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 혁신,
    네 번째 디지털의 배신?
    [정의 경제] 2.0, 디지털 공유경제, 블록체인, AI 기술···그 효과와 의미
        2023년 12월 12일 09:3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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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의 기술 관련 뉴스는 연초에 OpenAI가 내놓은 생성형 인공지능 챗지피티(chatGPT)에서 시작해서, 연말에 구글이 공개한 멀티모달 기반 인공지능 제미나이(Gemini)로 마무리 되었다고 봐도 좋을 만하다. 그만큼 2023년은 인공지능 기술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전문가는 물론 투자자와 일반 사용자들의 관심을 모두 사로잡았다.

    특이한 점은 과거와 달리 이번 인공지능 기술혁신은 낙관적인 기대만 불러일으킨 것이 아니라, 낙관과 우려가 초반부터 계속 교차되어 왔다는 점이다. 워낙 인공지능 기술의 보편화가 불러일으킬 파괴적 효과 때문이기도 했지만, 지난 20여 년 동안 디지털 혁신이 초래한 결과들에서 습득한 경험들이 기대뿐 아니라 걱정과 우려를 동시에 낳았던 탓도 있다.

    거품처럼 사라진 웹 2.0의 약속

    사실 디지털 혁신, 디지털 전환의 시대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21세기는 기술과 경제, 사회와 문화 영역에서 정보기술의 급격한 변동과 확산에 영향을 받아왔다. 그리고 그때마다 혁신이 가져올 엄청나게 낙관적인 미래가 약속되었다. 그 첫 번째는 2000년대 초반 페이스북, 트위터, 유투브 등 SNS가 주도하는 웹 2.0이다. 당시 ‘참여, 공유, 개방’ 아래 막 출시된 스마트 폰을 이용해서 누구나 풍부한 정보에 접근하고 그 결과 더 많은 경제적 기회가 열릴 것이며, 수평적 민주주의를 크게 확대해줄 것이라는 약속이 만연했다.

    하지만 실제로 일어난 결과는 애초의 약속과는 너무 달랐다. SNS에서 더 자주 게시된 정보는 자극적인 사건, 가짜 뉴스, 극단적 주장들이었고, 다양한 의견들은 필터링되어 한쪽 주장들만 접하도록 편집되었다. 이는 디지털 플랫폼 기업들이 다양한 정보 제공이나 민주주의 확대가 아니라 광고 수익을 극대화하려고 콘텐츠 배치를 했던 당연한 결과였다. 심지어 SNS 기업들은 ‘감시자본주의’라는 용어가 나올 정도로 개인정보의 무단 이용과 유출을 서슴지 않았다.

    미국 연방거래위원장인 리나 칸(Lina Kahn)도 페이스북과 구글이 2000년대 초 혁신적인 서비스로 웹 2.0 시대를 열었지만, 거기에는 엄청난 대가가 따랐다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처음에 무료 서비스라고 생각했던 서비스는 사용자와 기업에 대한 광범위한 감시를 통해 수익을 창출했다. 그 결과 점점 더 필수적인 서비스에 대한 접근이 개인 데이터의 광범위한 수집과 판매를 조건으로 하는 온라인 경제가 탄생”했다고 말이다. 이렇게 21세기 시작과 함께 약속했던 웹 2.0 기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공유경제와 블록체인이라는 혁신의 잇따른 배신

    두 번째 디지털 혁신은 2000년대 말 에어비엔비(2008년)와 우버(2010년)가 주도하여 전 세계를 열광시켰던 ‘디지털 공유경제’다. 이들은 수많은 시민들에게 이동과 숙박 등의 편의를 제공하면서 자원을 알뜰하게 이용하도록 친환경적 해법을 제공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공유경제 혁신 또한 약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예를 들어 우버와 같은 ‘차량호출 서비스’는 오히려 도시의 차량병목을 심화시켰을 뿐 환경개선에는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오히려 이들 공유경제는 개인사업자로 위장된 열악한 플랫폼노동을 대량으로 만들어내는데 기여를 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 또한 저사용 자원의 진정한 공유라는 목적보다는 수익성 극대화를 앞세웠던 공유 플랫폼 기업들의 속성상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세 번째로 2010년대 기대를 모았던 디지털 혁신 가운데 공유경제와 함께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2009년에 시작되었으나 2016년 경부터 급팽창하여 관심을 모은 블록체인 기반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의 약속과 그 배신은 정말 극적이다.

    이들은 탈중앙화라는 이름 아래, 금융거래에서 위계적 권위를 없애주는 것은 물론, 수수료 없는 송금, 은행계좌 없는 이체 등 온갖 금융 민주화를 약속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하다. 암호화폐는 사실상 블랙마켓에서 불법거래에 이용된 것 말고는 단 한 번도 제대로 화폐의 기능을 한 적이 없다. 대신 ‘가상자산’이라는 이름대로 투기적 용도의 디지털 자산이 되어 거대한 자산거품 형성에 기여했을 뿐이다.

    OpenAI의 샘 알트먼 축출과 복귀가 시사하는 것

    21세기 디지털 혁신은 네 번째 단계로 인공지능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고 있는 중이다. 인공지능은 처음부터 기대와 우려가 섞인 미래를 얘기하고 있다. 2023년에 이를 극적으로 드러낸 사건이 지난 11월 17일 chatGPT를 출시했던 OpenAI의 최고경영자 샘 알트먼이 해고되었다가 온갖 파란을 일으키면서 며칠 만에 다시 복귀한 일이다.

