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지운동과 기후운동,
    따로 아니라 함께해야만 하는 이유
    [정의 경제] 사회·생태국가-도넛 경제-1.5도 라이프
        2023년 11월 10일 10:3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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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평등과 기후 위기는 따로 풀리지 않는다.

    인구감소 문제나 포퓰리즘 확산 등 다양한 사회적 위험요인들에 직면해 있지만, 21세기 최대 난제가 불평등과 기후위기라는 점은 이제 누구나 인정한다. 더 큰 문제는 “사회적 불평등이 생태 위기를 촉발하고, 악화된 생태위기가 다시 사회적 불평등을 가속화”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불평등이 심화될수록 중산층이나 저소득 계층들이 상위계층을 모방하려는 과시적 소비, 지위재 소비경쟁을 부추겨서 생태위기를 압박한다. 또한 각종 생태적 재난들로부터 스스로 부를 이용해 보호할 수 있다고 믿는 부유층과, 불평등 완화 없이 환경적 책임만 공유하길 거부하는 서민들 사이의 벌어지는 간격은 전사회적인 기후대응을 점점 어렵게 한다.

    때문에 불평등을 완화하는 사회적 정의와, 기후/생태위기에 대응하여 생태적 안전성을 확보하는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려는 모색이 최근에 크게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 가운데 주목할만한 전략과 정책이 세 가지다. 첫째는 거시적인 사회비전으로서 기존의 성장의존적인 복지국가 모델을 넘어 성장 대신 생태와 복지의 선순환을 지향하는 ‘사회-생태국가’ 제안이다. 둘째는 주로 도시와 지방정부를 중심으로 호응을 얻고 있는 도넛경제모델이다.

    그리고 셋째는 시민 실천 차원에서 생태파괴에 영향을 주는 과도한 소비를 줄이면서도 삶에 필수적인 소비는 보편적 서비스를 보장해서 정의롭고 안전한 삶을 실천하게 해주는 ‘1.5도 라이프스타일’이다.

    이 세 가지는 각각 적용의 차원을 달리하지만 모두가 불평등위기기와 기후/생태위기를 별개로 대처하지 않고 동시에 해결하자는 움직임이다. 양쪽의 위기가 정도를 넘어서 심화되고 있는 지금 반드시 고려해야 할 중요 제안들이다.

    성장주의적 복지국가를 넘어 탈성장적 사회생태국가

    우선 첫 번째 ‘사회-생태국가’ 비전을 살펴보자. 현재 진보 또는 개혁적 사회 정치세력들이 공식적으로 추구하는 사회비전은 (정의로운) 복지국가다. 그런데 현대 복지국가는 대체로 ‘경제성장에 의존하는 복지국가’다. 문제는 유한한 지구에서 무한한 경제팽창을 시도한 결과가 현재의 기후위기/생태위기를 불러온 가장 근원적인 경제적 원인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제는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을 가정한 복지국가 모델은 더 이상 미래 비전일 수가 없다.

    대신에, 이제부터는 ‘선제적 복지지출- 성장 필요성 감소 – 기후위기 완화 – 안정적 복지 유지’라는 <복지와 생태의 선순환>으로 전환하는 것이어야 한다. 최근에는 “기후재난 -> (기후대응까지를 포함한) 복지지출 증가 -> (재원조달 위한) 더 많은 경제성장 요구 -> 기후재난 악화”라는 함정에 점점 빠져들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더 절박하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사회-생태국가’ 비전이다.

    사회-생태국가에 비전에 따르면 무한 경제성장에 의존해서 서민들에게 물질적 복지를 확대하려는 관행이 폐기되는 것은 물론, 이제 기후/생태를 악화시킬 위험이 있는 복지정책(탄소집약적 방식으로 임대주택 건설)이나, 반대로 서민들에게 복지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는 기후/생태정책(비례적 탄소세 도입)은 더 이상 수용될 수 없게 된다.

    대신에, 사회/복지를 강화하면서 동시에 기후/생태적 위험도 줄이는 새로운 정책이 설계되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복지를 위해 임대주택을 확대하더라도 기후/생태적 충격을 최소화 하도록 건축자재를 바꾸거나 단열기준을 높이는 방식을 채택한다. 반대로 기후/생태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화석연료 사용에 탄소세를 부과하더라도, 사회계층 전체에게 일률적으로 부담시키지 않고 탄소세의 일부를 서민들에게 환급하는 보상체계로 불평등을 줄이는 방식을 추가하자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이제 사회/복지와 기후/생태정책은 별개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생태정책’으로 통합되게 된다.

