온 역사적 흐름 입니다.. 제 말이 100% 정답은 아닐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른 의견이 있으시면 댓글 달아주세요.

    • 만j.a자 님 보시오. 2009/12/19 14:05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죠?

      이 세상의 이치가 약육강식이니까 비정규노동자가 되면 이치에 맞게 죽어라?

      이런분들 덕분에 세상은 점점 답이 없어지는 듯해서 정말 안타깝군요.

    • 만j.a자 2009/12/20 10:41  댓글주소  수정/삭제

      하고 싶은말 위에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분들이란 누구를 말하는지?.. 왜 답이 없나요? 전 다른분들 의견을 듣고 싶은 것이지 일부러 앞 뒤도 없는 비판을 받자고 댓글 쓴거 아닙니다. 구체적인 의견과 타당한 비판도 없이 뭉뚱그려서 그냥 안타깝기만 하고 별다른 의견은 없으시군요. 저도 안타깝습니다.

    • 흠.. 2009/12/22 10:23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람들이 항상 잊고 있는것이 있습니다..필요하지 않은 인력이란 없죠. 비록 단순한 스티커 붙이는 작업이라도..
      아무리 기계화가 됐어도 기계가 해내지 못한는 일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단순하다고 해서 힘만쓰거나 지저분하고 위험하다고 해서 그런일들을 천시하죠. 점점 육체노동의 가치를 잊어가는것 같습니다. 그나마 노동자를 보호하는 사회적 장치로 최저 임금제나 아니면 근로법에 나와있는 1인이 들수있는 무게 한정등이 있지만..여러모로 교육제도나 사람들 인식이 아직은 많이 부족한게 안타깝네요...

    • dalgona82 2009/12/29 14:07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ㅋㅋㅋ 후손까지 뭘.. ㅋㅋ

  3. ..!.. 2009/12/22 09: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격론은 그만하고 우리 코카스(게시자 주 : 박카X와 맛이 비슷하지만 양이 한모금 정도 더 많고 가격은 박카X와 같은 소중한 건강기능음료. 절대 유사품은 아니라고 자부하지 않음)나 한 병 마십시다. 마트에서 파는 것을 내가 보았소.

  4. HD 2009/12/30 01: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규직만 사람인 더러운세상!

20대, 생태보고서

3. 저임금 정규직, 혹은 비정규직 - 취직 섭렵기(2) 창의력 자격증 시대


“뭐야, 무슨 놈의 창의력이야 -_- 이걸 어떻게 증명해, 자격증이라도 있어야 하는거 아냐?”

한 후배의 푸념에 뿜어버렸다. ‘창의력 자격증’, 아니 대체 누가, 창의력을 척도해 자격증으로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러한 형용모순은 말도 안 되는 지금의 시대상을 정확히 반영하는 말이었다.

‘스펙’이란 말이 떠오른 것이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군대를 다녀오기 전까지 이 ‘스펙’이란 단어는 그다지 빈도 높게 사용되는 단어는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말이 서서히 20대를 ‘잠식’하더니, 이제 20대를 ‘질식’시키고 있다. 이제는 취직할 때는 물론, 결혼할 때, 그리고 아이를 낳을 때도 필요한 말이 되었기 때문이다.

친구의 친구(즉 ‘남’), 대기업 입사를 꿈꾸는 A는 대학2학년 때부터 본격적인 ‘스펙’관리에 돌입했다. 나름 기본스펙(대학)이 탄탄한 그는 대략 초봉 3,800만원 가량의 럭셔리한 삶, 인생의 지름길을 돌파해보자고 결의했고 이를 위해 대기업 입사에 필요한 모든 것을 스캔, 구체적 로드맵을 만들어 고행의 길을 내딛었다.

그는 영어학원은 물론, 자신의 전공을 더욱 빛나게 해줄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컴퓨터 학원을 다녔고, 기어이 대학 4학년 때까지 바람직한 스펙의 형태를 갖춰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대학 4학년, “나 뭐해?”라고 묻는 한심한 청춘들에게 썩소 한 방 날리며 평소 관심 있었던 엘 모 대기업에 입사를 지원했다.

