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꿀벌의 우화’가 예견하지 못한 것들
    [정의로운 경제> '생태경제사'-3 : 300년 전의 우화
        2023년 09월 11일 10:0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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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한한 물질적 소비를 진보로 간주한 기원

    환경역사가 존 맥닐(John McNeill)은 “경제성장을 우선으로 보는 생각은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아이디어였다”고 현대사회의 특징을 지목했지만, 이 배경에는 끊임없는 물질적 생산과 물질적 소비를 바람직한 것으로 여기고 진보로 간주하는 발상들이 놓여있다. 끊임없는 경제성장과 동의어라고 볼 수 있는 무한한 물질적 생산과 소비의 팽창은 현재 선진국의 상징이자 생활수준 향상의 지표다. 그리고 이른바 지위재라고 불리는 더 큰 주택, 더 비싼 자가용, 더 다양한 사치품의 소비, 더 먼 거리의 여행 등은 사회의 중산층 이상으로 올라섰음을 알려주는 표시이기도 하다.

    이미 1970년대부터 이스털린 같은 경제학자가 행복과 물질적 소비가 밀접하게 연관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해왔지만, 더 많은 물질적 소비가 더 나은 삶과 동일시되는 경향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물질적 소비 확대의 대가로 기후위기와 생태위기가 초래되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도대체 언제부터 우리가 끝없는 물질적 소비를 삶의 질 개선과 동일시하게 되었을까?

    이 대목에서 아직 생태위기가 감지되기 훨씬 전이었던 1714년, 네덜란드 출신의 의사로서 영국에서 활동했던 버나드 맨더빌(Bernard Mandeville)의 <꿀벌의 우화: 개인의 악덕, 사회의 이익(The Fable of the Bees: private vices, public benefits)>라는 책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꿀벌의 우화>는 1705년 풍자시 “투덜대는 벌집, 또는 정직해진 악당들”을 토대로 머릿말과 주석을 덧붙인 것인데, 여기서 맨더빌은 낭비적 물질적 소비의 경쟁적 추구가 국민경제와 사회를 이롭게 한다면서 찬양했기 때문이다.

    개인의 사치와 낭비가 사회의 이익이다?

    맨더빌에게 악덕은 범죄라기보다는 사치와 방탕, 이기심, 탐욕, 쾌락 등 물질적 욕구의 무한한 추구를 의미했는데 당시에 미덕이라고 꼽았던 금욕, 겸손, 연민, 자선, 자기희생, 공공심과 비교되는 개념이었다. 맨더빌은 사회구성원들이 사치와 방탕을 추구하여 물질적인 과소비에 탐닉하면 결과적으로 오히려 국민경제의 번영으로 이끌어질 것이라는 주장을 꿀벌세계에 비유하여 매우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예를 들어, 그는 사치와 방탕함이 대규모의 소비수요와 일자리를 만들어냄으로써 국민경제를 성장시킬 것이라며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사치는 가난뱅이 백만 명에게 일자리를 주었고, 얄미운 오만은 또 다른 백만을 먹여 살렸다. 시샘과 헛바람은 산업의 역군이니, 그들이 즐기는 멍청한 짓거리인 먹고 쓰고 입는 것에 부리는 변덕은, 괴상하고 우스꽝스러운 악덕이지만, 시장을 돌아가게 하는 바로 그 바퀴였다”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이렇게 악덕은 교묘하게 재주를 부려 시간과 일이 더해지면서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 놓았다. 이것이 참된 기쁨이요 즐거움이요 넉넉함이어서, 그 높이로 치자면 아주 못 사는 놈조차도, 예전에 잘 살던 놈보다 더 잘살게 되었으니 여기에 더 보탤 것은 없을 것이다”

    그는 이런 식으로 낭비적인 물질적 소비에 탐닉하는 악덕으로 가득한 사회가 전체적으로 보면, 물질적 성장이 빠르게 일어나고 일자리도 풍부해지는 ‘낙원’이라고 표현하면서, “사람의 악덕을 솜씨 있게 다룬다면 전체가 위대해져서 세속적인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가감없이 주장했던 것이다.

    반면에 만약에 악덕으로 가득한 사회가 일순간 돌변하여 절제와 검소함이라는 미덕을 받아들이게 되자마자, 쓰던 물건은 고쳐서 오래 쓰고, 낭비적인 소비는 줄이는 등 “해마다 엄청나게 돈을 써대던 그런 놈들이“이 사라지면서, ”그들 덕에 먹고 살던 수많은 놈들“이 갑자기 먹고 살길이 막연해지고 결국 그 꿀벌 사회는 몰락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300년 전에 쓰여진 <꿀벌의 우화>에는 생태위기에 개의치 않고 대량소비를 찬양하는 풍조의 원형이 담겨 있다.

