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산업혁명의 진짜 원인은 무엇?
    [정의로운 경제]'생태경제사'-4 : 에너지의 관점
        2023년 09월 13일 03:1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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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경제활동은 사실상 에너지 변환과정이다.

    최고 에너지 전문가 바츨라프 스밀(Vaclav Smil)은 “에너지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움직이는 ‘보편적 통화(universal currency)’”라고 강조했는데, 물리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세상 만물의 변화는 결국 에너지의 변화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당연한 진실을 표현한 것이다. 인간의 경제 활동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독일의 저명한 에너지 전문가 헤르만 세어(Hermann Scheer)는 이렇게 짚었다.

    “모든 경제 활동은 변환된 에너지를 이용해서 물질을 하나의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변환하고, 이렇게 만들어진 재화를 분배하고 소비하고 이용하며, 또한 변환된 에너지의 도움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달리 말하면, 에너지의 투입량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약간의 효율 개선으로 얻는 차이 정도를 제외할 경우, 절대로 경제적 산출 역시 달라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산업혁명 이후 인류의 어마어마한 경제적 산출의 증가 = 경제성장은 그를 가능하게 만든 에너지 투입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킨 결과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런데도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경제 발전에 투입되는 원료와 에너지 투입을 일상적으로 과소평가하는데, 이에 대해 헤르만 세어는 이렇게 비판했다.

    “근대산업혁명이 개시된 이래 경제를 지배했던 사상과 실제 모델은 경제와 관련된 물음들을 다룰 때, ‘어떤 자원을 이용하는가’하는 핵심 물음을 무시했다. 자원, 즉 에너지와 원료는 모든 경제 활동의 조건으로, 이것 없이는 아무 일도 안 된다. 자원의 접근성은 다른 어떤 것보다 더 경제발전의 부침을 결정한다. 이를 위해서 약탈전쟁이 일어났고, 민족들이 억압 받고 착취 당했으며, 지금도 여전히 전쟁과 억업과 착취가 자행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점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 안 된다”

    왜 하필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을까?

    그러면 인류의 경제발전에서 에너지가 얼마나 중요한지의 상상적 사례로서 18세기 후반 영국의 산업혁명 원인에서 찾아보자. 잘 알려진 것처럼, 영국은 1700년에서 1870년 사이에 전체 경제규모가 10배로 증가했고, 인구는 4배가 늘어났을 만큼 폭발적으로 경제성장을 하면서 세계 산업 생산을 주도했다. 그 배경에서는 1800년 전후 시점에서 일어났던 영국의 산업혁명이 있다(물론 당시의 이 같은 엄청난 성장도 한국경제가 1960년 이후 60년 동안 60배 이상 커진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도 있다).

    그러면 이 같은 산업혁명이 왜 18세기 후반에 유럽의 다른 지역이 아니라 영국에서 일어났을까? 여기에 대해서는 지금도 논쟁이 끝나지 않았다. 경제학자 마크 코야마(Mark Koyama)는 <부의 빅 히스토리>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날 당시 영국 사회가 “시장 지향적 사회 분위기, 그에 따라 달라진 소비 양상, 국내 경제의 규모, 상업적 농업, 문화와 사회 규범, 대서양 경제의 중요성 증대”등 복합적인 요인들로 인해 산업혁명에 성공했다고 평가한다.

    그림 영국의 산업혁명

    좀 더 구체적으로 코야마의 얘기를 따라가 보자. 우선 “1700년 영국은 완전히 발전된 시장경제 국가였다. 국내 시장의 확대와 통합은 18세기 이 나라가 누린 상대적 번영의 많은 부분을 설명해준다”는 것이다. 또한 “사람들이 새로운 소비재를 사는 데 필요한 임금을 벌려고 기꺼이 더 오랜 시간을 일하려고 한 것은 공장 체제의 부상을 위한 전제조건이었다”고 지적한다.

    특히 18세기 후반부터 영국에서 증기기관 발명 등 연속적인 기술혁신의 물결이 가능했던 것은 지적재산권과 특허 제도가 잘 정립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18세기 영국이 해상에서 주요 경쟁자들을 모두 물리쳤고, 남북 아메리카, 유럽, 서아프리카 사이의 무역로에서 제일 좋은 몫을 확보”하는 등 대서양 경제를 제패했던 것도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도록 한 중요한 배경이었다고 덧붙인다.

    물론 <생태경제사 2>에서 확인한 것처럼, 영국이 설탕, 담배, 특히 아프리카인들을 노예로 동원했던 점에 대해서는, “노예제가 영국 경제성장에 중요했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노예제가 산업혁명을 야기했다는 말은 아니”라는 로버트 솔로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저평가하기는 마찬가지다.