    당초에 비영리조직으로 출발하면서 무분별한 인공지능 개발의 위험성을 걱정해왔던 OpenAI의 이사진들이, 인공지능 개발을 서두르려 한 샘 알트먼을 견제한 것으로 유력 언론들은 이 사건의 성격을 분석하고 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인공지능 업계에 두 집단, ‘부머(boomer)’ 집단과 ‘두(doomer)’집단이 서로 경합했다고 진단했다, 먼저 부머는, 인공지능 개발이 방해 받지 않고 더 빨리 개발되어야 한다는 가속주의(accelerationism)를 지지하는 이들이고 알트먼이 여기에 속한다. 반면 두머는, 인공지능 개발을 신중 통제하지 않으면 인류에게 실존적 위협이 될 수도 있다고 믿고 신중하게 개발하자는 ‘효과적인 이타주의(effective altruism)’를 믿는 이들이고 기존 OpenAI 다수 이사진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OpenAI의 경영권 분쟁의 결과 두머집단이 물러나고 부머집단이 득세하여 앞으로 브레이크 없는 인공지능 개발이 업계에서 전개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업계 내부에 존재하는 두 집단의 차이를 과장해서는 안된다. 신중한 인공지능 개발을 주장하는 효과적 이타주의 집단 역시 인공지능 개발을 전혀 반대하지 않음은 물론, 이들의 이타주의 또한 특별한 엘리트들만이 사회에서 도움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판단할 수 있다는 전제로 하는 매우 엘리트적인 발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머와 부머집단 모두 디지털 기업 안에서 적극적인 인공지능기술 개발로 기업의 수익과 사회의 이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들이 약속하는 인공지능의 미래는 과거의 디지털 혁신과 달리 낙관적으로 여겨야 할 근거도 없다.

    거듭되는 디지털 혁신이 남겨 놓은 유산들

    웹 2.0과 스마트폰, 공유플랫폼 경제,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그리고 인공지능에 이르기까지 21세기 23년 동안의 디지털 혁신에 대해 이제 종합적으로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세부적으로 보면 디지털이 우리의 일상과 사회에 크고 작은 편의를 제공하고 삶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 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몇 가지 세부 사항에서 빠져나와 사회 전체의 큰 그림을 바라보자. 그리고 수십 년 동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질병인 불평등은 디지털 혁신으로 줄어들기보다는, 플랫폼노동과 디지털 미세노동 등의 양산으로 오히려 고용격차와 소득격차를 키워오지 않았을까? 우리 경제는 21세기 내내 자산거품과 침체를 반복하며 불안정성을 키워왔는데, 디지털 기술은 금융리스크를 키우고 가상자산 거품을 만들어내는데 도움을 준 것은 아닌가?

    21세기 정치의 가장 큰 특징이 공론장 양극화, 우익 포퓰리즘의 득세와 그로 인한 민주주의의 후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여기에 SNS가 미친 부정적인 영향은 결코 작지 않다. 기후위기와 생태위기는 이제 점점 더 많은 영역에서 티핑포인트를 넘어서고 있지만 디지털 혁신이 이를 완화했다는 증거는 없고 오히려 더 많은 에너지 소모를 통해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나아가 이라크 전쟁, 아프칸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르기까지 21세기에도 여전히 지구적인 전쟁은 끝날 줄 모르지만, 이 전쟁들이 과거와 달리 ‘드론 공격’과 같은 디지털 무인 전쟁무기가 동원됨으로써 더 잔인한 전쟁이 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처럼 경제, 사회, 생태, 정치 모든 영역에서 디지털은 세세한 부분에서 편리와 일상의 진보를 가져왔을지 모르지만, 큰 부분에서의 부정적 결과를 초래한 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시 한 번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인공지능 혁신이 낙관적인 미래를 열어줄 것이라고 안이하게 지켜볼 수 있을까?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질문을 해볼 수 있다. 디지털 기술은 내재적으로 원래 위험한 기술인가? 저명한 경제학자 대런 애쓰모글루는 이렇게 대답한다. 디지털 기술 자체가 태생적으로 위험한 것이 아니라, 어떤 디지털 기술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기로 할 것인가에 대한 ‘의사결정’이 소수의 손에 맡겨져 있기 때문에 위험한 것이라고.

    지금 빠른 속도로 전개되고 있는 디지털 혁신과 인공지능 기술 개발이, 지극히 소수의 디지털 플랫폼 독점기업들의 의사결정으로 추진되고 있고, 정부가 이를 방치하는 한, 이 기술들이 많은 시민들에게 더 나은 경제적 기회를 제공하여 불평등을 줄이고, 더 수평적인 온라인 공론장이 마련되어 다양성 있는 민주주의가 살아나며, 진정으로 디지털 기술이 기후위기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활용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낙관과 비관을 떠나 “인공지능의 미래는 어떠할 것인가?”는 잘못된 질문일지 모른다. 오히려 필요한 질문은 “지금 누가 인공지능 기술의 미래를 결정하고 있는가?”일 것이다.

    *<정의로운 경제> 연재 칼럼 링크

    필자소개
    녹색전환연구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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