    버나드 맨더빌의 ‘꿀벌의 우화’

    더 많은 물질적 소비와 생산은 어디까지 가야 할까?

    낭비와 방탕함을 찬양한 맨더빌의 주장은 기존 봉건사회의 가식적 윤리와 위계적 질서에 대한 풍자도 담고 있었던 탓에, 당시에도 “사치와 뽐내는 마음을 공공복지에 필요한 것이라고 부추긴 혐의”로 영국에서 고발되는가 하면, 프랑스에서는 책이 불살라지기까지 하는 등 파란을 일으켰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자본주의가 번성하면서 개인의 이기심과 탐욕 덕분에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생각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세대를 이어 전수되었고, 21세기 대량소비사회에서 가장 환영받고 있다. 그리고 맨더빌의 풍자는 아담 스미스에서 칼 맑스, 그리고 존 메이너드 케인스에 이르기까지 역대의 이름있는 경제학자들이 한 번쯤 거론하는 주제로 남게 되었다.

    예를 들어, 케인즈는 <일반이론>에서 과도한 소비축소와 저축성향의 부정적 영향을 문제 삼으면서 맨더빌을 인용하기도 했다. 케인즈는 “어느 번영하던 공동체에서 저축을 늘리기 위해 시민들은 모두가 갑자기 사치스러운 삶을 포기하겠다고 마음먹고” 국가도 지출을 줄이기로 결심한다면 경제는 크게 위축되고 시민들에게 궁핍이 찾아올 수 있다면서, ”개인과 국가 둘 다 극단적인 절약에서만 건전한 치유책을 발견할 수 있다는” 당대의 경향을 비판했다.

    그렇다고 케인스가 물질적 생산의 무한팽창과 무한소비를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가정했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그는 1930년에 쓴 짧은 에세이 <손자세대를 위한 경제적 가능성>에서 물질적 생산과 소비가 일정한 단계에 이르면, “미래에는 더 이상 경제적 문제가 인류의 영구적 문제가 아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그 즉시 남아돌게 되는 에너지를 모조리 비경제적 목적에 바치는 쪽을 더욱 원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던 것이다. 케인즈는 물질적 소비의 한계를 잘 알고 있었던 셈이지만, 그의 뒷세대 경제학자들은 유감스럽게 그러질 못했다.

    무한한 물질적 소비 팽창은 사회에도, 생태에도 해롭다.

    만약 21세기 버전으로 <꿀벌의 우화>를 다시 쓴다면 이런 이야기들이 덧붙여질 수도 있을 것이다. 사치와 낭비라는 악덕이 어느 순간까지는 꿀벌들에게 더 많은 생산과 더 많은 일자리를 주었지만, 곧 꿀벌들 주위에 더 이상 자신들이 원하는 꿀을 찾을 수 없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고, 이들은 이제 제한된 꿀을 놓고 갈등하고 다투다가 멸종해버리게 되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 현실적으로 유행하는 것은 18세기 버전의 <꿀벌의 우화>다. 물질적 풍요를 계속 누리면서 환경에 주는 충격을 ‘기술혁신’으로 완화시킬 수 있다는 현대 주류정책의 신념은 어쩌면 맨더빌의 발상에 여전히 기대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저성장에서 벗어나겠다고 무리하게 불필요한 공항건설 프로젝트를 강행한다거나, 부채를 끌어서라도 소비하도록 조장하려는 정책들도 마찬가지다.

    기후위기와 생태위기 시대에는 더 이상 사치와 낭비, 방탕함이 만들어내는 소비수요를 경제성장의 엔진으로 삼아 번영을 이루겠다는 발상이 통할 수 없는 시대다. 맨더빌의 아이디어는 잘 봐주어도 기본적인 물질적 생산이 사회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상황에 도달한 순간 폐기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순간 맨더빌의 비아냥을 샀던 미덕이 복권될 필요가 있다.

    때문에 지금 많은 생태경제학자들은 모든 개인들이 개별적으로 사적 풍요로움을 무한히 추구하는 대신에, 사적으로는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잇는 ‘사적 충분함(private sufficiency)’를 추구하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공적 풍요로움(public affluence)’를 정책으로 뒷받침하자고 한다. 이것이 기후위기와 생태위기를 막으면서 삶의 질을 유지하는 길이 될 것이다. 그래서 생태경제학자 리처드 하워스(Richard Howarth)는 21세기 경제의 작동방식으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경제는 지구 한계 안에서 머물러야 하는 동시에, 윤리적이고 사회적인 목표에 복무하는 방법으로 작동되어야 한다.”

    *<정의로운 경제> 연재 칼럼 링크

    필자소개
    녹색전환연구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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