    결국 마크 코야마의 결론은 영국만이 산업혁명을 위한 복합적인 요소들을 모두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스페인도 아니고, 프랑스도 아니고, 네덜란드도 아니고 바로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길게 설명을 이어간다. “영국은 산업이 팽창하기 위한 여러 전제조건을 갖고 있었다. 소유권을 보호하는 한편 조정과 재협상을 허용하는 정치제도를 보유했고, 혁신과 발명에 개방적이었다. 또한 대서양과 대서양 노예노동에 접근할 수 있었던 한편 자원의 저주는 피했다” “더불어 영국은 길드의 특권이 초래하는 비용은 피하면서도, 숙련된 노동자를 키워낼 수 있는 대규모 노동시장 제도를 보유하고 있었다”

    산업혁명에서 에너지의 역할을 누락시킨 경제학자들

    위의 산업혁명 분석을 보면, 영국이 석탄이라는 고밀도의 화석에너지를 유독 선도적이고 대량으로 활용하게 된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물론 코야마는 경제학자 로버트 엘런(Robert Allen)을 인용하면서 “16세기 잉글랜드에서는 목재가 부족해진 탓에 석탄산업이 발전하게 되었다. 특히 런던이 성장하면서 인근의 목재자원이 고갈되자 석탄을 태우는 쪽으로 전환이 이뤄졌고” 값싼 석탄은 증기기관 발전에서 특히 중요한 자극제였다며 극히 부차적으로만 그 역할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에너지와 생태경제분야의 전문가들 얘기는 전혀 다르다. <에너지 세계사>의 저자 브라이언 블랙은 “나무와 숯과 같은 생물 연료가 수 세기 동안 사용되었지만, 그것으로는 새롭게 등장한 기계들을 사용할 수 있는 기반 시스템을 제대로 뒷받침할 수 없었다”고 못박고, “잉글랜드 뉴캐슬에서 생산된 석탄은 인간을 산업화시대로 이끌었다”고 결론내린다.

    알다시피 영국은 독특하게도 17세기부터 19세기 대영제국의 전성기 시기에 이르기까지 세계 최대의 석탄생산국가였는데, 이미 “1620년이 끝나기 전에 국가 열에너지의 절반 이상을 공급하기 시작했고, 1650년까지는 2/3, 1700년에는 3/4, 그리고 한 세기 뒤에는 90퍼센트를 공급”했다. 그에 따라 영국의 석탄 생산량도 1600년 2만 5천톤이었던 것이 1700년 3백만톤, 1800년에는 13백만톤으로 대폭 늘어나게 되었다. 산업혁명이 시작될 무렵인 1750년에 런던이 유럽 최대의 도시가 된 주된 원인은 석탄이라는 에너지원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이 석탄을 주요하게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기나 되었을 때였다.

    이 같은 사실로 보면, 1800년대 전후하여 대규모 공장설비를 가동시키고, 대규모의 철강생산을 가능하게 하며(철강생산에는 석탄을 원료로 하는 코크스가 대량으로 필요하다), 증기기관 철도시대를 열었던 산업혁명의 주역에서 절대로 영국의 대량석탄채굴을 제외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점에 대해 노벨 화학상 수상자 프레데릭 소디(Frederick Soddy)는 아주 분명히 이렇게 말했다. 기관사와 신호수, 관리자, 자본가, 주주, 노동자들의 모든 노력을 더해도 “기차에 동력을 공급할 수 없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진짜 기관사는 (태양에너지가 만들어낸) 석탄”이라고 말이다.

    에너지혁명 없이 산업혁명 없다.

    에너지와 생태전문가인 리처드 하인버그(Richard Heinberg)는, “지난 200년간 전 세계적으로 대규모 경제성장이 이루어진 비결은 값싸고 풍부한 에너지원인 화석연료의 발견이다. 물론 노동분업, 기술혁신, 교역증대등 다른 요인도 영향을 미쳤지만, 석유와 석탄, 천연가스가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까지도 18세기 선조들처럼 땅파서 먹고 살았을지도 모른다”고 적절히 지적했다.

    그만큼 경제활동에서 에너지는 중요하다. 1800년대 전후한 시기 영국산업에서 혁명이라고 말할 만한 대변동이 일어났다면 반드시 에너지의 획기적 전환이 있어야 했고, 그것이 바로 석탄이었다. 19세기 후반기에 두 번째의 산업혁명이 시작되었는데 거기에도 석유의 발견과 대규모 활용, 그리고 전기 에너지의 이용이 있었다.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1960년대의 컴퓨터 활용을 3차 산업혁명, 최근의 인공지능 활용을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부르지만, 근본적인 에너지 전환이 없는 이들 시점을 진정으로 산업혁명으로 부를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에너지의 관점에서 볼 때 진정한 세 번째 혁명, 화석연료에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이제 시작되려 하는지도 모른다.

    *<정의로운 경제> 연재 칼럼 링크

    필자소개
    녹색전환연구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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