    현실에서 힘을 발휘하기 시작하는 도넛경제모델

    그나마 한국 사회에 어느정도 알려진 도넛경제모델은, 경제성장과 무관하게 시민들에게 사회적 기본권 보장을 위한 복지정책과 기후위기를 완화시키는 생태정책을 동시에 추진함으로써, 시민들의 삶을 사회적으로 정의롭고 생태적으로 안전한 공간에 머물도록 하자는 강력한 비전이다.

    특히 도넛모델은 2020년 4월, 코로나19로부터 벗어나려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시가 자신들의 도시 비전으로 전격 채택함으로써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덴마크의 코펜하겐도 암스테르담의 사례를 따르기로 결정했고, 캐나다 브리티시 콜롬비아주의 나나이모(Nanaimo), 뉴질랜드의 작은 도시 더니든(Dunedin)이 동참했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오리건주 포틀랜드와 텍사스주 오스틴이 자체적으로 이 개념을 도입하는 등 도시 수준에서 대안모델로 활발하게 적용중이다.

    시스템 변화뿐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변화도 중요하다.

    원래 ‘1.5도 라이프스타일’ 캠페인은 일본의 재단법인 지구환경전략연구기관(IGES), 핀란드의 알토대학, 그리고 환경컨설팅 등을 수행하는 기업인 디-매트(D-mat)가 2019년 공동으로 작업한 “1.5도 라이프스타일(1.5-Degree Lifestyles: Targets and options for reducing lifestyle carbon footprint)”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캠페인은 영국의 환경운동가 로잘린드 리드헤드(Rosalind Readhead)가 연간 1톤 이산화탄소 배출 라이프스타일에 도전하겠다고 나서는가 하면, 캐나다 건축가 로이드 알터(Lloyd Alter)이 온실가스 연간 2.5톤의 삶을 실천하며 책을 출판하기도 하면서 더욱 주목받았다.

    1.5도 라이프스타일이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시스템의 변화뿐 아니라 소비패턴과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도 중요하다는 전제 아래, 온실가스 감축을 시민들의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개인 일상의 6대 영역(푸드, 주거, 이동, 상품소비, 서비스 이용, 여가)에 걸쳐 탄소발자국을 계산하고 온실가스 감축을 시도하자는 것이다. 이 가운데 특히 푸드, 주거, 이동이 개인적 차원에서 가장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3대 핫스팟이다(라이프스타일 탄소발자국의 79%를 차지).

    2030년까지 지구 온난화를 1.5℃ 이하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 평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현재 1인당 전 세계 평균 4.6톤에서 대략 2.5톤 내외로 줄여야 한다(한국만을 보자면 현재 14톤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는데, 이를 기준으로 하면 2030년까지 1인당 7톤 수준으로 줄여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구상에 많은 시민들은 연간 2.5톤의 배출보다 훨씬 적은 배출을 하면서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오히려 공공정책으로 음식이나 주거, 대중교통 지원 등으로 보편서비스를 제공해서 복지수준을 올려야 한다는 것이 1.5도 라이프스타일 캠페인이다.

    특히 1.5도 라이프스타일 캠페인은 순전히 개인적 실천에 관한 얘기가 아니라 공공정책에도 중대한 과제를 남긴다. 즉 개인 라이프스타일 전환을 돕기위해서 공공정책이 선택편집(choice editing)을 할 수 있는데, 탄소집약적 과소비를 줄이기 위해 규제를 도입하거나, 부족한 사회서비스를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1.5도 라이프스타일 캠페인은 시민의 입장에서 기후대응을 위한 구체적 실천을 분명하게 알려준다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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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거시적 수준의 ‘사회-생태국가’ 비전, 중범위의 ‘도넛경제모델’, 그리고 시민적 실천으로서 ‘1.5도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전략이 모두 불평등과 기후위기 해결 즉, 시민들로 하여금 ‘사회적으로 정의롭고 생태적으로 안전한’ 미래를 동시에 추구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런데 이것이 사회비전이나 정책만으로 국한될까? 아닐 것이다. 미래사회 비전이나 정책에서 사회/복지와 기후/생태가 교차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당연히 기존의 시민단체들도 더 이상 복지와 기후운동 단체가 별개로 역할분담하는 식의 패턴을 지속시키는 관행에 변화를 주어야 할 것이다.

    이제 복지단체들도 기후/생태 의제를 자신 안으로 끌어들이고, 기후/환경단체들도 불평등과 복지를 끌어들이는 것을 상수로 놓아야 하지 않을까? 심지어는 정당들도 의석확보를 위한 기능적 연대 수준이 아니라, 노동/복지에 기반한 정당들과 녹색에 기반한 정당들이 공동의 비전과 정책을 모색해야 할 때가 된 것이 아닌가?

    *<정의로운 경제> 칼럼 링크

    필자소개
    녹색전환연구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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