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본주의엔 황금기,
    생태엔 재앙의 시작인 ‘거대한 가속’
    [정의 경제] '생태경제사'-5 : 생태파괴의 질적인 전환
        2023년 09월 14일 01:4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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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의 생태파괴는 언제부터 심각해졌을까?

    흔히 인류의 경제활동이 기후변화를 초래하고 지구생태계에 심각한 위험이 시작된 시기를 18세기 말 산업혁명이 시작된 시점으로 간주한다. 확실히 이 시점 영국에서부터 인류는 대량의 석탄을 채굴하여 태움으로써 막대한 에너지를 얻기 시작했고, 그 결과로 온실가스를 대기에 쏟아내기 시작했다. 또 어떤 이들은 콜롬버스가 1492년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이후, 남북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아시아에 이르는 지구 전체의 자원을 약탈하여 전용하기 시작한 대항해시대부터 두드러진 생태파괴가 시작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대항해시대나 산업혁명기만 해도 석탄 활용이나 극도의 자원남용은 유럽 일부지역에 국한되었고, 그 정도만으로는 기후변화나 생태계 질서의 교란이 아직 위협적인 수준은 아니었다. 그런데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2004년 기후학자 윌 스테판(Will Steffen) 등의 연구팀이 놀라운 보고서 “지구적 변화와 지구 시스템: 압박 받는 행성”을 발표하는데, 그 보고서는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18세기 말 “산업혁명이 점진적으로 속도를 내서 전 세계로 확산된 다음 지구의 변화가 연속적으로 증가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자료에 따르면, 인간활동 및 환경변화의 속도는 점진적이기보다는 오히려 20세기 중반 이후 극적으로 증가했다” “거의 모든 인간활동 및 지구 시스템 양상에서 1950년 무렵 놀랄만한 변곡점이 나타났으며 1950년 이후의 변화율은 훨씬 더 급격해지고 어떤 경우에는 거의 기하급수적이었다”

    1950년대 ‘거대한 가속(Great Acceleration)’이 시작되다

    이어서 보고서는 이렇게 요약한다. “의심할 바 없이 지난 50년 동안 자연과 인간의 관계는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바뀌었다” “인간이 촉발한 변화의 규모, 공간적 범위, 그리고 속도는 인류 역사에서 전례가 없었으며, 아마 지구 역사의 차원에서 보아도 그럴 것이다. 지구 시스템은 이제 기존 자연계에서 나타나던 변이 범위를 넘어섰다는 의미에서 ‘전례가 없는 상태’로 작동하고 있다”

    그래서 그 시점을 칼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에 비유하여 2005년 ‘거대한 가속’이라는 말이 만들어졌다고 환경시스템학자 얼 엘리스(Erle Ellis)는 2018년 저작 <인류세>에서 밝히고 있다. 얼 엘리스는 “인간이 지구 전체 환경에 미친 영향을 단순히 화석연료 연소나 공업용 화학물질 생산만으로 환원할 수는 없다. 인구증가, 농업을 위한 토지개량, 경제개발, 심지어 외국인 직접투자도 지구 시스템의 작용을 바꾸는 온갖 추동력 혼합체의 일부였다”면서 거대한 가속을 시작한 1950년대를 평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18세기부터 자본주의가 시작되고도 한 참 후인 1950년대에 특별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물론 2차대전 이후에 가장 두드러진 사건들 가운데 인류의 핵폭탄 사용과 잇따른 핵실험으로 인해 지표 전체에 방사성의 흔적을 남겨놓은 것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두드러진 것은 전지구적으로 석탄, 석유, 가스까지를 포함해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으로 화석연료를 대량으로 태운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 초반 중동에서의 대량 석유발견이 기폭제가 되어, 이제 일부 선진국들 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들까지를 포함해서 전 세계가 경제개발을 명목으로 어마어마한 화석연료 소비에 들어간 것이다.

    이러한 화석연료 소비는 1950년대부터 ‘끝없는 경제성장률 목표’를 국가 제1과제로 삼기 시작했다는 사실과 정확히 일치한다. 막대한 에너지 공급을 약속했던 화석연료를 배경으로 전세계의 모든 국가들이 치열한 성장률 올리기 경쟁에 들어간 것이다. 여기에는 냉전시기의 체제경쟁이 성장률 경쟁 양상으로 비화된 것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특히 1950년대부터 기후변화와 생태위기를 본격화한 거대한 가속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1960년대부터 경제개발에 뛰어든 한국경제도 일반의 예상과 달리 매우 초기부터 거대한 가속의 대열에 참여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영국이나 유럽 등에 비해 산업화를 늦게 시작했던 한국이 기후위기와 생태위기에 상대적으로 책임이 적다고 생각했던 상식은, 거대한 가속이 1950년대부터 시작되었다는 새로운 사실로 인해 무너지게 된 것이다.