그는 모집요강 맨 위에 적혀있는 “창의력 있는 젊음의 도전을 기다립니다”는 문구를 가벼이 지나친 후, 기본입사자격과 자신의 스펙을 비교했고, “해온 것이 있는데, 뭐 아, 이 정도라면”이란 자신감으로 당당히 인터넷을 통해 이력서를 제출했다.

△인간이 수치화 되는 시대, 게임같은 세상

그런데 이런 제길슨. 경쟁률이 300대 1, 그가 술도 안마시고, 심지어 CC도 안해보고 모든 대학생활을 바쳐 얻어냈던 스펙은 다른 경쟁자 300명도 역시 얻어낸 스펙이었다. 그래, 대학생활을 바쳐 얻어낸 스펙인데, 이제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은 것이다.

그리고 그는 다시 한 번 밤낮없이 공부해가며 시험을 치렀다. 그리고 떨어졌다. 다시 공부하고 가산점을 붙일 수 있는 자격증을 물색했다. 또 떨어졌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남들은 안 따는 자격증을 물색했다. 떨어졌다. 떨어졌다. 떨어졌다. 붙었다. 면접에서 떨어졌다.

친구와의 모임까지 거부하며 인생 목표를 향해 전력질주를 하던 그를 내 친구가 모처럼 다시 만난을 때는 그야말로 ‘쩔어’있는 상태라고 했다. 명문대에 진학한 후, 자신만만함을 가지고 살던 그가. 자신은 꿈이 있다며 그리고 그 꿈을 향해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며 언제나 큰소리쳤던 그가, 이제 30대를 눈앞에 두고 얻은 계급은 ‘백수’다. 토익 900, 수많은 자격증을 가진 ‘백수’.

“어디 작은 기업이라도 들어가”라고 했지만, 소용이 없다. 이미 전쟁을 통해 얻어낸 수많은 스펙(그 스펙에 발려진 돈을 계산해보라!)을 가지고 중소기업에 들어갈 자신과 용기가 없었다. 레벨이 그리 높은데 경험치도 안나오는 필드를 뛸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모두 그가 좋은 기업에 취직할 것이라 했고, 그 역시 그렇게 믿었다. 그 믿음만큼. 그는 절망했다.

절망적인 일이다. ‘스펙’을 강요하는 사회, ‘스펙’이 필수된 사회에서 20대들은 필수화된 스펙을 취득하기 위해 아등바등 살고 있다. 그렇게 따낸 스펙으로 얻어낸 것은 ‘대기업에 입사 지원 자격’, 거기에 써먹지 못하면, 그렇게 얻어낸 스펙은 무용지물, 휴지조각이다.

애초부터 연봉 3,800만원과 연봉 1,500만원의 출발선이 인생 전체를 규정한다고 믿고 살아왔다. 그래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왔다. 그런데 그건 그 뿐만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런 세상에서 살고 있는 20대는, ‘스펙’을 신봉해왔다. 그런데 이제 그들은 또 다른 ‘스펙’을 요구받고 있다.

기업님들은 재수 없게도 ‘스펙’이 보편적 기준이 되자 새로운 ‘스펙’을 요구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창의력’이고, 이 창의력도 '스펙'으로 만들었다. 이 시대가 그렇다. 대학가 게시판에는 ‘등록금 인하’를 요구하는 대자보 대신 붙어있는 공모전 포스터, 인턴 등 기업체험프로그램 안내가, 그리고 스터디 모임 홍보 포스터가 붙어있다. 이것이 새로운 ‘스펙’의 시대를 연 요소다. 하물며 자원봉사까지 ‘스펙’으로 관리되는 현실이니.

