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의 위기’를 넘어
    ‘위기 시대의 정치’로 반전시켜야
    [정의 경제] 40개국 이상의 주요 선거가 예정된 해
        2024년 01월 02일 10:08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민주주의 수퍼볼’ 해에 민주주의를 걱정하다

    올해는 40개 이상의 국가에서 전 세계 인구의 40% 이상이 참여하는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고 언론들 관심이 지대하다. 가디언지는 2024년 선거를 최대 스포츠 이벤트인 ‘슈퍼볼’에 비유하여 ‘민주주의 슈퍼볼(Democracy’s Super Bowl)’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1월 대만 선거를 시작으로 아시아에서는 인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이란 등에서 선거일정이 잡혀 있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중심으로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에서도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미국과 멕시코, 베네수엘라 등이 해당된다.

    유럽의 경우 영국에서 다시 노동당으로의 정권교체가 유력한 가운데, 푸틴의 집권 연장이 확실시되는 러시아 선거도 있다. 이 밖에도 오스트리아, 벨기에, 크로아티아, 우크라이나, 핀란드에서 총선이 있고 특히 6월에는 유럽 유권자 4억 명 이상이 720명의 유럽의회 의원을 선출하는 유럽의회 선거를 치르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관심이 집중되는 선거는 11월 5일에 치러지는 미국 제60대 대통령 선거다.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대선을 ‘아마겟돈 선거’라고 표현했는데, 전직 대통령 트럼프는 여러 건의 형사 재판이 걸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화당 후보 경선에 가장 유력한 후보다, 파이낸셜 타임즈는 과감하게(?) 그의 낙선을 예견했지만, 현재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바이든 후보를 다소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세계 최대의 선거축제가 민주주의 향상을 위한 축제가 될 가능성보다, 민주주의 후퇴를 상징할 개연성이 더 높다는 점이다. 가디언지는 “미국인 10명 중 약 7명은 최근 몇 년 동안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답했고, 프랑스에서는 73%가 이에 동의”했고 “영국에서는 10명 중 6명 이상이 5년 전에 비해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올 정도로 민주주의 미래가 낙관적이지 않다.

    차원이 달라선 사회, 경제적 환경

    정치 불신은 미국에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인들도 미국인들이 보이는 정치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에서 밀리지 않을 개연성이 높다. 총선이 100일도 남지 않은 2024년 새해 시점에서도 선거제도는 여전히 불확정된 상태이고, 여당과 야당에서 본격적인 분열의 조짐이 가시화되는 등 지극히 혼란스런 정치지형에서 한국 유권자들도 정치에 긍정적인 점수를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2020년 총선은 압도적으로 코로나19라는 요소가 지배하는 선거였고, 위성정당 논란 가운데에서도 민주당과 국민의힘이라는 양당이 비교적 안정적인 결집력을 보유하면서 치러진 선거였다. 또한 2020년 선거는 부동산 거품이 끓어오르는 가운데 치러진 선거였으며 아직 중-미 갈등이나 글로벌 지정학이 덜 불안정하던 시기의 선거였다. 또한 2020년 선거는 주변적이나마 기후대응이 ‘그린뉴딜’이라는 단일한 정책적 대안으로 모아졌고 실제 총선 이후 정부정책의 하나로 채택되었다.

    하지만 2024년 국내외 여건은 크게 달라졌다. 코로나19처럼 특정이슈가 지배하는 선거는 아닐 것이다. 주요 양당부터 분열이 시작될 정도로 정치세력의 응집력은 해체되고 있다. 이미 2022년 후반기부터 가라앉기 시작한 부동산 거품이 꺼지는 추세는 ‘주요 위성도시 서울시 편입’이라는 여당 공약에도 불구하고 계속될 것이며 유권자의 심리에 영향을 줄 것이다.

    더욱이 미-중 갈등과 글로벌 지정학은 글로벌 공급망에 깊숙이 편입된 한국경제의 전망을 매우 불확실하게 만들고 있어 22대 총선이 마땅이 ‘경제선거’가 되어야 하지만 마땅한 해법은 나오지 못하고 있다. ‘핵발전 중심’으로 왜곡된 기후위기 대응 정책은 현재 한국정치에서 이미 갈 길을 잃은 실정이고 기후정치의 어떤 단서조차 보이지 않는다. 뉴타운 공약이 득세했던 2008년 총선처럼 주요 위성도시 서울시 편입 공약을 핵심으로 대규모 개발공약이 판치는 선거가 될지, 아니면 불확실한 미래를 열어가는 새로운 정치적 국면을 열지는 여전히 알기 어렵다.

