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정규직 될 자격 없나요?”
    대통령 ‘비정규직 제로’ 선언하면 끝?
    ‘인천공항 비정규직 정규직화의 쟁점·과제’ 토론회
        2017년 12월 14일 06:0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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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정부의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화 정책의 상징이 된 인천공항공사의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사측의 소극적 태도와 정규직 노동자들의 반대로 위기에 몰려있다. 정규직 전환규모와 방법을 비롯해 재원 방안 등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의당 이정미 의원과 노동이당당한나라 본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주최로 ‘인천공항공사 비정규직 정규직화 추진 과정으로 바라본 문재인 정부 비정규직 정규직화의 쟁점과 과제’ 토론회가 14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발제는 인천공항공사 정규직 전환 연구용역을 수행한 부경대 황선웅 교수가 맡았다.

    토론회 모습(사진=유하라)

    90%에 달하는 비정규직
    10년을 일해도 최하위 직급, 임금은 정규직의 38%

    인천공항공사는 전체 1만1,159명 중 비정규직이 9,868명으로 89%정도를 차지한다. 반면 정규직은 1,291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공항공사를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을 실현할 첫 번째 기관으로 꼽은 이유도 인천공항이 이처럼 기형적으로 비정규직을 많이 채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직급, 노동시간, 임금에 있어서 90%에 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상당한 차별에 시달리고 있다.

    우선 24시간 교대제로 인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 대부분이 비정규직으로 고용된 분야에 집중돼 있다. 일각에선 공사 비정규직들은 다른 기관의 비정규직보다 임금이 높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는데, 이런 것 또한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연장, 휴일수당 등 때문이다. 기본급으로 따지면 정규직 노동자의 절반도 미치지 못하는 37.4%정도밖에 받지 못하고 있다.

    비정규직은 근속년수가 아무리 길어도 최하위 직급에 머무는 부당함을 겪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 다수가 6~7급에 위치해있는데 특히 7급의 비율이 절반에 육박한다. 반면 정규직은 3~4급 중심이다. 황 교수는 “이러한 직급체계는 근속년수와 관련이 없다. 비정규직은 10년을 일해도 7급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비정규직이 거의 전부인 인천공항의 인력 운영방식이 얼마나 불합리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오순옥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 수석부지부장은 “공항에 출국할 때까지 모든 일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하고 있고 공항에서 볼 수 있는 정규직은 아무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12년 연속 세계 1등 공항을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인천공항, 비정규직 제로를 위한 좋은 선례 남길 수 있을까
    “노사·노노 문제 해결하는 노력의 시그널 던져야”

    가장 큰 쟁점은 정규직 전환 규모와 전환 방법이다. 사측은 정규직 전환 기준 마련을 위해 한국능률협회컨설팅(KMAC)과 한국노동사회연구소‧고려대학교 노동문제연구소(K-K)를 통해 연구용역 보고서를 마련했다.

    전환 규모와 관련한 안들을 살펴보면 이렇다. KMAC 안은 직고용 규모를 최소화해 850명으로 정하고 있다. 나머지 8,984명은 자회사를 설립해 채용하게 된다. 여러 대안 중 사측의 요구를 가장 충실히 반영한 안으로 풀이된다.

    황선웅 부경대 교수는 “생명·안전 분야만 직고용하고 나머지 업무는 직고용 대상에서 배제해 직고용 비율 최소화한 방안이다. 생명·안전 분야 또한 매우 협소하게 정의했다”며 “이 방안에 따르면 전체 노동자 중 80%가 자회사로 들어가게 돼 다른 기형적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 특히 자회사 설립 요건에 대한 별다른 검토도 없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생명·안전 분야의 범위를 놓고도 이견이 첨예하다. 사측은 이 분야를 최소한으로 보고 직고용 규모도 그만큼 축소하고 있다. 황 교수는 “생명·안전 분야 중심의 정규직화 흐름이 있다”며 “생명·안전 분야는 반드시 직고용해야 하는 것이지, 생명·안전 분야만 직고용하라는 것이 아니다”라고 사측의 태도를 비판하기도 했다.

    K-K안은 4개의 대안을 마련했고 그 가운데 대안3이 가장 가능성이 높은 안으로 꼽히고 있다. 보안방재를 제외한 52%(6,888명)만 직고용하고 나머지 48%(4,163명) 중 보안방재는 자회사로, 직고용되지 않는 생명·안전 분야는 별도공사를 설립해 채용하는 방식이다.

    KMAC안 보다는 타당성이 높다는 평가가 있지만, 별도공사 설립을 직고용으로 볼 수 있는지부터 신규 공사법 제정, 공사 간 수익 배분, 교섭 구조, 공사에 기존 정규직을 재배치하는 문제 등 오히려 지금보다 더 논쟁해야 할 거리가 많아질 수 있다. 특히 공항업무의 특성상 분야별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에 별도 공사, 자회사, 직고용으로 나눠 놓을 경우 업무의 효율성도 떨어질 수 있다.

    노조는 1만명 전원 직고용을 원하고 있지만, 대안3까지는 논의해볼 여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자회사로 편입된다면 기존 자회사 형식이 아니라 직고용되는 이들과 동일한 임금체계, 원청인 공사와의 교섭 보장이 전제돼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런 조건들이 전제되지 않을 경우 또 다른 비정규직 채용 방식으로 전락한 자회사 부작용을 그대로 답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조는 공사 측에 이런 내용의 대안을 제시했고, 임금체계 부분에 있어선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한다. 공사와 교섭 여부에 대해선 노조 측에 아직 답변을 주지 않았다.