엠비님과 한나라당님들이 주구장창 말하는 ‘글로벌 스탠다드’, 그리고 여기에 맞는 ‘글로벌 인재’는 자신의 모든 능력을 수치화해서, '스펙'이란 이름의 자격증 문서로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인재를 말하는 것인가?(입학사정관제가 생기자 그거 관리하는 학원이 생겼다. 오 마이 갓)

그래 솔직히 이제 ‘면접 때 말 잘하는 법’ 까지 학원에서 배우고 책으로 나온 상황에서, 이 나라가 주구장창 강조하는 기업들이 요구하는 ‘창의력 배양’은 거짓말이다.

물론 잔디밭에 누워 책 보고, 술 마시고, 기타치며 노래한다고 해서 물론 창의력이 불끈불끈 샘솟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꽉 막힌 도서관 한 귀퉁이에서 ‘4시간 자면 대기업, 5시간 자면 대기자’ 포스트-잍 붙여놓고, 문제집 술술 풀어대는 것이 창의력 배양에 보탬이 될 리는 없다.

20대 들이 멋쩍은 창의력보다 확실한 최소기준인 ‘스펙’사냥에 더 열을 올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게 더 쉽고, 그걸 해야 잘 되니까. 그렇게 스펙을 만들어 자신을 수치화 시켜야 한다. 그리고 그 이후 수천명, 수만명이 응시하는 일반적인 대기업 시험에서 1차 저지선을 통과하기 위해 ‘객관식’이라는 참호를 격파해야 한다.

참호격파는 전술이지 전략이 아니다. 그들은 '족보'와 '학원' 등으로 이미 그려진 전술을 따라 움직이는 보병부대에 불과하다. 그러니, 그들에게 창의력이란 좀 나중의 얘기일 수 밖에.

추천 한 방으로 세상이 따뜻해집니다. 하하하하

Posted by dalgona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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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생태보고서

3. 저임금 정규직, 혹은 비정규직 - 취직 섭렵기(1) 영어와 나, 둘 중 하나는


내 평생 영어를 부여잡은 시간만 계산해 보자. 중학교 일주일에 4회, 45분 씩, 방학제외 약 40주. 고등학교 일주일에 8회(보충까지) 40주, 대학교 영어교육 학점 6학점(최소한만 들었다능;;) 일주일에 1회, 1년 반 강의 2시간 약 105주, 그리고 사회 나와서 나름대로 매일매일 했던 영어교육까지 합하면.

연애도 하고 운동도 좀 해야 할 내 소중한 인생 중 이 ‘영어’란 놈이 혼자 잡아먹은 시간만 해도 계산불가. 어마어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처음 받은 토익 점수는.. 크윽.. 그리고 난 혹여나 다시 한 번 시험을 본다면 이 점수조차 넘지 못하는건 아닐까 무서워, 여전히 토익책을 공부하면서도 토익시험은 보지 못하고 있다. 이정도면 울렁증을 넘어 진정한 공포다.

남들은 문제집에서 정해주는 코스만 따라가면 ‘3달 완성’으로 900점은 넘는다는데, 대체 영어 잘하는 이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미국인인가?(영어 원어민 강사를 하고 있는 아일랜드의 한 20대 친구는 우리나라 토익이 왜 이렇게 어렵냐며 짜증내 했다) 아니, 이들은 둘째 치고, 그럼 나름 노력해 봐도 영어가 안 되는 나의 정체는 무엇이냔 말이다.

                        △사실 영어완전정복은, 아직까지 내 꿈이다.

자기합리화를 시켜보면, 나는 사실 어학에 소질이 없다.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당위성을 맞받아칠 수 있는 궁색한 논리는 이것뿐이다. 똑같은 단어를 달달달 외워도 하루만 지나면 처음 뵙는 단어다. 저 단어는 나에게 인사하는데 난 초면이라 어쩔 줄 몰라 하며 다시 상호소개에 나서지만 여전히 내일이면, 우린 생판 남남일 것이다.

‘다양성의 시대’에 개인의 소질과 적성과는 상관없이 단지 ‘영어’하나가 정규직의 척도로 자리 잡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나 같은 현실은 완전 젠장이다. “다양성은 어디에 있냐”고 항명해 봐야 소용없다. 외국어는 다양하니까 중국어, 일본어, 인도어, 아랍어...... 그야말로 ‘외국어’의 시대, 그것도 ‘점수’로 관철되는 어학. 다른 말로 ‘스펙’의 시대다.