    피크 코리아를 지나는 위기의 문턱에서

    그 결과 한국 사회가 2020년 코로나19를 정점으로 이른바 ‘피크 코리아’를 지나 ‘사회붕괴’로 접어들 조짐마저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2021년에 겨우 유엔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선진국의 지위를 인정받고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자 문화적으로도 영향력 있는 국가로 올라섰다. 하지만 최근 크게 변화된 내외적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은 정점에서 추락할 위험이 가장 큰 나라다.

    특히 한국 사회의 ‘초저출산’ 문제는 사회붕괴의 조짐을 알려주는 가장 강력한 지표다. 2022년 합계출산율이 0.78이었고, 2023년은 그보다 더 떨어질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인류사에서 유례가 없는 수치다. 통계청은 2025년을 저점으로 다시 출산율이 상승으로 반전되리라 전망하고 있지만 여전히 근거가 불확실하다.

    사회적 차원에서 볼 때 한국 수준의 초저출산은 사회가 적응하기 매우 어려울 정도로 빠른 것이다. 급격한 고령인구비중 증가, 빠른 생산활동인구 감소, 지방소멸의 가속화, 세대간 유권자 수의 급격한 불균형 등 사회가 적응하기에 너무 빠른 속도의 출산률은 심각한 제도 불균형을 초래하고 사회적 갈등 등을 일으킬 가능성을 높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여전히 한국의 가족 관련 정부지출이나 육아휴직 이용기간 전부 OECD 평균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이는 OECD 평균 차원의 정책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수백조를 쏟아부었는데도 백약이 무효였던 것이 아니라, 여전히 선진국 수준의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급격한 출산률 하락, 이에 동반한 지방소멸 가속화를 방치했던 것이다. 2024년 총선에서 저출산 대책과 지방소멸 방지 대책이 맞물리면서 다양한 돌봄공약과 지방살리기 공약등이 나오겠지만, 의례적 공약을 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거대위기를 반전시킬 위기 시대의 정치가 필요하다.

    기후위기나 글로벌 지정학의 변동, 공급망의 재편과 각국의 산업정책 부활, 사회붕괴로 이어질 급격한 인구감소와 지방소별 가속화 등 굵직한 이슈들이 긴급하게 정치적 해결을 기다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정치의 관심은 전혀 다른 곳에 있다. 기득권 양당사이의 좁은 이해관계의 함정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해결을 기다리는 중대한 사회적 의제들이 한국의 정치적 공론장에서는 철저히 외면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처럼 유권자들로 하여금 정치에 대한 극도의 불신을 낳게 만들고, 정치공론장은 각 정치세력의 협소한 이해관계나 극단적 팬덤에 이끌리는 식으로 더욱 유권자로부터 멀어지는 악순환에 빠진다. 이렇게 보면 위기와 붕괴의 시대에 미국과 한국에서 가장 큰 위기는 정치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

    2024년 총선을 계기로 이런 악순환을 끊고 거대한 사회적 도전과제들이 제대로 정치적 공론장에서 다루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정치의 방향을 돌려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향해야 한다. 사회를 품는 ‘큰 정치’로 정치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정치의 위기를 극복하고 ‘큰 정치’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정치가 ‘위기를 다루는 정치’ 즉 ‘위기의 정치’가 되어야 한다. 사회적 위기를 다루는 정치로 바뀔 때 정치의 위기도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민심을 읽고 이를 공론장에 제대로 펼쳐 놓을 때 유권자들은 선택만 하면 된다. 그러나 지금은 정치인들이 탐닉하는 공론장은 민심 자체와 무관하게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섞어놓은 혼탁한 공론장이다. 때문에 한국의 유권자들은 스스로 정책과 의제의 공론장을 만들어 거꾸로 정당과 정치인들을 시민의 공론장으로 불러내야 하는 쉽지 않은 일까지 떠맡아야 할 처지가 되었다. 협소한 정치 공론장을 박차고 나와 시대를 읽은 정치인은 물론, 시대를 읽어 정치의 방향을 틀어줄 유권자가 모두 필요한, 그런 힘든 총선이 기다리는 2024년이다.

    *<정의로운 경제> 연재 칼럼 링크

    필자소개
    녹색전환연구소 자문위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