    황 교수는 “인천공항공사는 공공부문의 비정상적 인력운영 방식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대통령이 방문해서 정책 드라이브를 걸었기 때문에 상징성도 크고, 그 결과에 따라 다른 공공기관과 민간기관에 파급력이 상당할 것”이라면서 “대안3의 직고용 50% 정도로 갈 것인지, 전향적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는 노력의 시그널을 던질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인천공항에서 50%라는 절반의 성공으로 만족하게 되면 800여개에 달하는 다른 공공기관에서도 비정규직 제로화는 현실화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 결의대회 모습(사진=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에서만 10년, 공항의 모든 노동자가 비정규직
    “우리가 정규직 될 자격이 없나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화 추진 과정에서 겪는 가장 가슴 아픈 상황은 같은 노동자인 정규직의 반대다. 노노 갈등으로 비춰지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기주의는 지난 공청회에서 극단적으로 드러났다. 당시 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화에 전향적인 토론자에 대해 큰 목소리로 야유를 보내는 행태까지 보였다. 이들은 비정규직 노동자 단 1명도 직고용 돼선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이날 토론자로 온 오순옥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 수석부지부장도 당시 공청회에 참석했었다. 그는 당시 공청회의 상황을 떠올리곤 곧바로 눈물을 쏟아냈다. 그러면서 “조선시대 양반과 쌍놈을 가르는 것과 똑같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오 수석지부장은 “(공청회 전에) 정규직 노조인 한국노총 노조에서 ‘직고용 제로화’를 만들겠다는 성명까지 발표했다. 1만명 모두 자회사로 전환하겠다는 내용이었다”며 “그래서 공청회에서 많은 문제 있을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막상 공청회에서 본 광경은 정말 참담했다. 언제부터 우리 사회에서 정규직이라는 문이 그렇게 굳게 닫혀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인천공항을 12년 연속 1위로 만드는 데 있어서 비정규직의 노력은 100%였다. 비정규직의 노력이 있었기에 인천공항은 존재할 수 있었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에 자격의 문제는 있을 수 없다”며 “그럼에도 정규직이 이렇게 반대하는 것에 대해 분노를 느낀다”고 비판했다.

    특히 “우리는 정규직들의 인건비에서 임금을 떼어달라는 게 아니다. 그동안 용역업체가 가져갔던 이윤의 7%, 관리 부분의 3% 달라는 것 뿐”이라고 지적했다. 정규직의 임금과 처우에 아무런 관련이 없는 정규직화를 반대한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노조는 문 대통령이 시기를 못 박아 놓은 이상 연내 타결을 목표로 직고용 규모를 축소하는 방안도 치열하게 논의하고 있다. 보안경비 분야를 자회사로 하고 6천명 정도를 직고용하는 방안까지 논의됐다고 한다. 800여개의 공공기관이 정규직화 로드맵도 마련하지 않고 인천공항만 보고 있는 상황에 대한 부담감이나 절박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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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 정규직화 선언만 하면 끝? “정부의 적극적 개입 필요한 시점”

    문 대통령이 인천공항에 방문해 연내 1만명 정규직화를 선언했고, 정일영 공사 사장도 이를 크게 반기며 TF를 발족했다. 그러나 현재 상황을 보면 사측의 그런 행보가 보여주기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정부의 수수방관하는 태도는 더 큰 문제다. 덜컥 연내 1만 명 전환 선언만 해버리고 관련 재원 확보 등에 있어선 손을 놓고 있다.

    국회 예결특위 소속인 윤소하 정의당 의원은 “800여개의 공공기관은 인천공사의 1만명 정규직화 과정을 지켜보며 눈치만 보고 있다. 때문에 인천공사는 공공기관 정규직화의 가늠자가 될 것”이라며 “정부의 자기 의지와 방향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정부는 정규직화를 1월부터 한다면서 그에 대한 예산 부분이 전혀 없다. 최소한의 설계를 할 예산도 없는 상황”이라며 “최저임금 인상분(최임 인상에 따른 예산편성)으로 대충 때우고 가겠다는 정도로 밖에는 해석되지 않는다. 정부가 정확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오 수석부지부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3일 만에 인천공항에 방문해 우리에게 ‘선물을 주겠다’고 했다. 그 선물이라는 말 자체도 맞지 않다. 그동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노력해서 1등 공항을 만들었고 당연히 정규직 전환 대상이 돼야 했다”고 우선 지적했다.

    잘못된 인력운영을 바로 잡는 문제를 놓고 정부가 시혜적인 조치를 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에 대한 비판이다.

    오 수석부지부장은 “공사에서 용역을 주면서 공사와 노조와 전문가로 구성된 협의체도 구성했지만 공사에선 800명이라는 직고용 인원을 계속 제시했다. 노조는 (문 대통령이 약속한) 1만 명 직고용하는 요구를 굉장히 많이 했지만 공사는 애초부터 이를 받아들일 의향이 전혀 없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노조는 공사가 평행선 달리는 상황에서 노조의 안을 어느 정도 던진 상황이니까, 이제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줘야 할 때라고 본다”며 “정부가 자체 안을 가지고 정규직을 설득해야 한다. 노조는 정부가 개입해서 안을 낸다면 논의해보겠다”고 말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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