아무리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아야 저임금 정규직의 삶을 받아들여야 하는 한 ‘어학 패배자’의 푸념일 뿐, 내가 이 어학의 그늘에서부터 벗어날 출구는 없다. 다시 공부를 하던, 안하던, ‘20대 생태’에 있어 영어(내지는 외국어)는 먹이사슬의 선을 가르는 주요한 기준이기 때문이다.

그 생태계의 강자로 올라서기 위한 20대들의 몸부림에 영어는 필수다. 집에 토익책 한 권 없는 20대를 본 적이 있던가? 이렇게 모든 20대가 영어에 달달 매달리니 영어점수는 오르고 시험은 더 어려워지고, 도전은 다시 거세진다. 영어는 ‘점수를 따기 위한’ 수단이 되고, 운전면허 시험처럼 정해진 공식과 틀이 제공된다.

이런식으로 익숙해진 영어이다보니. 토익에 높은 점수가 나오더라도, 회화가 되지 못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공식’은 알아도 ‘응용’은 못하는 셈이다. 그나마 요즘에는 ‘말하기 면접’을 보는 기업들이 많아졌지만 이마저도 “영어 면접 잘 보는 법”이란 제목으로 서점에 전시되어 있다.

예전 대학에서 고난의 행군 끝에 떠났던 유럽 배낭여행 당시 ‘나 영어 좀 한다’는 20대 남성을 만난일이 있다. 그와 여행에 대한 정보를 좀 나누던 중, 영어이야기가 나왔고, ‘토익(당시 영어시험이었는데, 꽤 옛날이라 잘 기억은 안난다 -_-)에 꽤나 자신 있었다’는 그에게 은은한 존경과 찬사어린 눈빛을 쏘아대며, 입으로 부러움의 따발총을 쏘아댔다.

그런데 그런 그가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이역만리 낮선 외국땅에 내렸을 당시, 공항입국심사에서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습기찬 안구만 굴려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아! 나나 쟤나란 생각에 영어에 대한 허무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 사람은 누군가 “하와유”라는 말을 걸어올 때, “파인 쌩큐 엔유?”를 외치지 않으면 그가 날 목 졸라 죽일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며, 그렇게 10년을 깨알같이 공부해 와도 결국, 외국에서 3일 만에 트인 귀와 입이 더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사실, 그것도 옛이야기다. 이런 상황이 뉴스에도 나오는 ‘너무나 뻔한 이야기’가 되어버리자. ‘영어’의 차별화를 위해 ‘고급화 전략’이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남들과 다른”, 좀 더 취업에 유리한 스펙을 위해 등록금도 혼자 댄 적 없는(아니, 우리나라에서 댈 수도 없는) 친구들이 영어공부를 위해 이역만리 타국으로 떠나는 상황이 그거다.

‘어학연수’라는 개념이 생긴 것이다. 수많은 선배들 중 ‘어학연수’를 다녀온 사람은 1~2명에 불과했는데, 몇 되지도 않는 후배들 중에서는 7~8명이나 되었다. 이들은 필리핀으로, 영국으로, 미국으로, 호주로, 캐나다로, 영어를 쓰는 곳이라면 파주영어마을을 제외한 어디라도 날아가 그곳에서 책 몇 권을 양 손에 쥐고 도도하게 걸으며 ‘유학생’의 티를 내고 다녔다.

토익책 보다 더욱 비싸고, 대신 더욱 고급스러워진 이 방법이 다시 유행이 되고, 부모님들은 “내 자식이 어학연수를 가지 못해, 삼성전자 면접 2차, 세 번째 면접관의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못하면 어쩌지”란 근심과 걱정을 안고 살아간다.