    거대한 가속은, 인류세(Anthropocene)의 시작을 알리다

    거대한 가속의 시작은 지구의 역사에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창출하게 만들었다. “인간이 처음으로 전체로서의 지구, 즉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대기권, 수권, 설빙권, 생물권, 물권, 지권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하나의 시스템으로 진화한 지구를 형성하는데 중대한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바로 우리 인류가 농경문명을 열었던 온난한 기후시대였던, 11,700년전부터 시작된 홀로세(Holocene epoch)가 종말을 맞게 된 것이다. 대신에 인간이 지구시스템의 변화를 초래하는 새로운 시대인 인류세가 시작된 것이다.

    클라이브 해밀턴(Clive Hamilton)은 2017년 펴낸 <인류세>에서 이렇게 상황 변화를 설명한다. “문명의 출현을 비롯해 문명과 함께 문화와 사회구조를 형성할 수 있는 환경적 배경이 되었던 홀로세의 온화하고 예측 가능한 기후는 과거지사가 되었다. 우리는 수천 년 혹은 수만 년 동안 지속될 불안정하고 예측 불가능한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다”

    존 맥닐(John McNeil)은 2014년에 지은 <거대한 가속>(The Great Acceleration: An Environmental History of the Anthropocene Since 1945)에서 이렇게 강조한다. “인류세는 농업과 함께 시작된 것도 아니고 심지어 산업혁명과 함께 시작된 것도 아니다. 1945년 이후 대규모 산업사회의 부상과 함께, 그리고 지구 전체 환경을 가속적으로 변화시키는 인간의 전례 없는 능력과 함께 시작된 것이다.“

    인류세라는 용어를 처음 제안한 지질학자 폴 쿠루첸(Paul Crutzen)도 당초에는 화석연료체제가 시작된 1780년대부터 인류세의 시작을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 윌 스테판, 크루첸, 존 맥닐 세 사람이 합심하여, 인간이 1950년 이후 ‘자연의 거대한 힘’으로 부상하였고, 지구 시스템이 인류세로 이행하고 있음을 설명하는 선구적인 서사로 ‘거대한 가속’ 개념을 확립하였다.

    이렇게 수많은 선도적인 지구시스템 연구자들이 말하듯이, 우리는 그 무엇과도 유사하지 않은 상태에 접어들었다. 지구는 이전까지 이런 상태에 놓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지구시스템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지구상에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의 구분은 물론, 국가나 문화, 인종, 성의 구분 또한 없다. 그저 지구시스템을 교란하는 크고 작은 힘을 가진 인간들이 존재할 뿐이다.

    우리는 인류세가 시작되었음을 느끼고 있는가?

    물론 인류세가 국제 지질학회에 의해 완전히 공인받은 것은 아니다. 2023년 7월 국제층서위원회 산하 인류세실무그룹(AWG)은 거대한 가속이 시작된 시점을 인류세 시작으로 인정하고 캐나다 크로퍼드 호수 퇴적층을 대표 지층으로 하는 최종안을 발표했다. 이 결과는 제4기층서소위원회와 국제층서위원회 투표를 거쳐 2024년 8월 부산에서 ‘하나뿐인 지구, 함께하는 지구과학’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세계지질과학총회에서 마지막 승인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언제가 되었든 홀로세가 끝나고 인류세가 이미 반세기 이전에 시작되었다는 것은 인정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지질학회 전문가들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인 우리들 스스로가, 그저 우리 사회의 일부를 우리가 바꾼 것이 아니라 지구시스템에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일으켰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 여부다. 우리는 그 동안 엄청난 문명을 이루면서 단지 우리들만의 세상을 바꾼 것이 아니라, 우리를 포함한 생물권 전체가 살아가는 지구생태계 전체를 바꾼 것이다. 아니 우리들만의 세상은 결코 바꾸지 못하면서 기후와 자연을 바꿔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또는 우리들 사회를 바꾸는 것을 미룬 댓가로 지구시스템을 바꾸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이제 수많은 기후활동가들이나 환경활동가들은 그래서 말하고 있다. 이제 기후와 지구시스템을 더는 바꾸지 말자고, 대신에 우리 사회를 바꾸자고.

    *<정의로운 경제> 연재 칼럼 링크

    필자소개
    녹색전환연구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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