부모님들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인생 한방에 훅 갈지 모르는 근심과 걱정을 안고서도 수백, 수천만원을 ‘투자’의 개념으로 아이들을 떠나보내고 스스로 ‘새(기러기)’가 된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곳에서 “세계인은 나빼고 친구”임을 느끼며, 외로움을 달래줄, 함께 타향살이 하는 한국친구들과 어울린다. 열심히 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A역시 캐나다 어학연수를 6개월여 다녀왔다. 부모님께 가겠다고 했고, 부모님은 고민 끝에 ‘밀어주기’위해 보냈다고 한다. ‘대학’을 가는 것이 아닌, 말을 떼기 위한 ‘연수’라. 간 학교에는 많지는 않아도 몇 명의 한국친구들이 있었고, 그 곳에서 그 동네 유치원에서 가르친다는 영어교육을 받고 한갓지고 여유롭게 생활했다.

캐나다로 ‘어학’을 배우러 연수를 다녀왔다는 그에게, “그래, 캐나다는 조사의 용법이 어떻게 되던가”란 질문이 차마 나오지 않아, “거기 멋져?”란 질문을 날려댔고, 그 역시 “록키산맥이 죽이더라”며, “또 한 번 가고 싶다”며 호들갑을 떨면서도, 딱히 거기서 무엇을 배워왔는지, 어떤 일을 했는지 말을 하진 않았다.

물론 다녀오는 사이에 안구정화도 시키고, 세계가 참 오라지게 넓다는 진리도 깨달으며, 영어실력도 일취월장 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넓은 세계에 다녀온 뒤 “여기서 뭐할꺼야?”란 질문에 “취업해야지”라고 답하는 걸 보면, 6개월 동안 소요된 약 500만원의 금액이 아깝다는 느낌도 조금, 아주 조금(내 돈 아니니까) 들기도 했다.

김영하씨 소설에는 “역대 최고의 스펙을 가진 20대가 지금 사는 모습을 보라”는 문구가 나온다. 다양한 책도 읽으면서 교양을 쌓고 창의력을 발달시키면서 공모전에도 나가고, 또 그러면서도 영어를 잘하면서 제2외국어도 어느 정도 할 줄 아는 것을 바라는 건 아무리 봐도 욕심이다. 그런데 기업들은 이를 요구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20대들은 이를 해내려 한다.

그러다 보니 온통 ‘참고서’다. 토익 참고서, 토플참고서, 일어 참고서, 면접 참고서, 논술 참고서.. 그렇게 남이 정해준 가이드라인만 믿고 10대를 보냈듯, 20대를 보내고 있는 것이 지금 사람들의 현실이다. 이러니 그야말로 역대 최강의 ‘스펙’을 지닌 지금의 20대는 얼마만큼 성숙한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물론 신자유주라는, ‘세계화’라는 것이 영어의 가치를 높였고, “이왕이면 외국어 잘하는 녀석”이 상한가를 치는 건 당연한 경쟁의 원리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목적도 없는 영어공부를 하는 20대, 쓸모도 없는 토익점수를 요구하는 기업, 물론 이 모습이 전부는 아니지만, 이 모습 또한 20대들의 현실 중 하나라는 것이 왠지 씁쓸하다.

특히 나 같은 ‘영어무능력자’들은. 이 대한민국 땅에서, 영어와 나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한단 말인가.

***

PS. 전 편 "'모모모'사이트에 절망하셨나요?"가 누군가에 의해 권리침해 신고를 받아 블라인드 처리된 상황입니다. 국내 최대 취업포털이 보잘 것 없는 제 글로 인해 명예가 훼손되었다고 하는데 글쎄, 딱히 무슨 명예가 훼손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혹시 "그 곳도 돈을 버는 기업"이라는 것이 명예훼손인지, "돈 주는 회사의 크기대로 어떤 정보에도 불구하고 전면에 배치한다"는 것이 명예훼손인지 알 수 없군요. 이와 관련한 생각은 이후 정리해 올리겠습니다.

Posted by dalgona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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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니발 2009/12/19 18: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인이 영어 잘해야 하는 더러운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